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력사를 찾아서
원광대 마한ㆍ백제문화연구소(소장 최완규)는 2009년 6월부터 4개월간 봉덕리 고분군 중 1호분 발굴조사한 결과 이 무덤은 봉분 하나에 석실분 5기, 옹관묘 2기를 갖춘, 5세기 무렵 이른바 '벌집형 고분'으로 드러났다고 말했습니다. 이 중 4호 석실분에서는 금동신발과 중국제 청자 등을 비롯해 금동제 신발은 목 부분과 측판 2매, 바닥으로 이뤄졌으며, 이들은 각각 작은 못을 박아 결합했고, 측판과 바닥은 맞새김(투조. 透彫)으로 장식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전북 고창군 봉덕리에 소재한 백제시대 분구묘(墳丘墓.봉분을 갖춘 무덤)에서 보존 상태가 매우 양호한 금동 신발 1켤레가 출토됐다. 바닥에는 스파이크 모양의 징 18개를 붙였고 부착지점은 꽃무늬로 장식했다.특히 바닥 중앙에는 용 ..
2006년 인천 계양산성에서 확인된 '논어 목간'은 AD 400~480년 사이, 한성백제 때 제작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이 시기에 한자는 물론 경전(논어)까지 이미 도입되었다는 사실을 입증했다는 점에서 획기적인 자료로 평가됩니다. 선문대 고고연구소(소장 이형구)는 2004년부터 2년간의 발굴 성과를 담은 '계양산성' 보고서에서 "목간과 같은 층위에서 출토된 목재 2점에 대한 AMS(가속기질량분석) 연대측정 결과 AD 400년과 AD 480년이었다"고 결론내렸습니다. ㆍ한자·경전 도입도 입증 획기적 자료 평가 잔존 길이 13.8㎝로 지름 2㎝ 정도 크기의 목재를 5면으로 깎아 만든 이 목간은 2005년 5월, 산성내 집수정 바닥에서 확인된 바 있다. 그런데 적외선 촬영 결과 목간 5면에..
2018년 4월 22일 하남시와 하남역사박물관에 따르면 고려문화재연구원(이사장 김병모)이 2015년 11월부터 진행 중인 하남감일 공공주택지구 조성사업부지에서 4세기 중반∼5세기 초반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횡혈식 석실분(橫穴式石室墳·굴식 돌방무덤) 50기가 발견됐다고 밝혔습니다. 하남 감일동에서 나온 백제 횡혈식 석실분. [고려문화재연구원 제공] 한성도읍기 백제 왕성이 확실시되는 서울 풍납토성(사적 제11호)과 약 4㎞ 떨어진 경기 하남 감일동에서 백제 최고위층 무덤 수십 기가 나왔다. 조사단은 지금까지 전국에서 확인된 백제 횡혈식 석실분은 모두 70여 기로, 서울 인근에서 이처럼 많은 백제 석실분이 나온 것은 처음이라고 강조했다. 이 고분들은 학계에서 한성도읍기 백제 왕릉급 무덤으로 보..
■ 서울 석촌동 고분군 ‘한국의 피라미드’로 불리는 석촌동 고분군은 백제의 대표적인 무덤양식인 돌무지무덤으로 한 변이 길이가 50m에 이르는 한반도 최대 크기다. 서울 송파구의 석촌동 고분군은 일제 강점기에만 해도 300여기의 무덤이 남아있었으나 현재는 5기만 존재한다. 특히 3호분은 크기 등으로 미루어 근초고왕의 무덤으로 추정된다.백제 13대 왕인 근초고왕(재위 346∼375년)은 활발한 정복활동으로 4세기대 고대백제국가의 기반을 확립했다.(출처; '한반도의 피라미드' 서울 송파구 석촌동고분군은 백제왕 근초고왕의 무덤일까? (daum.net) 서울신문. 2016.06.03) 2016년 11월 29일 서울시 한성백제박물관은 문화재청의 허가를 받아 발굴조사 중인 백제 한성기 왕릉지구인 ..
서울대박물관이 2023년 5월23부터 8월31일까지 열었던 ‘왕도한성:몽촌토성 1983~2023’ 특별전(2023년 5월23~8월31일)에서 나무상자 속에 보관해왔던 동물유체 등 유물 일부를 꺼내 정리한 결과물을 내놓았습니다. 1983~89년 조사된 몽촌토성의 미정리유물 일부가 40년 만에 공개됐는데요, 그 가운데 최초로 정리·공개되는 제사의 흔적 유구와 유물이 특히 눈길을 끕니다. 발굴 40년만에 정리·분석·공개된 몽촌토성(1983~1985)의 출토유물 중 동남지구에서 확인된 곰앞발뼈와 말의 치아. 사람의 손과 흡사한 곰의 앞발뼈는 끝마디가 모두 잘린 것 같은 모습이었다. 말의 치아는 위치 이동없이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온전한 말머리가 묻혀있다가 다른 부위는 유실된 것으로 보인다. |서울대박물관 ..
동성대왕 이후 백제의 부흥 신위례성이 파괴되어 외환이 심하던 상황에서, 백제는 잦은 내란마저 겪어야 했다.그러자 문주왕은 곰나루(웅진)로 천도했다. 문주왕이 재위 4년(《삼국사기》 〈연표〉에서는 3년)에 반역자 해구에게 죽임을 당하자, 장자인 왕근왕(〈백제 본기〉에서는 삼근(三斤)이라고 했지만, 임걸(壬乞)이라고도 한 걸 보면 삼근의 三은 王의 오자일 것이다)이 13세의 어린아이로 즉위했다.왕근왕은 이듬해에 좌평 진남과 덕솔 진로 등과 모의하여 해구를 죽였다. 왕근왕은 이 정도로 영명했지만, 왕이 된 지 3년째 되는 해에 15세의 어린 나이로 죽었다.그해 즉 서기 479년에 동성대왕이 즉위했다. 대왕의 이름은 마모대(摩牟大)다. 기존 역사서에서 마모(摩牟)라고 쓴 것은 끝의 한 글자를 뺀 것이고, 모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