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사라 력사를 찾아서
《환국-가사라국》 6. 환국과 신석기문화 (9)창녕 비봉리 유적 본문
《환국-가사라국》
6. 환국과 신석기문화(9)
6.9 창녕 비봉리 유적- 8000년 전~청동기시대(BC6,000년~청동기시대)
『비봉리유적의 신석기시대 출토유물로는 서기전 6000년경으로 추정되는 환목주(丸木舟)와 망태기를 비롯하여 다양한 토기류 및 석기류와 동물유체(사슴뼈·재첩·굴·꼬막·멧돼지뼈·개뼈·잉어 등), 식물유체(도토리·가래·솔방울·조·각종 씨앗류 등) 등이 있다. 이외에 청동기시대 유물로는 무문토기, 적색마연토기(赤色磨硏土器), 토제 어망추가 있다. ……
이 유적은 신석기시대 조기에서 전기(7,700 B.P. ~ 3,500 B.P.), 신석기시대 중기와 후·만기, 그리고 청동기시대까지 지속적으로 조성되었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창녕 비봉리 패총,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70975)
『사적 제486호(지정명칭은 창녕 비봉리패총). 경상남도 창녕군 부곡면 비봉리 44 일대로 창녕군의 남동쪽 끝자락에 위치한다. 창녕군은 전체적으로 북동쪽은 험준한 산맥이, 서남쪽은 낙동강이 경계를 이루고 있다. 동으로는 밀양시와 경상북도 청도군, 서로는 합천군과 의령군, 남으로는 창원시와 함안군, 북으로는 대구광역시 달성군과 접해 있다. 낙동강은 창녕군 남지읍 부근에서 지리산에서 발원한 남강과 합류한 뒤 방향을 바꾸어 동쪽으로 흐른다.
창녕군의 지세는 서쪽과 남쪽의 경계를 이루는 낙동강과 깊은 관련성을 가지는데, 북동쪽의 천왕산(해발 619.2m)에서 열왕산(해발 662.5m)을 거쳐 영취산(해발 739.7m), 종암산(해발 546.0m), 덕암산(해발 544.5m)으로 이어지는 산맥이 북동부에 높이 솟아 있고, 서남쪽은 이 산맥에서 낙동강을 향해 길게 뻗어 내린 능선과 구릉이 분포하고 있다. 또, 능선 사이에는 청도천, 길곡천, 온정천, 계성천, 토평천 등의 작은 하천이 흘러 낙동강에 합류한다. ……
발굴지점은 육성퇴적물과 수성퇴적물이 만나는 경계지점에 해당한다. 현재까지 확인한 층위는 모두 45개 층으로 Ⅰpit의 산 쪽에서는 기저역층과 암반을 확인하였다. 확인된 층위는 각 층의 특성을 기준으로 크게 3가지로 구분된다.
하나는 가장 위에 해당하는 1층에서 10층까지로, 근대의 경작층과 청동기시대 이후의 호소성 퇴적층이다. 주로 실트(Silt)가 중심을 이루고 소량의 Pebble이나 Cobble급의 자갈이 포함되어 있다. 즐문토기나 청동제 숟가락 편 등이 수습되었지만, 유구의 흔적은 확인되지 않았다.
다음은 육성퇴적층인 11층에서 18층까지로, Pebble급, Cobble급의 자갈이 다량으로 포함된 역석 층이다. 유적의 배후에 위치하는 산지에서 흘러내린 토석류들에 의해 작은 선상지를 이룬다. 11∼16층은 무문토기와 즐문토기가 포함되어 있고, 17층과 18층에서는 즐문토기만 확인되었다. 14층·15층·17층에서 소토유구가 확인되며, 17층에서 야외노지가 확인되었다.
마지막으로 19층부터 아래로는 Silt와 Sand층이 두텁게 퇴적되어 있는 층으로 조용한 호수상태에서의 퇴적을 보인다. Ⅰpit 산 쪽에는 육성퇴적물이 많아 Granule입자가 함께 뒤섞여서 퇴적되어 있지만, 대부분은 Silt가 중심을 이루고 있다. 모두 신석기시대에 해당하며, 야외노지·저장공·패층·부석층 등이 확인되었다.
