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력사를 찾아서

2007년 10월 평양에서 진행된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에서 채택된 '남북관계 발전과 평화번영을 위한 선언'에 따라 그 이행을 위한 제1차 남북총리회담이 2007년 11월 14일부터 16일까지 서울에서 진행되었다. 남과 북은 '남북관계 발전과 평화번영을 위한 선언'이 남북관계를 보다 높은 단계로 발전시키며 한반도 평화와 민족공동의 번영과 통일을 실현하기 위한 새로운 국면을 열어나가는데서 중대한 의의를 가진다는데 인식을 같이하고 이를 성실히 이행하기 위해 다음과 같이 합의하였다. ■ [남북총리회담]'남북관계 발전과 평화번영을 위한 선언' 이행에 관한 제1차 남북총리회담 합의서 전문아시아경제 은용주기자 2007. 11. 16. 10:31 2007년 10월 평양에서 진행된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에서 채택된 '..

■ [남북 정상선언]남북관계 발전과 평화 번영을 위한 선언경향신문 2007.10.04 18:41대한민국 노무현 대통령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이의 합의에 따라 노무현 대통령이 2007년 10월 2일부터 4일까지 평양을 방문하였다. 방문기간 중 역사적인 상봉과 회담들이 있었다. 상봉과 회담에서는 6.15 공동선언의 정신을 재확인하고 남북관계발전과 한반도 평화, 민족공동의 번영과 통일을 실현하는데 따른 제반 문제들을 허심탄회하게 협의하였다. 쌍방은 우리민족끼리 뜻과 힘을 합치면 민족번영의 시대, 자주통일의 새 시대를 열어 나갈 수 있다는 확신을 표명하면서 6·15 공동선언에 기초하여 남북관계를 확대·발전시켜 나가기 위하여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또 하나의 '약속'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

2007년 10월 2일. 분단 이후 처음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이 걸어서 판문점을 통과해 평양에 방문하면서 2007년 정상회담이 시작됐다. 이어 노 전 대통령은 평양 4·25 문화회관 광장에서 열린 공식 환영식에서 김정일 위원장을 직접 만나 악수, 두차례의 단독 회담을 진행했다. 그리고 6·15 공동선언의 4배 분량인 10·4 남북 공동선언문을 발표하게 된다. 남북 정상이 합의한 선언은 세 가지 부분으로 나뉜다. 먼저 남북한이 6·15공동선언을 통해 통일문제를 자주적으로 논의하자는 것이다. 또 서해 평화수역을 조성하는 등 한반도 내 평화 체제를 구축하자고 합의했다. 끝으로 문화, 경제 등 협력사업의 교류를 확장하자고도 했다. ■ 처음으로 넘은 금단의 선…남북정상 손 맞잡아 올렸다 [뉴스속오늘]머니투데이..

정부는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 중국의 고구려사 편입 시도인 '동북공정' 등에 대한 범정부 차원의 종합대책을 마련하라는 노무현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동북아역사재단'을 설립키로 했으며, 2006년 5월 국회에서 설치 법안이 통과되자 9월 1일자로 재단 초대 이사장을 임명했다. 동북아 역사왜곡 및 독도 관련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정부가 설립한 '동북아역사재단'의 김용덕(62·사진) 초대 이사장이 '지일파' 학자 양성 등을 위해 설립된 일본국제교류기금(일본기금)의 지원을 받아온 것으로 확인됐다. 김 이사장의 취임 이후 학계와 시민단체는 '한국사 전공자가 아닌 일본사 전공자가 임명된 어이없는 처사', '역사적 고민과 검증을 거치지 않은 인사'라고 비판했다. ■ [단독]동북아재단 김용덕 이사장, 日 ''지일파..

2005년 뉴라이트전국연합(이하 ‘전국연합’)의 창립을 주도한 김진홍 목사(71)는 이명박 대통령과 오랫동안 친분관계를 맺어온 것으로 알려져 왔다. 김 목사와 뉴라이트전국연합은 2007년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와의 당내 경선, 이회창 무소속 후보의 출마 국면에서 이명박 대통령을 전폭적으로 지지했다. 이명박 대통령도 당선 직후인 2007년 12월 22일 뉴라이트전국연합 송년회에 참석해 지지자들에게 감사 의사를 표한 뒤 “5년 전이나 5년 후나 똑같은 모습으로 여러분에게 다가가겠다”고 약속했다. 안병직, 신지호, 김영환, 최홍재 등 ‘전향 우파’들은 건국절,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북한 인권운동에 이론적 근거를 제공했다. 뉴라이트 계열의 주장은 이명박 정부 내내 이념논쟁의 중심에 있었다. 계간 의 편집위원..

