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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조선시대/고조선

4. 고조선 문화유산 (3) 비파형동검

대야발 2024. 10. 30. 1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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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하교수는 고조선문명의 청동기문화 유물들 가운데 독특한 청동기로 ‘비파형동검’이 있는데, 이 청동단검은 그 모양새가 고대 악기 비파(琵琶)와 비슷한 곡선으로 도안돼 있으므로 붙여진 명칭이라고 합니다. 

 

고조선의 비파형 청동단검은 ①한반도 ②요동 ③요서 지역에서 출토되는 비파형동검의 형태와 구조가 본질적으로 ‘동일’하다고 합니다.

 

 

 

 

 

고조선문명의 청동기문화 유물들 가운데 독특한 청동기로 ‘비파형동검’이 있다. 이 청동단검은 그 모양새가 고대 악기 비파(琵琶)와 비슷한 곡선으로 도안돼 있으므로 붙여진 명칭이다. 고조선문명의 비파형동검은 고중국의 직선으로 도안된 동검이나 또는 북방 오르도스식 구부러진 도안의 동검과는 확연히 모양새가 달라서 누구나 쉽게 구별할 수 있다.

 

 

 

고조선 비파형동검의 큰 특징으로는 첫째, 비파형 청동단검은 중간 부분의 양날에 돌기를 만들고, 그 돌기를 중심으로 검 끝과 검 아랫부분을 부드러운 곡선 모양새로 만들어서 마치 고대 악기 비파 모양처럼 도안했다는 점이다. 전 세계 청동검 양식에서 비파형 도안은 오직 고조선 청동단검과 비파형 청동 창끝만 가진 매우 독특한 도안이다.

둘째, 비파형 청동단검은 검몸과 검자루를 별도로 주조해 조립하는 세계 유일의 ‘조립식’ 청동단검이다. 두 개 부품을 별도로 주조해 조립하는 것이므로 청동기 주조 기술이 상당히 높은 수준에 도달해야 제작할 수 있는 동검이다.

셋째, 비파형 청동단검은 검몸의 한가운데 ‘등대’가 검의 거의 끝에서부터 검자루 이음매까지 세로로 곧게 만들어져 있다. 이것은 동검을 견고하게 하면서 조립을 정확히 하기 위한 것이다.(<그림 2-3> 참조) 주목할 것은 고조선의 비파형 청동단검은 ①한반도 ②요동 ③요서 지역에서 출토되는 비파형동검의 형태와 구조가 본질적으로 ‘동일’하다는 사실이다.』(1)

 

 

 

 

이형구교수는 발해연안식 청동단검(비파형 청동단검)은 발해연안 북부의 대릉하 유역에 집중적으로 분포되어 있고, 만주 지방에서는 요동반도를 비롯해 요하 하류의 심양·무순지구, 송화강 중류의 길장(吉長)지구[길림, 장춘]에 분포되어 있으며, 한반도에서는 북한 지역의 평양시, 평안남도, 황해도에서 발견되고 있고, 남한 지역에서는 충청남도, 전라북도, 최근에는 전라남도 여천시(麗川市)에서도 출토된 바 있다고 합니다.

 



이와 같이 발해연안식 청동단검이 분포되어 있는 지역은 고조선의 강역과 매우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합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발해연안 북부에서 기원전 12~11세기경 은말주초()시기의 청동 예기가 다량으로 발견되었다. 이는 은이 망한 후에 동북 방면으로 이동한 은나라 유민[은유()]이 남긴 청동기일 것으로 보고있다. 그리고 기원전 9·8세기에는 하가점하층문화와 은말주초의 청동기문화가 혼유한 새로운 청동기문화가 이른바 하가점상층문화에서 출현한다. 저자는 중국 녕성현 남산근 101호 석곽묘를 ‘남산근문화(南山根文化)’라 한다. 남산근문화의 대표적인 유물로는 청동단검이 있다. 그리고 요녕성 조양시(朝陽市) 십이대영자(十二臺營子) 돌덧널무덤에서 청동단검이 출토되는데, 이는 만주 지방은 물론 우리나라 고대 청동기문화의 전형적인 한 유형이다.

청동단검은 검신의 생김새가 마치 비파와 비슷하다고 하여 이른바 비파형 청동단검(琵琶形靑銅短劍)이라고도 한다. 그리고 중국에서는 모양에 따라 ‘곡인단검()’이라고도 부르지만 일본과 한국에서는 출토지역의 특성에 따라 ‘만주식동검(滿)’, ‘요령식곡인청동단검()’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이 청동단검이 발해연안에서 주로 분포하고 있기 때문에 저자는 이 청동단검을 발해연안식 청동단검이라고 하였다. 발해연안식 청동단검은 중국 중원 지방에서는 물론 시베리아 지방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매우 독특한 양식이다.

