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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국 (의사 역사학)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환국(桓國)은 고조선(또는 환웅의 시대) 이전에 존재했다고 일부 의사역사학에서 주장하는 나라로, 《삼국유사》의 특정 판본과 《환단고기》에 기록되어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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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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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국(桓國)은 고조선(또는 환웅의 시대) 이전에 존재했다고 일부 의사역사학에서 주장하는 나라로, 《삼국유사》의 특정 판본과 《환단고기》에 기록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한국 사학계에서는 환국이라는 존재를 인정하지 않으나 일부 유사역사학자들은 《환단고기》에 등장하는 내용을 신뢰하며 환국을 한민족 최초의 국가로 주장하기도 한다.[1]

개요[편집]

‘환국’이라는 단어는 《삼국유사》에 최초로 등장한다. 《삼국유사》의 가장 오래된 판본인 〈정덕임신본〉에는 ‘환인(桓因)’이 ‘환국(桓囯)’으로 표기되어 있다. 이로 인해 《약천집(藥泉集)》[2], 《동사(東史)》[3] 등 조선 중기 이후의 사찬 역사서들 중 일부에 단군신화의 해당 구절이 ‘환국(桓國)’으로 표기되는 경우가 있었다. 《약천집》의 경우 《삼국유사》가 출전이며 다른 사서에서도 등장 형태가 모두 《삼국유사》와 같은 昔有桓國(석유환국)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삼국유사》의 기록은 글자를 잘못 쓴 것이라는 사실이 확인되면서 대부분의 한국사학자들은 이를 환국이라고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민족사학자 신채호와 재야사학자 문정창 등은 이 구절이 조작된 것이라고 주장하며 환국의 실존 증거라고 여겼다.[4]

환국 조작설[편집]

  • 신채호는 《조선상고사》에서 천국(天國)을 일컬어 ‘환국’이라 표현하였다고 생각했다. 또한 《삼국유사》에 인용된 《고기(古記)》에 기록된 환인은 원래 환국이었지만 신라 말기 불교의 영향으로 환국이 환인으로 조작되었다고 주장하였다.
  • 문정창은 그의 여러 저서를 통해 《삼국유사》의 환인은 원래 환국이며 일본의 식민사학자인 이마니시 류가 《삼국유사》를 번역하는 과정에서 환국으로 표기되어 있는 것을 환인(桓因)으로 조작하였다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주장은 재야사학자들과 언론을 통해 계속 재생산되면서 최근까지도 반복해서 주장되고 있다.[5] 그러나 《삼국유사》의 해당 기록은 조작된 것이 아니라 글자를 잘못 쓴 것이었음이 밝혀지면서 한국사학계에서는 이들의 조작설을 인정하지 않는다.[6]

환단고기의 환국[편집]

환단고기》에는 환국이 약 9000여 년 전에 존재했던 국가로 묘사된다. 3300여 년 또는 63000여 년 동안 존속하였던 환국의 군주 명칭은 환인이며 환단고기에는 7명의 역대 환인의 계보도 기록되어 있다. 환단고기에서는 환국이 천해(天海) 동쪽에 있으며 영토 면적이 남북 5만 리, 동서 2만 리에 달했고 12개 연방 국가로 이루어졌다고 한다. 일부 재야사학자들과 환단고기의 주장을 믿는 사람들은 이와 같이 《환단고기》에서 언급된 환국의 기록을 믿으며 환국이 중국뿐 아니라 메소포타미아까지 지구의 반을 지배했다고 주장한다.[7] 그러나 대부분의 한국사학자들은 《환단고기》가 이유립 또는 계연수에 의해 조작된 위서라고 보기 때문에 이러한 주장 역시 인정하지 않는다.

다음은 환단고기에서 기록된 역대 환인이다.

  • 1대 환인 : 안파견(安巴堅) 환인
  • 2대 환인 : 혁서(赫胥) 환인
  • 3대 환인 : 고시리(古是利) 환인
  • 4대 환인 : 주우양(朱于襄) 환인
  • 5대 환인 : 석제임(釋提壬) 환인
  • 6대 환인 : 구을리(邱乙利) 환인
  • 7대 환인 : 지위리(智爲利) 환인

다음은 환단고기에서 기록된 환국의 12개의 연방 국가 목록이다.

  • 비리국 (卑離國)
  • 양운국 (養雲國)
  • 구막한국 (寇莫汗國)
  • 구다천국 (句茶川國)
  • 일군국 (一群國)
  • 우루국 (虞婁國)
  • 필나국 (畢那國)
  • 객현한국 (客賢汗國)
  • 구모액국 (句牟額國)
  • 매구여국 (賣句餘國)
  • 직구다국 (稷臼多國)
  • 사납아국 (斯納阿國)
  • 선비국 (鮮裨國)
  • 시위국 (豕韋國)
  • 통고사국 (通古斯國)
  • 수밀이국 (須密爾國)

이들 국명의 일부는 《진서(晉書)》 〈사이열전〉에 위치와 국명이 나타나는데 대체로 이유립 또는 계연수가 《환단고기》를 제작할 때 이를 베꼈을 것으로 본다. 이와는 반대로 일부에서는 이를 근거로 12개의 연방 국가의 실존을 주장하기도 한다. 특히 이들 국가 가운데 ‘수밀이국’과 ‘우루국’이 각각 고대 메소포타미아 문명 가운데 하나인 수메르 문명과 도시국가 우르를 지칭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7]

각주[편집]

  1.  최종철, 《환웅 단군 9000년 비사》, 미래문화사, 1995
  2.  남구만, 《약천집(藥泉集)》, 〈동사변증(東史辨證)〉
  3.  이종휘, 《동사(東史)》, 〈신사지(神事志)〉
  4.  신채호, 《조선상고사》, 종로서원, 1948 / 문정창, 《단군조선사기연구》, 백문당, 1966
  5.  "단군 조선은 허구적 신화가 아닌 실제 역사", 《SBS》, 2008.10.3.
  6.  삼국유사#조작설에 자세한 내용이 있다.
  7. ↑ 이동:가  임승국 주해, 《한단고기》, 정신세계사, 1986년

같이 보기[편집]

참고 문헌 및 링크[편집]

  • 일연, 《삼국유사》
  • 이유립, 《환단고기》, 1979년
  • 《진서(晉書)》〈숙신열전(肅愼列傳)〉

 

 

 

2019.08.01 

고조선 이전 태백산 아래 환인·환웅의 배달국 있었다  - 인사이트코리아 (insightkorea.co.kr)

 

고조선 이전 태백산 아래 환인·환웅의 배달국 있었다  - 인사이트코리아

한민족 역사와 관련한 기록에 처음 나타나는 나라와 통치자라 할 수 있는 이름은 ‘환국(桓國)’ ‘환인(桓因)’이다. 아직까지 유적이나 유물, 관련 사서들에 의해 나라의 존재 시기나 위치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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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 넓이 남북 5만리, 동서 2만리…중국은 ‘동북공정’ 역사침탈

 

환국, 배달국 추정 위치.<그래픽=이민자>



한민족 역사와 관련한 기록에 처음 나타나는 나라와 통치자라 할 수 있는 이름은 ‘환국(桓國)’ ‘환인(桓因)’이다. 아직까지 유적이나 유물, 관련 사서들에 의해 나라의 존재 시기나 위치 등을 확증할 수는 없으나 여러 사서에서 이 이름에 대한 기록들을 남기고 있다. 따라서 한민족 상고 역사에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다.

