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주와 한반도 후기 구석기시대 년대기》

4.4.  3만 년 전~2만 년 전

 

4.4.1. 충청남도 공주 석장리 유적(公州石莊里遺蹟) - 1지구 후기 집터층; 30,600년 전~28,000년 전

 

충청남도 공주시 장기면. 사적 제334.

유적은 1964 5월 큰물이 지나간 뒤 무너진 강가 언덕에서 확인되었으며, 바다높이보다 14.7m 높은 곳에 위치해 있었다. 발굴조사는 1964 11 22일에 시작하여 해마다 한두 달씩 10년간에 걸쳐 실시되었다. 이 유적은 1990 10 31일에 사적 제334호로 지정되었다.

 

석장리유적은 장군봉(364m)에서 가파르게 흘러내리는 물매를 지닌 산기슭이 대평리쪽에서 흘러내리는 금강과 마주치는 강 언덕을 이루는 곳에 위치해 있다. 지질층위는 27개로 이루어져 있다. 층위는 물에 의한 것이 아닌 육성층에 차례로 빙하기에 쌓인 모난돌층의 문화층과 간빙기에 쌓인 찰흙층이 엇갈려 이루어져 있다.

 

유적의 지층은 층위상으로 맨 아래 바닥 바위층도 바다높이 위로 3m밖에 안 되는 얕은 곳에 있다. 맨 밑 문화층이 시작되는 곳은 바다높이가 매우 얕았던 때로 빙하기였음을 알 수 있다. 아래층들은 빙하기에 쌓였고, 간빙기에 이룩된 층은 중기 이후에 나타난다.

 

전기 구석기층까지는 물에 많이 쓸려나갔고, 중기층부터는 찰흙층이 쌓였다. 굳은 찰흙층이 더운 기후에 갈라져 틈 사이로 나무뿌리같이 끼어든 흙층의 아래쪽에는 덥고 메마른 기후로 인해 이루어진 산화철 뿌리테가 있어 셋째 간빙기로 볼 수 있다. 맨 밑층부터 중석기 문화층까지 모두 12개의 문화층이 이루어져 있고, 겉흙층에서는 민무늬토기조각과 갈아 만든 화살촉도 발견되었다.

 

이러한 사실로 볼 때, 공주석장리유적에서는 전기 구석기시대 때부터 중석기시대에 이르는 여러 시기에 걸쳐 사람이 살았고, 그 후 청동기시대에 다시 사람이 살게 되었음을 알 수 있다.

 

후기 구석기시대 집터에서는 사람 머리털이 여러 개 발견되었다. 이 집터층에서는 석기 제작 기술 중 가장 발달된 돌날떼기를 이용해 돌날·밀개·새기개 등을 만들고, 기둥을 세워 움막집을 짓고, 화덕을 만들어 불을 피운 것이 확인되었다. 이 밖에도 땅바닥을 후벼 파서 고래모습을 나타내고, 돌에 금을 새겨 불을 일으키고, 돌을 떼고 잔손질해 물고기·거북·새 들을 나타내기도 했다.

 

화덕에서 나온 재를 방사선 탄소연대측정을 한 결과 2 8000년 전으로 밝혀짐에 따라 그 당시 살았던 사람들은 지금의 우리와 같은 갈래의 사람들임을 알 수 있었다.

 

석장리유적은 제1·2지구로 나누어진다. 1지구에서는 후기 집터층에서 2 8000년 전과 그 아래층에서 3 600년 전의 연대가 밝혀졌다. 2지구에서는 절대연대가 밝혀진 것은 없다. 그러나 여러 층위에서 사람이 살았으며, 그들의 석기 제작 기술은 외날찍개·안팎날찍개·이른 주먹도끼·발달된 주먹도끼 및 격지긁개·돌려떼기석기·돌날석기·새기개·좀돌날 등의 단계로 이어졌음이 밝혀졌다.

