력사를 찾아서
《만주와 한반도 후기 구석기시대 년대기》 2. 기후와 지형 본문
《만주와 한반도 후기 구석기시대 년대기》
2. 기후와 지형
2. 1 기후
후기 구석기시대(5만 년 전~1만 년 전)는 빙하기였다. 빙하기는 4만 년 또는 10만 년 주기로 지속되다 1만 년 또는 2만 년 주기로 간빙기가 있었고 마지막 빙하기는 약 11,500년 전에 끝났다고 한다. 25,000년 전부터 15,000년 전 사이가 가장 추워서 이때를 빙하기최고점(last glacial maximum, LGM)이라고 한다. LGM때 세계의 많은 지역은 춥고 건조하며 잦은 폭풍과 먼지가 많은 대기 상태였다. 먼지 수준은 현재보다 20배에서 25배까지 높았다. 후기 구석기시대 사람들은 빙하기의 추위를 특히 빙하기최고점 때 살던 사람들은 가장 혹독한 추위를 견뎌낸 것이다.
조천호 국립기상과학원장은 〈문명은 지성의 산물? 간빙기 맞아 덕보고 있는 것〉라는 글에서 지난 10만년의 기후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문명은 지성의 산물? 간빙기 맞아 덕보고 있는 것
중앙선데이 입력 2017.04.16 01:29
[기후변화 리포트] 지구 망치는 인류
그린란드 누크 부근의 피요르드. 기후변화로 그린란드의 빙하 녹는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중앙포토]
우리와 해부학적으로 같은 호모사피엔스는 약 20만 년 전에 지구상에 등장했다. 그런데 인류는 이보다 훨씬 짧은 약 1만 년 전에야 신석기 농업을 시작했고, 7000년 전에야 문명을 탄생시켰다. 지난 1만 년 동안을 지질학적으로 홀로세(Holocene)라 한다. 인류는 홀로세 전에 구석기 삶을 영위했다. 인류가 오랫동안 문명을 탄생시키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기온은 1만 년 전까지 엄청나게 요동친 후, 매우 평온한 상태가 되었다. [Arctic Climate Impact Assessment]
지난 10만 년 동안 북반구 고위도의 기온 변화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다. 이 기간 대부분을 차지하는 빙하기에는 중고위도 지역까지 빙하 지역이 확장됐고, 해양으로부터 수증기 증발이 적어 사막이 넓어졌다. 지금보다도 열대와 고위도 지역 간의 기온 차가 커서 바람이 몹시 강했다. 우리 조상들은 오늘날의 이상기후보다 열 배는 더 심한 변덕스럽고 혹독한 기후에 맞서야 했다. 태풍이 매년 한 번 한반도를 지나간다면, 엄청난 복구 노력 후 피해가 있긴 해도 추수가 가능하다. 만약 태풍이 매년 열 번 휩쓸고 지나가면 농업을 포기해야 할 것이다. 이처럼 빙하기에는 농업을 할 수 없는 조건이었으므로 사냥꾼과 채집자로서 삶을 영위할 수밖에 없었다.
7만 3500년 전에 인도네시아 토바 화산이 폭발했다. 최근 가장 강했던 1991년 필리핀 피나투보 화산 폭발보다 2800배 더 강력했다고 한다. 피나투보 화산 폭발로 성층권으로 분출된 황산 에어로졸에 의해 햇빛이 차단돼 다음 해에 전 지구적으로 기온이 0.5℃ 하강했다. 컴퓨터 시뮬레이션한 결과로 보면, 토바 화산 폭발은 전 지구 평균 기온을 무려 12℃나 떨어뜨렸다. 그 당시 인류는 심각한 위기에 몰려 멸종에 가깝게 갔다는 사실이 최근 DNA 분석으로 확인되고 있다. 당시 적은 수의 사람들만이 다른 지역에 비해 안정되고 삶의 조건이 나은 아프리카 사바나에 살아남았다.
