6. 환국과 신석기문화(6)

 

6.6 라선 서포항유적 8000년 전~4000년 전(BC6000~BC2000)

 

신석기시대의 문화층에서는 1기층에서 1, 2기층에서 4, 3기층에서 9, 4기층에서 5, 5기층에서 2기 등 모두 21기의 주거지가 확인되었다. 유물은 여러 종류의 토기와 괭이, 마제석촉, 긁개, 그물추, 숫돌, 사슴뿔로 만든 창끝과 작살, 삿바늘, 찔개살, 송곳 등과 치레걸이, 가락바퀴, 곰배괭이, 대패날, 바늘이 들어있는 뼈바늘통과 함께 뿔괭이 등이 출토되었다.

 

나선특별시 굴포리 서포항동에 위치한다. 유적은 서포항동 마을 동북쪽 해발 57m에 걸치는 얕은 산비탈에 수 만에 걸쳐 펼쳐져 있다. 유적 언저리는 조산만이 감싸고 앞에는 석호가 발달해 있으며 뒤로는 산을 등지고 있어 신석기시대의 살림살이에 알맞은 곳이다. 유적은 196064년 사이에 발굴되었다. 구석기시대의 2개 문화층(이때는 굴포리서포항유적이라고 한다), 신석기시대의 5개 문화층, 청동기시대의 2개 문화층을 합하여 모두 9개 문화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신석기시대 1기층에서 나온 9호 주거지는 평면형태는 말각장방형이며 크기 12×6m, 깊이 1m로 매우 큰 편이다. 바닥은 굴껍데기를 깔고 강자갈과 흙을 섞어 다진 다음, 불을 피워 구웠다. 화덕자리는 5개가 있는데 양쪽 끝의 2개는 강돌을 둘러 만든 것이며 가운데 3개는 돌을 깔아놓은 것이다. 유물은 괭이, 마제석촉, 긁개, 그물추, 숫돌 등 다양하다. 뼈도구는 사슴뿔로 만든 창끝과 작살, 삿바늘, 찔개살, 송곳 등과 치레걸이가 있다. 토기는 모두 입술 가까이에 찍은 무늬를 돌린 것이다.

 

2기층에서는 3·17·19·23, 4기의 주거지가 확인되었다. 주거지는 대개 원형이며 원추형의 고깔지붕으로 복원된다(3). 움의 깊이는 0.60.7m이며 기둥자리들이 있고 계단식으로 된 출입문이 있다. 석기는 1기층과 같은 종류이며 수량이 많다. 뼈로 만든 치레걸이나 조각품은 양이 많지 않은 한국 신석기시대의 예술품으로서 가치가 크다. 2기층의 토기는 완형만 20여 개체가 되는데 주로 심발형토기이나 입술이 바라진 그릇, 목단지, 작은 컵 등도 있다.

 

3기층에서는 8·12·13·20·26·30호 등 9개의 주거지가 드러났다. 주거지는 방형으로 바뀌며 크기가 작아져 한 변이 34m 정도이며 바닥처리법, 기둥구멍, 화덕자리 등은 이전과 같다. 석기는 새로이 삽, 갈돌, 갈판, 창끝, 자귀, 끌 등 간석기류가 더해지며 흑요석 석기도 새로 출현한다. 토기는 그릇 종류가 다양해져 항아리, 단지, 보시기, , 목단지 등 여러 형태가 만들어졌다. 새김무늬와 덧무늬 및 곡선무늬인 타래무늬가 등장한다. 대개 작은 그릇에는 무늬가 없다. 가락바퀴도 처음 나타나는데 원추형과 주판알 모양의 2가지가 있다. 그 밖에 뼈로 만든 예술품과 치레걸이가 있다.

 

 

4기층에서는 11·15·18·21·22, 5기의 주거지가 확인되었다. 석기 가운데 곰배괭이가 나와 주목을 끄는데 이는 3기층의 삽과 함께 신석기 중기 이후 서포항에서 농사를 지었을 것으로 추정하는 중요한 근거가 된다. 뼈도구는 이전과 같으며 조각품이나 치레걸이는 매우 다양하다. 토기는 여전히 새김무늬가 주류이나 아래 문화기에 비해 무늬 없는 그릇들이 늘어나며 번개무늬그릇[雷文土器]이 등장하는 점이 주목된다. 이 무늬는 청천강 이북의 서북지방과 동북지방에 걸쳐 신석기시대 늦은 시기에 나타나기 때문에 늦은 시기의 지표유물로 보고 있다.

