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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만주) (3) "淸 태조 누르하치는 신라인 후손" 본문

북국/청(만주)

청(만주) (3) "淸 태조 누르하치는 신라인 후손"

대야발 2025. 3. 30. 15:49

 

 

 

 

 

 

신라에서 고려로 왕조가 교체된 이후 신라왕실의 김씨 후손들은 중국으로 건너가 다시 김씨 왕조인 금나라를 세웠고, 이 금나라가 발전하여 중국 천하를 완벽하게 통일한 것이 바로 청나라 왕조입니다. 반만년 전 동아시아 최초의 국가 고조선이 밝달족에 의해 요서의 홍산문화 유적지에서 건국되었고, 중국 최후의 국가 역시 밝달족 신라의 후손들에 의해 민족의 영산 백두산 밑을 발상지로 하여 건국된 것입니다.

 

 

■ "淸 태조 누르하치는 신라인 후손"

고대사학자 심백강 인터뷰 인터뷰(下)- 동아시아의 문명의 시작과 끝

이상흔조선pub 기자   |2015-03-25

 

 

 

중원 대륙에서 발견되는 삼한시대 관련 유적

 

......

 

 

금나라와 청나라를 세운 신라의 후손들

 

-금나라 역사서에 금태조 아골타가 세운 금나라(1115~1234)의 시조인 함보(函普)가 신라인이라는 것을 밝혔는데 신라와 금나라와의 관계는 정확하게 어떻게 되는지요.

 

“금나라는 전성기에 북송을 멸망시키고, 남송과 서하를 굴복시키며 동아시아의 패자로 군림하며 120년간 중원을 다스렸습니다. 금나라에 대한 현재 중국 측 기록을 보면 여러 중국민족 가운데 하나인 여진족이 수립한 정권으로 기술했으나 이는 사실과 많이 다릅니다. 

 

 

금나라는 여진족, 거란족, 한족, 발해족, 고려족 등 다양한 성분으로 구성되어 있었지만, 나라를 세우고 경영하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한 통치세력은 신라족 계통이었습니다. 따라서 금나라는 신라족이 세운 정권이라고 말하는 것이 타당합니다.”

 
 

-여진족이 주요 구성원인데 어떻게 그렇게 보시는지요.

 

 

“중국 춘추전국 시대의 제나라와 노나라의 건국을 주도한 통치 집단은 서주로부터 이주해온 세력이었지만, 먼 옛날부터 토착민으로 이 지역에 거주한 원주민은 우이(嵎夷)와 내이(萊夷)였습니다. 이 두 민족은 제나라와 노나라의 민족을 구성하는데 주체 성분이지만, 제나라와 노나라를 우이족 내이족 정권으로 간주하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함보가 신라의 선진문명을 가지고 여진 지역으로 가서 추대를 받아 수령에 취임했고, 그 후손이 여러 여진족을 통일하여 세운 게 금나라입니다. 당연히 신라인이 세운 정권이라고 말하는 것이 합당합니다. 여진족이 세운 나라라면 여진족 중에 건국을 주도한 세력이 있어야 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하지만 함보와 그 후손 아골타는 신라인이라는 것이 청나라 이전 중국문헌에 보이는 공통된 견해입니다.”

 

 

 

-함보는 어떤 사람입니까.

 

 

“함보는 신라가 망할 무렵에 여진으로 터전을 옮겼으니 ‘고려에서 온 신라인’이라고 보는 것이 합당합니다. 《고려사》의 여러 기록을 종합하면 김극수(金克守)라는 분이 바로 함보와 동일인이 확실합니다. 이 분은 고려에서 망명한 신라왕족의 후예인 김행의 아들입니다.

 

 

《고려사》에는 금나라 시조의 후손들, 즉 아골타를 비롯하여 금의 초창기 왕들은 고려를 ‘부모의 나라’라 호칭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청나라 때 나온 《흠정만주원류고》는 금나라 국호도 신라왕의 김씨 성에서 유래했다고 단정하고 있습니다. 이는 청나라 당대 최고 학자들의 종합적인 연구 검토를 거친 끝에 내린 최후의 결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훗날 금나라를 세운 아골타의 후손들이 청나라(1616~1912)를 세웠다. 심백강 원장은 “동북 백두산 지역에 근거지를 두었던 만주족이 중국을 지배하면서 만리장성 너머 중국의 동북지방이 모두 중국의 강역에 포함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한족이 중원을 다스리던 한ㆍ당ㆍ송ㆍ명 시대에는 만리장성 너머 동북방을 제대로 지배한 적이 없습니다. 고조선ㆍ부여ㆍ고구려ㆍ선비ㆍ말갈ㆍ거란ㆍ여진 등 동이(東夷) 민족들이 이 지역의 토착민으로 활동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대만 또한 청나라의 강희 황제가 중국에 편입시킨 땅입니다.

 
 

오늘날 거대한 중국의 기초를 닦은 것은 한나라도 당나라도 송나라도 명나라도 아닌 바로 동이민족이 세운 청나라 왕조였던 것입니다. 청나라는 애신각라(愛新覺羅) 누루하치가 세운 나라로 원래 국호는 대금(大金)이었으며 그 아들 황태극에 이르러 비로소 국명을 청으로 개정했다는 사실을 많은 사람들이 잘 모르고 있습니다.”

 
 

심백강 원장은 청나라 황실의 성(姓) ‘애신각라(愛新覺羅)’의 의미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애신’은 만주어로 ‘금(金)’을 의미하며, ‘각라’는 여진어에서 ‘원방(遠方)’을 의미하는데 후에 ‘원지(遠支)’를 의미하는 말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결국 만주어 애신각라는 김원지(金遠支)인데 우리말로는 ‘김씨의 먼 지손’이 된다는 것이다. 심 원장의 부연설명은 이렇게 이어진다.

 
 

“아골타가 세운 금나라는 남송과 몽고의 협공으로 멸망했으나, 잔존세력들이 중국의 동북방지역에서 활동했습니다. 이후 명이 부패하고 방비가 허술해진 틈을 타 누루하치가 분열된 여진족의 각 부락을 통일하여 후금을 세웠습니다. 앞서 조상들이 세운 나라 이름을 그대로 계승한 것이죠. 2대 황제인 황태극이 국호를 금에서 청으로 바꾸면서 국명에 내재된 신라왕실 김씨의 흔적은 지워졌습니다. 하지만, 그 성씨인 ‘애신각라’ 네 글자에는 청나라가 신라 김씨의 후예라는 의미가 그대로 살아 있었습니다.”

 
 

-원장님 말씀을 들으니, 우리 역사를 대하는 시각부터 달라지는 느낌입니다.

 

 

“바로 그 점이 중요합니다. 신라에서 고려로 왕조가 교체된 이후 신라왕실의 김씨 후손들은 중국으로 건너가 다시 김씨 왕조인 금나라를 세웠고, 이 금나라가 발전하여 중국 천하를 완벽하게 통일한 것이 바로 청나라 왕조입니다. 반만년 전 동아시아 최초의 국가 고조선이 밝달족에 의해 요서의 홍산문화 유적지에서 건국되었고, 중국 최후의 국가 역시 밝달족 신라의 후손들에 의해 민족의 영산 백두산 밑을 발상지로 하여 건국된 것입니다.”

 
 

<자료출처>

 

"청 태조 누르하치는 신라인 후손" 고대사학자 심백강 인터뷰(下)- 동아시아의 문명의 시작과 끝 (archivesnews.com)2015-03-25

 

 

"淸 태조 누르하치는 신라인 후손" (chogabje.com) 이상흔(조선pub) [ 2015-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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