기록이 말하는 환국의 역사


고려 충렬왕 때 일연(1206~1289년)이 지은 <삼국유사>에서는 다음과 같이 고조선 이전에도 나라 또는 통치자가 존재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옛 기록에 이르기를, 옛적에 환인(桓因)이 있었다(제석을 이른다). 서자부에 환웅께서 계셨다. 항상 천하에 뜻을 두었으며, 인간 세상을 탐구했다. 아버지께서 자식의 뜻을 아시고 삼위태백을 살펴보시니 가히 인간을 널리 이롭게 할 만한 곳이라. 이에 천부인 삼개를 전수하시고, 그 이치로써 다스리게 하였다. 환웅께서 무리 3000명을 이끌고 가셨다. 태백산 정상(즉 태백은 현재의 묘향산), 신단수 아래로 내려가셨다. 이름하여 신시이며, 환웅천왕이시다.”

이 기록은 사학자이자 고고학자인 손보기 교수가 보관하다 연세대에 기증한 조선 초기 간행본인 <삼국유사> 파른본의 내용이다. 한편 서울대 규장각에 보관된 조선 중종 때 간행된 정덕본(正德本)에는 환인이 환국으로 기록돼 있다.

이같이 조선조에 발간된 <삼국유사>의 판본들에서는 두 가지 기록 (환인-환국)이 나타나고 있다. 아마도 조선 시대에는 상고 역사의 시작인 환인, 환국을 같이 인식하고 있었던 데 기인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수산(修山) 이종휘는 조선 후기 영조·정조 때의 학자로 <수산집>이라는 문집을 남겼다. 이 문집의 일부인 <동사(東史)>에서 고조선, 삼한, 부여·고구려의 역사와 문화를 다루고 있는데 한국사에서 처음으로 <단군본기(檀君本記)>를 서술했다. 그는 고조선을 신화가 아닌 실존했던 나라로 인식하고 고구려 중심의 고대사를 전개했다. 그리고 환인-환웅-단군-부루(夫婁)로 이어지는 세계(世系)를 밝혔다. 고조선 이전에도 세계가 있었다는 이야기다. 다음은 <동사> 단군본기의 기록이다.

“조선왕 단군의 할아버지는 신인(神人) 환인(桓因)이다. 환인에게는 환웅이라는 서자가 있었다. 환웅은 태백산에 살았는데 신웅(神龍)의 이적으로 박달나무 아래서 (단)군을 낳았기 때문에 단군(君)이라고 이름했다.”

1462년 조선 세조 8년 권람이 쓴 <응제시주(應製詩社)>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옛 기록에 이르기를 상제(上帝) 환인에게 서지부에 대인 아들이 있었는데 웅(雄)이라 불렀다. 아래 세상으로 내려가 교화하고자 뜻이 있었기에 천부인을 받으시고 3000명을 거느리고 신단수 아래로 내려 오셨으니 이름하여 환웅천왕(桓雄天王)이라 불렀다.”

영의정을 지낸 조선 후기 현종·숙종 때 문인 남구만은 <약천집(藥泉集)>에서 <삼국유사>를 인용해 환국의 존재를 기록하고 있다.

“<삼국유사>에 실려 있는 옛 기록의 설명에 이르기를 옛적에 환국이란 나라가 있었다. 제석을 이른다. 서자부 환웅께서 계셨다.”

삼국유사.<문화재청 홈페이지>

 


조선 영조·정조 시대의 성리학자 유광익은 그의 호를 따서 지은 <풍암집화(楓巖輯話)>에서 <삼국유사>의 환국을 인용하고 있다. 내용은 <약천집>과 같다. 조선 중기 중종·인종 시대의 문신인 정황의 <유헌집(遊軒集)>에는 다음의 기록이 있다.

“책상 위의 티끌은 3년의 세월이 두텁게 쌓였구나. 나라의 근본이 하나의 깃발로 휘날리는구나. 어찌 환국을 삼가 기억하지 않겠는가?”

조선 후기 영조·정조 시대의 문신 이복휴는 상고 시대부터의 우리 역사를 시로 읊은 <해동악부(海東樂府)>에서 환국을 기록했다.

“옛 기록에 이르기를 옛적에 환국이란 나라가 있었다. 서자부 환웅께서 계셨다. 환국에는 환인이 계셨고, 환인에게는 환웅께서 계셨다. 부친께서 자식에게 명하기를…”

조선 시대 후기 순조·헌종 시대의 문신 홍경모는 그의 문집 <관암전서(冠巖全書)>에서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잡기에 이르기를 조선 이전에 환국이 있었으며, 제석의 서자부에 환웅께서 계셨다. 천부삼인을 전수받으시고 그 무리들과 더불어 태백산 아래로 이주하시니라. 그 산 위에 신단수가 있었다. 옛날에 환웅은 신시의 천왕이셨다. 그리고 환웅의 자손이 단군이라 불렀다.”

이외에도 고려 충렬왕 13년 1287년에 이승휴가 쓴 <제왕운기> <조선왕조실록(세종, 단종, 성종, 선조, 현종, 영조, 정조 편)> <세종실록지리지> 등에도 환인에 대한 기록이 나온다. 아래는 위서 논란이 있으나 주목할 만한 사서들이다. 여기서 환국과 환인의 기록을 살펴보자.

환국 역사 3000년, 배달국으로 이어져


신라 시대 승려 안함로가 지은 <삼성기 상(三聖記 上)>과 고려 공민왕 때 원동중이 지은 <삼성기 하(三聖記 下)>, 고려 말 행촌 이암이 지은 <단군세기(檀君世記)>, 이암의 현손이며 조선 연산군·중종 시대 학자인 이맥(李陌)이 편찬한 <태백일사(太白逸史)>, 고려 공민왕 때 범장(范樟)이 저술한 <북부여기(北夫餘記)> 등의 사서를 일제강점기인 1911년 계연수가 한 권의 책으로 엮어 <환단고기(桓檀古記)>라고 이름 지었다. 이 사서들에서 기술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먼저 <삼성기 상>의 기록이다.

“우리 환국을 세운 것은 아주 오랜 옛날이다. 한 신이 사백력의 하늘에 있으면서 유일한 신이 되어 밝은 빛을 우주에 비추었다. 이에 권능으로 형체를 변하여 만물을 생기게 하였으며 오래 살면서 그것을 보고 항상 즐거워했다. 지극한 기를 타고 다니니 묘함이 자연과 어울렸고, 형체가 없이도 보며, 하는 것이 없어도 만들며, 말하지 않고 행했다. 어느 날 동녀 동남 800명을 흑수와 배산 땅에 내려 보냈다. 이때 환인은 감군이 되어 하늘에 살면서 돌을 쳐서 불을 만들어 음식을 익혀 먹는 법을 가르쳤다. 이것을 환국이라 하며 환인을 친제환인씨 또는 안파견이 라고도 한다. 7세를 이어 내려왔으나 그 햇수는 알 수가 없다.”

<삼성기 하>에도 다음의 기록이 있다.

“옛날에 환국이 있었는데, 백성들이 부유하고 또 수도 많았다. 처음에 환인이 천산에 살면서 도를 얻어 오래 살고 몸에는 병이 없었다. 하늘을 대신해 사람을 교화해 싸움이 없게 하고 사람들은 스스로 힘을 내어 일을 하므로 굶주림과 추위가 없었다. 혁서 환인, 고시리 환인, 주우양 환인, 석제임 환인, 구을리 환인으로 이어져 지위리 환인에 이르렀다. 지위리 환인을 혹 단인이라고도 한다. 고기에 말하기를, 파내류 산 아래에 환인 씨의 나라가 있었다. 천해 동쪽 땅을 파내류국이라 한다. 그 땅의 넓이는 남북이 5만 리, 동서가 2만여 리인데 이것을 모두 환국이라 한다.…7세를 이어 그 역년이 모두 3301년인데….”

