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와 흡사한 ‘중국판 피라미드’ 고대 무덤 발견

입력 : 2017.03.16 10:33 ㅣ 수정 : 2017.03.16 10:33

http://nownews.seoul.co.kr/news/newsView.php?id=20170316601004&wlog_tag3=daum#csidx2fe82f180aee44abeb27199a265d0ab 

 

이집트와 흡사한 ‘중국판 피라미드’ 고대 무덤 발견

중국에서 이집트의 피라미드를 연상케 하는 고대 건축물이 발견돼 학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인민망 등 현지 언론의 14일자 보도에 따르면 지난 10일, 허난성 정저우시의 한 공사현장에서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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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진시황릉 주변서 부장갱 400여개 발견

말ㆍ사슴 등 진짜 동물 다량 출토

입력 2016.12.04 19:40

http://www.hankookilbo.com/v/64a61346795f4f928a60df8a4c63ad79

 

中 진시황릉 주변서 부장갱 400여개 발견

진시황릉 부장갱에서 발굴이 이뤄지는 모습. 신화망중국 산시(陝西)성에 위치한 진시황릉 주변에서 다량의 부장갱(副葬坑ㆍ부장품을 넣기 위한 구덩이)이 새롭게 발견됐다. 이들 부장갱에선 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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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한족(남방계'하'족)의 기원과 역사

동남 아시아 지역에서 서서히 북상하여 중원까지 이동한 한족의 실체

2008/04/07 [23:30] ⓒ pluskorea

출처:플러스코리아

http://www.pluskorea.net/sub_read.html?uid=9989§ion=section78§ion2=

 

≪pluskorea≫ 중국 한족(남방계'하'족)의 기원과 역사

기원전4000년,하서주랑과황토고원북부에하족이살고있었고진남관중일대에는화족이살고있었다.당시회하이남과한강(漢水-호북성에있는장강의지류)류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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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시황은 몽골어를 하는 여진족이었다. -비교언어학으로 밝혀낸 중국북방민족들의 원류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6211218 

 

진시황은 몽골어를 하는 여진족이었다

비교언어학으로 밝혀낸 중국북방민족들의 원류중국의 저술가로 활동 중인 주학연은 자연과학적 방법론으로 인문과학 연구에 매진함으로써 그동안 중국 역사서에서 풀지 못했던 역사ㆍ언어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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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 Chinese- From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

출처; https://en.wikipedia.org/wiki/Han_Chinese

 

Han Chinese - Wikipedia

From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 Jump to navigation Jump to search Ethnic group native to China Han Chinesec. 1.4 billion[1] China (Mainland, Hong Kong and Macau, excluding Taiwan) 1,321,000,000 (>90% of the total population)[2] Taiwan >22,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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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고조선 후예가 찾았다, 흉노제국 금속 마차

등록 :2017-12-12 05:01수정 :2017-12-13 04:14

고조선과 이웃한 유목 민족
몽골서 대형마차 원형 첫 발굴
6개 기관·대학 참여한 조사단
흉노 초창기 연구에 최대 성과

[단독]고조선 후예가 찾았다, 흉노제국 금속 마차 : 문화일반 : 문화 : 뉴스 : 한겨레 (hani.co.kr)

 

[단독]고조선 후예가 찾았다, 흉노제국 금속 마차

고조선과 이웃한 유목 민족 몽골서 대형마차 원형 첫 발굴 6개 기관·대학 참여한 조사단 흉노 초창기 연구에 최대 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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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로마.중국의 공포대상 스키타이족

유럽에서 한반도 남부지역까지...유라시아 대륙을 호령했던 흉노(훈)

문화부 | 기사입력 2008/03/29 [22:47]

http://www.pluskorea.net/sub_read.html?uid=9900§ion=section78§ion2 

 

≪pluskorea≫ 유럽.로마.중국의 공포대상 스키타이족

몽골고원중부의고비사막-고비사막인근을흐르는강(약수)이바로흉노족의시조'색정'이유배당한흉(슝)노족의땅유라시아대륙은고대부터지금까지초원길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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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마민족 뿌리” 오랑캐 흉노의 재발견"

동아일보 | 기사입력 2007.01.17 04:30

 

[동아일보]


■ 日교수 著'지금은 사라진…'서 본 한민족과 닮은점

 

《"우리는 기련산을 잃어 가축을 먹일 수도 없고, 우리는 연지산을 잃어 여인들의 얼굴을 물들일 수도 없다." 우리에게 오랑캐의 대명사로 알려진 흉노의 이 서글픈 민요에 등장하는 연지산은 한국 결혼문화인 연지 곤지의 기원이 되는 연지꽃이 생산되는 곳이었다. 기련산과 연지산은 현재 중국 간쑤(甘肅) 성과 칭하이(靑海) 성 경계를 이루는 산으로 흉노의 거점이었으나 한무제에게 정복당했다. 그 시점은 기원전 1세기 직전으로 한무제가 고조선에 한사군을 설치한 시기와 거의 일치한다.》

흉노는 기원전 3세기∼기원후 4세기 내몽골과 중국 북부를 지배하며 진시황의 만리장성과 이후 한나라 '중화주의'를 형성하는 데 핵심이 됐던 북방 민족. 중국 사서에는 전국시대에 처음 등장해 점차 오랑캐의 대명사인 '호(胡)'로 통용된 민족이다.

사마천의 '사기'는 흉노에 대해 언급하면서 동아시아에서 침략적 유목민(오랑캐) 대 문명화된 정주민(한족)의 이분법 구도를 처음 정립했는데 이후 흉노는 북방아시아 최초의 기마유목국가로 꼽혀 왔다.