대릉하 유역 영성현 남산근 돌덧널무덤 출토 발해연안식 청동단검발해연안 북부 영성현(현 내몽골 자치주) 남산근 101호 돌덧널무덤에서 출토.

대릉하 유역 조양 십이대영자 돌덧널무덤 출토 발해연안식 청동단검발해연안 북부 대릉하 중류 조양 십이대영자 제2호 묘에서 출토. 길이는 36.7cm.

 

 

 

발해연안식 청동단검은 검신과 칼자루 및 자루 장식이 따로 따로 만들어져서 약 30.3cm 크기 정도로, 검신()과 칼자루[검병()]를 조립하도록 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특히 검신의 끝 부분은 뾰족하고 칼 끝으로 내려가면서 점차 넓어졌다가 중간쯤에서 갑자기 돌기를 이루고 그 위로 다시 급속히 오므라들어서 맨 윗부분에 와서 다시 비파()의 몸체 부분처럼 불룩하다. 단검의 검면 한가운데에는 등대가 서 있고, 뿌리 부분에 슴베가 나와 있어 칼자루에 끼우게 되어 있다. 비파는 검신의 유려한 곡선이 마치 비파를 닮았다고 하여 붙인 이름이다. 생긴 모양과는 달리 검신에도 등대를 세워 찔렀을 때 공기가 통하도록 하였고, 자루에는 광물질의 가중기()를 장식하여 찌른 효과를 가중시키도록 하였다.

요동반도 후목성역 강상유적 출토 발해연안식 청동단검 각종기원전 8·7세기경의 고조선(古朝鮮)시기의 청동기이다. 요녕성박물관 소장.

 

 

 

발해연안식 청동단검은 발해연안 북부의 대릉하 유역에 집중적으로 분포되어 있고, 만주 지방에서는 요동반도를 비롯해 요하 하류의 심양·무순지구, 송화강 중류의 길장()지구[길림, 장춘]에 분포되어 있다. 한반도에서는 북한 지역의 평양시, 평안남도, 황해도에서 발견되고 있고, 남한 지역에서는 충청남도, 전라북도, 최근에는 전라남도 여천시()에서도 출토된 바 있다.

이와 같이 발해연안식 청동단검이 분포되어 있는 지역은 고조선의 강역과 매우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청동단검의 발생에 대하여 북한의 고고학자 박진욱()은 “요동 지방 비파형 단검의 상한은 기원전 12세기이며, 길림·장춘 지구는 기원전 11세기이고, 요서 지방은 기원전 9세기 중엽이다. 따라서 비파형 단검의 발원지는 요동 지방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고 하였다.7) 박진욱이 말하는 비파형 단검이 요동 지방에서 발생하였다고 하는 12세기는 우리나라 고대사 편년으로 고조선 시대에 해당한다. 또 다른 북한의 고고학자 황기덕()은 “요동 지방은 일찍부터 청동기문화가 발생하고 발전한 고장으로, 기원전 1000년경 전반기 초에 이미 노예국가가 성립한 고장이었다”고 하였다.8) 중국의 곽대순은 기원전 1000년 전후로 추정하고 있다.9)

발해연안식(渤海沿岸式) 청동단검(靑銅短劍)1963년 ‘조·중공동고고발굴대’가 요녕성 여대시화룡천무덤에서 발굴한 전형적인 발해연안식 청동단검[일명 비파형단검(琵琶形短劍)]이다.

 

한편, 중국의 다른 학자들은 청동단검이 기원전 9·8세기 서주(西)시대 후기에 대릉하 유역에서 발생했다고 보고 있다. 청동단검을 반출하는 유적으로는 요녕성 영성현[지금은 내몽골 자치구] 남산근 유적을 비롯하여 영성현 소흑석구(), 조양시 십이대영자(), 금서현(西) 오금당(), 요동반도 여대시 와룡천(). 신금현() 쌍방(), 후목성역() 강상()·누상(), 송화강 유역의 길림성() 영길현() 성성초(), 반석현() 소석산() 석관묘 등이 있다. 이들 유적은 모두 석관묘[돌널무덤]나 석곽묘[돌덧널무덤] 또는 적석총[돌무지무덤]의 돌무덤[석묘]형식을 취하고 있다.

