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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국/고려

4. 고려 문화유산 (5) 고려청자

대야발 2024. 9. 30. 1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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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918~1392)가 10세기 무렵 당시 최첨단 제품인 '자기' 제작에 성공한 것은 생활 문화 전반의 질적 향상을 가져온 혁신적인 계기가 됐습니다. 고려인은 불과 150여년 만에 자기 제작 기술을 비약적으로 발전시켜 고려청자의 독자적인 아름다움을 완성했습니다.

 

미술사학자 고유섭(1905~1944)은 그의 저서 '고려청자'(1939)에서 '화려한 듯하지만 그 속에는 여전히 따뜻하고 고요한 맛이 있다'고 고려청자를 평하기도 했습니다.

 

'비색'(翡色) 청자는 은은하면서도 맑은 비취색을 띤 절정기의 고려청자를 말한다. 중국 송나라 사신 서긍(徐兢·1091~1153)이 1123년 고려를 방문한 후 남긴 '고려도경'(高麗圖經)에는 당시 고려인이 청자 종주국인 송나라 청자의 '비색'(祕色)과 구별해 고려청자의 색을 비색(翡色)이라 불렀다고 기록돼 있습니다. 서긍이 고려 비색청자를 극찬한 내용도 있습니다.(8)

 

 

고려청자의 비색은 이후에도 시인·미술사가 등을 통해 고려청자의 아름다움을 상징하게 됐습니다.

월탄 박종화(1901~1981)는 시 ‘청자부’에서 고려청자를 “가을 소나기 마악 지나간 구멍 뚫린 가을 하늘 한 조각”이라고 했습니다.

최순우 전 국립중앙박물관장(1916~1984)은 비색을 “비가 개고 안개가 걷히면 먼 산마루 위에 담담하고 갓 맑은 하늘빛”에 비유하기도 했습니다.(9)

 

 

 

 
 
전남 강진군이 고려청자박물관에서 2024년 6월 11일 개막식을 시작으로 9월8일까지 '도자기에 핀 꽃, 상감청자'를 주제로 연 '국보순회전: 모두의 곁으로 Museum for you'에 나온 고려청자입니다.
 
 
 
 
[서울=뉴시스] 사진 왼쪽부터 청자 상감 모란무늬 항아리(고려 12-13세기, 국보, 높이 19.7㎝), 청자 상감 국화 넝쿨무늬 완(고려 12-13세기, 국보, 높이 6.2㎝). (사진=뉴시스 DB). photo@newsis.com

 

 

강진군은 도자기에 핀 꽃, 상감청자라는 부제로 고려청자박물관과 국립중앙박물관·국립광주박물관이 함께 전시를 준비했다.

국보로 지정된 '청자 상감 모란무늬 항아리' 외에 '청자 국화무늬 잔과 받침' '청자 상감 물가풍경무늬 매병' '청자 상감 국화무늬 잔'이 전시된다. 4건 4점의 유물로 소량이지만 모듈화된 최신 전시 연출 기법이 활용될 예정이다.

고려청자의 특징인 상감기법은 원래 표면에 무늬를 파고 그 속에 금이나 은을 넣어 채우는 장식기법이다. 고려시대에 세계 최초로 고려청자에 사용돼 전세계적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특히 국보 청자 상감 모란무늬 항아리는 고려 궁성이 있는 개성 인근에서 출토된 것이다. 고려청자 중에서 모란을 가장 정교하고 화려하면서도 사실적으로 묘사한 청자 항아리로 평가 받고 있다. 강진 청자요지에서 생산한 왕실 자기의 전형을 보여주는 유물이다.(1)

 

 

 

 

2024년 5월 12일부터 6월 2일까지 열렸던 포스코 창립 56주년 기념 특별전 '천기누설 고려비색(天機漏洩 高麗翡色)'에 나온 고려청자입니다.

이번 전시에 나온 60여 점은 국내에서 내로라하는 컬렉터 4인의 소장품입니다. 전시엔 순청자, 상감청자, 분청사기가 고루 나왔으며, 여기엔 '청자상감운학문표형주자' 등 국가지정문화재 보물 두 점도 포함돼 있습니다.

 

 

 

 
 
청자상감운학문표형주자(靑磁象嵌雲鶴文瓢形注子)와 승반(承盤). 국가지정문화재 보물. 고려시대 34.7x2.5x8.5com. [사진 포스코미술관]

맑은 비취색, 유려한 곡선미


전시장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맑은 비취색의 '청자상감운학문표형주자'다. 연꽃 위에 표주박 형태의 주전자가 앉아 있는 모습으로, 뚜껑까지 섬세한 연꽃 모양이다. 볼륨감 있는 몸체, 곡선미가 빼어난 손잡이, 절제 있게 새겨진 문양 배치가 고려청자의 정수를 보여준다는 평가를 받는다. 김윤희 포스코미술관장은 "고려청자 주자 중 몸체와 뚜껑, 승반을 모두 갖춘 작품이 드물어 미술사적으로 가치가 높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청자상감연판문매병(靑磁象嵌蓮瓣文梅 甁), 국가지정문화재 보물. 고려시대.31.9x4.4x11.2cm. [사진 포스코미술관]

 

한편 방병선 고려대 고고미술사학과 교수는 이번 전시에서 '청자상감연판문매병'을 이번 전시 제목 '천기누설, 고려비색'에 가장 걸맞은 작품으로 꼽았다. '청자상감운학문표형주자'와는 상반된 매력을 보여주는 것으로, 이 역시 국가지정문화재 보물이다. 방 교수는 "고려청자의 화려한 문양 중엔 학이 춤을 추거나 도사가 거문고를 켜는 풍경 등이 주로 보이는데, 이 작품은 매우 독특하게 보조 문양으로 쓰이던 연판문(연꽃의 꽃잎을 펼쳐 놓은 모양이 연속으로 이어진 것)을 주 문양으로 썼다"면서 "이를 사실적으로 표현하기보다는 대담하게 기하학적으로 표현한 점이 돋보인다"고 말했다. 흑백 상감의 대비도 눈길을 끈다.

