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두]

12,000 Years Ago, a Boy Had His Skull Squashed into a Cone Shape. It's the Oldest Evidence of Such Head-Shaping.

By Laura Geggel July 10, 2019

https://www.livescience.com/65901-china-oldest-skull-shaping.html

 

12,000 Years Ago, a Boy Had His Skull Squashed into a Cone Shape. It's the Oldest Evidence of Such Head-Shaping.

Ancient people in China practiced human head-shaping about 12,000 years ago — meaning they bound some children's maturing skulls, encouraging the heads to grow into elongated ovals — making them the oldest group on record to purposefully squash their s

www.livescience.com

 

 

Eerie 'Xenomorph' Skulls Dating Back Thousands of Years Have Been Discovered in China

MICHELLE STARR

5 JULY 2019

https://www.sciencealert.com/asian-cultures-may-have-been-making-their-skulls-look-like-xenomorph-heads-12-000-years-ago

 

Eerie 'Xenomorph' Skulls Dating Back Thousands of Years Have Been Discovered in China

Some of the oldest evidence of humans modifying the shape of their skulls has just been uncovered in what is now northeastern China. Up to 12,000 years ago, people who lived there were intentionally reshaping their heads - and the practice continued

www.sciencealert.com

 

 

 

위대한 한국인 연대 | <4> 편두를 한 사람들 - 가야의 것보다 5000년 앞선 편두인골 러시아 패총서 발견 - Daum 카페

 

<4> 편두를 한 사람들 - 가야의 것보다 5000년 앞선 편두인골 러시아 패총서 발견

가야시대에는 머리를 납작하게 눌러서 두상을 바꾸는, 이른 바 편두 풍습이 유행했다고 기록돼 있다. 경남 김해 예안리 고분에서는 실제 편두를 한 인골이 발견돼 옛 중국 기록이 헛되지 않았음

cafe.daum.net

 

 

[토기]

입력 2006. 10. 30. 15:00수정 2006. 10. 30. 15:00

【서울=뉴시스】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는 11월1일부터 12월3일까지 고궁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한.러 공동발굴특별전 '아무르.연해주의 신비'를 연다.

지난 6년간 러시아와 공동으로 아무르강 유역과 연해주 일대에서 발굴조사한 유물들을 전시하는 이 특별전은 우리 민족의 원류를 밝히고 선사시대에서 발해로 이어지는 양 지역 상호 문화교류 양상을 이해하고자 추진된 양국 공동발굴조사의 결과물로, 러시아 극동지역의 신석기시대에서 발해, 여진까지의 고고유물과 현지 원주민의 민속유물 총 393점이 전시된다.

사진은 아무르강 하류 가샤유적에서 출토된 고토기편(古土器片)으로, 방사성탄소연대 12,960±120B.P.로 측정된 세계 최고(最古)의 토기편이다. /김선아기자 avatar73@newsis.com

 

 

등록 :2006-10-30 15:18

러시아 아무르강 하류 보즈네세노프카 유적 출토 ‘외계인‘ 문양 토기. 신석기시대 후기에 제작된 토기에 사람 얼굴을 형상화했다. 국립문화재연구소 홈페이지

국립문화재연구소 아무르강유적 특별전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소장 : 김봉건)는 지난 6년간(2000년~2006년) 러시아과학원 시베리아지부 고고학민족학연구소(소장 : A.P. 데레비얀꼬)와 공동으로 아무르강 유역과 연해주 일대에서 발굴조사한 유물들을 국내로 들여와 한·러 공동발굴특별전[아무르·연해주의 신비]를 고궁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11월 1일부터 12월 3일까지 연다.한·러 공동발굴조사는 국립문화재연구소가 우리와 국경을 접하고 있는 연해주 등 러시아 극동지역의 유적을 우리 손으로 직접 발굴조사하여 우리 민족의 원류를 밝히고, 나아가 선사시대에서 발해로 이어지는 양 지역 상호 문화교류 양상을 이해하고자 기획·추진하는 사업이다. 지난 2000년부터 2002년에는 아무르강 하류 수추섬유적(Suchu)을, 2003년부터 2005년에는 연해주 불로치까유적(Bulochka)을 발굴한 바 있다.

 

불로치까 유적 원경. 국립문화재연구소 홈페이지.

 

이번 특별전에는 아무르강 하류 수추섬유적과 연해주 불로치까유적에서 발굴한 유물을 포함하여, 러시아 극동지역의 신석기시대에서 발해·여진까지의 고고유물과 현지 원주민의 민속유물 등 총 393점이 전시된다.

 

 

일명 ‘아무르의 미케네’로 불리는 아무르강(黑龍江) 하류에 위치한 수추섬유적에서는 신석기시대 초기에서 후기에 이르는 주거지 5기 등의 유구에서 정교한 문양이 새겨진 토기, 간결하고 세련되게 표현된 다양한 인물상, 동물상을 비롯한 2만 여점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특히 이번에 전시된 세계 최고(最古)의 토기편과 강렬한 인상의 인물 문양 토기 및 편두(褊頭) 여인상, 곰, 물범, 물고기, 새 등의 다양한 조각품들은 이 지역 신석기시대 사람들의 풍부한 예술성을 보여준다.
 
불로치까유적 출토 끄로우노브까 토기류. 국립문화재연구소 홈페이지
 
불로치까유적 출토 각종 철기류.국립문화재연구소 홈페이지
 

 

두만강에서 멀지 않은 연해주의 동해안에 위치한 불로치까유적에서는 총 23기의 주거지에서 신석기시대에서 발해에 이르는 다양한 유물이 출토되었다. 이중 옥저(沃沮)의 ‘돌상자형’ 온돌의 발굴은 우리 민족 고유의 문화인 온돌의 기원을 밝힐 수 있다는 점에서 학술적 가치가 높다. 이밖에 각종 철기시대 유물들은 발해 형성 이전의 문화상을 잘 보여주며, 아무르 지역의 말갈·여진문화는 특히 연해주의 발해문화와 비교된다.
 
연해주 보리소프까 절터에서 출토된 발해 불두. 국립문화재연구소 홈페이지
 
전시회 관계자는 “이번 한·러 공동발굴특별전은 이러한 한·러 양국의 발굴 성과를 바탕으로 러시아 연구소의 적극적인 협조로 이루어졌다. 모쪼록 이번 전시가 우리의 역사·문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아무르·연해주 지역의 고대문화를 직접 체험하고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기대한다”과 밝혔다.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러시아 극동지역의 신석기문화, 아무르강 유역의 신석기문화, 연해주지역의 신석기문화]

 문화재연구소,러 수추섬 발굴보고서 발간 (daum.net)

 

문화재연구소,러 수추섬 발굴보고서 발간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국립문화재연구소(소장 김봉건)가 러시아과학원 시베리아지부 고고학민속학연구소와 공동으로 실시한 러시아 아무르강 하류 수추섬 유적"에 대한 발굴조사 보고

v.daum.net

 

 

[제주 고산리유적]

  • 2013.07.30 18:41

국내 '최고' 제주 고산리 유적.."활용은 언제쯤?" < 학술·문화재 < 문화 < 기사본문 - 제주의소리 (jejusori.net)

 

국내 '최고' 제주 고산리 유적.."활용은 언제쯤?" - 제주의소리

제주 고산리 선사유적 발굴 조사 '마침표'...제주시 24억 들여 전시관 건립 예정지금으로부터 약 8000년에서 1만년 전 신석기시대 초기, 제주 한경면 고산리 해안가에는 한반도 가장 오랜 마을이

www.jejusori.net

▲ 토기류 일괄. <사진 제공=제주문화유산연구원>
 


▲ 고산리유적 주거지 단계설정 개념도. <사진 제공=제주문화유산연구원>

 

  • 입력 2012.07.24 10:24

● 제주 고산리서 한반도 최고 집단주거지 발굴 - 제주의소리 (jejusori.net)

 

제주 고산리서 한반도 최고 집단주거지 발굴 - 제주의소리

시·발굴조사서 수혈유구·원형주거지 등 수십여기 유구 확인옥 귀고리도 첫 출토…주거지서 고산리식토기·타제석기 동반출토한반도 최초의 신석기 유적지인 제주 고산리 선사유적(사적 412호)

www.jejusori.net

시·발굴조사서 수혈유구·원형주거지 등 수십여기 유구 확인
옥 귀고리도 첫 출토…주거지서 고산리식토기·타제석기 동반출토 

 

▲ 한반도 최초의 신석기 유적지인 제주 고산리 선사유적(사적 412호)에 대한 시`발굴조사에서 동 시기 집단 주거지터가 발견돼 학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고산리 선사유적 발굴 모습.  사진=제주시 제공  ⓒ제주의소리


한반도 최초의 신석기 유적지인 제주 고산리 선사유적(사적 412호)에서 신석기 시대 초기로 추정되는 집단 주거지가 발굴돼 학계의 비상한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제주시와 (재)제주문화유산연구원(원장 김은석)은 제주 고산리 선사유적지 1단계 시·발굴조사 중간보고 및 1차 자문위원회의를 오는 25일(수) 오후2시 한경면 고산리 소재 고산문화의집 2층에서 개최할 예정이라고 24일 밝혔다.

이번 시굴·발굴 조사의 총 면적은 8필지 2만6642㎡다.

이 중 시굴조사는 2만3098㎡ 규모에서 진행 중으로 지형에 따라 23곳의 트렌치를 설치·조사해 수혈유구, 야외 노지, 석기 제작장 등 80여기의 유구가 확인됐다. 또한 고산리식 토기와 함께 다양한 타제석기도 확인돼 향후 단계적인 추가 발굴조사를 실시할 예정이다.

특히 발굴조사는 3544㎡ 면적에서 10×10m 그리드(Grid)를 설치해 조사 중으로, 토양 퇴적상태가 양호한 중앙 계곡부를 중심으로 원형주거지 10여동, 수혈유구 80여기, 집석 유구(추정 야외노지) 10여기 등의 유구가 집단 발굴됐다.

제주지역 신석기 유적에서 이 시대 집단 주거지로 추정되는 유구가 발견된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고산리식토기, 융기문토기, 무문양토기 등 다양한 토기류와 화살촉, 찌르개, 밀개 등 성형석기와 돌날, 박편, 석재, 망치돌 등 석기류도 다량 출토된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옥으로 추정되는 결상이식(귀고리) 1점도 출토돼 현재 정확한 성분분석을 벌이고 있다.

시·발굴 용역조사를 맡고 있는 제주문화유산연구원의 고재원 부원장은 <제주의소리>와 통화에서 “제주에서 지금까지는 신석기시대 집단 주거지 터가 안 나왔지만, 이번 조사에서 주거지가 나왔다는 것은 고산리 선사인들의 생활상을 밝히는데 결정적인 유적이 될 것”이라며 “지금까지 알려진 고산리 유적지의 연대인 기원전 1만년 전후시기에 대한 연대분석도 좀더 세밀하게 분석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 고산리 선사유적의 트렌치(11, 13, 14) 유구 모습  ⓒ제주의소리
 

 

▲ 제주 고산리 선사유적(사적 412호)에 대한 시.발굴조사에서 출토된 유물들.  특히 왼쪽 상단의 결상이식(귀고리) 유물은 제주에서 처음 발굴된 신석기시대 귀고리 유물이다. ⓒ제주의소리


이에 따라 이번 고산리 유적에 대한 시․발굴조사 결과는, 신석기시대 초기에 해당하는 다양한 유구와 함께 같은 시기 유물조합을 확인하는 계기가 됐고, 특히 고산리식토기와 함께 타제석기가 동반 출토되는 집단 주거지가 처음으로 확인된 점은 한반도 최고(最古)의 신석기시대 주민집단인 고산리유적의 정주취락을 논의할 수 있는 중요한 학술적 자료로 평가될 전망이다.

또한 향후 발굴조사는 유구내부 조사와 함께 다양한 분석 자료를 확보하고 고환경분석과 연대측정을 위한 분석(AMS, OSL, 무기질․유기질분석)을 실시해 유적의 성격과 편년을 명확하게 규명할 계획이다.

앞서 고산리 유적은 1991년 문화재 지표조사를 통해 석촉 등 6000여점 이상의 유물을 발굴한 뒤 1994년과 1997년, 1998년 등 세차례에 걸쳐 시굴 및 발굴조사를 벌여 석기 9만9000여점, 토기조각 1000여점 등 10만여점이 발굴된 바 있다.

당시 발굴작업을 통해 한반도에서는 확인되지 않았던 고산리식 토기(섬유질토기), 첨두형석기 등이 출토돼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 고산리 유적은 기원전 1만년을 전후한 시기 한반도의 구석기 후기문화에서 신석기 전기문화로 옮겨가는 과정을 확인할 수 있고, 시베리아, 만주, 일본, 한반도지역을 포함하는 동북아시아 신석기 전기문화 연구의 중요 유적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 유적은 98년 12월 사적 412호 ‘제주 고산리 선사유적’으로 지정됐고, 지난해 7월에는 ‘제주 고산리 유적’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그러나 과거 진행된 발굴작업이 사적 지정 면적(9만8465㎡)의 5%에 지나지 않는데다 현재 사적지에는 목재 안내판 하나만 설치돼 사실상 방치되다시피 해 추가 발굴조사 및 정비보존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돼왔다.

