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과 놀자!/피플 in 뉴스]프랑스서 ‘직지심체요절’ 찾아낸 역사학자 박병선

이의진 도선고 교사 roserain9999@hanmail.net
 
2024. 9. 2. 22:49

정확한 이름이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인 ‘직지심체요절(直指心體要節·직지)’은 현존하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입니다. 고려 우왕 재위 시기인 1377년 간행된 이 책은 우리의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이지만 현재 직지가 소장된 곳은 우리나라가 아닌 프랑스 국립도서관입니다.

구한말 한국에서 고문서 수집에 열을 올렸던 주한 프랑스 공사 빅토르 콜랭 드 플랑시는 여러 고물품과 함께 직지를 손에 넣었습니다. 이후 직지는 다시 앙리 베베르라는 골동품 수집가에게 팔렸고, 베베르는 죽기 전 “직지를 프랑스 국립도서관으로 기증하라”는 유언을 남겼습니다. 사실 직지는 1900년 파리 만국박람회 한국관에서 전시된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제국주의 시기, 인근 중동지역에서 워낙 많은 유물들이 들어오던 때라 당시에는 크게 주목받지 못했습니다.

 
프랑스 국립도서관 수장고에서 먼지를 뒤집어쓴 채 묻혀 있던 직지를 세상 밖으로 끌어낸 사람은 역사학자이자 서지학자인 박병선 박사(1923∼2011·사진)입니다. 1967년 동백림사건에 연루돼 프랑스로 귀화한 그는 프랑스 국립도서관 사서가 됐습니다. 스승 이병도 전 문교부 장관의 당부에 따라 구한말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이 약탈해 간 외규장각 의궤를 찾던 중 우연히 직지를 발견했습니다.

발견 당시 직지는 단지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소장된 여러 고서 중 하나’로만 취급되었습니다. 그러나 박 박사의 끈질긴 연구가 국내외 학계의 관심과 연구를 불러일으켰고, 직지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이라는 사실을 밝힐 수 있었습니다. 인류 문화에 혁명적 전환점을 가져온 독일의 요하네스 구텐베르크의 성경 금속활자본보다 무려 78년 앞선 것이었습니다. 직지는 마침내 2001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됩니다.

1993년 한국에 온 프랑수아 미테랑 전 프랑스 대통령은 외규장각 의궤를 반환하겠다고 약속했는데 이때 직지를 비롯해 다른 고서적 반환 문제도 함께 논의됐습니다. 하지만 외규장각 의궤는 완전한 소유권 반환이 아닌 5년마다 갱신하는 ‘영구 임대’ 형식으로 돌아왔고 직지는 돌려받는 것에는 실패했습니다. 프랑스 국립도서관 사서들의 반대에 부딪혔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직지는 약탈품이 아니라는 이유가 컸습니다. 프랑스 측의 반환 거부 통보에 나름의 명분은 있는 셈이지요. 9월 4일 ‘직지의 날’을 맞는 우리로서는 참 씁쓸한 일입니다.(1)

이의진 도선고 교사 roserain99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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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고 금속활자본 '직지심체요절' 반세기 만에 공개

이교준2023. 4. 12. 03:49

 

[앵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 인쇄본 '직지심체요절'이 프랑스 파리에서 반세기 만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이번 실물 공개는 우리 금속 인쇄술의 우수성을 세계에 널리 알릴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됩니다.

이교준 기자의 보도입니다.

[기자]

 

프랑스국립도서관 수장고에 보관해있던 '직지심체요절'이 세상 밖으로 나왔습니다.

1973년 같은 곳에서 열린 '동양의 보물' 전시 이후 약 50년 만입니다.

함께 공개된 '구텐베르크 성서'보다 78년 앞선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입니다.

프랑스국립도서관은 7월 16일까지 '인쇄하다! 구텐베르크의 유럽' 전시에서 '직지심체요절'을 일반에 선보입니다.

정확한 명칭은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

고려 후기 선승 백운 경한 스님이 역대 여러 부처와 고승의 대화, 편지 등을 중심으로 편찬한 책으로, 1377년에 청주 흥덕사에서 금속활자로 간행됐습니다.

상·하 2권으로 간행된 것으로 추정되지만 국내에서 아직 원본이 발견되지 않았고, 하권만 프랑스국립도서관에서 보관해왔습니다.

도서관 측은 '직지심체요절'을 금속활자로 인쇄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서적이라고 소개하면서 '프로타 판목', '구텐베르크 성서' 등 희귀 소장 자료와 함께 동시에 공개하는 것은 처음이라고 밝혔습니다.

반세기 만의 실물 공개를 계기로 프랑스 현지에선 직지심체요절의 가치와 의미를 다시 살펴보는 강연 등 행사가 잇따릅니다.(2)

YTN 이교준입니다.

