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력사를 찾아서

“《몽골비사》에 보면, 알란 코와의 아버지가 ‘코리투마드’ 부족의 부족장 코리라르다이 메르겐이라고 나온다. ‘코리’는 말갈어로 《요사(遼史)》 속의 ‘고리(稿離)’ 즉 ‘고려(高麗)’라는 말이고, ‘투마드’는 ‘투만-씨’, 곧 ‘도모(都牟)-씨’ ‘동명(東明)-씨’ ‘주몽-씨’라는 말과 같다. 결국 코리라르다이 메르겐과 추마나 콘은 같은 사람인 것이다. 《사국사》에 의하면, 알란 코와는 4촌 오빠인 도분(디븐) 바얀(도본 메르겐·위마나 콘의 아들)과 결혼한다. 하지만 도분 바얀은 결혼 3년 만에 세상을 떠난다. 알란 코와는 빛 속의 신비의 인물을 통해 ‘보잔자르 콘(《몽골비사》의 보돈자르)’을 낳는데, 이가 곧 칭기즈 칸의 9대조다.” ⊙ “몽골-튀르크계 통칭하는 ‘타타르’는 고구려 ‘대대로’에서 나온..

주몽예씨의 기고문을 보면, 막연히 ‘몽골과 우리는 서로 관련이 있다’는 식의 주장을 펼친 것이 아니다. 그는 매우 구체적으로 칭기스 칸은 발해(渤海) 고왕(高王) 대조영(大祚榮)의 아우인 대야발(大野勃)의 제19대손이라는 것을 칭기스칸의 ‘족보’ 계보를 통해 증명하고 있다. 뿐만 아니다. 그는 역사언어학적 고증을 통해 칭기스 칸의 어릴 적 이름인 테무진은, 그가 강인하고 위대한 인물이었음을 가리키는 ‘철인’ 이라는 일반적인 풀이와는 달리, 고구려 3대 대무신왕(大武神王)에서 비롯된 것임을 밝혔다. 또 칭기스 칸이라는 칭호도 일반적으로 ‘왕중의 왕’ 이라는 일반적 풀이와는 달리, 대조영의 호칭이었던 ‘진국공(震國公)’ 또는 ‘진국왕(震國王)’에서 나온 것으로, 곧 ‘발해국왕’이라는 뜻이라는 주장을 펼쳤..

⊙ 칭기즈 칸의 이름 ‘테무진’은 고구려 3대 ‘大武神王’에서 유래, ‘칭기즈 칸’은 ‘震國王’ 즉 ‘발해왕’이라는 의미⊙ ‘몽골’은 ‘말갈(靺鞨)’, 즉 고구려-말갈어로 ‘말골(馬忽)’이라는 의미⊙ 몽골족의 역사 다룬 《집사》 등에 나오는 ‘에르게네 콘’ 이야기는 발해 武王 때 발해와 羅唐연합군의 전쟁을 다룬 것⊙ 칭기즈 칸의 조상 엘 콘은 발해 대조영의 동생 대야발의 둘째 아들 일한⊙ 《칭기스의 서(Da’ftari-Cingiz-nama’)》에 나오는 ‘알툰 칸(Altun Han·‘황금의 칸’)’은 金나라 태조 아골타의 조상인 金幸 ■ 한 古代史 연구가의 도발적 문제제기칭기즈 칸은 고구려-발해 王家의 후손이다!글 : 주몽예 북방민족사학자·법률학 박사 06 2015 MAGAZINE 월간조선 ..

729년 발해의 시조 대조영의 아우 대야발이 탈고한 것으로 전해지는 단군조선과 기자조선에 대한 역사서. 연대기. 원문은 발해문이었다고 하며 약 300년 뒤 황조복(皇祚福)이 한문으로 번역하였다. 현재의 국한문본은 1959년 정해박(鄭海珀)이 한문본을 다시 번역한 것이라 하나, 발해본은 물론 한문본도 오늘에 전하지 않는다. 따라서, 그 사료적 가치가 의문시되고 있으며, 다른 상고사서와 비교하여볼 때 그 기본틀이 다르지 않아, 면밀한 분석과 재평가가 요망되고 있는 사서라 할 수 있다. 이 책은 저자 대야발의 서문에 이어 제1편 전단군조선, 제2편 후단군조선, 제3편 기자조선으로 구성되어 있고, 대한제국 학부 편집국장 이경직(李庚稙)의 중간서(重刊序)와 신채호(申采浩)의 중간서가 부록되어 있다. 특히, 신..

《환단고기는 어떤 책인가?》 5.7 《태백일사》 〈대진국본기〉 대중상의 후고구려 건국 1세 세조 진국열황제(668년~699년), 연호는 중광 『《조대기》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개화 27년(단기 3001년, 668년) 9월 21일 평양성이 함락될 때 진국장군 대중상이 서압록하를 지키다가 변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들으셨다. 마침내 무리를 이끌고 험한 길을 달려 개원(開原)을 지나는데 소문을 듣고 따르기를 원하는 자가 8,000명이었다. 함께 동쪽으로 돌아가 동모산에 이르러 웅거하고, 성벽을 굳게 쌓고 스스로 보전하여 나라 이름을 후고구려라 칭하고 연호을 중광(重光)이라 하셨다. 격문을 전하니 이르는 곳마다 멀고 가까운 여러 성에서 합류하는 자가 많았다.오로지 옛 영토를 회복하는 것을 자신의 소임으..

발해는 698~926년, 한반도 북부에서 중국 동북 랴오닝성 ‧ 지린성 ‧ 헤이룽장성과 러시아 연해주 지역에 걸쳐 존속하며 통일신라와 함께 남북국을 이루었던 고대국가이다. 대조영이 698년에 건국하였고, 초기 국명은 진국이다. 건국 초에는 신라와 교류하며 대아찬 직을 받았고, 이후 신라도를 설치하였다. 713년에 당나라에서 발해군왕을 받은 뒤 국명을 발해로 변경하였다. 제3대 문왕 대에 황제국 체제를 갖추었고, 9세기에는 해동성국으로 불렸다. 925년 12월에 거란의 대대적인 침공을 받고 926년 초에 멸망하였다. ■ [윤명철의 한국, 한국인 재발견] 고구려 계승한 '황제국' 발해…연해주 북부까지 영향력 뻗쳤다(27) 발해의 건국과 발전 둘레가 16㎞인 상경성 궁성 입구. 현무암으로 돼 있다..

한국 고대사의 실마리를 풀 수 있는 키워드 중 하나가 말갈이다. 그것은 바로 만주사에 대한 이해 때문이다. 한반도에 갇힌 역사가 아닌 민족의 원류가 북방으로부터 시작되었고 한반도로 귀착되기 전에 만주가 주된 역사 공간이었다. 현재 만주는 역사연구적으로 보면 비어있는 공간이다. 역사의 주체가 누구인지 불분명하기 때문이다. 중국은 동북공정으로 시간의 흐름을 무시한 채 강제로 현재 기준으로 만주를 비롯 동북아지역에 존재했던 민족의 역사를 중국역사로 탈바꿈시켰다. 그 만주지역에는 고조선, 부여, 고구려, 발해 등의 역사가 그 이전부터 오랜 기간 존재했고 그들의 역사와 문화가 지금의 중국을 만든 한족의 역사와 문화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다. 이것은 분명 역사왜곡이고 옛 역사터전을 잃고 한반도에 갇혀 그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