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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고조선 고고학 (15) 부여 송국리유적

대야발 2025. 2. 2.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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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일났습니다. 지금 마을 이곳저곳에 흩어져있는 고분에 도굴꾼들이 드나들고 있습니다.”

1974년 4월 어느 날 안승주 공주대 교수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충남 부여 초촌면 송국리 주민 최영보씨였다.

최씨는 공주 남산리 유적 조사 때 잡역을 도와준 인연으로 안교수와 알고 지내던 사이였다. 4월19일 안교수는 김영배 국립공주박물관장과 함께 현장으로 달려갔다. 현장은 소나무가 총총히 들어서 있어 현지 주민의 안내 없이는 찾을 수 없는 곳이었다.

 

 

 

1974년 4월 충남 부여 송국리 돌널무덤에서 모습을 드러낸 청동기 시대 유물. 도굴의 화를 피해 기적적으로 간직되어 있었다.|국립부여박물관 제공

 

 

 

최씨가 지목한 지점에서 소나무 일부를 파 옮기고, 흙을 약 20㎝ 걷어내자 덮개돌의 윤곽이 드러났다. 고인돌의 덮개돌처럼 컸다.(크기 260×120㎝, 두께 약 20㎝ 규모)

주민 20여 명의 협조를 얻어 낑낑 대며 덮개돌을 들어 올려 세울 수 있었다.

 

 

그 속에서 돌널(석관)이 보였고, 돌널 안은 흙과 돌덩이가 채워져 있었다. 내심 걱정했다. 매몰된 형태가 고르지 않았기 때문에 도굴이 의심되었다.(실제로 1974년 6월 근처에서 도굴된 옹관과, 대롱옥 목걸이가 압수되어 이듬해 국립부여박물관에 귀속되기도 했다.)

 

 

 

송국리 1호 돌널무덤에서 출토된 유물들. 요령식 청동검 뿐 아니라 송국리형 도기와 간돌검, 청동끌, 대롱옥, 곱은옥, 화살척 등 33점이 확인됐다.|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돌널 안에서 요령식 동검이…

 

반신반의하며 내부 흙을 걷어내자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바닥면에 요령식 청동검과 함께 청동끌, 대롱옥, 곱은옥, 화살촉, 간돌검(마제석검) 등 33점의 유물이 고이 놓여져 있는 것이 아닌가.

 

 

이중 요령식 동검은 1950년 무렵부터 중국 요령성(遼寧省·라오닝성)에서 집중 출토되던 청동검이다. 중국식 악기인 비파를 닮았다고 해서 비파형 동검이나, 혹은 발해연안에서 집중 출토된다해서 발해연안식 동검 등 다양한 명칭으로 일컬어진다. 기원전 9~8세기 유물로 편년된다.

 

 

그런데 송국리 출토품은 전형적인 중국식 동검과는 다르다. 슴베(자루 속에 들어가는 부분)의 한쪽에 홈이 파진 형식으로 요령지방에서는 보이지 않고 한반도 중서부와 남부에서만 보이는 ‘한국산’이다.

 

 

그런 유물이 다름아닌 한반도에서, 그것도 출토지가 확실한 송국리 돌널 무덤에서 확인된 것이다.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발견이어서 언론의 대대적인 보도가 이어졌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송국리 1호 돌널무덤에서 출토된 청동검은 중국 요령성(라오닝성) 일대에서 출토되는 기원전 9~8세기 양식과 같다. 그러나 송국리 출토품은 슴베 한쪽에 홈을 팠다. 요령지방에서는 보이지 않고 한반도 중서부와 남부에서만 보이는 ‘한국산’이다.

 

 

 

왜냐면 일제강점기부터 일본학자들은 “한반도에서는 원시적인 석기시대에 머무르고 있다가 중국에서 청동기와 철기 같은 선진문화가 한꺼번에 유입되면서 석기-금속기가 함께 쓰였다”는 이른바 ‘금석병용기’의 용어를 쓰고 있었다.

 

 

물론 1960년대부터 대전 괴정동(1967)과 화순 대곡리(1971) 등에서 청동유물이 발굴되기는 했다.

그러나 연대가 기원전 4~3세기 이상 올라가지 않았다. 그런 마당에 기원전 9~8세기부터 중국 동북방에서 유행한 요령식 청동검을 직접 수습했다면….