YTN 이교준 (kyojoon@ytn.co.kr)

영상편집 : 문지환

그래픽 : 이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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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 '직지심체요절', 다큐멘터리로 본다

윤슬빈 기자2021. 9. 9. 09:16
한국문화재재단, 프랑스와 '직지, 활자의 시간여행' 공동제작
직지 활자의 시간여행 화면 갈무리

(서울=뉴스1) 윤슬빈 기자 =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 인쇄본인 '직지'의 원본이 다큐멘터리를 통해 공개된다.

9일 한국문화재재단은 직지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20주년을 기념해 문화재청이 운영하는 필콘미디어, 프랑스 제작자 제데옹 프로덕션과 함께 직지 원본 촬영에 성공했다고 밝혔다.

해당 촬영본은 오는 11일 밤 11시 40분 KBS 1TV에서 다큐멘터리 '직지, 활자의 시간여행'을 통해 공개한다.

 

한국문화재재단은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잠들어 있는 직지 원본을 촬영하기 위하여 2019년 10월부터 프랑스 국립도서관 측에 꾸준한 설득과 섭외 작업을 해왔다"며 "2020년 1월 마침내 승인을 받아냈다"고 밝혔다.

다큐멘터리에선 고려불교를 전공한 프랑스 소르본 대학 야닉 브뤼느통 교수가 프랑스와 한국을 오가며 진행자 역할을 맡아 직지를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을 더했다.

뿐만 아니라, 프랑스 국립도서관 동양고문서관에서부터 고려시대의 금속활자, 구텐베르크의 성서, 해인사 팔만대장경, 백운화상과 직지의 유입 경로,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의 직지 목판본까지 소개하는 등 심도 있게 구성했다.

1377년 청주 흥덕사에서 금속활자로 간행된 '직지'는 1800년대 말 초대 주한 프랑스 공사 '꼴랭 드 쁠랑시'가 수집해서 프랑스로 가져간 이후 프랑스 국립 도서관에 소장하고 있다.

직지 활자의 시간여행 화면 갈무리

직지의 정확한 이름은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白雲和尙抄錄佛祖直指心體要節)인데, 이를 짧게 '직지심체요절' 또는 '직지'라 부른다.

'직지'는 고려의 승려 백운화상이 법맥(法脈)을 계승케 하고자 저술한 것으로서, 그 제자 석찬과 달담이 청주 흥덕사에서 1377년에 금속활자로 인쇄했다.

이는 독일의 금속활자본 '구텐베르크 42행 성서'보다 78년이나 앞서 간행된 것이었다. 금속활자 인쇄술이 중요한 이유는 교정이 용이하고 경제적이기 때문에 책의 신속한 생산에 크게 공헌하였기 때문이다. 직지는 2001년 9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됐다.

한국문화재재단은 KBS 방영 후 문화유산채널 누리집과 유튜브에서 다큐멘터리 확장판 버전과 메이킹 영상을 순차적으로 공개할 예정이다.

(3)

 

 

[이한상의 발굴 이야기] [66] 직지심체요절의 산실

이한상 대전대 역사문화학과 교수2019. 4. 10. 03:10

유네스코가 1972년을 '세계 도서의 해'로 지정하자 프랑스 국립도서관은 '동양의 보물, 책'이란 전시회를 열기로 했다. 그곳에 근무하던 박병선 사서는 특별전의 한국 코너에 전시할 고서를 찾으려 서고 곳곳을 뒤졌다. 이윽고 그 누구도 주목하지 않던 '직지심체요절(直指心體要節·직지)' 한 권을 발견했다.

박 사서는 그 책 말미에서 '1377년 청주목 외곽 흥덕사에서 금속활자를 만들어 찍어냈다'는 내용을 확인하곤 깜짝 놀랐다. 그때까지 현존 세계 최고의 금속활자본으로 인정받아온 요하네스 구텐베르크의 성서보다 70여년이나 앞선 것으로 한국이 세계 최초로 금속활자를 발명했음을 보여주는 실물 자료였기 때문이다. 그녀의 노력으로 직지는 유명해졌지만 그것을 찍어낸 흥덕사의 위치는 여전히 오리무중이었다.

청동 금구, 흥덕사지, 국립청주박물관.

 

1984년에 문제 해결의 단서가 나왔다. 그해 11월 청주대박물관 박상일 연구원이 청주시 운천동에서 절터 하나를 새로이 찾아냈지만 택지 공사 과정에서 크게 훼손되는 일이 벌어졌다. 남아 있는 부분에 대한 긴급 발굴 조사가 이듬해 여름 시작됐고, 10월 8일에 이르러 박 연구원이 청동 금구(禁口·쇠북) 조각 하나를 발견했다. 중장비 삽날에 찍혀 원상을 잃었지만 측면에 여러 글자가 새겨져 있었고 그 가운데 '흥덕사'란 표현이 있었다.

조사단은 발굴 성과를 종합해 이 '흥덕사'가 직지를 찍어낸 흥덕사와 같은 곳임을 밝혔다. 현존 최고의 금속활자본 직지의 산실이 비로소 확인된 것이었다. 발굴 결과는 곧 외부로 공개돼 국내외 수많은 언론에 대서특필됐고 정부는 유적의 중요성을 인식해 흥덕사지를 국가 사적으로 지정했다.

