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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국-가사라국》 6. 환국과 신석기문화 (24)통영 연대도유적 본문

지음/《환국-가사라국》

《환국-가사라국》 6. 환국과 신석기문화 (24)통영 연대도유적

대야발 2024. 2. 17.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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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국-가사라국》

 

6. 환국과 신석기문화(24)

 

6.24 통영 연대도유적 7300년 전~6600년 전(BC53284660)

 

 

사적 제355(지정명칭은 통영 연대도패총). 경상남도 통영군 산양면 연곡리 24 일원이며 연대도에 위치한다. 연대도는 통영항에서 남쪽으로 18떨어져 있으며, 오곡도와 함께 연곡리를 이룬다. 섬은 경사가 급하고, 남쪽 해안에는 높이 10m가량의 해식애(海蝕崖)가 발달하였다. 북서쪽 해안의 오목한 곳에 연대마을이 있고 그 동쪽에 유적이 위치한다.

 

섬의 주봉에서 북동쪽으로 가장 깊은 골짜기가 흘러내려 삼각주상의 대지가 형성되어 있는 곳에 패총이 입지하고 있다. 조선시대까지는 이곳에 마을이 있었다고 하며, 발굴조사에서도 그 흔적을 찾을 수 있었다. 현재는 대부분 밭으로 경작되고 있으나 폐교가 된 초등학교 분교와 통신공사 분지점, 어패류 양식장 등을 만들면서 패총의 상당 부분이 파괴되었다. 패총의 최대 범위는 동서 약 240m, 남북 약 180m에 이르며, 패총의 동쪽 부분은 태풍에 의해 여러 차례 훼손되어 단애를 이루고 있다.

 

1980년대 초반부터 학계에 알려져 있었으나, 1987년 태풍 셀마에 의해 파괴되어 단애부가 생기면서 유적이 노출되었다. 발굴조사는 지구와 지구로 나누어져 이루어졌으며, ‘지구의 조사 부분에 대해서는 보고서가 발간되었다. ‘지구에서는 신석기시대 이른 시기(기원전 40002000년경)의 유물포함층과 무덤군이, ‘지구에서는 신석기 중기(기원전 2000년경) 이후의 유물포함층이 확인되었다.

 

보고서가 발간된 지구를 중심으로 층위를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 단애부: 태풍 셀마에 의해 파괴된 곳으로, 경작층인 표토로부터 암반을 제외하고 모두 13개의 자연층위로 나누어진다. 퇴적 위치나 각 구역의 상태에 따라 일률적인 층서 퇴적을 보이지 않으며 AM까지의 층 중 E, F, G, I, J층의 45개 층이 신석기시대층이다. 나머지는 모두 삼국시대 혹은 고려·조선시대의 층이다. 신석기시대층과 그 상부층 사이에는 상당한 시기차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간층이 전무한 것으로 보아, 현재 남아 있는 신석기시대 최상층의 상부는 후대에 교란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 단애부 : 역시 태풍 셀마에 의해 파괴된 곳으로, ‘층의 5개 층이 확인되었다. 이 중 층은 현재의 경작토로 삼국시대 이후의 유물이 혼재된 교란층이며, 나머지 층은 신석기시대층이다. ‘층은 흑갈색부식토층으로 잔자갈이 포함되어 있으며 후술할 2, 5, 7호 무덤 등이 속해 있다. ‘층은 흑갈색점토층으로 유물이 출토되지 않았으며 신석기시대의 생활면으로 추정된다. ‘층은 굴이 주종을 이루는 순패각층, ‘층은 흑갈색부식토층으로 불에 탄 돌들이 포함되어 있으며, ‘층의 아래층이다.

 

- AM피트 : 크게 5개의 층으로 구분되나 신석기시대층은 층과 층이다. 층은 다시 a∼Ⅳe층으로 나누어지는데 발굴 피트에 따라 각기 다른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a층은 흑갈색부식토층으로 잔자갈과 주먹만한 할석이 많이 포함된 층이다. b층은 암갈색혼토패층이다. c층은 혼토패층이나 패각이 우세한 층이다. 연대도 3호유구를 만든 사람들의 층이다. d층은 분포 위치가 다르지만 a층과 동일층으로 판단되며, 연대도 1호무덤을 만든 사람들의 층이다. e층은 작은 할석이 포함된 층으로 연대도 4호무덤이 포함되어 있다. 층은 흑갈색점토층으로 흑요석박편이 출토된다. 신석기시대의 생활면으로 판단된다.

