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16대 대한민국 대통령 노무현 무덤 고인돌 무덤 가운데서도 개석식 고인돌이다. 개석실 고인돌은 바둑판식 고인돌과 비슷한데, 받침돌이 없이 묘실을 덮개돌 너럭바위로 얹은 모양이다. 이 개석식 고인돌 무덤이야말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고인돌" 무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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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전만 하더라도

지금은 '고인돌' 하면 다들 선사 시대 '무덤'으로 알지만 100년 전만 하더라도 아무도 그게 무덤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학자들은 대개 알 수 없는 옛 유물을 보면 우선 옛 기록부터 뒤져 보는데, 이 고인돌은 중국이나 우리나라 옛 기록 어디에도 '무덤'이라 써 놓은 곳이 없다. 그러니 짐작조차 하지 못했던 것이다.


또 이런 고인돌이 있는 마을 사람들도 독배기, 바우배기, 마당바우, 떡바우, 고엔돌, 괸돌, 굄돌, 괸바우, 암탉바우, 장기바우, 띠엄바우, 거북바우, 두꺼비바우, 개구리바우, 장군바우, 왕바우, 말바우, 개바우라 한 것으로 보아 '무덤'으로 보지 않았다는 것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그래서 큰 돌이 필요하면 아무 거리낌 없이 이 바위를 갖다 썼다. 또 길을 내는 데 고인돌이 자리 잡고 있으면 아무 생각 없이 치워 버렸다.



이는 고인돌을 옛 사람들의 무덤으로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약 무덤으로 보았다면 그렇게 함부로 손대지는 못했을 것이다. 물론 이 고인돌을 무덤으로 보는 마을도 있었다. 이 마을 사람들은 고인돌을 곡식의 양을 헤아릴 때 쓰는 '되'를 닮았다 해서 '되무덤'이라 했고, 또 '가장 높은 것'을 뜻하는 말 '도(都)'를 붙여 '도무덤'이라 했다. 그러니까 아주 옛날 높은 사람을 묻었던 무덤으로 본 것이다. 하지만 이도 예부터 그랬다기보다는 고인돌이 무덤이라고 밝혀진 뒤부터 그렇게 보지 않았을까 싶다.

 
▲ 전북 고창군 고창읍 죽림리?상갑리 매산 마을 고인돌 이곳에는 고인돌 무덤이 500기 남짓 모여 있다. 강화군 하점면 부근리 고인돌이나 북한에 있는 아주 큰 탁자식 고인돌이 당시 그 지역의 ‘부족장 무덤’이라면 전라남?북도에서 볼 수 있는 고인돌 무덤 떼는 ‘마을 공동묘지’가 아니었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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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멘, 석붕, 지석묘, 괸돌, 고인돌

서양 사람들은 고인돌을 켈트어로 탁자란 뜻인 돌(Dol)과 돌이란 뜻인 멘(Men)을 합쳐 돌멘(Dolmen)이라 한다. 또 영어로는 탁자돌(Table Stone)이라 한다. 중국 사람들은 '돌로 지은 시렁'이라 하여 석붕(石棚 돌석․시렁붕)이라 하고, 일본 사람들은 지석묘(支石墓 지탱할지․돌석․무덤묘)라 한다.


'고인돌'은 덮개돌을 받침돌로 '괴었다' 해서 '고인돌'이다. 그런데 '괴었으면' '괸돌'이라 해야 하는데, 왜 '고인돌'이라 할까. 그 까닭을 알려면 표준국어사전을 살펴봐야 한다. '고이다'는 크게 세 가지 뜻으로 쓰인다.
 