한편, 25일 예정된 고산리 선사유적지 중간보고 및 1차 자문위원회의에는 이기길 교수(조선대), 이청규 교수(영남대), 하인수 관장(복천박물관), 권상열 관장(국립제주박물관) 등 4명의 자문위원과 문화재청 관계자 등이 참석키로 했다. <제주의소리>

<김봉현 기자 /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_재배포 금지>


▲ 고산리 선사유적 조사대상지 트렌치 배치도 및 그리드 배치 현황 ⓒ제주의소리

 

● 1만 년 전 신석기인, 쪽방에 모여 살았다(?) < 문화일반 < 문화 < 기사본문 - 제주의소리 (jejusori.net)

 

● "고산리 선사유적, 국내 최고 신석기 유적 입증" - 제주일보 (jejunews.com)

 

● "고산리 유적, 한반도 최고(最古)인데다…" < 학술·문화재 < 문화 < 기사본문 - 제주의소리 (jejusori.net)

 

● 제주 고산리 선사유적 추가 발굴조사 내달 착수 | 연합뉴스 (yna.co.kr)

 

  • 기자명 김봉현 기자  입력 2012.07.25 19:12

“만년전 제주도엔 옥 귀고리 찬 사냥꾼 살았다” < 학술·문화재 < 문화 < 기사본문 - 제주의소리 (jejusori.net)

 

“만년전 제주도엔 옥 귀고리 찬 사냥꾼 살았다” - 제주의소리

지금부터 약 1만년에서 1만2000년 전 신석기시대 초기, 제주 섬 서쪽 끝자락에 자리한 한경면 고산리의 속칭 ‘한장밭’ 해안가에는 한반도 최고(最古)의......

www.jejusori.net

 제주 ‘고산리’서 신석기초기 한반도 최고 집단취락지 발굴…학계 관심 ‘비상’

둥근귀고리 1점·화살촉 등 교역물 추정유물도 다량…1만년전 이미 대외교류?

 지금부터 약 1만년에서 1만2000년 전 신석기시대 초기, 제주 섬 서쪽 끝자락에 자리한 한경면 고산리의 속칭 ‘한장밭’ 해안가에는 한반도 최고(最古)의 마을유적이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한반도 최초의 신석기 유적지가 제주 고산리다.

 

 

이 시대 고산리에 살던 선사인들은 절해고도의 섬에서 육지부나 혹은 대륙·일본 등과 문물교류도 벌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최근 이 지역 시굴현장에서 옥 또는 규장암으로 추정되는 ‘결상이식’(둥근 귀고리) 1점이 발견됐기 때문으로, 고산리식 토기 양상이 한반도에는 나타나지 않는 것이고, 석촉 등 일부 석기류 재질도 제주에선 나지 않는 것들이 발굴됐기 때문이다.

 

 # 고산리 신석기인들은 수렵 전문가…발굴유물 대부분 화살촉·석창 등 사냥도구

▲ 고산리 선사유적에 대한 이번 시.발굴 조사에서 출토된 결상이식(둥근귀고리)과 화살촉 등 석기류. 결상이식은 출토 당시 반파된 상태였고, 상부는 편평하며 하부는 원형을 띠고 있다. 재질은 현재 정확한 성분분석을 조사 중으로 옥 또는 규장암으로 추정하고 있다. 출토된 석기류는 대부분 화살촉과 찌르개 등 수렵용도의 석기류가 대다수다. ⓒ제주의소리

 

출토된 유물은 고산리식 토기와 석촉을 포함한 각종 성형석기·폐기석재들이 대부분으로 1991년 지표조사에서 1998년 시·발굴 조사에 이르기까지 석기 9만9000여점, 토기조각 1000여점 등 10만여 점이 발굴된 바 있다.

 

# 한반도 신석기 유적지 중 가장 오래된 집단주거지는 제주 '고산리'

당시 발굴 작업을 통해 한반도에서는 확인되지 않았던 고산리식 토기(섬유질토기), 첨두형석기 등이 출토돼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 완형의 석기 출토 유물 중에는 화살촉이 1700여점으로 가장 많았고 긁개 50여점, 창끝 40여점 등은 한반도에서 가장 빠른 신석기 초기시대의 제주 고산리 선사인들은 수렵생활 중심이었음을 짐작케 한다.

이번 시·발굴 조사에서도 고산리식 토기와 다양한 타제석기류(화살촉, 찌르개, 밀개 등 성형석기와 돌날, 박편, 망치돌)들이 출토됐다. 이러한 유물상(遺物相)은 제주도에서 본격적으로 수렵과 채집이 이루어지고 저장과 조리시설 등 토기제작이 이루어진 시기가 고산리유적 단계에 비롯되는 것임을 암시하고 있다.

특히 이번 시·발굴에서 원형주거지 10동, 수혈유구 80여기, 집석유구(추정 야외노지) 10여기, 다수의 주혈이 화살촉 등의 석기류 및 고산리식 토기와 동반 출토되는 점은 한반도 최고 신석기시대 주민집인 고산리유적의 정주취락을 살펴볼 수 있는 매우 중요한 학술자료로 평가됐다.

 

이번 조사에서 발굴된 출토유물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단연 ‘결상이식’(둥근 귀고리) 1점이다. 원형 중 40% 정도가 깨진 상태로 출토됐고, 육안으로는 옅은 하늘빛과 살구빛 사이의 색으로 옥 또는 규장암으로 추정되는데 정확한 성분분석을 실시 중에 있다.

 

하 관장에 따르면 한국에서 옥으로 만든 귀고리가 발견된 곳은 이번 제주 고산리를 포함해 총 7곳이다. 부산 동삼동 패총·사천 선진리 유적·강원도 고성 문암리 유적·여수 안도 패총 등으로, 모두 신석기시대 유적이다. 그러나 고산 선사유적의 경우, 제주도내에 ‘옥’ 산지가 없기 때문에 1만년전 이미 제주 선사인들의 글로벌 네트워크를 들여다 볼 수 있는 육지부와의 교역물로 추정되고 있다.

 

 

김상운 기자 입력 2016-03-21 03:00업데이트 2016-03-21 03:00
 

국내 最古 1만년전 초기 신석기 문화를 엿보다… 국립제주박물관 고산리 특별전|동아일보 (donga.com)

제주 고산리 유적에서 출토된 토기인 사람 얼굴 모양의 ‘토우’(위 사진)와‘깊은 바리’. 국립제주박물관 제공
 
1998년 국가 사적으로 지정된 제주 제주시 한경면 고산리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유적이 있다.

1만 년 전 신석기 초기의 것으로 보이는 고산리 유적에서는 9만9000점의 석기와 1000여 점의 토기 조각이 발견됐다. 선사 고고학계는 고산리 유적을 동북아시아의 초기 신석기문화를 규명해줄 열쇠로 보고 있다.
 

 

국립제주박물관 '고산리, 신석기 시대를 열다'展 - 헤드라인제주 (headlinejeju.co.kr)

 

국립제주박물관 '고산리, 신석기 시대를 열다'展 - 헤드라인제주

국립제주박물관은 오는 8일부터 6월 5일까지 '제주 고산리, 신석기 시대를 열다' 기획특별전을 연다. 한국 신석기시대의 시작을 알리는 제주 고산리유적을 비롯해 신석기인의 삶과 예술을 소개

www.headlinejeju.co.kr

 

제주대박물관, 고산리유적 국제 학술대회 개최 - 헤드라인제주 (headlinejeju.co.kr)

 

제주대박물관, 고산리유적 국제 학술대회 개최 - 헤드라인제주

제주대학교박물관(관장 문혜경)은 오는 8일 오전 9시30분부터 9일 오후 4시까지 대학 아라컨벤션홀 대회의실에서 '제주 고산리유적 국제학술대회'를 개최한다. 제주특별자치도 세계유산본부가

www.headlinejeju.co.kr

 

고산리 유적 출토 융기문 토기 - 디지털제주문화대전 (grandculture.net)

 

고산리 유적 출토 융기문 토기 - 디지털제주문화대전

[정의]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경면 고산리 유적에서 출토된 신석기시대의 융기문이 시문된 토기. [개설] 융기문 토기는 표면에 삼각형 또는 원형의 점토띠를 덧붙인 것과 표면을 꼬집어 내어

jeju.grandculture.net

 

 

 

  • 한정석 편집위원 승인 2014.09.26 17:12

한반도 문명의 탯줄, 제주 고산리 - 미래한국 Weekly (futurekorea.co.kr)

 

한반도 문명의 탯줄, 제주 고산리 - 미래한국 Weekly

‘파도 파도 미담만 나온다’는 말이 회자되던 때가 있었다. 그런데 파면 팔수록 수수께끼가 나오는 곳이 있다. 제주도 고산리가 그렇다. 1990년대 초반 이곳에서 돋을무늬(융기문) 토기가 ...

www.futurekorea.co.kr

한반도 문명의 탯줄, 제주 고산리
 
[한정석의 역사파일]

‘파도 파도 미담만 나온다’는 말이 회자되던 때가 있었다. 그런데 파면 팔수록 수수께끼가 나오는 곳이 있다. 제주도 고산리가 그렇다.

제주 고산리 토기

 

1990년대 초반 이곳에서 돋을무늬(융기문) 토기가 한 점 나왔다. 연대를 측정해 보니 약 BC 8000년 전으로 올라갔다. 그러니까 약 1만년 전에 조상님이 쓰던 그릇이라는 이야기다. 현대인으로서는 도저히 감이 잡히지 않는다. 1만년 전 조상님들이라니.

하지만 이 고산리 토기의 상단 문양, 그러니까 가로로 쳐진 세 개의 줄무늬는 신라 토기에도 등장했다. 이후 오늘 우리가 ‘항아리’라고 부르는 토기에도 종종 그려 넣어진다. 문화적 연속성이 있다는 이야기다.

 

빗살무늬 토기를 둘러싼 미스터리

1만년 전 제주 고산리 토기는 이 시기에 해당하는 마을 유적지의 발굴로 더 이상 북방 아무르인의 남하설로 설명하기 어려워졌다. 이미 1만년 전 시기에 제주도에는 사람들이 정착해 수렵과 어로의 생활을 이어갔다고 봐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질문은 이렇게 돼야 한다. 왜 한반도의 가장 오래된 정착문화가 하필이면 한반도 제일 남단의 섬 제주도에서 발굴되는 것일까. 대답을 얻기 위해 지도만 들여다봐서는 곤란하다. 거기에는 제주도와 중국 사이의 황해가 있는데, 그 바다는 처음부터 바다가 아니었다.

시베리아 아무르토기(BC14000)

 

제주도, 그 신비의 섬

지금의 황하와 양자강은 1만년 전 거대한 강으로서 황해 평원을 서에서 동으로 가로질러 흘렀다. 황해는 평야였다. 그 시기가 지금으로부터 약 1만2000년 전이다. 지구의 마지막 빙기인 사르탄 빙기가 끝나면서 지구의 온도는 급속하게 올라가기 시작했고 빙하는 북쪽과 남쪽으로 더 물러났다. 황해 평원은 서서히 바다로 침수돼 갔고 그 지역에 살던 사람들은 바닷물의 침수를 피해 중국 대륙의 동남부와 한반도 그리고 일본 이 세 방향으로 북상했을 거라고 추정해 볼 수 있다.

시간을 거꾸로 돌려보자. 중국 동남부, 한반도, 일본 이 세 지역으로부터 사람들을 다시 황해 평원으로 모아보면 그 어딘가에 오늘날 동아시아 문명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는 한 지역을 얻을 수 있게 될 것이다. 그곳에서 인류의 가장 오래된 토기들이 발굴될지도 모른다. 어쩌면 아무르 토기와 제주 고산리 토기, 그리고 일본 죠몬 토기보다 더 오래된 그릇들은 어쩌면 황해 남쪽, 타이완과 오키나와 섬 근처 어딘가에 묻혀 있는 것은 아닐까. 역사는 그 후손들을 동이(東夷)라고 불렀던 것은 아닐까.

동이족이라 불렸던 이들의 언어가 오늘날 중국어가 아니라 오스트로-아시안계라는 것과 중국 동남부, 한반도 남부, 일본인들의 유전자 거리가 다른 어떤 집단보다도 가깝다는 연구 결과는 그러한 가정을 뒷받침해 준다.

그런 점에서 제주도는 우리가 더 연구해봐야 할 곳이다. 한반도에서 유일하게 창세설화가 존재하는 곳. 그리고 천손신화가 아니라 땅에서 솟아나는 삼성혈 신화가 존재하는 곳.

 

 

 

[발해연안문명(요하문명)]

2014년 07월 30일 (수) 21:25

 요하문명에서 중국의 치밀한 역사 전쟁을 보다 (brainmedia.co.kr)

 

요하문명에서 중국의 치밀한 역사 전쟁을 보다

“요하 지역에서 출토된 유물이 이곳에 대거 전시되어 있습니다. 이 유물 전시에는 중국의 관점이 반영되어 있습니다. 그 관점에 유의하면서 관람하세요. 왜 요령성박물관이 요하문명을 강조하

www.brainmedia.co.kr

 

 

 

등록 2010-01-28 15:24수정 2012-09-17 16:29

‘제5의 문명’ 요하는 ‘중화’역사엔 없었다 (hani.co.kr)

 

‘제5의 문명’ 요하는 ‘중화’역사엔 없었다

최근에 요하문명에 대해 사람들이 많이 궁금해 하기 시작했다. 한국방송 ‘역사스페셜’(<제5의 문명 요하를 가다> 2009년 8월29일 방영)이 방송된 뒤에 많은 사람한테 전화를 받았다. 어떤 역사

www.hani.co.kr

[한민족 시원, 만주]동방 르네상스를 꿈꾸다 (1)

용 옥 토기 주거지 등 중국문화 최초 상징 뿌리
BC 6천년 한반도-요하 단일 문화권, 유물 증거
 

 

 

2007.10.16뉴스메이커 745호

● [커버스토리]‘발해문명’ 창조 주인공은 우리 민족 - 주간경향 (khan.co.kr)

 

[커버스토리]‘발해문명’ 창조 주인공은 우리 민족

넓은 의미 발해 연안 문화·출토유물… 한반도 고대문화와 밀접한 관계인류의 문화는 구석기시대에서 시작하여 신석기시대로 이어지지만 인류의 문명을 말할 때···

weekly.khan.co.kr

 

귀고리 일종 옥결 한반도서도 출토

또한 발해 연안 북부 대릉하 유역의 중국 요녕성 부신(阜新) 사해(査海)문화, 내몽골 흥륭와(興隆窪)문화와 홍산(紅山)문화가 있다. 발해 연안 북부의 심양(瀋陽) 신락(新樂)문화, 요동반도 남단의 광록도(廣錄島) 소주산(小珠山) 하층문화와 압록강 하류 후와문화가 있다. 이들 문화에서는 빗살무늬토기와 옥결이 출토되고 있다. 옥결은 귀고리의 일종으로 한반도에서는 강원도 고성 문암리 유적에서 출토된 바 있다. 옥기문화는 빗살무늬토기 문화와 함께 발해 연안의 대표적인 문화다. 이들 신석기시대 문화는 기원전 6000년 또는 3000년께 유행했던 동북아에서 가장 이른 시기의 문화다. 이 시기는 시베리아나 몽고의 신석기 문화보다 훨씬 빠른 연대다. 우리는 여기에서 ‘발해문명’의 여명을 맞이하게 된다.