 

석장리유적에서 출토된 석기는 주로 차돌·쑥돌·편마암들이 출토되었다. 중기 구석기층에서는 차돌반암·규장암·유문암 등이 새로 나타났다. 후기 구석기층에서는 흑요석·차돌반암·옥수(玉粹)들이 새로 쓰여졌다. 중석기층에서는 수정·규장암·유문암이 더해졌다.

 

석기의 모습은 떼는 수법과 석기의 돌감의 성질, 즉 돌의 결이나 낱알의 굵기, 굳기, 짜임새(결정)들에 따라서 다르게 나타난다. 석기의 재료는 전기에는 석장리의 산기슭에서 날라다 쓰고, 후기에는 더 먼 곳에서 흑요석들을 찾아 날라다 쓴 것으로 밝혀졌다.

 

전기의 석기는 모난돌들을 떼어서 만들었고, 중기에는 반암자갈돌을 찾아서 만들었으며, 후기에는 떼기에 좋은 유문암·흑요석·반암을 많이 쓴 것을 알 수 있다. 전기 문화층들은 지금의 강물높이보다 얕아서 물이 스며들어 좁은 면적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에 앞으로 더 발굴해야 한다.

 

최하층의 외날찍개 문화층은 암반층인 석비레층 위에 바로 쌓인 층으로, 2빙하기인 5545만년 사이에 이루어진 층이다. 2문화층은 제3빙하기인 3532만년 사이에, 3·4문화층은 21만 년 전의 제3빙하기 뒤쪽에, 5문화층은 18만 년 전의 빙하기에, 6문화층은 제3간빙기 12만년쯤 전에 이루어진 것으로 생각된다.

 

중기구석기 성격을 지닌 자갈돌 찍개문화층은 따뜻한 기후 아래 이루어진 것으로, 그 아래쪽의 찰흙층에서는 산화철이 굳어서 이루어진 뿌리테가 나오고 있다. 이 층의 석기들은 아슐리앙 전통의 주먹도끼, 돌려떼기수법의 몸돌, 격지들이 있어 연대가 76만 년 전쯤으로 추정된다. 8·9문화층은 제4빙하기에 이루어진 65만 년 전으로, 10·11문화층은 32만 년 전으로 각각 추정된다.

 

공주석장리유적은 우리나라에 구석기학을 성립시키고, 우리 역사가 오래지 않은 것으로 잘못 알고 있었던 것을 바로잡는 데 바탕이 된 유적이다. 앞으로 더욱 자세하게 발굴 조사되어야 할 것이다. 석장리 구석기문화의 발굴은 우리 나라에서 구석기시대부터 사람이 살았고, 여러 문화층이 오랜 기간에 걸쳐 이룩되었음을 밝혀주었다. 그리고 구석기 유적에 대한 조사·발굴·연구를 잇따르게 했고, 종래 동관진유적에서 확인된 구석기시대 유적을 믿지 않던 학설을 고쳐 우리 나라의 역사를 바로 보게 하는 중요한 기틀을 마련해주었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4.4.2. 강원도 정선 매둔동굴 유적 -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그물추; 29,000년 전, 정선인.

 

현재까지 가장 오래된 그물로는 핀란드와 러시아의 접경지대에서 발견된 버드나무 속껍질로 만든 중석기시대 9000여 년 전 안트레아 그물과 일본 후쿠이현의 토리하마 조개더미에서 발견된 약 1만 년 전 그물추, 청주 사천동 재너머들 유적에서 출토된 약 1만 년 전 그물추가 있다.

(http://www.newsis.com/view/?id=NISX20180807_0000384247&cID=10701&pID=10700)

 

그런데 2018년에 강원도 정선 매둔동굴서 이루어진 조사에서 29000년 전 구석기 그물추·손가락뼈를 발굴하였다고 파이낸셜뉴스가 보도하였다.