우리의 문화유산 가운데 '세계 최초'라 부를 수 있는 것이 드문 현실에서 직지에 대한 관심은 정부·학계뿐만 아니라 시민들 사이에서도 뜨거웠다. 특히 청주시의 경우 직지를 도시의 대표 브랜드로 만들었고 국내에도 혹시 남아 있을지 모를 직지 찾기 운동에 적극 나섰으나 끝내 발견하지 못했다. 다만 2001년 그간의 노력이 일부 결실을 맺어 직지는 유네스코의 세계기록유산 목록에 등재됐다.(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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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직지'보다 138년 앞선 금속활자본…"국내 존재 사실 전혀 몰랐다"

이기환

역사 스토리텔러

입력 : 2020.04.21 06:00 수정 : 2020.04.23 09:18

<남명천화상송증도가>에 붙어있는 무신정권 실력자 최이(?~1249)의 발문. “기술자들을 모집해서 기해년(1239년) 주자본(금속활자본)을 거듭 인쇄한다”는 내용이다. 지금까지는 ‘목판본으로 다시 새겼다’는 뜻으로 해석됐다. 하지만 최근 “속활자본으로 거듭 인쇄했다’고 해석하는게 옳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현전하는 세계 최고(最古)의 금속활자본이 1377년(우왕 3년) 찍어낸 <직지심체요절>이라는 걸 모르는 이가 없다. 그렇다면 문헌상 최초의 금속활자본은 무엇일까. <고금상정예문> 혹은 <남명천화상송증도가> 등 2건으로 알려졌다. <고금상정예문>의 경우 “(1234~1241년 사이) 강화도에서 <고금상정예문> 28부를 금속활자본으로 찍었다”는 이규보(1168~1241)의 언급(<동국이상국집>)만 남아있다. ‘

 

‘깨달음의 뜻을 밝힌다(證道)’는 <남명천화상송증도가>(이하 남명증도가)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책의 원전은 선가의 수행지침서인 <영가진각대사증도가>이다. 이 책은 진각대사 현각(665~713)이 선종의 6조 대사 혜능(638~713)을 배알한 뒤 크게 깨달은 경지를 칠언시로 읊은 것이다.

‘공인본’ <남명증도가>에는 헷갈리게 쉬운 활자를 조판할 때 뒤집어 넣을 경우가 있다. 한 일(一)자가 그렇다. 맨 왼쪽과 세번째 한 일( 一)자는 조판 때 뒤집힌 글자이다. 훗날 목판본(삼성본)으로 재인쇄할 때 용케 바꿔놓은 ‘한 일(一)’자도 있지만 바로잡지 못하고 그대로 둔 것(네번째)도 있다.

 

<남명증도가>는 송나라 남명대사 법천(?~1001)이 <영가진각대사증도가>의 각 구절마다 게송을 붙여 깨달음의 진면목을 설파한 책이다. 국내에 현전하는 <남명증도가>는 10여 종에 이른다. 책에는 “<남명증도가>가 널리 유통되지 않자 기해년(1239년) 주자본(금속활자본)을 ‘중조(重彫)’했다”는 무신정권의 실력자 진양공 최이(?~1249)의 발문이 붙어있다. 그러나 확실한 연도(1239년)가 기록된 이 책들은 목판본으로 알려져왔다. 발문의 ‘중조주자본(重彫鑄字本)’ 구절을 ‘금속활자본을 모본으로 해서 다시 목판으로 판각한다’는 뜻으로 해석했기 때문이다.

‘공인본’은 ‘삼성본’과 동일본이라 해서 보물로 지정됐지만 ‘공인본’과 ‘삼성본’은 확연히 글자가 다르다. 금(金)자의 경우 윗부분이 ‘人’이지만 삼성본에서는 ‘入’이다. ‘개(豈)’ 자 역시 완전히 다르다.

 

■‘보물 758-2호’로 지정된 이유

그런데 여기서 반전의 드라마가 연출된다. 만약 문헌상으로만 남아있다는 가장 오래된, 그것도 <직지심체요절>보다 138년 앞선 금속활자본이 실제로 존재한다면 어떨까. 그것도 지금 이 순간 국내에 남아있고, 무엇보다 이미 보물로 지정되어 있는, 다 알려진 책이라면 어떨까.

바로 2012년 보물(제758-2호)로 지정된 ‘공인출판사 소장 <남명증도가>’(이하 공인본)이다.

불교서지학자인 박상국 동국대 석좌교수가 최근 펴낸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본, 남명증도가>(김영사간)가 바로 그러한 반전의 메시지를 담고 있었다.

조판 및 인쇄기술 부족으로 활자가 움직인 모습. 나무를 매끈하게 다듬어 찍어낸 목판본이라면 이러한 인쇄상태일리 없다는게 박상국 교수의 주장이다.