 

 

 

요령식 동검과 간돌검(마제석검)이 동반된 것도 의미심장했다. 일본학계는 기원전 4~3세기에 한반도와 일본에서 유행한 한국식동검(세형동검)이 간돌검의 모방형이라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송국리에서 간돌검이 기원전 9~8세기 유물인 요령식 동검이 출토됨으로써 일본학계의 주장은 허언으로 판명됐다.

 

 

 

중국과의 시차를 감안하더라도 한반도 청동기 연대를 기원전 8~7세기까지, 혹은 최소한 기원전 6~5세기까지 올려볼 수 있는 자료로 평가됐다.

게다가 요령식 동검과 간돌검(마제석검)이 동반된 것도 의미심장했다.

 

 

일본학자들은 ‘기원전 4~기원전 1세기’ 사이인 ‘청동기 후기~초기 철기시대’에 한반도~일본 열도에서 유행한 ‘한국식 동검’(세형동검)의 경우 간돌검을 모방·제작한 것으로 주장해왔다. 그런데 간돌검이 그런 한국식동검의 연대보다 200~300년 이상 앞선 요령식 동검과 함께 출토된 것이다. ‘한국식 동검과 함께’가 아니고….

 

 

이와함께 ‘곱은옥(곡옥)의 기원=일본’이라는 주장도 터무니 없다는 사실도 출토유물로 밝혀졌다.

이렇게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청동기 시대 고분에는 ‘송국리 1호 돌널무덤’의 명칭이 붙었다.

 

 

 

1975년 송국리 유적 정식발굴에서 출토된 청동도끼 거푸집. 인근 돌널 무덤에서 수습한 청동검도 이와같은 거푸집으로 자체 제작했을 것이다.|국립부여박물관 제공

 

 

 

 

■청동도끼 거푸집 출토…

 

1년 뒤인 1975년부터 국립중앙박물관이 송국리 정식발굴에 나섰다.

이 발굴에서 특히 주목되는 유물 두 점이 출토되었다. 그 중 하나는 대롱옥(관옥)을 뚫는데 사용한 송곳과, 그 송곳을 이용해서 제작한 것으로 보이는 대롱옥 6점이 인근의 두 구덩이에서 나왔다는 것이다. 이 일대는 옥기제작소로 추정된다.

 

 

또 하나는 한 집자리에서 청동도끼를 제작하는데 쓰인 거푸집이 확인된 것이다. 절반만 남아있어 정확한 모양은 알 수 없지만 부채꼴 모양의 청동도끼의 거푸집으로 보인다. 거푸집의 옆면에는 주조할 때 거푸집을 맞추기 위해 새긴 가는 눈금도 확인된다.

 

 

인근 1호 돌널무덤에서 수습한 청동검도 이와같은 거푸집으로 자체 제작했다는 사실을 증거해준다.

이후 지금까지 27차례 실시된 발굴에서 115기에 이르는 집자리와 유구, 다양한 청동기 및 석기 등 유물이 쏟아져 나왔다.

 

 

 

송국리 문화의 대표 ‘시그니처’는 ‘돼지코’ 모양의 원형 집자리다. 즉 원형 집자리의 바닥 한가운데 타원형의 구덩이를 파고 그 구덩이 속 양 끝에 중심기둥을 세운 구조인데 그 시기 한반도 남부 유적에서 폭넓게 보인다.|한국전통문화대 제공

 

 

 

■교과서에 실린 송국리

 

고고학계에는 ‘송국리 문화’(혹은 송국리 유형)라는 새로운 개념이 등장했다.

한국사 교과서에 그 명칭이 등장할만큼…. ‘송국리 문화’는 과연 어떤 특징을 갖고 있을까.

 

 

한반도 청동기 시대가 기원전 15세기에 시작되었다면 ‘송국리 문화’는 후반부(기원전 9~기원전 5세기)를 대표한다고 할 수 있다. 충청·전라도와 영남(동남부 제외)에서 폭넓게 나타난다.

 

 

한마디로 기원전 9세기부터 400년 정도를 감히 ‘송국리 시대’라 표현해도 무리는 없을 듯 싶다. ‘송국리 문화(혹은 송국리 유형)’의 양대 시그니처는 ‘원형 집자리’와 ‘도(토)기’라 할 수 있다.