저장공은 19층∼21층, 25층, 26층에서 확인되었다. 19∼21층은 층위상으로는 구분이 되지만, 후술할 황색산화층이 형성되어 있어 동일층으로 판단된다. 또 25층은 제1패층과 동일시기의 Silt+Granule층이다.
패층과 부석층은 25층, 31층, 34층, 39층, 41층에서 각각 확인되었다.
25층은 패각과 부석이 확인된 층으로 Ⅱpit와 Ⅳpit 일부에서는 패각이 중심을 이루는 제 1패층과 부석에 패각이 포함된 제1부석층으로 구분이 가능하지만, 대부분은 구분이 불가능하다.
31층은 제2패층과 2부석층에 해당하며, 25층과 퇴적양상은 비슷하다. Ⅰpit의 산 쪽에서는 기저역층과 연결되어 있다.
34층은 제 3패층과 3부석층, 39층은 제 4패층과 4부석층, 41층은 제 5패층에 해당한다. 39층은 Ⅳpit 북쪽에서 기저역층과 연결된다.
기저역층은 Ⅰpit와 Ⅳpit 북편에서 확인되었는데, Pebble급의 할석들이 두텁게 층을 이루고 있다.
유구로는 소토유구 7기, 야외노지 6기, 저장공 17기, 소형수혈 2기, 추정 주거지 2기, 다섯 층의 패층과 부석층이 확인되었다.
소토유구는 14층, 16층, 17에서 각각 확인되었다. 크기는 다소 차이가 있으며, 평면형태는 대부분 원형 또는 타원형이며, 부정형도 있다. 소토유구의 내부는 붉은색 또는 황색계의 점토로 목탄과 소토를 포함하고 있으며, 색에 의해 두 층으로 구분되는 것도 있다. 하지만, 소토유구는 굴착하여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불을 피우면서 토양이 불을 받아 산화되어 구분되어진 것이다. 따라서 소토유구 내 구분되는 토층은 불을 받은 정도에 따른 차이로 판단된다. 소토유구에서 유물은 출토되지 않았다. 하지만, 1호소토유구에서 서쪽으로 50㎝ 가량 떨어져 어망추 두 점이 확인되었는데, 청동기시대 토기와 공반되어 출토되는 어망추(14층)와 동일한 형태이다. 각 층위에서 출토된 유물의 양상을 고려해 볼 때, 14층과 15층에서 확인된 소토유구는 청동기시대의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17층에서 확인된 6호, 7호 소토유구는 신석기시대의 것이다.
야외노지는 모두 6기가 확인되었는데, 1호는 23층, 나머지는 17층을 파고 만들어졌다. 17층은 주로 Granule 입자와 Pebble, Cobble 급의 자갈이 다량 포함된 층이다. 남서에서 동북방향으로 호선을 이루는 등고선과 나란하게 배치되어 있다. 야외노지는 수혈의 깊이와 목탄의 유무에 따라 다음과 같은 두 가지의 형태로 구분된다.
‘가’형: 수혈의 단면은 U자상을 이루며, 내부에는 할석들이 2벌 또는 3벌 정도 깔려 있다. 할석 사이나 수혈 바닥을 따라 목탄이 확인된다. 1호∼4호 야외노지가 이에 해당한다.
‘나’형: 수혈을 파지 않고 집석한 것으로 할석은 1벌 깔려 있다. 목탄은 거의 확인되지 않는다. 5호와 6호 야외노지가 이에 해당한다.
