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력사를 찾아서
30년간 발해문명권을 연구해온 이형구 선문대 교수도 똑같은 심정이었으리라. 선양을 출발하여 8000년 유적인 차하이(査海·사해)~싱룽와(興隆窪·흥륭와) 탐사에 나서는 길.중국인들이 ‘중화 제1촌(차하이)’, ‘화하(華夏) 제1촌(싱룽와)’이라 하여 중국 시조의 마을로 떠받드는 곳이다. 하지만 이 두 곳은 발해문명. 즉 우리 민족뿐 아니라 중국·일본까지 아우르는 동아시아 문명의 젖줄이 된 발해문명의 여명을 열어젖힌 곳이 아닌가. # 8000년 전의 용(龍) 다링허 상류 낮은 구릉지대에 자리잡은 차하이 유적에서 확인된 돌무더기 용의 형상이다. 주거지와 주거지 사이에서 발견됐으며, 용 신앙의 시원으로 평가된다. 뻥뻥 뚫린 채 방치된 수풀이 무성한 발굴 흔적 너머로 인공 울타리가 보인다. 가..
《환국-가사라국》 6. 환국과 신석기문화(2) 6.2 사해(차하이)문화 - 8000년 전 사해문화는 흥륭와문화와 함께 요하문명(발해문명)의 가장 이른 시기의 문화이다. 출처; 코리안루트를 찾아서 출처; 경향신문, 〈코리안루트를 찾아서〉(4) 동이의 본향, 차하이https://www.khan.co.kr/feature_story/article/200710261501551 사해 유적은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마을이라고 해서 ‘중화 제1촌’이라고 하는데, 60기에 가까운 주거지와 옥기, 용을 상징하는 20m 길이의 대형 부석(敷石)유구, 뱀과 두꺼비 형상이 부착된 토기나 결상이식(玦狀耳飾), 토기에 용무늬로 판단되는 도소(陶塑)편이 출토되었다. 『중국 요녕성 부신시(阜新市) 부신몽고족자치..
《만주와 한반도 12,000년 전~ 2,000년 전 년대기》 4.1 홍산문화(2) 2007년 12월 14일 경향신문 기사 〈코리안 루트를 찾아서](11)뉴허량의 옥기묘〉 『“옥기 쥔 巫人은 神과 소통한 왕”1989년 가을. 뉴허량(우하량·牛河梁) 제2지점 1호 적석총을 발굴 중이던 조사단은 기이한 모습에 꿈을 꾸는 듯했다.21호묘에서 무려 20점의 옥기가 쏟아진 것이다. 이것은 훙산문화(홍산문화·紅山文化) 무덤 한 곳에서 나온 가장 많은 옥기였다. 무덤에는 옥기로 도배하다시피한 성인 남성이 누워 있었다. 입을 활짝 벌린 채 반듯이 누워 있는 인골은 짐승 얼굴 모양의 옥패(玉牌), 옥거북이, 옥베개 등으로 잔뜩 치장했다.-옥으로 도배한 인골- 뉴허량 제1지점 중심대묘에서 확인된 인골. 양손에 옥거북이..
《만주와 한반도 12,000년 전~ 2,000년 전 년대기》 3.3 흥륭와(싱룽와)문화; 8200년 전~7400년 전(BC 6200년~5400년) 『중국 내몽고자치구 오한기(敖漢旗) 보국토향(寶國吐鄕) 흥륭와촌(興隆窪村)에서 확인되었다. 흥륭와문화(興隆窪文化)는 서요하(西遼河), 대릉하(大凌河) 유역에 분포하는 신석기시대 조기에 해당하는 문화이다. 이 지역은 중국의 고고학적인 구분에 의하면 요서지구에 해당하며, 후대에 북방유목민들이 활동하던 무대이기도 하다. 1983년에 조사된 흥륭와유적의 발굴조사로 인해 동남부 지역의 선사고고학상 큰 진전을 이루게 되었다. 흥륭와문화의 연대는 기원전 6200∼5400년 사이에 해당하며, 황하유역 중원지구의 노관대(老官臺), 자산(磁山)문화와 동일한 발전단계에 있었던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