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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고조선 문화유산 (2) 청동거울

대야발 2024. 10. 26.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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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뉴세문경'(多細紋鏡)

다뉴(多紐 많을다·끈뉴)는 끈을 꿰는 고리(紐)가 여러 개라서 붙인 말이고요,

세문(細紋)은 가는 무늬, 잔 무늬라는 뜻이므로,

'다뉴세문경'(多細紋鏡)은 '고리가 여러 개인 잔무늬 거울'인 것입니다.

'다뉴세문경'(多細紋鏡)은 청동기후기(기원전 5~4세기)에 만들었습니다.

 

 

 

'다뉴조문경(粗紋鏡)은 '고리가 여러 개인 거친무늬 거울'입니다.

'다뉴조문경(粗紋鏡)은 청동기 전기에 만들었습니다.

 

 

 

국보 다뉴세문경은 지금껏 발견된 것 중 가장 크다고는 하지만 실제로는 지름이 21.2㎝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이 좁은 공간에 무려 1만3000개가 넘는 정교한 선과 100여 개의 동심원이 새겨져 있습니다.

선과 선 사이의 간격은 불과 0.3㎜에 불과합니다.

 

 

 

1만3000여 개의 선과 100여 개의 동심원을 0.3㎜ 간격으로 어떻게 그려냈는지는

다치구(일종의 컴퍼스로 여러 개의 바늘을 갖고 있어 한 번에 여러 개의 원을 그릴 수 있는 기구)를 만들어 그렸을 것으로 추정했습니다. 

 

 

 

다뉴세문경 뒷면의 여러 무늬를 학계에서 별무늬, 삼각무늬, 톱니무늬 등 기하학적인 무늬라고 해석해왔는데요,

 

 

김찬곤교수는 다뉴세문경 뒷면의 삼각형은 구름이고, 빗금을 삼각형 구름(云)에서 내리는 빗줄기(雨)로 봅니다. 그리고 이 삼각형 구름은 가장 위 천문(天門)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합니다.

 

 

 

 

신용하교수는 고조선문명 청동기 문화의 특징적 유물 중 하나는 청동거울인 다뉴조문경(거친무늬 거울)과 다뉴세문경(잔무늬 거울)이라고 합니다.

 

 

 

 

고조선문명 청동기 문화의 특징적 유물 중 하나는 청동거울인 다뉴조문경(粗紋鏡)과 다뉴세문경(多細紋鏡)이다. 보통 뒷면 무늬그림의 줄의 섬세한 정도에 따라 다뉴조문경과 다뉴세문경으로 구분한다. 고조선식 청동거울은 모두가 둥근 태양 모양에, 뒷면에 붙은 꼭지가 2∼3개의 ‘다뉴’(多, 여러 꼭지)이고 중심부의 약간 위에 꼭지를 붙여 제조돼 있다. 무늬는 ①햇빛(태양광선) 무늬와 ②번개 무늬가 대종을 이루고 있다. 이에 비해 그 훨씬 후의 고중국식 청동거울은 둥글거나 사각형 모양에 뒷면에 붙인 꼭지가 중심부에 한 개뿐인 단뉴(單, 한 개 꼭지)로 제조돼 있으며, 무늬는 각종 동식물 등 구상물이 대종을 이루고 있다.

 

 

고조선문명의 다뉴조문경과 다뉴세문경의 완전하게 둥근 형태는 해(태양)를 상징한다고 본다. 고조선 사람들은 천손의식을 갖고 하늘과 해(태양)를 숭배했으므로, 청동거울을 항상 해와 같이 둥근 모양으로 만들고, 뒷면의 무늬는 햇빛(태양광선)을 기하학적으로 형상화했다. 고조선문명에서 다뉴조문경과 다뉴세문경의 뒷면에 동심원을 1∼3개 그리고 햇빛을 삼각형 또는 별무늬 모양으로 나눠 그린 것도 사실은 모두 햇빛(태양광선)의 기하학적 무늬다. 종래 이것을 별무늬 또는 삼각무늬, 톱니무늬로 이름 붙여 설명해 온 것은 해(태양) 숭배 사상과의 관련을 간과한 정확하지 않은 설명이라고 본다.(<그림 2-1> 참조)

이 고조선 다뉴조문경의 지역적 발굴 분포를 큰 강을 경계로 가정해 지도에 옮겨보면 <그림 3>과 같다. <그림 3>에서도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고조선 다뉴조문경은 한반도 전역과 만주의 요동·요서 및 연해주지역에도 분포돼 있다.(1)

 

 

 

 

윤명철교수는 청동거울은 90여 개가 한반도 전역과 만주 일대, 특히 요동과 요서 지방 그리고 소량이지만 일본 열도에서도 발견됐는데, 이 지역들은 원조선의 영토, 생활권 또는 무역권의 범주에 해당한다고 합니다.