①웅덩이에 물이 고이다.
②소나무가 쓰러지지 않도록 쇠막대기로 고여 놓았다.
③접시에 과일을 고이다.
여기서 '웅덩이에 물이 고이다' 할 때 쓰는 '고이다'(①) 말고 무얼 '받치다' 할 때 쓰는 '고이다'(②)에서 '고인돌' 이름이 태어났다. 덮개돌을 받침돌로 '고였다' 해서 '고인돌'이라 한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받치다'는 뜻으로 '고이다'보다는 '고이다'의 줄임말 '괴다'를 더 많이 쓰고 있다.
 
▲ 박수동의 《고인돌》(까치, 1978) 표지 “신문만화에 김성환의 〈고바우〉가 있다면 잡지만화에는 〈고인돌〉이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인기를 얻은 작품이다. 이 만화는 1974년부터 1991년까지 17년간 《선데이서울》에 연재한 성인만화다. 문학평론가 김현(1942∼1990)은 박수동의 〈고인돌〉을 ‘건강한 에로티시즘’이라 평했다. 박수동(1941∼ )은 성인용 〈고인돌〉이 인기를 끌자 곧바로 어린이잡지 《어깨동무》에 〈소년 고인돌〉을 그리기 시작한다. 고인돌의 독특한 먹물선은 성냥개비에 먹물을 찍어 그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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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흥수와 선사 시대 무덤 이름 '고인돌'

'고인돌' 이름을 논문에 맨 처음 쓴 사람은 한흥수(韓興洙, 1909∼?)다. 한흥수는 일제강점기 때 유럽에 건너가 고고학을 전공한 우리나라 1세대 고고학자다. 그는 도유호(都宥浩, 1905∼1982), 손진태(孫晋泰, 1900~?)와 함께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고인돌을 연구한 학자다. 손진태는 민속학자이고, 한흥수와 도유호는 유럽에서 고고학을 전공한 전문 학자인데, 두 사람은 해방 뒤 월북해 북한 고고학을 이끈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흥수는 1935년 〈조선의 거석문화 연구〉 논문에서 우리나라 거석문화를 선돌, 고인돌, 칠성바위, 독무덤으로 나누어 분석한다. 그가 왜 돌무덤을 고인돌이라 했는지는 논문에 나와 있지 않지만 그 뒤 학자들은 고인돌이란 이름을 자주 쓰기 시작한다. 하지만 학자들은 여전히 일본 학자들이 쓰는 지석묘(支石墓) 이름을 더 많이 썼다. 그러다 1984년 한국고고학연구소가 낸 <한국고고학개정용어집>에서 '지석묘'를 '고인돌'로 하자고 해 지금은 이 이름을 두루 쓰고 있다. 유물 이름을 정할 때는 그 유물의 성격을 단번에 짐작할 수 있게 해야 하는데, 사실 '고인돌'은 그 유물이 '무덤'이라는 것을 담고 있지는 않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 이름은 한번 들으면 웬만해서는 잊히지 않는 이름이란 점에서 아주 좋은 유물 이름이 아닌가 싶다.

 
▲ 핑매바위 전라남도 화순군 춘양면 대신리. 세계에 있는 고인돌 가운데 가장 크고 무거운 고인돌이다. 280톤쯤 되지 않을까 짐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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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고인돌 왕국

영국의 스톤헨지나 태평양 동쪽 끝 이스터 섬 모아이처럼 큰 돌로 지은 모든 것을 통틀어 '거석(巨石) 유물'이라 한다. 고인돌 또한 '큰 돌 유물' 가운데 하나다. 그런데 유물 조사가 잘 되어 있는 유럽의 거석 유물이 5만 5천 기(基) 남짓 되는데, 그 가운데 고인돌은 그렇게 많지 않다. 돌무덤이 많다고 하는 아일랜드에 1500기, 러시아 코카서스 지역에 2400기밖에 없다. 그런데 한반도에는 4만(북한에 1만 5천) 기에 달하는 고인돌이 있다.



