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력사를 찾아서

서기전 2333년 무렵 국가 단계로 진입한 고조선의 강역은 지금의 베이징 동쪽 난하로부터 동북쪽은 아르군 강과 흑룡강, 남으로는 한반도 남쪽 해안에 이르는 만주·한반도 전역에 걸쳐 있었다. 고조선이 기자조선으로 넘어가고 다시 위만조선을 거쳐 한4군으로 이어진다는 기존 통설은 잘못됐다. 기자조선과 위만조선, 한4군은 모두 고조선의 서쪽 변경지역인 베이징 인근 난하 동부지역, 요서지역에 있었으며, 주나라 망명객 기자의 조선은 서부 변경지역에 있던 고조선의 작은 거수국(제후국)에 지나지 않았다. 낙랑군 등 한4군은 한반도가 아니라 지금의 중국 요서지역에 있었다. ■고대사 통념 바꾼 '윤내현 고조선 연구' 개정판2015. 10. 22. [한겨레] 고조선 연구(상)윤내현 지음/만권당 1979년부..

현재 통용되는 한국 고대사 체계는 크게 잘못되어 있다. 단군조선의 뒤를 이어 중국 기자의 후손인 준왕과 중국 망명객인 위만이 한민족을 통치했고 위만조선의 뒤를 이어 서한의 행정구역인 한사군(낙랑군, 임둔군, 진번군, 현도군)이 설치됨으로써 한반도 북부는 중국의 영토에 편입된 것으로 되어 있다. 그 뒤를 이어 부여, 고구려, 읍루, 동옥저, 동예, 한(삼한) 등이 건국되었는데 고구려는 한사군의 현도군 지역에서 건국된 것으로 되어 있다. 이러한 한국 고대사 체계가 옳다면 고대에 한민족은 오랜 기간 중국의 지배를 받았다는 것이 된다. 고구려도 중국의 행정구역인 현도군에서 건국되었음으로 중국의 역사를 계승했다는 논리를 펼 수가 있게 된다. 그러나 기자국(기자국),위만조선, 한사군 등은 지금의 요서 지역 즉 ..
동부 만주 삼림 속에서 살던 여진족은, 서 만주 선비족의 후예인 거란족 요 왕조가 운영하던 2원 통치조직의 효용성을 일찍이 체득했고, 1126년에는 북중국 전체를 정복했다. 중국 역사상 1126년이란 한족이 만주족 왕조에 의해 두 번째로 중원으로부터 쫓겨난 사건을 상징한다. 고려와 금 나라의 창건자들은 모두 옛 고구려의 후계자임을 천명했다. 왕건은 신생왕국을 고구려를 본 따 고려라 불렀고, 금 나라는 실제로 만주 전체를 점거했다. 금사(金史) 기록을 보면, 완안부 시조 자신이 본래 고려(혹은 고구려)에서 왔고, 여진과 발해는 한 가족이라고 말한다. 김부식은 삼국사기를 편찬하면서 고려를 신라의 후계자로 상정하여, 같은 시대의 발해 (689-926) 237년 역사를 제외한 채, 통일신라 (677-935)..

다산 정약용은 중국 는 깊이 읽었지만, 우리 고전은 안 읽어국가가 아닌 서자 신분인 유득공이 발해 역사를 써야 하는 비극만 제대로 파악해 봐도 한사군은 서북한이 아닌 요동 지역일제 치하 일인이 쓴 우리 통사에 갇혀 벗어나지 못하는 대한민국수많은 가능성 열어두고 끊임없이 가설을 세워서 대토론을 해야 ■ 도올 김용옥, ‘식민사관으로 우리 역사 보면 안 돼’오종홍 기자 입력 2020.10.06 17:05수정 2020.11.09 18:56 역사복원을 위해 국학 대토론을 벌여야 한다. ▲도올 김용옥 선생이 서기2018.10.28. 서울 국립극단에서 노장을 주제로 강연을 했다. 자료: 도올티비 갈무리 서울대학 국사학과, 연세대, 고려대 역사학 출신 교수들이 중심을 이루고 있는 역사학회가 한국고대사학회다...

