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력사를 찾아서

고려 시대의 끝자락에서, 마지막으로 고려의 개혁을 위해 몸부림쳤던 한 왕이 있었다. 그 왕은 바로 고려의 제 31대 왕인 '공민왕'(恭愍王)이었다. 그는 오랜 기간 지속된 원(元)나라의 간섭에서 벗어나 고려의 '자주성'(自主性)을 되찾고자 노력했고, (역사적 평가가 엇갈리지만) '신돈'(辛旽)이라는 인물을 중용해 정치, 사회적으로 이전과는 다른 급진적인 개혁 노선을 펼치고자 했다. ■ [역사줌인] 고려의 마지막 개혁혼이 꺼지다 '공민왕 피살'최경식2021. 7. 10. 03:39 고려의 마지막 개혁 군주공민왕의 개혁 정치와 좌절 고려 제 31대 왕 '공민왕'과 부인 '노국대장공주'. 국립고궁박물관 그러나 기성 세력들의 극심한 반발과 사랑하는 부인의 죽음, 대내외적인 반란 및 침입 등으로 결국..

거대한 전쟁 속에서 몽골에 고려는 금나라와 송나라의 배후세력이라는 지정학적 가치가 있을 뿐 군사전략상으로는 우선순위에서 밀려 있었다. 몽골 군대가 고려와 벌인 아홉 번의 전투는 정부 없는 나라를 약탈하는 수준이지, 본격적인 전쟁은 아니었다. 더구나 몽골은 1259년 몽케 대칸이 남송을 원정하는 도중에 죽자 내분과 혼란에 빠졌다. 결국 동생인 쿠빌라이 칸이 뒤를 잇고, 1271년 국호를 원으로 개칭했다. 그 과정에서 고려는 쿠빌라이의 편을 들어 외교적인 성공을 거뒀다고 본다. 그 결과 유리한 조건으로 1270년 개경으로 돌아가고 항복해 쿠빌라이의 부마국이 됐다. 군사력을 갖추고, 국제질서의 상황을 간파해가면서 유연성과 배짱을 겸한 고려 무신정권의 외교 전략은 현실감이 부족한 지금의 우리에게 교훈을 줄 수..

《환단고기는 어떤 책인가?》 3. 《단군세기》 (1) 《단군세기》를 지은 이암에 대해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의 설명은 다음과 같다. 『고려후기 찬성사, 좌정승, 수문하시중 등을 역임한 관리. 문신.본관은 고성(固城). 초명은 이군해(李君侅). 자는 고운(古雲)·익지(翼之), 호는 행촌(杏村). 판밀직사사 감찰대부 세자원빈(判密直司事監察大夫世子元賓)인 이존비(李尊庇)의 손자이며, 철원군 이우(鐵原君 李瑀)의 아들이다. 1313년(충숙 즉위년) 8월 과거에 급제하였으며, 충숙왕이 이암의 재주를 아껴 부인(符印)을 맡겨서 비성교감(祕省校勘)에 임명된 뒤 여러 번 자리를 옮겨 도관정랑(都官正郎)이 되었다. 충혜왕 초 밀직대언 겸 감찰집의(密直代言兼監察執義)에 올랐으며, 1331년(충혜 1) 4월 우대언(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