 

 

 

神物인 거울은 청동으로 제작

 

원조선은 후기에 이르러 철기를 사용했음에도 불구하고, 거울만큼은 청동으로 제작해 사용했다. 청동거울은 90여 개가 한반도 전역과 만주 일대, 특히 요동과 요서 지방 그리고 소량이지만 일본 열도에서도 발견됐는데, 이 지역들은 원조선의 영토, 생활권 또는 무역권의 범주에 해당한다.

 

고대사회에서 거울은 종교적으로 중요한 신물(神物)이며, 정치적으로도 상징성이 컸다. 원조선의 청동거울은 기원전 5~4세기에 제작됐는데, 단군신화의 천부인(天符印) 3개 가운데 으뜸으로서 고도의 미와 의미, 심오한 ‘내적 논리(사상)’가 반영돼야 했다. 최고의 지식과 우수한 기술력을 동원할 수밖에 없었다.

 

 

완벽한 ‘원형’이고, 직경이 7~12㎝다. 전북 완주에서 발견된 동경은 지름이 14.6㎝이며, 무게는 447g이다. 한쪽 면에 끈을 맬 수 있는 2개 또는 3개의 꼭지가 있으며, 무늬선의 곱고 거친 정도에 따라서 ‘잔무늬 거울(다뉴세문경)’과 ‘거친무늬 거울(다뉴조문경)’로 나눈다.』(2)

 

 

 

 

기원전 4세기 무렵 청동기 시대에 만든 국보 제141호 다뉴세문경(多紐細汶鏡)은 이 시기 한반도에 동아시아 최고 수준의 정밀 기술이 존재했음을 웅변하는 유물입니다.

 

 

 

2400년 전 청동거울 ‘신비한 비밀’

국보 제141호 다뉴세문경의 ‘초정밀 문양’ 제작 비법 실마리 나왔다

국보 제141호 다뉴세문경 <경향신문사>

 

 

지금으로부터 2400년 전 한반도에 최첨단 나노 기술이 존재했다면 믿을 수 있을까. 기원전 4세기 무렵 청동기 시대에 만든 국보 제141호 다뉴세문경(多紐細汶鏡)은 이 시기 한반도에 동아시아 최고 수준의 정밀 기술이 존재했음을 웅변하는 유물이다. 다뉴세문경 제작 방법의 비밀을 풀기 위해 지금껏 수차례 복원을 시도했지만 번번이 실패했을 정도다.

 

 

다뉴세문경은 청동기 후기에서 초기 철기 시대에 유행한 청동 거울이다. 다뉴(多紐)란 뉴(끈으로 묶을 수 있는 고리)가 여러 개 달려 있다는 뜻으로, 거울 뒷면에 달려 있는 고리 때문에 붙은 명칭이다. 국보 제141호 다뉴세문경에는 두 개의 고리가 달려 있는데, 청동기 시대 사람들은 이 고리에 끈을 걸어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거울 뒷면에는 직선과 원으로 이루어진 기하학적 문양을 새겼다. 세문(細汶)은 이 문양이 정밀하다는 뜻에서 붙은 것으로, 무늬가 굵고 거친 거울은 따로 다뉴조문경(多紐粗汶境)이라고 부른다. 다뉴조문경은 청동기 전기에 많이 사용되었다.

 

 

지름 21㎝ 공간에 수많은 선과 원 새겨


다뉴세문경은 중국 동북 지방과 러시아 연해주를 비롯하여 한반도 전역에서 발견되고 있으며 일본에서도 같은 종류의 청동 거울이 발견된다. 숭실대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국보 제141호 다뉴세문경(숭실대 국보경)은 1960년대 충남 지역에서 발견된 것으로 지금까지 발견된 100여 점의 다뉴세문경 중 가장 크고 정교하게 만든 것이다. 숭실대 국보경은 한때 출토지가 강원도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건무 문화재청장은 고(故) 한병삼 전 국립중앙박물관장의 말을 빌려 국보경은 원래 논산훈련소에서 참호를 파던 군인들이 발견했는데 중간상인에게 넘어가는 과정에서 강원도에서 발견한 것으로 둔갑했다고 전했다.