발해 연안에서는 대릉하 유역의 홍산문화 유적에서 적석총과 석관묘가 출현한다. 이와 같은 돌무덤(石墓)-적석총·석곽묘·석관묘·지석묘 등-은 발해 연안에서 흔히 보이는데 특히 대릉하 유역 요녕성 능원현(凌源縣) 우하량(牛河梁)의 적석총과 석관묘가 대표적이다. 이와 같은 돌무덤은 청동기시대에도 이어지고 있다. 요동반도와 한반도에도 신석기시대와 청동기시대에 적석총, 석관묘 그리고 고인돌무덤(支石墓)이 유행하고 있다. 홍산문화의 연대는 기원전 3500~3000년쯤으로 이 시기는 시베리아의 가장 이른 돌무덤의 연대보다 무려 1000년 이상이나 빠르다.

발해 연안에서는 옥룡(玉龍)이 발견되고 있다. 홍산문화의 옥룡은 발해 연안 서쪽으로 내려가 은(殷)나라에서 계승되고 있다. 이미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은민족은 우리 민족과 같은 동이(東夷) 민족이다. 우리나라의 곡옥(曲玉)은 이와 같은 옥룡에서 유래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경남 진주 남강유역 청동기시대 옥방 5지구 원형적석유구. 선문대 박물관 진주남강유적 전시실에 있다. <이형구 교수>

 

고대 갑골문화도 발해 연안 북부에서 발생하여 서쪽으로 내려가 은나라에서 유행하면서 갑골문자가 완성되었다. 한반도에서는 두만강유역 무산(茂山) 호곡동(虎谷洞), 남해안 일대의 변한 지구, 영산강·금강 유역의 마한 지구 등 철기시대나 삼한시대 유적에서 출토되고 있다.

인류 역사상 청동기의 발명은 매우 중요하여 토기의 발명 이래 인류의 가장 큰 문화혁명이라고 할 수 있다. 발해 연안에서 청동기가 발견된 유적으로는 발해 연안 북부 중국 하북성 당산시(唐山市) 대성산(大城山) 유적과 내몽골 적봉(赤峯) 하가점(夏家店) 하층문화 유적이 있다. 대성산 유적에서는 순동으로 만든 장식품이 출토되었는데 이 시기는 기원전 2000년쯤으로 추정되고 있다. 최근에는 우하량 적석총에서 홍산문화 시기의 청동을 제련할 때 쓰는 도가니와 청동 찌꺼기(slag) 그리고 청동기 조각이 수습되어 많은 관심을 모으고 있다. 하가점 하층문화 유적에서 출토된, 제련된 청동 덩어리의 C¹⁴측정연대는 기원전 1900년쯤으로 측정된다. 그리고 요동반도에서 청동기를 반출하는 우가촌(于家村) 적석총의 C¹⁴측정연대는 기원전 1500~1300년으로 측정된다. 한반도에서도 요동반도와 같이 적어도 기원전 15세기쯤에 이미 청동기문화가 형성되었을 것으로 본다.

우리 학계에서는 한반도의 청동기 문화를 시베리아 카라스크 문화와 연결시키고 청동기시대의 인류도 시베리아에서 내려왔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발해 연안의 초기 청동기시대의 연대가 기원전 2000년쯤이고, 요동반도에서 청동기가 반출된 유적의 연대도 기원전 1500년쯤이기 때문에 기원전 12~8세기의 카라스크 문화의 연대보다 훨씬 앞서고 있다.

 

대릉하지역·한반도 청동기문화 유사

대릉하 유역과 요하 이서(以西) 지역에서 발견되는 은말주초(殷末周初)의 청동기는 고대 역사서에 나오는 기자(箕子)가 은이 망하여 동쪽으로 이동한 시기와 일치하고 있을 뿐 아니라 기자의 동주(東走) 노선과도 부합한다. 이는 고조선을 연구하는 데 주목할 만한 점이다.

발해 연안 북부 대릉하 유역에서 하가점 하층문화와 은말주초의 청동기 문화가 함께 어우러져 이른바 하가점 상층문화-필자는 남산근문화(南山根文化)라고 칭한다-를 만들어낸다. 남산근문화의 내용은 하가점 하층문화의 요소를 내포하면서도 은말주초의 청동기 문화가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 이 청동기 문화가 요동지역이나 한반도지역의 청동기 문화와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다. 이 시기에 이른바 비파형청동단검이라고 하는 발해연안식 청동단검이 석곽묘나 석관묘 그리고 고인돌 무덤에서 출토되고 있다. 이 돌무덤들은 어떤 집단의 상당한 신분을 가진 수장(首長) 급의 무덤으로 추측되는데, 그 무덤의 주인공의 지위를 상징하는 의례용으로 발해 연안식 청동단검을 부장했던 것으로 추측된다.

대릉하의 홍산문화 유적에서는 우하량 여신묘에서 소조 여신상이 출토되고 동산취(東山嘴) 제단 유적에서는 소조 임부상이 출토되었는데 여신상과 임부상은 지모신(地母神)을 숭상하는 농경사회의 대표적인 신앙의 대상이다. 고대 사회에서 대형 적석총, 제단, 신전 그리고 신상과 옥기가 문명의 조건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우리는 여기에서 ‘발해문명’의 탄생을 보았다.

 

 

2008.01.15뉴스메이커 758호

● [특별기획]발해문명은 고대 동방의 중심이었다 - 주간경향 (khan.co.kr)

 

[특별기획]발해문명은 고대 동방의 중심이었다

‘코리안 루트’ 1만km 대장정넓은 의미의 발해연안은 산동·요동·한반도를 포함한 동양의 지중해경향신문 코리안루트 탐사취재단의 일원으로 요하·대릉하 일···

weekly.khan.co.kr

 

 

 

우실하 교수  | 기사입력 2008/04/26 [02:21]

● 동북공정의 결정판 ‘요하(홍산) 文明論':플러스 코리아(Plus Korea)

 

≪pluskorea≫ 동북공정의 결정판 ‘요하(홍산) 文明論'

현재중국정부가국가적차원에서진행하는'동북공정'은바로동이족에대한열등감을무마시키고동이족의조상인'3황5제'까지중국화함으로써단군.부여.고구

www.pluskorea.net



 

 

입력2004.07.07 10:01 수정2004.07.07 10:01

● 한민족 뿌리는 발해연안문화 | 한국경제 (hankyung.com)

 

"한민족 뿌리는 발해연안문화"

"한민족 뿌리는 발해연안문화", 문화스포츠

www.hankyung.com

역사학자이자 고고학자인 선문대 이형구(李亨求. 60) 교수는 이를 반대하면서 '발해연안(渤海沿岸) 문명'을 제창한다. 즉, 발해만 유역 일대에서 일어난문명이 한민족 문화의 원형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가 말하는 '발해연안'은 구체적으로 어디일까? "넓은 의미로 발해를 중심으로 남부의 중국 산둥반도ㆍ서부의 허베이성 일대ㆍ북부의 랴오닝성 지방ㆍ북동부의 랴오둥 반도와 동부의 지린성 중남부에다 한반도를포함한 지역 개념"이다.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국립문화재연구소가 2002년 발굴조사한 강원 고성군 문암리 선사유적의 8천년 전 무렵 신석기시대 무덤에서 옥(玉) 장식 한 쌍이 수습됐다.

크기는 약간 다르지만 세트처럼 모양이 흡사한 이 둥근 옥(바깥지름 3.5㎝ 안팎) 한 쌍은 가운데 원형 구멍(지름 0.9-1.2㎝)을 뚫었으며 테는 각각 한군데가 터졌다. 옥결이라는 옥 귀걸이다.

 

이 옥결이 놀라운 점은 동북아 지역에서 지금까지 발굴된 옥 제품 중에서도 제작 연대가 가장 빠른 것 중 하나라는 사실이다.

지금의 중국 영토를 기준으로 그 안에서 일어난 모든 역사는 중국사의 영역으로 간주하는 중국에서는 적어도 현재까지 발굴성과로만 볼 때, 가공한 옥 제품 출토가 가장 빠른 곳으로 흥륭와문화(興隆窪文化)를 손꼽는다. 그래서 중국 고고학계에서는 흥륭와문화를 대단히 중시한다.

흥륭와문화는 내몽골 츠펑(赤峰)시 아오한치(敖漢旗) 흥륭와라는 곳에서 처음 발견된 문화라 해서 얻은 명칭으로, 지금으로부터 약 8천년 전 중국 동북지방에서 꽃핀 신석기시대 문화다. 이 흥륭와문화를 특징짓는 유물이 바로 옥결이다.

 

이 흥륭와문화 옥결과 일란성 쌍둥이를 방불케 하는 옥결이 다름 아닌 한반도 고성 문암리 유적에서 발견된 것이다.

지금은 중국이며, 북한, 그리고 대한민국으로 각각 쪼개진 동북아 지역이 선사시대로 거슬러 올라간 그때는 어쩌면 공통의 문화를 기반으로 하는 지역이었을지도 모른다는 가정까지 가능하게 한다.

하지만 중국 동북지역 선사문화, 그중에서도 신석기시대에만 국한해도 흥륭와문화 하나만 있지는 않았다. 그에 뒤이어 조보구문화(趙寶溝文化)를 거쳐 홍산문화(紅山文化)가 나타나고 다시 이들을 이어 소하연문화(小河沿文化)가 등장한다. 나아가 헤이룽장성 일대에서는 신개류문화(新開流文化)라는 신석기문화가 발달하기도 한다.

이런 누층적인 신석기문화 단계를 거쳐 중국 동북지역은 기원전 2천년 전 무렵에는 마침내 하가점하층문화(夏家店文化)라는 본격적인 청동기시대로 접어든다.

국내에서는 민족주의 열풍에 힘입어 한민족 뿌리 찾기를 표방하는 사람들이 90년대 이후 중국 동북지역을 답사하는 바람이 일었다. 이런 민족주의 현상은 급기야 하가점하층문화를 고조선과 동일시하는가 하면 이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 그 이전 홍산문화까지 고조선과 연결하기도 한다.

서울 인사동 갤러리 떼가 마련해 12일 개막한 '동북아의 심연(深淵), 홍산문화' 기획전은 내몽골 츠펑박물관이나 아오한치박물관 같은 데서나 볼 수 있던 동북아 선사문화의 유산(遺産)을 한자리에 모은 자리다.

이번 전시는 흥륭와 이래 조보구, 홍산, 신개류문화를 지나고 하가점하층문화를 거쳐 오르도스 청동기문화까지 포괄하는 각종 유물 300여 점을 선보인다.

개구리 뒷다리 모양으로 통통하게 살찐 세 발에다가 통통한 몸통이 인상적인 홍산문화 홍도, 이와 모양은 흡사하지만 상대적으로 몸통이 날씬한 하가점하층문화 홍도, 먼 한반도 남단 김해에서까지 출토돼 신라와 가야가 북방에서 내려온 기마민족 후손이라는 주장까지 낳게 한 동복이라는 오르도스 청동기가 특히 주목을 끈다. 전시는 다음 달 15일까지. ☎02-733-2190.

 

 

[흥륭와문화]

입력 : 2007.11.09 14:47

 

차하이 옥결, 싱룽와 옥결, 고성 문암리 옥결(왼쪽부터)

 

싱룽와에서는 사람과 돼지가 함께 순장된 장례풍습이 확인됐다.

 

# 8000년 전의 계획도시

그런데 싱룽와는 왜 ‘중화시조취락’이라는 명성을 얻었을까. 83~94년 사이 7차례나 발굴한 조사단은 깜짝깜짝 놀랐다. 무려 175기의 집자리가 마치 도시계획으로 조성된 주택단지의 형태로 고스란히 확인된 것이다.(차하이에서도 55기의 주거지가 발견됐지만, 싱룽와보다는 규모가 작은 편이다)

중국에서 가장 넓고 보존이 잘된 신석기 시대 대규모 취락이다. 4만㎡에 달하는 마을은 환호(環壕·적의 침입을 막으려 도랑으로 두른 것)로 보호돼 있었다. 집자리의 규모는 보통 60㎡(약 18평)인데, 가장 큰 두 곳은 140㎡(약 42평)를 훌쩍 넘었다. 중국학자들은 바로 이 대목을 주목한다.

마을 한복판에 있는 두 개의 집자리엔 영도자가 살았거나, 회의 혹은 원시종교의식을 행했던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8000년 전의 마을에 벌써 2개의 씨족이 함께 살고 있었다는 사실을 웅변해준다. 학계는 이 원시마을에 약 300명이 살았을 것으로 짐작한다.

각 방의 모습을 보면 취사용구뿐 아니라 생산도구, 심지어 식품저장용 움막까지 지니고 있었다. 이는 가정마다 경제적인 독립성을 지녔다는 얘기다. 또한 마을은 10개 정도의 열(列)을 지어 일정하게 구획됐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같은 배열에 살았던 가정끼리 밀접한 관계를 맺었다는 점이다.

이것은 1개 마을의 최소단위인 가정과, 같은 열에 사는 혈연관계로 맺은 가까운 친척, 그리고 마을 안에서 함께 살았던 먼 친척까지 하나의 씨족마을을 이뤘음을 말해준다.

 

 

무덤에는 빗살무늬 토기와 옥기, 골기 등과 함께 사람과 돼지를 합장한 흔적도 보였다. 이것을 순장(殉葬)이라 한다면 훗날 동이족의 나라인 상(은)도 순장의 풍습을 간직하고 있었다. 제사용 구덩이에서도 돼지뼈가 다수 발견됐는데, (지금의 돼지머리처럼) 돼지는 8000년 전에도 제수용품으로 사랑받은 게 분명하다. 돼지 외에도 사슴뼈와 물고기뼈가 대량으로 나왔다.