 

 

 

이른바 ‘송국리식 도(토)기’도 송국리 문화를 대표하는 아이콘이다. 바닥이 좁고 몸통은 배부르며, 입이 오므라졌다가 살짝 바깥쪽으로 틀어지는 독특한 모양의 도기이다. |국립부여박물관 제공

 

 

 

 

그중 ‘돼지코’ 모양의 원형 집자리는 송국리 문화의 대표 아이콘이다. 즉 원형 집자리의 바닥 한가운데 타원형의 구덩이를 파고 그 구덩이 속 양 끝에 중심기둥을 세운 구조다. 영락없는 돼지코의 모습이다.

 

 

‘송국리형 도(토)기’도 빼놓을 수 없다. 바닥이 좁고 몸통은 배부르며, 입이 오므라졌다가 살짝 바깥쪽으로 틀어지는 독특한 도기이다. 모양이 한결같다. 아마도 농경활동으로 얻은 수확물이 많아지면서 보관을 쉽게 하기 위해 ‘입이 오므라진’ 형태를 선호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돼지코’ 집자리와 도기 외에도 송국리 문화를 상징하는 유구와 유물이 여럿 있다. 그중 집을 짓기 위해 벌채한 목재와, 목재 농경도구를 가공하는데 쓰인 홈자귀가 송국리에서 처음 등장했다. 또 송국리형 도기의 바닥을 뚫어 관으로 활용한 ‘독널무덤(옹관묘)’도 송국리에서 시작되어 한반도와 일본 북규슈 지역까지 유행했다.|국립부여박물관 제공

 

 

 

■쌀이 주된 식량

 

양대 시그니처 외에도 ‘송국리 문화’를 설명해주는 유구와 유물이 더 있다.

집을 짓기 위한 벌채용 나무와, 혹은 목재 농경 도구 가공용으로 쓰인 홈자귀가 그것이다.

 

 

또 두 개의 날로 수확의 효율성을 높인 ‘삼각형 돌날’도 ‘송국리형’이다. 기존에 날이 한쪽만 나있던 ‘반달돌칼’을 발전시켰다.

‘송국리 문화’ 중 또 하나의 지표유물은 일단병식(一段柄式·맨자루식) 간검돌이다. 손잡이(柄) 부분에 오목한 단(段·홈)이 없이 매끈한 형태를 띠는 검을 가리킨다. 살상력을 높이기 위해 마름모꼴로 제작한 화살촉도 눈에 띈다.

 

 

 

두 개의 날로 수확의 효율성을 높인 ‘삼각형 돌날’도 ‘송국리형’이다. 기존에 날이 한쪽만 나있던 ‘반달돌칼’을 발전시켰다. 또 손잡이 부분에 홈이 없이 매끈한 형태를 띠는 맨자루식(일단병식) 간돌검, 즉 마제석검도 송국리형이다.|국립부여박물관 제공·국립중앙박물관 설명

 

 

 

 

독널무덤(옹관묘)도 송국리 유형이다. 송국리식 도기 밑부분에 구멍을 뚫어 관으로 사용했다. 독널 무덤은 이후 한반도 남부는 물론 일본 규슈(九州) 북부 야요이(彌生) 시대 유적에서도 폭넓게 확인된다.

 

 

송국리에서는 수전(水田·물을 채워 벼를 재배하는 논) 방식의 벼농사가 주된 생업경제로 자리잡은 것으로 보인다. 집터와 저장구덩이에서는 다량의 탄화미(불탄 쌀)가 출토됐다. 또 볍씨 자국이 찍힌 도기와 쌀이 담긴 도기도 확인됐다. 쌀이 주된 식량원이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쌀만 먹지 않았다. 조와 기장, 콩, 팥, 밀 등과 견과류 등 8종의 불탄 곡물도 함께 확인됐다.

 

 

조리 과정에서 가열되어 눌어붙은 유기물과 그을음이 도기 안에서 확인되기도 했다. 다만 아직까지 벼농사를 지었다는 직접 증거가 되는 논과 밭 같은 경작유구는 확인되지 않았다.

 

 

 

집터와 저장구덩이에서는 다량의 ‘불에 탄 쌀’이 출토됐다. 쌀 외에도 조와 기장, 콩, 팥, 밀 등과 견과류 등 불탄 곡물이 여럿 보였다.|국립부여박물관 제공

 

 

 

■화재로 폭삭 내려앉은 건물

 

송국리에서 지금까지 확인된 집자리만 115기에 달한다. 대규모 공동체였음을 알 수 있다.