인류는 7만 년 전 아프리카를 벗어나 새로운 삶을 찾아 나섰다. 이 인류 여정의 시작은 공교롭게도 해양의 물이 거대한 얼음으로 바뀐 빙하시대가 열어준 길을 따라 진행됐다. 우리 조상은 아라비아 반도를 거쳐 주로 아시아 해안을 따라가는 남쪽 경로를 택했다. 5만 년 전에 아시아와 호주에 도달했다. 빙하기 말기인 2만 년 전, 빙하 규모가 절정에 이르렀다. 그 당시 해수면은 오늘날보다 120m나 아래에 있어 아시아와 북미 대륙이 붙어 있었다. 이 연결로를 따라 1만 5000년 전 북미 대륙에 몽골족이 처음 이주했다. 인류는 이러한 과정들을 통해 극한의 기후조건에 내성을 가지게 되어 그 어떤 기후에서도 살아갈 수 있게 됐다.
2만 년 전부터는 기후가 따뜻해지면서 빙하가 빠른 속도로 후퇴했다. 마침내 1만 년 전에 빙하기를 뒤로하고, 현재의 따뜻한 간빙기인 홀로세에 진입하였다. 이때도 간혹 참혹한 홍수와 문명을 무너뜨린 가뭄과 같은 사건들이 있긴 했지만, 그전보다 기후 변동성이 극히 작은 안정된 시기였다. 이 홀로세에 진입하자 인류는 계절에 따른 식량 생산 과정을 예측할 수 있어 작물을 경작했으며 가축을 키우고 비로소 정착했다. 구석기에서 신석기로 전환이 일어난 것이다.
홀로세 전에도 인류는 오랫동안 생존해왔지만, 매우 적은 인구만이 극단적으로 어려운 환경에서 살아남았다. 홀로세의 기후조건은 인류에게 이상적인 상태였다. 농경을 시작한 결과 잉여와 축적이 생겨났다. 수렵과 채집 생활할 때와는 다른 인구의 조밀화가 일어나면서 도시와 국가가 생겨날 여지를 만들어 주었다. 이런 과정에서 문자도 생겨나고 소위 ‘문명’이 탄생했다. 1만 년 전부터 기후가 안정됐지만, 문명의 탄생까지는 약 3000년을 더 기다려야 했다. 왜 그래야 했을까?
메소포타미아·이집트·인더스·황하 4대 고대 문명의 공통점은 큰 강 하구 주변에 발달한 비옥한 퇴적층에서 탄생했다는 점이다. 문명이 발생하려면 다른 일에 종사하는 많은 사람을 먹여 살릴 정도로 식량을 생산하는 능력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4대 문명이 번영을 누리기 시작한 시대가 모두 6000~7000년 전인데, 놀랍게도 해수면 상승이 일단락된 약 7000년 전과 시점이 일치한다.
2만 년 전부터 빙하기에서 간빙기로 변화가 일어났고, 이 기간은 1만 년 동안 지속하였다. 이때 해수면 고도는 대륙 빙하가 녹아 빠르게 상승했다. 해수면 상승 속도는 가장 빠를 때 100년에 250㎝에 달할 정도였다. 지난 100년 동안 지구온난화로 인한 해수면 상승은 20㎝ 수준이었다. 이와는 한 자릿수 이상 차이가 나는 엄청난 규모의 변동이었다. 1만 년 전부터는 기온이 안정했지만, 그 후 3000년 동안에도 해수면 고도는 100년에 약 1m씩 상승했다. 해양은 대기보다 열용량이 커서 외부 변화에 대한 반응이 느리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비로소 7000년 전에 대륙의 가장자리가 완전히 물에 잠겨, 세계지도가 오늘날 우리가 보는 것과 같은 모습을 띠게 되었다.
해수면이 높아지는 상황에서는 강 하구 대단위 농업이 불가능하다. 아무리 훌륭한 도시를 만들어도 시간이 흐르면 내륙 쪽으로 이전해야 했을 것이다. 도시를 옮기려면 엄청난 노동력도 필요하고 그만큼 문명을 유지하고 발전시킬 에너지를 헛되이 소비해야 한다. 이런 이유로 4대 문명은 해수면 고도가 안정화된 이후에야 탄생할 수 있었다.