궈다순 랴오닝성 문물연구소 연구원은 “돼지사육과 돼지숭배는 원시농업의 시작을 보여주는 단서이므로 차하이-싱룽와인들은 어렵과 수렵을 주요 생산활동으로 하면서 농업을 막 시작한 단계로 볼 수 있다”고 추정한다.

사족을 달면 차하이와 싱룽와는 200㎞나 떨어져 있지만 연대와 문화양상은 매우 비슷하다. 따라서 중국학계는 차하이-싱룽와 문화라는 용어로 묶는다.

차하이-싱룽와 유적이 중요한 것은 용(차하이)이나 취락의 규모(싱룽와) 때문만은 아니다. 차하이, 싱룽와에서 동시에 출토된 옥과 정교한 빗살무늬 토기 덕분이다. 또한 확인된 175기의 주거지 가운데 5기가 동이의 문화인 홍산문화 주거지라는 점이다. 이것은 홍산문화(BC 4500~BC 2000년)가 싱룽와 문화의 전통을 그대로 이었음을 웅변해준다.

옥 문화에 관해서는 옥 문화가 찬란한 꽃을 피운 홍산문화를 다룰 때 다시 언급하겠다. 다만 차하이·싱룽와에서 발견된 옥결(玉결·옥귀고리)과 똑같은 것이 최근 한반도 중부(강원도 고성군 문암리) 7000년전 유적에서 나왔다는 사실만 우선 언급해두고 싶다.

 

 

(선양=연합뉴스) 신민재 특파원 = 중국 네이멍구자치구 츠펑시 신석기시대 유적에서 발견된 흥륭와문화(기원전 6200~5200년) 석인상. 2014.10.29 << 국제뉴스부 기사 참조, 우실하 한국항공대 교수 제공 >>

 

 

 

[사해문화]

 

입력 : 2007.10.26 15:01

[코리안루트를 찾아서](4) 동이의 본향, 차하이 - 경향신문 (khan.co.kr)

 

[코리안루트를 찾아서](4) 동이의 본향, 차하이

-마을중심에 용 돌무더기 ‘그렇다면…’- 7월27일 오전 7시. 일정을 소화하느라 지칠 대로 지친 탐사단이었지만 이날은 야릇한 흥분에 휩싸여 있었다. 30년간 발해문명권을 연...

www.khan.co.kr

-마을중심에 용 돌무더기 ‘그렇다면…’-

다링허 상류 낮은 구릉지대에 자리잡은 차하이 유적에서 확인된 돌무더기 용의 형상이다. 주거지와 주거지 사이에서 발견됐으며, 용 신앙의 시원으로 평가된다. <차하이/김문석기자>

 

 

# ‘중화 제1촌’은 ‘동이 제1촌’

용 혹은 뱀이 두꺼비를 삼키는 모습을 새긴 빗살무늬 토기(위)와 용을 새긴 토기편. 모두 차하이에서 발견됐다.

 

# 8000년 전의 용(龍)

뻥뻥 뚫린 채 방치된 수풀이 무성한 발굴 흔적 너머로 인공 울타리가 보인다. 가까이 가보니 돌무더기를 무슨 신주단지 모시듯 보호해놓았다. 차하이 유적에서 가장 그럴 듯하게 보전해놓은 것이다.

“이 기자, 잘 보세요. 이게 용 형상의 돌무더기입니다.”

“저, 여기가 머리, 여기는 갈기, 여기는 발, 여기는 꼬리부분….”

이형구 교수가 돌무더기 형상 주변을 돌며 언뜻 구체적인 형상을 그려내지 못하는 기자에게 그림까지 그려가며 설명해준다. 정말이다. 용 머리와 용 몸 부분의 돌무더기는 두껍고 조밀하게 용을 표현했다. 반면 꼬리부분의 돌무더기는 느슨하게 흩어져 있다. 용은 머리를 쳐들고 입을 벌리고 있으며, 몸을 뒤틀고 있다.

꼬리는 숨긴 듯 드러나게 해서 마치 용이 하늘로 승천하는 듯한 느낌이다.

“용의 전체 길이는 19.7m이고, 몸의 폭은 1.9~2m에 달합니다.”

희한한 것은 이 용 형상의 돌무더기가 마을의 중심부에 있다는 점이다. 사방에 60기에 가까운 주거지가 둘러싸여 있고, 용의 머리 앞에는 10여기의 무덤이 있었다. 용 모양의 방향인 215도였는데, 이는 주거지의 건축 방향과 일치한다. 1982년, 랴오닝성 전체에 대한 발굴조사 때 주거지와 함께 이 용 형 돌무더기를 확인했다.

 

 

 

[신락문화]

 

입력 : 2007.11.02 14:53

용과 새가 한꺼번에 표현된 유물(지팡이)가 출토된 선양 신러유적. 사진은 유적을 복원해놓은 모습이다. 새는 홍산문화의 옥에서도 잘 표현됐다. 신러/김문석기자

 

 

 

# 차하이 용의 수수께끼

그런데 8000년 전 마을인 차하이에서, 즉 중국인들도 인정하듯 동이의 고향인 발해만 연안에서 용 형상 돌무더기와 용이 부조된 토기들이 발견된 것이다.

 

 

# 용과 새는 동이의 상징

궈다순의 해석처럼 이 유물이 권장인지, 아니면 비녀인지, 그리고 그것이 용을 표현한 것인지, 새를 표현한 것인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이렇게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용의 몸을 하고 태어난 새. 즉 용과 새를 한꺼번에 표현했을 수도 있지 않은가. 어쨌든 이형구 교수가 의견을 내놓는다.

“결국 7000~8000년 전 발해만에서 살던 사람들은 용과 새를 함께 모신 것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이교수는 차하이·싱룽와(興隆窪)-신러문화의 뒤를 잇는 홍산문화에서도 용과 새 문양의 옥제품이 섞여 나오고 있는 점에 주목했다. 용과 새를 함께 모신 사람들.

그렇게 해석하면 모든 의문점이 풀린다. 앞서 우리 민족과 용의 밀접한 관계를 사료와 고고학적 증거로 언급했지만, 우리 민족과 새의 관계 또한 두껍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앞서 예를 든 부여 창업주 해모수와 신라 박혁거세, 석탈해 신화는 용은 물론 새가 상징하는 천강(天降·하늘에서 내려오는) 신화의 모습을 보여준다. 용과 새가 같은 신화 안에 공존한다는 뜻이다.

백제예술의 정수인 금동대향로는 용이 입을 벌린 채 향로를 받치고 있고, 맨 꼭대기에는 하늘과 교통할 수 있는 봉황이 서있다.

이형구 교수는 “용은 물을 상징하지만, 새와 마찬가지로 하늘을 상징하기 때문에 천계를 넘나드는 하늘과 인간을 연결시켜주는 고리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그런데 주목해야 할 것이 있다. 중국인들은 용을 신앙으로 삼지만 새는 그렇게까지는 신성시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천진기 과장은 “물론 봉황을 태평성대에 나타나는 상상의 새라고 하지만 용처럼 그렇게 다양한 양상으로 숭배하지는 않는다”고 전했다.

다만 동이의 나라인 상나라만이 난생신화를 건국신화로 삼고 있다. ‘사기’ 은본기에는 “은(상)의 시조 설의 어머니 간적이 제비알을 삼켜 임신한 뒤 낳은 이가 바로 설(契)이다”라고 기록해 두었다. 결국 용과 새를 동시에 신성시한 종족은 중국인이 아니라 동이족이었다는 뜻이다.

 

 

[고성 문암리유적]

박희송입력 2012. 6. 27. 09:45수정 2012. 6. 27. 09:45

【대전=뉴시스】박희송 기자 = 강원도 고성 문암리 유적에서 동아시아 최초로 신석기시대 경작유구(밭)으로 추정되는 유적지가 발굴돼 고고학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소장 김영원)는 강원도 고성군 죽왕면 '고성 문암리 유적'(사적 제426호) 발굴 현장에서 신석기시대 경작(耕作) 유구인 '밭'을 발굴했다고 27일 밝혔다.

문화재연구소에 따르면 이번에 '고성 문암리 유적'에서 발굴된 신석기시대 밭 유적은 중국, 일본에서도 발견된 예가 없는 동아시아 최초의 신석기시대 밭 유적으로 추정된다.

 

2010년부터 고성 문암리 선사유적 종합정비사업의 하나로 발굴조사 중인 이 유적에서 발굴된 밭은 크게 상·하 2개 층으로 구분된다.

상층 밭은 전형적인 이랑(갈아 놓은 밭의 한 두둑과 한 고랑을 이름) 밭의 형태를 띠지만 청동기시대 밭의 형태와 비교할 때 두둑과 고랑의 너비가 일정하지 않고 이랑이 나란하게 이어지지 않는 고식적(古式的) 형태이다.

하층 밭은 상층 밭과 다르게 복합구획 밭의 형태로 원시적인 모습을 띤다.

특히 신석기시대 중기(기원전 3600년~기원전 3000년)의 토기편(짧은빗금무늬토기), 돌화살촉과 함께 그 층을 파고 조성한 신석기시대 집자리 1기가 확인돼 신석기시대 중기의 밭 유적으로 추정된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확인된 밭 유적 중 가장 빠른 시기의 것은 청동기시대(기원전 1500년~기원전 400년)이다.

한반도의 신석기시대 농경에 대해서는 석기(돌괭이, 뒤지개, 보습, 갈판, 갈돌 등)와 탄화곡물(조, 기장)을 근거로 그 존재 가능성을 추정해 왔으나 구체적인 농경의 증거인 '밭'이 확인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현재 문화재연구소는 농경과 관련된 보다 많은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 유적퇴적환경분석, 규산체분석, 토양미세형태학적분석 등 다양한 과학적 분석을 추진하고 있다.

앞으로 물체질(water-sieving, water-floatation) 방법 등으로 당시 재배 식물 종류의 확인은 물론 보다 정확한 연대 결정을 위해 AMS(방사성탄소연대측정)와 OSL(광자극 루미네선스측정) 등 다양한 분석을 시행할 계획이다.

heesking@newsis.com

 

 

입력 1998. 12. 28. 14:53수정 1998. 12. 28. 14:53

고성군 문암리에서 신석기유적 발견 (daum.net)

 

고성군 문암리에서 신석기유적 발견

(고성=연합뉴스) 이종건기자 = 강원도 양양군에 이어 고성군 문암리에서도 신석기시대 유적이 발견돼 학계의 관심을 끌고 있다.특히 고성군 문암리 유적은 신석기유적으로서는 우리나라 최북단

v.daum.net

 

(고성=연합뉴스) 이종건기자 = 강원도 양양군에 이어 고성군 문암리에서도 신석기시대 유적이 발견돼 학계의 관심을 끌고 있다.

특히 고성군 문암리 유적은 신석기유적으로서는 우리나라 최북단에서 발견된 것이어서 우리나라 동해안과 중국의 동북지방, 러시아의 아무르강 연안을 연결하는 신신석기문화의 연결고리를 푸는 데 큰 도움을 줄 것으로 학계는 전망하고 있다.

국립문화재연구소 유적조사연구실은 28일 강원도 고성군 문암1리 신석기시대 유적발굴 현장에서 임효재 서울대교수와 백홍기 강릉대학교 박물관장, 조유전 국립문화재연구소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유적발굴 지도위원회를 갖고 주거지와 출토유물을 공개했다.

 

이날 지도위원회에서 발굴팀은 "지난 2일부터 27일까지 25일간 유적발굴을 실시했으며 발굴과정에서 목탄유구를 비롯해 마제석기, 석제결합식낚시바늘, 토기파편 등 다수의 유물을 발굴했으며 발굴된 유물을 지난 80년대초 양양군 오산리에서 발견된 신석기시대의 유물과 비슷한 형태를 띠고 있다"고 밝혔다.

발굴팀은 "토기류의 경우 바닥이 평평한 발형토기가 대분분이나 동체에 손잡이가 달린 옹형토기도 소량 출토됐으며 밑바밖에는 건조시에 생긴 듯한 나뭇잎문양도 일부 토기에서 발견되고 재질은 점토에 운모와 사립, 새석립 등을 혼합한 것으로 이를 테쌓기 하여 토기를 완성했다"고 설명했다.

토기류의 문양은 원문(圓文), 반원문(半圓文),단선문(短線文) 등 여러가지가 발견됐다.

그러나 문암리 유적에는 오산리에서는 발견되지 않았던, 두립문(豆粒文)토기(콩알모양의 점토를 토기에 붙여 장식을 한 것)와 발견돼 관심을 끌었다.

이밖에 문암리 유적에서는 삼각형압형문토기(三角形押型文土器)를 비롯해 오산리 유적에서 발굴된 것 보다 크기가 훨씬 큰 석제결합식낚시바늘, 조개로 만든 창 등이 발굴됐으며 "크기로 미뤄볼 때 낚시바늘은 연어와 황어 등 큰고기를 잡는데 이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지도위원들은 분석했다.

조유전국립문화재연구소장은 "문암리 유적은 신석기 유적으로서는 우리나라 가장 북단에서 발견된 유적으로 중국과 러시아를 연계한 우리나라 신석기문화의 형성을 가늠해 볼 수 있는 중요한 학술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평가했다.

