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력사를 찾아서

"서경 전투에서 양편 병력이 서로 수만 명에 지나지 않고 전투의 기간이 2년도 안 되지만, 그 결과가 조선 사회에 끼친 영향은 고구려의 후예요 북방의 대국인 발해 멸망보다도 몇 곱절이나 더한 사건이니 대개 고려에서 이조에 이르는 1천 년 사이에 이 사건보다 더 중요한 사건이 없을 것이다" -신채호 '조선사연구초' 中 ■ [역사줌인] "조선 역사 1천년 이래 제1대 사건"..'묘청의 난'파이낸셜뉴스 최경식기자 2021. 7. 3. 00:10 자주와 사대의 격돌 서경천도운동 및 묘청의 난 전말 고려 삼경 중 하나인 서경과 그 일대를 그린 조감도. 고려대학교 박물관 1127년, 고려는 문벌귀족 등 지배층의 갈등과 왕권 약화, 금(金)나라의 압박 등 대내외적으로 극심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이..
가끔 이렇게 묻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 고대사에서 지금 남아있는 유일한 정사(正史)는 ‘삼국사기(三國史記)’ 아닌가, 그런데 그게 과연 믿을 수 있는 책인가? 사대주의 사상으로 쓰여진 책 아닌가?” ■ [유석재의 돌발史전] 삼국사기는 과연 사대주의 역사서인가? 삼국사기에 대한 세 가지 고찰 국보로 지정된 '삼국사기'. /문화재청 저도 오래 전 청소년 시절에, 지금 표현하자면 ‘국뽕’이라 말할 수 있는 생각에 젖어 있었던 때가 잠깐 있었습니다. 다행스러운 것은 막 출간된 ‘환단고기’를 읽고 나서 저 스스로 그것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 무렵 저는 “삼국사기는 사기품이고, 삼국유사는 (삼국사기의) 유사품이다”라는 생각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세월이 흘러 대학의 역사학과에 진학하고 ..

김부식은 고려전기 직한림, 추밀원부사, 중서시랑평장사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1075년(문종 29)에 태어나 1151년(의종 5)에 사망했다. 신라 무열왕의 후손으로, 송의 서긍조차도 박학다식하여 글을 잘 짓고 고금을 잘 알아 그를 능가할 사람이 없다고 평할 정도였다. 묘청의 난 때 원수로 임명되어 직접 중군을 거느리고 삼군을 지휘 통솔하여 난을 진압했다. 본인이 주도한 윤언이·한유충 등의 지방좌천 인사가 번복되자 정치보복을 염려하여 세 번 사직상소를 올리고 관직에서 물러났다. 이후 인종의 명에 따라 50권의 『삼국사기』를 편찬하여 바쳤다.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입지(立之). 호는 뇌천(雷川). 얼굴이 검고 우람하였으며 고금의 학식에 있어 김부식을 당할 사람이 없었다. 신라 무열왕(武烈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