해수면 상승 안정된 후 4대 문명 생겨
홀로세는 인류 문명을 탄생시키고 발전시키기에 가장 바람직한 조건을 제공했다. 홀로세 동안에 현대 사회와 경제 발전의 기반이 되는 유용한 생태계가 모두 정착되고 확장됐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홀로세의 시작은 믿을 수 있는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쇼핑몰을 설립하는 것과 같다. 우리는 산림·경작지·산호초·목초지·물고기·포유류·박테리아·빙하와 공기의 질, 기온과 담수 가용성을 믿을 수 있는 쇼핑몰인 홀로세에서 공급받고 있다. 우리가 얻는 물, 우리가 누리는 기후, 우리가 먹는 식량, 우리가 의존하는 지구시스템과 생물 다양성은 홀로세의 환경 범위 안에서 이루어진다. 만일 빙하기와 같은 난폭한 기후가 오늘날에도 나타나 홀로세를 떠난다면, 75억 인구를 먹여 살릴 수 없고 다양한 문명을 지속시킬 수 없다.
홀로세 동안에도 자연적인 기후변동이 있었지만, 수백 년의 시간 규모에서 기온이 단지 최대 약 1℃ 정도만 흔들렸다. 인류는 이러한 변화에도 힘겹게 적응해야 했다. 지구 평균 기온이 약 1℃ 정도 낮아진 13~19세기의 소빙하기 동안에도 전 세계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곤궁한 처지에 놓였었다. 인류는 수억 년 동안 지표 아래 묻혀 있던 화석연료를 태워 오늘날의 번영을 이뤘다. 이 번영은 과거 7000년에 걸친 문명을 지탱해 왔던 안정한 기후를 붕괴시킬 정도로 위협이 되고 있다. 우리는 지난 100년 만에 0.85℃의 기온 상승을 일으켰고, 최근 들어 해수면 고도를 100년에 1m 이상의 속도로 빠르게 상승시키고 있다. 2℃ 더 따뜻했던 12만 년 전 간빙기 때, 해수면 고도가 지금보다 4~8m 더 높았다. 온실가스를 줄이지 않으면 맞이하게 될 4℃ 상승에서, 어떻게 인류를 먹여 살리며, 해안 대도시를 방어해야 하는지를 알지 못한다.
우리는 인류 문명이 인간 지성의 필연적 결과라고 생각하는 오만을 저지르고 있지만, 지구 역사를 보면 이 역시 좋은 기후 조건을 만난 덕에 일어난 우연한 사건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인류는 자연적 기후변화의 적응을 넘어 오히려 기후변화를 일으키는 주체가 되었다. 우리 스스로 안정된 기후를 변덕스럽고 불확실한 상태로 내몰아 위험에 빠지고 있다. 인류에 의한 지구 위기가 없다면 다가올 몇 천 년 동안 현재처럼 좋은 조건에서 생존할 수 있다. 이것이 홀로세를 지속할 수 있게 지켜내야 할 절박하고 충분한 이유이다.
[중앙포토]
극지방에 눈이 내리면 그 무게에 눌려 먼저 내린 눈은 얼음으로 변한다. 수만 년 동안 눈이 내리고 얼기를 반복하면서 빙하가 만들어진다. 이걸 시추하면 기둥 모양의 얼음을 얻을 수 있는데 이를 빙하 코어라 한다. 빙하 코어 안 공기 방울에는 그 당시의 대기 성분을 담고 있다. 이를 분석해 남극과 그린란드 빙하에서 각각 지난 80만 년과 10만 년 동안 기온·온실가스·먼지·화산재·꽃가루의 변화를 알 수 있다.
산소 원자 질량수는 대부분 16이지만 18인 경우도 있다. 덴마크의 과학자 윌리 단스가드는 빙하에서 무거운 산소(18-산소)와 가벼운 산소(16-산소)의 비율이 기온에 따라 체계적으로 변한다는 것을 밝혔다. 기온이 낮으면 빙하에는 18-산소/16-산소 비율이 낮아지지만, 기온이 높으면 18-산소/16-산소 비율이 높아진다. 즉, 산소의 두 질량비로 과거 기온을 산출할 수 있다. 조천호 국립기상과학원장』
(출처; 중앙선데이, http://news.joins.com/article/21478209)
2. 2 지형
21,000년 전의 해수면은 오늘날보다 약 125미터 낮았다. 빙하기에 육지의 30%는 빙하로 뒤덮여 있었다. LGM때 거대한 빙하는 북아메리카, 북유럽, 아시아의 많은 부분을 덮고 있었다. 빙하는 가뭄, 사막화, 해수면 하강 등 지구기후에 심각한 영향을 끼쳤다. 빙하는 26,500년까지 최대로 덮여 있었다. 빙하가 녹기 시작한 것은 북반구에서 거의 20.000년 전에, 남반구에서 거의 14,500년 전에 갑작스런 해수면 상승과 함께 시작되었다. 현재 지구는 홀로세라는 간빙기에 있다. 오늘날 10% 정도만 빙하로 덮여 있다.
