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상경용천부 (4)
력사를 찾아서
고구려 계승을 표방하며 대조영이 세운 발해(渤海.698~926)는 2백28년간 모두 네차례나 수도를 옮겼다. 그것도 건국한 지 1백년도 안된 기간에 이뤄졌다. 모란강 상류 동모산 지역(현 지린성 둔화현)에 도읍을 정한 발해는 740년께 서고성(지린성 허룽현)으로 첫 천도를 한다. 그리고 다시 755년 상경성(헤이룽장성 영안현)으로 옮겼고, 또 785년엔 두만강 부근의 팔련성(훈춘)으로 이전했으며, 793년에 다시 상경성으로 되돌아가 멸망할 때까지 도읍으로 삼았다. 755년 상경성으로의 두번째 천도는 당시 당나라에 반기를 들고 난을 일으킨 안록산의 침략 가능성에 대비해 옮긴 것이다. 발해 천도에 대해 연구한 임상선(교과서문제연구소 소장) 박사는 "건국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짧은 기간이었기에 천도하..

발해는 거란에 항복한 직후에 연해주 일대와 함경도 일대에서 복국(復國)전쟁이 벌어질 정도로 국력이 남아 있었다. 929년에 대연림은 후발해국을 세워 화북의 나라들과 외교관계를 맺었다. 938년에 정안국이 압록강 하류에서 건국됐다. 995년에 올야국(兀惹國)이 건국됐으나 금방 멸망했다. 1029년에 흥요국은 요와 전투를 벌이면서 고려와도 교류했으나 결국 다음해 멸망했다. 1116년에는 고영창이 대원국(대발해)을 세웠다. 발해인은 거의 200년 가까이 복국운동을 한 특이한 사람들이다. ■200년간 이어진 발해의 나라 되찾기 활동, 후발해국·정안국·을야국·대원국 등 세웠지만..2021. 7. 12. 09:05윤명철의 한국, 한국인 이야기 (57) 발해의 복국운동동국대 명예교수 사마르칸트대 교수 중국 지린성..

중국의 동북공정이 시작한 지 올해로 20년이다. 그 사이에 우리에게 발해는 중국과의 역사분쟁으로만 기억된다. 하지만 발해를 둘러싼 동아시아 각국의 역사 전쟁은 100여년간 벌어졌다. 일본이 만주 침략을 본격화하고, 만주와 한국은 하나의 역사라는 만선사관(滿鮮史觀)을 내세우며 비롯한 것이다. 그리고 지금 중국은 발해의 모든 역사를 자신들의 것으로 바꾸고 있다. 지난 한 세기 동안 숨 가쁘게 진행된 역사 전쟁, 그 사이에서 발해의 실체를 밝혀온 연구자들을 살펴보자. ■ [강인욱의 문화재전쟁] 러시아 학자가 찾은 발해, 일본과 중국은 왜 은폐했나강인욱 경희대 사학과 교수 2022. 5. 20. 00:32 ━발해 역사 지우기 100년 「 러 고고학자, 발해 상경성 첫 발굴오래 잊혔던 발해의 면모 되살려일본..

제1대 고왕의 뒤를 이은 제2대 무왕(武王, 재위 719∼737) 대무예와 제3대 문왕(文王, 재위 737∼793) 대흠무(大欽茂) 시기는 발해 역사의 전반기에 해당하며, 영토 확장과 제도 ‧ 문화면에서 큰 발전을 이룬 시기이다. 무왕은 인안(仁安)이라는 연호를 사용하였고, 시호에서 알 수 있듯이 무치(武治)에 큰 업적을 남겼다. 무왕이 727년 일본에 보낸 국서에서는 여러 나라를 주관하고 여러 번(蕃)을 총괄하며 고구려의 옛 터전을 수복하고 부여의 남은 풍속을 가졌다고 하였다. 『신당서』에는 발해가 부여 ‧ 옥저 ‧ 조선 등 바다 북쪽 여러 나라를 얻었다고 하였다. 이렇듯 무왕의 활발한 영역 확장은 필연적으로 주변국과 마찰을 야기하였고, 마침내 발해가 당나라와 무력 충돌하는 원인이 되었다. 무왕 대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