또 <태백일사>에도 환국 기록이 있다.

“전에 말하기를, 삼신의 뒤를 환국이라 하고 환국은 하느님이 사는 나라라고 하였다. 또 말하기를, 삼신은 환국보다 먼저 있었으며 나반이 죽어서 삼신이 되므로 삼신은 영원한 생명의 근본이다. 사람과 만물이 다 같이 삼신으로부터 나왔기 때문에 삼신을 한 뿌리의 조상으로 삼는다고 하였다. 환인이 삼신을 대신하여 환국의 천제가 되었다.”
<삼성밀기>에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파내류 산 밑에 환인 씨의 나라가 있었다. 천해의 동쪽 땅도 파내류국이라 하는데 그 땅의 넓이는 남북이 5만 리 동서가 2만여 리이다. 이것을 통틀어 환국이라 한다.”

<조대기>에 이런 기록이 있다.

“옛날에 환국이 있었는데 백성들의 생활이 부유하고 풍족했다. 처음에 환인이 천산에 있으면서 도를 얻어 오래 살고 몸을 다스려 병이 없었다.”

1075년 조선 숙종 때 북애(北崖)가 쓴 <규원사화(揆園史話)>에도 관련된 기록이 있다. <규원사화>는 고려 공민왕 때 이명이 <진역유기(震域遺記)>와 40여 사서를 바탕으로 쓴 것이라 하는데 <진역유기>는 예로부터 존재하던 고대 사서 <조대기(朝代記)>를 보고 썼다고 한다. 이 사서는 1972년 국립중앙도서관의 이가원·손보기·임창순 3인의 고서심의위원이 1675년에 작성된 진본임을 확인하고 귀중본으로 지정한 책이다.

“상계(上界)에는 문득 하나의 큰 신(神)이 있었으니 그는 환인이요 온 세상을 다스리는 무량(無量)한 지혜와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발해 건국자 대조영의 아우 대야발이 727년에 저술한 <단기고사(壇記古史)>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환씨전(桓氏典)에, 동방에 부여족이 태백산 부근에 흩어져 살았는데, 그중 환인은 관대하고 도량이 커서 가옥의 건축과 의복제도를 시작하고, 아들 환웅을 낳으니, 그 뛰어난 모습을 호걸이라 했다.”

이상에서 본 바와 같이 우리나라 상고사와 관련해 고조선 건국 이전 최초의 나라 또는 통치자로 생각해볼 수 있는 환국-환인에 대해 여러 기록이 남아있다. 한편 <삼성기 상·하> 와 <태백일사> 등의 기록에 의하면 환국은 넓이가 남북 5만 리, 동서 2만 리에 달했다 한다. 또 환국의 군장인 환인은 7대를 이었고 환국이 지속된 역년이 3301년이라 한다. 단군을 군장으로 하는 고대 국가인 고조선마저도 한편의 민족설화나 신화로 치부되는 상황에서 기록이 남아있는 단군 이전의 상고 역사는 어떻게 평가받아야 할 것인가 다시 한 번 생각해볼 대목이다.

‘박달나라의 임금’


한민족은 배달민족이라 불린다. 한국학중앙연구원이 편찬한 <한국민족 문화대백과사전>을 보면 배달은 우리 민족을 지칭하는 용어로 그 연원은 확실하지 않으나 조선 숙종 때 북애가 지은 <규원사화>에서 단군은 ‘박달나라의 임금(檀國之君)’을 말하며 우리말에 ‘단(檀)’을 ‘박달’ 혹은 ‘백달’이라 한 데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한다. 또 일각에서는 배달은 밝다는 뜻인 ‘배(밝)’와 땅을 의미하는 ‘달’을 합친 말로 동쪽으로 향해 간 것을 의미한다고 하기도 한다.

그동안 우리 역사에서 BC 24세기에 건국했다는 고조선을 신화로 취급하고 있으나 고조선 이전에 존재했던 한민족 국가에 대한 기록들이 엄연히 우리 사서에 남아있다. 배달국의 존재를 나타내는 ‘배달-신시(도읍지)-환웅(임금)-청구(국명 또는 지명)’ 등에 대한 기록은 일연(1206~1289년)의 <삼국유사>, 권람(1416~1465년)의 <응제시주>, 유희령(1480~1552년)의 <표제음주동국사략>, 홍언필(1530년)의 <신증동국여지승람>, 권문해(1534~1591년)의 <대동운부근옥>, 허목(1595~1682년)의 <기언>. 남구만(1629~1711년)의 <약천집>, 홍만종(1643~1725년)의 <해동이적>, 유광익 (1713~1780년)의 <풍암집화>, 이종휘 (1731~1797년)의 <동사>, 홍경모(1774~1851년)의 <관암전서>, 안정복(1778년)의 <동사강목>, 이복휴의 <해동악부> 등이 있다.

앞서 소개한 위서 논쟁이 있는 <환단고기>의 <삼성기 상·하> <태백일사>와 <규원사화>에는 좀 더 상세한 기록들이 있다. <삼성기 상>은 “환웅 씨가 그 뒤를 이어 일어나서 하느님의 명을 받들어 백산과 흑수 사이에 내려와 천평에 자정과 여정을 파고 청구에 정지를 만들었다. 천부인을 가지고 다섯 가지 일을 주관하였으며 세상이 하늘의 이치에 맞도록 교화되어 사람을 널리 유익하게 하였다. 도읍을 신시에 세우고 나라 이름을 배달이라 하였다”고 기록한다.

<삼성기 하>는 “이때 환웅이 무리 3000명을 거느리고 태백산 꼭대기 신단수 아래에 내려왔다. 이곳을 신시라 하며 이분을 환웅천왕이라 한다. 풍백·우사·운사를 시켜 곡식과 임금의 명과 형벌과 질병과 선악 등 인간의 360여 가지 일을 맡아 다스리게 하여 세상을 이치에 맞도록 교화하여 인간을 널리 유익하게 하였다” “배달은 환웅이 하늘을 열면서 얻은 호칭이다. 도읍한 곳은 신시이며 뒤에 청구로 옮겨 18세를 이어 전하였다. 역년은 1565년이다”라고 한다.

<삼성기 하>는 18세에 걸친 임금(환웅)의 이름과 역년도 소개하고 있다. <태백일사>는 <진역유기> <삼성밀기> <삼한비기> <조대기> 등 고대 사서와 중국 사서를 인용했음을 밝히면서 배달국의 역사를 상세히 소개하고 있다. 첫 임금인 환웅천황의 건국기, 태고문자의 시작, 치우천황의 탁록대전 등을 기록하고 배달국의 시작인 신시의 개천으로부터 18세를 이어 1565년이 지나 고조선을 건국한 단군왕검이 일어났다고 한다. 

<삼성기 상·하>와 <태백일사> 등의 기록은 고조선 건국 이전에 배달국이 존재했고 다수의 임금이 대를 이었으며 도읍지가 처음에 신시에서 청구로 옮겼다고 하는 고대국가의 존재를 설명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중국 랴오닝성과 내몽골 자치구 일대에서 발견된 고조선 이전 문화인 홍산문명은 이 일대에 존재했던 고대문명과 고대국가에 대해 엄청난 역사적 사실을 증거하고 있어 주목을 끌고 있다. 홍산문화에 대해서는 후에 다시 기술하겠다.