방 교수는 "고려가 단순히 수입된 청자 기술을 토대로 중국식 청자 생산만 고집했다면 아직도 중국 청자의 아류로 남아 있었을 것"이라며 "고려 장인들은 청자 기술 수입 100년 후 독자적인 기술을 만들어냈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 작품도 그런 면모를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고려 장인들은 색조와 형태, 문양 등 여러 면에서 우리 미감에 맞는 청자를 만들어내기 위해 끊임없이 갈고 닦았다. 이런 독특한 작품이 나온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청자양각과문과형주자, 17.5 x4 x7cm. 고려시대, [사진 포스코미술관]

청자과형병 靑磁瓜形甁 高 23.5x 9x 8cm. [사진 포스코미술관][사진 포스코미술관]

청자상감죽학문매병 靑磁象嵌竹鶴文梅甁 高 33 x 5.5x 12.8cm[사진 포스코미술관]

 

이밖에 '청자양각과문과형주자'는 전체적으로 맑은 청록색으로 생동감 있게 새겨진 양각 문양이 눈길을 끈다. 몸체에 균일한 간격으로 세로로 열 한 개의 골이 패어 있으며, 몸체 전면에 새겨진 참외 넝쿨이 리듬감 있게 표현돼 있다. 세 가닥의 줄기를 꼬아서 제작한 손잡이까지 곡선이 유려하다.

'청자과형병'은 언뜻 단아한 멋이 돋보이는 화병으로 마치 8개의 잎으로 싸인 듯한 형태다. 담녹색에 맑고 투명하게 입혀진 유약이 아름다움을 더한다. 또 '청자상감죽학문매병'은 몸체에 커다란 대나무가 흑상감, 매화나무가 백상감으로 새겨져 회화성이 두드러진다.

'분청사기박지모란당초문편병', 19.9x5.3 x8.4cm.[사진 포스코미술관]

 

이번 전시엔 분청사기도 여러 점 나와 있어, 화려함을 내세웠던 청자가 고려 말에 접어들며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엿볼 수 있다. 고려 말 청자의 길쭉한 병 모양에서 동그란 형태로 변화하며 실용성을 추구하게 된 사회 분위기를 보여준다.

방 교수는 "고려청자는 성형과 조각 솜씨, 비색을 내기 위한 도공들의 끊임없는 실험과 우수한 원료의 원숙한 사용 등이 합쳐진 고려 과학의 결정체였다"며 "그러나 몽골과의 전쟁과 정치·사회적 혼란, 왜국 침입 등으로 고려청자는 장식과 조형이 서서히 퇴색하고 변화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2)

 

 

 

문화재청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전남 목포시)가 한성백제박물관(서울 송파구)과 공동 개최하는 ‘바닷길에서 찾은 보물’ 전(3월 23일부터 5월 19일까지)에 나온 고려청자 80여점입니다.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와 한성백제박물관이 서해 태안 일대에서 수중 발굴된 고선박 유물들을 선보이는 기획전 ‘바닷길에서 찾은 보물’을 23일 한성백제박물관에서 개막한다. 사진은 보물로 지정된 주요 고려청자 전시품들이다.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제공

 

태안 대섬 앞바다에서 어부의 손에 주꾸미가 청자를 안고 건져 올려지면서 발굴조사가 벌어진 고려시대 고선박 ‘태안선’에서 나온 ‘청자 퇴화문 두꺼비모양 벼루’(보물). 울퉁불퉁한 두꺼비 피부를 흑백의 점으로 표현한 벼루로 국내 벼루 중 유일한 형태다.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제공
고려시대 고선박 ‘태안선’에서 나온 ‘청자 사자형 뚜껑 향로’(보물).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제공

 

두꺼비모양 벼루는 지금까지 확인된 유일한 형태의 벼루이며, 머리와 몸통·다리는 물론 울퉁불퉁한 피부를 검은색·흰색 안료의 점으로 표현하고 있다. 사자모양의 뚜껑을 한 청자 향로 2점은 서로 크기와 모양이 비슷하다. 큰 머리와 날카로운 이빨, 매서운 눈초리의 사자는 해학미까지 엿보인다. 발굴에 참여한 잠수사가 향로 뚜껑 1개를 도굴해 뒤늦게 원래 모습을 찾은 사연도 있다. 태안선에서는 발송처·수신처를 알려주는 목간(글씨를 적은 나무조각), 고려시대 많은 생활용품도 나와 주목을 받았다.

태안 마도 해역에서 발굴된 ‘마도2호선’은 전라도에서 거둬들인 곡물을 싣고 개경으로 향하다 난파된 고려 배다. 국화와 모란·버드나무·갈대·대나무 무늬를 상감하고 나비와 물새까지 그려 서정적 물가 풍경을 담아낸 ‘청자 상감국화모란유로죽문 매병 및 죽찰’, 연꽃줄기를 음각으로 표현한 ‘청자 음각연화절지문 매병 및 죽찰’은 배에서 발견돼 각각 보물로 지정됐다.

고려시대 선박 ‘마도 2호선’에 실려 있던 ‘청자 상감모란유로죽문 매병’. 물가 풍경을 상감한 매병은 매병의 제작시기와 용도를 알려주는 죽찰과 함께 발굴됐다.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매병들과 함께 나온 죽찰(글을 적은 대나무 조각)들은 매병의 제작 시기는 물론 매병이 고려시대에 술 만이 아니라 참기름이나 꿀 같은 고급 식자재도 보관했다는 사실을 알 수있게 한다.

‘마도1호선’은 곡물을 실어나르던 고려 배다. 1207~8년 사이 해남·장흥·나주 등에서 벼와 메밀·조·콩 다양한 곡식은 물론 각종 젓갈을 싣고 개경으로 가던 길에 좌초돼 지방 물품들이 중앙으로 이동하는 과정을 설명해준다.

‘마도4호선’은 2015년 발굴된 현존 유일한 조선 선박이다. 15세기 초 나주에서 한양 광흥창까지 세곡·공물을 싣고 가다 침몰했다. 배에서 나온 많은 물품표는 조선 초기 조운제도 연구에 중요한 자료다.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김성배 소장은 “지금까지 수중 발굴조사에서 태안 앞바다에서만 ‘태안선’을 시작으로 고려·조선시대의 ‘마도 1~4호선’ 등 5척의 고선박과 약 3만여 점의 다양한 유물이 나왔다”며 “이번 기획전을 통해 수중고고학과 해양 문화유산에도 큰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3)

 

 


 

국립중앙박물관이 발간한 '한국도자도록 제2집: 고려시대 상형청자2'에 따르면 동물이나 식물의 복잡한 모양을 본떠 만든 고려 상형 주자의 제작 기법을 새롭게 확인했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이 발간한 '한국도자도록 제2집: 고려시대 상형청자2'에 따르면 고려 상형 주자는 물레를 이용해 한 번에 성형하는 방식과 윗부분과 아랫부분을 따로 만들어 결합하는 두 종류의 주자 제작 방식으로 분석됐다. 특히 동물이나 식물의 복잡한 모양을 본떠 만든 주자의 경우, 물레로 한 번에 성형하기 어렵기 때문에 위아래를 결합한 것이 특징이다.