 

- PU피트 : 역시 5개의 층으로 구분된다. 층은 현경작층으로 교란층, 층은 잔자갈이 포함된 흑갈색부식토층으로 연대도 2, 715호 무덤이 속하는 층이다. 층은 층의 아래층으로 굴이 주종인 패각층, 그 아래의 층은 큰 자갈과 할석이 포함된 흑갈색부식토층으로 연대도 5호무덤이 포함된 층이다. 층은 흑갈색점토층으로 신석기시대의 생활면으로 판단된다.

 

층위는 다음과 같이 크게 4개의 층으로 정리할 수 있다.

 

암반 바로 위에 형성된 흑갈색점토층으로 단애부F, 단애부, AM피트의 , PU피트의 층 등이다. 유물이 거의 출토되지 않으며 연대도 신석기시대 가장 이른 시기 사람들의 생활면으로 추정된다.

 

PU피트의 층에서 비교적 명확하게 나타나는 층으로 큰 자갈과 할석이 포함된 흑갈색부식토층이다. 융기문토기가 출토된다. 5호 무덤이 포함되어 있다.

 

굴을 주종으로 하는 패각층으로 단애부G, 단애부 의 다층, AM피트의 c, PU피트의 층 등이다.

 

단애부 E층과 J, 단애부 , AM피트의 a, d, PU피트의 층 등으로 융기문토기와 압인문토기가 많이 출토된다. 5호무덤을 제외한 대부분의 무덤이 포함된 층이다.

 

이를 종합하면 연대도유적 지구의 층위는 두 개의 문화층으로 구분할 수 있다. 상기 은 문화층이 아니다. 의 순패각층을 어디에 포함시키든 상기 의 문화층으로 나눌 수 있다. 는 융기문토기를 내는 남해안 신석기시대의 조기(기원전 40003000년경), 은 전기(기원전 30002000년경)에 편년된다.

 

지구는 지구의 서쪽에 위치하는 탐색 트렌치와 피트조사 구역이다. 골짜기를 이루는 부분에 형성된 깊은 패총은 약 20여 개의 층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바닥까지 완전히 발굴하지 않았다. ‘지구보다 늦은 시기에 속하는 남해안 태선집선문토기 이후의 유물과 유구가 조사된 것으로 약보고 되었다.

 

유구로는 무덤과 음식물 조리시설, 기둥구멍, 불을 지핀 시설 등이 조사되었다.

 

무덤은 모두 15기이나 이 가운데 인골이 같이 나온 경우는 13기이다. 조사지역 내에 매장시설이 밀집하고 있으므로 당시에 이미 생활공간과는 구별되는 매장구역이 정해져 있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무덤은 대개 구덩이를 파고 납작한 돌이나 토기편을 깐 뒤, 시신을 놓고 그 위를 작은 돌, 고운 흙, 토기조각 등으로 덮은 방식이다. 7호 무덤의 구덩이는 머리 쪽이 발치쪽 보다 넓어 이른바 두광족협(頭廣足狹)을 이룬다. 침향은 대개 서침인데 바다를 바라볼 수 있는 방향이다. 신전장이 대부분이나 특이하게 엎드려 묻은 것으로 보이는 부신장(俯身葬)도 있다. 모두 한 사람씩 묻었으나 2호 무덤의 경우 신생아의 뼈와 함께 모두 세 사람의 뼈가 찾아져 합장의 풍습도 있었다고 보인다. 무덤 주위나 내부에서 부장품도 많이 나왔다. 이 가운데 7·11·14호 무덤의 부장품은 질과 양에서 다른 무덤의 것과 뚜렷이 구별되어 신분지위상의 차이가 있었다고 추정된다.

 

그 밖에 3호 유구와 같은 몇몇 구덩이 시설, 기둥구멍 등이 조사되었으며, 장경호의 구경부가 거꾸로 박히고 그 주위가 불에 탄 시설도 있다. 구덩이 시설에서는 숯, 불탄 흙, 불탄 짐승 뼈 등이 출토되고 있어 매장풍습에 따른 시설물이거나 조리시설로 추정하고 있다.