 

 

중앙선데이입력 2012.06.30 22:14

옥 귀걸이는 7000년 전 ‘흥륭와 문화’와 교류한 흔적 | 중앙일보 (joongang.co.kr)

 

옥 귀걸이는 7000년 전 ‘흥륭와 문화’와 교류한 흔적 | 중앙일보

강원도 고성군 문암리에서 발굴된 신석기 유물들. 신석기 조기(早期)의 융기문 토기와 돌칼, 돌 도끼, 돌 낚시 등이다. 그 가운데 옥 귀걸이(가운데 붉은 원 내)는 BC 5000년쯤 내몽골 흥륭와 문화

www.joongang.co.kr

 
강원도 고성군 문암리에서 발굴된 신석기 유물들. 신석기 조기(早期)의 융기문 토기와 돌칼, 돌 도끼, 돌 낚시 등이다. 그 가운데 옥 귀걸이(가운데 붉은 원 내)는 BC 5000년쯤 내몽골 흥륭와 문화와 교류한 증거로 추정된다. [사진 국립문화재연구소]
 

1990년대 말 강원도 고성군 문암리 인근 동해안에 군사보호구역 지표조사가 있었다. 그 과정에서 해변에 뒹구는 토기 파편들이 발견됐다. 신석기 전기의 융기문ㆍ압날문 토기 파편이었다. 98년 발굴이 시작되면서 한반도 신석기 역사를 다시 쓰게 만들 수 있는 유물들이 나왔다. 2001년엔 사적 제426호로 지정됐다. 2002년부터 조기(早期) 신석기 유적이, 2010년부터는 중기 유적들이 나왔다(동해안의 경우 신석기 조기는 BC 6000년, 전기는 BC 5200~4600년, 중기는 BC 3600~3000년이다).

 

98년과 2002년엔 전기ㆍ조기의 유물인 융기무늬 토기와 오산리식 토기 등 신석기 전기의 대표적 유물이 나왔다. 2010년부터는 주로 중기에 집중돼 빗살무늬 토기가 나왔다. 최근 문암리에서 발견된 동아시아 최초의 밭 터는 한국 신석기사를 BC 3000년으로 1500년쯤 앞당겼다. 지금까지는 청동기 시대(BC 1500~400년)가 최초로 간주됐다.

BC 5000년쯤 두 곳에서 각각 만들어진 옥귀걸이. 위는 내몽골 흥륭와, 아래는 강원도 문암리의 귀걸이다.

 

그런데 문암리엔 신석기의 비밀을 간직한 유적들이 밭 말고도 더 있다. 신석기인들은 문암리에 밭을 만들고 곡물을 재배하며 오래 살았다. 조기에는 모래 없는 구릉, 전기엔 모래가 쌓인 구릉, 중기엔 모래가 더 쌓인 곳이 거주 터였다. 98년 2기, 2002년 3기, 2010년 1기, 2011~2012년 5기 등 발굴된 10기의 주거지가 그걸 말해준다. 그러다 돌연 문암리는 선사시대의 무대에서 사라졌다. 파괴행위로 폐허가 됐다는 고고학적 증거는 없다. 청동기ㆍ철기 시대의 유물도 없다. 범람이건 해일이건 물에 실려온 모래에 가라앉았을 뿐이다. 최소 2000년간 그곳에서 살아온 사람들은 누구이며, 그들은 어디에서 왔을까. 현장에서 국립문화재연구소 홍형우(작은 사진·49) 학예연구관을 만났다. 우선 밭에 대해 물었다.

 

-밭의 의미가 그렇게 큰가.
“신석기의 밭이 탄화된 조와 함께 나온 적이 없어 그렇다. 우리도 처음엔 이 밭이 신석기 것이라곤 생각하지 못했지만 이랑과 고랑 형태를 띤 경작지가 나와 알게 됐다. 경기도, 황해도, 경상남도 등지에서 일찍이 탄화된 조ㆍ기장 같은 것이 나왔고 그래서 신석기 때 이 곡물을 재배하는 농사가 시작됐을 것으로 추정했다. 그럼에도 밭에서 농사의 직접 증거가 발견되지 않다가 이번에 탄화된 조가 있는 밭이 발굴된 것이다. 동아시아에서 처음이다. 유럽 고고학계는 농경이 신석기 초기에 시작됐지만 동아시아, 특히 동북 아시아는 그렇지 않다고 봤다.”

 
 

그런데 문암리엔 밭의 의미를 뛰어넘는 유물도 있다. 옥 귀걸이다. 귀걸이의 배경은 30년 전쯤으로 돌아간다. 80년대 후반 중국 동북부 네이멍구 자치구, 랴오닝성에서 희귀 신석기 유물들이 속속 발굴됐다. 옥(玉)ㆍ용(龍)ㆍ복골(卜骨)ㆍ봉(鳳) 같은 것이 여러 지역, 여러 지층에서 발굴됐다. 이 전체를 요하 문화 혹은 홍산 문화라고 부른다.
발굴 지역에 따라 달리 부르기도 하는데 소하서 문화(BC 7000~6500년), 흥륭와 문화(BC 6200~5200년), 사해 문화(BC 5600년~5200년), 부하 문화(BC 5200~5000년), 조보구 문화(BC 5000~4400년), 홍산 문화 등이다. 중국 학계엔 충격이었다. 인류 최고 문명인 황하문명(BC 5000년)보다 앞선 문화가 북방민족의 활동 무대로 여겨져온 중국 동북부에서 발견됐기 때문이다.

 

그리고 2004년 7월 24~28일 네이멍구 적봉에서 제1회 홍산 문화 국제학술연토회가 있었다. 거기서 ‘흥륭와에서 발견된 옥 귀걸이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귀걸이’라는 내용이 발표됐다. 문암리 미스터리의 시작이다.

 

문암리는 98년~2002년 3차에 걸쳐 발굴됐다. BC 5000년 지층에서 주거지와 무문양 토기가 출토됐는데 함께 옥 귀걸이 한 쌍(사진)이 함께 출토됐다. 홍산 문화 전문가인 항공대 우실하 교수에 따르면 문암리 옥 귀걸이의 모양은 흥륭와 옥 귀걸이와 모양이 거의 같다. 옥 귀걸이를 고리로 한반도 동해안의 문암리가 중국 동북부 흥륭와~사해~부하 문화 시대와 연결되는 것이다. 그게 가능한가? 지금부터 7000년 이전, 어떻게 그 먼 거리를 두고 비슷한 모양의 옥 귀걸이가 존재할 수 있었을까.

 

-두 귀걸이가 비슷한 걸 어떻게 해석하나.
“한쪽이 터진 도너츠 모양의 절상이식 방식인 옥 귀걸이는 독특한 데다 흔히 나오는 유물도 아니다. 그것은 홍산 문화와 교역ㆍ교류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그러나 하나뿐이어서 활발한 교류로 보기는 어렵다.”

 

-그 옛날 어떻게 네이멍구와 강원도 문암리의 교류가 가능한가.
“그게 의문이고 풀어야 할 숙제다. 그런 문제는 구석기 시대 한반도 석기를 둘러싸고도 나온다. 흑요석 산지는 백두산, 캄차카 반도인데 거기까지 가서 만들었는가 하는 의문과 비슷하다. 중간에 전달된다고 볼 수도 있다.”

 

-대만의 옥기 전문가인 장경국·진계현은 1.7㎝ 두께의 옥에 구멍을 뚫는 실험을 했는데 31시간이 걸렸다. 따라서 이런 귀한 옥 귀걸이를 쓴 사람은 최고지도자나 샤먼이 사용했을 것으로 본다. 그렇다면 문암리에 권력 집단이 있다고 가정할 수 없나. 그리고 그 집단은 홍산 지역에서 이동한 북방 민족으로 볼 수 있지 않은가.
“전체적인 맥락에서 보면 가능할 수 있지만 옥 귀걸이만으론 어렵다. 이를 홍산 지역 주민이 이동해 이곳에 와 살았다고 보려면 더 많은 증거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 주거지를 만드는 방식이나 사용했던 석기, 토기도 비슷해야 한다. 그런데 차이가 크다. 특히 토기가 그렇다. 홍산 문화의 토기는 지자문 토기다. 크게는 빗살무늬지만 세부적으로는 많이 다르다. 문암리 토기는 홍산보다 두만강 토기와 닮았다. 홍산에는 문명이라 말할 수 있는 여신, 제단, 용 같은 세트가 나오고 신전사회로 생각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그러나 문암리엔 무덤과 주거지밖에 없다. ”

 

 

[양양 오산리유적]

 

입력 2007. 6. 23. 13:44수정 2007. 6. 23. 13:44
 

국내 最古 신석기 주거지.토우 출토 (daum.net)

 

국내 最古 신석기 주거지.토우 출토

【대전=뉴시스】강원 양양군 손양면 오산리 신석기 유적에서 국내에서 조사된 주거지 중 가장 이른 시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기원전 5570~5480(보정연대)의 주거지 5동과 곰 등 동물 모양의

v.daum.net

【대전=뉴시스】

 

강원 양양군 손양면 오산리 신석기 유적에서 국내에서 조사된 주거지 중 가장 이른 시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기원전 5570~5480(보정연대)의 주거지 5동과 곰 등 동물 모양의 토우(흙인형)가 확인됐다.

(재)예맥문화재연구원에서 발굴조사 중인 양양군 손양면 오산리 72-2번지 일원의 양양 여운포~송전 간 도로개설부지 내 유적에 대해 지난해 12월부터 현재까지의 조사한 결과 신석기시대 조기와 전기에 속하는 주거지 5동과 중기에 속하는 주거지 1동, 야외노지 2기가 발견됐다고 23일 밝혔다.

 

조사지역은 해발 5m 내외의 황갈색점토층(고토양층)으로 이뤄진 저위 구릉 상면에 형성된 사구지역과 남쪽의 습지지역으로 나눠 진다.

현재까지 조사된 유구는 신석기시대 조기와 전기에 속하는 주거지 5동과 중기에 속하는 주거지 1동, 야외노지 2기가 조사됐다.

조사된 주거지 중 6호 주거지를 제외한 나머지 5기는 신석기시대 조기와 전기의 주거지로 판단되고 있으며 전기 주거지 중 시기가 가장 늦은 1.2호 주거지의 면적은 48㎡(15평), 53㎡(17평)으로 신석기시대 전기 주거지의 면적으로는 대형에 속하는 것들이다.

또 조사지역 북쪽의 해발 4m 내외의 사구지대에 위치한 5호 주거지는 출토유물이 없어 성격규명에 어려움이 있으나 토층상 이번에 조사된 신석기시대 조기와 전기 주거지 중 가장 이른 시기의 것으로 화덕자리에서 채취한 목탄의 방사성탄소연대 측정결과도 BC 5570~5480(보정연대)로 확인돼 국내에서 조사된 주거지 중 가장 이른 시기의 것으로 판단된다.

또한 이번 발굴조사에서 확인된 신석기시대 문화층은 크게 3개의 층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상층은 침선문 토기를 공반하는 신석기시대 중기 문화층이며, 중층은 융기문 토기를 공반하는 신석기시대 전기 문화층으로 다시 상.하의 2개층으로 세분된다.

그리고 하층은 융기문토기가 포함되지 않은 신석기시대 조기 문화층으로 황갈색점토층 상면에 분포하고 있다.

하층의 출토유물 중 토기류는 무문양 토기와 함께 압날점열구획 주칠토기가 출토되고 있다.

 

이러한 무문양토기는 제주 고산리 유적, 청도 오진리 유적 등에서 출토된 고식토기로, 우리나라 토기문화 연구에 있어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며, 시기적으로 앞서는 유적으로 평가되고 있다.

석기류는 석부, 결합식 낚시, 석촉류 등의 간석기와 어망추, 새기개, 몸돌, 좀졸날 몸돌 등의 뗀석기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하층 출토 결합식 낚시는 오산리식 토기와 융기문 토기가 출토되는 중층 문화에 비해 크기가 작고, 고식으로 판단되며, 어망추도 소형에 해당된다.

또한 구석기시대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뗀석기들이 공반돼 출토되고 있으며, 중석기 혹은 후기구석기 최말기의 대표적인 지표유물인 좀돌날 몸돌 및 좀돌날이 소량이기는 하지만 출토되어 구석기시대의 문화적 전통이 계승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출토유물 중 곰 등의 동물을 형상화한 토우가 출토됐으며 이는 현재까지 국내에서 출토된 예술품 중 가장 이른 시기의 것으로 판단된다.

토우 등의 출토는 선사시대의 토템신앙과 연관된 것으로 보여 신석기시대 조기 및 전기 문화연구에 매우 중요한 자료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된다.

 

 

 

강인귀 기자입력 2014. 10. 15. 08:43수정 2014. 10. 15. 08:43

가장 오래된 팥 흔적 발견..기존 추정보다 2천년 앞서 (daum.net)

 

가장 오래된 팥 흔적 발견..기존 추정보다 2천년 앞서

▲가장 오래된 팥 흔적이 발견되었다. 사진은 양양 오산리 유적에서 나온 토기 압흔의 팥.'가장 오래된 팥 흔적, 강원도 양양'가장 오래된 팥 흔적이 발견되었다.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소

v.daum.net

▲가장 오래된 팥 흔적이 발견되었다. 사진은 양양 오산리 유적에서 나온 토기 압흔의 팥.

 

'가장 오래된 팥 흔적, 강원도 양양'

 

가장 오래된 팥 흔적이 발견되었다.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소장 강순형)는 '식물고고학을 통한 선사 시대 농경화 연구'의 하나로, 강원도 양양군에 있는 오산리선사유적박물관의 협조를 얻어 시행한 '양양 오산리 출토 토기 압흔(壓痕, 눌린 흔적) 조사'에서 농경과 관련된 동북아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신석기 시대의 팥 흔적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팥의 압흔은 신석기 조기(8000~6500년 전)와 중기(5500~4500년 전)에 각각 1점이 확인되었다. 팥 압흔의 크기는 각각 2.2㎜, 2.8㎜ 정도로 현재의 팥(4~8㎜)보다는 작으며 팥 압흔이 확인된 토기 표면의 탄화유기물을 미국 베타연구소(Beta Analytic)에서 연대 측정한 결과, 7314~7189년 전으로 나왔다.

지금까지 한국, 중국, 일본에서 팥을 이용한 시기로는 5000년 전이 가장 오래된 것으로 추정됐는데, 이번 가장 오래된 판 흔적 발견 결과로 인하여 2000년 더 이른 시기에 팥이 이용됐을 가능성이 확인되었다.

특히, 신석기 조기부터 중기에 걸쳐 팥이 이용되는 과정에서 크기가 점차 커지는 재배화 경향까지 확인되어 농경 연구의 중요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가장 오래된 팥 흔적이 발견되었다. 사진은 양양 송전리 유적에서 발견된 점토덩어리 압흔의 해충.