 

강원도 정선 매둔동굴서 29000년 전 구석기 그물추·손가락 뼈 발굴

 

 

 

강원도 정선 매둔동굴

 

강원도 정선에서 지금으로부터 약 29000년 전인 후기 구석기 시대 유물이 발굴됐다. 물고기를 잡을 때 쓰는 그물추와 뗀석기를 비롯해 사람의 손가락뼈가 발견됐다.

 

7일 문화재청에 따르면 문화재청 허가를 받아 연세대학교박물관이 지난 6월부터 약 40일에 걸쳐 강원도 정선군 남면 낙동리에 자리한 석회암 동굴인 매둔동굴을 조사한 결과 1층부터 4층까지 형성된 구석기 시대 퇴적층이 확인됐다.

 

지난해에 이어 진행된 올해 발굴조사는 동굴 안쪽의 구석기 문화층을 대상으로 했다. 구석기 시대 퇴적층에서는 사슴, 노루, 사향노루, 산양, 곰 등의 대형 동물 화석과 갈밭쥐, 비단털쥐, 박쥐 등의 소형 동물 화석이 발견됐다. 또 참마자, 피라미 등으로 보이는 작은 물고기 등뼈와 새 뼈 등 자연유물 화석도 출토되었다.

 

 

 

매둔동굴 구석기 3층에서 발견된 그물추

 

인공유물로는 주로 석회암 또는 규암을 이용해 만든 뗀석기를 비롯해 여러 점의 그물추가 발견되었다. 작은 자갈돌을 이용해 만든 그물추는 1층에서 3, 2층에서 1, 3층에서 10점 등 총 14점이 발견됐으며 대부분은 석회암으로 된 작은 자갈돌을 이용해 제작됐다. 현재까지 발견된 그물추는 공통으로 모루망치떼기 방법으로 제작됐으며 특히 3층의 경우 새 주둥이 모양처럼 끝을 뾰족하게 만든 부릿날 석기와 격지 등이 함께 나왔다.

 

조사단은 3층 하부에서 수습한 나무숯 조각의 방사성탄소연대를 측정한 결과 약 29000년 전에 해당하는 것이라는 결론을 얻었는데 이러한 연대값이 사실일 경우 매둔 동굴 유적에서 발견된 후기 구석기 시대의 그물추는 인류의 물고기잡이 역사에서 시기적으로 가장 이른 유물이라고 판단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또 그물을 이용한 어로 활동이 후기 구석기 시대에 존재한다는 새로운 사실을 밝혀냄으로써 앞으로 구석기 시대 생계 수단과 먹거리를 복원하는데 크게 이바지할 것으로 기대된다.

 

한편 구석기 시대 1층의 상부에서는 사람의 손가락뼈가 나와 눈길을 끌고 있다. 이 뼈는 둘째 또는 셋째 손가락의 3번째 끝마디에 해당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발굴조사기관인 연세대학교박물관은 앞으로 더 많은 연대측정 자료를 확보해 분석하고 인류사에서 그물을 이용한 물고기잡이가 언제 시작돼 어떻게 주변으로 확산되었는지 밝히기 위한 연구를 추가로 진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출처; 파이낸셜뉴스 , 강원도 정선 매둔동굴서 29000년 전 구석기 그물추·손가락 뼈 발굴, 2018.08.07

http://www.fnnews.com/news/201808070903408714)

 

4.4.3. 요녕성 본계시 묘후산 동동유적 - 동동인; 28,000 BP

 

이 유적은 묘후산 동남 언덕상에 위치하고 있다. 원래 묘후산 유적의 ‘B지점으로 불려졌다. 동동 유적은 묘후산 유적으로부터 동쪽으로 약 100m 거리, 표고 350m, 묘후산 유적보다 약 25m 높다. 동동 유적과 묘후산 유적 등은 같은 시기에 발견되었다. 동동 유적의 동서 길이 19m, 남북 너비 9m, 면적 171m²이며 발굴면적은 24m²이다. 퇴적층 두께는 7.5m, 층위는 위에서 아래로 5층으로 나누어졌다.