 

 

국보 다뉴세문경의 비밀은 무엇보다도 문양의 정교함에 있다. 국보 다뉴세문경은 지금껏 발견된 것 중 가장 크다고는 하지만 실제로는 지름이 21.2㎝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 좁은 공간에 무려 1만3000개가 넘는 정교한 선과 100여 개의 동심원이 새겨져 있다. 선과 선 사이의 간격은 불과 0.3㎜에 불과한데다, 원과 직선이 복잡하게 교차하면서 기하학적인 아름다움까지 만들어내고 있다. 현대 최고의 숙련된 제도사가 확대경과 초정밀 제도 기구의 도움을 받아 그린다고 하더라도 쉽지 않은 작업이다. 오로지 육안과 초보적인 수준의 기구에 의존해서 이처럼 정교한 문양을 그렸다는 것 때문에 신비감은 물론, 후대에 만들어졌다는 위조 논란까지 일고 있는 것이다.

 

위_ 수많은 직선을 이어서 그린 다뉴세문경의 삼각 문양. 아래 _ 다뉴세문경 외구의 동심원. <국립중앙박물관>

 

 

국보 다뉴세문경의 또 한 가지 놀라운 점은 그것이 거푸집에 청동을 부어 만든 주물 작품이라는 점이다. 도안이 아무리 정밀하더라도 그 도안을 바탕으로 주물을 떠내기 위해서는 고도의 주물 기술이 필요하다. 주물 기술에 문제가 있을 경우 도안의 정교함이 희생되어 최종적으로 만들어낸 거울이 도안과 같은 수준의 정밀성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거푸집이 출토된 적이 없기 때문에 거푸집의 재질과 형태는 더욱더 수수께끼에 휩싸여 있었다.

 

......

 

다뉴세문경 제작의 비밀을 푸는 관건은 주석과 구리의 비율, 거푸집의 재질, 문양 제도 방법 등 세 가지로 압축할 수 있다. 우선 국보 다뉴세문경은 구리와 주석의 비율이 매우 이상적인 것으로 드러났다. 구리와 주석의 비율이 중요한 것은 주석 함유량이 많을수록 거울의 반사율이 높아지지만 주석 함유량이 일정 비율을 초과하면 인장 강도가 급격하게 떨어져 작은 충격만으로도 쉽게 깨지기 때문이다. 보존과학팀에 따르면 다뉴세문경의 구리 대 주석 비율은 65.7:34.3으로 다른 청동 거울에 비해 주석 함유량이 높은 편이고, 제작 당시 거울면의 빛깔은 은백색에 가까웠을 것으로 추정된다.

 

 

거푸집의 재료는 모래인 것으로 밝혀졌다. 지금까지 거푸집의 재질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많았다. 몇 차례 복원 시도에서도 동판이나 납 등에 무늬를 새긴 뒤 밀랍판으로 눌러 모양을 본뜨는 방법을 사용했으나 최종 주물에서 무늬가 망가지는 등 좋지 않은 결과가 나왔다. 보존과학팀은 거울 면과 문양 면에 걸쳐 있는 주조 당시 발생한 결함 부위를 분석했을 때 거푸집에 사용한 주물사(거푸집 모래)가 나타난다는 사실을 발견함으로써 거푸집의 재질이 모래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러나 완성된 거울의 단면에 모래가 밀려 올라간 흔적이 있는 것으로 보아 거푸집이 그리 튼튼하지는 않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1만3000여 개의 선과 100여 개의 동심원을 0.3㎜ 간격으로 어떻게 그려냈는지는 가장 큰 관심거리다. 보존과학팀은 화상분석기로 21개의 원에 대해 반지름을 구한 결과, 반지름 분포가 동일한 경향을 보인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를 토대로 미루어볼 때 이 원들은 다치구(일종의 컴퍼스로 여러 개의 바늘을 갖고 있어 한 번에 여러 개의 원을 그릴 수 있는 기구)를 만들어 그렸을 것으로 추정된다. 컴퍼스를 사용하여 한 번에 원을 하나씩 그린다면 이처럼 일정한 분포의 반지름이 나올 수 없기 때문이다. 보존과학팀은 또 각각의 선과 동심원이 어떤 순서로 그려졌는지에 대해서도 분석을 내놓았다.

