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2015.02.16 (19:11) 수정 2015.02.17 (04:12)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은 영국 케임브리지대학 도서관에서 고려사 필사본 139권 완질을 발견했다고 밝혔습니다.

이 필사본들은 괘선지에 해서체로 고려사 전체를 또박또박 필사한 것이며, 19세기 중국 학자들이 조선 금석문을 연구하기 위해 사용한 흔적이 남아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특히 대부분의 필사본이 발췌본 형식으로 전해지는 것과 달리 이 필사본은 336만 9천여 자 전체를 모두 담은 것이 특징입니다.

고려사는 조선 세종의 명을 받아 김종서·정인지 등이 1451년 139권으로 완성한 역사서입니다.

 

 

중앙일보 입력 2012.11.07 00:32 업데이트 2012.11.07 00:54

식민사관에 맞선 정인보 대표작 한글로 본다 | 중앙일보 (joongang.co.kr)

 
위당 정인보

 

20세기 전반 한국학의 초석을 놓은 위당(爲堂) 정인보(1893~?) 선생의 대표작 『조선사연구』(상권, 우리역사문화재단) 한글 완역본이 처음으로 출간됐다. 1935년 1월 1일부터 36년 8월 29일까지 ‘오천년간 조선의 얼’이라는 제목으로 동아일보에 연재된 지 75년 만의 일이다.

 해방 직후인 46년 서울신문사에서 국한문혼용체 원문을 영인한 단행본이 나왔고, 83년 연세대 출판부에서 펴낸 『담원 정인보 전집』(전6권)에도 포함됐으나 한글 완역은 이번이 처음이다.

 한글본의 상권만 848쪽 방대한 분량이다. 중국문학을 전공한 번역자 문성재 박사가 조사한 각주 800여 개가 포함됐다. 하권도 약 900쪽 분량인데 내년 초 나올 예정이다.

 문 박사는 “번역에 3년이 걸렸다. 고대 한자어는 물론 만주어와 몽골어에다 일본식 한자 표기까지 겹쳐 있어 번역이 쉽지 않았다”며 “언어학·지리학·문헌학·금석학·사상사 등을 망라하며 우리 역사의 시야를 동북아로 넓힌 『조선사연구』는 70여 년 전에도 그랬지만 오늘날에도 참신한 시도로 보인다”고 말했다.

 일제는 1915년 3월 조선총독부에서 펴낸 『조선고적도보(朝鮮古蹟圖譜)』를 통해 식민사관을 선전하기 시작했다. 낙랑군 위치를 평양으로 단정하면서 한민족의 역사를 타율적이고 정체된 것으로 보는 식이다.

 위당의 『조선사연구』는 일제의 역사 왜곡에 맞서며 조선의 자존심을 세우는 작업이었다.

낙랑군을 포함한 한사군(漢四郡) 소재와 고조선 강역을 동북아 요동(遼東) 지역으로 파악했다. 고대사 체계를 ‘고조선-부여-고구려’의 구도로 이해하고, 한국학 연구의 기초를 실학(實學)에서 찾은 이도 위당이었다.

 단군을 특정인의 이름이 아니라 최고 통치자에 대한 존호로 봤고, 삼한(三韓)이란 용어도 지명이 아니라 ‘한(汗)’이나 ‘간(干)’처럼 ‘크다’ 또는 ‘임금’의 뜻을 가진 존호로 해석한 점은 주목할 만하다. ‘조선’이란 용어도 중국 역사서에 나오는 ‘숙신(肅愼)’·‘주신(珠申)’ 등과 마찬가지로 만주어 발음을 옮긴 것이라고 했다.

 당초 위당은 단군조선부터 이씨조선까지 5000년 한민족 역사를 통괄할 계획이었으나 삼국시대에서 그쳤다.

일제가 ‘일장기 말소사건’을 빌미로 1936년 8월 29일 동아일보를 강제 정간시켰기 때문이다.