이 가운데 전남 지방에만 2만 기가 있다. 물론 아일랜드나 러시아 말고 다른 나라에도 고인돌은 있다. 중국 요령 지방에 316기, 일본 큐슈 지방에 600기, 인도네시아에 600기쯤 있지만 한반도에 견주면 그 수가 아주 적다. 더구나 한반도처럼 작은 면적에 수많은 고인돌이 한곳에 몰려 있는 곳은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보기 힘들다. 또 그 숫자도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래서 세계 고고학자들은 우리나라를 '고인돌의 나라'라 한다. 바로 이 때문에 세계 유네스코 세계유산 위원회는 2000년 12월 2일, 전남 화순․전북 고창․인천 강화 지역 고인돌을 세계문화유산 제977호로 정한 것이다.

 
▲ 전라남도 화순군 도곡면 효산리 고인돌 잔치 모습 옛 사람들이 했던 방식 그대로 바윗돌을 한번 옮겨 봤다. 보통 어른 한 사람이 들 수 있는 무게를 50킬로그램이라 한다면, 10톤 정도 되는 바위를 끄려면 적어도 200명은 있어야 한다. 그런데 통나무를 깔고 옮기면 그냥 땅바닥에 놓고 당길 때보다 힘이 훨씬 덜 든다. 그래서 한 100명 남짓이면 끌 수 있다. 하지만 재현 행사를 지켜보면 많은 사람들이 달려들어 끌어도 여간해서는 움직이지 않고, 또 옮긴 거리도 얼마 되지 않는다. 평평한 길도 이렇게 힘든데 오르막길에서는 더 힘들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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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돌은 선사 시대 무덤 가운데 하나

선사 시대 무덤으로는 고인돌, 돌널무덤, 돌돌림무덤, 널무덤, 독무덤, 옹관묘처럼 갖가지 무덤이 있다. 고인돌은 그 가운데 하나다. 그렇다면 이 무덤은 언제부터 썼을까. 학자들마다 의견이 갈리지만 보통 지금으로부터 한 3000년 전에 아주 유행했던 무덤으로 보고 있다. 물론 고인돌을 무덤으로 보지 않고 제단이나 묘지를 상징하는 기념물로 보기도 한다.

고인돌의 기원에 대해서는, 한반도에서 시작되어 세계 여러 나라로 퍼졌다는 '자생설', 벼농사를 많이 짓는 동남아시아에서 바닷길을 타고 중국 동북 바닷가 지방과 우리나라로 전파되었다는 '남방 기원설', 한반도 북쪽 시베리아 카라수크 돌널무덤이 세계 여러 나라로 퍼져 고인돌 무덤을 쓰기 시작했다는 '북방 기원설', 이렇게 세 의견이 있다. 학자들은 이 가운데서 북방 기원설을 많이 따르고 있다. (1)

 
▲ 고인돌 채석장 전라남도 화순군 춘양면 대신리. 사진에서 보면 알겠지만 바위에 결이 나 있다. 이곳에 구멍을 내고 대추나무를 박은 뒤 물을 부어 적시면 대추나무가 불어 바윗돌이 쩍 갈라진다. 마을 사람들은 채석장 모습이 마치 갓을 쓰고 있는 사람 같다 해서 ‘감태바위’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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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 고인돌’ 연구 본격화… 지형·채석장 등 조사

김용권2024. 4. 25. 02:40
고창군·국립완주문화재연 협약
고창 죽림리 고인돌 유적. 고창군 제공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고인돌의 국내 최대 밀집지역인 전북 고창 죽림리 고인돌에 대한 연구가 본격 시작된다.

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은 국립완주문화재연구소와 ‘고창 죽림리 고인돌’ 학술 조사 연구와 활용을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했다고 24일 밝혔다.

죽림리 고인돌은 매산마을을 중심으로 550여 기의 고인돌이 모여 있는 유적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고인돌 군집으로 탁자 모양의 북방식, 천장 돌만 있는 개석식 등 다양한 형식이 분포돼 있어 학술 가치가 매우 큰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선사시대의 사회 구조, 정치 체계, 문화상 등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유적으로 인정받아 2000년 유네스코 세계유산(고창·화순·강화 고인돌 유적)에 등재됐다. 국가 중요 사적이자 한반도의 유일한 선사시대 유네스코 세계유산이다.