 

 

거품집 재료는 모래로 추정


그러나 해결되지 않은 부분 또한 많다. 우선 다치구를 사용하여 원을 그렸다고는 하지만 그 다치구를 어떻게 만들었는지에 대해서는 밝혀지지 않았다. 1㎝ 길이 안에 무려 20개의 바늘을 박아야 한다는 점을 감안할 때 초정밀 기계의 도움 없이 어떻게 다치구를 만들어냈는지는 수수께끼다.

 

또한 직선과 동심원이 그려진 순서를 추정했다고 하지만 확대경이나 초정밀 제도 기구의 도움 없이 청동기 시대의 장인이 어떻게 그처럼 복잡한 문양을 그려냈는지도 상상력의 영역에 있다.

 

무엇보다도 제작 방법에 대한 이론적인 분석과 실제 복원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현대의 장인이 실제 복원에 성공하지 못한다면 그 비밀이 완전히 풀렸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 몇 년 전 다뉴세문경 복원에 도전했던 한 장인은 “사람이 만든 것이 아니다”라면서 그 정밀한 제작 기술에 대한 존경심을 드러냈다.

 

위대한 예술 작품은 분석할수록 더 많은 비밀을 드러낸다. 국보 제141호 다뉴세문경은 여전히 풀리지 않는 비밀을 간직한 채 현대인들에게 지속적인 찬탄의 대상으로 남아 있다.』(3)

 

 

 

 

김찬곤교수는 다뉴세문경 뒷면의 삼각형은 구름이고, 빗금을 삼각형 구름(云)에서 내리는 빗줄기(雨)로 봅니다. 그리고 이 삼각형 구름은 가장 위 천문(天門)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합니다.

 

 

 

 

청동거울 무늬의 기원은 암사동 신석기 토기

 

〈사진159〉 세모형 빗살무늬토기. 서울 암사동. 높이 36.8cm. ⓒ 국립중앙박물관관련사진보기

   


'사진160-161' 중국 칠성각 거울을 보기에 앞서 서울 암사동 빗살무늬토기 문양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암사동 토기 문양에 중국 청동거울 문양을 풀 수 있는 실마리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사진159'는 서울 암사동 신석기시대 빗살무늬토기 아가리 부분이다. 가장 위쪽에 하늘 속 물(水) 층을 6층으로 새겼다.

왼쪽과 중간을 보면 무늬를 새기다 만 부분이 있는데, 이것은 하늘 속 통로, 즉 천문(天門)이다. 이 천문을 통해 삼각형 구름 또는 원(타원)형 구름이 나온다. 그리고 이 구름에서 비(雨)가 내린다('암사동 신석기인이 그린 서울 하늘 뭉게구름' 참조 바람). 이 그릇 무늬는 y축에서 본 하늘 속 물과 천문, 하늘, 구름, 비라 할 수 있다. 그에 견주어 '사진160-161'은 x축에서 본 비와 구름과 천문이다. '사진160-161' 다자인은 '사진159〉에서 아래 노란 수평선까지이다.
 

〈사진160〉 중국 치지아문화(濟家文化 기원전 2000년) 청해타마대 M25호 무덤. 칠성각(七星角) 기하문단뉴동경. 기원전 12-11세기. ‘칠성각’은 세모꼴 각이 일곱 개인 별 무늬란 말이고, ‘단뉴’는 뉴(고리)가 하나라는 뜻이다. 〈사진161〉 칠성각(七星角) 기하문단뉴동경에서 테두리를 지운 도상이다. 중국 청동기 장인이 생각한 실제 도상은 여기까지다. 테두리는 그의 디자인에서 염두에 두지 않은 것이다. ⓒ 김찬곤관련사진보기

   
별(星)이 아니라 삼각형 구름

중국 청동거울은 기원전 20세기까지 올라가나 '사진160' '칠성각 거울'(12-11세기)을 드는 까닭은 문양이 선명하고, 또 이 문양이 그전과 그 뒤 한중일 청동거울 문양을 풀 수 있는 기본 문양이기 때문이다. 중국 학계뿐만 아니라 한·일 학계에서도 이 문양을 '별문양(星文)'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고대 중국과 한반도 사람들은 별을 그릴 때 이렇게 세모꼴로 각이 지게 그리지 않았다. 고구려 벽화나 일본 기토라 천문도를 보더라도 큰 별은 좀 큰 '동그라미'로, 작은 별은 좀 작은 동그라미로만 구별했을 뿐이다. 이는 조선의 천문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이런 문양을 별로 보는 것은 지극히 근대적인 관점이다.

