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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음/《환국-가사라국》

《환국-가사라국》 1. 환인인가, 환국인가?(1)

대야발 2024. 2. 14.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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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국-가사라국》

 

1. 환인인가, 환국인가?(1)

 

삼국유사는 고려의 승려 일연(1206~1289)이 충렬왕 7(1281) 인각사(麟角寺)에서 편찬하였는데, 청년시절부터 사료를 수집하였고 70대 후반부터 84 세로 죽기까지 만년에 원고를 집필하였다고 한다.

 

삼국유사는 전체 529편목으로 구성되어 있다. 1은 왕력 제1편과 기이(紀異) 1편으로 왕력은 삼국, 가락국, 후고구려, 후백제 등의 간단한 연표이고, 기이 제1편은 고조선부터 남북국시대 이전까지 역사를 다루었다. 2는 기이 제2편으로 신라 후기와 고조선부터 고려 건국 이전까지 여러 왕들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3, 4, 5부터 불교에 대한 내용으로 권3 3편은 흥법(興法), 3 4편은 탑상(塔像), 4 5편은 의해(義解), 5 6편은 신주(神呪), 5 7편은 감통(感通), 5 8편은 피은(避隱), 5 9편은 효선(孝善)으로 구성되어 있다.

 

원판(原版)은 전하지 않으며 조선 초기 간행본으로 송은본(학산본, 곽영대 소장, 3, 4, 5), 니산본(2), 범어사본(4~5), 파른본(원 소장자 손보기, 현 연세대박물관 소장, 1, 2), 석남본(필사본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소장, 왕력과 제1), 조종업본(2)이 있다.

 

조선 중기 이후의 중종임신간본(정덕본)으로 규장각본(원 소장자 황의돈, 현 서울대학교 소장, 왕력(王曆)과 권제1~권제5), 만송문고본(원 소장자 김완섭, 현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소장), 최남선소장본(광문회본, 원 소장자 최남선, 현 고려대학교 소장, 권제3 ~ 권제5), 일본 덴리대 소장 순암수택본(5권 완질), 호사문고 소장본, 간다 집안 소장본이 있다.

 

중종임신본은 현재 한국에 전하는 삼국유사의 판본으로써 가장 완전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지만, 오자와 결자, 탈자가 포함되었고 전도되거나 체제나 협주 방식이 잘못 기재되고 문장이 서로 뒤바뀐 내용이 많으며 같은 중종임신본끼리도 소장본에 따라서 출입이 잦다는 지적이 있다. 이계복이 중간한 책판은 19세기 중반까지 경주부에 보관되었지만 현재는 전하지 않으며, 중종 임신본을 인행(印行)한 몇 종의 간행본이 현재 국내외에 전하고 있다.

 

 

삼국유사1 기이 제1 고조선(왕검조선)조 첫 구절은 단군왕검의 조선 개국기사이다.

 

고조선(古朝鮮) 왕검조선(王儉朝鮮)

위서(魏書)에 이르기를, “지금으로부터 2천여 년 전에 단군왕검(壇君王儉)이 있어 아사달(阿斯達)에 도읍을 정하였다 ()에는 무엽산(無葉山)이라 하고, 또한 백악(白岳)이라고도 하니 백주의 땅에 있다. 혹은 개성(開城)의 동쪽에 있다고 하니 지금의 백악궁(白岳宮)이 그것이다. 나라를 개창하여 조선(朝鮮)이라 했으니 고[-요임금-]와 같은 시대이다.”

古朝鮮 王倹朝鮮

魏書云, “乃徃二千載有壇君王倹立都阿斯逹. 経云無葉山亦云白岳, 在白州地. 或云在開城東, 今白岳宮是. 開國號朝鮮, 與髙同時.”

 

 

출처; https://blog.naver.com/greatcorea10/220064388726

 

 

두 번째 구절이 환인이 맞는지 환국이 맞는지 문제가 되는 구절이다. 조선 초기 간행본인 파른본은 석유환인(昔有桓𡆮)’으로 되어 있고, 조선 중기 이후 간행된 중종임신본인 서울대규장각본과 만송문고본에는 석유환국(昔有桓国)’으로 기록되어 있다.

 

 

한국사데이터베이스 삼국유사 三國遺事 卷 第一 紀異 第一 古朝鮮王儉朝鮮에는 원문은 ‘昔有桓𡆮’으로 되어 있고 다음과 같이 교감하였다.

