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환국과 신석기문화(23)

 

6.23 부산 가덕도 장항유적; 7200년 전~6400년 전(BP 7200~BP 6400)

 

가덕도 신석기유적은 BC5,000~BC4,000년 무렵에 해당하는 묘역시설로 BC6,000년까지 즉 8,000년 전 무덤으로 보기도 한다. 48구의 인골이 나왔다. 옥제품 6점과 흑요석도 출토되었다.

 

남해안지역 신석기사람들 기원전 8,000년을 전후하여 시작한 우리나라의 신석기시대는 토기의 발생, 석기 제작 방법의 변화, 새로운 도구가 등장하는 시기이다. 빙하기(홍적세洪績世)를 지나 간빙기(충적세沖積世)로 접어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인류는 정주생활을 선택하였고, 새로운 도구를 이용한 기술의 발달은 구덩식집자리(竪穴住居址), 야외 화덕(野外爐址), 원시적인 농경, 묘역(墓域) 등을 조성할 수 있는 기반이 되었다.

 

한반도의 신석기시대 유적은 1920~30년대 후지타(藤田亮策요코야마(橫山將三아리미쓰(有光敎一) 등에 의해 암사동(1925), 부산 동삼동패총(1930), 유판패총 (1932) 등이 조사되면서 처음 알려지게 되었다.

 

현재 전국 각지 1,000여 곳에 달하는 유적이 지표조사와 발굴조사로 확인되었으며, 지역적으로는 서북지역·동북 지역·중서부지역·중동부지역·남부내륙지역·남해안지역으로 구분된다.

 

남해안 신석기시대 문화는 1930년대 부산 동삼동패총·영선동패총·다대포 패총·암남동패총 등의 조사를 시작으로 1960~1970년대 동삼동패총의 재발굴, 1980년대 이후 수가리패총을 비롯한 연대도·욕지도·상노대도·산등패총 등의 발굴을 통해 재조명될 수 있었다.

 

최근 가덕도 장항유적을 비롯한 창녕 비봉리· 부산 범방패총·하동 목도패총 등의 발굴은 신석기인들의 생활과 죽음의 모습, 교류와 교역, 예술 활동의 모습까지 신석기문화를 새롭게 이해할 수 있게 해주었다. 특히 우리나라에 신석기시대 무덤 유적이 많이 알려져 있지 않은 가운데 부산 가덕도 장항유적의 집단묘역 (인골 48개체) 확인은 주목할 만한 성과이다.

 

부산 가덕도 장항유적이 위치한 남해안지역은 태백산맥과 소백산맥에서 갈라져 나온 산맥들이 해안에 이르러 지반이 침수된 전형적인 리아스식 해안(rias coast)이다. 크고 작은 만과 반도, 2,300여 개의 섬들이 복잡한 지형을 이루고 있다.

 

주변에는 부산 범방(凡方)패총·영선동(瀛仙洞)패총·동삼동(東三洞)패총·통영 연대도(煙臺島) 패총·상노대도(上老大島)패총·여수 안도(安島)패총 등 신석기시대 대표적 유적들이 분포한다.

 

지금까지의 발굴조사 성과를 토대로 남해안 신석기시대는 토기문화의 변화에 따라 조기에서 만기까지 5시기로 구분하고 있다. 조기는 평저(平底)의 덧무늬토기(隆起文土器), 전기에는 원저(圓底)의 찍은무늬토기(押印文土器), 중기는 첨저(尖底)의 굵은새김무늬토기(太線沈 線文土器), 후기에는 첨저의 봉계리식토기, 퇴화새김무늬토기, 만기에는 원저의 겹아가리토기(二重口緣土器)로 변화된다. 또한 문양구성 에서도 복잡한 것에서 단순한 것으로 변화하며 만기에는 문양이 대부분 소멸하여 청동기시대의 민무늬토기(無文土器)로 이어진다. 특히 중기 이후부터 갈돌(石棒)과 갈판, 굴지구, 탄화곡물 등 농경과 관련된 유물이 급격하게 증가되는 것은 원시적인 농경 가능성을 추정하게 한다.

 

최대규모의 남해안 신석기시대 무덤

 

우리나라의 동·남해안지역의 신석기시대 무덤 유적은 고성 문암리, 춘천 교동, 울진 후포리·부산 동삼동·범방패총·통영 욕지도·상노대도 산등·여수 안도 등이 있다. 이 무덤들은 독(甕棺), (土壙), 동굴, 그리고 돌무지(積石)나 깐돌(敷石) 형태이다. 독무덤(甕棺墓)은 조기(기원전 5,000년경)에 나타나 중기(기원전 2,000년경)까지 이어지고 있고, 돌무지 혹은 깐돌 형태의 무덤은 전기(기원전 3,000년경)부터 만기(기원전 1,500)까지 존속된다. 무덤에서는 귀걸이·팔찌·발찌 등의 인골 착장 장신구와 대형 돌도끼·낚시바늘·돌화살촉·작살 등의 생활 용구들이 부장 되었는데, 희귀품의 부장 유무는 피장자의 신분이나 위계의 분화로 이해하기도 한다. 아직 신석기시대 장제와 사후관념, 나아가 신석기인의 형질학적 해석은 미진한 편이며, 계속적인 발굴 자료의 축적을 통해 가능할 것이다. 이번에 조사된 부산 가덕도 장항유적의 사례는 이러한 궁금증을 어느 정도 해소해 주는 계기가 되었다.

 

가덕도 장항유적은 섬의 북서쪽 해안에 위치한다. 가덕도는 부산과 거제도 사이에 위치한 부산에서 가장 큰 섬으로 진해만으로 들어가는 해로의 관문이다. 조사는 한국문물연구원에서 2010년부터 2011년까지 실시하여 신석기시대 전기의 대규모 묘역(인골 48개체)과 구덩(竪穴) 100여 기, 전기에서 후기까지의 돌무지유구(集石 遺構) 90여 기가 발견되었다.

 

전기의 묘역은 우리나라 최대규모로 돌무지 유구, 구덩 유구 등이 함께 조성되어 있다. 묘역에서는 파손되지 않은 100여 개의 토기를 비롯하여 옥제드리개, 문양이 시문된 골제품, 상어 이빨 등 인골에 착장된 유물들이 확인되어 신석기시대 계층화된 사회의 일면을 보여 준다.