Maximum glaciation of the northern hemisphere during the Quaternary climatic cycles
(출처; 위키미디어,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Iceage_north-glacial_hg.png)
2. 2. 1 만주와 한반도의 지형
후기 구석기시대에 유럽과 아메리카의 북쪽은 거의 빙하에 덮여 있었고, 중앙아시아부터 바이칼호 지역까지 스텝-툰트라 기후 지역이었으며, 약 1만 년 전까지 서해(황해)는 바다가 아니었다.
『빙하기동안 가장 추웠던 시기인 ‘빙하기최고점(last glacial maximum, LGM)’은 지금부터 2만 3,000년~1만 6,500년 전 사이의 기간이다. 빙하기의 기후는 지역에 따라 지금과 많이 달랐다. 유럽의 북쪽은 거의 빙하에 덮여 있었고, 시베리아와 북미 대륙을 나누고 있는 베링 해는 뭍으로 드러나 있었다. 이를 베링기아(Beringea)라고 부른다.
지금의 인도네시아는 수천 개의 섬으로 나뉘어 있지만, 당시는 순다 대륙이라고 부르는 커다란 땅덩어리였다. 지중해 지역은 이때 사막이나 마찬가지였고, 동쪽의 중앙아시아는 생각보다 덜 추웠고, 여기서 바이칼 호 지역까지는 스텝-툰드라 기후를 나타내고 있었다. 이른바 ‘메머드 스텝’ 지역으로 매머드, 사슴, 물고기 등 사람들이 사냥해서 먹을 것이 많았고, 소나무, 자작나무, 전나무 등과 각종 관목들 같은 땔감들도 많았다. 인류가 추위를 견디며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이었다.
바이칼 호 부근의 말타(Malta)에는 2만 3,000년 전 사람들이 살았던 유적이 있다. 동아시아는 유럽과 달리 그렇게 춥지 않았으나, 한반도 부근은 고지대에 얼음이 덮여 있었고, 온대성 기후는 중국 남부, 태국 근방까지 내려가 있었다. 지대가 낮은 지금의 서해안 지역의 강과 바닷가에는 먹을 것이 풍부하여 많은 사람들이 살았을 것이다.』(이홍규, 한국인의 기원, 145쪽~146쪽)
『[이진아의 지구 위 인류사] 유라시아의 동쪽, 한반도가 가장 앞선 지역이었던 이유
이진아 환경․생명 저술가 (sisa@sisajournal.com) 승인 2017.10.12 10:20
역사에서 잘 납득이 가지 않는 부분을 풀어주는 마법의 열쇠, 기후변화와 생태학적 조건들을 통합해서 다시 보자. 마지막 빙하기가 끝나고 난 후 찾아온 온난기 초기에는 한반도 서해안을 따라 발해만까지가 지구상에서 사람이 살기에 가장 좋은 지역이었음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왼쪽)1만2000년 동아시아 지형. © 사진=출처: Proudman Ocenanographic Laboratories (오른쪽)동아시아 지형 및 한반도 인근 해류 지도. © 사진=출처: 해양조사원, 재구성: 이진아
지금으로부터 1만2000년 전, 빙하기가 끝나가던 시점에서 이미 중국 대륙과 한반도를 연결하고 있던 땅은 수면 위에 잠기고 서해안의 너른 갯벌이 형성되고 있었다. 이 갯벌은 온난화 및 서해안의 침강 경향으로 인해 그때보다 갯벌의 폭이 훨씬 좁아진 지금까지도,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뛰어난 조건을 갖춘 생태계다.
