력사를 찾아서
3. 신석기시대 고고학 (1) 동북아 북방문명의 젖줄, 아무르 본문
■ 동북아 북방문명의 젖줄, 아무르
강줄기 따라 수많은 문화·유적 분포… 중류 ‘평저 융기문 토기’ 한반도서도 출토
아무르 강 유역 유적 분포도
나는 아무르 강을 보면 ‘아, 물이다’라는 말이 제일 먼저 생각난다. 모스크바에 유학할 때 누군가가 우스갯소리로 ‘아무르’라는 명칭이 이주 한인들이 너무 힘들고 목이 마를 때 그 강물을 보고 “아, 물이다”라고 말한 연유로 생겨났다는 말을 들은 다음부터다.
아무르 강 하류의 니브흐인들은 그 강을 다-무르, 즉 큰 강이라고 불렀고, 더 하류 쪽의 에벤크(에벵키)인들은 이를 차용하여 아마르 혹은 아무르라고 불렀다고 한다. 나중에 러시아인들이 이를 그대로 사용하면서 아무르 강이 되었다. 아무르 강은 그 물 흐르는 것이 검은 용과 같다 하여 흑룡강이라 부르기도 한다.
바이칼 동쪽의 실카 강과 아르군 강이 합류하면서 시작하는 아무르 강은 동쪽으로 흘러 아무르 주와 하바로프스크 주를 지나 타타르 해협으로 흘러나간다. 아무르 강은 전체 길이가 2824㎞로, 상류·중류·하류로 크게 구분된다. 실카 강과 아르군 강이 합류하는 곳에서 제야 강 하구까지, 즉 블라고베시첸스크 시까지가 상류, 이곳에서 우수리 강까지, 즉 하바로프스크 시까지가 중류, 그리고 이곳에서 동해의 타타르 해협까지가 하류다.
멀리까지 이동할 수 있었던 교통로
아무르 강 유역에는 석기시대부터 역사시대에 이르는 수많은 유적이 분포하고 있다. 나나이족을 비롯하는 수많은 소수민족도 이 강을 따라 살고 있다.
아무르 강은 동북아시아 북방지역의 교통로이자 젖줄과도 같았다. 사시사철 동북아시아의 북방을 동서로 연결했으며, 또한 지역의 주민들에게 풍부한 음식물을 제공해주었다. 여름이면 배를 타고 아무르 강과 그 지류를 따라 아주 멀리까지 이동할 수 있었다. 겨울이면 폭이 수 킬로미터에 달하는 넓은 빙판길을 사람들에게 제공했을 것이다. 신석기시대의 토기가 한반도와, 초기 철기시대의 토기가 일본과 각각 비슷한 양상을 보이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여름에서 가을에 이르기까지 아무르 강과 그 지류에는 동해의 타타르 해협에서 올라오는 연어로 인해 강이 물고기로 넘쳐났다. 이곳의 주민들은 여름 한철의 연어 잡이로 겨울을 준비했다. 연어는 이곳 주민들의 주식이었고, 의복과 신발을 만드는 재료가 되었다. 겨울에는 얼음을 깨고 낚시를 하여 물고기를 잡았다. 아무르 강에는 철갑상어도 많이 서식한다. 주변의 산악지역에는 곰과 사슴 등 수많은 동물도 서식한다. 그 때문에 아무르 강 유역에는 이미 오래전부터 문명이 발전할 수 있었다.
신석기시대에 아무르 강 중류와 하류에는 수많은 고고학 문화가 발전했다. 하류 지역에서는 이미 1만3000년 전에 토기를 사용했다. 가샤 유적에서 출토한 이 토기는 지구상에서 가장 이른 토기 중의 하나다.
더 하류로 가면 수추 섬 유적이 있는데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 3년 동안 러시아와 공동 발굴조사를 한 유적이다. 길이가 약 400m에 불과한 자그마한 이 섬에서는 신석기시대 전 기간의 주거지가 약 120여 기 확인되었다.
이 섬 안에는 환호가 있어 사람과 영혼이 거주하는 지역이 서로 구분되어 있으며, 주거지에서는 토기와 석기는 물론이고 사람 형상과 동물 형상을 한 다량의 토우도 출토되었다.
토기 중에는 번개무늬 토기가 있는데, 6000~7000년 전의 토기에 지금 우리가 쇠 울타리, 베개, 담장의 그림 등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과 꼭 같은 모양의 번개무늬가 새겨져 있다. 이 유적은 풍부한 유구와 화려한 출토 유물 덕분에 ‘아무르의 미케네’라고 불리기도 한다.