연꽃잎 대좌 위에 앉은 귀룡(龜龍) 형태인 '청자 귀룡 모양 주자'를 CT 3차원 형상 데이터 사진에서 보면, 상부인 등껍질과 하부인 연꽃잎 대좌를 각각 따로 만들고 내부를 다듬은 후 결합한 경계선이 선명히 보인다.

아랫단에 3개의 석류를 잇대어 놓고 위에 1개의 석류를 올려놓은 형태의 '청자 퇴하 석류 모양 주자' 역시 아래쪽 3개의 석류를 상·하부를 따로 만들어 붙였고 위쪽 1개의 석류도 같은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전체적으로 윗단과 아랫단을 결합한 후 물이 흐르는 통로를 내어 내부가 이어진 구조다. 

 

[서울=뉴시스] '청자 귀룡 모양 주자'(덕수5636), 고려 12세기, 높이 17.3㎝, 국보(왼쪽), 3차원 형상 데이터 사진(오른쪽) (사진=국립중앙박물관 제공) 2024.01.05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청자 퇴화 석류 모양 주자'(덕수2170), 고려 12세기, 높이 18.4㎝(왼쪽), 3차원 형상 데이터 사진(오른쪽) (사진=국립중앙박물관 제공) 2024.01.05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재판매 및 DB 금지

 

국립중앙박물관은 "최신 분석장비를 활용한 과학적 조사를 병행해 고려 상형청자의 뛰어난 조형성과 예술성을 한층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

책에는 박물관이 보관·전시 중인 고려 상형청자 가운데 주자, 연적, 인장, 베개, 묵호(먹물을 담는 그릇), 승반(주자를 받치는 그릇), 완(밥그릇), 필가(붓꽃이) 등 9가지 기종의 24건 36점을 대상으로 개요논고와 함께 상세한 설명, 사진, 실측도면, 컴퓨터 단층촬영(CT) 등의 과학적 조사 분석 결과를 수록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오는 11월 '고려시대 상형청자(가제)'를 개최할 예정이다. 한국도자도록은 PDF 파일로 제작되어 박물관 누리집에서 누구나 내려받아 볼 수 있다.(4)

 

 

고려청자 꼭 닮은 코카콜라병 주름치마 무늬

이광표 서원대 휴머니티교양학대학 교수2023. 2. 18. 10:01
 
[명작의 비밀]

● 기와집 20채 가격, 학 무늬 상감청자
● 고려 인종 소장품, 참외 모양 청자
● 일상 아름다움 담아낸 容器 청자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된 국보 청자 참외모양병. [동아DB]

1915년 코카콜라병 공모전에서 당선한 디자인(오른쪽) (코카콜라). 콜라병 하부가 청자 참외모양병 하부와 유사하다. [동아DB]
 
어느 외국인이 "한국의 아름다움을 대표하는 문화재는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아마 많은 사람이 "고려청자"라고 답할 것이다. 물론 고려청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백자 달항아리를 꼽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석굴암이나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 신라 금관과 팔만대장경, 조각보를 꼽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전통적 한국미의 대표작으로 가장 익숙한 것은 고려청자다.

그런데 청자도 그 모양이 무척 다양하다. 항아리, 주전자, 대접, 연적(硯滴) 등 아무런 무늬가 없는 순청자도 있고 고려청자 특유의 상감기법으로 무늬를 표현한 상감청자도 있다. 다양한 종류의 고려청자 가운데 과연 무엇을 한국미의 대표작으로 내세울 수 있을까. 사실 아름다움이라는 것은 지극히 주관적이다. 한국미의 대표작, 고려청자의 대표작을 거론하는 일도 주관적일 수밖에 없고 정답이 있기도 어렵다. 그렇기에 "고려청자의 대표작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은 우문이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이런 질문은 늘 사람들의 관심을 끈다.

구름학무늬매병과 간송 전형필

국보로 지정된 청자 상감 구름학무늬매병. [동아DB]

 
고려청자의 대표작으로 흔히 거론되는 것이 있다. 국보로 지정된 청자 상감 구름학무늬매병(靑磁象嵌雲鶴文梅甁·12세기·간송미술관 소장). 일제강점기 간송 전형필(澗松 全鎣弼)이 엄청난 재산을 바쳐 수집한 문화재 가운데 하나로,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고려청자일 것이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실물은 아니더라도 교과서나 미술책에서, 신문·잡지나 광고에서 한 번쯤 보았음직하다.

이 청자 상감 구름학무늬매병은 당당하고 유려하다. 높이는 41.7㎝로, 지금까지 전해 오는 고려청자 가운데 가장 큰 편에 속한다. 입 부분은 다소 작고 납작한 듯 보이지만 어깨는 씩씩하게 벌어졌고 그 어깨를 타고 S자 곡선이 몸통 아래쪽으로 시원하게 뻗어 내려온다. 표면엔 학과 구름을 상감기법으로 빼곡하고 정교하게 새겨 넣었다. 여러 개의 원 안에는 하늘로 날아오르는 학을, 원 밖에는 지상으로 내려오는 학을 배치했다. 학의 몸짓을 원 안팎에 상승과 하강으로 표현함으로써 생동감을 부여하면서도 질서정연한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고려인들의 고고한 정신세계를 세련된 미감으로 표현한 청자 명품이다.

 

이 청자 상감 구름학무늬매병은 전형필이 1935년 일본인 골동품상으로부터 2만 원을 주고 구입한 일화로도 유명하다. 당시 서울에서 가장 좋은 기와집 한 채가 1000~1500원이었다고 하니 2만 원은 실로 어마어마한 가격이었다. 청자매병 자체의 매력과 함께 간송의 스토리가 한데 어우러지면서 이 고려청자는 우리에게 더욱 친숙한 명품으로 자리 잡았다.

형태와 색감만으로 닿은 미의 극치

그런데 간송미술관의 청자매병 외에 언제부턴가 내 마음을 사로잡은 청자가 있다. 국보로 지정된 청자 참외모양병(靑磁瓜形甁·12세기·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이다. 이 청자 참외모양병은 일제강점기인 1910년대 고려 17대 임금인 인종의 무덤에서 출토됐다. '황통육년(皇統六年)'이라고 연대가 표기된 시책(諡冊)과 함께 발견됐다. 황통 6년은 1146년으로, 제작 시기를 가늠할 수 있기에 학술적으로도 가치가 높다.