'사진160'에서 바깥 테두리 선은 청동기 장인이 염두에 두지 않은 부분이다. 그래서 이것을 지우고 색을 더해 '사진161'처럼 그려 보았다. 가운데 천문에서 삼각형 구름이 나오고, 그 구름에서 비가 내리는 모양이다('한반도 빗살무늬토기의 무늬 종류' 참조바람). 이 디자인은 그 뒤 한중일 청동거울의 기본 디자인이 된다. 한반도 다뉴세문경 무늬도 이와 본질적으로 같다. 다만 무늬가 세밀하고 복잡할 뿐이다.
 

〈사진162〉 평안남도 맹산에서 나온 청동거울 거푸집으로 만든 청동거울 재현품. 유리건판 사진. 국립중앙박물관. 〈사진163〉 평안남도 맹산 청동거울 그림. ⓒ 국립중앙박물관관련사진보기

   
국보 제141호 다뉴세문경 무늬를 풀 수 있는 실마리 몇 가지

'사진162'는 평안남도 맹산 출토 거푸집으로 만든 청동거울이다. 맹산에서 나온 거푸집은 연대를 정확히 알 수 없으나 국보 제141호 다뉴세문경보다 이른 시기의 것일 가능성이 높다. 이 거울 무늬에는 국보 제141호 다뉴세문경 무늬를 풀 수 있는 실마리 몇 가지가 담겨 있다.

'사진163'을 보면 가운데에 팔각형 천문을 두었다. 이는 팔방(八方) 세계관이라 할 수 있다. 동서남북과 동북·서북·동남·서남 방향, 이렇게 팔방 세계관을 표현했다. 팔면에 붙은 삼각형 구름-①은 천문에서 여덟 방향으로 나오는 구름이다. 구름 안의 빗금은 비(雨)나 수분(水)을 뜻한다. 그러니까 구름 속에 물(水)을 머금고 있는 것이다. 삼각형 구름-②에서 주황빛 빗금을 보면 일부러 팔각형 면에 수평으로 그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삼각형 구름-③을 보면 구름-②의 규칙성에서 벗어나 있다. 이는 구름-①의 ㉮, ㉯에서도 볼 수 있다.

이렇게 규칙성에서 벗어나 있는 것은 디자인에 대한 구상이 완벽하지 않아서이다. 그래도 팔각형 천문과 거기에서 나오는 삼각형 구름, 이 구름에서 내리는 비만큼은 규칙성을 지켰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은 국보 제141호 다뉴세문경에서도 그대로 지켜진다. 다만 팔각형 천문은 둥근 원으로 바뀔 뿐이다.

'사진162'에서 ㉰, ㉱, ㉲는 삼각형 구름인데, 국보 제141호 다뉴세문경에서는 '구름'을 새길 때 이처럼 삼각형 한 변에 수평으로만 그린다. 이것은 빗금 비(雨)와 구별하기 위해서다. 우리 학계에서는 ㉰, ㉱, ㉲, ㉳를 삼각형 안에 선(線)이 모여(集) 있다 해서 '삼각집선문'이라 하고 있다. 그런데 ㉳처럼 삼각형 한쪽 면이 터진 집선문을 볼 수 있다. 사실 이것은 삼각형과는 관계가 없고, 삼각형 구름에서 나오는 비(雨)를 새겼다고 볼 수 있다. 삼각형 구름 사이에 빗금이 그려져 있어 잘못 읽은 것이다. 이는 '사진161' 칠성각 청동거울 도상을 봐도 확인할 수 있다.

비와 구름과 바람(風)

한국과 중국 미술사에서 바람(風)은 청동기시대 말 철기시대부터 문양이 보이기 시작한다. 신석기 세계관이 응축되어 있는 중국 한자 갑골에서는 단 한 자만 보이고, 육서통에 이르러서야 24자를 확인할 수 있다.