 

이 묘역의 지근거리(至近距 離)에 위치한 연대도의 인골 13개체의 묘역과 욕지도·상노대도 유적의 묘역 등으로 보아 이 일대에 대규모 묘역을 조성한 집단의 존재를 짐작할 수 있다. 중기만기에 이르면 유적의 해안선에서 야외화덕으로 추정되는 돌무지 유구가 열상으로 나열되어 있어 장항유적이 생산을 위한 곳으로 변화한 것을 알 수 있다.

 

가덕도 장항유적은 크게 풍화암반층-사질점토층-혼토패층(모래층) 순으로 퇴적되어 있고, 세부적으로 12개 층으로 구분된다. 자세히 살펴보면, Ⅰ~ Ⅷ층은 모래를 기반으로 하는 혼토패층으로 겹아가리(二重口緣), 굵은새김무늬(太線 沈線文), 밀집빗금무늬(短斜集線文), 퇴화새김무늬 등의 유물이 주를 이룬다. 이 혼토 패층은 중기 이후 해수면의 상승에 따라 형성된 층이다. 묘역이 확인된 Ⅸ~Ⅹ Ⅱ층은 패각의 혼입이 없는 갈색계 사질점토층으로 덧무늬와 찍은무늬, 지두문(指頭文) 등 전기의 토기가 주를 이룬다. 광루미네 센스(luminescence) 분석(OSL) 결과에서도 층은 B.P. 6400, 층은 B.P. 6700, ⅩⅠ 층은 B.P. 7200년을 전후한 시기로 신석기시대 전기의 유구와 유물임을 알 수 있다. 사질점 토층은 육성층으로 신석기시대 전기에는 현재 보다 해수면이 낮았음을 알 수 있다. 이 자료는 남해안의 해수면 변동 및 기후변화 연구 등의 기초자료로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신석기인들의 장례 모습

 

가덕도 장항유적에서는 신석기시대 전기에 해당되는 매장 인골 48개체와 다량의 부장용 토기가 출토되었다. 인골은 대체로 층과 층 경계면에 안치되어 있었고, 일부 중첩되어 무덤이 사용되었는데 집단이나 시기적인 차이라기보다 매장시점의 시간적 차이로 여겨진다.

 

또한 인골 주변으로 무덤 구덩이(墓壙) 및 봉토(封土) 등의 시설은 확인되지 않지만 훼손 없는 인골과 주변에 많은 부장품이 출토되는 것으로 보아 묘역으로 볼 수 있다. 이런 특징은 남해안지역 무덤 유적 대부분에서 확인된다.

 

연대도의 경우는 일부 인골의 무덤 구덩이가 남아 있으나 깊이와 규모로 볼 때 인골을 매장하기 위한 시설로 보기는 어렵고 지면을 정리한 정도의 흔적으로 여겨진다. 그리고 동물에 의한 인골의 훼손이 없는 것으로 보아 유기물을 이용한 초장(草葬) 등의 매장의례를 추정하게 한다.

 

한편 가덕도 장항유적에서는 인골이 출토되지는 않았으나 보통의 야외화덕과 다른 형태의 돌무지 유구가 다수 확인되었다. 인골과 동일시기의 돌무지 유구는 중기의 야외화덕과는 다르게 구조와 평면 배치상에서 차이를 보인다.

 

이러한 형태는 부천 시도패총· 범방패총·율리패총 등에서 조사된 바 있으며, 분묘나 의례와 관련된 것으로 보기도 한다. 앞으로 더 많은 발굴사례가 축적되면 돌무지 유구의 기능도 명확해질 것이다.

 

가덕도 장항유적에서 가장 주목되는 것은 상태가 양호한 인골의 출토일 것이다. 인골은 배치상태로 보아 등고선에 평행한 남북방향으로 안치하였고, 두향은 대체로 북서쪽과 북동쪽이다.

 

우리나라의 신석기시대 두향은 유적에 따라 다른데, 안도패총은 북동쪽, 연대도패총은 서쪽방향으로 주로 바다를 향하고 있다. 주검을 처리하는 방식에는 기본적으로 펴묻기(伸展葬)와 굽혀묻기(屈葬)가 모두 확인된다.

 

인골 48개체 중에서 매장 자세를 확인할 수 없는 17개체를 제외하면, 굽혀묻기 23개 체, 펴묻기 8개체로 굽혀묻기가 74%를 차지한다. 우리나라의 신석기시대 매장방법이 대부분 눕혀펴묻기(仰臥伸展葬)인데 반해 가덕도 장항유적은 굽혀묻기의 비율이 높은 점이 특징적이다.

 

펴묻기된 8개체의 인골은 모두 다리를 곧게 펴고 있으며, 일부 양팔을 가슴 또는 배 위에 올린 경우도 있다. 유적 중앙에 위치한 8호 인골의 경우, 좌오른쪽 팔꿈치관절과 무릎관절이 곧게 펴진 상태에서 무릎은 내측으로 모아져 있다. 인골 위를 토기로 덮었고, 주변으로 완 3, 적색안료 2점이 출토되었다.

 

굽혀묻기된 23개체 인골은 다리를 자상으로 대퇴골과 종아리를 묶어 놓은 것과 다리를 꺾어 하반신 전체를 상반신과 함께 묶어 놓은 것 등이 있다. 양손은 대체로 가슴 위에 올려놓았으며 두개골은 발치를 바라보고 있다.

 

15호 인골의 경우 좌오른쪽 팔꿈치관절이 굽어져 골반 위로 내회하고 무릎은 내측으로 모아져 있으며 종아리는 대퇴골 뒤쪽으로 꺾여 있다. 오른쪽 요골은 이탈하여 흉골 위에 위치한다. 또한 매장시 토기를 시상대로 사용하거나 인골 위를 토기나 돌로 덮는 경우가 있다.

 

17호 인골의 경우 토기를 시상대와 덮는데 이용하였고, 27·38호 인골의 경 우 인골 위에 2030cm의 깬돌(割石)을 덮었다. 그리고 2호 인골은 두개골 밑에 돌베게(頭枕石)로 추정되는 깬돌이 놓여 있다.

 

인골의 형질인류학적 접근

 

가덕도 장항유적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굽혀묻기는 일본의 양상과 비교해도 팔과 다리를 더 강하게 굽힌 모습으로 가덕도만의 특징을 나타내며, 이러한 굽혀묻기를 김재현은 가덕도식 굽혀묻기라고 명명하였다. 가덕도식 굽혀묻기는 팔과 다리의 관절이 모두 심하게 꺾여 있어 죽은 후 즉시 또는 경직이 풀린 후에 강굴(强屈)된 형태를 유지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따라서 죽은 후 어느 시점에 염과 같은 의례 행위가 이루어졌을 가능성이 높다.