한편 배달국 기록과 관련해서 ‘치우천황’을 빼놓을 수 없다. 치우천황은 고조선 건국 이전에 동북아에 존재했던 나라의 통치자로 알려져 있다. 치우천황에 대해서는 중국 사서에도 기록들이 있다. 한나라 무제 시대의 사관 사마천(BC 145~BC 86)은 중국 역사 25사의 첫 시작인 <사기> 의 <오제본기>에서 “치우가 반란을 일으키고 황제의 명을 따르지 않자 황제가 제후들의 군사를 징발하여 탁록의 들판에서 치우를 사로잡아 죽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유명한 ‘탁록대전’에 대한 내용인데 치우천황과 전쟁했다는 황제 헌원은 중국 신화에서 삼황(三皇)에 이어 중국을 다스렸다는 오제(五帝)의 첫 번째 왕이다.

<사기>에 담긴 치우천황

치우상이 담긴 귀면와.<국립중앙박물관>

 

 

이 외에도 중국 사서에 치우에 대한 많은 기록이 있다. <사기>를 비롯한 <관자> <태평어람> <산해경> <후한서> 등에서는 ‘치우의 형제가 81명이며 몸은 짐승이나 사람 말을 하였다’ ‘구리머리와 쇠로 된 이마를 가졌다’ ‘모래와 돌을 먹었다’ ‘칼·창·큰 활 등 병장기를 만들었다’ ‘쇠를 제련하여 창 등 무기를 만들었다’고 전해오는 이야기와 치우 무덤의 존재 위치, 제사 관례를 기록함으로써 치우가 실존 인물이며 철제무기로 무장한 군대를 이끌고 중국과 전쟁을 한 이민족 국가의 통치자라는 것을 밝히고 있다.

<삼성기 하>는 18대 환웅 중 14번째 환웅인 치우천황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또 몇 대를 지나 자오지환웅이라는 분이 있었는데, 신령스러운 용맹이 있어 크게 뛰어났다. 구리 머리에 쇠 이마를 하고 큰 안개를 일으켰으며 구야를 만들어 광석을 캐고 쇠를 녹여 병기를 만들었다. 이에 천하가 크게 두려워했다. 세상에서는 이를 치우천황이라고 한다. 치우는 천둥 치고 큰비가 내려 산하를 바꾸어 놓는다는 뜻이다. 치우천황이 염제신농이 쇠해 가는 것을 보고 큰 뜻을 품고 자주 서쪽으로 군사를 일으켰다. 또 색도로부터 군사를 진격시켜 회대 사이의 땅을 점령하였다. 헌후가 일어나자 즉시 탁록들로 나아가 헌원을 사로잡아 신하로 삼았다. 뒤에 오장군을 서쪽에 보내어 고신을 쳐서 공을 세우게 하였다. 이때 천하는 셋으로 대치하고 있었다. 탁록의 북쪽에는 대요가 있고 동쪽에는 창힐이 있고 서쪽에는 헌원이 있었다. 서로는 자기의 병력을 가지고 이기고자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처음에 헌원이 치우보다 늦게 참전했기 때문에 싸울 때마다 불리하여 대요에 의지하려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또 창힐에 의지하려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다음은 <태백일사>에서 밝히는 황제 헌원과의 탁록대전의 내용으로, 중국 사서 내용과 전쟁 결과가 다르다.

“천황은 먼저 항복한 장수 소호를 시켜 탁록을 포위하게 하여 멸망시켰으나 헌원은 그래도 굴하지 않고 끝까지 싸우고자 하였다. 천황은 구군에 동원령을 내려 네 길로 나누어 진격하게 하고 스스로 보병과 기병 3000명을 거느리고 곧장 헌원과 탁록 유웅들에서 계속 싸웠다. 이때 군사를 풀어 사방으로 조여 들어가게 하여 베어 죽이기를 수없이 하였다. 또 큰 안개를 일으켜 지척을 분간할 수 없게 하고 싸움을 독려하였다. 적군은 두려움에 손을 떨며 목숨을 걸고 도망쳤다. 100리 사이에는 적의 병마를 볼 수 없었다.”

“치우천황이 군대의 진용을 정비하여 사면으로 진격한 지 10년 동안 헌원과 싸운 것이 73회나 되었다. 그런데도 장수들은 피로한 기색이 없었고 군사들은 뒤로 물러설 줄 몰랐다. 뒤에 헌원은 여러 차례 싸워 천황에게 패하고도 더욱 군사를 크게 일으켰다. 심지어 우리 신시를 본받아 새로운 무기와 갑옷을 만들고 또 지남거를 만들어 백번이나 싸움을 걸어왔다. 이에 천황은 불같이 노하여 형제와 종친에게 싸움준비에 힘쓰도록 하고 위세를 떨쳐 헌원의 군사가 감히 싸울 뜻을 갖지 못하게 하려고 한 판 크게 싸워 한 개의 진을 여지없이 무찌른 뒤에야 싸움을 그쳤다. 이 싸움에서 우리 장수 치우비가 공을 급히 세우려 하다가 불행히 진중에서 죽었다. <사기>에서 치우를 사로잡아 죽였다는 것은 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

<규원사화>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남아있다.

“이때 헌원이란 사람이 유망이 패하여 달아나고 치우 씨가 제위에 올랐다는 소식을 듣고 대신 임금이 되고자 했다. 헌원은 군사를 일으켜 치우 씨에게 도전했다. 치우 씨는 탁록들에서 헌원을 맞아 크게 싸웠다. 이때 군사를 풀어 사방을 치니 죽은 자가 헤아릴 수 없었다. 또 큰 안개를 일으켜 적군의 마음이 흐려지고 손이 떨려 급히 달아나 겨우 목숨을 건졌다.

치우가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사기> 등에서 ‘구려(九黎)의 임금’ ‘구려임금의 호칭은 치우’라고 하고 있다. 즉 중국과 전쟁한 이민족 국가의 통치자로 인식하고 있다. 한국학중앙연구원 박성수 명예교수는 고조선의 역대 단군이 치우를 만고의 무신(武神)으로 우러러 제사를 지냈고 중국조차 산둥성 궐향성에 있는 치우의 능에서 매년 제사를 올렸다는 기록이 있다 한다. 그는 또 귀면와의 도깨비상 주인공은 치우상이며 한국인이 국난이 있을 때마다 우러러 숭상하던 한국인의 장군상이자 병신(兵神)이라고 한다.

중국, 동북공정으로 배달국 역사 삼킨다


치우천황은 탁록대전이 기원전 2600년경의 사건이기 때문에 실존했다면 고조선 이전 인물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탁록대전에 관한 역사 기록은 고조선 이전에 동북아에 국가가 존재했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는 것이다. 고조선조차 신화로 치부해 버리는 우리의 기존 역사 인식의 틀에서는 배달국을 실존 역사로 받아들이기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중국은 달라진 태도를 보이고 있다. 그동안 역사 시대를 기록이 남아있는 주나라 시대인 기원전 9세기경으로 보다가 동북공정을 시작하면서 ‘하상주단대공정(夏商周斷代工程)’을 통해 이제는 하나라의 시작을 기원전 2070년으로 설정했고 치우와 황제가 전쟁을 벌인 탁록대전을 기원제 2600년 전에 있었던 역사적 사실로 인정했다.

1995년 베이징 인근 탁록현에 귀근원(歸根苑)이라는 절을 세우고 중화삼조당(中華三祖堂)이라는 사당을 지었다. 이 사당에는 치우, 황제, 염제의 상이 나란히 앉아 있다. 원래 중국인들은 염제, 황제를 자기들의 조상으로 하여 ‘염·황 후예’라고 해왔다. 중국 하남성 정주시에는 2007년 20년이라는 대역사 끝에 염황 이제(二帝)의 조각상이 세워진 바도 있다.