현재 사적으로 지정된 일대를 포함한 약 200만㎡ 범위에서 레이저를 활용해 지형을 정밀하게 측정하는 탐사 방법인 항공 라이더 탐사가 진행 중이다. 이를 통해 고인돌 묘역의 경관을 분석하고 분포 현황을 조사할 계획이다. 또 고인돌을 이룬 석재와 토양을 분석해 채석장 산지와 관련한 연구도 진행키로 했다.

고창군은 이를 통해 고인돌에 대한 보존·관리와 정비의 기초자료를 확보하고 과학적인 연구를 통해 세계 거석문화의 중심지로써의 가치와 위상을 강화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심덕섭 군수는 “국가 차원의 연구를 통해 고창 고인돌의 가치가 더욱 확대될 수 있게 긴밀하게 협력해 나가겠다”며 “앞으로도 체계적인 보존관리와 활용, 국내외 홍보를 통해 세계유산의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알리도록 하겠다”고 말했다.(2)

고창=김용권 기자 yg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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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돋보기](29) 고인돌 속 선조들의 발자취…강화역사박물관

윤태현2023. 1. 28. 07:00
 
강화도 북부에 170여기 분포해 2000년 유네스크 세계유산 등재
강화 부근리 고인돌 [촬영 윤태현]

 

[※편집자 주 = 인천은 1883년 인천항 개항 이후 국내에서 신문물을 처음 맞이하는 관문 도시 역할을 했습니다. 인천에서 시작된 '한국 최초'의 유산만 보더라도 철도·등대·서양식 호텔·공립 도서관·고속도로 등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연합뉴스 인천취재본부는 이처럼 인천의 역사와 정체성이 서린 박물관·전시관을 생생하고 다양하게 소개하려 합니다. 모두 30편으로 구성된 이번 시리즈 기사는 매주 토요일 1편씩 송고됩니다.]

강화 부근리 고인돌 앞에 설치된 유네스코 세계유산 명판 [촬영 윤태현]

 

(인천=연합뉴스) 윤태현 기자 = 우리나라 선사시대 대표 유적인 강화 부근리 고인돌은 이탈리아 '피사의 사탑'처럼 기울어진 형태가 특징이다.

정면에서 바라보면 수직선에서 오른쪽으로 15도가량 기울어져 있지만, 무너지지 않고 수천 년이 지난 현재까지 옛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언뜻 무너질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완벽에 가까운 균형을 맞추고 있는 셈이다.

이 고인돌은 보는 이들에게 '문자도 없던 고대 선조들이 어떻게 건축과 관련된 기술과 지혜를 후대에 전하고 활용했을까' 하는 궁금증을 자아낸다.

강화 부근리 고인돌 [촬영 윤태현]

 

동북아 최대 규모 탁자식 고인돌 유적…기능 놓고 의견 분분

사적으로 지정된 강화 부근리 고인돌의 건축 연대는 3천여 년 전 청동기시대로 추정된다.

받침돌(굄돌) 2개(가로 4.6m·세로 1.5m·폭 0.8m) 위에 덮개돌(가로 6.5m·세로 5.2m·폭 1.4m)이 놓여 있는 형태로, 탁자를 닮아 '탁자식 고인돌'에 속한다. 같은 형태의 단일 고인돌 중에서는 동북아시아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받침돌들이 모두 오른쪽으로 기울어져 있고 덮개돌은 왼쪽 아래로 기울어져 얹혀 있는데 오늘날까지 기울기 변화는 없는 것으로 분석된다.