최근 출간된 사와다 이사오(澤田勳) 일본 가나자와호시료대 교수의 '지금은 사라진 고대 유목국가 이야기-흉노'(아이필드)는 흉노에 대한 다양한 연구 결과가 집적돼 있다. 흥미로운 점은 이 책을 통해 흉노와 한민족의 유사점을 확인할 수 있다는 것.

기원전 1세기경 흉노 무덤에서 발굴된 유골의 경우 그동안 서양 학자들이 추정한 아리안계가 아닌 몽골계의 특징이 확인됐다. 1세기경 흉노 무덤은 고구려의 굴식 돌방무덤(횡혈식석실고분)의 형태를 취한 점도 주목된다. 형이 죽으면 형수를 아내로 삼는 고구려의 형사취수(兄死娶嫂)제나 소리를 내며 날아가는 화살 명적(鳴鏑)의 원형도 찾아 볼 수 있다.

중국과 서양 학자들은 흉노가 아리안계냐 투르크계냐 몽골계냐 라는 인종적 기원에 집착해 왔다. 사와다 교수는 인종·민족 개념이 성립되기 전 고대 유목민에 대해 인종적 접근을 시도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며 언어와 문화의 포괄적 접근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이는 그동안 중국 중심에서 북적(北狄), 동이(東夷), 서융(西戎)으로 차별화되던 동북아 기마유목민족의 역사를 서로 융합한 지평에서 바라볼 수 있게 해 준다.

이후 흉노는 선비, 돌궐, 거란(요), 여진(금, 청), 몽골(원) 등 동북아시아 기마정복국가의 원형을 간직한다. 선비족 이후 동북방 초원의 패자를 뜻하는 칸(가안)의 원형이라 할 선우를 중심으로 한 10진수 단위의 군사조직이나 특정 씨족 중심으로 왕과 왕비, 귀족을 할당하는 문화가 그렇다.

실제 몽골에서는 원(몽골제국)을 중국사로 편입하려는 중국에 맞서 북적으로 구별돼 온 흉노 오환 선비 돌궐과, 동이(동호)로 구별돼 온 거란(요)과 몽골(원)의 역사를 하나의 몽골사로 묶고 있다. 한국에서도 지난해 말 거란, 말갈·여진, 몽골 등 동이족의 역사를 한국사의 확대된 지평에서 바라봐야 한다는 주장이 공식 제기됐으나 이를 북적의 범주까지 확대하진 않고 있다.

사와다 교수의 책과 관련해 중국의 만리장성을 방어용이 아닌 침략용으로 재해석하며 동북아 유목 민족의 역사를 중국 중심의 해석에서 해방시켜야 한다는 니콜라 디코스모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의 '오랑캐의 탄생'(황금가지)도 곱씹어 볼 만하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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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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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노제국의 역사

(1) 흉노의 성립

 

스텝 국가 흉노제국(匈奴帝國)의 형성기는 중국 역사상 제 1차 전성기였던 한조(漢朝 206BC - 220AD)와 한조가 멸망한 후의 혼란기와 대체로 일치하고 있으며, 이 때에 스텝 지대를 다스린 세력은 흉노제국이었다. 흉노제국은 스텝 지대에서 일어난 최초의 국가조직은 아니었으나, 흉노제국에 대한 연구가 진전되면서 학자들은 근래에 흉노를 실질적인 최초의 스텝 제국으로 인정하기에 이르렀다. 흉노는 튀르크, 몽골, 만주-퉁구스, 한족(韓族) 등 소위 알타이족들을 중심으로 형성된 부족 연합체로서 지도층은 알타이어의 하나인 튀르크어의 한 방언을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흉노는 이미 중국에 한조(漢朝)가 건설되기 이전에 스텝을 석권하고 있었다.

초기에 흉노제국의 통치 영역은 오르콘(Orkhon), 셀렝가(Selenga) 강 유역과 외튀켄( t ken) 평원, 그리고 오르도스 지방이었다. 이 당시 스텝의 서쪽, 즉 아무다르야 강과 시르다르야 강 유역과 카스피해 지역에는 스키타이민족이 활동하고 있었다. 흉노족들에 대한 기록은 극히 빈약하며, 남아 있는 기록의 대부분은 중국과의 군사적 충돌 관계에 대한 것으로 그들의 적대국에 의해 기록된 것이기 때문에 상당한 편견이 내재되어 있다.

그들이 역사 무대에 등장한 것은 기원전 4세기 말경으로서 중국의 전국시대와 때를 같이 한다. 흉노가 중국을 크게 위협하는고로 진(秦)나라는 기원후 221년 만리장성 구축을 시작하기에 이르렀다. 흉노는 다른 북방 민족들과 연합하여 진(秦)에 대항하며 그 세력을 확장시켰다.

흉노는 연(燕), 진(秦), 한(漢)이 계속되는 동안 이들 중국 왕조들에게 있어 무척 위협적인 존재였으며, 중국은 이들을 막기 위해 만리장성을 쌓았으나 별 효과를 보지 못하였다. 시황제가 구축한 만리장성은 칸수성의 린타오에서 요동에 이르는 것으로 약 5천km에 달했다.

진의 만리장성 구축과 적극적인 군사대응으로 흉노등 북방세력이 잠시 쇠퇴하는 듯 하였다. 그러나, 묵돌(冒頓)의 등장으로 흉노는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되었다.