한국전쟁과 군부독재 시기에 이뤄진 국가폭력을 바로잡기 위해 지난 2005년 말 출범한 진실화해위는 5년간 진정사건 8468건의 진실을 규명했다. 한국전쟁기 이뤄진 가장 큰 민간인 학살로 꼽히는 국민보도연맹 사건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방대한 과거사에 견줘 활동 기간이 짧았던 데다 이명박 정부 때 뉴라이트 계열 인사가 위원장을 맡는 등 홍역을 치르면서 아쉬움 속에 활동을 마쳐야 했다. ■내년 '2기 진실화해위' 닻올려..5·18, 4·3 추가 진상규명 속도[한겨레] 엄지원 기자 2017. 7. 20. 20:56 '국정과제 3호' 과거사 해결 어떻게1기 진실화해위 한계 보완과거사통합재단 설립 검토피해보상을 위한 특별법 추진 문재인 정부가 제시한 ‘국정과제 3호’는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과거사 해결’..

진상규명위는 일제 강점기를 1904년 러일전쟁에서 1919년 3·1운동까지를 1기, 3·1운동에서부터 1937년 중일전쟁까지를 2기, 중일전쟁에서 1945년 해방까지를 3기로 나눠 친일반민족행위 대상자를 조사했습니다. 총 3차에 걸쳐 발표한 친일 명단에는 총 1005명이 포함되었는데요,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된 4389명의 4분의 1 수준입니다. ■ 대통령직속 진상규명위, 친일 반민족106명 발표김상기 기자 2006. 12. 6. 21:18 대통령 직속 기구인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위원장 강만길)는 6일 친일반민족행위자 106명을 1차로 확정해 발표했다. 민간 연구기관이나 학계가 아닌 정부 차원에서 친일반민족행위를 조사해 명단을 공개한 것은 처음이다. 진상규명위는 일제강점 초기인 ..

개성공단은 2000년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 장 간 남북 정상회담 이후 실무 협의가 시작돼 2003년 착공해 2004년 12월 본격 가동을 시작했다. 같은 달 15일에는 개성공단의 첫 생산품인 냄비 1000점이 세상에 나왔다. 남북 경제협력의 상징인 이 제품은 '통일냄비'라는 이름으로 출시됐다. 개성공단 사업은 남한의 경우 중소기업들이 인건비가 저렴한 북한 노동력을 활용해 가격 경쟁력이 있는 상품을 생산할 수 있고, 북한은 경제적 이득을 취할 수 있어 '윈-윈'(win-win) 사업으로 평가받았다. 북한의 개혁·개방을 유도하고 자본주의 경제를 학습시킬 수 있다는 이점도 있었다. ■'통일냄비' 생산 20년만에…운영조직 없어진 개성공단 재가동 '요원'(서울=뉴스1) 구교운 기자 최소망 기자 20..

한일 월드컵 열기가 뜨겁던 2002년 6월13일 당시 중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이던 신효순양과 심미선양은 경기도 양주군(현 양주시) 광적면 효촌리 56번 지방도 갓길을 걷고 있었다. 훈련을 위해 이동 중이던 주한미군 육군 제2보병사단 소속 M60 AVLM 장갑차가 이 길로 진입했다. 이 차량은 M60 패튼 전차의 차대에 별도 장비를 탑재한 지뢰 제거용 장갑차였다. 이 장갑차는 신효순양과 심미선양을 압사시켰다. ■ 효순·미선, 21년째 하지 못한 말 ‘다녀왔습니다’ [만리재사진첩]김정효기자 2023. 6. 13. 16:02 지난 2002년 주한미군 궤도장갑차에 깔려 숨진 중학생 고 신효순·심미선양의 21주기 추모제가 13일 오전 경기도 양주 광적면 효촌리 효순미선평화공원에서 열려 참가자들이 추모비 앞에 ..

1970년대 4대국 안전보장론 제시로 한반도 전쟁 억제와 동북아평화 체제 구축 비전을 제시했던 김 전 대통령은 1978년부터 꾸준히 노벨평화상 후보에 올랐고, 남북정상회담이 성사된 2000년 한국인 최초 노벨평화상 수상자에 선정됐습니다 . 김대중 전 대통령은 2000년 12월 10일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한국인 최초로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40여 년간 한국과 동아시아 전반의 민주주의와 인권에 대한 공로, 6·15 남북 공동선언 등 남북 화해와 긴장 완화에 기여한 공로 등을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 [다시 만난 김대중] 한국 최초 노벨상 수상자 김대중 - 김성재 김대중평화센터 상임이사백미선2024. 12. 18. 14:35 연중기획 DJ탄생 100년「다시 만난 김대중」은 KBS 광주총국이 김대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