 

36호 인골의 경우 가덕도식 굽혀묻기 형태를 취하고 있지만 다른 매장사례들과 달리 오른쪽 대퇴골과 경골의 원래 위치가 바꿔져 있다. 이것은 주검 매장 이후 다리의 관절을 연결하는 인대가 부식하여 정강이뼈와 분리되어진 흔적이다.

 

성별이 확인된 인골은 전체 18개체에서 남성이 8개체, 여성이 10개체로 남녀 성비가 비슷하다. 또한 연령별로도 20대에서 50대까지 골고루 분포하는 편이어서 일반적인 묘지로 판단된다. 그리고 대퇴골과 상완골을 이용해 추정한 키는 남성은 평균 157.8±7.33cm이며 여성은 평균 146.8±7.99cm로 추정된다.

 

무덤에서 발견된 옥장식

 

무덤에서는 토기·석기·흑요석·짐승뼈(獸骨조개팔찌(貝釧) 등이 출토되었다. 교역의 산물로 이해되는 흑요석은 조사지역 전반에 산재해서 200여 점이 출토되었다. 대부분 특정한 용도를 알 수 없는 박편이지만, 화살촉을 비롯해 2차 가공이 이루어진 석기도 수점 확인되었다.

 

석기는 돌도끼 4, 숫돌 1점이, 장신구로는 대형 옥제 드리개(垂飾)(pendant) 1, 투공된 상어이빨 1, 조밀하게 홈이 파진 짐승뼈 1, 조개팔찌 20여 점 등이 출토되었다.

 

신석기시대 옥제품은 출토사례가 매우 드문 유물로 울진 후포리, 춘천 교동, 통영 연대도, 부산 범방, 고성 문암리, 부산 동삼동 등지에서 12점이 출토되었다. 이에 반해 장항유적은 무덤과 구덩이 유구 에서 옥제품 6점이 출토되었다.

 

인골에 착장되어 확인된 드리개는 부산 장항유적을 비롯해 부산 범방패총, 울진 후포리유적에서 발견되었으며, 그 외 고성 문암리유적·울산 처용리유적·제주도 공항유적 등에서 옥제 귀걸이가 출토된 바 있다.

 

인골에서 출토된 옥제드리개 는 대부분 펜던트(pendant)의 형태이나 장항유적에서는 관옥의 형태로 출토되었다. 그리고 인골 2호에서도 사슴의 다리뼈를 가공하여 드리개로 사용한 장신구가 출토되었다. 형태를 하고 있으며 표면에는 기하학문의 작은 홈들이 파져 있다.

 

유사한 형태의 장신구가 완도 여서도패총에서 발견된 적이 있다. 이러한 장신구는 중국의 선사시대 유적에서 집중적으로 출토되는 장신구이나 남해안 지역의 다수 유적에서 출토되는 것으로 보아 동아시아의 전반적인 문화교류 관계의 증거로 추정된다.

 

또한 조개팔찌는 다수의 유적에서 많은 양이 출토되었으나 인골이 착장한 형태로 출토된 유적은 안도패총·산등패총·장항유적 뿐이다. 특히 조개팔찌(패륜) 20여 개를 연결하여 목걸이를 만든 것은 장항유적이 첫 사례이다. 인근의 동삼동 패총, 범방패총에서는 제작과정의 조개팔찌가 다량 출토된 바 있다. 조개팔찌는 신석기시대 보편적인 장신구로 그 용도에 대해 손목 장신구로 보는 경향이 많았으나 이번 조사결과를 통해 볼 때 여러 용도로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무덤의 토기는 대부분 파손이 되지 않은 상태로 출토되었다. 소형 토기는 인골의 발치와 허리에 부장되었고, 대형의 호형, 심발형토기는 인골과 1m가량 떨어져서 23점이 부장되었다.

 

문양은 대부분 조기의 덧무늬이나, 기형은 영선동식토기와 유사한 원저의 기형이다. 이는 조기에서 전기로 이행하는 과정을 잘 보여주고 있다. 대형의 옥제드리개와 다량의 조개팔찌, 다량의 부장용 토기는 한국 신석기유적 전체에서도 보기 드문 사례로 피장자의 특별한 지위를 보여주는 것으로 생각된다. 나아가 피장자의 성별性別 또는 혈연관계 등에 따른 부장유물 차이도 생각할 수 있다.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들, 가덕도

 

가덕도 장항유적에서는 우리나라 최대규모의 신석기시대 전기의 묘역과 묘 시설로 추정되는 돌무지유구 등이 발견되면서 신석기시대 매장문화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고 있다.

 

남해안지역에서 인골이 확인된 유적은 입지와 출토유물, 좁은 공간에 여러 개체의 인골을 매장하는 행위 등 유사한 양상으로 일종의 문화권을 설정할 수 있다. 다만 모든 유적을 동시기로 보기 어렵기 때문에 세밀한 편년을 통한 문화권 설정이 필요하다.

 

또한 가덕도 장항유적에서는 무덤유구와 함께 약 500점에 이르는 흑요석이 출토되었다. 이곳이 묘역의 공간뿐 아니라 석기제작 장소였음을 추론하게 해주며, 지리적으로 가까운 일본 규슈 지역과의 교류를 추정해 볼 수 있다.

 

남해안지역 신석기시대 다수의 유적에서는 흑요석과 죠몽(繩文)토기 등이 출토된다. 지금도 후쿠오카 (福岡)-이끼(壹岐島)-쓰시마(對馬島)-장항유적을 잇는 해로는 일본과의 최단거리 교통로이다.

 

따라서 장항유적의 신석기인들은 광역적 교류를 통해 흑요석의 원석획득·제작· 분배 등의 과정을 행하였을 것이다. 하지만 어떠한 방법과 경로로 원석을 획득했는가는 현재로서 알 수 없으며, 죠몽인들과의 교환물이 무엇인지도 아직 의문으로 남는다.