 

(2) 흉노의 대영웅 묵특(묵돌, 모돈)의 등장

 

흉노제국의 창립자는 투멘(頭曼; Tumen)이라는 사람으로 그는 여러 유목 부족 집단들을 통합한 후에 선우(單宇 : Shan-yu)라는 공식적인 관직명을 가짐으로써 흉노제국을 출범시켰다. 묵돌(冒頓: Motun)은 자신의 아버지 투멘이 후궁 연씨의 아들을 왕위에 계승하려고 하는 것에 반발하여 10만 기병대를 출동시켜 쿠데타를 일으킴으로써 정권을 탈취하였다. 선우가 된 묵돌은 정권을 강화시킨 후에 먼저 서쪽으로 천산산맥과 칸수 지방에 자리잡은 월지국(月氏國)을 공격하여 붕괴시키고 후에 동쪽으로 만주 서부지역에 위치한 동호국(東湖國)을 멸망시킴으로서 명실공히 중국 북방 최대의 유목민족국가를 수립하였다. 이처럼 북방을 장악한 묵돌이 중국을 공격하게 되자 기원전 201-199년에 중국과 휸오 사이에 치열한 전쟁이 계속되었으나, 마침내 묵돌은 한고조(漢高祖)를 퇴패시키고 승리하였다. 이에 한고조는 흉노에게 매년 조공을 지불하는 조건으로 흉노와 화친조약을 맺었다. 기원전 198년 한(漢)의 신하 유경(劉敬)의 제안으로 이루어진 화친조약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흉노 선우에게 공주를 출가시킨다. (2) 비단, 곡물 등 매년 조공을 바친다. (3) 흉노와 한(漢)은 동등한 외교적 관계를 유지한다. (4) 만리장성을 경계로 하여 상호 침입을 중지한다.

이와같은 불평등한 화친조약은 중국으로서는 매우 굴욕적인 것이었으나, 군사적인 우위를 차지하는 흉노에 대해 중국은 수동적일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풀이된다.

묵돌의 영역확장을 위한 군사원정은 계속되었다. 그의 정복 사업의 결과로 묵돌 통치시대에 제국의 경계는 동쪽으로 만주지방, 서쪽으로 아랄 해, 북쪽으로 바이칼 호와 이르티쉬 강 유역, 그리고 남쪽으로는 중국의 위수(渭水) 지방과 티벳고원에 이르는 방대한 영토로서 약26개의 종족과 국가를 복속하여 통치권에 두었다.

이처럼 묵돌은 중국을 위협하여 중국과 불평등 화친조약을 맺고 수년 동안 중국으로부터 조공을 받는 등 동북아시아의 우세한 세력으로 제국을 발전 시켰던 것이다.

마침내 중국은 가능하면 이들을 건드리지 않고, 유화정책을 쓰면서 분열과 분리정책을 함께 써나가는 새로운 방법을 택하게 되는데, 이러한 이이치이(以夷治夷) 정책은 이 후로 중국의 전통적인 북방정책의 노선이 되어왔다.

 

(3) 동,서 흉노의 분리

 

기원전 174년 묵돌이 사망하자 그의 아들 노상(老上) 선우가 등극하였다. 노상은 부친의 정책에 따라 군사적 우위를 유지하면서 복속국에 대한 통치를 강화시키고, 중국 도성 장안(長安) 근교까지 진군하는 등 중국에 대한 정치적, 군사적 압력도 더욱 더 강화시켜 나갔다. 그러나, 화친조약의 이행에도 불구하고 흉노의 침범이 계속되자 중국 조정내에 흉노토벌을 주장하는 강경파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노상선우를 이은 군신(君臣) 선우 때에 흉노는 약회되기 시작했다. 이 틈을 타서 중국은 흉노제국내 민족 분열를 조장하고 흉노족 지도층 내부의 분열을 위해 이간질를 통해 흉노세력 약화를 가속화시켰다.

이렇게 흉노 제국이 약화된 상태에서 후한(後漢)의 광무제는 그동안 60여년간 지속되어온 화친조약을 버리고 흉노정벌에 나섰다. 당시, 중국으로서 국가 경제에 주요재원이 되는 비단 수출 증대를 위해 비단길을 장악하고 있는 흉노 정벌은 선결과제가 되어있었다. 한(漢) 무제(武帝)는 중앙아시아의 교역로를 회복할 목적으로 흉노를 대대적으로 정벌했는데, 이로 인해 흉노는 급속히 쇠퇴하였다.

이후에 흉노는 제국내 분열과 갈등이 계속되면서 제국이 남(南)과 북(北) 흉노로 분열하게 되었고, 비단길에 대한 통치력 상실과 중국의 경제적 지원이 중단됨으로서 패망의 길로 접어 들었다. 마침내 흉노는 기원후 155년 다른 중앙아시아의 민족이며 몽골계로 추정되는 선비(鮮卑)족과 연합한 중국 후한에 의해 멸망하였다.

흉노제국이 멸망한 후 스텝 지역에는 혼란과 정치적인 불안정 시기가 시작되어 5세기초까지 계속되었다. 중국 역사 기록에 의해 분열시대 - AD 2세기부터 6세기말 - 라고 일컬어지는 시대에 남흉노의 후세들로 추측되는 부족들이 수 개의 왕조를 세웠으나 역사적으로 중요한 영향력을 행사한 왕조는 거의 없다.