코리안 루트 상에 분포한 대표적인 암각화인 레나강 상류 카축의 암각화(사진|김문석기자)와 아무르 강 유역 시카치-얄랸 암각화(사진|정석배교수), 그리고 울산시 울주군 반구대 암각화(왼쪽부터)
또한 아무르 강 하류 지역에는 ‘아무르의 비너스’라고 불리는 토우도 있으며, 토기에 사람의 얼굴을 새긴 것도 있다. 나나이인들이 사는 시카치-알랸 마을 주변에는 암각화 유적이 있다. 사람의 얼굴을 새긴 것과 사슴과 같은 동물의 형상을 새긴 바위들이 아무르 강변을 따라 수없이 널려 있다.
나나이인들은 이 암각화를 매우 신성하게 여긴다. 태초에 사람이 3명 있었다. 그들은 카도라는 남자와 쥴치라는 여자를 만들고, 나중에 마밀쥐라는 처녀를 만들었다. 카도는 하늘에 해가 3개 있어 너무 뜨거워 살 수가 없다면서 2개의 해를 활로 쏘아 떨어뜨렸다.
이를 기념하여 마밀쥐가 암석에 그림을 그렸고, 쥴치가 이제 사람들이 내 남편이 2개의 해를 죽인 것을 알게 될 것이라고 하였다. 나나이인들은 이 신화의 내용대로 시카치-알랸 암각화를 자신들의 조상들이 남긴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르 강 유역에서 발굴한 세칭 ‘아무르의 비너스’(왼쪽)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1만3000년 전) 토기의 조각들. |정석배 교수
아무르 강 중류 지역에는 신석기시대 전기의 노보페트로브카 유적이 있는데, 평저 융기문 토기와 돌날로 만든 석기가 특징을 이룬다. 비슷한 평저 융기문 토기가 한반도 동해안과 남해안 지역의 신석기시대 전기 유적에서도 많이 출토된다. 강원도 오산리 유적과 부산 동삼동 패총 유적 그리고 제주도 고산리 유적이 그 대표적인 예라 하겠다.
이런 유형의 신석기문화는 동북아시아 지역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며, 바이칼 지역이나 중국의 중원문화권과는 많은 차이를 보인다. 이 시기에 이미 환(環)만주문화권이 형성되기 시작한 것이다.
아무르 강 수추 섬은 풍부한 유구와 화려한 출토 유물로 인해 ‘아무르의 미케네’라고 불린다. 한반도와도 연결되는 가장 오래된 번개무늬토기(왼쪽)가 나온 곳이기도 하다. 수추 섬에서 발굴한 석환과 곰상.
아직 아무르는 우리에게 모든 것을 분명하게 보여주지는 않고 있다. 이제 그것들에 관심을 가질 때다. 더욱이 러시아 학자들의 연구 결과는 우리가 이 지역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가질 수 있는 동기를 부여한다.(1)
■ 시베리아 대륙 동토의 문명들
신석기시대부터 뛰어난 문화 태생… 청동기문명 한반도·만주 등에 파급
레나 강 살류 카축 지역의 쉬시킨스키 암각화.
시베리아는 동쪽의 야블로노브이 산맥과 스타노브이 산맥에서 서쪽의 우랄 산맥까지다. 시베리아에는 3개의 큰 강이 흐른다. 모두 사얀-알타이 산맥과 같은 남쪽의 큰 산맥에서 발원하여 북쪽으로 흐른다. 레나 강, 예니세이 강, 그리고 오비 강이 그것이다.
시베리아는 추운 곳이다. 겨울에는 정말 춥다. 1월 평균 온도가 남시베리아는 -16℃, 야쿠치아는 -48℃다. 그러나 여름에는 따뜻하다. 봄이면 땅속은 얼어 있어도, 땅 위는 새싹이 나고, 꽃이 피고, 여름이면 사람들이 수영복을 입고 일광욕도 한다.
예니세이 중·상류 선사문화 발달
북방유라시아 문화 유적 분포
한반도는 시베리아와 많이 떨어져 있고 기후도 판이하다. 그런데도 학자들은 시베리아가 우리와 많은 관계가 있다고 이야기해왔다. 왜 그럴까.