 

이 책, 즉 ‘공인본’의 소장자는 공인박물관(경남 양산)을 운영했던 원진 스님이다. 스님은 2012년 ‘공인본은 1239년 최이 주도로 인쇄한 금속활자본이니 국가문화재로 지정해달라’ 신청했다. 그러나 당시 문화재위원회는 ‘금속활자본’이 아니라 ‘목판본’으로 인정해서 보물로 지정했다. 그것도 32년 전인 1984년 보물로 지정된 목판본 ‘삼성출판사 소장’ <남명증도가>(이하 삼성본)와 동일본이며, 그 ‘삼성본’보다 늦게 찍어낸 것으로 판단했다. ‘공인본’은 ‘삼성본’보다 늦게 찍어낸 후쇄본이라는 점에서 ‘-’를 붙여 ‘삼성본’(원래 758호)은 758-1호로, ‘공인본’은 758-2호로 교통정리했다.

이중으로 인쇄된 흔적. 조판된 활자가 움직인 경우, 종이가 말린 경우, 종이 놓인 위치가 바르지 않아 바로잡는 과정에서 이중 인출됐다.

 

■“집착을 고쳐줄 요량으로”

하지만 아무리 보물의 가치가 충분하다한들 목판본을 금속활자본와 견줄 수 없다. 여기에 ‘공인본’은 이미 보물로 지정된 ‘삼성본의 아류’라는 판정을 받아 ‘-2호’의 대접을 받았으니, ‘공인본=금속활자본’이라는 확신을 갖고 있던 소장자(원진 스님)로서는 속상할 수밖에 없었다.

필자가 경북 안동의 원 소장자에게서 ‘공인본’ <남명증도가>를 구입한 원진 스님과 최근 통화했더니 “언젠가부터 이 책이 금속활자본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고 운을 뗐다. 책 속에 금속활자로 인쇄하지 않으면 결코 보일 수 없는 흔적들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공인본=최고의 금속활자본’임을 입증한 자료를 갖고 나름 백방으로 뛰었지만 싸늘한 반응들이었습니다. 학계로부터 ‘삼성본과 동일한 목판본인데 헛수고하지 말라’는 핀잔을 듣기 일쑤였죠.”

금속활자본은 주물이기 때문에 점과 필획의 완성도가 떨어져 글자 판독이 어려운 경우가 있을 수 있다. ‘공인본’을 보면 이런 부분을 가필해서 보사한 경우가 있다.

 

‘목판본’ 자격으로 보물지정 직후 직성이 풀리지 않았던 스님은 박상국 교수에게 “문화재위원회가 잘못 판단했으니 재감정 좀 해달라”고 의뢰했다. 박 교수 역시 처음엔 별 관심을 두지 않았다가 ‘금속활자본임을 고집하는 스님의 집착증을 제발 이참에 말끔히 고쳐줄 요량’으로 <남명증도가>를 검토하기 시작했다. 이른바 비판적 검토였다. 그런데 책을 한 장 한 장 들춰보던 박상국 교수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볼수록 이 책(공인본)에는 금속활자본이 아니고서는 절대 나올 수 없는 특징들이 보였습니다. 너덜이(쇠찌꺼기)와 글자 획의 탈락 등 초창기 금속활자 주조기술의 미숙으로 생긴 흉허물이었습니다. 또 목판본인 ‘삼성본’에 나타나는 목결(나무테 흔적)이 ‘공인본’에서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주물 기술의 부족으로 흭이 탈락한 부분을 인위적으로 칠했다.

 

■90년의 오류

박교수는 책에 등장하는 최이의 발문 중 ‘중조주자본(於是募工 重彫鑄字本)’ 구절을 다시 유심히 들춰보았다. 그 해(2014년) 10월 한학자인 구봉 이정섭 선생에게 불쑥 최이의 발문을 보여주며 해석을 부탁했다. 그러자 이정섭 선생은 한치의 주저없이 ‘주자본(금속활자본)으로 다시 주조한다’고 해석했다.

이럴 수가…. 이 구절은 90년 가까이 ‘주자본(금속활자본)을 목판본으로 다시 새겨…’고 추호의 의심없이 해석되고 있지 않았던가. 그래서 ‘삼성본’(1984년)은 물론이고 ‘공인본’(2012년)까지 목판본이라는 이유로 보물로 지정된 것이 아닌가. 그런데 이것이 ‘90년의 오독’이었다니….

공인본에는 초창기 금속활자의 단점이라 할 수 있는 쇠찌꺼기 등으로 판독하기 어려운 활자들이 많이 보여서 인위적으로 가필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가필이 잘못된 경우가 있었다. 후쇄본인 목판본 ‘삼성본’에서는 그것을 ‘진(盡·왼쪽에서 두번째)과 수(首·네번째)로 고쳤다.

 

다른 한문 전공자들은 물론이고 중국학자인 쑨잉강(孫英剛) 저장대(浙江大) 교수(역사학)에게도 문의했더니 절대 다수의 해석이 한학자 이정섭 선생과 비슷했다. 중국의 쑨잉강 교수는 “발문에 목판본이라는 언급이 없으니 ‘다시 주자본(금속활자본)으로 간행한다’는 의미일 수 있다”는 의견을 보냈다.