그러나 역사 공정의 진행 과정에서 동이족의 왕이자 한민족의 조상인 치우천황을 염제·황제와 함께 중화문화의 공동 시조로 영입해 버렸다. 우리가 기원전 24세기에 존재했던 고조선을 신화로 인식하고 있는 사이에 고조선 이전 배달국 시대에 활약했던 동이족 지도자를 중국인의 조상으로 둔갑시켜 버린 것이다. 물론 이러한 역사 공정의 배경은 황하문명 등 중국이 주장해온 그들의 고대 문명보다 훨씬 앞선 시기에 꽃피웠던 홍산문화의 유적이 내몽골, 랴오닝 성 일대에서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김석동 지평인문사회연구소 대표
출처 : 인사이트코리아(http://www.insightkorea.co.kr)

 

 

입력2008.10.03. 오후 8:48  수정2008.10.03. 오후 9:16

 

 

 

2008/03/17

한국고대사를 새로 쓰는 사람들의 주장:플러스 코리아(Plus Korea)

 

≪pluskorea≫ 한국고대사를 새로 쓰는 사람들의 주장

고대우리민족사에대한관심이날로증폭되어가고있다.그것은중국의동북공정과함께일본이조선침략후역사적인열등감을감추기위해36년간반도사관으로치

www.pluskorea.net

 

한민족의 고대사의 범위는 [12환국]으로 대변되는 유라시아 대륙 전체이다
 
[자료]고대 중국 문헌이 증언하는 고대12환국
 
한국(桓國)과 한국의 12 연방국(聯邦國) 실체 ㅡ 위치 1편  


 
고대 중국[진서(晉書)-사이전(四夷傳)]에서 전한다. 

 

裨離國在肅愼西北  馬行可二百日  領戶二萬  養雲國去裨離馬行又五十日  領戶二萬
비리국재숙신서북  마행가이백일  령호이만  양운국거비리마행우오십일  령호이만
 
寇莫汗國去養雲國又百日行  領戶五萬餘  一群國去莫汗又百五十日  計去肅愼五萬餘裡
구막한국거양운국우백일행  령호오만여  일군국거막한우백오십일  계거숙신오만여리

해설:"비리국은 숙신의 서북쪽에 있는데 말을 타고 200일을 가며 가구의 수는 2만호이다.양운국은 비리국에서 또 말을 타고 50일을 가며 가구의 수는 2만호이다. 구막한국은 양운국에서 50일을 가며 가구의 수는 5만여호이다. 일군국은 구막한국에서 150일을 가야하는데 이를 계산해보면 숙신에서 5만여리를 가야하는 거리이다."  

고대12환국의 위치를 기록하고 있는 고대 쥐나의 지도-상세보기는 지도클릭

 

숙신(肅愼)은 파나류산(派奈留山) 아래 파나류국을 일컫는 말로 곧 한국(桓國)을 뜻하는 것이지만 한국(桓國)의 12연방국 중 본국(本國)을 의미한다. 즉 천해의 동쪽 땅에 하늘나라에서 내려오신 한인(桓因)께서 처음으로 세상을 여신 곳이다.
 
숙신의 원음(原音)은 조선(朝鮮)이라고도 전하는데, 진서(晉書)에 기록하기를 12연방국중 4곳의 나라 이름과 대략적인 위치와 거리를 기록하고 있다. 진서는 당나라 태종(이세민)때인 서기 644년 편찬된 책이며, 한인(桓因)께서 세상에 내려오셔서
한국(桓國)을 여신지 7840 여년이 흐른 후의 기록이다.진서가 만들어진 서기 7세기경 당시에는 숙신(肅愼)은 흑룡강성과 연해주 일대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이곳 숙신으로 부터 말을타고 서북쪽 방향으로 200일 가면 12연방국중 하나인 비리국(裨離國)이 있다고 전하는 것으로 보아 7세기 까지 비리국과 관련된 국가나 혹은 후손들이 끊어지지않고 연결이 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진서(晉書) 에서 전한다.
肅愼氏一名邑婁  在不咸山北  去夫餘可六十一行  東濱大海  西接寇漫汗國
숙신씨일명읍루  재불함산북  거부여가육십일행  동빈대해  서접구만한국
 
北極弱水  其土界廣무數千里
북극약수  기토계광무수천리
 
해설:"숙신씨는 일명 읍루라 하는데 불함산 북쪽에 있으며 부여에서 60일을 가야한다. 동쪽은 큰 바다에 닿았으며 서쪽은 구만한국에 접해있고 북쪽으로는 약수에 닿았다. 그 땅의 경계는 넓고 길어 수천리에 이른다."
 
숙신과 읍루는 모두 한국(桓國)을 지칭하는 것이며, 불함산은 현재의 백두산이라고도 전한다. 부여(夫餘)는 해모수 단군이 건국하셨던 북부여(北夫餘)를 가리키는 듯하고, 약수(弱水)는 현재의 흑룡강 즉 아무르(Amur)강 이다.
 
진서(晉書)가 편찬된 시대는 서기 644년이지만, 그 역사서의 내용은 동진(東晉)과 서진(西晉)의 역사인 서기 3세기부터 서기 5세기때가지의 내용을 기록하고 있다. 때문에 진서(晉書)의 기록에 보이는 대부분의 지명(地名)은 그 당시의 지명이거나 혹은 수 세기 앞선 지명으로 봐야한다. 물론 수 백년동안 혹은 수 천년동안 변하지 않는 지명(地名)도 있을 수 있으나 거의 대부분 지명 등 명칭은 국가나 땅을 지배했던 민족(民族)들에 의해 변경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오랫 옛적 한국이 세워질때의 흑수(黑水)와 약수(弱水)는 각각 다른 강이었으나 후세의 배달국(培達國)이 세워지면서 모든 강과 산의 지명이 동쪽으로 배달국(培達國)을 따라 이동하였고 약수와 흑수는 같은 강으로 인식되어진 것이다.
 
따라서 진서(晉書)에 기록된 약수(弱水)는 흑수(黑水)와 같은 강으로 인식되어졌으며, 오늘날의 흑룡강(黑龍江)이다.
 
서기전 7199년 안파견(安巴堅) 한인께서 세우신 한국(桓國)이 3301년의 세월이 지난 후, 그 뒤를 이어서 거발한 한웅(居發桓 桓雄)의 신시(神市) 즉 배달국(培達國)이 건국되었으며 지명(地名)의 이름이 같아도 그 위치가 달라졌으니 후세의 자손들이 한국(桓國)과 신시(神市) 즉 배달국(培達國)을 분리하지않고 하나의 역사로 보았기 때문이다.
 
물론 지위리 한인(智爲利 桓因)의 뒤를 이어 거발한 한웅께서 건국한 신시 배달국(神市 培達國)이므로 같은 역사라고 인식하는 것도 큰 무리는 아닐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한국(桓國)은 한인께서 천산에 거주하시면서 파내류산 아래 천해의 동쪽땅에 세우신 나라이고 신시 배달국은 거발한 한웅께서는 한국(桓國)의 뒤를 이어 삼위태백(三危太百)의 지역(地域)에 건국하신 나라이니 현재의 지도상 위치로 보면 한국(桓國)과 신시 배달국(培達國)은 약 4,000km 정도의 거리 차이가 있다.
 
즉 한국(桓國)으로 부터 동쪽으로 4,000km 정도 떨어져서 신시배달국(神市 培達國)이 세워진 것이다.



[자료]'한단고기'가 증언하는 12환국과 신시배달국
 

한국(桓國)과 한국의 12 연방국(聯邦國) 실체 ㅡ 위치 2편
 
[한단고기-삼성기(三聖記)]에서 전한다.