 

출토 유물은 인류화석, 동물화석과 석제품 등 3종이다. 인류화석은 2점의 이마뼈와 하나의 요골이다. 2점의 이마뼈는 제2층 바닥에서 출토, 서로 다른 개체 소속이며 석화 정도에도 차이가 있다. 현대의 표본 모두 1세 전후의 유아 뼈들이다. ~ 요골은 제2층 상부에서 출토된 것으로 하나의 어리아이의 요골이다. ~ 방사성탄소 측정연대는 BP 28040±680년이다.

(출처; 조빈복, 중국 동북 구석기문화, 44~46)

 

4.4.4. 길림성 유수 주가유방유적 - 유수인; 26,000 BP

 

1951 中國 吉林省 楡樹市 大于鄕 周家油坊村 남쪽의 송화강(松花江) 기슭에서 발견된 화석이다. 2점의 인류 두골(頭骨) 화석 조각과 1점의 정강이뼈 화석이 발견되어 유수인(楡樹人)이라고 명명되었으며, 이와 함께 대량의 포유동물 화석이 채집되었다.

 

이 유적은 1977 2월 고고학자와 지질학자 등으로 구성된 연합발굴팀이 7개 지점을 발굴하여 석기, 골기, 맘모스 상아 제품 70여 점, 각종 동물 화석 400여 점을 발견하였고, 연구 결과 楡樹人은 후기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로 판명되었다.

 

이 유적의 발굴은 安圖人과 함께 길림성(吉林省) 구석기시대 고고학의 공백을 메꾸어 주고, 중국 동북 지방에서의 고인류 활동의 흔적을 찾는 데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하였다. 이 유적은 1961년 길림성 문물보호단위(吉林省 文物保護單位)로 지정되었다.

(출처; 한국고고학사전(2001)

https://portal.nrich.go.kr/kor/archeologyUsrView.do?menuIdx=792&idx=11567)

 

4.4.5. 길림성 안도현 석문산유적 - 안도인; 26,000 BP

 

중국 지린吉林 성 안투安圖 현 밍웨明月 진의 동남쪽으로 2.5 떨어진 스먼 산의 동굴에 위치한다. 이 동굴은 1964년에 처음으로 발견되었다. 이 동굴의 남쪽으로는 부얼하퉁허布爾哈通河강이 흐르며, 이 강에서 25m 높은 곳에 자리한 제2단구에 있다.

 

유적의 지층은 위에서부터 아래로 4개 층으로 나뉜다. 4층은 두께 11의 짙은 회색 모래자갈층으로 안산암, 석회암자갈돌이 있으며 들말, 말사슴 등 짐승 화석이 나왔다. 3층은 두께 61의 회황색 점토층으로 점토 중 작은 자갈돌이 있으며 이들은 화강암, 석회암, 석영으로 이루어져있다. 이 층의 짐승 화석은 비교적 많아 털코뿔소, 들말, 동북들말, 말사슴 등이 나왔다. 2층은 두께 52의 짙은 황색 점토층으로 사암, 화강암 등으로 된 자갈돌과 들말, 동북들말, 노루 등이 나왔다. 1층은 두께 9의 짙은 녹색 모래자갈층으로 들말 등의 동물 화석이 나왔다.

 

동굴의 훼손된 층에서 인류 화석과 짐승 화석이 발견되었는데, 정황상 제2층과 제3층에 해당한다. 이곳에서 나온 안투인安圖人 화석은 오른쪽 아래의 첫째 어금니 1점으로 현대인과 비슷하지만 충치 흔적과 이 중간에 위축증이 있다. 씹는 면의 범랑질이 많이 닳아 있어 나이는 중년으로 추정된다.