 

한국의 금서[편집]

조선 시대[편집]

세조는 8도관찰사에게 다음과 같은 서적들을 수거할 것을 명령하였다.《고조선비사(古朝鮮秘詞)》, 《대변설(大辨設)》, 《조대기(朝代記)》, 《주남일사기(周南逸士記)》, 《지공기(誌公記)》, 《표훈삼성밀기(表訓三聖密記)》, 《안함 노원 동중 삼성기(安含 老元 董仲 三聖記) 또는 《안함로 원동중 삼성기》, 《도증기(道證記)》, 《지리성모하사량훈(智異聖母河沙良訓)》, 《문태산 왕거인 설업 등 삼인기록(文泰山 王居人 薛業 等 三人記錄)》, 《수찬기소(修撰企所) 1백여 권(卷)》, 《동천록(動天錄)》, 《마슬록(磨蝨錄)》, 《통천록(通天錄)》, 《호중록(壺中錄)》, 《지화록(地華錄)》, 《도선 한도참기(道詵漢都讖記)》 등의 문서

수거대상《주남일사기(周南逸士記)》, 《지공기(誌公記)》, 《표훈천사(表訓天祠)》, 《삼성밀기(三聖密記)》, 《도증기(道證記)》, 《지리성모하사량훈(智異聖母河沙良訓)》, 《문태(文泰) 옥거인(玉居仁) 설업(薛業) 삼인기(三人記) 1백여권》, 《호중록(壺中錄)》, 《지화록(地華錄)》, 《명경수》 등의 천문·풍수·음양에 관련된 서적들수거 방침집에 보관하고 있는 자들은 서울에서는 10월 말까지 승정원에 바치고 지방의 가까운 도에서는 11월 말까지, 먼 도에서는 12월 말까지 기한을 정하여 살고 있는 고을에 바치게 하였다.진상조건책을 바친 사람에게는 … 두 품계를 올려주며 상을 받겠다고 지원하는 사람과 관청노비, 개인 노비에게는 무명 50필을 상으로 준다. 감추어 두고 바치지 않는 사람에 대해서는 다른 사람이 신고하게 하고 신고한 사람은 위 사항에 따라 표창할 것이며 감춘 사람은 참형에 처할 것이다.

  • 성종 즉위와 함께 내려진 조치 (《성종실록(成宗實錄)》 1469년 12월 戊午日)

《주남일사기》 등 9종과 《태일금경식(太一金鏡式)》, 《도선참기(道詵懺記)》등 2종을 포함하여 11종의 서적을 이전과 같이 수거할 것을 8도관찰사에게 지시하였다. 다만 이들 서적 외에 천문·풍수·음양 등으로 총칭된 서적의 수거는 중지하고 수거된 것도 돌려주도록 지시하였다.

 

 

일본 왕실서고에서 탈출한 고구리사초략 (1부):홍천뉴스투데이 (hongcheonnewstoday.kr)

호태왕 비문의 비밀을 열 수 있는 열쇄

성헌식 컬럼니스트  | 기사입력 2018/10/02 [11:56]
 
현존하는 우리나라 역사기록 중 가장 시기적으로 앞서는 기록이 바로 1,600년 전 고구리인에 의해 세워진 광개토호태왕 비문이다. 김부식이 쓴 삼국사기보다 730여년 앞서는데다가 고구리인이 직접 적었으며, 돌에 새겨져 있어 변조의 가능성이 적으므로 우리 민족의 고대사 연구에 매우 중요한 자료임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그만한 대우를 받지 못해왔었다.
 
그 이유는 1876~1880년경 발견된 비문의 탁본이 일본육군참모부 소속 첩보장교인 사가와 가게노부(酒匂景信)에 의해 본국으로 넘겨져 1889년에 일본에 의해 처음으로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는데, 여러 탁본이 나돈데다가 비에 새겨진 글자 총 1,802자 중 260여자를 읽을 수도 없고 또 그나마 판독이 가능한 글자도 희미하다보니 학자들마다 그 판독이 서로 달랐기 때문이다.   
 

그동안 호태왕 비문연구에 다음과 같은 문제점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주인공에 대한 호칭과 비의 성격조차 제대로 정립되지 못하고 있다.
비문에 새겨진 정식칭호는 광개토경 평안호태왕(廣開土境平安好太王, 영토를 넓게 개척한 평안호태왕)’임에도 우리는 광개토왕, 광개토대왕 또는 광개토태왕이라고 부르고 있다. 비문에 있는 연호를 따서 영락대제라고 하든가 아니면 비문처럼 평안호태왕 또는 줄여서 그냥 호태왕이라고 불러야 옳을 것이다.
 
 일본의 비문 조작이나 왜곡에 대한 연구가 아직도 정리되지 않고 있다.
비문을 가장 먼저 입수한 일본제국주의자들은 학자들을 동원해 연구를 거듭한 끝에 조선침략의 정당성을 부여하는 허구의 임나일본부설을 조작해냈고, 또 호태왕비를 그 이론적 근거로 활용하기 위해 비문의 내용을 삭제 또는 변조하게 했는데 그에 대한 연구가 아직도 정리가 잘 되지 않고 있다.