 

학계는 당시 선조들이 돌들을 잘 짜 맞춰 균형을 잡는 기술을 가졌을 것으로 보고 있다. 받침돌 위쪽의 모난 부분을 다듬어 덮개돌을 잘 떠받칠 수 있도록 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고대 건축 기법 중에는 울퉁불퉁한 주춧돌 위에 나무기둥을 세울 때 기둥 밑단을 깎아 돌에 맞추는 '그렝이법'이 있는데 부근리 고인돌에도 비슷한 기법이 사용됐을 것이라는 게 학자들의 추정이다.

인력이 유일했던 당시 무거운 덮개돌을 받침돌 위에 올리는 과정에 대한 추정도 흥미롭다.

선조들은 받침돌을 먼저 세우고 일대를 흙으로 메워 언덕을 만들었다. 이어 언덕에 롤러 역할을 하는 통나무를 깐 뒤 덮개돌을 밧줄로 묶어 정상으로 끌어올렸다. 이후에는 받침돌이 드러나게끔 흙을 파냈다.

해당 덮개돌은 무게가 55t에 달하는데 100㎏당 성인 1명의 인력이 투입됐다고 가정하면 550명이 동원된 것으로 추산된다. 당시 고인돌을 만든 집단의 규모를 가늠해볼 수 있는 대목이다.

구혜영 강화군 학예연구사는 28일 "고인돌은 기본적으로 대부분 무덤이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부근리 고인돌은 규모가 커 당시 상징적인 기념물 역할도 했을 것으로 보인다"며 "고인돌의 기능에 대한 견해는 아직도 학계에서 분분하다"고 설명했다.

강화역사박물관에 전시된 고인돌 건축 과정 모형 [촬영 윤태현]

 

선사시대 생활상 간직한 강화 고인돌…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부근리 고인돌을 포함한 강화 고인돌은 다른 지역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특징을 지닌다.

총 170여 기의 고인돌이 강화도 북부에 분포돼 있는데 이 중 100여 기는 산기슭에, 60여 기는 산마루나 능선에, 10여 기는 평지에 자리 잡고 있다.

산기슭에서 많은 고인돌이 발견된 것이 매우 특이한 점인데 이는 당시 이곳 선조들이 터전으로 삼았던 곳이 어디였는지를 짐작케 한다.

 

평지 고인돌들은 해발 20∼30m에 있는데 그간 간척으로 인한 해안선 변화를 고려하면 청동기시대에는 바닷가였을 가능성이 높다는 게 학계의 분석이다.

이런 분석대로라면 당시 선조들은 물을 가까이하며 농경사회를 이루거나 어업활동을 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강화 고인돌의 또 다른 특징은 한 곳에 여러 기가 모여 있다는 점이다.

이는 선조들이 고인돌 건축 자리를 미리 골랐다는 뜻으로 해석되며 장례와 제사를 지내는 장제(葬制) 문화를 이뤘다고도 볼 수 있다.

강화 고인돌에서 발견된 팽이형토기·돌창·바퀴날도끼 등 서북한 지역 유물은 당시 강화도와 서북한 지역 사이에 교류 활동이 있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이밖에도 강화 고인돌에는 선사시대 생활상을 들여다볼 수 있는 흔적들이 많다.

강화 고인돌의 이 같은 역사적 의미가 널리 알려지면서 유네스코는 2000년 전북 고창·전남 화순 고인돌과 함께 세계유산으로 지정했다.

강화역사박물관 입구 [촬영 윤태현]

 

선사시대∼근대 강화도 역사를 한눈에…연간 18만명 찾는 명소

부근리 고인돌 인근에 있는 강화역사박물관(연면적 4천233㎡·지하 1층∼지상 2층)은 선사시대부터 근대까지의 강화도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이다.

이 박물관은 강화도에서 출토된 유물들을 전시·보존·연구하기 위해 2010년 설립됐다.

연평균 관람객은 18만여 명이다. 지난해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6만여 명이 다녀갔다.