시베리아의 남쪽 지대는 유목 문화권에 속했다. 예를 들면, 기원전 7~3세기의 선(先)흉노-스키타이 시대에 알타이 지역에는 파지릭 문화가, 예니세이 강 상류 지역에는 타가르 문화가 각각 분포했다. 이 두 문화에는 소위 스키타이 3요소라는 모든 문화 요소를 다 갖추고 있어, 흑해 북안 우크라이나 지역의 본원적인 스키타이 문화와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선흉노-스키타이 세계에는 동쪽의 오르도스 지역 모경구 문화도 포함되고, 그 문화 요소들은 중국 하북성 북부 지방에까지 확인된다. 고조선은 이곳에서 유목민들과 국경을 접했을 것이니 그 문화 요소를 전혀 모르고 있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한반도를 포함하는 동북아시아에 널리 보이는 아키나크 모양의 마제석검은 바로 유목민의 문화 요소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시베리아와 관련이 있다고 할 때는 사실 그 넓은 지역에서 구체적으로 어느 지역을 말하는지 파악하기가 힘든 때가 있다. 시베리아는 넓고, 지역마다 문화가 서로 차이가 나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신석기시대에는 바이칼 유역의 세로보 문화를, 청동기시대에는 예니세이 강 상류지역의 카라수크 문화를 지칭하는 경우가 많았다. 또한 초기 철기시대에는 타가르 문화나 파지릭 문화를 거론하기도 한다. 우리가 스키타이 문화라고 한 것은 사실 헤로도투스가 말한 흑해 북안의 그 스키타이가 아니라 스키타이 문화의 요소를 간직하고 있는 중앙아시아의 사카 문화, 알타이의 파지릭 문화, 그리고 예니세이 강 유역의 타가르 문화였으며, 가깝게는 오로도스 지역의 모경구 문화였다.
시베리아에서는 예니세이 중·상류 지역이 가장 발달된 면모의 선사문화를 보여주고 있다. 이곳에 미누신스크 분지가 있다. 구석기시대부터 역사시대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문화가 발달했다. 신석기시대 후기부터 초기 철기시대까지는 타스민 문화, 아파나시예보 문화, 오쿠네보 문화, 안드로노보 문화, 카라수크 문화, 타가르 문화가 일부 공존하기도 하면서 차례로 등장했다.
시베리아의 구석기시대 유적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아마도 예니세이 강과 레나 강 상류 사이에 자리 잡은 말타 유적일 것이다. 이곳에서는 매머드의 상아로 만든 여인상과 새(鳥)상이 발견되기도 했다. 시베리아에는 또한 암각화 유적이 수없이 분포한다. 예니세이 강 유역에는 바야르 암각화와 쉬쉬카 암각화가 있다. 특히 바야르 암각화에는 소도 그려져 있고, 천막도 그려져 있고, 또 솥도 그려져 있다. 구석기시대부터 초기 철기시대까지의 그림이 있다. 암각화는 레나 강 유역에도 많다. 카축 암각화와 나린얄가 암각화가 바로 그것이다. 모두 강변을 따라 나 있으며, 암벽에 동물을 새기기도 하고 그리기도 했다.
시베리아 청동기문화 몽골서도 확인
'말타의 비너스',안드로노보 문화 토기, 아파나시예보 문화 토기(오른쪽부터 시계방향).
예니세이 강 상류 지역의 신석기시대 후기 타스민 문화에는 사람의 형상을 새긴 선돌과 계란 모양의 돌이 있다. 이 선돌에는 사람의 얼굴만 새긴 것도 있지만 몸의 일부를 함께 새긴 것도 적지 않다. 둥근 눈이 2개 혹은 3개가 표현되어 있다. 머리 위로 광선이 뻗어나가기도 하고, 쇠뿔이 솟아나 있기도 하다. 머리 위에 배가 표현된 경우도 있다. 이 인면(人面)은 마스크-가면을 표현했을 것인데, 때로는 우주인과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한다. 인면과 함께 동심원과 사각형이 합쳐진 듯한 기하문양도 있다. 하나의 선돌에 인면 3개가 새겨져 있는 경우도 있어, 천계와 지계, 그리고 하계를 상징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이러한 인면 석상의 주변에서 말 뼈와 새 뼈 등이 발굴됐다. 모닥불 흔적도 있는데, 불과 연기, 증기를 통해 신과 영령들에게 음식을 대접한 유적으로 해석된다.
시베리아의 청동기 문화를 연 것은 기원전 3000년 중엽~2000년 초의 아파나시예보 문화다. 이 문화는 미누신스크 분지를 중심으로 하지만 관련 유적들이 동쪽으로 몽골에서까지 확인되었다. 당시 이 지역의 주변 타이가와 삼림초원지대에서는 아직 석기시대가 계속되고 있었다. 아파나시예보 문화인들은 청동으로 칼, 송곳, 장신구 등을 만들어 사용했고, 금과 은도 알고 있었다. 토기는 바닥이 둥글거나 뾰족한 것이 많았으며, 향로도 만들어 썼다. 무덤은 토광에 적석을 하고 둘레에는 호석을 두른 것이었다. 신석기시대 타스민 문화인들이 남긴 석상에 황소를 새기기도 했다. 이들은 사냥과 어로 이외에 소와 양, 말을 사육했다. 목축에 종사한 것이었다. 예니세이 강 중·상류 지역의 청동기문화는 그 유물이 청동기시대 초기의 일반적인 양상이므로, 자생적으로 발전했을 것이다. 이는 사얀-알타이 지역에 천연 동광석이 풍부한 것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시베리아 지역은 이후 오쿠네보 문화 단계를 거쳐 안드로노보 문화와 카라수크 문화로 넘어간다. 안드로노보 문화는 그 중심 지역이 지금의 카자흐스탄 지역이기 때문에 시베리아와는 약간 무관한 느낌을 주기도 하나, 예니세이 강 유역도 이 문화권에 포함됐다. 안도로노보 문화 자체는 기원전 17세기에 시작됐지만, 예니세이 강 유역의 안드로노보 문화는 대체로 기원전 14~12세기로 편년된다. 안드로노보 문화는 번개무늬 토기가 가장 큰 특징이다. 지금으로부터 6000~7000년 전의 아무르 강 유역 토기와 신석기시대 후기 연해주와 두만강 및 압록강 유역 토기에도 그와 꼭 같은 번개무늬가 새겨져 있다. 아랄 해에서 태평양 연안까지 신석기-청동기시대에 동일한 문양 모티브를 사용한 것이다.