저장공은 모두 18기가 확인되었다. 이 중 2기(14, 15호)는 25층을, 1기(17호)는 26층을 굴착하여 만들었다. 나머지 15기는 황색산화층(19층∼21층)에서 확인되었으며, 가장 남쪽의 1호에서 가장 북쪽에 위치하는 16호까지 남서∼북동방향으로 등고선의 방향과 나란히 열을 이루며 분포하고 있다. 저장공은 크기와 형태를 기준으로 크게 네 가지로 구분하였다. 먼저 규모에 있어 직경 100㎝를 기준으로 그 이상인 것과 미만인 것이 있다. 그리고 수혈을 아래로 갈수록 넓게 굴착한 것으로, 단면의 형태가 소위 플라스크형을 이루는 것과 단면이 수직 또는 ‘U’자상을 이루는 것이 있다.
저장공의 용도는 탄닌 제거시설 또는 단기간의 저장공간으로 추정되고 있다. 하지만 12호저장공에서 갈돌과 갈판, 11호 저장공에서는 파쇄된 도토리 껍질이 다량 확인되어 이러한 기능 이외에 가공공간으로서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 외에 Ⅱpit 중앙, 10호 저장공에서 남동으로 200㎝ 떨어져 위치하는 소형 수혈이 있다. 평면형태는 원형이며, 단면은 ‘U’자상이다. 24층을 굴착하여 만들었는데, 주변에서 확인된 저장공에 비해 소형이며, 내부에서는 소량의 도토리가 확인되었다. 다른 저장공과 크기, 구조, 내부 상태에 있어 차이를 보이고 있기 때문에 저장공은 아닌 것으로 판단된다.
주거지로 추정되는 유구 2기도 확인되었는데 2중 1기는 불에 탄 주거지로 압인문토기가 출토되어 남해안 신석기시대 전기(기원전 3000년경)의 것으로 판단된다.
비봉리유적의 발굴성과와 의의를 요약하면, 첫째 처음으로 조사된 신석기시대 저습지유적이라는 점이다.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조사된 신석기시대의 저습지유적으로서 해수면 변동에 의해 습지화된 환경에서 나무, 풀을 위시한 유기물(동물 뼈, 식물유체, 씨앗류 등) 등이 다량으로 출토되고 있어 지금까지 토기, 석기 중심의 신석기문화 연구에서 유기물을 통한 생업이나 생태계 연구와 복원을 추구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둘째, 신석기시대의 해수면 변동을 알려주는 자료라는 점이다. 규조분석 결과와 저장공의 위치 등을 통하여 후빙기(Holocene)의 어느 시점, 적어도 신석기시대의 이른 시기에는 낙동강 중, 하류 혹은 그 지류역(현재의 창녕, 밀양지역)까지 바닷물의 직간접적인 영향을 받았음을 알 수 있다.
셋째, 신석기시대 생계방식의 일면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다양한 유구와 유물이 확인되었다는 점이다. 시기를 달리하는 도토리 저장시설은 등고선 방향과 나란하게 열을 이루고 만들어져 있다. 이 구덩이들은 저장 공간으로서의 기능 외에도 도토리의 탄닌 제거시설 내지 함께 출토된 갈돌과 갈판의 존재에서 볼 때 가공 공간으로서의 기능도 상정할 수 있다.
또 신석기시대의 생계방식 중에서 채집(도토리, 가래, 솔방울, 조개), 어로(바다생물, 잉어), 사냥(사슴·멧돼지), 가축사육(개)의 구체적인 증거물이 확인되었다. 또한 탄화유기물, 토기 내면에 부착된 양파류의 탄화물 등 조리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음식물 자료를 확보하였다. 따라서 신석기시대의 식료획득, 저장(저장공), 가공(갈판과 갈돌), 조리(탄화물)의 모든 과정과 당시의 먹을거리를 구체화 할 수 있는 자료를 획득하였다.