 

출토된 짐승 화석은 우는토끼, 호랑이, , 하이에나, 털코끼리, 털코뿔소, 들말, 동북들말, 얼룩사슴, 동북노루 등 19종이며, 그중 4종은 절멸종이고 나머지는 현생종이다. 전형적인 털코끼리-털코뿔소 동물군의 모습으로 이러한 동물군은빙하 주변 지역 기후조건을 나타내는 지시 동물군으로 비교적 짧은 기간 지속되다가 중석기시대 개시 전 털코끼리, 털코뿔이, 들소와 하이에나 등이 멸종하게 되는 것이다. 스먼 산동굴의 짐승 화석 종류는 싸라우쑤薩拉烏蘇동물군과 비슷하여 이들은 시대적으로 산딩둥山頂洞보다 이르고, 딩춘丁村 동물군보다 늦은 시기이다.

 

인류가 사용한 석기는 발견되지 않았으나 뼈 겉면에 사람이 찍어 생긴 흔적이 있다. 꽃가루분석으로는 위아래 두 개 층으로 구분된다. 아래층보다 위층에서 꽃가루가 많이 검출되었다. 꽃가루는 초본식물 위주로 꽃가루의 절반을 차지하고 다음이 목본과 고사리과이다. 초본식물 꽃가루에는 쑥과 국화과가 위주이고 십자화과와 범의귀과 등이 있다. 목본식물 꽃가루는 소나무, 운삼과 냉삼속이 많으며, 그 다음이 벚나무속이다.

 

빙하 주변기후 지표인 털코끼리와 운삼과 냉삼으로 보아 당시는 추운기후이다. 운삼과 냉삼은 현재 백두산 해발 1400~1800m 이상에서 분포하고 백두산의 연평균 기온은 3.5로 당시 안도일대의 연평균 기온은 영하로 안투인의 생활은 한랭한 기후의 초원과 삼림 환경임을 알 수 있다. 이 유적의 방사성탄소연대AMS 측정 결과 털코끼리의 주걱뼈는 26,560±550 BP, 털코끼리 어금니는 35,370±1850 BP, 털코뿔소 어금니는 28,700±750 BP 값을 확인하였다.

(출처; 한국고고학전문사전, 구석기시대편

http://portal.nrich.go.kr/kor/archeologyUsrView.do?menuIdx=794&idx=211)

 

 

4.4.6. 평양 만달리 유적 - 만달인; 20,000년 전

 

 

 

만달리 동굴유적 모습

 

북한 국가지정문화재보존급 제1550. 황해북도 승호군(옛행정구역명: 평양시 승호 구역) 만달리의 만달산 중턱 산줄기에 위치한다. 1979~1980년 사이에 사회과학원 고고학연구소에 의하여 발굴되었다. 유적에서 약 100m 지점에 남강이 흐른다. 유적 주변에는 3개의 단구가 발달하였으며, 두 번째 단구(강바닥으로부터 12~14m 높이)는 만달리 동굴의 쌓임층을 포함한다.

 

동굴 안의 퇴적물은 9개의 층으로 나뉘며, 시간적 선후 관계에 의하여 크게 신석기시대 층(위층, 두께20~30), 후기 구석기시대 층(가운데 층, 두께 1.6~2m), 상부(후기) 갱신세 층(밑층, 두께 3~4m)으로 구분되었다. 가운데층에 속하는 제6(두께 약 40)은 석회암이 섞여 있는 회색빛의 진흙층이며, 여기에서 만달사람으로 명명된 인류 화석(얼굴 부분이 없는 머리통뼈, 아래턱뼈, 팔뼈, 넙적다리뼈,골반뼈), 석기, 뼈연모, 동물 화석이 출토되었다. 밑층에서는 동물 화석만이 발굴되었다.

 

 

 

 

 

가운데 층에서 출토된 만달사람의 머리통뼈는 25~30살 정도로 남자 것으로 알려졌다. 석기의 암질은 흑요석(9), 규암(1), 차돌(3)이다. 흑요석 석기의 종류에는 속돌(몸돌)과 격지가 있다. 속돌의 최대 크기는 대체로 5 미만이고, 그 생김새는 각추 모양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각추형, 곧 쐐기형속돌은 때림면의 가공 상태와 뗀 각도의 차이에 따라 두 가지 분류로 구분된다.