청동검과 청동끌 등의 고급 유물이 출토된 1호 돌널무덤은 송국리 사회의 최고 수장이었을 것이다.

 

 

이곳에서 확인된 대형 집자리는 지배자의 주거지였을 가능성이 짙다. 구릉 상부에서 확인된 80㎡(약 25평) 건물은 공공 집회장이나 작업장, 혹은 종교시절 등으로 쓰인 것으로 보인다.

 

 

 

볍씨 자국이 찍힌 도기와 쌀이 담긴 도기도 확인됐다. 또 도기 안이나 뚜껑에 눌러붙은 잔존 유기물도 보인다. 주식량인 쌀을 저장했고, 음식을 조리해서 먹은 흔적이다.|국립부여박물관 제공

 

 

 

상당수 건물 내부에서는 불탄 흙과 숯으로 채워져 있다. 화재로 소실된 것으로 보인다. 그 중에는 서까래와 마루도리가 그대로 내려앉은 집자리도 있다. 그 집자리는 우진각(隅進閣·앞뒤 사다리꼴이고 양측 삼각형인 지붕) 주택으로 보인다.

 

 

 

또 길이 20m 안팎인 지상식 건물(11×1칸·바닥이 지면 높이이거나 또는 지면보다 높은 건물) 2기가 확인됐다. 이 두 건물터를 둘러싼 나무 울타리와 함께 망루로 추정되는 건축물의 흔적도 보였다. 이 두 건물은 마을의 집단 의례와 관련된 물품이나 혹은 생산물을 저장하는 공간일 수 있다. 그 앞의 공간은 공공 집회장소로 보인다.

 

 

 

구릉 상부에서 확인된 약 25평짜리 건물은 공공 집회장이나 작업장, 혹은 종교시설 등으로 보인다. 화재로 서까래와 마루도리까지 폭삭 주저앉아 소실된 건물도 있다. 그 집자리는 우진각(隅進閣·앞뒤 사다리꼴이고 양측 삼각형인 지붕) 주택으로 복원된다.|국립부여박물관 제공

 

 

 

■택지조성용 흙 쌓기

 

그런데 지금까지의 발굴 성과는 양념에 불과한지도 모른다.

2900~2400년전 송국리 마을은 상상 이상의 사회를 이루고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

 

즉 얼마전 송국리 학술조사를 담당한 한국전통문화대가 아주 의미심장한 제27차 발굴 결과를 발표했다.

‘송국리 유적에서 택지 등 대지 조성을 위한 대규모 성토층과 함께 대형 나무 기둥열이 발견되었다’는 것이었다.

 

 

 

길이 20m 안팎인 지상식 건물(11×1칸·바닥이 지면 높이이거나 또는 지면보다 높은 건물) 2기도 확인됐다. 이 두 건물터를 둘러싼 나무 울타리와 함께 망루로 추정되는 건축물의 흔적도 보였다. 마을의 집단 의례와 관련된 물품이나 혹은 생산물을 저장하는 공간일 수 있다. 그 앞의 공간은 공공 집회장소로 보인다.|국립부여박물관 제공

 

 

 

얼핏 보면 너무 학술적인 내용 같지만, 곰곰히 따져보면 심상치않은 발굴성과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발굴 현장은 송국리 유적의 주 능선에서 남쪽으로 이어지는 경사면에 자리잡고 있다.

 

 

그런데 이번 발굴에서 택지를 포함한 대지 조성을 위한 성토(흙 쌓고 다지기)의 흔적이 300평(1000㎡) 이상 확인되었다. 성토작업이 무엇인가. 지금도 신도시 개발을 위해 들쭉날쭉한 땅을 고르게 만들려고 흙을 쌓고 다지지 않은가.

 

 

 

2024년 유적의 주 능선에서 남쪽으로 이어지는 경사면에서 이뤄진 한국전통문화대 박물관의 제27차 송국리 학술조사에서 택지를 포함한 대지 조성을 위해 흙을 쌓고 다지는 성토의 흔적이 300평 이상 확인되었다.|한국전통문화대 박물관 제공

 

 

 

송국리에서도 경사면의 위쪽 땅을 부채꼴 형태로 자른 뒤 그 깎아낸 흙을 활용하여 바닥면을 최대 140㎝ 정도로 견고하게 다지는 방식으로 조성된 흔적이 보였다. 이번에만 불쑥 발견된 것은 아니다. 1992년 9차 발굴부터 송국리 곳곳에서 확인되었다.