저자는 후목성역 강상 유적과 루상 3호묘 출토의 발해연안식 청동단검을 기원전 8·7세기로 추정하였다.

한반도에서는 평양 형제산구역 서포동(西), 황해도 신평군 선암리(), 함경남도 금야읍(), 배천군 금곡동()·대아리(), 그리고 충청남도 부여군 송국리() 등지의 석관묘에서 역시 발해연안식 청동단검이 출토되었다. 최근에는 전라남도 여천시에서 발굴된 고인돌무덤에서 발해연안식 청동단검이 출토되어 주목받고 있다. 여천시 적량동 상적 고인돌무덤의 상한연대는 기원전 8·7세기로, 하한연대를 기원전 3세기로 하고, 중심연대를 기원전 6~4세기경으로 보고 있다.

평양 출토 발해연안식 청동단검평양에서 출토된 비파형 단검은 전형적인 발해연안식 청동단검이다.

충청남도 부여 돌널무덤 출토 발해연안식 청동단검1974년 부여군 송국리 돌널무덤에서 출토된 발해연안식 청동단검. 기원전 6~5세기경으로 추정된다. 평양, 요동반도, 대릉하 유역등 발해연안에서 출토된 비파형 청동단검과 매우 흡사한 형태이다.

전라남도 여천 고인돌무덤 출토 발해연안식 청동단검 각종전남 여천시 적량동 상적 제7호 고인돌무덤에서 출토된 전형적인 발해연안식 청동단검이다. 최근 여천 지방 고인돌무덤에서 모두 11점이 발굴되었다. 길이 34cm.

 

 

 

발해연안식 청동단검은 심양() 정가와자() 토광묘() 출토의 청동단검에 와서 비파형에서 검신의 하부가 점점 직인()으로 변하게 되는 과도기단계에 오게 된다. 이 시기가 대체로 기원전 6·5세기이다. 이와 같은 발해연안식 청동단검은 대략 기원전 5·4세기경까지 계속 유행하는데, 이 시기에 발해연안식 청동단검의 변형 또는 발전된 형태라고 할 수 있는 이른바 좁은 놋단검[세형동검()]이 출현한다. 좁은 놋단검은 발해연안식 청동단검과 마찬가지로 만주 지방과 한반도 전역에 분포되어 있는 우리나라 청동기문화의 또 하나의 독특한 유형이다. 그래서 ‘한국형동검’이라고도 한다. 이와 같은 좁은 놋단검이 기원전 3세기경에는 일본 구주() 지방에 전파된다.

 

발해연안식 청동단검이나 좁은 놋단검은 한결같이 돌널무덤이나 돌곽무덤 등 돌무덤[석묘] 안에서 출토되었다. 돌무덤은 우리가 앞에서 인식하였듯이 동이족의 대표적인 묘제이다. 따라서 발해연안식 청동단검의 주인공은 넓은 의미에서 동이족이며 그것은 고조선시대의 우리 민족의 것이기도 하다. 여기에서 우리는 또 한 번 문화의 동질성은 곧, 민족의 동일성과 연결된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심양 정가와자(鄭家窪子) 토광묘 출토 발해연안식 청동단검 각종청동단검과 세형동검과의 과도기적인 동검이다. 심양청동단검묘문물관리소 진열실에 전시돼 있다.

 

최근[2010]에 카자흐스탄에서 출토된 청동단검을 발해연안에서 흔히 출토되고 있는 비파형청동단검[혹칭 발해연안식 청동단검]의 조형()으로 보는 ‘북방설[시베리아기원설]’을 다시 들고 나왔는데[김정배 ; 「비파형동검과 훼도롭문화」, 2010], 저자는 의견이 다르다. 발해연안식 청동단검은 양날에 돌기처럼 생긴 곡인부()가 칼날[인부()]의 중앙에 있는데 반해 카자흐스탄의 청동단검은 곡인부가 자루부분[병부()] 쪽에 있다. 즉 인부를 장식한 것이 아니라 병부를 장식하고 있기 때문에 발해연안식 청동단검의 형태와는 같다고 볼 수 없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문제가 청동단검의 연대 문제인데, 이를 소개한 김정배 교수는 기원전 15~14세기의 ‘훼도롭(Fyodorov) 문화’의 소산이라고 했다. 그러나 카자흐스탄 국립박물관에서 발행한 도록 “The Ancient of The Kazakh Altai”[2009]의 해설문에는 훼도롭 문화를 기원전 1000년기() 전반기[B.C. 999~500]에 존속한 문화라고 밝히고 있다.