고려청자 전성기인 12세기에 만들어진 이 청자 참외모양병은 이름 그대로 참외를 형상화했다. 몸체는 참외 모양이며 그 위로 목을 길게 붙이고 잎 부분을 여덟 장의 꽃잎으로 표현했다. 그 모습이 나팔꽃잎 같기도 하고 참외꽃잎 같기도 하다. 몸체의 아래쪽에는 치마 주름을 연상케 하는 굽이 연결돼 있다. 전체 높이는 22.7㎝, 입(병의 입구 부분) 지름은 8.4㎝이다.

이 청자 참외모양병은 전체적으로 우아하고 단정한 형태에, 투명하고 깊은 비색(翡色)이 두드러진다. 참외 모양의 몸체는 단순하지만 실제 참외처럼 생생하게 느껴진다. 오목하게 들어간 골 사이로 참외의 몸집이 팽팽하게 드러났다. 참외의 양감과 탄력이 두드러져 생동감이 넘친다. 이런 참외를 치마 주름 모양의 굽이 받치고 있으며 참외 몸체 위로는 여덟 장의 꽃잎이 아름답게 쫙 펼쳐져 있다. 참외와 꽃잎, 치마 주름이 한자리에서 만나 멋진 디자인을 완성했다. 몸통과 굽, 몸통과 주둥이가 서로 대비와 조화를 이루며 긴장감과 함께 경쾌함을 전해 준다.

이 청자 참외모양병엔 별다른 장식이 없다. 오직 형태와 비색만으로 승부를 걸었다고 할까. 그건 놀랍고도 대범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비색과 상감기법뿐만 아니라 단순한 듯 과감하고 세련된 조형미도 고려청자 미학에 중요하게 기여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영국인 손에서 간송이 구한 청자들

간송 전형필이 1937년 일본에서 활동하던 영국 변호사 존 개스비에게 사들인 청자 모자원숭이모양 연적. [동아DB]

 
실제 사물을 모티프로 삼아 과감하게 디자인한 고려청자라고 하면, 국보로 지정된 청자 모자(母子)원숭이모양 연적(12세기·간송미술관 소장)을 빼놓을 수 없다. 어미와 새끼 원숭이의 정겨운 모습을 형상화한 연적이다. 어미 원숭이는 새끼를 두 손으로 껴안고 있고, 새끼 원숭이는 머리를 뒤로 살짝 젖힌 채 오른손을 뻗어 어미의 볼을 만지고 있다.

새끼를 바라보는 어미 원숭이의 눈길은 사랑으로 가득하고 새끼 원숭이는 귀엽고 앙증맞다. 누군가는 "어미 원숭이가 새끼 원숭이를 안아주려고 하는데 새끼 원숭이가 두 손으로 밀쳐내는 모습"이라고 짓궂게 말하기도 한다. 그럴 수도 있겠다. 하지만 어미 볼을 만지는 것이든 어미를 밀쳐내는 것이든, 귀엽고 사랑스럽기는 매한가지다. 보는 이를 한없이 미소 짓게 하는 이색적인 명품이다.

 

청자 모자원숭이모양 연적은 일제강점기에 전형필이 일본에서 수집한 것이다. 전형필은 1937년 평소 알고 지내던 중간 골동품상으로부터 "일본에서 활동 중인 영국인 변호사 존 개스비가 귀국을 앞두고 고려청자를 처분하려 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전형필은 곧바로 일본으로 건너가 개스비를 만났고 그의 청자 컬렉션에 매료됐다. 전형필은 주저하지 않고 고려청자 명품 20여 점을 구입했다. 이 모자원숭이 연적을 비롯해 국보 청자 기린모양 향로, 국보 청자 상감 연못원앙무늬 정병(淨甁), 국보 청자 오리모양 연적 등이 이때 구입한 것들이다.

흙과 불이 만들어낸 참외꽃

참외 모양의 청자는 꽤 많다. 중국에서도 많이 제작했지만 색감은 물론 전체 조형미에서 국립중앙박물관의 청자 참외모양병이 단연 독보적이다. 참외와 꽃잎, 치마 주름의 크기와 비율이 가장 적절하게 조화를 이룬 덕분이다. 참외의 양감이 빈약하다면 전체적으로 균형감을 상실해 참외모양 병은 옹색하게 보일 것이다. 반면 참외가 너무 통통하다면 그 반대가 될 것이다. 그런데 이 청자 참외모양병은 지나치지도 않고 부족하지도 않다.

몸체 윗부분의 입과 목은 활짝 핀 나팔꽃 같기도 하고 참외꽃 같기도 하다. 참외라고 하면 먹을 줄만 알았지, 그 꽃이 어떻게 피는지 눈여겨본 적도, 생각해 본 적도 없다. 이 청자를 계기로 사진을 찾아봤다. 청자의 주둥이 꽃잎 부분은 나팔꽃 같기도 하고 참외꽃 같기도 하다. 다소 헷갈리지만 그래도 참외꽃이 아닐까 싶다. 이와 관련해 도자기 전문가인 정양모 전 국립중앙박물관장의 언급이 인상적이다.

"참외꽃이 예쁘게 피어나면 얼마 있다 꽃과 줄기 사이에 새끼손가락의 반쯤이나 될 듯한 참외가 달렸다가 참외가 조금 자라면 꽃은 이내 떨어진다. (…) 이 화병의 꽃잎은 꽃이 활짝 핀 바로 그 순간이거나 활짝 피기 바로 전 순간이라고 생각한다. 그 순간은 몇 초일 수도, 찰나일 수도 있을 것이다. 이 화병을 만든 사람은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은 가장 아름다운 그 순간의 모습을 가슴에 품어두었다가 이 화병의 꽃잎을 만든 것이다."(‘한국의 미, 최고의 예술품을 찾아서1-회화 공예'에 실린 정양모의 글)

정 전 관장의 글을 읽으면, 이 청자 참외모양병 입 부분의 꽃잎이 더더욱 애틋하고 아름답게 다가온다. 앞으로 언젠가 참외꽃을 유심히 눈여겨보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다. 그런데 이 꽃잎 가장자리는 상당히 얇게 처리됐다. 이는 고도의 기술을 요하는 대목이다. 정 전 관장의 글을 계속 읽어보자.