 

 

그러나 이전에는 한정된 양상으로만 보였는데, 이번에 매우 넓은 면적의 성토층이 나타난 것이다.

지금까지 송국리 발굴은 전체 면적의 10% 정도 밖에 진행하지 못했다. 따라서 추후 발굴조사에서 대지 조성용 성토층이 얼마나 더 확인될 지 가늠하기 어렵다.

 

 

 

이번 발굴에서 또한번 수수께끼 같은 유구가 드러났다. 동쪽과 서쪽에서 확인된 각 20m 정도 길이의 ‘2중 나무기둥열’이다. 동편의 나무기둥열은 대지조성용 성토구간에 포함되어 있었다.|한국전통문화대 박물관 제공

 

 

 

■열지은 나무기둥

 

이번 발굴에서 또한번 드러난 수수께끼 같은 유구가 있다. 발굴 지역의 동쪽과 서쪽에서 각각 확인된 각 20m 가량의 ‘나무기둥열(목주열)’이다. 둘 다 이중열이다.

 

 

서쪽 나무기둥열은 그냥 기존의 땅에 조성했고, 동쪽 나무기둥열은 대지를 성토한 뒤 박아 넣었다.

동쪽 기둥열의 경우 구멍 바닥에 석재(돌)가 놓여있는 것이 다수다. 아무래도 인공적으로 쌓은 성토층이니 바닥층이 단단하지 않았을 것이고, 그래서 석재를 놓아 고정시켰을 것이다.

 

 

 

동쪽과 서쪽에서 확인된 각 20m 정도 길이의 ‘나무기둥열’은 둘 다 이중열로 되어 있다. 서쪽 나무기둥열은 기존의 땅에 조성했고, 동쪽 나무기둥열은 대지를 성토한 뒤 박아 넣었다. 동쪽 기둥열의 경우 구멍 바닥에 석재(돌)가 놓여있는 것이 다수이다. 아무래도 성토층에 조성한 기둥구멍의 지반에 약해 석재로 보강했을 가능성이 짙다.|한국전통문화대 제공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이 있다. 나무기둥열이 이번에만 확인된게 아니라는 것이다.

‘성토층’이 확인됐던 1992년 9차 발굴 때부터 송국리 유적 전체에서 계속 나타나고 있다.

처음에는 마을을 외부의 침입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설치했던 나무울타리(목책)로 여겼다.

 

 

그러나 방어용이라면 구릉의 윤곽을 따라 빙 둘러서 조성되어 하는게 맞지 않은가. 하지만 확인되는 나무기둥열은 일직선상으로 배치되었다. 때문에 방어시설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나무기둥열은 ‘성토층’이 처음 확인됐던 1992년 9차 발굴 때부터 송국리 유적 전체에서 계속 나타나고 있다. 지금까지 발굴된 길이만 총연장 200m에 달한다. 그 용도를 두고는 설왕설래 중이다. 처음엔 마을을 지키기 위한 방어용으로 보았다. 그러나 직선 형태의 기둥열의 형태를 보면 방어용은 아닌 듯 싶다.|국립부여박물관·주동훈 한국전통문화대 박물관 선임연구원 제공

 

 

 

■롱하우스인가, 합숙시설인가

 

지금까지 드러난 나무기둥열의 총연장은 200m 이상이다. 향후 발굴 결과에 따라 그 길이는 더욱 확장될 수도 있다.

문제는 이 나무기둥열의 용도를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별의별 해석이 다 나오고 있다.

 

 

 

우선 나무기둥열이 1호 돌널 무덤 쪽을 향하고 있다는 점에서 제사를 지내기 위한 통로시설로 추정하는 견해가 있다. 그러나 근거는 없다. 또 북미 원주민 사회 등에서 보고되는 ‘롱하우스’를 떠올리는 연구도 있다.

 

 

 

나무기둥열이 1호 돌널 무덤 쪽을 향하고 있다는 점에서 제사를 지내기 위한 통로시설로 추정하는 견해가 있다. 그러나 근거는 희박하다. 하지만 1호 돌널무덤과 주요시설이 밀집된 구릉지역으로 가기 위한 시설로 판단된다.