 

가덕도 장항유적에서 가장 주목되는 것은 신석기시대 전기 최대규모의 묘역일 것이다. 매장방법에 있어 굽혀묻기가 처음 확인된 유적이며, 다량의 옥 장신구와 조개팔찌 등의 껴묻거리는 신석기시대 사회적 지위의 차이를 보이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앞으로 가덕도 장항유적 출토 묘역과 인골에 대해 더욱 정밀한 분석이 이루어진다면 한반도뿐 아니라 동북아시아의 신석기시대 매장의례를 비롯한 사회상 등을 규명할 수 있는 획기적 단서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한국문물연구원 김상현

 

 

출토된 옥

29호 인골(굽혀묻기)

 

 

인골 41

 

 

8호 인골(펴묻기)

(출처; 문화유산 연구지식포털, 2011 한국고고학저널, 부산 가덕도 장항유적,

https://portal.nrich.go.kr/kor/journalUsrDtlView.do?menuIdx=801&idx=&d_idx=249)

 

 

8천 년 전 신석기시대 공동묘지 발견

연합뉴스. 송고시간 2011-02-17 10:16

8천 년 전 신석기시대 공동묘지 발견 가덕도 신항 예정지서.. 인골 26구 출토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8천 년 전 무렵 신석기시대 초기에 만든 공동묘지가 부산 가덕도 신항 예정지에서 발굴됐다. 이곳에서는 26구에 달하는 인골이 확인됐다.

 

이 묘지는 현재까지 보고된 신석기시대 공동묘지 중 연대가 가장 오래됐을 뿐만 아니라 규모 또한 최대로, 학계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매장문화재 전문조사기관인 한국문물연구원(원장 정의도)은 부산 강서구 성북동 가덕도 1194-2번지 일대 부산 신항 준설토 투기장사업 부지 동단을 발굴한 결과 신석기시대 조기(早期) 혹은 전기에 조성한 것으로 보이는 집단 묘역(墓域)을 확인했다고 17일 밝혔다.

 

조사결과 신석기시대 문화층 중에서도 제5층으로 드러난 이 공동묘지는 당시 사람들의 집단 생활공간으로 보이는 집석(集石. 돌무더기) 시설과는 공간 배치가 뚜렷이 구분된다는 점에서 의도적으로 묘역과 생활공간을 분리해 만든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고 조사단은 덧붙였다.

 

특히 이 묘역에서는 모두 26명에 달하는 인골이 확인됐다. 이들 인골은 서로 중첩되지 않고 일정한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점에 미뤄 공동묘지임이 확실하다고 정의도 원장은 전했다.

 

 

 

 

시신매장 방식으로 볼 때 인골은 현재까지 시신을 곧게 편 신전장(伸展葬)3, 팔다리를 묶은 채 굽힌 굴장(屈葬)7구로 드러났으며 머리는 모두 북쪽, 혹은 북동쪽으로 둔 것으로 밝혀졌다.

 

무덤 구덩이인 묘광(墓壙)이나 봉토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토기를 비롯해 석기와 옥 등 부장품이 함께 발굴됐다.

 

깬 토기를 시신 밑에 깐 인골도 보고됐다. 이들 토기는 인골 하부에 깔거나 주변에 깐 경우가 있는가 하면 인골 위에 덮은 사례도 발견됐다. 나아가 편평한 깬돌을 머리에 받친 채 그 주변에 모양으로 다른 깬돌을 두른 시신도 드러났다.

 

어떤 인골의 좌측 팔 옆에서는 황화수은이 주성분인 주사(朱砂)나 산화철 계통으로 생각되는 붉은색 안료가 출토되기도 했다.

 

정 원장은 "인골 주위로 완전한 모양을 갖춘 토기가 집중 확인돼 이를 부장품으로 묻었을 가능성을 짐작케 한다" 고 말했다.

 

대형 옥 제품을 착용한 인골이 발견되기도 했다. 이번에 발견된 옥 제품은 강원 고성 문암리 유적에서 출토된 옥결이라 일컫는 일종의 옥 귀걸이와 마찬가지로 지금까지 한반도에서 발견된 가장 이른 시기의 옥제품으로 추정된다.

 

 

 

 

정 원장은 "융기문(隆起文. 돋음무늬)이나 압인문토기(押引文. 찍어눌러 만든 문양) 토기 등으로 보아 묘역이 조성된 시기는 신석기시대 조기(早期) 혹은 전기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시신을 매장하는 방법 등에서 일본 조몽문화와 관련성을 엿볼 수 있다" 면서 "묘역과 인골에 대한 정밀한 분석이 이뤄지면 한국뿐만 아니라 동북아시아의 신석기시대 매장의례를 비롯한 사회상의 규명에 획기적인 단서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한다" 고 말했다.

(출처; 연합뉴스, 8천 년 전 신석기시대 공동묘지 발견,

https://www.yna.co.kr/view/AKR20110217066800005)

 

연합뉴스

부산 가덕도 신석기 유적서 유골 추가 발굴

이종민. 입력 2011. 05. 03. 10:01 수정 2011. 05. 03. 16:34 댓글 0

 

(부산=연합뉴스) 이종민 기자 = 한국문물연구원(원장 정의도)은 부산 강서구 성북동 부산 신항 준설토 투기장 예정지 일대에서 지난 2월 이후 추가 발굴 작업을 벌인 결과 이전 발굴 유물과 같은 신석기 전기대 인골 14구와 옥제품 4점을 수습했다고 3일 밝혔다.

 

이번 추가 발굴에서 나온 일부 인골에 가슴 크기의 자연석을 시신 위에 올려놓은 것이 새롭게 확인됐다. 이전 인골들에는 작은 깬돌들이 시신 밑에 깔리거나 옆을 모양으로 둘러싸고 있었다.

 

또 지난번에 한 점만 나온 옥제품이 무려 4점이나 더 출토됐다.

 

이곳에서 신석기 옥제품이 다수 나온 것에 대해 학계에선 요동반도를 중심으로 한 홍산(紅山·BC 5000~BC 3000) 문화와의 긴밀한 교류의 증거로 추정하고 있다. 홍산문화는 옥제품을 다량 생산해 옥문화권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인골 고고학 전공자인 김재현 동아대 교수는 "지금까지 나온 인골 수만 봐도 이 유적지는 국내는 물론 서일본과 규슈지역을 망라해 가장 규모가 크고, 오래된 신석기 집단 매장터임이 확실하다" 면서 "인골 유전형질 규명으로 한일 간 도래인의 성격을 결정할 획기적 사료"라고 말했다.