한편, 흉노의 쇠망으로 인해 생긴 정치적 공백은 어떠한 스텝 세력에 의해서도 메워지지 못했는데, 당시 구체적인 흉노제국의 영향력과 정도는 사료의 불충분으로 인해 만족할 만한 정보를 얻을 수가 없다. 그러나 흉노사람들은 유목 국가 조직을 발전시켰으며 수 세기후에 등장한 튀르크족(돌궐족)이 세운 돌궐제국은 흉노제국의 군사와 국가 조직 형태를 답습하여 세워졌다.

 

(4) 흉노의 문화 

흉노인의 언어는 알타이어로서 지도층은 기원후 3세기 북위(北魏 Tabgach)에서도 계속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는 돌궐어의 원시어(原始語 Proto-Turkic)을 사용한 것으로 짐작된다. 흉노인들이 사용한 문자에 대해서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그러나 인울라 16호 고분을 비롯한 흉노 유적지에서 발굴된 출토품에 흉노 문자로 추정되는 기호들이 새겨져 있다.

 

25고분에서 출토된 인물 자수화를 통해서 흉노인들의 인물상을 짐작할 수있다. 흉노 인물은 엄숙한 자테를 가졌는데 모양은 발이 짧고, 비교적 크며 예리한 눈매를 가지고 있다.

 

흉노 고분에서 출토된 마구(馬具), 양털로 엮은 깔개 등과 금속 제품이나 골기(骨器) 등에 나타난 동물 문양 등을 통해서 흉노사회에서는 돌궐사회에서 처럼 민요나 예술 등에 유목민족적인 요소가 풍부하게 나타나 있음을 알 수있다. 또한 무용담을 담은 민요가 발달하였다. 그들이 사용한 대표적인 악기(樂器)로는 유목민족 전통 악기인 호가(胡茄)와 북이 있다.

 

한편, 금속 출토품 중에는 사슴, 사자, 말 등이 서로 물어 뜯고 있는 문양들이 많이 발견 되는데, 이것은 흉노가 스키타이와 관련성이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흉노의 대표적인 수예품으로는 펠트 위에 여러 색상의 털실을 사용해 장식한 것을 들을 수있다.

 

흉노 사회의 혼인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부족 간의 문제였다. 또한 형이나 동생이 죽었을 때 형수나 계수를 아내로 삼는 수혼(嫂婚)제도가 존재했었다.

 

흉노의 신앙 체계는 천신사상이 강하게 나타나는데, 통치자 선우(單于)는 천신(天神)의 아들로서 하늘의 뜻을 이 땅에서 이루는 제사장으로 표현되고 있다. 여기서 통치자가 신의 아들로 표현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사실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다. 중국 주(周)나라 때부터 등장하는 천신의 대리자로서의 천자(天子)의 개념은 주왕조 설립자와 초기 왕조가 북방 유목민족 출신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북방 알타이민족의 개념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조상 숭배 사상은 흉노인들에게도 나타난다. 그들은 사람이 죽었을 때 관을 사용하였으며, 죽은 자가 생시에 사용하던 금, 은 장식이나 의복 등을 함께 묻었다. 특히, 지도층 귀족이 죽었을 때는 노예를 함께 순장하느는 풍습이 있었다.

 

흉노사회에는 샤마니즘의 흔적도 많이 나타난다. 인간과 신을 중개하는 무당이 있었으며 주술도 행했다. 또한 어떤 무당들은 의술도 행했는데, 한서(漢書)에는 흉노 사회의 무당이 실신한 사람을 의술을 사용하여 치료하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5) 훈 제국

 

흉노제국이 선비와 중국의 연합군에 의해서 기원후 155년에 멸망된 후, 흉노의 지도층은 세력을 잃고 서진(西進)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서진하여 우랄산맥을 넘어 정착하게 된다.

흉노제국이 붕괴된 후 약 2세기가 지나서 유럽에 돌풍을 몰고온 훈족(Huns)은 바로 이 흉노제국의 후예들로서 중국의 중앙아시아 정벌 후에 서북쪽으로 이동한 집단일 개연성이 많다. 학자들이 이렇게 추측하는 것은 당시의 역사적 상황과 군사 전술, 문화의 유사성, 그리고 흉노와 훈 두 이름의 유사성 등에 기인한다. 흉노(匈奴)라는 이름은 우리가 그 뜻을 알 수 없으나 원시 알타이어(Proto Altaic) 흉(hyung)과 중국어 노(奴) 두 단어의 합성어로서, 훈(Hun) 혹은 흉(Hyung)족을 경멸시하여 부르는 것으로 중국인들에 의해 만들어진 조어(造語)이다. 즉, 흉노인들은 자신들을 흉(hyung) 혹은 훈(hun)이라 불렀으나, 중국인들이 경멸조로 이 말에 '노예'를 의미하는 노(奴)를 첨가시킨 것이다.

훈족은 4세기 중엽 알란(Alan)國을 정복한 후, 374년경 볼가 지역에 등장했다. 당시에 흑해(黑海) 북부 지역 돈 강과 드네프르 강 유역에는 東고트族이 거주하고 있었고, 그 서부지역에는 西고트族이 거주하고 있었다. 반달族은 헝가리 지방에 살고 있었다. 이외에도 슬라브계 및 페르시아계 종족들이 흑해 북부와 발칸반도 일대에 분포되어 있었다.