 

무덤에서 나온 인골은 두개골의 장폭지수(長幅指數)79.0으로 중두(中頭)의 상한, 즉 단두(短頭)에 가깝다. 인골 가운데 키를 알아낼 수 있는 것으로는 남성의 두 예가 있는데 1167, 7161이다. 특히 인골에서 외이도골종(外耳道骨腫)과 하악융기(下顎隆起)가 잘 관찰된다. 이 현상은 어로, 잠수 등 바닷가의 생업형태와 관련되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유물은 토기, 석기, 골각기, 옥제품 등 인공유물 외에도 어패류와 다양한 동물유존체가 고루 출토되었다. 토기는 지구에서 주로 신석기 이른 시기의 무늬인 융기문(隆起文), 압인문(押引文), 세침선문(細沈線文) 등이, ‘지구에서는 중기 이후부터 신석기 마지막 단계의 토기들이 나온다. ‘지구에서는 소위 영선동식으로 불리는 압인문의 빈도가 높다. 입술은 대개 직립하나 융기문토기는 바라진 것이 많다. 특히 도도로키[]식토기를 비롯한 일본 조몬[繩文]시대의 토기도 출토되어 주목된다.

 

석기는 작살, 결합식조침 축부, 그물추 등의 어로구, 수렵구인 화살촉, 긁개, 자르개 등의 타제석기와, 도끼, , 대패, 갈돌과 갈판, 숫돌, 절구, 공이, 망치돌, 등의 마제석기 계통으로 나눌 수 있다. 작살은 모두 마연면을 가졌으며 4점 밖에 없는데 비해 화살촉이 41점이나 되는 것으로 보아 화살촉 가운데 어로구로 쓰인 것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화살촉의 형태는 촉머리와 날개의 경계가 직선인 것, 안쪽으로 오목한 것, 세장(細長)한 것, 정삼각형 등 다양하다. 결합식조침은 보통 축부를 돌로 만들고 침부는 동물의 뼈로 만드는데, 축부가 뼈로 된 것 1, 침부가 돌로 된 것도 1점씩 있어 특이하다. 그물추는 모두 석제로 납작한 냇돌의 가장자리를 떼어낸 것으로 강가나 내륙지방의 것보다는 크고 무거운 편이다. 화살촉은 흑요석이나 사누카이트 같은 단단한 재질의 석재를 떼어서 만든 것이 대부분이다. 특히 일본에서 주로 출토되는 석시(石匙)도 출토되었다. 사누카이트 암질은 흑요석과 함께 일본 규슈[九州]지역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마제석기 중 도끼, , 대패 같은 공구류는 날 부분만 간 것이 대부분이며 무덤의 부장품으로도 출토된다. 갈돌, 공이 등은 음식물의 조리와 가공에 쓰였을 것으로 보이지만 역시 부장품으로도 나타난다.

 

골각기로는 사슴 뼈로 만든 송곳과 찌르개가 가장 많으며, 각종 선각무늬를 새긴 장신구와 비녀, 결합식조침의 침부 등이 있다. 7호 무덤의 인골 발목에 채워진 상태로 출토된 발찌는 돌고래, 수달, 너구리의 이빨을 가공하여 만든 것이다. 또한 조개팔찌는 대부분 투박조개로 만들었다. 14호 무덤의 관옥형 팔찌와 2호 무덤 주변의 환옥제품은 옥제장신구의 기원을 신석기시대로 끌어올린 중요한 출토품이다.

 

자연유물도 다양하게 출토되었다. 사슴과와 멧돼지를 비롯한 육지의 짐승류와 오리, 논병아리류의 철새(조류), 도미를 비롯한 각종 어류, 상어류, 그리고 고래류를 포함하여 모두 40여 종의 척추동물이 나왔다. 연대도 신석기인들이 잡아먹은 조개류는 굴이 80% 정도로 대표적이다. 홍합, 소라, 전복 등이 적은 양 나오고 있다. 이는 조개류가 많이 나온 통영 상노대도유적이나 부산 동삼동패총 비해 매우 빈약한 양상을 띤다. 한편 유적 주변의 자연환경을 알아보기 위해 달팽이껍질을 분석한 결과에 의하면 모두 14종이 분류되었다. 전체의 8090%가 깨알달팽이를 비롯하여 삼림지역에 서식하는 9종의 달팽이로 이루어져 있어 당시의 유적 주변이 삼림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결과를 종합하면 남해도서지역뿐만 아니라 일본 규슈지역과의 교류나 문화권을 설정하는데 중요한 유적이며, 자연유물의 분석을 통한 당시의 자연환경과 식생활 연구에도 많은 도움이 된다. 무엇보다도 신석기시대의 무덤과 이를 통하여 사회구조나 계층의 문제, 인골에 대한 형질인류학적인 연구가 가능하게 되었다. PU피트 층의 조가비를 시료로 하여 방사성탄소연대측정을 한 결과 기원전 52564540, 기원전 53284660년의 연대를 얻었다.(임학종)

