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력사를 찾아서
발해국의 고분은 주로 발해 5경(京) 주위에 분포되어 있는데, 그 대표적인 유적으로는상경용천부가 있던 흑룡강성 영안현 동경성(東京城)과중경현덕부가 있던 화룡현 서고성(西古城),그리고 발해 구국도(舊國都)인 동경용원부가 있던 길림성 돈화현의 오동성(敖東城) 주변의 고분군입니다. 발해국이 고구려를 계승한 나라임을 직접적으로 나타내주는 것이 주검을 묻은 고분이다. 발해의 고분은 지상이나 지하에 돌을 사용해 무덤을 축조하고 그 위에 흙을 덮는 이른바 돌칸흙무덤[석실봉토분(石室封土墳)]으로, 이는 고구려 계통의 전형적인 무덤형태이다. 발해국의 고분은 주로 발해 5경(京) 주위에 분포되어 있는데, 그 대표적인 유적으로는 상경용천부가 있던 흑룡강성 영안현 동경성(東京城)과 중경현덕부가 있던 화룡현 서고성(西古城..
윤재운교수에 따르면, 발해의 강역은 10대 선왕(宣王)과 13대 대현석(대현석(大玄錫) 대에 가장 넓었다고 합니다. 발해의 영역은 대체로 신라와 국경을 접하고 서쪽은 요양과 요동에 미치고 있었으며, 북쪽은 흑룡강과 우수리강이 합류하는 지점을 거쳐 동쪽으로 연해주에 뻗쳐 있었던 것으로 볼수 있습니다. 송기호교수는 발해가 중국의 랴오닝성, 지린성, 헤이룽장성, 러시아 연해주에 걸쳐 있었으며, 전체 넓이는 최소 50만㎢, 최대 65만㎢에 달했을 것으로 추산했습니다. 한반도 면적을 22만㎢로 어림잡을 때 발해는 한반도 면적의 2.2배에서 2.8배에 이르렀고, 통일신라의 영역과 비교하면 발해는 3.8~4.9배에 이르렀으며, 고구려 전성기에 비해서도 1.5~2배 넓었습니다. 발해의 영토는 얼마나 넓었을까..
《환국-가사라국》 6. 환국과 신석기문화(16) 6. 16 중국 동북지역의 신석기문화; 7000년 전~5000년 전 중국 동북지역 중에 길림성과 흑룡강성의 신석기문화는 좌가산문화, 신개류문화, 앙앙계문화 등이 있다. 『중국 동북지역은 요녕성, 길림성, 흑룡강성을 포함하는 매우 광대한 지역이다. 이 지역은 내부에서도 요하를 중심으로 한 요서와 요동, 눈강과 제2송화강 유역을 포함하는 송눈평원지역, 목단강, 수분하, 송화강을 포괄하는 삼강평원지역으로 크게 나누어 볼 수 있다. 평저토기를 기본으로 한다는 점에서 이 드넓은 지역은 공통되는 특징이 있지만 시기에 따라 각 지역별 신석기문화는 서로 다른 변천을 보인다. 이 지역에서는 아직까지 토기 출현기의 유적은 확인되지 않았다. 북경 근처의 남장두유적 ..
《만주와 한반도 후기 구석기시대 년대기》 4.5. 2만 년 전~1만 년 전 4.5.1. 흑룡강성 하얼빈 염가강유적- 하얼빈인; 20,000 BP 『중국 헤이룽장黑龍江 성 하얼빈哈爾濱 시 서남쪽 25㎞ 옌자강에 위치한다. 이 유적은 쑹화松花 강과 윈량허運粮河 강 사이의 해발 146m인 제2단구에 있으며, 윈량허 강에서는 10m높이에 있다. 1982년~1985년까지 조사하여 사람 머리뼈, 석기, 짐승 화석, 뼈연모, 불탄 뼈, 재층 등을 찾았다. 옌자강유적은 A, B, C 3구역에서 20여 개의 시굴 구덩이 조사되었으며, 그중 B구역의 지층이 비교적 완벽하게 남아 있다. 층위는 5층으로 구분되며 위로부터 제5층은 30~50㎝ 두께의 검은 갈색 부식토층이다. 제4층은 135~145㎝ 두께의 노란 갈색의 ..
《만주와 한반도 후기 구석기시대 년대기》 4.4. 3만 년 전~2만 년 전 4.4.1. 충청남도 공주 석장리 유적(公州石莊里遺蹟) - 1지구 후기 집터층; 30,600년 전~28,000년 전 『충청남도 공주시 장기면. 사적 제334호.유적은 1964년 5월 큰물이 지나간 뒤 무너진 강가 언덕에서 확인되었으며, 바다높이보다 14.7m 높은 곳에 위치해 있었다. 발굴조사는 1964년 11월 22일에 시작하여 해마다 한두 달씩 10년간에 걸쳐 실시되었다. 이 유적은 1990년 10월 31일에 사적 제334호로 지정되었다. 석장리유적은 장군봉(364m)에서 가파르게 흘러내리는 물매를 지닌 산기슭이 대평리쪽에서 흘러내리는 금강과 마주치는 강 언덕을 이루는 곳에 위치해 있다. 지질층위는 27개로 이루어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