우리 기록에서 바람(風)은 <삼국유사> '고조선' 편에서 찾아볼 수 있다. 아마 이 기록이 가장 이른 시기의 기록일 것이다. 환웅은 이 땅에 내려올 때 풍백(風伯), 우사(雨師), 운사(雲師)를 거느리고 오는데, 여기서 풍백은 우사와 운사의 '맏이'(우두머리)이고, 비와 구름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자다. 청동기시대 군주(제사장)는 스스로 풍백을 자처했고, 자신들만이 비구름을 몰고 올 수 있다고 했을 것이다.

단군신화의 이 대목은 당시 백성들의 비구름 세계관을 독점하려 했던 청동기 지배자들의 욕망과 그간의 사정을 말해 주는 구절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그 뒤 청동기와 철기시대 지배자들이 남긴 유물을 봤을 때 그 욕망은 성공한 듯싶다. 청동기시대 그릇에서 비구름 무늬가 사라지는 것, 무늬가 사라지고 민무늬토기만 빚은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한반도 고대미술에서 바람(風)은 결코 간단한 주제가 아니다. 이는 다음 연재글 '팔주령의 비밀' 편에서 소리(音), 파문형 동기와 바람개비 수막새를 다루면서 아주 자세하게 밝힐 것이다.(4)

 

 

 

 

햇살무늬, 별무늬, 번개무늬, 고사리무늬

 


〈사진190〉 다뉴세문경. 강원도 횡성군 안흥면 강림1리 초기 철기시대 무덤에서 나왔다. 지름 16.2cm. 기원전 2세. ⓒ 국립춘천박물관관련사진보기

 


〈사진190〉 청동거울에 대해 《고고학사전》(국립문화재연구소, 2001)은 "거울 뒷면에 가는 선으로 삼각형 내부를 평행선으로 빽빽하게 채워 넣은 삼각집선문(三角集線文)을 기본 무늬단위"로 하는 다뉴세문경으로 설명하고 있다(20쪽). 이것 말고는 설명이 더 없다. 청동거울을 풀이한 미술사나 고고학 책을 살펴봐도 더 깊이 들어간 설명글을 찾아보기 힘들다.

 

 

'삼각집선문'이라 하지만, 문제는 이 삼각집선문이 무엇을 구상으로 하여 새긴 것인지 말하지 않는다. 단지 삼각형(三角形) 안에 선(線)이 모여(集) 있다 해서 삼각집선문이라 할 뿐이다. 한중일 고대 미술사에서 삼각집선문은 아주 중요한 무늬인데도 한중일 학계 모두 이것이 무엇을 새긴 것인지 알지 못한다. 과연 우리는 삼각집선문의 비밀을 풀지 못한 채 신라와 가야 사람들의 세계관을 알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김원룡·안휘준의 《한국미술의 역사》(시공사, 2016)에서는 청동거울의 무늬를 일러 기하학적, 추상적, 상징적 무늬라 한다(43쪽). 하지만 이 무늬가 기하학과 어떻게 관련이 있는지는 말하지 않는다. 또 추상적이라 하는데, 무엇(구상)을 추상화했는지 말하지 않는다.

 

 

물론 상징적 무늬라 하면서도 무엇을 상징으로 하는지도 말하지 않는다. 이러한 설명은 말하면서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 것과 같다. 사실 학자들이 자주 쓰는 '기하학적 추상무늬'란 말은 '자신도 모른다'는 말을 돌려서 하는 말일 뿐이다.



유홍준은 《유홍준의 한국미술사 강의1》(눌와, 2012)에서 청동거울을 "제관이 햇빛을 반사시키는 의기"이고, "거울 뒷면에 가는 선과 동심원을 기하학 무늬로 새긴 것은 태양과 햇살을 추상적으로 표현한 것"이라 한다. 이 또한 어떤 근거도 없는 말이다. 그런데 이런 근거 없는 말이 지금은 공리(公理)가 되어 있다. 역사나 미술사에서 이것만큼 무서운 것은 없다. 엉뚱한 논리가 일단 공리가 되어 버리면 이것을 지우기가 여간 힘들기 때문이다.



유홍준은 〈사진190〉에서 동그라미 부분, 거울 테두리 쪽 이등변 삼각형 꼴이 햇살이 비치는 모양 같다 해서 '태양과 햇살을 추상적 표현한 것'으로 해석한다. 하지만 이 무늬가 진정 햇살이라면 그의 말처럼 추상적·기하학적·상징적 표현이 아니라 그야말로 '구상적'인 무늬이다.