"청자는 불길에 지극히 민감하다. 불길 속(가마 속) 산소의 함량에 따라 비색 청자도 되고 황색 청자도 되고 갈색 청자도 된다. (…) 적정한 온도일 때는 작가가 원하는 형태가 되지만 불과 10도, 20도, 30도 차이에도 처지고 주저앉고 일그러지는 등 바라지 않는 여러 가지 상황이 전개된다. 더구나 이 화병과 같이 꽃잎이 얇은 경우에는 순간 온도 상승에 따라 처지고 말기 때문에 이와 같이 아름다운 꽃잎을 청자로 만든다는 것은 신기라고 할 수밖에 없고 결국은 바람과 불길이라는 자연에 맡길 수밖에 없다. 따라서 자연의 순리를 이해하지 못하고서는 이루어낼 수 없는 것이다."

일상에서 찾은 현대적 아름다움

국보 청자 참외모양병의 매력은 국보 청자 상감구름학무늬매병과 비교해보면 좀 더 선명해진다. 청자 상감구름학무늬매병은 육중한 곡선미와 정교하고 화려한 상감 무늬가 돋보인다. 당당하고 유려하다. 학과 구름이라고 하는 불교적이면서도 도교적인 요소를 차용함으로써 귀족적인 철학과 미감을 드러냈다. 고려의 미감과 정신을 청자로 구현한 것이다. 지극히 고려적이라고 할까. 그 고풍스러움이 다소 부담스럽게 다가오기도 한다.

청자 참외모양병의 미감은 청자 상감구름학무늬매병과 많이 다르다. 우선, 옛날 것 같지 않고 현대적인 느낌을 준다. 참외라고 하는 일상적인 사물을 디자인의 모티프로 삼았고, 그것도 별다른 장식 없이 단순하게 표현했다. 그래서 편안하고 부담이 없다. 그러면서도 세련된 형태로 경쾌함과 유쾌함을 발산한다.

일상의 요소를 절제된 미감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것은 현대적 미감과 통한다. 청자 상감구름학무늬매병에서는 발견할 수 없는 고려청자의 또 다른 미감이 아닐 수 없다. 청자를 잘 모르는 외국인이 이 청자 참외모양병을 보면 현대 공예로 생각할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인지 요즘 이 참외모양병을 변주한 미술품이나 참외모양병을 모티프로 삼은 문화상품이 많이 만들어지고 있다.

700년 세월 넘어 서로 닮은 코카콜라병과 청자

고려청자는 기본적으로 그릇이고 용기(容器)였다. 청자 참외모양병도 마찬가지다. 참외 모양 청자는 일상의 사물을 디자인의 모티프로 삼았다, 청자 참외모양병은 가운데 몸통이 볼록하고 아랫 부분은 주름치마 모양이다. 이런 형상을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코카콜라병이 떠오른다. 카카오 열매에서 영감을 받아 디자인했다는 코카콜라병은 특유의 초록빛 투명함과 곡선을 이룬 형태가 주된 특징이다. 1915년 처음 만들어진 코카콜라병은 청자 참외모양병과 많이 닮았다. 코카콜라병의 가운데 몸통 부분과 아랫부분이 특히 그렇다.

불세출의 음료 코카콜라는 1886년 탄생했다. 1년 뒤인 1887년 코카콜라 로고가 만들어졌다. 이 로고는 이후 하나도 변하지 않고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코카콜라병은 1915년 디자인됐다. 액체 음료를 좀 더 효율적으로 유통·판매하기 위해 코카콜라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병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1915년 코카콜라는 500달러의 상금을 내걸고 병의 디자인을 공모했다. 조건은 하나였다. 어두컴컴한 곳에서 만져도, 깨진 병 조각을 보고도 코카콜라병인지 알 수 있어야 한다는 점. 이때 미국 인디애나주 한 유리 회사에 다니던 디자이너와 직원 5명이 카카오 열매의 곡선을 차용해 코카콜라 병을 디자인했고 공모에서 당선했다. 코카콜라병은 투명한 초록빛이다. 이 색은 코카콜라를 생산하는 조지아주 애틀랜타의 푸른 자연환경을 상징한다. 그래서 코카콜라병의 색을 '조지아그린'이라고 한다.

당시 코카콜라병은 지금의 것보다 가로 둘레가 길고 통통했다. 우리의 청자 참외모양병과 비슷한 분위기다. 이후 콜라병은 조금씩 날씬해졌지만 기본 틀은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코카콜라의 로고와 병이 100여 년 전 초창기 디자인을 그대로 지켜내고 있다는 점이 놀랍고 흥미롭다. 코카콜라병은 작가들의 상상력을 자극하기도 했고, 예술 작품의 중요한 소재로 사용되기도 했다.

코카콜라병의 형태를 두고 여성의 치마에서 착안했다는 설도 있으나 사실이 아니다. 1910년대 유행한 호블 스커트(밑으로 내려갈수록 통이 좁아지는 치마)와 모습이 비슷해 호블 스커트 병이라고 불렸는데 이런 내용이 와전된 것이다. 어쨌든 코카콜라병의 아랫부분도 치마를 연상시키는 것은 사실이다.

엄밀히 말하면, 12세기 청자 참외모양병과 20세기 코카콜라병은 출현 상황과 맥락이 다르다. 그럼에도 묘한 유사점이 있다. 참외와 카카오 열매, 주름치마와 호블 스커트, 비색과 조지아그린…. 누군가는 청자 참외모양병과 코카콜라병을 비교하는 것에 고개를 갸웃할지도 모른다. 그렇다. 그럼에도 나는 비교해 보고 싶다. 비교를 통해 고려시대 참외 모양 청자의 매력을 확인해 볼 수 있다. 왜 이렇게 젊고 싱그러운지, 왜 이렇게 일상적이면서도 아름다운지, 왜 이렇게 단순하면서도 모던한 분위기를 담고 있는지. 이런 점은 코카콜라병에서도 발견할 수 있는 대목이다. 참 기분 좋은 비교가 아닐 수 없다. 이 또한 국보 청자 참외모양병의 명품 스토리로 기억되지 않을까.(5)

 

 

 

 

2022년 11월 23일부터 공개한 새로 단장한 국립중앙박물관 '청자실'이 ‘사유의 방’을 잇는 명소로 떠오르고 있다고 합니다.

청자실 개편은 2013년 이후 9년 만입니다. 국보 12점, 보물 12점을 포함해 총 250여점의 고려청자를 한 자리에 모았습니다.