이곳에서는 구석기·신석기·청동기시대 선조들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으며 삼국·통일신라·고려·조선시대와 근대까지 강화도에서 벌어진 다양한 역사적 사건들도 글과 사진 등을 통해 자세히 살펴볼 수 있다.

전시실에서는 주먹도끼·빗살무늬 토기·돌칼 등의 유물들을 접할 수 있고 고인돌의 건축 과정을 재현한 모형들은 이곳에서 빼놓지 말고 꼭 관람해야 하는 전시물로 꼽힌다.

박물관은 매주 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오전 9시∼오후 6시 운영되며 입장료는 어린이·청소년·군인 2천원, 성인 3천원이다. 6세 이하 아동과 65세 이상 노인은 무료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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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 돋보기]고추 널어놨는데..알고보니 '평범한 바위' 아닌 '돌무덤'

박준수2024. 8. 21. 10:21
 
고인돌 596기 밀집, 선사문화 '한눈에'
1995년 보검재 계곡 일대 처음 발견
고인돌 제작·축조 과정 '원형 그대로'
방문자센터 신축공사 연말 완공 예정
▲세계유산 화순고인돌 유적지 표지석

전북 고창·인천 강화도와 더불어 우리나라 청동기시대 선사문화를 한눈에 보여주는 전남 화순 고인돌 유적.

화순 고인돌은 2,000~3,000년 전에 축조됐으며 청동기시대 문화가 집약된 대표적인 유적입니다.

이를 통해 선사시대 문화상을 파악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사회구조, 정치체계는 물론 당시 사람들의 정신세계를 엿볼 수 있습니다.

화순 고인돌 유적은 도곡면 효산리와 춘양면 대신리를 잇는 보검재 계곡을 따라 5㎞에 걸쳐 596기가 밀집 분포하고 있습니다.

▲화순 고인돌 유적지 전경[전남 화순군]
◇ 이영문 목포대 교수, 첫 발견
1995년 12월 이영문 목포대 교수에 의해 처음 발견, 학계에 보고되면서 비상한 관심을 모았습니다.

인근 마을 주민들은 그동안 평범한 바위로 생각해 고추를 널어놓거나 비문을 새기는 등 일상 속에서 무심코 지나쳐 왔으나 알고 보니 선사시대 돌무덤이었던 것입니다.

 

2000년 12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돼 관리되고 있습니다.

발견 당시 숲 속에 비교적 원형 그대로 유지돼 보존상태가 매우 양호했습니다.

특히 산의 정상부에는 돌을 채석한 것으로 추정되는 채석장이 있는 등 고인돌 제작과정을 한눈에 볼 수 있습니다.
◇ 지석천과 불과 2㎞ 거리
이곳은 영산강 지류인 지석천과는 불과 2㎞ 정도밖에 떨어져 있지 않으며, 계곡과 인근 마을뿐 아니라 주변 평지와 구릉에도 많은 고인돌이 분포하고 있습니다.

화순 고인돌은 크게 6개 구역으로 구분되고 있습니다.

- 괴바위 고인돌지구(47기) : 괴바위는 고양이 바위의 옛말이며 농작물에 피해를 주는 쥐를 막기 위해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고인돌 지구에서 가장 먼저 볼 수 있는 곳에 위치해 있고, 덮개돌의 규모가 가장 큽니다.

덮개돌 크기는 200~530㎝이며, 장방형, 마름모형, 귀갑형 등 형태가 다양합니다.

- 관청바위 고인돌지구(190기) : 관청바위는 보성 원님이 보검재를 넘다가 큰 바위에서 주민의 민원을 해결한 데서 이름이 지어졌습니다.

고인돌의 밀집도가 가장 높고 대형 고인돌이 가장 많이 분포하고 있습니다.

특히 산 정상부에는 석재를 채석한 것으로 추정되는 채석장이 있습니다.