日降童女童男八百  於黑水白山之地  謂之桓國
일강동녀동남팔백  어흑수백산지지  위지한국
 
해설:"어느날 동녀동남 800명이 흑수 백산의 땅에 내려왔다. 이를 한국이라고 한다."
 
後桓雄氏繼興  奉天神之詔  降于白山黑水之間
후한웅씨계흥  봉천신지고  강우백산흑수지간
 
해설:"뒤에 한웅씨가 계승하여 일어났다. 천신의 뜻을 받을어 백산과 흑수의 사이에 내려왔다."
 
흑수(黑水)와 백산(白山)은 한국시대(桓國 時代)때의 기록과 더불어 한웅(桓雄)의 신시 배달국의 기록에도 같은 지명(地名)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한국(桓國)시대 때의 흑수(黑水)와 백산(白山)은 신시 배달국(神市 培達國) 때와 비교하면 지명은 같으나 위치(位置)는 전혀 다른 곳이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한국과 신시 배달국의 역사를 후손들이 동일(同一)한 한 역사로 보았기 때문에 흑수와 백산을 같은 지역으로 당연하게 생각한 오류에서부터 시작되었다.
 
현재 흑수(黑水)는 흑룡강성과 러시아의 국경을 따라 흐르는 흑룡강(黑龍江) 즉 아무르(Amur) 강으로 인식하는 것이 일반적 견해이다. 또한 백산(白山)은 현재의 백두산 또는 강원도에 위치한 태백산(太白山) 혹은 북경 서남쪽 섬서성(陝西城) 서안(西安 고대의 장안長安)의 서쪽에 있는 태백산(太白山)으로 보는 등 여러 갈래의 견해가 있다.

그러나 여러 사서(史西)들의 기록에 나오는 한국시대의 흑수(黑水)와 백산(白山)은 한웅시대 즉 신시 배달국(神市 培達國)의 흑수(黑水) 백산(白山)과는 전혀 다른 곳임을 알아야한다.
 
앞서 수 차례 언급한 바와 같이 한국(桓國)은 파나류산(派奈留山) 아래에 즉 현재의 천산산맥과 발하슈 호수를 포함한 지역이고, 한웅의 신시 배달국은 삼위태백(三危太百)의 지역으로 바이칼 호수와 흑룡강 그리고 대흥안령산맥, 소흥안령산맥, 장백산맥으로 포함한 지역이기 때문에 한국과 신시 배달국은 서로 전혀 다른 지역에서 건국한 각각의 나라이기 때문이다.
 
한국(桓國) 시대의 흑수(黑水)와 백산(白山)을 살펴보면,
 
흑수(黑水)는 현재의 내몽고 자치구와 감숙성 동부 지역에 있는 위치한 고원(固原)의 북쪽에 있는 강이다. 또한 감숙성 북서부 지역인 장액(張掖)의 부근에는 약수(弱水)도 있다.

사기(史記)에서 전(傳)하기를 고원(固原)의 북쪽에 흑수(黑水)가 있으며, 북쪽으로 흘러가 대하(大河)에 유입한다고 하였다. (又北有黑水 北流入於大河) 즉 흑수는 고원을 지나 황하(黃河)로 흘러가는 강이다.

백산(白山)은 중앙 아시아에 위치한 키르기스스탄(Kyrgyzstan)과 카자흐스탄 그리고 신강 위구르 자치구(新疆維吾爾族自治區)지역 사이에 위치하는 천산산맥(天山山脈)의 수 많은 봉우리 중 한 봉우리 또는 천산산맥에 속하며 항시 눈이 덮여있는 봉우리 전체일 것임에 틀림없다.

백산(白山)은 말 그대로 하얀 설산(雪山)을 일컫는 말로, 빙하(氷河 Glacier)가 덮여있으므로써 연중 어느 시기에 보아도 하얀 모습을 드러내는 산이므로 빙하가 생성되는 최소 3,000m 이상의 고봉(高峰)일 것이다. 현재 천산산맥의 최고봉은 포베다산(7,439m)이며, 평균고도 3,000m~4,000m 이상의 고봉들로 이루어져있다.


한웅의 신시 배달국(神市 培達國)에서의 흑수(黑水)와 백산(白山)을 살펴보면, 흑수(黑水)는 흑룡강(黑龍江) 즉 아무르(Amur)강이며, 흑룡강성과 러시아의 국경을 따라 오호츠크해로 들어가는 강이다.
 
백산(白山)은 현재 흑룡강성의 하얼빈 동쪽 통하(通河)의 북쪽에 있는 평정산(平頂山)이다. 원래의 이름은 태백산(太百山)인데 후에 백산(白山)으로 산명(山名)이 바뀌었고, 다시 현재에 이르러서는 평정산(平頂山)으로 불리우는 산이다.

[자료]유전자 분석으로 보는 한민족

한국인은 대부분 남방의 농경문화 민족에서 그리고 일부는 북방의 유목·기마 민족에서 비롯돼 ‘이중의 민족기원’을 지닌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또 한국인과 몽골인이 유전적으로 매우 가깝다는 최근 다른 연구결과와 달리, 한국인은 유전적으로 중국 베이징 한족과 만주족, 일본인과 매우 가까운 것으로 분석됐다.이 연구결과는 지금까지 한국인의 민족기원과 관련한 연구 가운데 가장 오랜 기간에 걸쳐 가장 많은 표본집단을 대상으로 이뤄진 것이다.
 
김욱 단국대 교수(인류유전학) 연구팀은 “한국인을 비롯한 중국·일본·베트남·몽골 등 동아시아 11개 민족집단에서 1949명의 유전자를 조사·분석한 결과 한국인은 북방계보다는 주로 남방계에서 비롯한 것으로 나타났다”며 “그러나 북방계도 뚜렷해 ‘이중의 민족기원’ 현상이 두드러진다”고 밝혔다.
 
이런 결과는 저명한 국제학술지 〈휴먼 지네틱스〉에 발표됐다.연구팀은 이번 연구를 위해 세대가 바뀌어도 변하지 않고 고스란히 유전되는 두가지 염색체의 디엔에이(DNA)를 이용해 민족의 기원과 이동을 추적했다. 하나는 아버지에서 아들한테만 전수되는 ‘와이(Y) 성염색체’의 디엔에이이며, 다른 하나는 난자 세포에만 존재해 모계로 전수되는 미토콘드리아 디엔에이다. 김 교수 연구팀은2001~2003년 한국과학재단 지원으로 11개 민족 738명의 와이염색체를, 2002~2003년엔 8개 민족 1211명의 미토콘드리아 염색체를 비교 분석해 이런 결과를 얻어냈다.먼저, 와이염색체를 분석한 결과는 ‘한국인의 원류는 북방 민족’이라는 세간의 인식과 크게 다른 것이어서 눈길을 끈다.김 교수는 “16만년 전 아프리카에서 출현한 현대인(호모 사피엔스)은 6만~8만년 전 다른 대륙으로 이동하기 시작했으며 이주 집단의 한 갈래가 2만~3만년 전 아시아 남쪽으로 가는 과정에서 와이염색체에 돌연변이를 일으켜 ‘엠(M)175’라는 유전자형을 지니게 됐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라며 “이번에 Y염색체를 비교해보니 한국인 75%에서 이런 유전자형이 발견됐다”고 말했다.
 