(출처; 문화유산 연구지식포털, 한국고고학사전, 신석기시대편, 통영 연대도유적,

http://portal.nrich.go.kr/kor/archeologyUsrView.do?menuIdx=795&idx=1073)

 

 

 

 

배기동의 고고학 기행

태풍 셀마가 깨운 7000년 전 멋쟁이 신석기인

한국일보 2022.07.30 11:00

 

우리 역사를 바꾸고 문화를 새롭게 인식하도록 한 발견들을 유적여행과 시간여행을 통해 다시 한번 음미한다. 고고학 유적과 유물에 담겨진 흥분과 아쉬움 그리고 새로운 깨달음을 함께 즐겨보자.

 

<22> 통영 연대도 패총 유적

연대도 7호무덤 발굴 당시 발찌가 출토된 상태(왼쪽)와 발찌를 정돈한 모습. 임학종 관장 제공

 

 

 

연대도 7호무덤 발굴 당시 발찌가 출토된 상태(왼쪽)와 발찌를 정돈한 모습. 임학종 관장 제공

 

 

신석기시대 연대도 해변의 멋쟁이 아저씨

 

신석기시대 원시인을 멋쟁이라고? 아마 너무 과장된 표현이라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이미 5만 년 전쯤 인류 역사에 예술이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했고, 세계 각지 유적에서도 소위 패션이라고 할 수 있는 유물이 보이기 시작한다. 신석기시대가 되면 몸을 장식하는 치레걸이 등 장신구들도 흔히 나타난다. 우리나라 신석기유적 중에서 가장 패션감각이 뛰어난 사람들이 발견된 곳이 경남 통영 앞바다 연대도의 7,000년 전 패총유적이다. 요즘처럼 개성을 중시하는 시대 감각으로 봐도 신석기시대 사람들의 패션 감각은 상상을 뛰어넘는다.

 

한려수도의 명품마을, 통영 연대도와 만지도

 

 

 

통영과 그 앞바다의 연대도와 만지도 지도. 그래픽=송정근기자

 

 

통영의 미륵도는 섬이지만 통영에서 짧은 다리 하나 건너면 되는 곳이니 사실상 육지와 다를 바가 없다. 게다가 통영 문화의 대표적 명소인 박경리문학관이나 전혁림미술관 등이 자리해 별도의 섬으로 생각하지 않게 된다. 섬의 남쪽 끝 달아항에서 배를 타려고 했지만 이미 떠났단다. 매표소 직원이 바로 옆 항구인 연명항에서 만지도로 간 다음, 거기서 연결된 출렁다리를 건너가란다. 배가 항구에서 나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승조원에게 수평선 위의 어느 섬이 연대도인지물으니 뱃머리 앞 빤히 보이는 삼각형 섬이란다. 귀인이 늦게 도착해서 이름이 만지(晩地)가 되었다는 섬에 내려, 해안을 따라 이어지는 나무덱을 걸어 출렁다리로 가는데 풍경이 일품이다. 다리 아래 하얀 모래톱에서 흰옷을 입고 물을 즐기는 여인의 모습이 섬과 푸른 바다를 더욱 아름답게 보이게 한다. 아마 내가 찾아가는 선사시대인들도 이 한려수도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그러한 모습이 아니었을까?

 

 

 

만지도에서 본 연대도 전경. 오른쪽은 두 섬을 잇는 출렁다리이고 왼쪽 끝 높은 전신주가 선 지점에 패총유적이 있다.

 

출렁다리를 건너 연대도에 들어서니 연곡리(煙谷里)라는 이정표가 나오고 반달모양의 만()을 둘러싸듯이 예쁘게 장식한 마을이 해안을 따라 펼쳐진다. 연대(煙臺)라는 이름은 조선시대 수군 통제영에서 설치한 봉수(신호로 올리던 불)에서 유래되었다. 마을 광장에 서 있는 '사패지 해제' 비석이 흥미롭다. 5대째 산다는 마을 분에게 들으니 이곳은 통영에 있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사당, 충렬사(忠烈祠)의 제수를 위해 왕이 내린 사패지(賜牌地)였는데 최근에야 해제되어 현재 사는 사람들의 재산권이 확보되었다고 하니 왕조의 유산이 현대의 삶에 이어지기도 한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패총, 문화재 간판만이 홀로 지키다

 

 

 