 

 

 

‘롱하우스’는 평면이 옆으로 100m 이상이고 넓은 복도가 있으며, 칸을 막아 가구당 거실로 쓰는 주거형태이다. 게중에는 가구수가 60가구에 이르는 것도 있다. ‘롱하우스’ 공동체는 공통의 의식으로 관습법 유지에 관여하는 수장을 두고 있다.

 

 

 

또는 여러 지역의 민족지에서 보고되는 특정 연령대 미혼 남성 숙소를 떠올리는 견해도 있다. 성인식을 앞두거나 아니면 공동체의 행사에 참여하는 남녀를 위한 합숙 교육시설 등으로도 볼 수 있다는 것이다.(김경택 한국전통문화대 교수) 그러나 이 또한 해석의 폭을 넓히기 위한 추론이다.

 

 

 

총연장 200nm가 넘는 나무그둥열의 정체를 두고 북미 원주민이나 북유럽 바이킹 사회 등에서 보고되는 ‘롱하우스’를 떠올리기도 한다. ‘롱하우스’는 길이가100m 이상이고 넓은 복도가 있으며, 칸을 막아 가구당 거실로 쓰는 주거형태이다. 특정 연령대 미혼 남성 숙소를 떠올리는 견해도 있다. 성인식을 앞두거나 공동체의 행사에 참여하는 남녀를 위한 합숙 교육시설 등으로도 볼 수 있다는 것이다.|출처:위키피디아

 

 

 

 

■청동기 시대 계획 도시인데?

 

가만보니 2025년은 송국리에 대한 정식학술조사를 시작한지 꼭 50년이 지난 해다.

‘송국리’는 지금까지는 그저 송국리형 주거지와 도기 등 한반도 청동기 시대를 대표하는 유적 혹은 문화로만 알려져 왔다. 그러나 어떤가. 송국리는 그렇게 단순한 의미로 해석하기 어려울 것 같다.

 

2900~2400년 전 송국리는 상상 이상으로 어마어마한 마을 혹은 도시였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대규모 택지개발 계획에 따라 조성된…. 필자는 얼마전 부여 송국리 유적 현장을 찾아보았다.

 

그러나 전시관의 문은 닫혀있었고, 구릉 위 유적은 재현된 집 몇채 등만 덩그러니 보였을 뿐 너무도 휑한 모습이었다. 청동검이 출토된 1호 돌널 무덤 등의 광경도 다르지 않았다. 그래도 부여 하면 그래도 둘러봐야 할 유적으로 꾸며 볼 수는 없을까. (이 기사는 한국전통문화대의 김경택 교수와 주동훈 선임연구원, 이건무 전 국립중앙박물관장, 신희권 서울시립대 교수, 신영호 국립부여박물관장이 도움말과 자료를 제공해주었습니다.) lkh0745@naver.com

<참고자료>

국립부여박물관, <부여 송국리>(특별전 도록), 2017

국립중앙박물관, <송국리Ⅰ>(본문·도판), <국립박물관 고적조사보고 제11책>, 1979

한국전통문화대 박물관, ‘부여 송국리유적 제27차 발굴조사 2차 학술자문회의 자료집’, 2024

김경택·주동훈·박병욱, ‘부여 송국리 유적:조사 현황과 과제’, <부여 송국리>(특별전 도록), 국립부여박물관, 2017

안승주·김영배, ‘부여 송국리 요령식 동검 출토 석관묘’, <백제문화> 7·8, 공주대 백제문화연구소, 1975

김미경, ‘부여 송국리 선사 취락의 구조와 변천, <부여 송국리>(특별전 도록), 국립부여박물관, 2017

김경택, ‘청동기시대 복합사회 등장에 관한 일 고찰-송국리 유적을 중심으로, <호남고고학보> 46, 호남고고학회, 2014

경향신문, 이기환 역사 스토리텔러, ‘돼지코’ 집터로 유명한 ‘송국리’ 유적…택지 개발로 탄생한 청동기시대 도시?[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2025. 1. 31. (1)

 

 

 

https://youtu.be/pT9PjRxLdj8

 

 

 

 

 

 

 

 

<자료출처>

 

(1) https://v.daum.net/v/202501310500048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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