 

 

12세기 고려청자 절정기에 탄생한 국보 ‘청자 투각 칠보무늬 향로’. 토끼 세 마리가 향로를 등에 지고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청자실'의 핵심 공간인 '고려비색' 방에서도 정중앙을 차지한 작품이다.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귀를 쫑긋 세우고 가지런히 발을 모은 토끼 세 마리가 무거운 향로를 등에 지고 있다. 천년 세월, 한결같은 자세로 받치느라 얼마나 허리가 아팠을꼬. 음각으로 그린 눈매와 검은 철화점 찍어 완성한 눈동자에선 영민함이 느껴진다. 12세기 고려청자 절정기에 탄생한 국보 ‘청자 투각 칠보무늬 향로’. 바닥에서 몸집의 몇 십 배를 지탱하는 세 토끼가 앙증맞은 ‘신 스틸러’다.

지난해 11월 새롭게 단장한 국립중앙박물관 ‘청자실’이 ‘사유의 방’을 잇는 명소로 떠오르고 있다. 가장 인기 있는 작품이 바로 이 청자 향로. 젊은 관람객들은 “계묘년 새해, 귀한 국보 토끼가 여기에 있다”며 비취색 영롱한 인증샷을 찍어 소셜미디어에 올리고 있다. 어두운 공간에서 명상하듯 청자에만 집중할 수 있어 “달멍(백자실 달항아리), 반가사유상멍(사유의 방)에 이어 청자멍”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국보 ‘청자 투각 칠보무늬 향로’의 바닥에 있는 토끼 세부 모습. 음각으로 눈매를 그리고 검은 철화점을 찍어 눈동자를 완성했다. /국립중앙박물관

 

◇비 갠 뒤 하늘빛 닮은 청자에 빠져들어

전시는 고려청자의 시작과 비약적 발전을 보여주며 그 문을 연다. 10세기 무렵 청자를 만들기 시작한 고려인들이 불과 150여 년 만에 고려청자의 독자적 아름다움을 완성하는 과정이 도입부에 한 줄로 펼쳐졌다. 이애령 미술부장은 “초기의 진한 올리브색에서 완벽한 비색이 나오기까지 150년에 응축된 열망과 실험을 상상할 수 있다”며 “폭발하는 창의적 에너지가 현대 한국에만 있는 게 아니었다”고 했다.

하이라이트는 ‘고려비색’ 방. 절정기 비색 청자 중에서도 조형미 뛰어난 상형 청자(식물·동물·인물 모양을 본떠 만든 청자) 18점을 엄선해 모았다. 어두운 방 안, 맑은 비취색 청자에만 조명이 떨어져 관람객을 압도한다. 한 30대 여성은 “하늘 빛깔 같기도 하고 오묘하게 빠져든다. 넋을 놓고 한참 바라봤다”고 감상을 남겼다. 특히 ‘청자 투각 칠보무늬 향로’를 비롯해 ‘청자 사자 모양 향로’ ‘청자 어룡 모양 주자’ ‘청자 사람 모양 주자’ ‘청자 귀룡 모양 주자’ 등 국보 다섯 점을 각각 독립 진열장에 전시해 사자 궁둥이까지 360도 돌며 감상할 수 있다.

비색 청자 중에서도 조형미 뛰어난 상형청자 18점을 엄선한 '고려비색' 방. 특히 '청자 투각 칠보무늬 향로' 등 국보 5점을 단독 진열장에 전시해 360도 돌며 감상할 수 있게 했다.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중국 송나라 사신 서긍(1091~1153)은 1123년 고려를 방문한 뒤 남긴 ‘고려도경’에서 “고려인들은 청자 종주국인 송나라 청자의 비색(祕色)과 구별해 고려청자의 색을 비색(翡色)이라 불렀다”고 썼다. 일찌감치 많은 예술인이 비색을 보며 감탄했다. 월탄 박종화는 고려청자를 “가을 소나기 마악 지나간 구멍 뚫린 가을 하늘 한 조각” 같다고 노래했고, 최순우 전 국립중앙박물관장은 청자의 비색을 “비가 개고 안개가 걷히면 먼 산마루 위에 담담하고 갓맑은 하늘빛”에 비유했다. 허형욱 학예연구관은 “사실 청자는 자연빛 아래서 보는 게 가장 아름답다. 실내 전시장에서 자연광과 최대한 가깝게 비색을 구현하기 위해 엄청나게 많은 조명·조도 실험을 했다”고 했다.

상형청자 18점을 엄선해 전시한 '고려비색' 방.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벽·소리·기포까지...디테일의 힘

전시장 곳곳에 디테일이 숨어 있다. 청자실에 들어서면 먼저 귀가 열린다. 미디어 아티스트 다니엘 카펠리앙이 작곡한 명상 음악 ‘블루 셀라돈(Blue Celadon)’이 잔잔하게 흐른다. 박물관 측은 “관람객들이 현실에서 벗어나 마음을 가다듬으면서 오롯이 청자와 마주할 수 있도록 소리로 먼저 다가가고 싶었다”며 “음과 음 사이에 긴 숨을 두는 곡을 찾다가 이 공간을 위해 새로 작곡을 부탁했다”고 했다.

벽에도 비밀이 있다. ‘고려비색’ 방 배경은 먼저 청록색으로 칠하고 그 위에 그물처럼 짠 검은 장막을 드리워 두 가지 색이 은은히 겹쳐 보이게 했다. 고려 불화에서 관음보살이 투명한 베일을 걸친 것처럼 고려의 느낌을 벽에까지 구현한 것이다. 국보 ‘청자 참외 모양 병’을 1억 화소 고화질로 찍은 영상에선 보글보글 올라온 기포까지 균일한 청자 표면을 확인할 수 있다.

국보 '청자 음각 연꽃 넝쿨무늬 매병'. 당당한 관능미가 느껴지는 12세기 작품이다. /국립중앙박물관

 

‘가장 섹시한 고려청자’도 인기다. 당당하게 벌어진 어깨에서 매끈한 곡선으로 떨어지는 국보 ‘청자 음각 연꽃 넝쿨 무늬 매병’을 가리키면서 이애령 부장은 “드라마 ‘슈룹’의 중전 김혜수처럼 기품 있는 관능미가 느껴지지 않느냐”며 “우리는 이 매병을 볼 때 시선이 위부터 아래로 내려가지만 도공의 손길은 밑에서 위로 차오른다. 곡선과 각도까지 치밀하게 계산해서 올렸다는 점에서 여간 명품이 아니다”라고 했다.