 

또한 김 교수가 기원전 15~14세기라고 주장한 청동단검과 동일한 유형의 청동단검의 연대를 카자흐스탄 국립박물관의 도록에서는 기원전 9~8세기로 편년하였다. 청동단검이 출토된 석곽묘나 석관묘를 훼도롭문화에서 영향받은 것으로 보고 있는데, 이는 일찍이 발해연안 대릉하유역의 흥산문화에서 시작했던 동이족의 고유한 묘제이다.

 

중국 고고학계에서도 발해연안 북부 녕성현 남산근 석곽묘[101호] 에서 출토된 청동단검[발해연안식]의 연대를 기원전 1000년 또는 기원전 9~8세기로 편년하고 있다. 그리고 최근 녕성현 소흑석구 석곽묘[M8501]에서도 청동단검[발해연안식]이 출토되었는데 연대를 서주만기(西, B.C. 9~8세기)보다 늦지 않다고 하였다[『소흑석구()』, 2009, p.457]. 때문에 시공상()으로 보아도 발해연안식 청동단검의 조형()을 카자흐스탄의 청동단검으로 보는 것은 무리다.

 

그래서 지금까지의 고고학적 자료를 통해서 볼 때, 발해연안식 청동단검은 발해연안에서 형성 발전한 독특한 발해연안의 고대문화의 한 양식임을 다시 확인할 수 있다.』(2)

 

 

발해연안 난산건에서 확인된 병기 가운데 가장 중요한 유물은 바로 ‘발해연안식 청동단검’(이른바 비파형 청동단검)입니다.

 

발해연안식 청동검이야말로 고조선 청동기문화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유물입니다. 이런 형태의 청동단검은 난산건을 필두로 랴오닝(遼寧)성 차오양(朝陽)·젠핑(建平)·진시(錦西)·푸순(撫順)·칭위안(淸原) ·뤼다(旅大) 등에서 쏟아집니다. 한반도에서는 평양시 서포동을 비롯해 황해북도 연안군 부흥리 금곡동과 충남 부여군 송국리, 전남 여천시 적량동 등에서도 보입니다.

 

 

 

코리안루트를 찾아서 (26) 난산건의 비밀

 

고조선문화 토대로 창조 독특한 발해연안 청동검

 

 

■난산건에서 쏟아진 청동무기들

발해연안식 청동검이 출토된 난산건 유적 전경. 웬일인지 표지석에는 난산건 유적임을 알리는 글자가 훼손돼 있다. | 이형구 교수 촬영

 

1958년, 랴오닝성 닝청셴(寧城縣·지금은 네이멍구 자치구) 쿤두허(坤都河) 상류에 있는 난산건(남산근·南山根)에서 한 기의 무덤이 확인된다. 석곽이 있고 그 안에 목관의 흔적이 남아있는 무덤에서는 모두 71점의 청동기가 확인됐다. 5년 뒤인 63년 6월, 한 농부가 그 무덤에서 서쪽으로 120m 떨어진 곳에서 2기의 무덤을 더 발견한다. 그로부터 다시 3개월 뒤인 9월14일. 조·중 합동 고고학 발굴대가 이곳을 찾는다. 북한과 중국의 합동발굴이었다.(경향신문 2007년 12월8일자 ‘코리안루트를 찾아서-랴오허 동서쪽의 적석총들’ 참조)

 

조사결과는 무척 흥미로웠다.

“전형적인 은말주초의 청동예기는 물론 토착(고조선)세력, 그리고 중국 북방의 영향을 받아 만든 청동기들이 쏟아진 겁니다. 청동솥의 다리가 날씬해지고 길어졌다든지, 은말주초의 전형적인 모습과는 다른 항아리(雙聯罐·작은 단지를 이은 항아리), 뼈로 만든 구슬(骨珠), 금으로 만든 고리(金環) 등이 나왔다든지….”(이형구 교수)

 

두번째 중요한 변화는 무기의 다량 출토이다. 청동투구와 청동꺾창, 청동화살촉, 청동검, 청동도끼 등이 쏟아진 것이다. 은말주초의 청동기가 조상신, 하늘신에 대한 제사 위주의 예기였다면 난산건 유물은 다양한 지역 문화가 융합된 예기와, 전쟁에 쓰인 무기가 공반된 것이 특징이다. 무엇을 말해주는 것일까.