그렇다면 왜 지금까지 <남명증도가>에 붙은 최이의 발문은 ‘목판본으로 다시 새겨’로 해석해왔을까. 박상국 교수는 ‘선입견의 오류’라 했다. 즉 <남명증도가>는 1931년 경성제대 도서관 주최 ‘조선활자인쇄자료전’과 1954년 서울대·연희대 전시회에 잇달아 소개된 바 있다. 그러나 이들 전시회에 소개된 <남명증도가>는 모두 목판본이었다. 그런 판이니 최이의 발문을 ‘목판본의 발문’으로 철석같이 믿게 됐다는 것이다.

주조과정에서 활자가 탈락되면 인위적으로 가필하기도 했는데, 틀리게 가필한 경우도 많았다. 바르게 가필했다면 왼쪽 위부터 향(鄕), 선(船), 무(舞), 봉(鳳)자였다.

 

■공인본과 삼성본은 동일본이 아니다.

최이의 발문을 ‘거듭 주자본(금속활자본)으로 인쇄했다’고 해석하자 수수께끼가 풀렸다. 손환일 서화문화연구소장도 2017년 ‘남명천화장승증도가(공인본)에 나타난 금속활자본의 특징’이라는 논문을 발표하여 박상국 교수의 연구성과를 뒷받침했다. 손환일 소장은 “최이 발문에 등장하는 ‘조주(彫鑄)’는 ‘금속활자의 주조’ 의미”라면서 목판본의 경우 <고려사> 등의 사서를 보면 ‘조판(彫板)’이라는 용어를 썼다“고 밝혔다.

주조기술의 부족으로 너덜이(쇳물찌꺼기)가 그대로 나타난 ‘공인본’(왼쪽)의 활자들. 그러나 나중에 나무판에 새긴 목판본 ‘삼성본’(오른쪽)에는 보이지 않는다.

 

박상국 교수는 이 ‘공인본’이 ‘삼성본’과 동일본이라면서 ‘보물 758-1호’(삼성본)와 ‘보물 758-2호’(공인본)로 나란히 붙인 것이 명백한 잘못이라 했다. 특히 얼핏 보면 동일한 판본으로 보이는 글자도 확대해서 보면 각각 다른 판본임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금(金)’자의 경우 ‘공인본’(人)과 ‘삼성본’(入)이 다른 것을 알 수 있다. 또 ‘개(豈)’와 ‘망(忘)’, ‘부(剖)’, ‘유(有)’, ‘대(大)’자 등을 비교해봐도 전혀 다르다. 또한 책 장을 둘러싸고 있는 ‘검은 선’이 사라진 부분의 위치와 크기도 분명히 다르다. ‘공인본’과 ‘삼성본’은 완전히 다른 판본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공인본’에서 윗쪽은 진하고 아랫쪽은 흐리게 보이는 등 활자의 기울기에 따라 인쇄상태가 다를 수 있다. 목판본에서는 볼 수 없는 현상이다.

 

■활판인쇄의 단점

양질의 나무에 잘 다듬은 글자들을 새겨 완성되는 목판 인쇄에서는 이런 금속활자본의 특징을 찾아보기 힘들다. 그런데 금속활자로 찍는 활판인쇄는 어떤가.

비근한 예로 활자가 조판된 상자 위에 먹을 묻혀 책을 찍어내는 과정을 생각해보라. 사람이 한 글자 한 글자씩 조판하기 때문에 심어놓은 활자의 높낮이가 맞지 않을 수도 있고, 아래나 위로 쏠릴 수 있었다.

이런 상태에서 먹을 묻히고 그 위에 종이를 덮은 뒤 누르면(인쇄하면) 어떻게 될까. 인쇄된 글자들의 깊이가 달라지고, 색의 짙고 옅음의 정도가 달라질 수 있다. 이 뿐이 아니다. 사람이 수작업으로 하다보니 먹 묻힘이나, 누르는 힘(인쇄)이 일정하지 않을 수 있다. 이 역시 인쇄상태가 고르지 않을 수 있다. 게다가 금속활자 발명 초창기였다면 더욱 그 흠결이 도드라졌을 것이다.

반대로 윗부분이 흐리고 아랫부분은 진한 경우. 활자가 일정하게 놓이지 않아 인쇄상태에 영향을 미쳤다.

 

■흠결 많은 금속활자본

박상국 교수는 “‘공인본’ <남명증도가>에서 바로 이러한 초창기 금속활자본의 특징이 여실히 드러난다”고 밝힌다. 금속활자 제작의 기술 부족으로 생긴 너덜이(쇠찌꺼기)·끊어짐·테두리 자국 필획들이 여기저기 보이고, 조판 때 회전된 오·탈자와 이중으로 인쇄되거나 인쇄 때 기울어진 글자 등이 나타났다.