넷째, 신석기시대 연구의 새로운 자료를 확보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 최고 혹은 최초로 밝혀진 유물이 많이 출토 되었다. 망태기, 목기, 화석화된 똥[糞石], 동물그림이 있는 토기, 통나무배[木舟]가 그것이다. 망태기는 두 가닥의 날줄로 씨줄을 꼬는 ‘꼬아뜨기기법’으로 만든 것으로 신석기시대의 편물기술을 알려주는 최초의 자료이다. 비록 일부만 남아 있지만, 일본의 산나이마루야마[三內丸山〕유적에서 출토된 망태기와 비견될만하다. 검형목제품(劍形木製品)은 신부(身部)만 잔존하고 있으며, 전면을 잘 다듬은 것으로 등날이 나 있는데 저장공에 사용되는 시설물일 가능성도 있다. 똥 화석은 시대를 불문하고 우리나라에서는 처음 출토되는 자료이다.
신석기시대 조기(기원전 4000년 이전)에 해당하는 동물그림은 형태가 물고기에 가까우나 등 부분에 돌기가 나 있고, 2개의 다리가 표현되어 있어 멧돼지로도 보인다. 머리 쪽에는 눈 또는 코를 나타낸 것으로 보이는 두 점이 찍혀 있고, 몸체에는 얕은 문살무늬가 채워져 있다. 부산 동삼동패총에서 출토된 사슴그림과 함께 신석기시대의 구체적인 동물그림 자료이다.
통나무로 만든 배는 소나무를 단면 ‘U’자상으로 파내 만들었는데, 신석기시대의 배로는 최초의 것으로 약 8000년 전의 것이다. 이는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배로 알려진 도리하마[鳥浜] 1호나 이키리키[伊木力]유적 출토품보다도 약 2000년 이상 오래된 것이다.
다섯째, 신석기시대의 표준유적으로서의 위치를 갖는다는 점이다. 모두 10개의 문화층이 확인되었으며, 신석기시대 조기와 전기의 각 문화층 사이에는 상대적 서열을 분명하게 구분해 주는 간층이 존재하고 있다. 따라서 ‘층위의 역전’ 현상으로 시기를 달리하는 문화층이 혼재되어 편년에 어려움을 겪었던 다른 패총유적의 편년을 재검토하고, 남해안 일대 신석기시대 유적편년의 새로운 기준이 된다.
그 밖에 비봉리유적의 발견과 발굴은 낙동강 중, 하류역 패총유적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발굴조사 후 비봉리 일대의 지표조사를 통하여 8개소의 패총유적을 새롭게 확인하는 성과를 거두기도 하였다.(임학종)』
(출처; 문화유산 연구지식포털, 한국고고학전문사전, 신석시시대편, 비봉리유적,
https://portal.nrich.go.kr/kor/archeologyUsrView.do?menuIdx=795&idx=826)
(출처; 국가문화유산포털,
https://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ccbaCpno=1333804860000&pageNo=1_1_1_1)
『비봉리빌굴 신석기시대 배, 학계 술렁
경향신문 입력 2005. 09. 05. 18:14 수정 2005. 09. 05. 18:14 댓글 0개
김해박물관이 5일 경남 창녕군 비봉리 유적에서 발굴한 국내 최고의 신석기시대 배가 고고학계를 흥분시키고 있다.
8,000여 년 전 소나무로 제작된 이 통나무배는 어로생활 등 신석기시대 초기의 생활상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된다. 특히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드문데다, 정교하게 가공된 배는 원시적이고 미개하다는 신석기시대에 대한 기존의 통념을 깨고 당시 기술수준이 생각보다 훨씬 높다는 것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이날 현장을 찾은 정징원 부산대 교수는 "신석기인들은 물에서 먹거리를 찾는 등 물과의 관계가 밀접했다"며"이번 배는 추측만 하던 것을 눈앞에 실제로 보여줘 놀랍다"고 밝혔다. 정 교수는 "배를 다룬 솜씨로 볼 때 당시의 기술수준이 상상 외"라며 "이 배는 고기를 잡거나 이웃집단과 교류하는 데 활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발굴단에 따르면 배는 지금의 지표에서 6m 깊이, 해수면보다 2m가량 낮은 곳에서 확인됐다. 고고학적으로는 신석기시대 초기의 지층이다.