 

“난산건 문화(샤자뎬상층문화에 해당)는 BC 9~BC 7세기 사이에 유행한 문화예요. 그런데 잘 살펴봅시다. 춘추전국 시대의 도래를 검토해야죠.”(이형구 교수)

 

난산건 유적에서 출토된 뼛조각. 짐승·사람문양과 함께 2대의 수레 문양이 새겨져 있다.(왼쪽) 그런데 이 수레 문양은 한자(漢字)인 ‘수레 거(車)’자의 원형을 표시하는 상형문자들과 흡사하다.(위)

 

 

■청동단검의 전통

하지만 천자의 권위는 회복 불능 상태로 빠졌고, 천하는 제후들간 약육강식의 시대로 접어든다. 제(齊), 초(楚), 진(晋), 진(秦)이 강대해졌고, 정권은 방백(方伯·제후들의 우두머리)에 의해 좌우된다. 춘추전국시대가 도래한 것이다.(사기 주본기)

난산건 출토 청동솥(鼎). 은말주초의 전형적인 청동솥과 비교하면 다리가 길고 날씬한 편이다. 고조선 문화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이때 무려 170여개의 소국이 난립했다고 합니다. 대혼란기에 접어든 것이죠. 천자를 모시는 예악(禮樂)이 무너지고, 힘이 천하를 지배하는 전쟁의 시대가 시작된 것입니다.”(이형구 교수)

이 교수가 예로 든 것이 바로 서주말 동주초의 유적인 뤄양(洛陽) 중저우루(中州路)의 시궁돤(西工段) 주나라 무덤이다.

“260기의 무덤 가운데 청동예기를 부장한 무덤이 9기인데, 청동병기를 수장한 예는 19기가 됩니다. 이것은 청동예기 시대에서 병기시대로 옮겨졌음을 알려주는 단적인 예가 됩니다.”

바로 여왕~평왕 사이, 즉 BC 9~BC 8세기 무렵에 대혼란의 시기, 즉 전쟁의 시기에 접어들었음을 보여주는 문헌과, 중원(뤄양)은 물론 발해연안(난산건)에서 확인할 수 있는 고고학 자료가 일치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발해연안 난산건에서 확인된 병기 가운데 가장 중요한 유물은 바로 ‘발해연안식 청동단검’(이른바 비파형 청동단검)이다.

 

“발해연안식 청동검이야말로 고조선 청동기문화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유물이지. 이런 형태의 청동단검은 난산건을 필두로 랴오닝(遼寧)성 차오양(朝陽)·젠핑(建平)·진시(錦西)·푸순(撫順)·칭위안(淸原) ·뤼다(旅大) 등에서 쏟아집니다. 한반도에서는 평양시 서포동을 비롯해 황해북도 연안군 부흥리 금곡동과 충남 부여군 송국리, 전남 여천시 적량동 등에서도 보입니다.”

 

그런데 또 재미있는 사실은 이런 청동단검이 석관묘와 석곽묘, 그리고 적석총 등 모두 우리의 전통 묘제에서 확인된다는 점이다. 또한 난산건에서 확인된 유물 가운데는 역시 동이의 전통문화의 하나인 복골(卜骨)이 있다는 것이다. BC 9세기부터 시작된 이 청동단검의 전통은 한반도로 이어져 급기야 ‘한국식 세형동검’이라는 독특한 청동기 문화를 낳는다.

 

한반도 청동기 문화의 대표격인 이 세형동검이 출현한 시기는 BC 4세기 무렵이다. 결국 발해연안식 청동단검과 세형동검은 샤자뎬 하층문화~은말주초의 청동기 문화, 즉 고조선이라 토대에서 창조된 독특한 문화인 것이다.(3)

 

 

 

 
 

<참고자료>

 

 

 

 

 

 

샤자뎬 하층문화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샤자뎬 상층문화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고조선 자취’ 본격 논쟁판 열린다 : 한겨레 (hani.co.kr)2017-11-01

 

 

 

 

 

[사진] 국보급 청동방울 ‘간두령’ 완주서 발굴 | 중앙일보 (joongang.co.kr)2011.09.21

 

 

 

36년전 못찾은 국보급 청동검 찾았다 : 한겨레 (hani.co.kr)2008-02-28

 
 


비파형 동검으로 본 고조선의 문화와 영역

https://youtu.be/XBmumqHaTRQ?list=PLRAmvpNm4pmmRSyCOBUipzw4lmxC6bF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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