농업이 주된 생산방식이 되기 이전의 수렵채취 사회에서는 생산성 높은 갯벌의 존재가 인간 정주지 조건의 제1순위였다. 조개를 쉽게 캘 수 있다는 것은 인간의 식단에서 가장 귀한 것으로 간주돼 왔던 동물성 단백질을 쉽게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수렵채취 시대의 인간집단은 우선적으로 그런 곳에서 정주하려 했고, 거기 오래 살면서 먹고 남은 조개껍질을 버려 ‘패총’을 형성하기도 했다. 세계적으로 패총의 규모가 크고 가장 많이 발견되는 곳은 우리나라 서해안이다. 이 사실만으로도 서해안은 인간 정주에 가장 알맞은 조건을 갖추고 있는 곳이라는 방증이 될 수 있다.
빙하기 다음에 온 온난기 동안 점점 더 넓어져 온 서해를 사이에 두고 서쪽에는 중국 동해안이, 동쪽에는 한반도 서해안이 나란히 펼쳐져 북쪽 발해만에서 만난다. 1만2천 년 전의 동아시아를 보여주는 위 왼쪽 그림으로 보자면 중국 쪽이 훨씬 더 넓은 갯벌을 형성했을 것 같고, 따라서 훨씬 더 많은 인간들이 일찍부터 모여 살았을 것 같다. 하지만 왼쪽의 지형 및 해류 지도와 함께 보면 사실은 정반대의 상황, 즉 중국 쪽보다 한반도 쪽이 훨씬 더 사람이 살기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차이는 일단 바닷물의 온도 차이에서 온다. 한반도 서해안 쪽으로는 난류, 즉 따뜻한 바닷물이 흐른다. 필리핀 동남해역에서 일본열도 쪽으로 흐르는 거대 난류 쿠로시오에서 갈라져나온 황해난류가 남쪽에서 북쪽으로 흐르는데, 한반도 서안에서는 역시 난류인 서한연안류가 되어 흐른다. 같은 바다인 것처럼 보이지만 중국 동안 쪽에는 발해만에서 남쪽 방향으로 한류인 연안류가 흐른다. 따라서 똑 같이 서해안을 끼고 있어도 한반도 서해안에는 난류의 영향으로 해양생물과 미생물이 풍부하게 사는 갯벌이 형성되며, 중국 동해안은 상대적으로 생산성이 떨어지는 것이다.
난류와 함께 지리 및 지형적 조건으로 인한 기후의 차이도 있다. 같은 위도이면서도 중국 동해안 쪽보다 한국 서해안 쪽이 온난하며, 서쪽으로 바다가 있기 때문에 습기가 충분히 공급된다. 이에 비해 중국은 서쪽으로는 차고 건조한 육지가, 동쪽으로는 찬 해류가 흐르는 바다가 있어서, 한반도 쪽에 비해 한랭건조한 기후를 형성하게 된다.
다음으로는 산지생태계와 해양생태계의 균형 문제다. 오른쪽 지형도에서 볼 수 있듯이 중국은 해안에서 아주 먼 곳에 대규모 산지가 있고, 거기서부터 바다까지는 거의 평야다. 지도상으로 볼 때는 평야가 많아 좋을 것 같지만, 가까이 산지가 없는 이런 평야는 비옥도가 떨어진다. 이에 비해 한반도는 동쪽 바닷가에 연해서 높은 산지가 형성되어 있어, 거기서 오는 영양물질이 서쪽에서 평야를 이루어 바다로 흘러들어가는 거리가 상대적으로 짧기 때문에 서쪽 평야지대까지 풍부한 영양물질이 공급된다. 이것은 하류 평야지대의 생산성과 함께 갯벌 생태계의 생산성도 높여준다.』
(출처 : 시사저널,
http://www.sisajournal.com/news/articleView.html?idxno=171669)
<참고자료>
이홍규, 한국인의 기원, 2012, 우리역사연구재단
이진아, 지구 위에서 본 우리 역사, 2018, 루아크
시사저널, [이진아의 지구 위 인류사] 유라시아의 동쪽, 한반도가 가장 앞선 지역이었던 이유
http://www.sisajournal.com/news/articleView.html?idxno=171669
조천호, 문명은 지성의 산물? 간빙기 맞아 덕보고 있는 것, 중앙선데이, http://news.joins.com/article/21478209
위키미디아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Iceage_north-glacial_hg.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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