김해박물관 임학종 학예실장은 "일부만 발굴돼 아직까지 배와 관련된 다른 유물·유구는 확인되지 않았다"며 "앞으로 유물, 유구가 나올 가능성도 높다"고 덧붙였다.
이 배는 특히 세계적으로도 출토 유례가 드물다. 배 유물이 많은 일본의 가장 오래된 배 도리하마 1호(신석기시대 유적에서 출토)보다 2,000년이나 앞서는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 세계적으로는 중국의 신석기시대 것 외에 이집트, 터키 등에서 선사시대 배나 배 관련 유물이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배는 경주 안압지 배다. 이 배는 8~9세기 통일신라시대 것으로 현재 경주박물관 안압지관에 복원, 전시 중이다. 이후 완도선, 십이동파도선(11세기)과 안좌도선, 달리도선, 나주선 등 11~14세기 고려시대 배가 있다. 배는 그 재료가 목제라는 특성으로 인해 쉽게 훼손돼 유물로 남아 있는 경우가 드물다. 임실장은 "이 배도 공기가 차단된 뻘 속의 저습지 유적에 있었기 때문에 지금까지 남아있을 수 있었다"고 전했다.
한편 발굴단은 유적의 중요성을 감안, 추가발굴을 위한 국비지원을 요청한 상태다. 정징원 교수는 "지금까지 발굴지역은 극히 일부로 앞으로 이 유적에서 얼마나 더 중요한 유물이 나올지 모른다"며 "그만큼 기대가 큰 유적"이라고 밝혔다. 〈도재기기자 jaekee@ kyunghyang.com〉』
(출처; 경향신문, 비봉리빌굴 신석기시대 배, 학계 술렁, https://news.v.daum.net/v/20050905181414941?f=o)
『"8천 년 전 신석기시대 배 1척 더 있다"
연합뉴스 입력 2008. 09. 18. 10:13 수정 2008. 09. 18. 10:27 댓글 82개
국립김해박물관 비봉리 유적 정식보고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2004년부터 경남 창녕군 부곡면 비봉리 44번지 일대 신석기시대 저습지 유적을 발굴 조사하던 국립김해박물관은 이듬해 9월5일 놀라운 성과를 내놓았다. 8천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 신석기시대 나무 배 1척을 발굴했다는 내용이었다.
이로부터 3년 정도가 흘러 더 놀라운 사실이 추가로 공개됐다. 당시 조사에서 건져낸 신석기시대 통나무배는 1척이 아니라 2척이라는 것이다.
발굴조사 완료 이후 그 유물 정리를 해온 김해박물관(관장 임학종)이 2004년 6월30일 이후 8월4일까지 진행된 시굴조사와 그 해 11월30일에 시작해 이듬해 8월23일에 끝낸 비봉리 유적 발굴성과를 정리한 정식 보고서 '비봉리'(飛鳳里)를 18일 발간했다.
이를 통해 기존에 공개한 Ⅱ지구 제2 피트 제5 패층(貝層. 조개무지가 쌓인 층) 아래에서 출토된 목선 외에도 또 1척의 소나무를 가공해 만든 신석기시대 배 1척이 있다는 사실을 공개했다.
2호 배로 명명한 이 배는 1호 배와 마찬가지로 수령이 많은 소나무를 단면 U자형으로 속을 파낸 이른바 통나무형 선박(환목주<丸木舟>)인 것으로 드러났다. 그 내부와 외부에는 돌도끼로 가공한 흔적이 발견되며, 배를 만드는 과정에서 생긴 것으로 추정되는 초흔(焦痕)이라는 불에 그을린 흔적이 곳곳에서 확인됐다.
현재 남은 규모는 길이 64.0㎝, 너비 22.0㎝, 두께 1.2~1.7㎝.
재질이나 모양 등의 여러 모로 보아 1호 배와 흡사했을 것으로 추정됐다.
상대적으로 보존 상태가 양호한 1호 배는 최대 길이 310㎝, 최대 폭 62㎝, 두께 2.0-5.0㎝로 역시 통나무(소나무) 속을 파내 만들었으며, 원래 길이는 400㎝를 넘었을 것으로 보인다.