 

『≪고기(古記)에 이르기를, “옛날에 환인(桓因) (제석(帝釋)을 말한다.)의 서자(庶子)인 환웅(桓雄)이 천하(天下)에 자주 뜻을 두어, 인간세상을 구하고자 하였다. 아버지가 아들의 뜻을 알고 삼위태백(三危太伯)을 내려다보니 인간(人間)을 널리 이롭게 할 만한지라, 이에 천부인(天符印) 세 개를 주며 가서 다스리게 하였다. ~”

古記云, “昔有桓𡆮 謂帝釋也. 庻子桓雄數意天下貪求人世. 父知子意下視三危太伯可以弘益人間, 乃授天符印三箇遣徃理之. ~”』

 

 

『조선 중종 임신본(1512)에는 ''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임신본보다 이른 조선 태조 3(1394) 간행된 것으로 추정되는 파른본 삼국유사'𡆮'으로 되어 있다. '𡆮''' 안의 ''를 흘려 써서 판각할 때 나타나는 글꼴로, 고려대장경에도 동일한 자형이 확인된다(연세대학교 박물관, 2016파른본 삼국유사 교감, 58). 제왕운기(帝王韻紀)세종실록(世宗實錄)지리지에 인용된 단군고기(檀君古記)에도 ''으로 되어 있다. 이러한 점들을 고려하여 여기서는 '𡆮'으로 교감한다.』

 

 

 

위키백과 삼국유사항목에는 다음과 같이 서술하였다.

 

『《삼국유사의 고조선 관련 기록에서 환인(桓因)이 원래 환국(桓國)이었는데 일제에 의해 조작되었다는 재야사학자들의 주장이 있다. 문정창의 주장에 따르면 일제하에서 삼국유사정덕본을 영인하면서, 이마니시 류가 주동이 되어 한국의 역사를 날조하면서 환인으로 고쳤다는 것이다. 책에는 붓으로 덧칠하여 원래의 글자를 바꾼 흔적이 있으며 1904년 일본 도쿄 제국대학에서 출간된 삼국유사에는 해당 구절이 昔有桓國(석유환국)”으로 인쇄되어 있다.

 

하지만 삼국유사와 같은 시대에 쓰여진 제왕운기에서도 환국이 아니라 환인또는 상제환인이라고 기록되어 있고, 세종실록(世宗實錄)》 〈지리지평양 조()에서 인용된 단군고기(檀君古記)에도 으로 표기되어 있다. 정덕본이 판각(1512)되기 이전에 편찬된 단종실록(노산군일기)단종 즉위년(1452) 628일 기록에는 三國遺史, 有曰 古記昔有桓因庶子桓雄...(삼국유사에 이르기를 고기에서 옛날에 환인의 서자 환웅이...) ”으로 기록되어 있어 정덕본 이전의 삼국유사에도 환인(桓因)으로 기록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도쿄 제국대학본 삼국유사에도 昔有桓國(석유환국)”에 이어 謂帝釋也(위제석야)”라는 할주가 붙어 있어 "사람"이라는 의미로도 해석되었음을 알 수 있다. 제석은 불교용어로 제석환인은 불교의 신인 인드라를 가리키는 용어이다. 그러므로 환국이라는 나라 이름은 그 자리에 들어갈 수가 없다.

 

최남선은 정덕본보다 고본(古本)송석하본(宋錫夏本, 석남본)”을 비롯하여 광문회본(光文會本),” “순암수택본(順庵手澤本)” 등을 교감하여 정덕본의 자가 원래 의 이체자(異體字)+ ”(자의 내부에 가 들어 있는 형태) 또는 𡆮으로 새겨야 하는 것을 실수하여 으로 잘못 새긴 오자(誤字)임을 고증하였다. 최남선의 고증 이래 한국사학계에서는 환국이 조작된 것이라는 주장은 인정하지 않고 있다.

(출처; 위키백과,  삼국유사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참고자료>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일연 지음, 김원중 옮김, 삼국유사, 민음사

 

 

 

한국사데이터베이스

http://db.history.go.kr/item/level.do?sort=levelId&dir=ASC&start=1&limit=20&page=1&pre_page=1&setId=-1&totalCount=0&prevPage=0&prevLimit=&itemId=sy&types=r&synonym=off&chinessChar=on&brokerPagingInfo=&levelId=sy_001r_0020_0020_0020&position=-1

 

 

 

위키백과

삼국유사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네이버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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