 

첫째 부류는 때림면의 전면이 다듬어져 작은 격지면으로 덮여 있으며, 떼기 각은 직각이다. 둘째 부류는 때림면이 매끈한 면이고, 떼기 각은 70~80° 정도이다. 속돌에서는 대고 때리기와 눌러뜯기 수법에 의한 잔돌날(좀돌날) 석기 제작 기법이 관찰된다. 가운데 층에서는 사슴뿔 또는 짐승 뼛조각을 이용하여 만든 뼈연모도 여러 점 출토되었다.

 

만달사람은 머리뼈의 생김새와 겉면의 상태, 뼈물림 선冠狀縫合, coronal suture의 상태에 근거하여 25~30살 정도의 남자에 해당하는 것으로 연구되고 있다. 만달사람의 머리뼈는 장두형에 속하고, 현대 조선 사람과 달리 눈두덩이 잘 발달되어있지만, 높은 머리뼈와 곧은 이마의 특징이 현대 조선 사람의 종족적 시원을 반영하는 중요한 징표가 되는 것으로 북한에서 받아들이고 있다.

 

발굴된 짐승 뼈는 38마리분(노루 12마리, 동굴하이에나 4마리 등)에 해당한다. 우제류의 사슴과(사향노루, 복작노루, 노루, 사슴) 짐승이 기본을 이루며, 식육류(오소리, 동굴하이에나, 여우)가 그 다음 자리를 차지하며, 온대성 짐승들이 주류를 형성한다. 사멸종의 비율은 낮다. 생물 층서 방법에 의하여 가운데 층은 지금으로부터 약 2만 년 전으로 추정되고 있다.

 

만달사람 화석이 발굴된 제6층의 화분분석 결과, 초본류(67.2%)의 비율이 높았으며, 그 다음은 목본류(24.8%, 침엽수 12.1%, 활엽수 12.7%), 포자류(8.0%)의 순으로 나타났다. 당시의 자연경관은 침엽수와 활엽수가 혼성림을 이루면서 동굴 주변에 다양한 초본류가 서식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밑층에서 발굴된 짐승 뼈는 118마리분에 해당한다. 그중동굴하이에나Crocuta ultima(46마리), 토끼류(21마리), 노루(8마리), 사슴(6마리), 너구리(7마리) 등의 개체수가 상대적으로많다. 특히 동굴하이에나는 많은 마리 수를 차지한다. 이 밖에 말, 큰쌍코뿔소, 원숭이의 개체수는 적다. 사멸종의 비율(33.3%)은 가운데 층에 비하여 높다. 밑층의 동물상은 대체로 따뜻한 온대기후에 적응한 동물상으로 이루어졌다.

 

출토된 동물 화석의 종적 구성에 따라 밑층의 동물상은 상부(후기) 갱신세 초기로 연대가 설정되었다. 밑층에 속하는 제3층의 화분분석 결과, 목본류(45.3%, 침엽수 18.4%, 활엽수26.9%)가 우세하였으며, 그 다음은 초본류(39.2%)와 포자류(15.5%)이다. 당시의 식생은 활엽수-침엽수 혼성림에 의한 자연경관을 반영한다.

(출처; 한국고고학전문사전, 구석기시대편)

 

4.4.7. 전라남도 장흥 신북 유적 - 구석기유적에서 출토된 간석기(마제석기); 20,000년 전

 

전라남도 기념물 제238. 장흥군 장동면 북교리 신북 마을 일원에 위치한다. 장평천과 화강천 주변에 20여 곳의 구석기 출토 지점이 분포하고 있다. 2002년에 발견되었으며 장흥-장동 간 도로 신설 구간에 포함되는 약 21,000 2003-2004년에 걸쳐 발굴되었고 장동초등학교의 체육관 신축터 800에 대한 발굴이 2009년에 이루어졌다.