금속기가 발견되기 전 선사시대 사람들은 통나무를 가공할 때 그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군데군데 목재를 불에 태우거나 그을린 다음, 석기로 깎아내고 다시 돌로 표면을 매끈하게 처리하는 방식을 구사했다.
경북대 임산공학과 박상진 교수에게 1호 배 목재 분석을 의뢰한 결과 수령 200년 가량 되는 소나무임이 밝혀졌다.
임학종 관장은 "이는 현재 한반도에서 확인된 가장 오래된 배이며, 100여 척이 넘는 일본 조몬시대 목주(木舟.나무배) 보다 시기적으로 앞서는 것으로서, 8천년 전으로 추정하는 중국 저장성 콰후차오(跨湖橋) 유적 출토 나무배와 더불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배로 기록된다"고 말했다.
이번 보고서는 비봉리 유적 발굴 성과로 ▲국내 최초로 신석기시대 저습지 유적을 확인했고 ▲후빙기 어느 시점에는 지금의 창녕과 밀양 지역까지 바닷물의 직간접적인 영향을 받았다는 해수면 변동 자료를 확보했으며 ▲신석기시대 생계방식을 구체적으로 복원할 수 있는 물질자료를 얻었다는 점 등을 꼽았다.
비봉리 유적은 배외에도 망태기, 칼 모양 목기, 똥이 화석처럼 굳어 생긴 분석(糞石), 멧돼지로 추정할 수 있는 동물 그림 등 국내 최고(最古), 최초로 기록되는 유물을 다량으로 쏟아냈다.
이런 성과에 힘입어 애초 홍수 예방을 위해 양배수장이 들어설 예정이던 비봉리 유적은 지난해 8월, 국가 사적 486호로 지정돼 보존되기에 이르렀다.
한편 이번 '비봉리' 발굴보고서는 판에 박힌 보고서 형식에서 탈피해, 발굴 및 유물 정리 과정 등에서 일어난 각종 일화까지 아울러 수록하는 파격을 시도했다. taeshik@yna.co.kr』
(출처; 연합뉴스, "8천 년 전 신석기시대 배 1척 더 있다", https://news.v.daum.net/v/20080918101305152)
『7000년 전 신석기시대 배 젓던 노 창녕서 발굴
동아일보 입력 2010-08-18 03:00업데이트 2010-08-18 03:00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노(櫓·사진)가 발굴됐다. 경남 창녕군 비봉리 패총(사적 제486호) 일대를 조사 중인 국립김해박물관은 “약 7000년 전인 신석기시대 노를 발굴했다”고 17일 밝혔다. 노는 2004년 1차 조사에서 8000년 전 배가 출토된 지점에서 동북쪽으로 9m 떨어진 장소에서 나왔다. 당시 배에 딸린 노는 발견되지 않았다.
노는 온전한 모습으로 발견됐으며 전체 길이 181cm, 자루 66cm, 물갈퀴 115cm. 김해박물관은 “비봉리 일대는 강물과 바닷물이 드나들면서 퇴적돼 수분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목제 노가 잘 보존될 수 있었다”며 “이번에 발굴된 노는 1차 조사에서 확보한 배와 함께 신석기시대 생활상 및 배와 노의 기원을 연구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강은지 기자 kej09@donga.com』
(출처; 동아일보, 7000년 전 신석기시대 배 젓던 노 창녕서 발굴,
https://www.donga.com/news/article/all/20100818/30576032/1)
『[한국의 인디아나존스들]기묘한 꿈 덕분인가… 논바닥에서 8000년 전 배가 떠올랐다
동아일보 창녕=김상운 기자| 창녕=김상운 기자
입력 2016-10-19 03:00업데이트 2016-10-19 16:06
<18> 경남 창녕군 비봉리 유적 발굴한 임학종 국립김해박물관장
“저 논바닥 보이죠? 이곳이 8000년 전에는 바다였습니다.”