 현재 강단사학계에서 호태왕비문의 원문을 찾는 연구가 전무하다시피 하다.
현재 한국의 강단사학계는 일제식민사학을 추종하고 있어 올바른 우리역사를 찾을 생각이 없기에 호태왕비문의 원문을 찾는 연구나 노력을 아예 하지 않고 있다. 오로지 일본 사학계의 허황된 주장과 이론만을 앵무새처럼 반복하고 있을 뿐이다.


 당시의 고구리식 서글 어법으로 해석한 연구가 거의 없다.
비문에는 중간 중간 글자의 뜻으로 해석하지 못하는 고구려 서글 어법(이두식 표현)이 들어가 있는데, 이에 대한 연구는 지금껏 전혀 하지 못했다.
 
호태왕비문이 역사기록으로서의 가치를 더 높이려면  먼저 변조되어 사라진 비문의 원문을 찾아야 하며  그 다음에는 바른 해석을 해내야 한다. 그러한 필요성이 있기에 2014 5월에 각 분야별로 전문지식을 가진 뜻있는 재야학자들이 모여 호태왕비문연구회를 결성해 매주 월요일 2시간가량 연구를 시작한 지 어느덧 2년 반이 지나 금년 중으로 최종해석이 완성될 상태에까지 와있다.
 
연구방법은 지금까지 발표된 16명 학자들의 호태왕비문에 대한 서적과 자료에 있는 해석문을 서로 비교해 원문을 찾는데만 거의 1년 반 이상이 걸렸으며, 이후 매주 연구회의를 거쳐 1차 해석을 마쳤고 현재 최종 해석을 진행 중에 있다. 그 과정에서 호태왕비문의 정확한 해석에 가장 도움을 준 사료가 바로 남당 박창화 선생이 일본 궁내청 서고에서 필사해온 고구리사초략이다.
 
사학계에서 정사서로 인정하는 삼국사기에는 호태왕비문과 일치하는 내용이 거의 없는데 반해, 고구리사초략에는 비문의 거의 모든 내용이 상세하게 또는 간략하게라도 기술되어 있어 깨지고 없어지고 삭제된 글자를 상당부분 원형대로 복원하는데 큰 도움을 주었다. 만약 고구리사초략이 없었더라면, 다시 한 번 호태왕비문 해석은 오리무중으로 빠질 뻔 했을 것이다.
 
참고로 이러한 고구리사초략이 집필된 시기는 고구리 시조 추모대제의 붕어에 대한 찬자의 평에 다음과 같은 문구가 있어 고려 말로 추정된다. 동명은 세상에 다시는 없을 뛰어난 군주였다. 나이 40 이전에 동쪽 땅을 석권해 700년이나 이어가는 나라의 기초를 만들었다. 가히 성인이라 할 만하다. 후세에 나타난 아골타나 홀필렬(원 세조)도 역시 부끄럽게도 미치지 못할 곳에 있었다.다만, 미처 이루지 못한 일이 남아있었다. 초기에 후비 관련제도를 완비하지 못해 이것이 후에 폐단(일찍 죽음)이 되었고, 나라를 창업하는 것이 급했기에 자신의 수명을 다하지 못한 것이 애석했다.” 

 
남당 박창화의 <고구리사초략>
 
남당 박창화(朴昌和, 1889~1962) 선생은 충북 청원군 강외면에서 출생해 1900년 초 한성사범학교를 졸업하고 그 학교에서 교관을 지냈으며, 그 후 충북 영동소학교와 배재고보에서 교사로 근무했다고 한다. 그러던 중 나라가 어려워지자 만주로 가서 독립운동을 하다가 일본경찰에게 붙잡히게 되었는데, 취조 과정에서 그가 한학에 아주 능통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일경은 이러한 그를 정부에 추천해 일본 궁내청 서능부(書陵部:왕실도서관) 서고에서 조선전고(朝鮮典故)를 조사하는 사무를 맡아보도록 했는데, 1933년부터 해방 직전까지 12년간 촉탁직으로 근무하면서 그곳에서 우리 상고사 관련 사서를 분류하고 내용을 파악하는 일을 직접 담당하게 되었다고 한다.
 