연대도 패총 사적지정 간판(사진 중앙)이 선 일대의 모습

 

 

연대도(煙臺島) 패총유적, 광장 한쪽에 위치한 경로당에서 나오는 할머니에게 어딘지를 물으니 모른단다. 말을 바꾸어서 "발굴하던 데가 어딘지 아십니까?" 물으니 ", 그릇쪼가리 나온 데 말이가?"라며 마을 반대편 끝에 해안으로 삐죽이 나와 있는 나지막한 언덕을 넘어가란다. 우선 점심을 하려고 들른 식당의 주인 내외가 마침 30여 년 전에 발굴현장 인부로 참여했다고 한다. 1988년 이후 4차례 발굴을 담당했던 임학종 전 김해박물관장을 전화로 연결해주니, 터진 봇물처럼 당시의 무용담으로 꽃을 피운다. 아마도 나의 방문이 그 내외의 30여 년 전 경이로운 기억을 되살렸나 보다. 바깥주인 서씨는 모기들이 많은지 망사가 달린 모자를 들고 앞장서서 길을 안내해 주었다.

 

 

 

연대도 시굴 당시 피트의 패각상태(5m 퇴적)1차 발굴조사 모습. 임학종 관장 제공

 

 

이제는 섬에 아이들이 없어서 폐교 후 환경교육센터로 변신한 구 연대초등학교 건물 동편에 평평한 잡초로 뒤덮여 있는 밭이 바로 패총을 발굴한 곳이란다. 사유지여서 철망으로 둘러쳐진 구역 내에 허물어진 집의 벽체가 남아 있는 곳에 국가사적 표지판이 서 있다. 패총, 또는 조개무지는 신석기시대 이후 바닷가에 살던 사람들이 음식물 쓰레기를 버린 곳이다. 그래서 오래된 패총들은 특별한 구조물이 없이 조개껍데기들이 흙과 섞여 쌓인 곳이 많다. 그런데 우리나라 다른 종류의 유적들과는 달리 패총에는 동물 뼈나 사람 뼈가 남아 있다. 조개껍데기 속에 든 회()성분이 석회암 동굴과 마찬가지로 알칼리성이라 유기물이 잘 썩지 않아서다. 그래서 옛날 사람들의 먹거리를 말할 수 있어 고고학자들이 좋아하는 유적이다.

 

 

 

연대도 최초 지표조사에서 수습한 토기(왼쪽)와 일본 규슈산 흑요석 원석. 임학종 관장 제공

 

 

연대도 패총 유적 역시 사슴, 멧돼지 등 뭍동물과 강치, 수달 등 바다 동물의 뼈뿐 아니라 사람 뼈까지 발견되어 세상 이목을 집중시킨 바 있다. 또 중요한 점은 아스라이 수평선 위로 보이는 대마도, 그리고 그 너머 일본 열도 규슈지역 사람들도 이곳에 오간 것을 그 지역 토기나, 그곳에서만 나는 흑요석들이 유적에 남아 있어 알 수 있다. 당시 남해 문화의 흐름을 알 수 있는 유적인 셈이다.

 

태풍 셀마가 7,000년의 잠을 깨우다

 

 

 

태풍 피해 이후 유적을 보존하기 위해 쌓은 제방. 발굴 인부로 참여했던 서태동씨가 드러난 패각층 단면을 가리키고 있다.

 

 

연대도 패총은 1980년대 엄청난 피해를 가져왔던 태풍 셀마가 이곳을 휩쓸고 지나가면서 해안 언덕이 깎여나간 단면에 흑요석편, 돌도끼, 토기들이 박혀있는 것이 드러나면서 발견됐다. 국립진주박물관이 1988년부터 1992년까지 네 차례 발굴을 진행했다. 발굴에서 당시로서는 깜짝 놀랄 장면이 나왔는데, 15기의 무덤이 드러난 마을 공동묘지에서 더 많은 인골들이 발굴된 것이다.

 

 

 

연대도 1호무덤의 발굴 장면(왼쪽)5호 인골의 두개골. 임학종 관장 제공

 

 

아마도 오늘날 사람들에게는 음식 쓰레기 더미 속에서 시체가 발견되었다고 하면 엽기적이란 생각이 들겠지만, 돌과 토기 등으로 바닥을 정리한 다음 몸을 하늘로 바로 누이고 많은 부장품과 함께 묻은 뒤 이 지역 해안에 보이는 예쁜 몽돌(바다자갈)들을 수북이 덮었으니 당연히 예의를 갖추고 장례를 지낸 것을 알 수 있다. 플라스틱이나 금속을 사용하지 않았던 이 시대에는 조개무지라 하더라도 다른 땅과 별반 다르게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자연공간과 자원을 사용하는 방법이 오늘날과는 근본적으로 달랐음을 보여준다.