깨진 조각들도 전시장 한편을 차지했다. 전라북도 부안 유천리 가마터에서 수집한 상감청자 조각들이다. 파초 잎에서 쉬는 두꺼비, 왜가리가 노니는 물가 풍경이 묘사돼 있어, 자연을 사랑하고 동경한 고려인의 마음을 엿볼 수 있다. 박물관은 “개관 1년 만에 65만 관람객을 모은 ‘사유의 방’처럼 ‘고려비색’도 내·외국인들에게 박물관을 상징하는 공간으로 부상하고 있다”고 했다.(6)

 

 

 

청자 양각 용무늬 참외모양 매병. 전남 강진 사당리 가마터 출토 11편을 짜맞췄다. 일부 편이 공개된 적은 있지만 지금까지 발견된 모든 조각을 아래위로 다 붙여 전시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내부에 병 굴곡에 맞는 철제 틀을 별도로 제작해 지지했다. 지지대 중 청자의 무게가 실리는 곳은 투명 실리콘으로 완충해 조각이 상하지 않도록 했다. 정면에서 보면 깨진 청자가 스스로 서 있는 것처럼 보인다. 김정연 기자




자연광에서 제일 예쁜 색, '비색' 살리기

국보 청자 참외모양 병. 고려 인종 장릉에서 출토된 것으로 전해지며, 고려 왕실 청자의 품격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작품이다. 꽃을 꽂는 꽃병으로 추정된다. 김정연 기자

 


검은 방에 국보 5개 스포트라이트, '고려비색' 방

국보 청자 투각 칠보무늬 향로. 중국과 비슷한 요소가 전혀 없는, 고려에서만 발견되는 스타일의 유물로 가치가 높다. 토끼 세 마리가 맨 아래에서 향로를 받치고 있다. 김정연 기자

가장 강조한 공간은 전시장 가운데 배치한 ‘고려비색’ 방이다. 조명이 거의 없이 캄캄한 방에, 고려 청자의 진수로 꼽히는 상형청자(특정한 동물이나 사물의 형태를 본뜬 청자) 중 국보 5점, 보물 3점을 포함해 18개의 청자만 빛나도록 했다. 국보 청자 투각 칠보무늬 향로, 청자 사자모양 향로, 청자 어룡모양 주자, 청자 귀룡모양 주자, 청자 사람모양 주자 5점은 개별 진열장에 한 점씩 놓고 360° 각도에서 모두 관찰할 수 있게 했다. 귀룡모양 주자 등딱지에 쓰인 '왕(王)'자, 어룡모양 주자를 빙 둘러싼 비늘 조각이 유약 두께 차이로 다른 색을 띠며 늘어서 있는 모습 등도 가장 가까운 각도에서 볼 수 있다.

이 공간의 정중앙에 위치한 건 청자 투각 칠보무늬 향로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 중 대표 유물로 꼽히는 12세기 작품으로, 10세기 자기 제작을 시작한 고려가 200년이 채 되지 않는 기간 동안 청자 제작기술을 놀라울 정도로 발전시킨 성과를 보여준다.
강경남 학예연구사는 "위에 향 연기가 빠져나오는 부분은 하나하나 파낸 투각 기법을 썼고, 아래 꽃잎 하나하나는 틀에 찍어서 붙이는 등 고려청자를 만드는 다양한 기법을 볼 수 있는 유물"이라며 "청자나 도기류는 중국과의 교류로 영향을 받은 작품이 많은데, 이 향로는 고려의 고유한 스타일이고 중국을 비롯한 어디에도 유사한 작품이 없다"고 설명했다. 향로의 바닥에서 몸집의 몇십 배를 지탱하는 세 마리 토끼가 시선을 붙잡는다.

 


깨진 조각도 다시 보자… 용 무늬, 개구리 무늬 등 주목

청자 양각 용무늬 참외모양 매병. 용 4마리가 빙 둘러 입체적으로 새겨져있어, 고려 왕실에서 의례나 행사 때 사용했던 도자기인 것으로 여겨진다. 김정연 기자

온전한 상태가 아닌, 깨진 채 발견된 청자편(片)도 이번 개편의 주인공으로 나섰다. 왕실 도자기를 만들던 전남 강진의 가마터에서 발견된 청자 양각 용무늬 참외모양 매병은 깨진 조각 11개를 짜맞춰 세웠다. 일부 편이 공개된 적은 있지만 지금까지 발견된 모든 조각을 아래위로 다 붙여 전시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내부에 병 굴곡에 맞는 철제 틀을 별도로 제작해 지지하고, 청자의 무게가 실리는 곳은 투명 실리콘으로 완충해 조각이 상하지 않도록 했다. 정면에서 보면 깨진 청자가 스스로 서 있는 것처럼 보인다.

짜맞춘 부분에서 확인된 것 만으로도 용 4마리가 그려져 있어, 고려 왕실에서 사용한 병인 것으로 추정된다. 전남 강진 가마터는 고려 왕실의 도자기를 만들던 곳으로, 지금도 민간 업체가 발굴을 이어가고 있어 앞으로 조각이 더 추가될 가능성도 있다.

고려 시대 주요 가마터였던 전북 부안 유천리 가마터에서 발견된 청자편을 짜맞춰 전시한 모습. 잎이 넓은 파초, 두꺼비 등 다른 유물에서는 발견되지 않았던 희귀한 무늬들이 확인된다. 김정연 기자


또 다른 고려 시대 주요 가마터이자 상감청자의 본산지로 알려진 전북 부안 유천리 가마터에서 발견된 도자기 조각도 특이한 무늬를 담고 있다. 잎 넓은 파초, 두꺼비 무늬 등은 다른 유물에서는 확인할 수 없는 무늬다. 전시장에는 각 유물마다 상감 기법(무늬를 내기 위해, 표면을 파낸 자리에 다른 흙을 채워넣어 색을 내는 방법) 등 제작기법을 설명한 모식도도 있다.
허형욱 학예연구관은 "용도와 제작기법을 궁금해하는 관람객이 많아서 이해를 돕기 위해 기술적인 원리를 그림으로 풀어 설명했다"고 말했다.