기원전 14/13~8세기의 카라수크 문화는 광대한 시베리아는 물론이고, 서쪽으로 멀리 우크라이나 지역까지, 남서쪽으로 카자흐스탄 지역까지, 동쪽으로는 중국 북방 지역과 동북3성, 한반도 그리고 연해주에까지 깊은 영향을 끼쳤다.
똑같은 청동손칼 한반도에서도 출토
나린얄가 암각화를 조사하는 탐사단.
이 문화의 석관묘는 한반도 청동기시대 석관묘의 기원으로 오래전부터 논의됐다. 청동 단검과 손칼, 멍에 모양의 청동기, 물갈퀴 모양과 연주형의 청동 장신구, 동포 등 수많은 청동기가 제작 사용됐다. 그중에서 산양과 사슴뿔 모양의 손잡이 끝 부분 장식이 있는 단검과 손칼은 몽골과 중국 북방 지역, 그리고 심지어는 은허에서조차 발견됐다. 방울 모양의 손잡이 장식이 있는 단검은 중국 북방 지역에 널리 확인된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둥근 고리 모양의 손잡이가 있는 손칼이 우리와 깊은 관련이 있을 것이다. 평북 용천 신암리 유적에서 시베리아 예니세이 강 유역의 것과 꼭 같은 청동 손칼이 출토되었다. 비파형동검보다 더 이른 시기의 청동 유물로서 한반도에서 가장 이른 청동 유물 중의 하나다. 카라수크의 손칼은 연해주에도 보인다. 이 시기 북방유라시아 대륙은 그야말로 시베리아에서 불어온 카라수크 문화라는 강풍이 휩쓸고 있었고 한반도를 포함한 극동지역도 예외가 아니었던 것이다. 사실 연해주와 한반도의 청동기문화는 그 시작이 시베리아 예니세이 강 유역의 카라수크 문화와 깊은 관련이 있을 것이다. 연해주와 한반도의 이른 시기 청동유물은 많은 부분 카라수크 문화와 공통성을 띤다. 앞의 청동 손칼이 그러하고, 청동기시대 전기의 검신이 세장한 삼각형 모양인 마제석검이 그러하다.
시베리아의 바람은 이후 초기 철기시대인 선흉노-스키타이 세계에서 더욱 세차게 불었다. 남시베리아 지역에서 발생한 ‘스키타이’ 동물 양식과 같은 문화 요소들이 서쪽로는 카르파트 산맥에까지 이르고, 동쪽으로는 하북성 북부지역까지 도달하여 북방유라시아 대륙을 소위 ‘스키타이 문화’로 뒤덮었다. 나는 기원전 7~3세기의 이 문화권을 모두 통칭하여 ‘선흉노-스키타이 세계’라고 부른다. 이 시기 고조선은 카라수크 문화에 뒤이어 바로 선흉노-스키타이 세계와 인접하고 있었을 것이다. 이 시기 고조선을 대표로 하는 ‘환(環)만주문화권’은 비파형 동검이라는 독특한 청동단검 문화를 창조했지만, 역시 서쪽의 유목민 문화 요소를 전혀 모를 수는 없는 일이었다.
시베리아는 동서 길이가 약 7000㎞, 남북 길이가 약 3500㎞, 면적이 약 1000만㎢로 정말로 엄청난 크기다. 크기만큼 시공에 따른 문화 양상 또한 지극히 다양했다. 신석기시대부터 뛰어난 문화를 태생시킨 시베리아 대륙은 계속해서 새로운 문명을 태동했으며, 그 영향은 청동기시대에 이르러서는 북방유라시아 대륙을 모두 포괄할 정도였다. 한반도와 만주지역 그리고 연해주도 그 시베리아의 바람을 피할 수는 없었다.(2)
<자료출처>
(1) [특별기획]동북아 북방문명의 젖줄, 아무르 - 주간경향 (khan.co.kr) 뉴스메이커-750호)
(2) 시베리아 대륙 동토의 문명들
<참고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