 

조사 결과 신북유적은 최소 130,000가 넘는 대규모의 후기 구석기유적으로 드러났고,  31,000점의 석기가 출토되었다. 유적의 층위는 경작층(1지층), 검은 갈색 찰흙층(2지층), 갈색 찰흙층(3지층), 노란 갈색 찰흙층(4지층), 모난돌 모래층(5지층), 기반암의 순서이다. 석기는 제3지층에서 출토되었는데 유물이 나오는 지점의 해발은 185~193m이다.

 

여기서 석기제작터와 화덕자리가 곳곳에서 발견되었다. 석기제작터는 격지, 돌날, 좀돌날을 만들던 곳과 새기개처럼 특정 도구를 제작한 곳으로 구분된다. 특히 뗀석기와 같이 나온 간석기는 조사 범위의 북쪽마루를 중심으로 분포하며 문화층의 중하위에 위치한다. 그리고 화덕자리는 6개 이상 확인되었는데 이 중 4개가 약 4.4×13m의 좁은 범위에 모여 있었다.

 

석기의 종류는 크게 뗀석기와 간석기로 나뉜다. 뗀석기로는 좀돌날몸돌, 밀개. 새기개, 슴베찌르개, 나뭇잎모양찌르개, 뚜르개, 긁개, 홈날, 톱니날, 주먹도끼, 주먹자르개 등이 있다. 이것들의 돌감은 석영 맥암, 유문암, 응회암, 규암, 옥수, 수정, 흑요석 등 다양하다. 그리고 20점 정도의 간석기는 국부마제석부, 갈린 판석과 자갈, 숫돌, 홈석기, 고드랫돌모양석기 등 회귀한 종류이다. 이 밖에 붉은 안료로 쓰인 철석영자갈이 나왔다.

 

숯으로 잰 7개의 방사성탄소연대측정 결과는 18,500~25,500 BP이어서 문화층의 형성이 후기 구석기시대 중반이었음을 가리키고 있다. 신북유적은 그 면적이 최소 130,000가 넘는 한국에서 가장 큰 후기 구석기유적중 하나이며 석기갗춤새는 유베쓰기법의 좀돌날몸돌, 다양한 새기개와 밀개로 대표되는 좀돌날석기군이다.

 

한편 흑요석제 석기는 분석 결과 원산지가 백두산과 일본으로 추정되어 동해를 둘러싼 구석기인들의 교류망을 규명하는 데 대단히 중요하다. 또한 뗀석기와 함께 나온 여러 가지의 갈린 석기는 구석기인들의 다양한 활동을 이해할 뿐 아니라 마제석기의 기원을 연구하는 데 있어 중요한 학술 자료로 판단된다.

(출처; 한국고고학전문사전, 구석기시대편)

 

2003 11 17일자 연합뉴스는 장흥 구석기시대 유적서 간석기 확인이라는 제목으로 간석기 발굴을 보도하였다.

 

진주 장흥리. 대전 용호동에 이어 3번째

흔히 뗀석기만이 사용된 것으로 알려진 한반도구석기시대에 간석기(갈아 만든 석기)를 사용했음을 입증해주는 고고학적 증거가 전남 장흥군 장동면 북교리 신북마을에서 확인됐다.

 

조선대박물관(관장 이기길)은 이 일대 약 6천 평을 발굴 조사한 결과 후기 구석기시대 대규모 살림터에서 출토된 일부 구석기 유물이 간석기로 밝혀졌다고 17일 밝혔다.

 

이기길 관장은 "뗀석기와 함께 간돌 자귀와 간 흔적이 뚜렷한 돌 등이 드러남으로써 진주 장흥리, 대전 용호동 유적 발굴성과를 참조할 때 한반도 구석기시대에도간석기가 제작, 사용되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고 말했다.

 

이 교수에 따르면 구석기시대 마제석부가 출토된 것은 일본 간노키() 유적을 비롯해 여러 곳에서 약 3만 년 전 무렵에 나타났다가 이내 사라지고 신석기시대에 가서 다시 등장한다. 그동안 일본 구석기학자들은 자신들의 마제석부가 세계 최고의 간석기라고 주장해 왔다.