훈제국은 기마를 사용한 기동력과 기마전술를 가지고 東코드를 공격하여 374년 동코트를 붕괴시켰다. 훈제국은 후리문트(Hurimund)를 동코트 통치자로 임명하고 서코트를 공략하여 375년 서코트 왕 아타나리크(Atanaric)를 불가리아 지역으로 몰아내었다. 이리하여 게르만 민족의 대이동이 시작되었다. 훈족에 밀린 서코트의 로마 유입으로 395년 로마제국은 동로마와 서로마로 급격히 분리되었다. 이와같은 훈족의 침입으로 코트족 이외에 동유럽의 부족들이 로마 영내로 유입되기 시작하였고 이탈리아 로마는 크게 위협되었다. 로마가 분리되면서 훈족의 로마 침입은 가속화되어 주력 부대가 발칸반도와 트라키아(Thracia), 또 다른 주력 부대는 코카서스와 에르주름(Erzurum)을 거쳐 아나톨리아 반도로 진격하였다.

훈족의 로마 공략과 대외외교는 400년경 울드즈(Uldyz) 통치시대에 많은 발전을 이룩하였다. 동유럽의 여러 부족들을 압박하던 울드즈는 투나 강 유역을 공격하였다. 이에 다시 민족 이동이 시작되었다. 반달족과 훈의 공격을 받아 서진한 서고트가 이탈리아 변경으로 몰려들었다. 로마 장군 스틸리코는 402년 알라리크(Alaric)가 이끄는 서고트족을 패퇴시켰다. 그러나, 다음에는 동고트의 라다가이수스(Radagaisus)장군이 반달족 등 여러 게르만족을 이끌고 로마를 공격하여, 이탈리아는 매우 위험한 지경에 놓이게 되었다. 이 때 훈제국이 개입하여 훈의 울드즈와 로마군 연합군대는 라디가이우스 군대를 제압하고 라디가이우스를 처형함으로 로마는 구출되었고 훈제국의 명성은 절정에 달했다. 훈제국의 영토는 아랄 해 동부지역에서 동유럽, 발칸반도에 이르렀다.

410년 울드즈가 사망하고 카라톤(Kara Ton)이 훈제국의 통치자가 되었다. 카라톤은 412년에서 422년까지 훈제국의 동부지역을 통치했으며, 422년에 훈왕족의 루아(Rua), 문추크(Munchuk), 아이바르스(Aybars), 옥타르(Oktar) 왕자들의 권력투쟁에서 루아가 왕에 올랐다. 루아는 비잔틴제국을 제압하여 연간 금 350 리브레의 공납을 부과할 정도로 그 기세를 크게 떨쳤다. 루아는 434년 돌연 사망하고 훈제국은 드디어 아틸라(Attila)가 통치하게 되었다.

부친인 문추크가 일찍 사망하자 숙부인 루아 왕에 의해 양육된 아틸라는 40세에 왕이 되어 그의 형 블레다(Bleda)와 함께 제국을 통치하게 되었다. 아틸라는 왕위에 오른 후 비잔틴제국에 대해 연간 공납액을 2배로 올려 700리브레를 요구하였다. 비잔틴황제 데오도시우스는 아틸라의 요구에 응할 수 ㅇ밖에 없을 정도로 아틸라 통치 시대의 훈제국의 위세는 대단했다. 아틸라 시대에 훈제국의 영토는동서로는 우랄 산맥에서 알프스 산맥까지, 남북으로는 카프카스야에서 발트 해안에 이르렀으며 약 45개여 종족을 다스렸다.

아틸라의 정복사업은 계속되는 가운데 445년 그의 형 블레다가 사망함으로 아틸라 1인통치 시대에 접어들었다. 이 때에 훈제국은 전성기를 맞이하여동서로마를 완전히 장악하고 서아시아에 서 중부 유럽에 이르는 전 지역을 통치하였다.

452년 봄에는 드디어 아틸라의 서로마제국 원정이 시작되었다. 아틸라는 10만 대군을 이끌고 줄리아 알프스 산맥을 넘어 이탈리아 베네치아 근교에 도달하였다. 교황 레오 1세는 사절단을 데리고 7월에 아틸라를 방문하였다. 로마제국과 기독교 세계를 대표하는 교황은 로마의 파괴를 자제해 줄 것을 요청하였다. 아틸라는 이 청을 받아들여 철수하였고, 동서 로마 통치를 선언하였다. 그는 마지막 정복 대상인 사산조 페르시아제국 공격을 준비하기 위해 본국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철군 후 아틸라는 급작스런 출혈로 60세 나이에 사망했다.

아틸라 사후 훈제국은 내부 분열하기 시작했다. 일레크(Ilek), 뎅기지크(Dengizik), 이르네크(Irnek) 등 아틸라의 세 아들 가운데 먼저 왕이 된 일레크는 게르만족과의 전투에서 전사하였고, 뒤를 이는 뎅기지크는 비잔틴 자객에 의해 사살되었다. 이르넥(Irnek)가 집권했을 때는 이미 훈제국은 크게 기울러 있었다. 이르네크는 훈족을 이끌고 남부러시아로 이주하였고, 훈제국은 종말을 고했다. 후에 이들 훈족들에 의해서 헝가리와 불가리아가 탄생하게 되었다

 

훈족의 후예 돌궐, 투르크인

 

터어키 역사를 공부하면, 그들 역사책에는 반드시 훈족의 기원부터 먼저 서술하고 있다. 즉 현대 터어키인들도 자기들의 조상은 훈족에게서 기원한다고 보는 것같다.

 

기원전 2세기경 흉노제국이 한무제에 의해 붕괴된 이후 흉노는 여러 부족으로 흩어지는데 ( 같은 시기에 우리의 고조선도 한무제에 의해 망하는 게 눈에 띈다.) 그 중에 투르크, 즉 돌궐인들의 부족들이 오늘날 중앙 아시아에서 두각을 나타내게 된다.  이들이 유연을 멸망시키고 돌궐제국을 만든 때를 현대 터어키인들도 자기 민족의 본격적인 출발로 믿고 있다. 실제로 중앙아시아의 돌궐제국의 수도 터에는 돌궐문자의 비와 유적들이 지금도 남아있어서 많은 터어키 학자들의 조상 캐기의 연구 대상이 되고 있다 한다.