‘조판 때 회전된 글자’로는 ‘한 일(一)’가 대표적이다. ‘공인본’에서 제법 보이는 ‘뒤집힌 일(一)’자 중 ‘삼성본’을 찍을 때 바로 잡은 것도 있지만 그대로 둔 것도 있다. 이것 하나만 보더라도 ‘공인본’이 금속활자본임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글자들을 심어놓은 금속활자판에 먹솔로 먹을 칠한 뒤 종이를 얹고 문지르는 과정에서 이중으로 인쇄되는 경우가 심심찮게 보였다.

틈이 생겨 활자가 움직였거나 종이가 말렸거나 종이 위치가 바르지 않아 바로잡는 과정에서 이중으로 인쇄되는 경우 등이 있다. ‘계(界)’나 ‘불(不)’, ‘비(比)’, ‘순(徇)’, ‘인(人)’, ‘안(岸)’ 등이다.

왼쪽이 흐리고 오른쪽이 진한 경우도 있었다.

 

또한 인쇄 때 기운 글자도 여럿 보인다. 원래 활판 조판 때는 수평을 잡고 잘 움직이지 않도록 나무 수평대를 대고 나무망치로 톡톡 두드려 고정시킨다. 하지만 목판처럼 완전하게 수평을 잡기는 어렵다.

때로는 윗부분이 높고 아랫부분이 낮게 심어진 활자들은 윗부분은 진하게, 아랫부분은 흐리게 인쇄된다. 당연히 반대의 경우도 있다. 또 한쪽 옆부분이 다른 면보다 높게 심어진 활자들이 있을 경우 ‘왼쪽은 짙게 오른쪽은 흐리게’나 ‘오른쪽은 짙게, 왼쪽은 흐리게’의 형태로 인쇄될 수 있다.

‘위는 짙게 아래는 흐리게’의 경우는 ‘관(觀)’, ‘구(究)’, ‘근(近)’, ‘기(幾)’, ‘기(棄)’ 등이다. 거꾸로 ‘아래가 짙고 위는 흐리게’는 ‘거(去)’, ‘견(見)’, ‘계(界)’, ‘권(卷)’, ‘근(勤)’등이 있다. ‘오른쪽은 짙게 왼쪽은 흐리게’는 ‘각(却)’, ‘견(見)’, ‘관(觀)’ ‘귀(歸)’, ‘망(妄)’ 등이다. 이러한 현상은 금속활자본이기 때문에 나타나는 ‘공인본’만의 특징이었다.

반대로 왼쪽이 진하고 오른쪽이 흐린 경우도 물론 있었다.

 

■아차! 실수…가필의 흔적

또한 ‘공인본’에는 인위적인 가필의 흔적이 역력하다. 금속활자는 주물(주형 속에 용해된 금속을 넣어 응고시켜 형태를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점과 필획의 완성도가 떨어져 글자의 판독이 어려운 경우가 생긴다. 이런 글자가 나오면 원고의 최종 교정 차원에서 가필 했다. ‘공인본’에서 가필 글자의 예는 ‘위(爲)’, ‘차(嗟)’, ‘환(幻)’, ‘구(句)’, ‘대(大)’ 등이 있다. 가필이 잘못된 글자도 보인다. ‘공인본’에서 ‘진(盡)’자가 판독하기 어렵게 되자 인위적으로 가필했지만 ‘상(桑)’자로 잘못 써넣었다. 이를 훗날 목판본으로 인쇄한 ‘삼성본’에서 ‘진(盡)’자로 바로 잡았다. 또 무(舞)자를 알아 볼 수 없게 되자 기술자가 가필했지만 그만 파(波)자로 잘못 써넣었다. 이를 훗날 목각본으로 새긴 ‘삼성본’에서는 무(舞)자로 고쳐넣었다.

공인본(A)과 삼성본(B)이 동일본이라고 하지만 자세히 보면 확연히 다르다. 미(眉)자 부분을 보면 공인본(A)과 삼성본(B)의 글자와 테두리의 높이가 다르다

 

■너덜이는 금속활자의 특징

또 ‘공인본’에서논 금속활자의 주조과정에서 달라붙어 생기는 너덜이(쇳물찌꺼기)의 흔적이 여럿 보인다.

이러한 흠결 때문에 ‘공인본’이 ‘삼성본’ 보다 후대에 인쇄된 것으로 판단되는 오류가 생겼다는 게 박교수의 견해이다. 보물지정 때 문화재위원회가 여러번 찍어 낡게 된 ‘삼성본’ 목판을 토대로 ‘공인본’을 찍었으니 인쇄상태가 좋지 않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너덜이와 같은 흠결은 오히려 초창기 금속활자의 전형적인 특징이라는게 박교수의 이야기다.

예컨대 찌꺼기가 잔뜩 묻은 ‘공인본’의 ‘불(불)’자는 ‘삼성본’에서 말끔하게 다듬어졌다. ‘래(來)’와 ‘좌(坐)’, ‘종(終)’, ‘주(住)’, ‘중(中)’, ‘체(體)’ 등 금속활자본인 ‘공인본’에서는 보였던 너덜이가 목판본인 ‘삼성본’에서는 깔끔하게 정리됐다. 박상국 교수는 “이런 모든 요소들이 아직 제작기술이 발달하지 않은 초기 금속활자의 대표적인 특징”이라고 밝혔다. 이러한 ‘공인본’의 부족한 부분은 목판본인 ‘삼성본’을 인쇄할 때 대폭 보완됐다. 손환일 소장은 “‘공인본’을 모본으로 목판본을 만들 때 조각수가 잘못되었거나 빠지고 뒤틀린 글자나 필획을 고쳐 새겨넣었다”고 전했다.