- 달바위 고인돌지구(40기) : 덮개돌 모양이 달처럼 둥글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효산리 보검재 고개를 넘어가기 전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으며, 일부 덮개돌에는 채석 당시의 흔적이 뚜렷하게 남아 있습니다.

▲화순 고인돌에서 가장 규모가 큰 핑매바위 [전남 화순군]

- 핑매바위 고인돌지구(133기) : 마고 할머니가 운주사를 축조하기 위해 거대한 돌을 행주치마에 담아 운반하는 과정에서 떨어트린 돌이라는 유래를 가지고 있습니다.

화순 고인돌에서 가장 큰 규모로 약 280t으로 추정되며 무덤의 기능보다는 상징적인 기념물로 생각됩니다.

▲암석이 갓 모양과 닮았다고 해서 이름 지어진 감태바위 [전남 화순군]

- 감태바위 고인돌지구(140기) : 암석이 갓 모양과 닮았다고 해서 감태라고 합니다.

감태는 갓의 옛말입니다.

거대한 덮개돌 아래 노출된 무덤방 등이 그대로 보존돼 있어 고인돌의 축조과정을 한 곳에서 종합적으로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 대신리 발굴지(46기) : 화순 고인돌유적의 성격을 파악하기 위해 35기의 고인돌이 발굴 조사돼 원형 그대로 복원해 교육의 장으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출토유물은 의례용기인 붉은간토기, 무문토기, 직물을 짜는 가락바퀴, 곡식을 가공하는 갈돌과 갈판, 석촉 등이 있습니다.
◇ 석기만들기·불활용 등 선사체험 인기

화순 고인돌 공원에는 3,000년 전 청동기 시대 사람들이 살았던 선사체험장이 있습니다.

단순히 고인돌 유적을 보는 것에서 선사시대인들의 삶과 문화를 직접 체험할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에서 조성됐습니다.

선사체험장은 청동기 전기와 후기 마을로 나뉘어 움집 등 다양한 생활공간과 재미있는 체험 프로그램이 마련돼 방문객들의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선사체험장을 관람하는 방문객들 [전남 화순군]

선사마을이 재현된 공간에서 '불을 찾아서'라는 원시인들의 삶을 조명한 영화를 관람하는 것을 비롯 사진전, 공연, 벽화, 시장 구경을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석기·토기만들기, 고인돌끌기, 사냥, 불(火) 활용, 먹거리 등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습니다.
◇ 10월 말, 고인돌 국화 축제 개최
▲올해 연말 완공 예정인 방문자센터 조감도 [전남 화순군]

탐방객들이 고인돌 유적을 보다 편리하고 생생하게 체험하도록 현재 방문자센터와 관리사무실 신축공사가 올해 연말 완공을 목표로 한창 진행되고 있습니다.

한편, 화순 고인돌 유적지에서는 매년 10월 말 국화 축제가 열립니다.

국화를 비롯해 코스모스, 해바라기 등 다채로운 가을꽃과 관련 조형물을 감상할 수 있어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4)

#화순고인돌 #유네스코세계유산 #선사시대 #국화축제 #화순 #전남 #전라도돋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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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1) [차근차근 한국미술사 1] 선사 시대 무덤 ‘고인돌’ 이름의 내력 1화'고인돌'은 왜 '고인돌'이라 하는 걸까?

 

 

(2) ‘고창 고인돌’ 연구 본격화… 지형·채석장 등 조사 (daum.net) 2024. 4. 25.

 

 

(3)  [인천돋보기](29) 고인돌 속 선조들의 발자취…강화역사박물관 (daum.net) 2023. 1. 28.  