박창화 선생은 일본왕실서고에 소장되어 있는 사료의 대부분이 조선총독부가 수탈해간 단군 관련 우리 고대사서였다고 하면서, 조선에서 수탈해간 사서들이 모두 거기에 있었다고 할 만큼 엄청난 분량이었다고 증언했다. 남당은 그 사서들을 직접 분류하고 내용을 검토하다가 고구리사초략, <화랑세기>, <개소문전> 등 많은 사료를 필사해 집에서 보관해오다 귀국 후 조국의 국사편찬위원회에 기증했던 것이다.
 
 
박창화 선생은 자전거를 타다가 둑에서 넘어져 크게 다쳐 요양차 잠시 고향에 돌아왔다가 원폭이 터져 일왕이 항복하는 바람에 일본으로 가지 않고 고향에 계속 머물게 되었다고 한다. 만약 일본이 5년만 늦게 항복했더라면 아마도 남당에 의해 더 많은 우리 사서들이 <고구리사초략>처럼 어두컴컴한 일본 궁내청서고에서 빠져나와 밝은 햇빛을 보았을 것이다.
 
 

 

[일본서기]

 

입력 2004. 11. 1. 04:13수정 2004. 11. 1. 04:13

"일본서기"에 넘쳐나는 한국관련 기록들 (daum.net)

김현구 교수팀, 한반도 기록 쟁점별 정리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해방 공간에 월북한 북한고대사학계의 거물 김석형(金錫亨.1915-1996)은 1960년대 그 유명한 일본열도 내 삼한분국설(三韓分國說)을 제창하면서 "일본서기"(日本書紀)라는 문헌을 이렇게 간평한 바 있다.

""일본서기"에서 한국 관계 기사를 빼버리면 한 축이 무너져 내린다." 서기 720년에 편찬된 현존 일본 최고(最古)의 정사(正史)인 "일본서기"에는 그의 말처럼 한반도 관련 기사가 넘쳐난다. 특히 가야와 관련된 기록은 국내에 남아있는 어느 문헌보다 많은 종적을 남기고 있다.

그러나 "일본서기"의 최대 난점으로는 첫째, 5세기 중반 이전 기록에 대해서는그것의 정확성은 차치하고라도, 연대를 종잡을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둘째,여기에 수록된 한반도 관계 기사 거의 전부가 고대 일본 천황가의 한반도 각 왕국에대한 직・간접 지배라는 관점으로 일관하고 있다는 점이 꼽힌다.

 

고려대 역사교육과 김현구(金鉉球) 교수팀이 최근 전 3권으로 완성한 "일본서기한국관계기사 연구"(일지사)는 바로 여기에 착목해 한국학술재단 지원을 받아 2000년 이후 2002년까지 수행한 "일본서기"에 대한 공동연구 성과물이다.

여기에는 고고학자인 우재병(禹在柄) 충남대 교수와 백제사 전공 박현숙(朴賢淑)고려대 교수, 이재석(李在碩) 고려대 일본학연구소 연구조교수가 참여했다.

현존하는 "일본서기"는 전 30권. 연월일 별로 그 때 일어난 일을 기록하는 소위편년체(編年體) 기술 방식을 취하고 있다.

즉, 일본 왕실 조상으로 간주된 신들의 세계를 노래한 신대(神代)를 첫머리에앞세우고는 초대천황으로 간주된 진무(紳武)를 시작으로 40대 천황이라는 지토(持通)가 재위 11년(696)에 몬무(文武)에게 양위하는 것으로 마무리를 하고 있다.

이에 공동 연구는 "일본서기" 기술 순서를 따라, 한반도 관련 기사 원문(한문)을 빠짐없이 뽑아낸 다음, 그것을 한글로 옮기고, 이것과 관련되는 학계 쟁점들을정리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쟁점 부문에서는 이번 연구진의 의견도 가미됐다.

예컨대, 고토쿠(孝德) 천황 2년(646) 조에 보이는 김춘추(金春秋)의 일본 사신행에 대해서는 이 기록을 둘러싼 진위 문제를 쟁점으로 정리하면서, 당시 신라정세로 볼 때 김춘추가 도일(渡日)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연구진은 판단하고 있다.

이번 성과물은 아직까지 제대로 된 "일본서기" 역주본 하나 생산하지 못하고 있는 한국 고대사학계에서 사실상 처음으로 거기에 보이는 한반도 관련 거의 모든 기록을 뽑아내고 그것들을 쟁점별로 정리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할 것이다. 각권 350쪽 안팎. 권당 1만8천원. taeshi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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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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