 

이 돌궐 제국은 흉노제국이 없는 공백을 메우면서 중국과 대결하는데, 그 시기는 대략 6-7 세기, 즉 우리 고구려와 발해가 중국과 대결하던 때와 일치한다 한다. 돌궐의 중국 공격은 이전 흉노제국의 그것보다도 더 집요하고 강력하여 당나라조차도 그들에게 당하지 못하여 여러번 불평등조약을 맺고 있다. 특히 측천무후 이후 당나라에 의해 돌궐제국이 멸망한 뒤에도 그 유민들이 계속 남아서 끈질기게 저항하는데, 이 시기는 묘하게도 우리 고구려가 망하고 발해가 들어서고 통일신라가 당군을 한반도에서 몰아내는 시기와 일치하고 있다. 즉 돌궐의 당나라에 대한 끈질긴 견제 때문에 당나라는 한반도의 발해와 통일신라에 대하여 제대로 신경을 쓸 수 없었다는 것이다.

 

이들 돌궐을 막기 위해 당나라는 무지 곤욕을 치렀는데, 그 잔재가 남아 있는 것이 바로 디즈니 만화영화 "뮬란" 이다.  현대 터어키에서는 이 "뮬란" 만화영화가 상영금지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어쨌든 만화의 역사적 고증과 배경으로 보아 그 만화에 서술된 북방 이민족은 흉노가 아닌 돌궐족을 묘사한 것이 더 맞다고 본다. 거기서 그려진 돌궐족의 이미지가 워낙 흉악하니까, 터어키인들이 불쾌하게 생각되었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현대 터어키 언어에서 물 "water"을 뜻하는 단어를 "수" 라고 발음하는 것을 보았다.  어쩌면 중국 한족들과 오랫동안 싸우고 교류하다보니, 물이라는 단어도 중국 "수"로 바뀌었고, 그 잔재가 지금껏 남아있는게 아닐까 (중앙아시아는 물이 귀했을 것이니 물은 매우 중요한 단어이다. 선진국 중국의 단어 "수"를 받아들였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물론 현대 터어키인들이 그 직계 조상이 이 역사상의 돌궐인들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그러기에는 현대 터어키인들이 워낙 많은 유럽인들하고 혼혈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대 터어키인들은 흉노가 망한 후 그 유민들이 갈라져 서쪽으로 가서 돌궐인들이 되었고, 동쪽으로 간 지파는 한민족이 된 것으로 믿고 있다 한다. 이 말은 한국전 이후에 터어키파병군에게서 우리가 처음 듣게 된 이야기였는데,  처음에는 우리에게 매우 생소한 이야기였다. 그러나 현대 터어키인들이 그런 믿음을 가지게 된 계기는 아마도 그들의 조상들이  후손들에게 자기 (흉노) 조상들 중 동쪽으로 간 어느 지파 이야기를 대대로 전해 내려왔기 때문이 아닐까?

 

내가 추측하거니와 신라의 지배층이 바로 그들 터어키인들이 믿는 "동쪽으로 사라진 형제들" 이 아닌가 한다. 신라 경주의 무덤속의 황금 유물들이 그것을 증언한다. 같은 조상을 두고도 서쪽으로 간 지파는 아라비아를 복속하고 유럽을 벌벌 떨게 하는  "오스만 터어키 제국"을 만들었다. 반면에 동쪽으로 간 지파는 중국이라는 큰 이웃 때문에 2천년간 제대로 숨도 못쉬고 제자신이 중국인들의 후손일 것이라고 멋대로 조작하면서 이리저리 채이고 살았다. 우리 한민족은 아직도 뿌리가 불확실하게 남아있는 민족이 아닌가 한다. 일본인들처럼, 일본인들이 한반도의 뿌리를 부정하다가 지금까지 뿌리없는 떠돌이 민족으로 남아 불행한 것처럼 우리도 우리의 중앙아시아 뿌리를 부정하다가 여지껏 사실상 뿌리가 불확실한채 남은 민족이 아닐까?

 

2천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자기들이 훈족, 돌궐족의 후예라고 자부하고 있는 현대 터어키인들이 오히려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근호/조선일보

 

 

동아시아인 유전자 비밀 ‘흉노’에서 찾았다

윤신영 동아사이언스 기자 입력 2020-11-09 03:00수정 2020-11-09 03:00

몽골서 발견된 유골 DNA 분석… 약 6000년간의 인류 변천사 밝혀
2200년 전 흉노제국 형성기 때 각기 다른 인류집단이 함께 생활
동아시아인의 복잡한 관계성 증명

동아시아인 유전자 비밀 ‘흉노’에서 찾았다 (donga.com)

 

동아시아인 유전자 비밀 ‘흉노’에서 찾았다

몽골과 만주 등 대륙에 사는 동아시아인의 복잡한 형성 과정을 짐작할 수 있게 하는 두 개의 연구 결과가 나왔다. 각각 6600년 전 이후와 3만4000년 전 유라시아 동부의 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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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놈으로 밝혀냈다… 3500년전 이역만리 우물서 숨진 여인의 고향