 

한양대 배기동 교수는 "출토 유물의 실물을 아직 보지 않아 뭐라 단정할 수는 없으나, 인근 일본에서도 국부적으로 갈아 만든 구석기시대 후기 유물이 출토되고 있음을 볼 때 (구석기시대 간석기는) 출현 가능성은 언제든 있었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신북마을 유적에서는 약 1만 점을 헤아리는 석기류가 발굴됐다. 유적 전체에 걸쳐 좀돌날과 망치 등이 군데군데 확인됨으로써 석기를 활발히 제작하던 당시 시대상을 생생하게 그려볼 수 있게 됐다고 이 교수는 덧붙였다.

 

출토 석기류로는 창끝찌르개, 슴베찌르개, 좀돌날 몸돌, 새기개, 밀개, 긁개, 자르개 등 후기 구석기 후기를 대표하는 종류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특히 뼈나 뿔을 다루는 새기개가 다양하게 출토됨으로써 작살이나 끼움날 연장을 만드는 일이 빈번했음을 추정할 수 있다고 이 교수는 설명했다. 이러한 새기개는 유럽의 경우 후기 구석기시대인 "막달레니앙기"에 널리 유행했다.

 

이와 함께 두 가지 종류의 찌르개는 사냥 기술이 고도로 발달했음을 보여주는 유물이며, 밀개. 긁개. 자르개 등은 사냥한 짐승의 가공이 빈번했음을 알려주고 있다. 이 곳 문화층에서 나온 숯에 대한 서울대 방사성탄소연대(AMS) 측정결과 이 곳이 후기구석기시대 유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출처; 연합뉴스, 

http://v.media.daum.net/v/20031117033551562?f=o)

 

한편 동아일보는 2004 5 13일자에 후기구석기 유적서 간돌 첫 출토라는 제목으로 다음과 같이 보도하였다.

 

우리나라의 전형적 후기구석기 유적에서 신석기 유물인 간돌(마제석기)이 여러 점 출토돼 마제석기의 최초 사용 시기에 대한 논란이 예상된다. 조선대 박물관(관장 이기길·李起吉) 13일 방사성탄소연대 측정 결과 18500년 전25500년 전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전남 장흥군 신북마을의 후기구석기 유적에서 간돌 7점과 이를 만든 숫돌 2개 등 신석기 유물이 출토됐다고 발표했다.

 

 

 

 

발굴된 마제석기는 도토리 등을 갈 때 쓰는 갈돌 1, 큰 동물을 자르거나 나무를 다듬을 때 쓴 간돌 자귀 2, 그리고 지금까지 한반도에서 발견된 적이 없는 홈석기 5점 등이다.

 

홈석기는 돌의 위나 아랫부분 또는 테두리 부분이 홈처럼 파였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뭔가를 빻고 곱게 가는 데 쓰인 도구로 추정된다.

 

한반도에서 간돌 유물이 나온 가장 오래된 유적은 12000년 전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제주 고산리 신석기 유적이다. 따라서 이보다 최대 1만년 앞선 신북 유적에서 신석기 유물이 출토된 것은 이례적이다.

 

국내에선 구석기 유적인 경남 진주 장흥리 집현과 대전 용호동에서 각각 1기씩 마제석기가 출토됐지만 마제석기의 제작도구까지 함께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조선대 박물관 이기길 관장은 이번 발굴로 신석기시대 이전에도 마제석기가 사용됐음이 확실해졌다고 밝혔다. 세계적으로 구석기 유적에서 신석기 유물이 함께 발굴된 경우는 일본 나가노현 간노키 유적과 히비야 유적 정도다.

(출처; 동아일보, 후기구석기 유적서 간돌 첫 출토,

http://news.donga.com/3/all/20040513/8061328/1#csidx41614e6c096c521be391c9515867f8c)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