 

연대도 패션

 

 

 

연대도 7호무덤에서 출토된 발찌. 동믈의 이빨을 가공했다. 임학종 관장 제공

 

 

연대도 패총에서 장신구를 착용한 인골이 다수 나왔는데, 그중 7호묘는 돌고래, 수달, 너구리 이빨을 가공해 만든 발찌를 차고 있던 남성의 무덤이었다. 발찌를 하고 있는 중년 남성은 요즘 여성들도 발찌를 하는 경우가 흔하지 않다는 점에서 정말 멋쟁이 아저씨이다. 유적에는 남아 있지 않지만, 개성있는 아름다움을 표현하기 위해 전신에 장식했을 것으로 상상된다. 이미 구석기시대에도 동물뼈뿐 아니라 다람쥐 꼬리털로 장식한 어린이가 프랑스에서 발견되기도 했다. 몸의 문신은 인류의 가장 오래된 예술행위라고 추정한다는 점에서 유적 인골에 남은 조가비로 만든 팔찌와 발찌 말고도 여러 가지 예쁜 것으로 아름답게 장식하였을 것이다. 오늘날에는 조개무지 속에서 인골뼈와 조가비 장신구 유물만으로 발견되지만 실제로는 당시 최고의 멋쟁이 패션이었을 것이다.

 

우리나라 최고의 해녀?

 

 

 

연대도 2호 무덤 인골에서 발견된 외이도골종(왼쪽)2·7호 무덤에서 발굴된 옥. 임학종 관장 제공

 

 

대부분의 연대도 남녀들은 잠수하면 흔히 생기는 귓병(外耳道骨腫)을 앓고 있었다. 이러한 병리학적 흔적이 남아 있는 연대도 여성의 인골은 세계무형유산으로 지정된 우리나라 해녀의 가장 오래된 흔적일 것이다. 연대도 주변에는 파도에 굴러서 둥글게 된 자갈돌이 깔린 해안이 보이고 곳곳에 바위가 드러난 해안지역이 많다. 굴이 압도적으로 나타나는 서해안 패총과는 달리 이곳에서 신석기시대 살았던 여인들은 어류뿐 아니라 두어 길 맑은 물속에 사는 소라고둥을 잡기 위해 다이빙을 했을 것이다. 고된 삶을 살면서도 아름다움을 추구한 이 여인들에게 내 마음속에도 인간적인 연민이 배어 나오는 여행길이다.

 

 

상상과 느낌이 있는 곳

 

통영예술이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곳이 바로 우리나라 최고의 선사예술유적 연대도 패총이다. 발찌를 비롯한 연대도의 개성이 넘치는 신체장식예술과 먼바다를 건너다니는 남해인들의 삶의 속성으로 미루어 음악 역시 그 만남의 현장에서 복합적으로 행해진 것을 상상할 수 있지 않을까? 세상에서 가장 풍요로운 해안의 삶에서 아름답게 꾸미고 즐겁게 노래하고 춤추는 시간이 넉넉한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그 모습을 보지는 못하지만, 팔찌와 발찌가 그러한 상상을 충분히 입증하는 셈이다. 아직도 유적에 남아 있을 그들의 집자리 등 삶의 흔적들도 궁금하기 짝이 없지만, 디지털시대에 신석기시대 남해의 멋쟁이 남녀의 아름다운 모습을 볼 수 있는 전시공간이 아직 없다는 현실은 더욱 아쉽기만 하다. 잡초밭 위로 솟은 달맞이꽃만이 오는 사람을 반기니·사진=배기동 전 국립중앙박물관장·한양대 명예교수

(출처; 한국일보, 배기동의 고고학 기행, 태풍 셀마가 깨운 7000년 전 멋쟁이 신석기인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2072517200000168)

 

 

 

 

<참고자료>

 

 

문화유산 연구지식포털, 한국고고학사전, 신석기시대편, 통영 연대도유적,

http://portal.nrich.go.kr/kor/archeologyUsrView.do?menuIdx=795&idx=1073

 

 

 

한국일보, 배기동의 고고학 기행, 태풍 셀마가 깨운 7000년 전 멋쟁이 신석기인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2072517200000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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