윤신영 동아사이언스 기자 입력 2020-06-08 03:00수정 2020-06-08 05:12

잊혀진 과거 밝히는 ‘古유전체학’
‘이란서 3000km 거리 터키로 이동’… 서남아시아 유골 DNA서 확인
고대 유골-화석에 남은 유전자로 유전적 특성과 이주의 역사 밝혀

출처; https://www.donga.com/news/article/all/20200607/101402352/1

 

게놈으로 밝혀냈다… 3500년전 이역만리 우물서 숨진 여인의 고향

20세기 터키 남부 고유적지 알라라크의 우물에서 이상한 유골 화석이 발견됐다. 여성으로 추정되는 유골의 주인공은 숨지기 직전 큰 상처를 입고 우물 안에서 쓸쓸하게 생을 마감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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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기즈칸의 조상들 3300년전 우유 마셨다

2018.11.06 07:33

http://dongascience.donga.com/news.php?idx=24848&utm_source=dable 

 

칭기즈칸의 조상들 3300년전 우유 마셨다

연구팀이 대상지로 삼은 지역 중 하나인 몽골의 스텝 지역. - 사진 제공 MPI한때 아시아는 물론 유럽 일부까지 지배했던 칭기즈칸의 몽골은 기동성이 강한 유목민의 국가였다. 염소나 소, 양을 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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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훈족-中 흉노족, 유전적으로 한뿌리

윤신영 동아사이언스 기자 입력 2018-05-14 03:00수정 2018-05-14 03:00

고게놈학 연구로 밝혀져

https://www.donga.com/news/article/all/20180513/90058953/1

 

유럽 훈족-中 흉노족, 유전적으로 한뿌리

스키타이, 흉노, 훈족 등 역사책에 흐릿하게만 남아 있던 후기 청동기∼신석기 시대 인류의 기원과 이주 역사가 고게놈학 연구로 새롭게 밝혀졌다. 오랫동안 논란이 된 서양 역사서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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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인북] 기원전에도 존재했던 기관총과 냉장고… 고대인의 물건에 담긴 기발한 세계사

 

[포토인북] 기원전에도 존재했던 기관총과 냉장고… 고대인의 물건에 담긴 기발한 세계사 - 독서

[독서신문 김승일 기자] 우리는 우리 선조보다 아는 것이 많고 현명하다고 생각할 때가 있다. 그러나 당장 아무것도 없이 무인도에 고립된다면 대부분은 불을 피우지도, 물고기를 잡지도 못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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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동기시대 인류도 B형 간염 앓았다"

입력 2018.05.10. 02:00 수정 2018.05.10. 07:26 댓글 5

국제연구진, 청동기시대 유라시아 스텝지역 고대 인류 게놈분석

https://www.yna.co.kr/view/AKR20180509174600063?input=1179m 

 

"청동기시대 인류도 B형 간염 앓았다" | 연합뉴스

(대전=연합뉴스) 이주영 기자 = 인류가 청동기시대에도 B형 간염을 앓았다는 사실이 고대 인류 게놈(유전체)분석으로 확인됐다. 또 청동기시대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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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00~2400년전 아기에게 동물 젖 먹였다

2019.09.26 09:28

http://dongascience.donga.com/news/view/31377

 

3200~2400년전 아기에게 동물 젖 먹였다

기원전 1200~600년 경 사용된 주전자의 다양한 모습니다. 영국 브리스톨대 팀은 주전자 내부에 남은 지방 성분을 분석해 이런 주전자가 어린 아기와 어린이에게 젖을 먹이는 용도로 쓰였음을 밝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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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계 신석기토기 4000여점 일본 오키나와서 무더기 발굴

입력 : ㅣ 수정 : 2009-03-04 01:02

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090304024010#csidxc7d286c1c33cf2a821a29395c4cac1f 

 

한국계 신석기토기 4000여점 일본 오키나와서 무더기 발굴

, 일본 오키나와에서 한국 신석기 문화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한국계 토기 4000여점이 무더기로 발굴됐다. 한국 신석기 문화가 영향을 미친 남방한계선이 한반도에서 1500㎞나 떨어진 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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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이족 중미대륙까지 진출했나?…"상왕조 갑골문자 발견"

송고시간2017-03-19 18:13

현혜란 기자

중미 올멕문명 기원과 관련해 일부 고고학자들 각종 증거 제시

https://www.yna.co.kr/view/AKR20170319062600004

 

동이족 중미대륙까지 진출했나?…"상왕조 갑골문자 발견" | 연합뉴스

(서울=연합뉴스) 안수훈 현혜란 기자 = 고대 중국 동북부 지방에 거주하던 동이족(東夷族)이 사용한 상형문자가 북미대륙은 물론 멕시코 등지에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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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대륙서 동이족 상형문자 발견…“2500년전 미국에 온 증거”

기사입력 2017-03-06 07:49 |김수한 기자

http://news.heraldcorp.com/view.php?ud=20170306000036

 

북미대륙서 동이족 상형문자 발견…“2500년전 미국에 온 증거”

우리 민족과 연관이 깊은 것으로 알려진 동이족이 사용한 상형문자가 아메리카 대륙 곳곳에서 발견됐다. 이런 흔적은 동이족이 오래전에 아메리카 대륙으로 건너갔음을 보여주는 증거로 볼 수

biz.heraldcorp.com

 

 

 

중앙아시아 카자흐스탄도 '단군'을 섬긴다고?

끝임없이 서쪽으로 이주한 한민족의 갈래, 카자흐스탄...

이달순 | 승인 2016.07.20 11:53

카자흐스탄의 고대 군대편제는 고구려와 닮아 있었다.

개마무사의 찰갑 무기체계가 그대로 카자흐스탄에 존재한다.