14일 경남 창녕군 비봉리 유적 전시관 앞. 임학종 국립김해박물관장이 11년 전 발굴 현장을 내려다보며 확신에 찬 어조로 말했다. 이곳은 우리나라 최초의 신석기시대 나무배를 비롯해 첫 ‘똥 화석(분석·糞石)’, 멧돼지가 그려진 토기 등이 출토된 대표적인 선사 유적지다. 특히 여기서 출토된 나무배(비봉리 1호)는 기원전 6000년경 만들어진 것으로, 일본 조몬 시대 목선에 비해 2000년 이상 앞선다.
발굴의 ‘구루’들에게는 상서로운 꿈자리가 따르는 걸까. 백제 금동대향로 발굴 직전 아내가 용꿈을 꾼 신광섭 울산박물관장(본 시리즈 2회)처럼 2005년 발굴 당시 김해박물관 학예연구실장이던 임학종 역시 기묘한 꿈을 꿨다.
○ 우리나라 최고(最古) 나무배
비봉리 유적에서 출토된 신석기시대 ‘나무배’. 기원전 6000년경 만들어졌고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배다. 국립김해박물관 제공
“발굴을 위해 십자형으로 둑처럼 쌓은 곳에 돼지꼬리 모양의 끈이 달려 있는 꿈을 꿨어요. 느낌이 심상치 않으니까 뭔가 납작한 판이 나오면 발굴을 즉각 중단하고 내게 보고해 주시오.”
2005년 6월 초순 임학종은 김해박물관 조사원들에게 느닷없이 꿈 얘기를 꺼냈다. 그는 꿈에서 본 끈을 배를 접안시킬 때 사용하는 밧줄로 해석했다. 주변에서 온갖 물고기 뼈와 조개, 대형 어망추 등이 출토된 정황으로 미뤄볼 때 이곳은 수천 년 전 바닷가였다는 게 그의 판단이었다. ‘그렇다면 배도 나올 수 있는 거 아닌가.’ 그때까지 일본에서는 조몬 시대 나무배가 130척이나 출토됐지만 국내에서는 신석기시대 배가 나온 적이 없었다. 조사원들은 ‘더위를 드셨나…’ 하는 표정으로 그를 쳐다봤다.
하지만 그의 예감은 적중했다. 그달 24일 오후 3시 유적 북쪽 끝 개흙. 지표로부터 6m, 땅속의 가장 아래 패각층까지 드러난 지점에서 굴착기 기사가 “그만 파자”고 했지만, 임학종은 “혹시 모르니 한 번만 더 긁어 보자”고 채근했다. 삽날로 지면을 살짝 긁는 순간, 노란 선이 그의 눈에 확 들어왔다. 윤곽선의 형태가 예사롭지 않아 작업을 중단시키고 뛰어 내려갔다. 가까이에서 보니 나무판이 분명했다. “처음에는 활인 줄 알았어요. 그런데 개흙 속으로 손가락을 깊숙이 쑤셔 넣고 쭉 훑어봤는데 한참 미끄러져 내려가는 거야. 이 정도 크기의 나무판이라면 100% 배가 맞다고 확신했습니다. 순간 몸에서 전율이 일어납디다.”
발굴단이 1시간에 걸쳐 개흙에서 파낸 나무배는 길이 310cm, 너비 62cm 크기였다. 발굴단은 햇빛을 차단하기 위해 유적 위에 천막을 치고 나무배 전체에 중성지를 덮었다. 변조와 부식이 순식간에 일어나는 나무 특성상 현장에서의 보존이 관건이었다. 배에서 조그만 조각을 떼어냈다. 이 조각을 박성진 경북대 교수(임학)에게 자문한 결과 수령이 약 200년 된 소나무로 판명이 났다.
발굴단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급파된 목재 보존 전문가 2명과 함께 주변 개흙과 한꺼번에 퍼낸 나무배를 특수 제작된 나무상자 안에 넣고 무진동 특수차량에 실어 중앙박물관으로 옮겼다. 이 배는 올해로 12년째 보존 처리가 진행 중이다.