활판인쇄로 찍어내는 과정이다. 초창기에는 활자를 주물한 뒤 조판하여 인쇄하는 과정이 매우 까다로웠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시험인쇄에 성공한 금속활자

박상국 교수는 따라서 그동안 ‘삼성본’과 동일한 목판본으로 여겨져 보물로 지정된 ‘공인본’은 1239년 제작·인쇄된 분명한 금속활자본이라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공인본’ <남명증도가>는 직지심체요절보다 정확히 138년 앞선,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고려는 왜 금속활자의 발명국이 되었을까. 고려인들은 거란이 침입하자(993년) 부처의 힘으로 국난을 극복하겠다는 일념으로 1011년(현종 2년)~1087년(선종 4년)에 걸쳐 대장경(처음 제작했다는 의미에서 초조대장경이라 한다)을 판각했다. 1232년(고종 19년) 몽골의 침입으로 이 <초조대장경>이 불에 타자 또다시 구국의 일념으로 16년(1233~1248)에 걸쳐 새긴 경전이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해인사 고려대장경이다. 박상국 소장은 바로 이 무렵(1239년) 금속활자본인 ‘공인본’ <남명증도가>가 탄생한 것에 주목한다.

세계기록유산인 해인사 고려대장경판. 목판본은 초창기 금속활자본과 달리 깔끔하게 인쇄될 수 있었다. 그러나 목판본은 오로지 특정 책의 용도로만 쓰였지만 금속활자는 다른 책의 인쇄에도 쓰일 수 있었다. |해인사 소장

 

“이 시기에는 <고려대장경>의 목판 제작을 위해 전국 사찰의 각수들이 (대장경판을 제작하던) 남해로 차출되었습니다. 중앙에서는 기술자 공동현상이 빚어진 거죠. 그래서 당시 무신정권의 최고실력자인 최이는 목판이 아닌 금속활자 인쇄를 시도한거죠.”

금속활자술은 목판술과 달리 제작한 활자를 다른 책이나 다른 쪽을 인쇄할 때도 사용할 수 있는 장점이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시도된 금속활자 인쇄는 쉽지 않았다. 무엇보다 초보적인 금속활자술이 당시 <초조대장경> 간행 등 고도로 발달한 목판인쇄술을 능가할 수는 없었다.

엄청난 시행착오를 겪었을 것이다. 초창기 제작술이 아니면 볼 수 없는 너덜이(금속찌꺼기)를 비롯한 온갖 흠결들이 나왔을 터인데, 기술자들은 주조와 시험인쇄를 거듭해가며 수정·보완했을 것이다. 그런 우여곡절 끝에 금속활자로 제작한 책(공인본)이 나왔으니 최이가 감격해서 발문을 썼을 것이다.

“그래서 최이의 ‘중조 주자본(重彫 鑄字本)’ 발문 구절 중 ‘중조(重彫)’ 부분은 ‘시행착오를 거듭하며 찍어냈다’는 뜻으로 해석해야 합니다.”

‘공인본’ 소장자인 원진스님은 ‘공인본’이 금속활자본임을 인정받으려고 발품을 팔았지만 ‘집착’이라는 싸늘한 반응을 얻었다고 한다.

 

■어떤 경우든 구텐베르크보다는

그렇게 천신만고 끝에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본이 탄생했다. 하지만 앞서 살펴본대로 그렇게 발명된 금속활자본의 인쇄상태는 만족할만한 상태가 아니었다. 박상국 교수는 “따라서 고려 인쇄의 주류는 인쇄상태가 좋은 목판인쇄로 회귀했고, 금속활자인쇄는 그저 간헐적으로 이어졌다”고 주장했다.

“문헌상 등장하는 <고금상정예문>(1239~1241년 추정)과 현전하는 <직지심체요절>(1377년) 등외에는 금속활자본이 알려지지 않고 있어요. 이런 책들은 인쇄문화가 단절된 상태에서 겨우 그 기술을 재현한 것이겠지요.”(박상국 교수)

그렇다면 1239년 간행된 세계 최고의 금속활자본(‘공인본’ <남명증도가>)은 ‘실패한 발명품’인가. 그렇게 볼 수 없다. 그 실패의 경험은 고려말~조선초 피가 되고 살이 되었기 때문이다.

