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력사를 찾아서

전 박사는 “반대로 고려 왕실이 원 제국의 황실과 통혼하여, ‘훈신(勳臣), 세족(世族) 및 나라를 봉 받은 군주(封國之君)’로 대우 받은 것은 심왕(瀋王) 왕고(王暠)와 고려왕 5명을 포함, 모두 6명이며, 그들과 혼인한 몽골 여인은 기록상 최소한 1명의 황녀, 7명의 공주(왕의 딸, 곧 황제의 손녀), 1명의 평민을 포함하여 모두 아홉 명”이라며 “이런 관계는 몽골제국과 다른 그 어떤 나라와의 관계에도 없었다”고 말했다. ■ 칭기스 칸 가계의 비밀 코드를 찾아서(4)- 전원철 박사 인터뷰칭기스 칸의 ‘세계정복’은 ‘신의 징벌 전(戰) 칭기스 칸은 ‘세계 정복자’라기 보다 ‘세계 징벌자’ -결국 이렇게 1300년 동안 장막 뒤에 가려져 있던 칭기스 칸 선조의 비밀을 푸셨다는 건데, 지하에 ..

통일 신라는 9세기 후반에 이르러 권력쟁탈전과 경제실패, 지방호족들의 반란 등으로 이미 붕괴 중이었다. 마침내 900년에 경상도 산골 출신의 견훤이 후백제를 선포했고, 901년에는 신라의 왕족이며, 미륵불이라고 자처한 궁예가 후고구려를 세웠다. 이렇게 후삼국 시대가 도래했고, 통일전쟁이 전 국토를 황폐하게 했다. ■ 후삼국 통일전쟁 뛰어든 후백제 [윤명철의 한국, 한국인 재발견](37) 후백제의 발전과 해양활동 능력후백제 상선이 표류했던 대마도 북쪽 해안. 사진=윤명철 동국대 명예교수·우즈베키스탄 국립 사마르칸트대 교수 남북이 분단되고 전쟁을 벌였다. 아직도 적대적인 관계를 청산하지 못했다. 통일은 실제로 필요한 것일까. 우리는 역사적으로 통일을 지향해 왔을까? 고대를 돌아보면 신라가 주도한 소위..

통일 신라는 9세기 후반에 이르러 권력쟁탈전과 경제 실패, 지방 호족들의 반란 등으로 이미 붕괴 중이었다. 마침내 900년에 경상도 산골 출신인 견훤이 후백제를 선포했고, 901년에는 신라의 왕족이며 미륵불이라고 자처한 궁예가 후고구려를 세웠다. 이렇게 후삼국 시대가 도래했고, 통일전쟁이 전 국토를 황폐하게 했다. 전쟁은 신라의 삼국통일 이전 국가 구조와 지역 갈등을 확대 재생산했다는 퇴행적인 측면이 있었다. 그러나 왕족과 수도 중심의 질서를 벗어나 호족과 지방의 성장, 신불교의 등장이라는 혁신적이고 발전적인 측면도 있다. ■ [윤명철의 한국, 한국인 이야기] 해상권 잡고 후삼국 통일전쟁 승리한 왕건, 끝까지 저항한 적 품은 포용의 리더십 빛나역사 산책 (72) 후삼국을 통일한 해양세력 왕건입력 2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