 

 

이외에도 강원도 양양군 손양면 송전리에서 발견된 점토 덩어리에서는 신석기 중기에 해당하는 곤충의 압흔이 확인되었다. 농업 해충으로 알려진 노린재목(학명: Hemiptera)에 속하는 곤충으로, 선사 시대 농경과 관련해서 확인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가장 오래된 팥 흔적이 발견되었다. 사진은 양양 송전리 유적에서 발견된 기장(왼쪽)과 오산리 유적에서 발견된 들깨(오른쪽)

 

 

특히, 곤충 압흔이 발견된 점토 덩어리와 함께 토기에서는 다량의 조, 기장, 들깨 압흔 등도 확인되었다. 이는 신석기 중기에 와서 조, 기장 등의 잡곡과 들깨까지 직접 재배했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으로, 신석기 시대 식생활 연구의 중요한 자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번 조사에서 발견된 유물들은 오산리선사유적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번에 조사 대상으로 선정된 양양 오산리와 송전리 유적은 지난 2006년 (재)예맥문화재연구원에 의해 발굴조사가 시행되었다. 발굴조사 결과 신석기 시대 조~중기에 해당하는 주거지, 야외노지, 저습지 등이 확인되면서 중부 동해안 지역 신석기 시대 문화상 연구의 중요한 유적으로 평가된 곳이다.

▲가장 오래된 팥 흔적이 발견되었다. 사진은 양양 오산리 유적 전경(위)과 양앙 오산리 유적에서 나온 토기들(아래)

 

 

7500년 전 신석기인이 그린 강원 양양 앞바다 구름 - 오마이뉴스 (ohmynews.com)

 

7500년 전 신석기인이 그린 강원 양양 앞바다 구름

[차근차근 한국미술사 11] 양양 오산리 덧무늬토기 두 점에 숨어 있는 비밀

www.ohmynews.com

 

 

 

[창녕 비봉리패총 - 8천년 전 배]

입력 2007. 7. 6. 13:43수정 2007. 7. 6. 13:43

 

해수면 변동에 의해 형성된 습지 유적인 비봉리 패총에서는 국립김해박물관 발굴조사 결과, 도토리와 같은 열매류, 망태기와 목기, 사람이나 동물의 배설물인 분석(糞石), 멧돼지와 같은 동물을 형상화한 토기, 소나무로 만든 기원전 6천년 전 무렵 환목주(丸木舟.통나무 배)를 비롯해 신석기시대 생활상을 복원할 수 있는 유물이 다량으로 확인됐다.

 

나아가 이곳에서는 조기ㆍ전기ㆍ중기ㆍ후기ㆍ만기로 구분하는 신석기시대 각 문화층에 걸쳐 고른 유물, 특히 각종 토기 자료가 출토됨으로써 신석기시대 남해안 지역 토기문화가 융기문→ 압인문→태선침선문→이중구연토기 순서로 변모해 간 사실도 드러났다.

비봉리 유적은 앞으로 30일간 지정예고를 거쳐 사적 지정 여부가 최종 결정난다. 사적 지정예고 문화유산 중 사적으로 지정되지 않은 사례는 없다.

 

 

입력 2008. 9. 18. 10:13수정 2008. 9. 18. 10:27

국립김해박물관 비봉리 유적 정식보고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2004년부터 경남 창녕군 부곡면 비봉리 44번지 일대 신석기시대 저습지 유적을 발굴조사하던 국립김해박물관은 이듬해 9월5일 놀라운 성과를 내놓았다. 8천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 신석기시대 나무 배 1척을 발굴했다는 내용이었다.

이로부터 3년 정도가 흘러 더 놀라운 사실이 추가로 공개됐다. 당시 조사에서 건져낸 신석기시대 통나무 배는 1척이 아니라 2척이라는 것이다.

 

발굴조사 완료 이후 그 유물 정리를 해온 김해박물관(관장 임학종)이 2004년 6월30일 이후 8월4일까지 진행된 시굴조사와 그 해 11월30일에 시작해 이듬해 8월23일에 끝낸 비봉리 유적 발굴성과를 정리한 정식 보고서 '비봉리'(飛鳳里)를 18일 발간했다.

이를 통해 기존에 공개한 Ⅱ지구 제2 피트 제5 패층(貝層. 조개무지가 쌓인 층) 아래에서 출토된 목선 외에도 또 1척의 소나무를 가공해 만든 신석기시대 배 1척이 있다는 사실을 공개했다.

2호 배로 명명한 이 배는 1호 배와 마찬가지로 수령이 많은 소나무를 단면 U자형으로 속을 파낸 이른바 통나무형 선박(환목주<丸木舟>)인 것으로 드러났다. 그 내부와 외부에는 돌도끼로 가공한 흔적이 발견되며, 배를 만드는 과정에서 생긴 것으로 추정되는 초흔(焦痕)이라는 불에 그을린 흔적이 곳곳에서 확인됐다.

현재 남은 규모는 길이 64.0㎝, 너비 22.0㎝, 두께 1.2~1.7㎝.

재질이나 모양 등의 여러 모로 보아 1호 배와 흡사했을 것으로 추정됐다.

상대적으로 보존 상태가 양호한 1호 배는 최대 길이 310㎝, 최대 폭 62㎝, 두께 2.0-5.0㎝로 역시 통나무(소나무) 속을 파내 만들었으며, 원래 길이는 400㎝를 넘었을 것으로 보인다.

금속기가 발견되기 전 선사시대 사람들은 통나무를 가공할 때 그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군데군데 목재를 불에 태우거나 그을린 다음, 석기로 깎아내고 다시 돌로 표면을 매끈하게 처리하는 방식을 구사했다.

 

경북대 임산공학과 박상진 교수에게 1호 배 목재 분석을 의뢰한 결과 수령 200년 가량 되는 소나무임이 밝혀졌다.

임학종 관장은 "이는 현재 한반도에서 확인된 가장 오래된 배이며, 100여 척이 넘는 일본 조몬시대 목주(木舟.나무배) 보다 시기적으로 앞서는 것으로서, 8천년 전으로 추정하는 중국 저장성 콰후차오(跨湖橋) 유적 출토 나무배와 더불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배로 기록된다"고 말했다.

이번 보고서는 비봉리 유적 발굴 성과로 ▲국내 최초로 신석기시대 저습지 유적을 확인했고 ▲후빙기 어느 시점에는 지금의 창녕과 밀양 지역까지 바닷물의 직간접적인 영향을 받았다는 해수면 변동 자료를 확보했으며 ▲신석기시대 생계방식을 구체적으로 복원할 수 있는 물질자료를 얻었다는 점 등을 꼽았다.

비봉리 유적은 배 외에도 망태기, 칼 모양 목기, 똥이 화석처럼 굳어 생긴 분석(糞石), 멧돼지로 추정할 수 있는 동물 그림 등 국내 최고(最古), 최초로 기록되는 유물을 다량으로 쏟아냈다.

이런 성과에 힘입어 애초 홍수 예방을 위해 양배수장이 들어설 예정이던 비봉리 유적은 지난해 8월, 국가 사적 486호로 지정돼 보존되기에 이르렀다.

한편 이번 '비봉리' 발굴보고서는 판에 박힌 보고서 형식에서 탈피해, 발굴 및 유물 정리 과정 등에서 일어난 각종 일화까지 아울러 수록하는 파격을 시도했다.

 

한국 최초의 배는 어떻게 생겼을까? - 오마이뉴스 (ohmynews.com)

 

한국 최초의 배는 어떻게 생겼을까?

[가야문화권 답사 29] 창녕 비봉리패총 출토 배

www.ohmynews.com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창녕 비봉리 신석기시대 유적지에서 7천년 전쯤 사용된 것으로 보이는 배 젓는 도구 중 하나인 노(櫂)가 최근 발굴됐다.

국립김해박물관(관장 송의정)은 비봉리 패총(조개무지. 사적 486호) 유적에 대한 올해 제2차 발굴조사 결과 7천년 전쯤에 사용한 것으로 생각되는 신석기시대 노 1점을 발굴했다고 17일 말했다.

 

앞서 2004년 이곳에서는 8천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신석기시대 조기(早期) 배 2척이 발굴됐었다.

이번 조사 결과 노까지 확보함으로써 배와 노의 기원을 좀 더 구체적으로 밝혀줄 귀중한 자료를 확보하게 됐다고 박물관은 덧붙였다.

 

노는 제4 피트(pit. 시굴조사 구덩이) 중 2패층에서 출토됐으며 1차 조사 때 배가 발굴된 지점과는 동북쪽으로 불과 약 9m 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비봉리 패총 유적 2패층은 융기문 토기와 세침선문(가는줄무늬) 토기가 주로 출토된다는 점에서 신석기시대 조기 중에서도 후반기로 연대를 추정할 수 있다고 박물관은 말했다.

노는 전체 길이 181㎝이며, 자루(66㎝)와 물갈퀴(115㎝)가 거의 온전한 형태로 남아있다. 자루와 물갈퀴는 너비가 각각 최대 4.5㎝와 9㎝이며, 양쪽 끝 부분이 모두 뾰족하다.

송의정 관장은 "신석기시대에는 암각화에 표현된 고래잡이 모습과 패총에서 출토되는 고래 뼈의 존재, 일본 규슈 지역과의 원거리 교역을 암시하는 흑요석 도구 등을 통해 배가 널리 사용됐을 것으로 본다"면서 "이번 조사에서 노를 확보함으로써 그런 추정이 확실해졌다"고 말했다.

비봉리 패총 1차 조사에서 출토된 신석기시대 조기 전반(약 BC 6천년전)의 나무배는 소나무를 파내서 만든 이른바 환목주(丸木舟)에 속한다.

전통시대에 배는 젓는 도구로는 삿대와 노가 사용됐다. 이 중 노는 물을 헤쳐서 배가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도구로 사용법에 따라 양손만을 사용하여 젓는 것(paddle)과 배의 현측에 착장해 젓는 것(oar)으로 구분된다. 이번에 발굴된 노는 형태적 특징에서 볼 때 후자로 추정된다고 박물관은 말했다.

 

부산 복천박물관, '고대인의 멋 귀걸이' 특별전 연다  - 부산제일경제 (busaneconomy.com)

 

부산 복천박물관, '고대인의 멋 귀걸이' 특별전 연다 - 부산제일경제

신석기시대~통일신라 귀걸이 200점 선보여태환 귀걸이 등 보물급 귀걸이도 전시 예정 신석기시대부터 통일신라시대에 이르기까지 귀걸이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전시회가 부산에서 마련된다. 부

www.busaneconomy.com

 

 

 

[부산 동삼동패총]

입력 : 2012-12-19 10:37:29  수정 : 2012-12-20 07:59:50

동삼동 패총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추진 - 부산일보 (busan.com)

부산 영도구 동삼동 패총전시관에서 선사시대 유물을 살펴보고 있는 관람객들. 부산일보 DB

 

부산 동삼동 유적과 서울 암사동 유적을 비롯한 선사 유적에 대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가 추진된다.

부산박물관은 최근 서울 강동구청으로부터 한반도 대표 신석기 유적인 동삼동 유적과 함께 암사동 유적, 강원도 양양 오산리 유적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공동 등재를 추진하자는 제안을 받았다고 19일 밝혔다.

서울 암사동·강원 오산리 포함 공동등재
부산박물관, 서울 강동구청 측 제안 받아
남해안 신석기 시대 대표하는 '표준 유적'


서울 강동구청에서 제안한 내용은 이렇다. 강동구청은 지난달 20일 암사동 유적 세계문화유산 추진을 위해 토론회를 열고 전문가 의견을 수렴했다. 전문가들은 암사동 유적이 세계 유산의 가치가 있지만 이곳만으로는 미약해 동삼동, 오산리 유적과 함께 추진하는 게 효과적이라는 의견이 내놨다. 이에 따라 강동구청은 이들 유적지를 관할하는 박물관과 지자체에 한반도 신석기 유적군 세계유산 등재를 위한 협조를 요청했다.

부산박물관 양맹준 관장은 "동삼동 패총은 세계적으로 희귀한 것인 만큼 학술 심포지엄 등 구체적인 계획을 만들어 다른 선사 유적과 공동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에 힘을 보태겠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김지현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세계유산 전문관은 서울 강동구청 주최 토론회에서 "전 세계 선사시대 유적 962개 중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는 40여 개에 불과해 상대적으로 건조물이나 기념물에 비해 적지만, 한반도 신석기 유적은 세계의 다른 어떤 유적보다 선사시대의 기술과 사회상을 잘 보여주고 있어 보존가치가 높은 편이고 희소가치가 있다"면서 "기존 세계문화유산, 잠정목록 유산과 비교 연구를 거쳐 외연적 물리적 장소성을 더 확보하고 세계유산 등재를 위한 '탁월한 보편적 가치(OUV·Outstanding Universal Value)' 규명을 위한 학술적 연구가 중요하다"고 밝혔다.

한편, 서로 다른 지역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공동으로 등재된 경우는 국내에선 고창·화순·강화 고인돌 유적지가 있다. 이들 지역은 2000년 11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공동으로 등재됐다.

세계유산으로 선정되려면 먼저 해당 유산이 세계유산 잠정목록에 등재돼야 한다. 잠정목록 등재 1년 후 문화재청에 세계유산 등재 신청서를 내고, 세계유산분과위원회 심의를 거치는 까다로운 절차를 밟게 된다.

동삼동 유적은 영도구 동삼동에 있는 신석기 시대 대표 조개무지 유적으로 사적 제266호로 지정돼 있다. 신석기 시대 초기부터 말기에 이르기까지 오랜 기간에 걸쳐 형성되었기 때문에 우리나라 남해안의 신석기 시대 유적을 대표하는 표준 유적이다. 일본 규슈 지역의 흑요석과 조몬 토기가 출토돼 해양을 통해 고대 한·일 간 교류가 이뤄졌음을 알 수 있는 유적지다.

사적 제267호인 암사동 유적은 서울 강동구 암사동에 있는 한강 유역의 대표적인 신석기 시대 유적지며, 사적 394호인 양양 오산리 유적은 강원도 양양군 손양면 오산리에 있는 한반도 최고(最古)의 신석기 시대 집터 유적이다.