 

 

(4) [전라도 돋보기]고추 널어놨는데..알고보니 '평범한 바위' 아닌 '돌무덤' (daum.net) 2024. 8. 21  

 

 

 

 

<참고자료>

 

 

 

고인돌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Dolmen - Wikipedia

 

 

 

돌무덤(石塚)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aks.ac.kr)

 

 

 

대한민국의 세계유산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국가문화유산포털 | 한국의 세계유산 (heritage.go.kr)

 

 


Gochang, Hwasun and Ganghwa Dolmen Sites - UNESCO World Heritage Centre

 

 

 

 

 

 

 

한국인의 고향, ‘신비의 왕국’ 찾았다(I) – Sciencetimes이종호.2007.09.04

 

 

 

한국인의 고향, ‘신비의 왕국’ 찾았다(2) – Sciencetimes이종호.2007.09.10

 

 

 

한국인의 고향, ‘신비의 왕국’ 찾았다(3) – Sciencetimes이종호.2007.09.17

 

 

 

5천년을 거슬러 올라가는 고인돌별자리 – Sciencetimes이종호.2007.09.30

 

 


한국인의 고향, ‘신비의 왕국’ 찾았다(5) – Sciencetimes
이종호.2007.10.09

 

 

 

한국인의 고향, ‘신비의 왕국’ 찾았다(6) – Sciencetimes이종호.2007.10.17

 

 

 

한국인의 고향, ‘신비의 왕국’ 찾았다(7) – Sciencetimes이종호.2007.10.30

 

 

 

요하지역에서 발견된 ‘신비의 왕국’ – Sciencetimes이종호.2007.11.06

 

 

 

동이족도 중국인이다 – Sciencetimes이종호.2007.11.20

 

 

 

 


[한국문화탐방] 거석문화, 고인돌(1) < 투고·기고 < 오피니언 < 기사본문 - 천지일보 (newscj.com)

 

 

 

[한국문화탐방] 거석문화, 고인돌(3) < 투고·기고 < 오피니언 < 기사본문 - 천지일보 (newscj.com)  

 

 

 

청주 월오동서 청동기시대 고인돌 20여기 발굴 | 연합뉴스 (yna.co.kr)2020-05-05

 

 

 

의정부서 선사시대 선돌 발견..남근·여근석 쌍에 성혈도 (daum.net)2020.12.03

 
 
 

 

 

[단독]연천 민통선은 숨은 '고인돌 보고'..'별자리 고인돌' 주목 - kakaoTV

 

 


서구에도 고인돌이 있다는 사실 아시나요? - 인천아이뷰 (incheon.go.kr)2019.08.26

 

 

 

[단독]연천 민통선은 숨은 '고인돌 보고'..'별자리 고인돌' 주목 (daum.net)2019.12.10

 

 

 

[단독] 백제 고도에서 웬 청동기시대 고인돌? (daum.net)2018.05.23

 

 

 

나주 전원주택단지 개발 현장서 고인돌 무더기 발견 | 세계일보 (segye.com)2018-07-13

 

 

 

고인돌에 고추 말리고 미끄럼 타고…거기가 어디? | 중앙일보 (joongang.co.kr)2018.11.24

 

 

 


춘천 개인묘지 덮개돌만 길이 약 5m 고인돌 방치 (daum.net)
2017.10.16

 

 

 


고조선의 재발견 천제단 '고인돌 벽화':플러스 코리아(Plus Korea)
2016/09/11

 

 

 

 

 

 

고조선의 재발견 천제단 '고인돌 벽화':플러스 코리아(Plus Korea)2016/09/11

 

 

 


광개토대왕비 유래는 선돌인가? (brainmedia.co.kr)
2015.08.13

 

 

 

동해안에서 청동기시대 탁자식 고인돌 발견 (daum.net)2014.11.20

 

 

 


[기고]오지에서 잠자고 있는 문화재들 | 세계일보 (segye.com)
2008-11-19

 

 

 

 

 

 

 

선사시대 비밀의 문 고인돌

KBS 역사스페셜 – 북한문화유산시리즈 4편, 고인돌왕국 고조선 / KBS 2001.10.27 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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