 

지난 2월 발굴 때도 약 8천 년 전 무렵 신석기시대 초기에 만든 공동묘지와 함께 26구에 달하는 인골이 확인됐다. ljm703@yna.co.kr

(출처; 연합뉴스, 부산 가덕도 신석기 유적서 유골 추가 발굴,

https://news.v.daum.net/v/20110503100119537)

 

 

가덕도 장항유적은 2014KBS 파노라마 <코리안 이브>라는 프로그램에서도 언급된 바 있는데 형질인류학적으로 가덕도 장항의 고인골은 한국인에는 드문 장두형으로 유럽인에 가깝고, 중앙대 연구진이 이 유적의 고인골들에 대한 초보적인 조사를 통해, 17개체 중에 유럽인들에 주로 나오는 모계 하플로인 H가 있다고 한 적이 있어, 유럽인이 어떻게 8000년 전에 한반도에 있었을까 하는 의문을 갖게 되었는데, 2019년 말 부산에 위치한 한국문물연구원에서 발간하는 고고학 관련 저널인 <문물연구>에 비로소 가덕도 장항에서 발굴된 고인골을 대상으로 한 <한국 가덕도 장항 출토인골의 DNA분석>이라는 제대로 된 분자인류학 연구 논문이 나왔다고 한다. 이 논문에 따르면 가덕도 장항 고인골은 집단 전체로는 동아시아인, 그중에서도 현대 일본인 및 한국인과 매우 가까운, 동북아시아 인구집단의 범주에 드는 사람들이었을 것이 거의 틀림없는데 현대한국인보다 죠몽계 요소가 많이 나왔다고 한다. 다음은 다음카페 분자인류학논단에 실은 초재의 글 한국 가덕도 장항유적 출토 인골의 DNA 분석소개 및 해설-1, 2이다.

 

한반도의 토양이 대부분 강한 산성을 띠고 있기에, 오래된 인골이 그대로 유전자 정보를 가지고 남아 있기보다는 빠르게 부식되어 버리기에, 연구에 적합한 남아 있는 고인골의 수가 매우 적고, 한국에서 분자인류학 연구에 대한 인식이나 지원도 낮고, 국내 연구자들의 고인골 DNA 추출이나 분석기술 수준도 미흡한 면이 있기에, 이제까지 제대로 고인골에 대한 분자인류학적 연구가 이루어진 것이 적었습니다. 그나마 이루어진 적은 수의 고인골에 분자인류학적 연구는 그 고인골의 부계를 확인할 수 있는 Y염색체 하플로그룹이나 모계 계통을 알 수 있는 미토콘드리아 DNA 하플로그룹의 단일부모계표지(Uniparental ancestry marker)에 대해서 였습니다. 실제로, 부계의 Y염색체 하플로그룹에 대한 연구는 중앙대 연구팀의 보고서만 나오고, 그 결과가 정식 논문으로 발간되지 못했기에, 모계의 미토콘드리아 DNA하플로 그룹에 대한 연구만 있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부계의 Y 하플로그룹과 모계의 mtDNA 하플로그룹 분석은 30억 개 정도의 염기쌍을 가진 인간의 23개 염색체 중에서 적은 비중을 차지하는 Y염색체나 대부분의 유전정보를 가진 핵이 아니라, 바깥의 세포질에 존재하는 매우 적은 유전자 정보를 가진 미토콘드리아 DNA 중에서도 일부분인 수천 개 내지 수백 개의 SNP를 대상으로 하기에, 전체 유전자를 대상으로 한 상염색체(Autosomal Chromosomes)연구에 비해, 제공할 수 있는 정보가 제한적입니다. 오래된 고인골 에서 DNA를 채취하기는 매우 어렵기에, 일반적으로 하나의 선사시대 유적에서 DNA를 채취할 수 있는 고인골의 수는 매우 적은 데, 만일 하나 혹은 둘의 어렵게 분석한 고인골의 부계 혹은 모계가, 사실은 그 고인골이 출토된 지역에 일반적으로 존재하는 유형이 아니라, 외부의 먼 거리에 있는 집단에서 온 정복 활동으로 지배자가 된 부계이거나, 혹은 외부집단들과의 족외혼의 결과로 해당 지역에서는 드문 모계일 경우, 발굴된 지역의 전체적인 인구집단에 대해서, 왜곡된 상을 보여줄 수밖에 없습니다(고인골에 대한 스트론튬동위원소 분석 등을 통해, 해당 인골이 섭취한 음식의 종류가 무엇인지, 인골이 해당 지역 출신인지 아니면 다른 지역에서 성장해서 이주했는지 등의 분석은 가능). 그러기에, 현재 유럽이나 미국 등지의 분자인류학의 선도그룹들에서 이루어지는 고인골에 대한 연구는 대부분 상염색체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고, 이미 상당한 양의 고인골의 상염색체가 분석되어 있어, 서유라시아 지역 인류집단의 이동과 변화 과정은 어느 정도 명확하게 밝혀져 가고 있습니다.

 

