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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사라 력사를 찾아서
《환단고기는 어떤 책인가?》 5.7 《태백일사》 〈대진국본기〉 대중상의 후고구려 건국 1세 세조 진국열황제(668년~699년), 연호는 중광 『《조대기》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개화 27년(단기 3001년, 668년) 9월 21일 평양성이 함락될 때 진국장군 대중상이 서압록하를 지키다가 변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들으셨다. 마침내 무리를 이끌고 험한 길을 달려 개원(開原)을 지나는데 소문을 듣고 따르기를 원하는 자가 8,000명이었다. 함께 동쪽으로 돌아가 동모산에 이르러 웅거하고, 성벽을 굳게 쌓고 스스로 보전하여 나라 이름을 후고구려라 칭하고 연호을 중광(重光)이라 하셨다. 격문을 전하니 이르는 곳마다 멀고 가까운 여러 성에서 합류하는 자가 많았다.오로지 옛 영토를 회복하는 것을 자신의 소임으..
“거대영토 통치 목적…”수도를 5곳에 설치한 발해의 五京제도업데이트 2009-09-26 13:212009년 9월 26일 13시 21분 《발해의 수도가 다섯인 것은 당(唐) 5경(五京)제의 영향이 아니라 부여·고구려의 전통을 이어받은 내재적 발전 논리에 입각한 것이라는 박사학위 논문이 나왔다. 한국학중앙연구원의 8월 박사학위 졸업논문 ‘발해 문왕(文王)대의 지배체제 연구’(필자 김진광)가 그것. 국내 15번째 발해사 전공 박사논문인 이 논문은 발해 3대 문왕의 재위기간(737∼793년)에 ‘사방 5000리’에 이르는 발해의 최대 판도가 확정됐으며 이를 효과적으로 통치하기 위해 3성 6부제 같은 중앙행정체제와 5경 15부 62주의 지방행정체제가 완비됐을 가능성을 제기한다. 》이 같은 제도의 완비가 이뤄진 ..
윤명철 [윤명철의 한국, 한국인 재발견] 고구려 계승한 '황제국' 발해…연해주 북부까지 영향력 뻗쳤다입력2020.04.03 17:11 수정2020.04.04 01:31 (27) 발해의 건국과 발전발해는 한민족의 역사구성원 대부분이 고구려 유민목간·그릇·파편 등에 '고려' 글자日 기록에도 "발해는 옛 고구려"둘레가 16㎞인 상경성 궁성 입구. 현무암으로 돼 있다. 석하사진 문화연구소나라가 망해 포로가 돼서도 굴복하지 않은 채 30년 동안 기회를 노리다가 복국(復國)의 희망을 안고 대탈출을 감행한 발해인들. 2000여 리(里·800여㎞) 길에 겪은 고생도 그렇지만, 그 마음과 꿈을 떠올리면 숙연해질 수밖에 없다. 2002년 중국 정부는 동북공정(東北工程: 중국 국경 안에서 전개된 모든 역사를 중국의 역사로..
[규원사화] 규원사화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규원사화》(揆園史話)는 조선 숙종 1년인 1675년에 북애자(北崖子)가 저술하였다는 역사서 형식의 사화(史話)로, 상고시대와 단군조선의 임금에 대해 상세하게 기술되어 있다.저자[편집]북애자(北崖子)는 효종 ~ 숙종 시대의 과거에 급제하지 못한 선비라고 스스로 소개한다. 붓을 던지고 전국을 방랑하던 중 산골에서 청평 이명이 저술한 진역유기를 얻어 역사책을 쓰게 되었다고 한다.청평 이명(淸平 李茗)은 고려 말에 청평산에 머물렀던 도인으로 추정되고 '선가의 말이 많은(도교 용어가 많이 사용된)' 《진역유기》 3권을 지어 산골에 숨겨두었다고 한다. 조선 선조 때에 씌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조여적의 《청학집》에 도인의 계보를..