 

5기층에서는 7·162기의 주거지가 나왔다. 아래 문화기에서 보이던 석기들과 함께 대패날이 나온다. 뼈도구에는 바늘이 들어있는 뼈바늘통과 함께 뿔괭이 등이 새로 나오는 종류이다. 토기무늬에는 덧무늬의 비중이 크나 무문토기의 양보다는 적다. 신석기시대 말기로 가면서 무늬 없는 토기의 비중이 늘어나고 있다. 무늬가 적어지는 대신 토기의 겉면을 반질반질하게 가는 마연수법이 늘어나 마침내 간토기가 출현하는 것으로 풀이하는 것이 북한의 관점이다.

 

서포항유적의 연대는 1기층을 기원전 5000년으로 잡아 한반도에서 가장 이른 신석기를 보여준다는 것이 북한의 전통적인 관점이었으나 의주 미송리 동굴유적의 연대를 상향조정하면서 동시에 재편되어 기원전 6000년으로 편년되었으며 1·2기층은 신석기 전기, 3기층은 신석기 중기, 4·5기층은 신석기 후기로 보고 있다.

 

서포항유적의 연대를 주변에 있는 러시아 연해주 및 아무르의 유적, 한카호 주변의 유적들과 대비하여 새로이 편년하는 움직임도 최근에 대두되고 있다. 이에 따르면 서포항 신석기문화는 가장 이른 1기가 기원전 4000년대 전반의 보이스만(Boisman) 5, 2기부터는 모두 신석기시대 후기로 추정되어, 북한의 편년과는 매우 달라지고 있다.(신숙정)

출처; 문화유산 연구지식포털, 서포항유적

http://portal.nrich.go.kr/kor/archeologyUsrView.do?menuIdx=795&idx=887

 

 

김찬곤은 [차근차근 한국미술사 8] 강원도 양양군 오산리 사람 얼굴 흙인형1 과연 이것이 신의 형상일까?라는 글에서, 오산리선사유적박물관 '사람 얼굴 흙인형' 전시 공간에 들어가기 전 들머리 벽에 쓰여 있는 설명글에 서포항 여인상은 "풍요와 다산을 기원하는" 여신이라고 하지만, 서포항 여인상 또한 구멍에 줄을 꿰어 몸에 찬 치레거리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았다.

 

『…… 아래 흙인형과 치레거리는 오산리선사유적박물관 '사람 얼굴 흙인형' 전시 공간에 들어가기 전 들머리 벽에 있는 것이다. 박물관 측은 이러한 흙인형과 치레거리를 근거로 들며 사람 얼굴 흙인형을 '신상(神像)' 또는 '씨족수호신상'으로 본다.

 

 

 

▲ ①농포동 여인상(함경북도 농포동) 높이 5.6cm. 사람 얼굴 치레거리(함경북도 선봉군 굴포리). 사람 얼굴(함경북도 선봉군 굴포리). 서포항 여인상(함경북도 서포항) 높이 7.7cm. 신암리 여인상(울산시 울주군 서생면 신암리) 높이 3.6cm. 일본 조몬 흙인형. 조가비 치레거리(부산 동삼동). 중국 우하량 여인상(대릉하 우하량) 높이 22.5cm. 김찬곤

 

들머리 벽에 쓰여 있는 설명글을 보면, 신암리 여인상은 "풍요와 다산을 상징하는 지모신(地母神)"이고, 서포항 여인상은 "풍요와 다산을 기원하는" 여신이고, 조가비 치레거리는 '신상'이다. 하지만 저번 글('신암리 비너스, 크지도 작지도 않은 젖가슴과 잘록한 허리')에서도 말했듯이 신암리 여인상은 신석기 아이가 빚은 여인상으로 보는 것이 적절하고, 조가비는 조가비 입에 목걸이 줄을 건 치레거리이고, 서포항 여인상 또한 구멍에 줄을 꿰어 몸에 찬 치레거리일 가능성이 높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에 자세히 다루겠다.

출처; 오마이뉴스, [차근차근 한국미술사 8] 강원도 양양군 오산리 사람 얼굴 흙인형1 과연 이것이 신의 형상일까?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458549&SRS_CD=0000011849

 

참고자료

 

문화유산 연구지식포털, 한국고고학전문사전, 신석기시대편, 서포항유적

http://portal.nrich.go.kr/kor/archeologyUsrView.do?menuIdx=795&idx=887

 

오마이뉴스, [차근차근 한국미술사 8] 강원도 양양군 오산리 사람 얼굴 흙인형1 과연 이것이 신의 형상일까?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458549&SRS_CD=0000011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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