2010년에 발굴된 부산 가덕도 장항지구 유적은 한반도의 선사유적으로는 이례적으로 많은 48개체의 고인골들이 발굴되어서, 그동안, 토기나 석기, 무기, 장신구 등의 유물에 집중하는 고고학 연구만 가능했던 유적들이나 하나 혹은 몇 개의 적은 수의 고인골만 남아 있어서 비교가 어려운 다른 유적들과 달리, 제대로 된 형질인류학과 분자인류학적 연구가 가능한 유적으로 주목을 받았습니다. 장항지구에서 나온 고인골의 년대는 약 6300년 전의 신석기시대의 인골로서 함께 출토된 파손되지 않은 100여 개의 토기는 덧띠무늬토기, 압인문토기 등으로서, 한반도 남해안지역의 신석기 초기의 모습을 잘 보여주는 유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2014KBS 파노라마 <코리안 이브>라는 프로그램에서도 가덕도 장항유적이 언급된 바 있는데, 형질인류학적으로 가덕도 장항의 고인골은 한국인에는 드문 장두형(머리의 앞뒤가 긴 두상, 현대 한국인은 주로 머리의 앞뒤는 짧은 단두에, 머리의 위아래가 긴 고두가 다수)으로 유럽인에 가깝고, 중앙대 연구진이 이 유적의 고인골들에 대한 초보적인 조사를 통해, 17개체 중에 유럽인들에 주로 나오는 모계 하플로인 H가 있다고 한 적이 있습니다. KBS의 이 프로그램 외에도 몇몇 신문기사에도 유사한 내용이 나왔으나, 이러한 내용들은 엄밀한 학문적인 검증을 필요로 하는 논문으로 출간되지 않았고, 더구나 중앙대 연구진은 이전에도, 한반도 출토의 선사시대 고인골에 대해서 신뢰성이 떨어지는 보고서만 제출하고, 영문으로 된 논문을 출간하지 않았기에, 그 진실성에 대해서는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영문으로 된 논문의 출간이 필요한 이유는 영어사대주의나 학문사대주의에서가 아니라, 이들이 한 연구가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프로토콜에 따라 행해졌는지를 학문공동체에서 검증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2019년 말 부산에 위치한 한국문물연구원에서 발간하는 고고학 관련 저널인 <문물연구>에 비로소 가덕도 장항에서 발굴된 고인골을 대상으로 한 <한국 가덕도 장항 출토인골의 DNA분석>이라는 제대로 된 분자인류학 연구 논문이 나왔는데, 아마 최초로 한국에서 출토된 고인골의 상염색체 DNA에 분석이 나온 논문이 아닐까 합니다. 한국에서 그동안 고인골의 분자인류학적 분석이 미토콘드리아 DNA분석에 집중된 원인은 미토콘드리아는 세포질내 수백 개나 존재하는 세포소기관이기에 남아 있는 유전정보가 극히 빈약한 고인골에서도 채취할 수 있는 확률이 높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세포핵 내에 하나만 있는 Y염색체를 통한 부계 하플로 연구나 세포핵 내의 23개 염색체에 있는 많은 수의 유전자가 확보되어야 통계적으로 의미있는 연구를 할 수 있는 상염색체 분석은 거의 이루어지지 못했습니다. 참고로, 여기서 말하는 많은 수는 그냥 수백 개, 혹은 수천 개가 아니라, 아무리 낮게 작아도 일반적으로, 수천만 개 이상의 DNA가 나와야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염색체 안에는 30억 개의 염기가 있는 데, 분석하는 고인골마다, 30억 개 염기 중 추출 가능했던 부분이 다르기 때문에, 어떤 경우에는 23개 염색체 중 특정 염색체에서만 집중적으로 유전자가 추출가능했다고 하면, 다른 유적에서 나온 고인골과 동일한 위치의 유전자가 없거나, 매우 적은 경우, 통계적으로 분석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한반도에서 출토된 고인골에 대한 최초의 상염색체 분석을 한 이 논문의 저자들은 아쉽게도 한국인이 아닙니다. 일본에서 고인골 관련 분자인류학 연구를 활발히 하고 있는 국립박물관 인류학 연구부의 시노다켄이치(篠田健一), 칸자와히데아키(神澤秀明) 와 이들과 같이 큐슈 서북부의 시모모토야마이와카게(下本山岩陰)유적의 야요이시대 고인골에 대한 논문을 공저했던 야마나시대학(山梨大学)의 카쿠다츠네오(角田恒雄), 아다치노보루(安達登) 4명입니다. 아마도, 이들이 한반도 남해안과 교류가 많았던 큐슈지역의 죠몽인과 야요이인을 연구하는 연장선에서, 가덕도 장항 고인골의 존재를 알고, 문물연구원측에 자료의 제공을 요청해서, 이번 연구가 이루어지게 된 것으로 보입니다.

 

가덕도 장항유적이 48개체라는 한국의 다른 신석기 유적에 비해 휠씬 많은 인골이 출토된 것 외에, 이 유적이 주목받은 또 다른 이유는 매장방법에 있습니다. 한반도의 신석기 유적에서 출토된 유골이 매장된 방법은 시체의 얼굴이 나온 앞면을 하늘을 바라보게 하고, 사지를 곧바로 펴서 눕힌 눕혀펴묻기(仰臥伸展葬)가 일반적입니다. 그러나, 장항유적에서는 48개체 중에 매장방법을 확인할 수 없는 17개체를 제외한, 확인 가능한 31개체에서 73%23개체가 태아가 잉태되기 전에 자궁속에 있을 때의 모습과 유사하게 팔과 다리 등의 사지를 인위적으로 굽혀서 묻는 굽혀묻기(屈葬)을 채택한 것에 있습니다.

 

굽혀묻기는 한반도보다는 유럽의 신석기시대, 동남아시아, 그리고, 일본의 죠몽시대에 유행한 매장법으로, 이 굽혀묻기 때문에 장항유적의 신석기인들이 유럽인과 유사한 것이 아닌가하는 추측도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멀리 유럽이 아니라, 장항유적에서 500여개나 출토된 흑요석 석기의 원료 산지이고, 흑요석을 매개로 토기나 조개껍질를 이용해서 만든 장신구 등의 물품들을 교역하고, 잦은 교류의 흔적이 있었던 일본 큐슈지역의 죠몽인들이 바로 굽혀묻기를 주로 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할 것입니다. 동아대 김재현 교수의 의견으로는 가덕도 장항지구의 굽혀묻기 매장법이 일반적인 죠몽인들의 굽혀묻기와는 약간 다른 팔과 다리를 더 강하게 굽힌 가덕도식 굽혀묻기라는 특징을 지닌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장항유적의 고인골 DNA 분석을 통해서, 확인해야 할 주안점은 과연 장항유적의 신석기시대인은 굽혀묻기라는 동시대 한반도에는 일반적이지 않았지만, 일본 큐슈의 죠몽인과 공유하였던 매장법이었고, 이런 매장법에서의 유사성과 차이만큼 이들과 유전적인 친연관계나 거리가 존재하였는 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언론 보도를 통해 논란과 관심을 일으켰으나, 그 진실은 미지로 남아 있는 장항유적 신석기인들이 서유라시아인들과 유전적으로 근접한 지의 여부도 확인해야 할 것입니다.

 

논문에 고인골 자료에서 DNA를 추출하고 분석하는 과정이 서술되어 있으니, 이 부분은 생략하고, 여기에서는 논문의 결론부에 표와 그래프로 나온 고인골의 모계 mtDNA 하플로 그룹과 상염색체에 대한 f3, f4, PCA 분석을 스캔하여, 보기 편하게 제가 재작업한 표와 그래프로 소개하고, 여기에 대한 제 의견도 간략히 서술하겠습니다.

 

1) 모계 미토콘드리아DNA 하플로그룹

 

<1> 가덕도 장항유적 고인골의 미토콘드리아 DNA 하플로 그룹

 

 

 

 

가덕도 장항 유적에서 나온 고인골 등 중에서 분자인류학적 분석이 위해 제공된 4개의 고인골 샘플 중에 7번과 48번 샘플은 상염색체 전체에서도 유의미한 분석이 가능한 수의 SNP를 획득하지 못했음은 물론, mtDNA 하플로 그룹도 확정하기 어려웠습니다. 2번과 8번 샘플은 상염색체 분석이 가능함은 물론, mtDNA 하플로 그룹도 알 수 있었는데, 결과는 위의 표와 같고, 모계 하플로와 상염색체 분석이 가능했던 2번과 8번 샘플 모두, 유전자 분석결과에서 부계 Y하플로 분석이 가능하지 않은 여성인 것으로 나왔습니다. 따라서, 한국에서 출토된 고인골에 대한 제대로 된 부계 Y하플로 분석이 나온 논문은 다음 기회로 미루게 되었습니다.