한국 고대 역사 문화 지도의 방문을 환영합니다.과학적이고 실증적인 새로운 한국 고대 역사가 시작됩니다. 선사시대 역사시대신석기시대고구려백제일본발해1.인류의 발생과 이동현생 인류의 발생과 한민족의 형성추모왕소서노이자나기발해 역사2. 오랑캐 천산 문화오랑캐 고원 환인족 오랑캐 문명유리왕온조왕히미코여왕상경과중경3. 예맥구려 사해문화대릉하 의무려산 신석기 농업 문명대무신왕기루왕스사노오동경과남경4. 환인 하늘산 문화시란무렌강 유역 신시 아사달의 문화태조대왕초고왕대국주신서경과장령5. 환웅배달 홍산문화노로하 유역 석성, 우하량 유적차대왕구이왕신무천황부여와막힐청동기시대산상왕사비왕일여 여왕정리와안변1. 구려 치우 용산문화산동반도 태산 용산문화중천왕고이왕숭신천황솔빈과동평2. 단군왕검 조선문화비류수변 궁홀산의 고대산 문..
윤명철 몽골·티베트 등 아시아 각지로 흩어진 고구려 유민…불모지 개척, 접경세력과 전투에 이용당했다입력 2021.05.24 09:00 수정 2021.05.24 09:00 생글생글 708호 역사 산책윤명철의 한국, 한국인 이야기(50) 고구려 유민의 디아스포라중국 신장성 투르판에 있는 고창고성. 고구려와 당나라가 전쟁을 벌일 때 연관이 있었고, 후에 고선지가 안서도호부로 근무했던 곳이다.나라가 멸망한다는 것은 군대가 전투에서 패하고, 정부가 괴멸하고, 지배계급이 파멸하는 것을 일컫는 게 아니다. 단순히 삶이 비참해지고, 자존심이 상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그야말로 모든 것이 파멸하고 사라지는 것을 의미한다. 죽은 자는 선조들처럼 명예를 간직한 채 역사에 남았고, 자의든 타의든 살아남은 자들은 포로로 잡..
2015.08.05 09:49 칭기스 칸 가계의 비밀 코드를 찾아서(1)- 전원철 박사 인터뷰 1300년 동안 숨겨진 칭기스 칸 가계의 비밀 (economychosun.com) 이상흔 조선pub 기자 130호 6월호에는 북방민족사학자 주몽예씨의 "칭기즈 칸은 고구려-발해 왕가(王家)의 후손"이라고 주장하는 다소 \'도발적인\' 기고문이 한편 실렸다. 주몽예씨는 칭기스 칸 연구를 위해 29개국 언어로 된 사서를 읽고 이를 전부 비교대조한 결과 이러한 결론을 도출하였다고 한다. 그의 기고문에 대한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주몽예씨의 본명은 최근 《고구려-발해인 칭기스 칸1. 2권》을 펴낸 전원철 박사인 것으로 밝혀졌다. 은 그가 칭기스 칸 연구에 뛰어든 계기와 기고문에서 못다한 이야기를 들어보기 위해 직접..
민성욱 말갈과 한민족 국가 간의 관계K스피릿 입력 2021.07.07 09:02 기자명민성욱 박사 [칼럼] 민성욱 박사 말갈은 실체가 있었기 때문에 동일한 시대, 동일한 지역에 존재했던 많은 국가 또는 집단과는 일정한 관계를 유지해 왔다. 그래서 고조선, 부여, 고구려, 발해 등 만주지역에서 비롯되었던 한민족의 여러 국가들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우선 기록상으로 『삼국사기』 에 등장하는 수많은 말갈 관련 기록과 중국 정사 중 「동이열전」에 등장하는 말갈계 종족들의 기록들, 『수서』이후에 등장하는 말갈은 독립된 열전으로 처음에는 「동이열전」에서 시작해서 「북적열전」으로 이어지는 관련 기록이 많아 남아 있다. 일본사서에는 『속일본기』,『유취국사』 등에 말갈 관련 기록이 등장한다. 말갈은 스스로 역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