○ 첫 ‘똥 화석’ 찾아내려 지극정성
비봉리 유적에서 발견된 ‘도토리 저장 구덩이’(위쪽사진)와 ‘똥 화석’.
온전한 형태의 ‘도토리 저장 구덩이’ 87개를 무더기로 발굴해 낸 것도 큰 성과다. 이전에 발굴된 것들은 수도 적고 형태도 온전치 않아 정확한 기능을 규명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임학종은 이른바 ‘어깨선’(유적 조성 당시의 지층)을 찾는 데 성공해 저장 구덩이의 본래 크기를 밝힐 수 있었다.
신석기인들은 채집한 도토리의 떫은맛(타닌 성분)을 없애기 위해 소금기가 있는 바닷물에 일정 기간 보관한 뒤 먹었다. 바닷물이 드나드는 해안가에 구덩이를 판 이유다. 따라서 도토리 저장 구덩이의 개별 위치를 파악하면 신석기시대 당시의 해안선을 그릴 수 있다. 비봉리 일대 내륙이 신석기시대 바다였다는 사실은 자연과학 연구로도 입증됐다. 바다에서만 서식하는 규조(硅藻)류가 비봉리 토층에서 검출됐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처음 출토된 똥 화석도 의미가 작지 않다. 이른바 ‘화장실 고고학’이 발전한 일본에서는 똥 화석을 선사인의 영양 상태와 당시 식생을 파악하는 자료로 활용하고 있다. 임학종은 “우리나라는 왜 일본처럼 똥 화석이 나오지 않을까라는 궁금증이 늘 있었다”며 “비봉리 발굴 현장에서 퍼낸 모든 흙을 삼중(三重) 채로 일일이 걸러 똥 화석을 찾아냈다”고 말했다. 김상운 기자』
(출처; 동아일보, 〈[한국의 인디아나존스들]기묘한 꿈 덕분인가… 논바닥에서 8000년 전 배가 떠올랐다<18> 경남 창녕군 비봉리 유적 발굴한 임학종 국립김해박물관장〉, 2016년 10월 19일,
<참고자료>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창녕 비봉리 패총,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70975
문화유산 연구지식포털, 한국고고학전문사전, 신석시시대편, 비봉리유적,
https://portal.nrich.go.kr/kor/archeologyUsrView.do?menuIdx=795&idx=826
국가문화유산포털,
https://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ccbaCpno=1333804860000&pageNo=1_1_1_1
경향신문, 비봉리빌굴 신석기시대 배, 학계 술렁,
https://news.v.daum.net/v/20050905181414941?f=o
연합뉴스, "8천 년 전 신석기시대 배 1척 더 있다",
https://news.v.daum.net/v/20080918101305152
동아일보, 7000년 전 신석기시대 배 젓던 노 창녕서 발굴,
https://www.donga.com/news/article/all/20100818/30576032/1
동아일보, 〈[한국의 인디아나존스들]기묘한 꿈 덕분인가… 논바닥에서 8000년 전 배가 떠올랐다<18> 경남 창녕군 비봉리 유적 발굴한 임학종 국립김해박물관장〉, 2016년 10월 19일,
'지음 > 《환국-가사라국》' 카테고리의 다른 글
《환국-가사라국》 6. 환국과 신석기문화 (11)여수 안도패총 (2) | 2024.02.16 |
---|---|
《환국-가사라국》 6. 환국과 신석기문화 (10)부산 동삼동패총 (1) | 2024.02.16 |
《환국-가사라국》 6. 환국과 신석기문화 (8)양양 오산리유적 (1) | 2024.02.16 |
《환국-가사라국》 6. 환국과 신석기문화 (7)고성 문암리유적 (1) | 2024.02.16 |
《환국-가사라국》 6. 환국과 신석기문화 (6)라선 서포항유적 (0) | 2024.02.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