 

장항 샘플 2번이 속한 D4b는 현대 한국인에서 6.36%, 8번이 속한 D4a*7.7%(Hong et al. 2014) 나타나고, D4bD4a가 속한 상위의 D4 하플로그룹은 전체적으로는 27~30% 정도로 한국인에게서 가장 많이 나타나는 모계 mtDNA 하플로그룹임은 물론, 일본인(33%), 북방한족 등 많은 동아시아 인구집단에서도 높은 비율로 나타납니다. 또한, 장항지구 고인골보다는 휠씬 시간이 지난 후이지만, 지리적으로 가까운 경남 사천군 늑도에서 발굴된 청동기시대유적에서 21개체의 확인 가능한 유골들 중 11개체가 D4 하플로에 속하고, 그중 2개체가 D4b였습니다. 그러므로, 발굴된 고인골의 수가 무척 적고, 시대 간의 간격도 크지만, 적어도 모계 mtDNA하플로 그룹 D4가 한반도에 정착한 역사는 적어도 신석기 초기 정도로 오래되고, 청동기시대를 거쳐서, 현대에까지 이어지면서, 한반도인들의 주류 모계 하플로의 하나였을 가능성이 크다고 볼 수 있습니다.

 

시노다켄이치는 이제까지 발굴하고 mtDNA 하플로를 조사한 일본 죠몽인골의 수는 150구가 넘는데, D4b1D4a는 없었기에, 죠몽인과 장항샘플들간에는 유전적인 연결이 없다고 합니다. 시노다켄이치가 일본의 고인골에 대한 분자인류학적 연구, 그중에 특히 모계 mtDNA하플로 그룹 연구에서는 가장 권위있는 연구자이기에 이 부분에 대해서, 다른 의견을 내기는 어려울 것이나, 반드시 관련이 없다고 단정적으로 결론을 내리기에는 이르다고 봅니다. 일본에서 출토된 죠몽인들의 mtDNA하플로는 남쪽일수록 M7a1계열이 많고, 북쪽으로 갈수록 N9bM7a2가 많습니다. 그러나, 죠몽시대에도 D4가 없었던 것은 아닌 데, 예를 들어, 지난 2012년에 조사된 일본 혼슈 중부 산지에 위치한 나가노현의 유구라(湯倉)동굴에서 발견된 약 7900~7700년 전 죠몽시대 초기의 인골은 모계 mtDNA하플로는 D4b2인 것으로 밝혀져서, 그때까지 야요이시대에야 D4가 일본열도에 존재하기 시작했다는 통념이 일파되었습니다.

 

또한, 시노다켄이치팀이 얼마 전에 조사한 서북큐슈의 사세보시 시모모토야마이와카게(下本山岩陰)에서 발굴된 야요이시대 말기 인골인 샘플 3번의 경우, 모계 하플로가 D4a로 나오는데, 아직 논문에 나오지 않은 부계 하플로는 제가 유럽유전자은행(EBEL)에 있는 fastq화일을 다운받아서 분석한 바로는 한국인에게 가장 많이 나타나는 O1b2(K10)일 가능성이 있습니다(Y염색체로부터 획득한 SNP수가 매우 적어서, K10과 평행하는 다른 SNP들의 변이를 확인할 수 없기에 이 판단은 잠정적입니다). 같이 획득한 상염색체 화일을 상염색체 조상인구 구성성분 계산기(역시 제가 죠몽인성분을 비롯한 동아시아인 조상인구성성분을 중점적으로 식별하기 위해 개발한 KM29 상염색체 계산기)를 실행해서, 얻은 결과는 죠몽인 성분이 30.23%로 나왔습니다. 이는 평균적인 현대 일본인이 10%내외의 죠몽인 성분을 가지는 것에 비해 3배 정도 많은 것으로, 부계하플로 O1b2가 확실히 도래계라면, 모계의 D4a는 죠몽계라는 것을 추정할 수 있고, 장항 샘플 8번이 바로 D4a이므로, 이 하플로 역시, 죠몽계와 어떤 관계가 있을 수 있습니다. 현재까지 일본에서 발굴된 죠몽인의 D4는 대다수가 D4h2가 많은데, 앞으로, 고인골에서 DNA를 추출하는 기술의 발전으로 더 많은 죠몽시대와 야요이시대 고인골의 mtDNA하플로를 조사하면, 장항샘플들의 D4b1 D4a와의 어떤 관계가 있는지, 더 명확해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출처; 다음카페 분자인류학논단, 한국 가덕도 장항유적 출토 인골의 DNA 분석소개 및 해설-1, https://cafe.daum.net/molanthro/I4qd/119)

 

『……

가덕도 장항지구의 고인골 샘플들은 몇 년 전, 일부 언론에서 형질인류학적인 고인골의 두상, 매장방법 그리고, 모계 하플로의 초보적인 측정 등을 통해서, 한반도에 서유라시아계 인구집단이 신석기시대에 살았었다는 증거로서 제시되고, 한국인들의 서유라시아인에 대한 선망과 같은 감정과 결합하여 주목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정작 이 고인골이 위치한 지역과 아주 가까운 지역에, 잦은 교류를 하며, 인구집단간의 유전자 교류도 있었을 가능성이 큰 죠몽인과의 관계는 간과되었습니다. 이러한 문제는 일본열도에 위치한 여러 국가와의 관계에 있어서, 항상 한반도에 위치한 국가들이 우세한 위치에서 가르쳐주는 역할로서만 강조하고, 일본인의 조상들이 남겼을지도 모르는 한반도의 여러 유적이나 유물에 대해서는 그 가치를 절하하거나, 무시하는 고고학계나 역사학계 더 나아가 한국인들 전체의 일반적인 인식에서 비롯된 것은 아닌지를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앞서 언급한 바가 있지만, 어떤 고고학 유적에서 출토된 고인골의 부계나 모계의 하플로가 그 지역에 일반적인 하플로 유형과 달리, 먼 지역의 특수한 유형이 나오는 것을 그 고고학 유적 전체의 인구집단 전체로 확대해서는 실제 사실을 오도할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이전에 중국 산동성지역에서 발굴된 한 2500년 전 고인골의 모계 하플로가 서유라시아계통이어서, 산동성지역에 이미 오래전에 서유라시아계 집단이 있었다고 떠들썩했던 적이 있습니다. 이후에, 후속으로 나온 다른 논문에서 이 고인골의 모계 하플로를 다시 조사한 결과, 처음의 결과가 잘못된 것이라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웹상에는 처음의 잘못된 측정에 근거해서, 중국 산동성 지역에 서유라시아계 집단이 존재했다는 설이 꽤 나돌고 있습니다.