 

 

아이들은 해와 햇살을 보통 이렇게 그리는데 이걸 두고 우리는 그것을 추상적이거나 상징적이라 하지 않는다. 청동거울에 있는 무늬 가운데 햇살무늬, 별무늬, 번개무늬, 고사리무늬 같은 무늬 이름은 원래 무늬의 모양을 말하는 이름이었지만 수십 년 동안 그 무늬의 정체를 풀지 못함에 따라 그 무늬가 정말 그 무늬가 되어 버렸다. 예를 들어 번개무늬가 실제로 번개를 새긴 것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사진191〉 화로모양 그릇받침. 김해시 대성동2호 무덤. 높이 25.6cm. 지름 42.7cm. 4세기 중엽. 국립김해박물관 〈사진192〉 뚜껑접시. 경주 천마총. 높이 8.1cm. 국립경주박물관 ⓒ 국립김해박물관 국립경주박물관관련사진보기

 

 

삼각집선문, 그동안 반대로 읽지 않았을까?

국립김해박물관에 가면 〈사진191〉 같은 화로 모양 그릇받침이 많고, 이 그릇에는 어김없이 삼각집선문(삼각형 빗금무늬)가 있다. 삼각집선문은 가야뿐만 아니라 신라 그릇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무늬다. 이 무늬는 근대사학 100년 동안 처음부터 삼각집선문이었고, 지금도 여전히 삼각집선문이다.

 

 

문제는 고대 장인들이 무엇을 삼각집선문으로 디자인했는가, 하는 점이다. 학계는 이에 대해 근대사학 100년 동안 '기하학적 무늬'라 해 왔다. 한마디로 알 수 없는 무늬라는 말이다. 그런데 정말 이 무늬는 기하학적 추상무늬일까. 정말 알 수 없는 무늬일까.



우리는 근대사학 100년 동안 〈사진191-2〉의 무늬를 혹시 반대로 읽지는 않았을까? 나는 그래 왔다고 본다. 〈사진192〉에서 동그라미 부분을 보면 빗금이 밖으로 나와 있다. 이 그릇에서 빗금은 아래 경계선을 삐져나오게 새겼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이는 이 그릇을 디자인한 장인이 이 경계선을 염두에 두지 않았다는 것을 말해 준다. 이 경계선을 마음에 두었다면 그는 이 선을 넘지 않게 새겼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는 삼각집선문이 될 수 없다. 나는 이 빗금을 삼각형 구름(云)에서 내리는 빗줄기(雨)로 본다. 그리고 이 삼각형 구름은 가장 위 천문(天門)에서 나오는 것이다. 〈사진191〉의 무늬도 마찬가지이다. 이런 도상은 중국 전국·전한 시대와 고구려 수막새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디자인이기도 하다.』(5)

 

 

 
 
 
 
 
 
<주>
 
 
 

 

 
 
 
 
 
 
 
 
 
 
 
 
 
 
 
(4) 21화다뉴세문경 무늬, 드디어 풀리다[차근차근 한국미술사 21] 다뉴세문경 무늬는 천문과 삼각형 구름과 비

 

 
 
 
 
 
(5) 27화다뉴세문경의 비밀, 드디어 풀리다 8'기하학적 추상무늬'란 말은 '자신도 모른다'는 말

 

 

 

 

<참고자료>

 

 

 

 

 

 

22화다뉴세문경 무늬, 드디어 풀리다3[차근차근 한국미술사22] 고구려 사람들의 세계관과 내세관 그리고 다뉴세문경

 

 

 

23화다뉴세문경 무늬, 드디어 풀리다4[차근차근 한국미술사23] 다뉴세문경, 과연 기하학적·추상적·상징적 무늬일까

 

 

 

24화다뉴세문경 무늬, 드디어 풀리다5[차근차근 한국미술사] 사방오주(四方五州)와 천문(天門) 세계관

 

 

 

25화다뉴세문경 무늬, 드디어 풀리다 6[차근차근 한국미술사] 동심원 여덟 개는 도대체 무엇일까?

 

 

 

26화다뉴세문경, 드디어 풀리다7[차근차근 한국미술사] 하늘은 둥글고 아홉 겹으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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