한국인10명 가운데 7, 8명이 아시아 남쪽으로 이동하던 2만~3만년 전의 집단과 동일한 와이염색체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또한 몽골인을 뺀 동아시아인 대부분에서 엠175 유전자형은 주류를 이루는 것으로 조사됐다. 연구팀은 이런 사실은 엠175 유전자형 집단이 중국 중북부인 황허·양쯔강 유역에서 농경문화를 이룩해 인구의 대팽창을 일으키면서 5천년 전쯤 한반도와 다른 아시아 남부로 퍼져나갔다는 유전적 증거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번 연구에선 중국 중북부 농경민족을 비롯한 동남아시아의 남방계와 별개로, 한국인에선 몽골·시베리아 북방계 와이염색체의 유전자형(20%)도 발견됐는데, 이는 남방계가 대규모로 옮아오기 이전에 알타이산맥이나 시베리아 바이칼 주변에서 빙하기를 피해 남하한 집단이 먼저 존재했음을 보여주는 증거로 풀이된다. 

 

결국 “지금의 한국인은 한반도에 먼저 들어온 일부 북방계와, 대규모로 이동해 들어온 남방계 농경민족이 섞여 이뤄졌다”는 것이 연구팀의 결론이다.이와 함께 연구팀은 이번 11개 민족집단의 비교분석을 통해, 2300년 전쯤 농경문화를 전한 야요이족이 한반도를 통해 일본 본토로 이주했다는 유전적 증거도 발견됐다고 덧붙였다. 한국인이 주로 중국 중북부 농경문화에서 비롯했다는 와이염색체의 분석결과는 이 연구팀이 따로 벌인 미토콘드리아 디엔에이의 분석결과와도 대체로 일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김 교수 연구팀의 결론은 ‘한국인과 몽골인은 유전적으로 매우 가깝다’는 최근 다른 연구팀의 연구결과와 달라 논란을 일으킨다. 
 
김종일 한림대 교수(생화학교실)는 ‘한국인 66명과 몽골인 72명의 미토콘드리아 디엔에이를 분석한 결과 두 민족은 유전적으로 매우 가까운 것으로 나타났다’는 중간 연구결과를 밝힌 바 있다.이와 관련해 김 교수는 “우리는 한국·몽골인 사이의 유전적 관련성만을 연구한 것이며 연구방식에서도 큰 차이가 있다”며 “이런 점에서 다른 결론이 나온 것 같다”고 말했다.

 

 

송호수 교수 2008/03/09

˝빛은 동방에서 !˝-한민족의 뿌리 사상:플러스 코리아(Plus Korea)

 

≪pluskorea≫ ˝빛은 동방에서 !˝-한민족의 뿌리 사상

최근일본학자오향청언(吾鄕淸彦)씨가쓴책을보면이런말이적혀있습니다.사마천의'사기'(史記)25권은단군조선이중원대륙을지배했었다는역사적인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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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4/12

˝천해(바이칼) 동쪽˝의 나라 환국(桓國):플러스 코리아(Plus Korea)

 

≪pluskorea≫ ˝천해(바이칼) 동쪽˝의 나라 환국(桓國)

2만년전지금의서해가육지였다고밝히고있는2004년호주시드니대학고고학센터연구보고서그림역사적으로한반도를중심으로중국대륙의산동지역.만주.연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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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0/05

유네스코는 한반도-만주를 '문명시원지'로 공식화해야:플러스 코리아(Plus Korea)

 

≪pluskorea≫ 유네스코는 한반도-만주를 '문명시원지'로 공식화해야

전제:유네스코는공식적으로현인류문명의시원지을한국으로인정.발표해야한다일본왕실의뿌리는백제인들임을주장하는[KoreanImpactonJapaneseCulture]라는책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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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고산숭배신앙을 가진 고대 한국인들의 나라 한국과 배달국의 역사활동의 중심지역

 

▲ 한국.배달국.단군조선 발상지 요하지역&nbsp;- 중국의 황하.중동지역의 슈메르 문명의 발원지.


서해 마고지역이 바다가 되면서 마고 대다수는 거리가 가깝고 땅이 비옥한 한반도지역으로 대거 이동하여 '한(환)을 의미하는 태양숭배와 모계중심의 마고문화를 그대로 계승하여 정착하였다. 그래서 단군3조선 중에서 한반도지역을 마한.마조선이라고 불리운 것이다.그리고 훗날 부여(고구려.백제),흉노.선비족(신라.가야) 등 기마부대를 통하여 한반도.일본지역의 마한족을 지배하게 되는 북방계 한국인들의 조상이 되는 황궁씨는 북쪽지역으로 계속 이주하여 요하를 거쳐 바이칼호수와 시베리아 지역에서 유목생활을 하다가 온화했던 시베리아 지역의 날씨가 추워지자 다시 남하하여 조상인 황궁.유인씨의 터전인 요하지역으로 이주하여 모계중심의 마고문화를 가지고 살고 있던 곰족과 융합하여 배달문명을 낳고 단군조선을 낳은 것이다.

 

단군조선이전에 배달문명이 자리한 요하지역를 역사의 중심무대로 삼고 있었던 배달국과 한국의 중심산은 요하지역의 천산.태백산이었지 백두산은 아니였다.
 
한인씨가 살고 있던 파나루산은 천산(하늘산)으로 지금의 요하지역의 한산(罕山 1929m), 혹은 서한산이라고 부른다. 선비족의 동족인 오한족의 근거지가 되는 오한산(烏桓山)이라고도 했다. 서한산의 정상에는 평지가 있고, 그 중앙에는 홍지수(泓池水)라는 연못이 있는데 천지(天池)라고도 불렀다. 홍지수가 홍익인간의 뿌리라는 의미일까? 태백산에는 조천지(朝天池)가 있다고 했는데 지금 백두산 천지로 생각할 수 없다. 백두산 천지는 기원전 200년의 폭발로 생겨났기 때문이다.
 

시베리아 지역에서 요하지역(흑수.백산)으로 이주해 온 한인씨.한웅씨
 
[한단고기]에 보면 "우리 한(桓)의 건국은 이 세상에서 가장 오랜 옛날이었는데 한 신이 있어 사백력(斯白力:지금의 시베리아)의 하늘에서 홀로 변화한 신이 되시니 밝은 빛은 온 우주를 비추고 큰 교화는 만물을 낳았다. 오래 오래 살면서 늘 쾌락을 즐겼으니 지극한 기(氣)를 타고 노닐고 그 묘함은 저절로 기꺼웠다. 모습없이 볼 수 있고, 함이 없으면서 모두 이루고 말 없으면서 다 행하였다. 어느 날인가 동남동녀 800이 흑수 백산(白山)의 땅에 내려 왔는데 이에 한님(桓因)은 또한 감군(監郡)으로서 천계(天界)에 계시면서 돌을 쳐 불을 일으켜서 날음식을 익혀 먹는 법을 처음으로 가르치셨다. 이를 한국(桓國)이라 하고 그를 가리켜 천제한님(天帝桓因)이라고 불렀다. 또한 안파견(安巴堅)이라고도 했다. 한님은 일곱 대를 전했는데 그 연대는 알 수가 없다."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내용의 요지는 시베리아 지역에서 한인씨가 흑수 백산의 땅으로 이주해 왔다는 것을 기록하고 있는 내용이다. 한국의 위치에 대해서도 [한단고기]는 "천해 동쪽 파나루산 아래 한국이 있는데, 모두 12나라며, 동서 2만리 남북5만리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천해는 바이칼 호수를 의미한다. 따라서 바이칼 호수 동쪽에 위치한 한국의 중심지는 파나루산(하늘산=한산)아래 요하지역에 위치했음을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한인씨는 시베리아 지역에서 살다가 기후변화로 인하여 남하하여 요하지역에 중심지을 정하여 마고문명을 계승한 한문명을 일으켰으며 유라시아-아메리카 지역에 영향을 주었다는 의미가 된다.
 