 

설사 중앙대 연구팀에서 측정했다는 고인골들 중에 하나 혹은 둘의 모계 하플로 H가 옳게 측정된 것이라해도, 이번 논문의 상염색체 분석에서 볼 수 있듯이, 가덕도 장항지구에 6300년 전 살았던 신석기인 집단 전체로는 동아시아인, 그중에서도 현대 일본인 및 한국인과 매우 가까운, 동북아시아 인구집단의 범주에 드는 사람들이었을 것이 거의 틀림없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번 논문에 나온 가덕도 장항지구의 고인골에서 현대한국인보다 많은 죠몽계 요소가 나온 것은 일본과 가까운 지리적 위치로 인해서, 잦은 인적 교류가 발생했을 가능성이 있는 한반도 남해안지역에서의 특수한 현상인지, 아니면 이러한 일이 신석기에만 발생하고, 이후의 청동기와 철기시대에는 일어나지 않은 것인지 혹은, 한반도 전체가 이전에 죠몽인이 넓게 퍼져 있었는데, 이들이 점차적으로 대륙으로부터 밀려오는 동아시아 주류 인구집단과 계속적으로 혼혈이 되어서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인지 등 여러 가지 의문이 여전히 남습니다. 고고학자들은 한반도 남부지역의 여러 지역과 일본 큐슈지역간의 흑요석교역이 많은 인적 교류의 가능성이 있는 직접적인 교역보다는 대마도와 같은 중간지대가 있고, 이 중간지대를 거쳐 온 흑요석이, 다시 남해안 지역의 하나의 큰 거점을 매개로 여러 지역에 전파되는 형태였다고 합니다. 이런 형태였다면, 굳이 현대일본인과 유사한 혹은 더 많은 죠몽인과의 혼혈이 발생할 수 있었을까하는 생각도 듭니다.

 

또한, 한반도내 죠몽계 유전자의 기원에 대한 탐색은 일본열도에 진입한 죠몽인의 이주루트에 대한 여러 가설들의 검증과도 연관됩니다. 현재 죠몽인에 대한 이주루트에 대해서, 동남아시아에서 중국 남부를 경유하여, 한반도를 거치지 않고, 일본열도로 바로 진입했다는 남방루트설과 중국 대륙 북부에서 한반도를 거쳐서, 일본열도로 진입했을 거라는 북방루트설이 대립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죠몽인의 치아가 동남아시아에 많은 Sundadonty라는 것과 죠몽인의 혈액형이 남방에서 많은 O형 유전자가 발견된 것, 죠몽인에 특징적인 모계 하플로 M7a에 근접한 모계 하플로 원형들이 동남아시아인들에게 많은 점 등 때문에, 남방루트설이 우세한 상황입니다만, 상염색체 f3, f4분석을 통해서는 현대 동아시아 주류집단이 탄생하기 전에, 분리되었을 거라는 점 외에는 동아시아의 남과 북의 여러 집단 중에 어떤 인구집단도 결정적인 확증을 줄 만큼 가깝다고 할 수 없다고 봅니다.

 

비록 타이완섬 원주민인 AmiAtayalf3분석에서 약간 가깝게 나오는 것이 남방계설의 근거가 될 수 있는 듯이 보이나, 타이완섬에 이들이 진입한 것은 죠몽인이 일본열도에 진입하고 난 뒤, 한참 후에 일어난 것으로, 이들이 타이완섬에 진입하기 전에 죠몽인의 조상과 중국대륙의 동남부에 같이 있었을 가능성도 매우 낮습니다. AmiAtayal인들의 원류는 중국 대륙의 양자강 이북의 동부 연안(현재의 산동성 남부 및 강소성 일대?)일 가능성이 크며, 이들은 신석기시대인 4~5천 년 전에서야 타이완섬에 진입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오히려, 신석기 후기까지 대륙의 동남부에는 말레이시아나 필리핀에 현재에도 일부 남아 있는 니그리토인과 형질인류학 및 상염색체적으로 유사한 Hoabinhian문화인의 조상들이 활동하던 지역이었고, 죠몽인이 남방에서부터 일본열도로 북상했다면 중간에 거쳤을 오키나와에는 약 2만년 전의 미나토가와인와 같은 집단이 있었으나, 이들 모두 형질인류학적으로나 상염색체상으로 죠몽인과는 다릅니다. 그러기에, 비록 발굴된 고인골 수가 적어서, 쉽지는 않겠지만, 이전보다 고인골에서 DNA를 추출하는 기술이 발전하였기에, 앞으로 더 많은 한반도의 고인골에 대해서, 상염색체 분석이 이루어져서, 이러한 의문들에 대해서도 해답을 줄 수 있었으면 합니다.

(출처; 다음카페 분자인류학논단, 한국 가덕도 장항유적 출토 인골의 DNA 분석소개 및 해설-2, https://cafe.daum.net/molanthro/I4qd/120)

 

 

 

참고자료

문화유산 연구지식포털, 2011 한국고고학저널, 부산 가덕도 장항유적,

https://portal.nrich.go.kr/kor/journalUsrDtlView.do?menuIdx=801&idx=&d_idx=249

 

연합뉴스, 8천 년 전 신석기시대 공동묘지 발견,

https://www.yna.co.kr/view/AKR20110217066800005

 

연합뉴스, 부산 가덕도 신석기 유적서 유골 추가 발굴,

https://news.v.daum.net/v/20110503100119537

 

다음카페 분자인류학논단, 한국 가덕도 장항유적 출토 인골의 DNA 분석소개 및 해설-1

https://cafe.daum.net/molanthro/I4qd/119

 

다음카페 분자인류학논단, 한국 가덕도 장항유적 출토 인골의 DNA 분석소개 및 해설-2

https://cafe.daum.net/molanthro/I4qd/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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