정달식 기자 dosol@busan.com

 

 

[부산 가덕도장항유적]

출처; 유적별 - 문화유산 지식e음 (nrich.go.kr)

 

국가유산 지식이음

국가유산 지식이음 입니다.

portal.nrich.go.kr

 

 

한국문물연구원에서 2010년부터 2011년까지 조사하여 신석기시대 전기의 대규모 묘역(인골 48개체)과 구덩(竪穴) 100여 기, 전기에서 후기까지의 돌무지유구(集石 遺構) 90여 기가 발견되었다.

 

전기의 묘역은 우리나라 최대 규모로 돌무지유구, 구덩 유구 등이 함께 조성되어 있다. 묘역에서는 파손되지 않은 100여 개의 토기를 비롯하여 옥제 드리개, 문양이 시문된 골제품, 상어 이빨 등 인골에 착장된 유물들이 확인되어 신석기시대 계층화된 사회의 일면을 보여준다.

 

가덕도 장항유적에서는 신석기시대 전기에 해당되는 매장 인골 48개체와 다량의 부장용 토기가 출토되었다. 인골은 대체로 Ⅷ층과 Ⅸ층 경계면에 안치되어 있었고, 일부 중첩되어 무덤이 사용되었는데 집단이나 시기적인 차이라기보다 매장시점의 시간적 차이로 여겨진다.

 

가덕도 장항유적에서 가장 주목되는 것은 상태가 양호한 인골의 출토일 것이 다. 인골은 배치상태로 보아 등고선에 평행한 남북방향으로 안치하였고, 두향은 대체로 북서쪽과 북동쪽이다.

 

인골 48개체 중에서 매장자세를 확인할 수 없는 17개체를 제외하면, 굽혀묻기 23개 체, 펴묻기 8개체로 굽혀묻기가 74%를 차지한다. 우리나라의 신석기시대 매장방법 이 대부분 눕혀펴묻기(仰臥伸展葬)인데 반해 가덕도 장항유적은 굽혀묻기의 비율이 높은 점이 특징적이다.

 

성별이 확인된 인골은 전체 18개체에서 남성이 8개체, 여성이 10개체로 남녀 성비가 비슷하다. 또한 연령별로도 20대에서 50대까지 골고루 분포하는 편이어서 일반적인 묘지로 판단된다. 그리고 대퇴골과 상완골을 이용해 추정한 키는 남성은 평균 157.8±7.33cm이며 여성은 평균 146.8±7.99cm로 추정된다.

 

무덤에서 발견된 옥장식 무덤에서는 토기·석기·흑요석·짐승뼈(獸骨)·조개팔찌(貝釧) 등이 출토되었다. 교역의 산물로 이해되는 흑요석은 조사지역 전반에 산재해서 200여 점이 출토되었다. 대부분 특정한 용도를 알 수 없는 박편이지만, 화살촉을 비롯해 2차 가공이 이루 어진 석기도 수점 확인되었다.

 

석기는 돌도끼 4점, 숫돌 1점이, 장신구로는 대형 옥제 드리개(垂飾)(pendant) 1점, 투공된 상어이빨 1점, 조밀하게 홈이 파진 짐승뼈 1점, 조개팔찌 20여 점 등이 출토되었다.

 

신석기시대 옥제품은 출토사례가 매우 드문 유물로 울진 후포리, 춘천 교동, 통영 연대도, 부산 범방, 고성 문암리, 부산 동삼동 등지에서 1~2점이 출토되었다. 이에 반해 장항유적은 무덤과 구덩이유구 에서 옥제품 6점이 출토되었다.

 

 

 

2009-09-17,

부산 신항 공사장서 '신석기 유적' 출토(종합) | 연합뉴스 (yna.co.kr)

부산 신항 공사장서 발견된 무문토기

(부산=연합뉴스) 부산 강서구 신항 준설토투기장에서 신석기시대 유적이 출토돼 학계의 비상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난 3일 부산 강서구 천가동 4493-2 일원인 신항 준설토투기장 사업부지 내에서 출토된 무문토기(민무늬토기). 수천년이 시간이 지난 유물의 특성상 원형 그대로 보존된 토기가 이번에 출토된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관련기사 있음. 한국문물연구원 제공>> 2009.9.17
wink@yna.co.kr

 

부산 신항 공사장서 신석기 유적 출토

(부산=연합뉴스) 부산 강서구 신항 준설토투기장에서 신석기시대 유적이 출토돼 학계의 비상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난 3일 부산 강서구 천가동 4493-2 일원인 신항 준설토투기장 사업부지 내 4천52㎡의 유적 발굴조사 현장의 모습. <<관련기사 있음. 한국문물연구원 제공>> 2009.9.17
wink@yna.co.kr

 

2011-02-17

8천 년 전 신석기시대 공동묘지 발견 | 연합뉴스 (yna.co.kr)

 

 

2011-05-03

부산 가덕도 신석기 유적서 유골 추가 발굴 (daum.net)

 

부산 가덕도 신석기 유적서 유골 추가 발굴

(부산=연합뉴스) 이종민 기자 = 한국문물연구원(원장 정의도)은 부산 강서구 성북동 부산 신항 준설토 투기장 예정지 일대에서 지난 2월 이후 추가 발굴 작업을 벌인 결과 이전 발굴 유물과 같은

v.daum.net

 

 

<통영 연대도유적>

출처; 신석기시대편 - 문화유산 지식e음 (nrich.go.kr)

 무덤은 모두 15기이나 이 가운데 인골이 같이 나온 경우는 13기이다. 조사지역 내에 매장시설이 밀집하고 있으므로 당시에 이미 생활공간과는 구별되는 매장구역이 정해져 있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무덤은 대개 구덩이를 파고 납작한 돌이나 토기편을 깐 뒤, 시신을 놓고 그 위를 작은 돌, 고운 흙, 토기조각 등으로 덮은 방식이다. 7호무덤의 구덩이는 머리 쪽이 발치쪽 보다 넓어 이른바 두광족협(頭廣足狹)을 이룬다. 침향은 대개 서침인데 바다를 바라볼 수 있는 방향이다. 신전장이 대부분이나 특이하게 엎드려 묻은 것으로 보이는 부신장(俯身葬)도 있다. 모두 한사람씩 묻었으나 2호무덤의 경우 신생아의 뼈와 함께 모두 세 사람의 뼈가 찾아져 합장의 풍습도 있었다고 보인다. 무덤 주위나 내부에서 부장품도 많이 나왔다. 이 가운데 7·11·14호 무덤의 부장품은 질과 양에서 다른 무덤의 것과 뚜렷이 구별되어 신분지위상의 차이가 있었다고 추정된다.

 

무덤에서 나온 인골은 두개골의 장폭지수(長幅指數)가 79.0으로 중두(中頭)의 상한, 즉 단두(短頭)에 가깝다. 인골 가운데 키를 알아낼 수 있는 것으로는 남성의 두 예가 있는데 1호 167㎝, 7호 161㎝이다. 특히 인골에서 외이도골종(外耳道骨腫)과 하악융기(下顎隆起)가 잘 관찰된다. 이 현상은 어로, 잠수 등 바닷가의 생업형태와 관련되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유물은 토기, 석기, 골각기, 옥제품 등 인공유물 외에도 어패류와 다양한 동물유존체가 고루 출토되었다. 토기는 ‘가’ 지구에서 주로 신석기 이른 시기의 무늬인 융기문(隆起文), 압인문(押引文), 세침선문(細沈線文) 등이, ‘나’ 지구에서는 중기 이후부터 신석기 마지막 단계의 토기들이 나온다. ‘가’ 지구에서는 소위 영선동식으로 불리는 압인문의 빈도가 높다. 입술은 대개 직립하나 융기문토기는 바라진 것이 많다. 특히 도도로키[轟]식토기를 비롯한 일본 조몬[繩文]시대의 토기도 출토되어 주목된다.

 

골각기로는 사슴 뼈로 만든 송곳과 찌르개가 가장 많으며, 각종 선각무늬를 새긴 장신구와 비녀, 결합식조침의 침부 등이 있다. 7호무덤의 인골 발목에 채워진 상태로 출토된 발찌는 돌고래, 수달, 너구리의 이빨을 가공하여 만든 것이다. 또한 조개팔찌는 대부분 투박조개로 만들었다. 14호무덤의 관옥형 팔찌와 2호무덤 주변의 환옥제품은 옥제장신구의 기원을 신석기시대로 끌어올린 중요한 출토품이다.

P∼U피트 Ⅲ층의 조가비를 시료로 하여 방사성탄소연대측정을 한 결과 기원전 5256∼4540년, 기원전 5328∼4660년의 연대를 얻었다.(임학종) 

 

[여수 안도패총]

 

각 층에서 출토된 뼈와 패각을 시료로 실시한 연대 측정 결과도 각각 기원전 6000년에서 기원전 2500년까지 다양하게 나오고 있어, 각 문화층의 연대와 어느 정도 일치한다.

 

안도‘가’패총에서는 신석기시대 무덤 4기, 노지 9기, 수혈유구 11기, 집석유구 3기 등 다수의 생활 흔적과 융기문토기를 비롯한 남해안 신석기문화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500여 점의 유물이 확인되었다. 이 중에서 주목되는 것은 모두 5개체의 인골이 확인된 신석기시대 무덤과 신석기시대 한·일간 교류를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유물들이다. 신석기시대 무덤은 모두 얕은 구덩이를 파고 시신을 안치한 뒤 흙으로 덮은 토광묘이다. 다만 무덤구덩이가 뚜렷한 수직각을 이루지는 않는다. 4기 모두 인골이 하늘을 바라보며 몸을 똑바로 편 채로 누운 형태인 앙와신전장(仰臥伸展葬)이다.

 

그러나 안도패총의 토광묘를 비롯하여 통영 산등·범방 패총, 고성 문암리유적의 토광묘는 각각 북동침, 동침, 북서침, 남침으로 일정하지 않다. 침향의 방위적 요소만을 고려한다면 규칙성이 없어 보이지만, 무덤의 장축방향과 등고선의 방향 관계를 고려하면, 토광묘의 두향은 모두 등고선 방향과 직교한다. 즉 시신의 머리를 육지의 높은 쪽으로 하고 전면에 넓게 펼쳐진 바다를 바라보는 형상이다. 따라서 신석기시대 토광묘의 두침은 방위적 요소보다는 지형적 요소에 의해 결정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안도 ‘가’패총의 무덤 내에서는 1호무덤의 남성과 3호무덤 여성의 오른쪽 팔목에 패천(貝釧)이 착용된 것을 제외하고는 별다른 부장품은 없다. 이 중 3호무덤의 인골(4호 인골)은 패천 5개를 착용하고 있다. 1호무덤의 경우 30대 남성과 20대 여성의 합장묘로 2구의 시신 모두 하늘을 보고 바로 누운 앙와신전장이다. 지금까지 확인된 신석기시대 토광묘 중 연대도·욕지도 유적에서 한 무덤구덩이 안에 2∼3개체의 인골이 나온 예가 있기는 하지만 2구 모두 앙와신전장인 경우는 처음이다. 2구의 시신 중 서쪽의 인골(2호인골)은 분석 결과 30대의 남성이며, 동쪽의 인골(1호인골)은 20대의 여성이었다. 2호인골은 두 팔을 밑으로 쭉 뻗고 누운 형상이지만, 1호인골은 두 팔을 ‘< >’ 형태로 오므린 형상이다. 1호인골의 오른팔이 2호인골의 왼팔 위에 놓여 있는 것으로 보아 1호인골을 안치한 후 2호인골을 안치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1호인골의 뼈가 흩어지지 않고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점에서 두 인골의 합장은 그리 긴 시간차가 없었으며, 거의 동시기에 이루어졌을 가능성이 높다. 무덤에서 확인된 인골은 비교적 양호한 편으로 신석기시대 인의 형질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인골의 성별은 5개체 중 남성이 3개체(2호·3호·5호), 여성이 2개체(1호·4호)이고, 연령은 20대 1개체(1호), 30대 2개체(2호·3호), 50대 1개체(4호), 60대 1개체(6호)로 다른 유적과는 달리 노년층이 확인되었다. 또한 이 60대 남성의 하악골에서 추운 지역 사람들의 특징인 하악융기가 확인되어 한반도 신석기시대 인의 계통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확보되었다.

 

이곳 출토품 중 특히 주목되는 유물은 일본 조몬문화와 관련된 것들이다. 조몬토기로 추정되는 완형(完形)의 토기 4점 외에도 일본 조몬시대의 대표적인 석기인 석시, 그리고 원산지가 규슈[九州]지역으로 추정되는 흑요석제 박편석기 등이 그것이다. 이들은 신석기시대 한·일 양안 간의 인적·물적 교류를 보여주는 직접적인 증거이다.

 

더불어 흑요석제 박편석기 220여 점도 확인되었는데, 이는 단일유적에서 출토된 양으로는 최대이다. 안도패총에서 가까운 여수 돌산 송도패총을 비롯해 남해안 신석기유적에서 출토된 흑요석의 원산지는 고시다케[腰岳], 우시노타케[牛ノ岳] 등 일본 규슈지역으로 분석된 바 있다. 이로 볼 때 안도패총의 흑요석도 규슈지역이 원산지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것들은 우리나라 남해안지역과 일본 규슈지역 간 사람과 물자의 교류가 광범위하게 이루어졌음을 보여주는 구체적인 증거들이다.(양성혁)

출처; 신석기시대편 - 문화유산 지식e음 (nrich.go.kr)

 

 

2007-03-27

여수에서 신석기 인골 2구 발견 (daum.net)

 

2007-03-27

6천년전 신석기시대 사람뼈 2구 발굴 (daum.net)

 

 

 

2007-04-24

여수 안도패총서 5개의 팔찌를 낀 인골 확인 [국립광주박물관] (daum.net)

안도패총 출토 흑요석
인골 도해도

 

조가비팔찌(앞면)

 

 

입력 2007. 6. 14. 09:48수정 2007. 6. 14. 09:48

광주서 신석기 유적 안도패총 발굴展 (daum.net)

 

광주서 신석기 유적 안도패총 발굴展

(광주=연합뉴스) 형민우 기자 = 국립 광주박물관(관장 조현종)에서 여수 안도패총 출토유물과 결과를 지역민에게 공개하는 '푸른 남해, 안도패총 6000년' 발굴전이 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열리고

v.daum.net

 
(광주=연합뉴스) 형민우 기자 = 국립 광주박물관(관장 조현종)에서 여수 안도패총 출토유물과 결과를 지역민에게 공개하는 '푸른 남해, 안도패총 6000년' 발굴전이 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열리고 있다.
 