▲&nbsp;한인.한웅족이 시베리아.바이칼호수에서 남하하여&nbsp;터전을 삼은 역사활동의 중심지 요하지역


계속해서 한웅씨의 이주와 배달국에 대한 [한단고기]의 기록을 보자."뒤에 한웅(桓雄)씨가 계속하여 일어나 천신(天神=한인=광명신을 받은 하느님)의 뜻을 받들어 백산과 흑수 사이에 내려왔다. 사람 모이는 곳을 천평에 마련하고 그곳을 청구(靑邱)로 정했다. 천부의 징표를 지니시고 다섯 가지 일을 주관하시며 세상에 계시면서 교화를 베푸시니 인간을 크게 유익하게 하였더라. 또 신시에 도읍을 세우시고 나라를 배달이라 불렀다." 내용을 보면 한웅씨족은 한인씨족임을 알 수 있고 교통의 중심지를 천평으로 정하니 천평이 바로 청구라는 것이며, 신시를 도읍으로 삼고 나라이름을 배달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배달민족이라고 할 때는 한웅의 배달국을 기준으로 삼는 말이며 단군민족이라고 할 때는 단군한국조선을 기준으로 삼는 말이니 한인의 한국민족이나 한웅의 배달민족이나 단군의 단군민족이나 조선민족이나 모두 동일한 유라시아 전역에 분포되어 있는 한겨레를 의미하는 말이다.


이러한 [한단고기]의 기록을 토대로 한인씨의 터전은 바이칼 호수와 몽골초원을 통하여 완만한 홍안령 산맥을 넘어 요하지역으로 이주해 오기 전까지는 기후가 온화해서 유목생활하기가 좋았던 시베리아 지역이였음을 알 수 있고, 기후가 추워지자 따뜻한 남쪽지역으로 이주하여 정착한 종족이 바로 한인씨의 후예 한웅족임을 알 수 있으며, 고고학적으로도 중국 황하문명의 근원이며, 이집트.아즈텍 피라미드 연대보다 1천년이 훨씬 넘는 초기 석석총들이 널려 있고, 서양문명의 뿌리가 되는 슈메르문명의 근원이라고 할 수 있는 요하문명의 중심지가 되는 요하지역이 한웅족이 정착한 지역이라 할 수 있으며, 그 중심산은 현재의 백두산이 아닌 요하지역의 태백산 지역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천산지역은 서해지역에 위치한 마고성이 점점 바다가 되면서 마고족이 사방으로 뿔뿔히 흩어질 때에서 마고의 율려를 반드시 회복하겠다며 북문을 통하여 천산지역으로 이주하여 도를 닦았다는 황궁씨의 터전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양심의 자유율법(율려)이 통했던 마고시대의 도맥을 계승한 황궁씨는 유인씨의 조상이고 유인씨는 한인씨의 조상이다. 율려국가란 예컨대 주인없는 가게라도 양심적으로 돈을 내고 물건을 가져 가는 사람들의 나라를 의미한다.
 
3.고고학적 사료(위서로 취급받는 '한단고기'의 기록내용을 고고학적으로 증명해 주는 작업이 필요하다)
 
고고학적 자료로는 한인씨의 한국의 중심지역과 관련한 파나루산이 있던 부하진은 인류 최초의 복골(卜骨)이 출현한 유적지가 있다. bc3300년의 유적이라고 밝혀졌으니 은나라의 복골은 이보다 1000년 뒤의 것이다. 또한 주변 고성터의 흔적을 보면 bc3300년 이전의 유물과 유적 발견도 기대된다. 뒤에 흉노에 패망한 동호족이 이곳으로 이주해 와서 오환산, 혹은 선비산이라고도 하였다. 선비족이 터전으로 삼은 오환산주변 지역에 대한 고고학적 발굴작업은 한인씨가 한국의 중심지로 삼았을 지역의 실체를 밝히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권대익기자입력 2012. 6. 18. 20:17수정 2012. 6. 18. 23:41

"9000년 전 한민족이 세운 환국이 인류문명의 뿌리" (daum.net)

 

"9000년 전 한민족이 세운 환국이 인류문명의 뿌리"

"인류 문명은 9,000년 전 한민족의 시원(始原) 조상인 환족이 세운 환국(桓國)에서 시작됐습니다. 중국과 일본, 서양의 잘못된 역사관에 오염된 강단 사학자들의 안목으로는 이 같은 역사의 제대

v.daum.net

 

 

 

2014-07-01

9천년 한민족사-안경전 상생방송 이사장의 『환.. : 네이버블로그 (naver.com)

 

 

2017.08.24

[민속이야기] 칠월칠석 - 견우와 직녀는 ‘인류시조 나반과 아만’ 설화  - 천지일보 (newscj.com)

 

 

2016.10.12

개천절은 역사 왜곡이다? - 인천in 시민의 손으로 만드는 인터넷신문 (incheonin.com)

 

 

 

 

송준희교수 환국

2014. 9. 10.

https://youtu.be/7BQlizvzv4g?list=PLRAmvpNm4pmlK0pL_6QCe3gXPm9VfISJz 

 

 

 

우리역사의진실_우리나라 최초의 나라 환국12연방_1편

2018. 11. 4.

https://youtu.be/KYutJjWLuPQ?list=PLRAmvpNm4pmlK0pL_6QCe3gXPm9VfISJz

 

 

환국은 어느 지역에 있었는가

2016. 9. 10.

https://youtu.be/t-i5Mo7gLpc?list=PLRAmvpNm4pmlK0pL_6QCe3gXPm9VfISJz 

 

 

환국의 영토 동서 2만리 남북 5만리는 어떻게 쟀을까?

2019. 1. 13.

https://youtu.be/w9GTJDPI-iM?list=PLRAmvpNm4pmlK0pL_6QCe3gXPm9VfISJz 

 

 

 

원방각을 해석할수 있는 문화원전이 환국의 신교우주론에서 나온 천부경

2017. 1. 11.

https://youtu.be/Kz19dV_07gA?list=PLRAmvpNm4pmlK0pL_6QCe3gXPm9VfISJz 

 

 

동이족의 어원은 퉁구스이며 아홉 개의 한국을 의미한다 | 김정민 박사와 함께하는 고대조선 3부

https://youtu.be/wa-a0sKUNrk

 

 

수메르문명에 대한 환단고기의 기록, 환국시대 우르국과 수밀이국이 있었다

2018. 10. 16.

https://youtu.be/Cm-TZuQx65Q?list=PLRAmvpNm4pmlK0pL_6QCe3gXPm9VfISJz 

 

 

<참고자료>

 

환국(국가) - 나무위키 (namu.wiki)

 

 

동이족 이야기 - 9000년 역사의 역대 왕계표 (siddham.kr)

 

 

우리민족의 역사는 9200년 전부터 시작 되었.. : 네이버블로그 (naver.com)

 

 

동아시아의 황해 : 네이버 블로그 (naver.com)

 

 

환국과 사서기록 : 네이버 블로그 (naver.com)

 

 

환국의 초기유적 : 네이버 블로그 (naver.com)

 

 

한(韓)민족의 고대국가 : 네이버 블로그 (naver.com)

 

 

동이유적지 : 네이버 블로그 (naver.com)

 

 

 

문무의 조선사 | 파내류산(波乃留山)=한날산(漢捺山)=천산(텡그리산)=파미르산. - Daum 카페

 

 

 

한국고대사 | 한국이 세계 최초인 것들 - Daum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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