만주 쥬신의 시조이신 김함보는 금나라 태조(阿骨打)의 조상으로 『대금국지(大金國志)』, 『만주원류고(滿洲原流考)』에는 신라(新羅)에서 왔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그리고 사실 여부와는 상관없이 김함보가 신라의 마지막 왕인 경주 김씨이자 안동(安東) 김씨의 시조인 경순왕(敬順王 : 김부)의 후예라고 많이 알려져 있기도 합니다. 신라의 마지막 왕이었던 경순왕의 후손들이 일부는 금강산으로(마의태자 이야기), 또는 강원도 철원 땅으로, 일부는 장백산(백두산)으로 들어가서 후일을 기약했다는 이야기들이 많이 있지요. 시기적으로 봐서는 신라 부흥운동이 실패하자 잔여세력들이 장백산으로 만주로 이동해갔을 것으로 추정할 수도 있지요. ■ 김운회의 '대쥬신을 찾아서' 사라진 ‘영원한 신라’의 꿈 : Millennium Sh..
말갈이라 부르든 여진이라 부르든 간에 그들과 우리는 배달 고조선 고구려를 거쳐 이어온 같은 강역의 같은 뿌리에서 출발한 같은 역사일 수밖에 없다. 그들과 우리는 ‘친척 집안’이며 일가(一家)이다. 금나라의 뿌리가 신라에서 나왔고 그 백성들이 고구려와 발해 사람들이었고 그 땅이 우리 선조들이 살던 곳이라면 당연히 우리의 역사이다. 따라서 이에 대한 새로운 각도에서의 전향적인 연구와 인식이 절실하다. ■ 금나라, 청나라를 세운 신라의 후예신완순 입력 2016.04.05 11:31수정 2018.11.19 23:04 금나라는 대륙 북부를, 청나라는 모두 차지했다. 신라인 김함보 후예가 세운 여진 금(金)나라... 소중화를 자처한 조선시대의 사대주의 선비들은 소위 중화와 오랑캐라는 화이관(華夷觀)의 이분..

한뫼 안호상(1902년(고종 39)~1999년)은 본관 탐진(耽津)출생지 경상남도 의령이다. 해방 이후 초대 문교부장관, 경희대학교 재단이사장 등을 역임한 교육자. 민족사상연구가이다. 본관은 탐진(耽津). 호는 한뫼. 경상남도 의령 출생. 안석제(安奭濟)의 독자로 태어났으며, 어려서부터 한학을 수학하였다. 집안 어른인 홍문각 교리를 역임한 항일운동가 안효제(安孝濟)와 독립운동가이자 실업가인 안희제(安熙濟)의 뜻에 따라 신학문의 길을 걷게 되었다. 1919년서울로 올라와 중동중학을 다니면서 대종교에 입교하여 민족정신을 고취하고 민족의 사상을 연구하는 일에 뜻을 두었다. 1922년에는 상해에 가서 독일국립동제대학(獨逸國立同濟大學)에 재학중 김구·안창호·신채호·이시영·전진한·조소앙·이동녕 등 민족지도자들..

1115년, 여진족 최초의 국가 금이 건설되었다. 금은 요와의 전쟁에서 계속 승리하며 세력을 떨쳐나갔다. 이 무렵 송나라는 국력이 쇠퇴하고 있었는데 형세를 오판해 금과 손을 잡고 요를 협공하였고, 이때 금의 지원을 받은 대가를 지불하기로 약속하였다. 하지만 송은 약속을 지키지 않았고 그 이후로도 계속된 송의 약속 파기로 격분한 금은 송나라(북송)를 멸망시켰다. 중국사 다이제스트 100 ■ 금의 건국 - 쇠퇴하는 송나라, 금에 의해 멸망하다. 그때 우리나라에서는1126년 : 이자겸의 난이 일어남1135년 : 묘청, 서경에서 대위국 세움; 김부식이 평정함1145년 : 김부식, 《삼국사기》 50권 편찬1170년 : 정중부 등, 무신난(경인의 난)을 일으킴; 이후 100년간 무신집권1198년 : 만적의 난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