출처; http://www.koreahiti.com/news/articleView.html?idxno=737

 

중앙아시아 카자흐스탄도 '단군'을 섬긴다고? - 코리아 히스토리 타임스

카자흐스탄의 고대 군대편제는 고구려와 닮아 있었다.개마무사의 찰갑 무기체계가 그대로 카자흐스탄에 존재한다. 지난 5월 말 카자흐스탄에 다녀왔다. 키맵이란 대학이 전 과목을 영어로 강의

www.koreahiti.com

 

 

삼태극 삼족오 문화를 간직하고 있는 헝가리

헝가리의 기원, 마자르족은 말갈족

오종홍 | 승인 2016.03.28 11:31

삼태극과 삼족오 그리고 헝가리 가톨릭의 비밀

세르게이 정 / 북방고고인류학연구소 교수

현재 불가리아 소피아 대학 연구교수

http://www.koreahiti.com/news/articleView.html?idxno=284 

 

삼태극 삼족오 문화를 간직하고 있는 헝가리 - 코리아 히스토리 타임스

삼태극과 삼족오 그리고 헝가리 가톨릭의 비밀세르게이 정 / 북방고고인류학연구소 교수현재 불가리아 소피아 대학 연구교수 슬로바키아 코시체의 상징은 대성당이다. 이 성당은 러시아 정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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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12/17/2018121700681.html 

 

이집트서 4400년 된 고대무덤 발견...미라 2개, 조각상 1000개

이집트서 4400년 된 고대무덤 발견...미라 2개, 조각상 1000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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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핑크스 문 들어서니, 3500년 전 철의 제국 위용이 …

중앙일보

입력 2017.08.01 01:00

업데이트 2017.08.01 01:58

스핑크스 문 들어서니, 3500년 전 철의 제국 위용이 … - 중앙일보 (joongang.co.kr)

 

스핑크스 문 들어서니, 3500년 전 철의 제국 위용이 …

터키 수도 앙카라에서 동쪽으로 150㎞ 정도 떨어진 이곳에는 날씨의 신, 태양의 신에게 바친 대규모 사원 터가 남아 있다. 한광야 동국대(도시계획) 교수는 "배수의 기울기를 계산하고, 신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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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투탕카멘 ‘단검’, 우주의 ‘운석’으로 제작 확인

입력: 2016.06.01 13:53 ㅣ 수정 2016.06.01 17:39

http://nownews.seoul.co.kr/news/newsView.php?id=20160601601011 

 

이집트 투탕카멘 ‘단검’, 우주의 ‘운석’으로 제작 확인

고대 이집트 투탕카멘(재위 BC 1361∼BC 1352)의 무덤에서 발견된 단검이 우주에서 떨어진 운석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확인됐다. 최근 이탈리아 피사 대학과 이집트 박물관 공동연구팀은 미라화 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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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이집트는 어떻게 세상과 만나게 되었나

EBS, 15~22일 6부작 다큐‘이집트 발굴 비사’방영

게재 일자 : 2007년 10월 15일(月)

전영선기자 azulida@munhwa.com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07101501031930256002 

 

고대 이집트는 어떻게 세상과 만나게 되었나

고대 이집트 문명은 1798년 나폴레옹의 이집트 침공 이전까지 외부 세계에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나폴레옹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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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의 제국' 페르시아]

[창간 88주년]‘황금의 제국’<1>모든길은 페르시아로 통한다

입력 2008-04-02 03:02수정 2009-09-25 09:04

http://www.donga.com/fbin/output?n=200804020019 

 

[창간 88주년]‘황금의 제국’모든길은 페르시아로 통한다

만국을 호령하고 만인을 포용하다 동아일보가 국립중앙박물관 이란국립박물관 SBS와 공동 주최하고 컬쳐앤아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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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의 제국’ 페르시아]<2>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입력 2008-04-03 03:01수정 2009-09-25 08:52

http://www.donga.com/fbin/output?n=200804030057 

 

[‘황금의 제국’ 페르시아]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인간의 ‘자유의지’ 존중… 세계 종교의 모태 《기원전 6세기 오리엔트를 통일하고 약 200년간 세계의 중심이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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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의 제국’ 페르시아]<3>페르시아인들 경주를 활보하다

입력 2008-04-05 02:55수정 2009-09-25 08:35

http://www.donga.com/fbin/output?n=200804050095 

 

[‘황금의 제국’ 페르시아]페르시아인들 경주를 활보하다

터번 쓴 서역의 8척 장수, 신라왕릉을 수호 실크로드 따라 골드 러시… 국제도시 경주로 용강 고분 서역인 문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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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의 제국’ 페르시아]<4>구약의 주인공이 되다

입력 2008-04-12 02:50수정 2009-09-25 07:30

http://www.donga.com/fbin/output?n=200804120083 

 

[‘황금의 제국’ 페르시아]구약의 주인공이 되다

바사의 王은 성서속의 목자였다 기원전 587년 바빌로니아 왕국의 네부카드네자르 2세(느부갓네살)가 유다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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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의 제국’ 페르시아]<5> 이란에 부는 한국 열풍

입력 2008-04-14 02:59수정 2009-09-25 07:17

출처; http://www.donga.com/fbin/output?n=200804140041

 

[‘황금의 제국’ 페르시아]이란에 부는 한국 열풍

천년만의 문화 해후 실크로드엔 이제 한류가 흐른다 《이란 국영방송(IRIB) 채널 2에서 드라마 ‘대장금’이 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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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ld in 2000 BC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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