조선의 태종은 “성공하지 않을 것”이라는 신료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주자소를 만들어(1403년) 조선 최초의 금속활자(‘정해자’)를 제작했고(1407년), 세종은 숱한 시행착오를 겪은 끝에 금속활자의 백미라는 ‘갑인자’를 창조했다.(1434년) 그 어떤 경우든 요하네스 구텐베르크(1397~1468)의 금속활자 발명(1447년 무렵)보다 앞선 발명품이니 금속활자 발명에 관한 자부심을 가져도 좋다. 이쯤에서 의문점이 생길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먼저 금속활자를 만들었는데, 왜 서양만큼 활자문화를 꽃피우지 못했을까. (사진은 박상국 교수와 손환일 소장, 원진스님이 제공했습니다)(5)

<참고자료>

박상국,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본, 남명증도가>, 김영사, 2020

‘금속활자본 남명천화상송증도가’, 보조사상 연구원 제11차 정기학술대회, 2015

손환일, ‘남명천화상송증도가(공인본)에 나타난 금속활자본의 특징’, <문화사학> 48, 한국문화사학회, 2017

 

 

"세계 최고(最古) 직지심체요절보다 먼저 만들어진 책 있다"

배상철2019. 12. 6. 16:33
고서 소장자 장윤석씨 "석가여래행적송 상(上)권" 주장
임홍순 명예교수 "의심 여지없다, 심도있는 연구 필요"
석가여래행적송 하(下)권 소장한 서울대 규장각 '연대미상'
[제주=뉴시스]배상철 기자 =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인 ‘직지심체요절’(直指心體要節)보다 40여년 앞섰다고 주장하는 ‘석가여래행적송’(釋迦如來行蹟頌). 소장자 장윤석(52)씨는 6일 오후 제주도의회 도민의방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해당 고서가 석가여래적송 상권이라고 주장했다. 2019.12.06. bsc@newsis.com


【제주=뉴시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인 ‘직지심체요절’(直指心體要節)보다 40여년 앞서 제작된 고서가 존재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장윤석(51)씨는 6일 오후 제주도의회 도민의방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소장하고 있는 고서가 ‘석가여래행적송’(釋迦如來行蹟頌) 상(上)권이며, 직지심체요절보다 먼저 만들어졌다고 주장했다.

석가여래행적송은 석가모니의 생애와 불교가 인도에서 중국으로 유통한 내력 등이 담긴 책으로, 고려 후기의 승려인 운묵이 간행한 것으로 알려진다.

하(下)권은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연구원이 보관하고 있다.

장씨는 “해당 고서는 집안에서 대대로 내려온 것으로, 최근에 지인에게 보여줬다가 석가여래행적송 상권이라는 말을 들었다”면서 “과학적인 방법 등을 통해서라도 정확한 연대가 밝혀졌으면 좋겠다”고 했다.

[제주=뉴시스]배상철 기자 = 석가여래적송(釋迦如來行蹟頌)을 소장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장윤석(왼쪽)씨가 6일 오후 제주도의회 도민의방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해당 고서가 석가여래적송 상(上)권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오른쪽은 임홍순 서경대 명예교수. 2019.12.06. bsc@newsis.com

해당 고서를 확인했다는 임홍순 서경대 명예교수는 “상권을 보면 1328년 12월에 글을 썼다는 내용이 있다. 서문에는 당시에 벼슬하던 선생이 1330년에 발간했다는 서문도 있다”면서 1377년 만들어진 직지심체요절보다 앞서 제작됐다는 근거를 제시했다.

서울대 규장각이 소유한 하권에 대해 ‘연대미상’이라는 결론을 내린 것과 관련해 임 명예교수는 “규장각이 하권만 보고는 연대를 확신하지 못했다고 본다. 책은 후대에 인쇄된 것도 많기 때문에 하권만으로는 그렇게 판단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많은 학자가 해당 고서의 양식이 조선시대에 집중적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이 책도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하지만, 고려시대 발간한 책 가운데 조선 초기 양식을 따르고 있는 것이 확인된 바 있다”고 주장했다.

장씨가 소유한 책이 석가여래행적송 상권이라고 보는 이유에 대해선 “서울대 규장각이 가지고 있는 하권과 내용이 동일하다”면서 “해당 고서가 석가여래행적송이라는 사실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고 주장했다.

임 명예교수는 “탄소동위원소 등의 실험을 통해 고서의 제작 시대를 밝힐 수 있다고 하지만, 10년 단위의 차이는 나오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면서 “지금 논의되는 연도는 40년 차이 정도이기 때문에 전문가들의 의견이 필요하다. 심도 있는 논의가 이뤄졌으면 한다”고말했다.(6)

 

 

<주>

 

 

(1) https://v.daum.net/v/20240902224927654

 

 

(2) https://v.daum.net/v/20230412034911504

 

 

(1)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 '직지심체요절', 다큐멘터리로 본다 (daum.net)2021. 09. 09. 

 

 

(4) https://v.daum.net/v/20190410031021059

 

 

(5)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직지'보다 138년 앞선 금속활자본…"국내 존재 사실 전혀 몰랐다" - 경향신문 (khan.co.kr)2020.04.21

 

 

(6) "세계 최고(最古) 직지심체요절보다 먼저 만들어진 책 있다" (daum.net)2019.12.06. 

 

 

 

<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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