이번 전시회는 올 1월부터 4개월여간 출토된 각종 동물뼈와 조개류, 석기, 토기 등 150여점이 공개되고 있다.

특히 팔찌 5개를 찬 6천여 년 전 신석기시대 인골도 일반에 공개돼 관심을 끌고 있다.

이밖에 발굴 관련 장비와 기록물 20여점을 비롯, 안도 주민들의 어구 10여점도 공개되고 있다.

안도패총은 신석기시대 무덤 4기, 주거지 2기와 함께 500여 점에는 이르는 다양한 생활유물을 비롯, 인골 등이 발견돼 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울산 반구대 암각화]

입력: 2018.11.29 09:57 수정 : 2018.11.29 10:13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크리스마스 선물, 7000년전 고래사냥의 기원을 일러준 반구대 암각화 - 경향신문 (khan.co.kr)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크리스마스 선물, 7000년전 고래사냥의 기원을 일러준 반구대 암각화

“저기 무슨 그림일까.” 지금으로부터 48년전인 1970년 크리스마스 이브인 12월24일, 문명대 교수가 이끄는 동국대 박물관 조사단이 울산 울주군 언양읍 일대의 불교유적을 ...

www.khan.co.kr

 

 

 

등록 :2016-07-25 23:08수정 :2016-07-26 08:59

암각화 보존 한시가 급한데…정치논리에 3년 허송세월 :  한겨레 (hani.co.kr)

 

암각화 보존 한시가 급한데…정치논리에 3년 허송세월

“우리 문화유산의 맏형인 반구대 암각화를 살려내고…인류문화유산으로 일으켜 세웁시다…긴 세월 물고문에 시달리며 무너져 내리는 국보가 있다는 사실을 과연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습니

www.hani.co.kr

멀리서 본 반구대 암각화의 모습.
 
 

 

 

“암각화 인근 선사유적 연구 통해 `제작 집단' 규명해야” < 연재 - 울산매일 - 울산최초, 최고의 조간신문 (iusm.co.kr)

 

“반구대 암각화 고래잡이 묘사 한반도 해양어로문화의 증거” - 울산제일일보 (ujeil.com)

 

암각화에서 살지 않았다, 왜? (brainmedia.co.kr)

 

암각화의 메카, 울산을 찾아서 (brainmedia.co.kr)

 

[기고]‘한국인 성소’ 울산 대곡천 신중히 다루길 - 경향신문 (khan.co.kr)

 

반구대 암각화 추가 발견 그림 (daum.net)

 

신석기시대편 - 문화유산 지식e음 (nrich.go.kr)-반구대 암각화

 

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蔚州 大谷里 盤龜臺 巖刻畵)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aks.ac.kr)

 

 

[바위그림(암각화)]

윷놀이 윷판이 천문 암각화라고?.. 전국 85개 유적 - 파이낸셜뉴스 (fnnews.com)

임실 상가윷판유적 /사진=울산대학교 반구대암각화유적보존연구소 제공

 

울산 어물동 윷판바위 /사진=울산대학교 반구대암각화유적보존연구소 제공

 

‘한국의 윷판 암각화’ 발간 /사진=울산대학교 반구대암각화유적보존연구소 제공

 

 

입력 : 2014-12-04 20:00:12 수정 : 2014-12-04 20:51:38
두 가지 형태… 기우제 사용 추정
 
인천 강화도에서 청동기시대 후기의 것으로 추정되는 암각화가 발견됐다.

울산대학교 반구대암각화유적보존연구소(이하 암각화연구소)는 지난달 22일 인천 강화군 교동면 고구리 화개산 정상 부근 해발 253m 지점에서 암각화를 발견했다고 4일 밝혔다. 한반도 남부 이외 지역에서 암각화가 발견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암각화연구소는 설명했다.
 
울산대 반구대암각화유적보존연구소가 지난 22일 인천 강화군 화개산 정상 부근에서 발견한 암각화. 울산대학교 반구대암각화유적보존연구소 제공


발견된 암각화는 두 개이다. 하나는 가로 180㎝, 세로 85㎝, 높이 57㎝ 크기로 변성 화강암에 새겨져 있다. 11개의 지그재그 모양의 선과 12개의 바위구멍으로 구성된 비구상형암각화이다. 고래나 사슴, 호랑이 등이 새겨진 반구대암각화(국보 제285호)와 달리 무엇을 표현한 것인지 정확히 알 수 없다는 의미다. 선의 굵기는 4∼5㎝ 정도. 처음 새긴 문양을 더듬어가며 갈아낸 기법을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하우 암각화연구소 교수는 “선과 구멍이 규칙성을 갖고 서로 조화롭게 배치돼, 일종의 기원행위의 결과로 남겨진 암각화로 판단된다”며 “긴 시간 동안 갈고 문질러서 완성하는 청동기 후기 암각화의 특성을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청동기시대 추정' 암각화 포항 조항산서 발견 (daum.net)

 

'청동기시대 추정' 암각화 포항 조항산서 발견

(포항=뉴스1) 최창호 기자 = 청동기 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암각화가 경북 포항에서 발견돼 학계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6일 고문화 연구가인 박종필씨(60)에 따르면 친구와 함께 지난 1일 포항시

v.daum.net

 

상주서 새로운 유형 암각화 등 11점 발견..학계 관심 (daum.net)

 

상주서 새로운 유형 암각화 등 11점 발견..학계 관심

(대구ㆍ경북=뉴스1) 피재윤 기자 = 경북 상주시 낙동면 물량리 낙동강변에서 새로운 유형의 암각화가 발견돼 학계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암각화는 큰 바위 면에 새겨진 두 사람의 인물과 9점의

v.daum.net

 

[김문술의 역사 기행] 방기리 알바위 (usjournal.kr)

 

 

 

고조선 문자부터 신라의 화랑까지 (brainmedia.co.kr)

▲ 국보 제147호로 지정한 울산 천전리 암각화(제공=울산암각화박물관)

 

 

중국 서랴오허 유역서 ‘한국형 암각화’ 발견 - 경향신문 (khan.co.kr)

중국 커스커텅치의 가오라오잉쯔 유적에서 확인된 암각화는 고령 양전동 암각화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하다.

 

칠포바위그림 - Daum 백과

고령 장기리 암각화 - Daum 백과

 

고령 양전동 암각화

 

 

보리수필문학 | 청하 신흥리 화전바위 암각화 - Daum 카페

 

청하 신흥리 화전바위 암각화

6월 19일, 청하 신흥리 북골 지역암각화 답사를 다녀왔습니다. 신흥리 북골 지역에는 바위가 많은데, 오줌바위, 화전바위라는 명칭을 가진 바위도 있습니다. 바위 밑에서 약수가 흘러 나오는 오

cafe.daum.net

 

 

 [KCTV 인문강좌] 요하문명의 발견과 동북아 상고사의 재편 1부_우실하 교수

https://youtu.be/8WWDPcAez9M?list=PLRAmvpNm4pmk-9thWqaZWsYbtqUc1ohNJ

 

 KBS 역사스페셜 – 만주대탐사, 제5의 문명 요하를 가다 / KBS 2009.8.29 방송

https://youtu.be/zwxhFb4Z_fs?list=PLRAmvpNm4pmk-9thWqaZWsYbtqUc1ohNJ

 

 

KBS파노라마 – 코리안이브 1편, 가덕도 7천 년의 수수께끼 / KBS 20140911 방송

https://youtu.be/WKwCpL6b87A?list=PLRAmvpNm4pmlCZN5V137JtF8G8jb2QLCs

 

신석기 시대, 부산에 유럽 사람이 살았다? 가덕도 고인돌 수수께끼! (KBS 20140911 방송)

https://youtu.be/Idz5FZliLgs?list=PLRAmvpNm4pmlCZN5V137JtF8G8jb2QLCs

 

 

 

<참고자료>

 

우리역사넷 (history.go.kr)

 

동북아역사넷 < 동북아역사재단 (nahf.or.kr)

 

종합고찰 - 3(신석기시대) < 오피니언 < 기사본문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co.kr)

 

고고학적 측면에서 본 한민족의 정체성 - 민족학연구 - 한국민족학회 - KISS (kstudy.com)

 

환동해문화권의 전기 신석기시대 교차편년 연구 :: 기초학문자료센터 (krm.or.kr)

 

Archives of Design Research (aodr.org) 신석기 요하문명에 기초한 여성 정치 리더의 해외 순방 패션디자인 연구

 

Cultural evolution and spatial-temporal distribution of archaeological sites from 9.5–2.3 ka BP in the Yan-Liao region, China | Journal of Geographical Sciences (springer.com)

 

 

 

싱룽와 문화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신러 문화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신석기시대편 - 문화유산 지식e음 (nrich.go.kr) - 흥륭와문화

 

신석기시대편 - 문화유산 지식e음 (nrich.go.kr) - 사해문화

 

 

유적별 - 문화유산 지식e음 (nrich.go.kr) - 러시아, 몽골,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발굴조사

 

신석기시대편 - 문화유산 지식e음 (nrich.go.kr) - 러시아 극동의 신석기문화

 

신석기시대편 - 문화유산 지식e음 (nrich.go.kr) - 아무르강 유역의 신석기문화

 

신석기시대편 - 문화유산 지식e음 (nrich.go.kr) - 오시포부카문화

 

신석기시대편 - 문화유산 지식e음 (nrich.go.kr) - 가샤유적

 

신석기시대편 - 문화유산 지식e음 (nrich.go.kr) - 말리셰보문화

 

신석기시대편 - 문화유산 지식e음 (nrich.go.kr) - 고샨유적

 

신석기시대편 - 문화유산 지식e음 (nrich.go.kr) - 사카치-알리안유적

 

신석기시대편 - 문화유산 지식e음 (nrich.go.kr) - 노보페트로브카문화

 

신석기시대편 - 문화유산 지식e음 (nrich.go.kr) - 연해주의 신석기문화

 

구석기시대편 - 문화유산 지식e음 (nrich.go.kr) - 우스티노브카문화

 

신석기시대편 - 문화유산 지식e음 (nrich.go.kr) - 루드나야문화

 

신석기시대편 - 문화유산 지식e음 (nrich.go.kr) - 보이스만문화

 

신석기시대편 - 문화유산 지식e음 (nrich.go.kr) - 자이사노브카문화

 

 

신석기시대편 - 문화유산 지식e음 (nrich.go.kr)

 

신석기시대(新石器時代)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aks.ac.kr)

 

신석기 시대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Neolithic - Wikipedia

 

Neolithic Revolution - Wikipedia

 

Liao civilization - Wikipedia

 

Prehistoric Korea - Wikipedia

 

 

신석기시대편 - 문화유산 지식e음 (nrich.go.kr) - 중서부지역의 신석기취락

 

신석기시대편 - 문화유산 지식e음 (nrich.go.kr) - 동해안지역의 신석기문화

 

신석기시대편 - 문화유산 지식e음 (nrich.go.kr) - 남해안지역의 신석기문화

 

 

의주 미송리 유적(義州 美松里 遺蹟)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aks.ac.kr)

 

서포항 유적(西浦項 遺蹟)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aks.ac.kr)

 

신석기시대편 - 문화유산 지식e음 (nrich.go.kr) - 궁산문화

 

용강 궁산리 유적(龍岡 弓山里 遺蹟)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aks.ac.kr)

 

평양 남경 유적(平壤 南京 遺蹟)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aks.ac.kr)

 

 

고성 문암리 유적(高城 文巖里 遺蹟)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aks.ac.kr)

 

신석기시대편 - 문화유산 지식e음 (nrich.go.kr) - 문암리유적

 

고성 문암리 유적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고성 문암리유적(사적 426호),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신석기시대 유적지 | Culture & History Traveling (dapsa.kr)

 

 

양양 오산리 선사유적(襄陽 鰲山里 先史遺蹟)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aks.ac.kr)

 

한국고고학사전(2001) - 문화유산 지식e음 (nrich.go.kr) - 오산리유적

 

동삼동 패총(東三洞 貝塚)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aks.ac.kr)

 

 

창녕 비봉리 패총(昌寧 飛鳳里 貝塚)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aks.ac.kr)

 

신석기시대편 - 문화유산 지식e음 (nrich.go.kr) - 세죽유적

 

신석기시대편 - 문화유산 지식e음 (nrich.go.kr) - 신암리유적

 

동삼동 패총(東三洞 貝塚)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aks.ac.kr)

 

범방동 패총(凡方洞 貝塚)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aks.ac.kr)

 

서울 암사동 유적(서울 巖寺洞 遺蹟)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aks.ac.kr)

 

한국고고학사전(2001) - 문화유산 지식e음 (nrich.go.kr)-양전동 바위그림

 

국립제주박물관 (museum.go.kr)

 

빗살무늬토기(빗살무늬土器)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aks.ac.kr)

 

빗살무늬토기 시대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한국고고학사전(2001) - 문화유산 지식e음 (nrich.go.kr)

 

Jeulmun pottery period - Wikipedia

 

Comb Ceramic - Wikipedia

 

Comb Ceramic culture - Wikipedia

 

The impact of environmental change on the use of early pottery by East Asian hunter-gatherers | PNAS

 

Pottery use by early Holocene hunter-gatherers of the Korean peninsula closely linked with the exploitation of marine resources - ScienceDirect

 

 

신석기시대편 - 문화유산 지식e음 (nrich.go.kr)-안도패총

 

Rock art - Wikipedia

 

'환국시대 > 환국' 카테고리의 다른 글

환국  (1) 2023.11.29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