국보 청자 상감 모란 넝쿨무늬 조롱박모양 주자. 다양한 상감 기법을 사용해 상감청자의 화려함을 대표하는 유물이다. 김정연 기자

 

청자 상감동화 포도동자무늬 주자와 받침의 일부. 그릇의 겉면을 무늬대로 파낸 뒤 다른 색의 흙으로 채워넣는 '상감' 기법과, 강조하고 싶은 부분을 구리 안료로 채색하는 '동화' 기법을 모두 써서 포도 무늬와 동자 무늬를 표현했다. 김정연 기자

 

청자 상감 소나무 인물무늬 매병. 악기를 연주하는 인물의 표정이 익살스럽다. 김정연 기자

"고려 청자는 우리나라의 자랑", 제 2의 '사유의 방' 염두

국보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 두 점만 전시한 '사유의 방'은 박물관 전시의 새로운 유형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으며 내국인과 외국인 모두에게 핫한 장소가 됐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이번에 개편한 청자실 '고려비색' 방도 사유의 방과 유사하게 작품에 집중하며 생각에 잠길 수 있는 공간을 의도했다고 설명했다. 사진 연합뉴스

고려 비색 방에는 별도로 작곡한 음향을 틀어, 시각과 함께 청각도 함께 즐길 수 있도록 했다. 지난해 공개 후 호평을 받은 '사유의 방'을 염두에 둔 구성이다. 이애령 부장은 "한국을 찾은 외국인들이 '사유의 방'을 꼭 가야할 곳으로 꼽듯이, 고려 비색 방도 박물관을 상징하는 공간으로 만들고자 했다"며 "고려 청자는 중앙박물관 만의 자랑이 아닌 한국의 자랑이고, 이렇게 훌륭한 청자가 많다는 걸 세계인에게 보여주고 싶었다"고 덧붙였다.(7)

 

 

 

청자 투각 칠보무늬 향로.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고려비색'에서는 비색청자 중에서도 비색과 조형성이 완벽하게 조화를 이룬 상형청자 18점(국보 5점, 보물 3점 포함)을 엄선해 공개한다. 세계적인 예술품으로 평가받는 상형청자 18점이 한자리에 모이는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다.

유천리 상감청자 조각으로 고려인의 자연관을 보여주는 연출공간.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이외에도 전북 부안 유천리 가마터에서 수집된 상감청자 조각들도 관람객과 만난다. 현재 조각으로는 남아있으나 완형의 예가 전하지 않는 유일한 것들이다. 이 상감청자 조각들에는 파초잎에서 쉬는 두꺼비, 왜가리가 노니는 물가 풍경 등 자연의 모습이 묘사돼 있다.

박물관 관계자는 "'고려비색'이 전달하는 메시지는 아름다움에 대한 공감과 마음의 평온"이라며 "자연을 사랑하고 동경했던 고려인의 마음, 그리고 그 마음을 구현한 고려청자의 아름다움을 느낌으로써 평온하고 고요한 휴식 한 조각을 얻을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청자 용머리 장식 붓꽂이. (국립중앙박물관 제공)(8)
 

 

 

고려 청자의 빼어난 미적 감각과 뛰어난 제작수준을 잘 보여주는 국보 ‘청자 투각 칠보무늬 향로’(고려 12세기, 높이 15.3cm, 왼쪽)와 전시장에서의 전시 모습.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세계적 예술품으로 평가받는 갖가지 모양의 고려시대 상형청자들.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청자 참외모양 병’(12세기, 높이 22.7cm) 과 ‘청자 사자모양 향로’(12세기, 높이 21.2cm), 거북이 모양 용을 형상화한 주전자인 ‘청자 귀룡모양 주자’(12세기,높이 17.3cm) 와 ‘청자 사람모양 주자’(12세기, 높이 28cm). 모두 국보다.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상형청자는 인물은 물론 갖가지 동물과 식물 등의 모양을 한 청자를 말한다. 그래서 제작과정이 힘들고 어렵다. 세계적으로 유례가 드물 만큼 다양한 형태의 고려 상형청자는 고려인들의 독특한 미적 감각, 자연관 등을 잘 보여준다. 상형청자는 고려 청자의 독특한 제작기법인 상감기법의 상감청자와 함께 세계적인 예술품으로 주목받고 있다.

‘고려 비색’에는 모두 18점(국보 5점·보물 3점 포함)의 비색청자·상형청자를 엄선해 선보인다. 비색의 아름다움과 상형청자의 빼어난 조형성을 한자리에서 감상하는 귀한 공간이다. 전시품 감상에 집중하도록 다른 시각적 요소들을 절제한 공간에는 미디어 아티스트 다니엘 카펠리앙이 작곡한 음악 ‘블루 셀라돈(Blue Celadon)’이 잔잔하게 흐른다.

연꽃 무늬를 음각으로 장식하고 비색이 돋보이는 국보 ‘청자 음각 연꽃무늬 매병’(12세기, 높이 43.9cm, 왼쪽)과 산화철 안료를 활용한 미적 감각과 제작기법이 두드러지는 보물 ‘청자 철채 퇴화 풀잎무늬 매병’(12-13세기, 높이 27.6cm).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무늬와 형태가 돋보이는 국보 고려청자들.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청자 철화 버드나무무늬 병’(13세기, 높이 31.4cm) ‘청자 상감 모란무늬 항아리’(12-13세기, 높이 19.7cm) ‘청자 상감 모란 넝쿨무늬 주자’(12-13세기, 높이 34.7cm) ‘청자 상감 국화 넝쿨무늬 완’(12-13세기, 높이 6.2cm).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청자실에서는 또 고려시대의 융성한 차 문화를 보여주는 다기들과 함께 지배층의 술 문화를 상상해볼 수 있는 공간, 최고급 청자가 구워진 전북 부안 유천리 가마터에서 수집된 상감청자 조각들과 이 조각들에 남아있는 각종 무늬를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한 일러스트 영상 등도 관람객을 맞는다. 점자 지도, 상감청자 제작과정을 담은 촉각 전시품 등으로 취약계층의 접근성도 높였다.

 

 

윗 부분의 구멍에 붓을 꽂아 놓는 ‘청자 용머리 장식 붓꽂이’(12세기, 높이 9.0cm, 왼쪽)와 ‘청자 퇴화 풀꽃무늬 주자’(12-13세기, 높이 29.7cm). 모두 보물로 지정돼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제공(9)

 

 

 

<주>

 

(1) https://v.daum.net/v/20240604113454990

 

 

(2) https://v.daum.net/v/20240512150317543

 

 

(3) https://v.daum.net/v/20240321173017828

 

 

(4) https://v.daum.net/v/20240105102023970

 

 

(5) https://v.daum.net/v/20230218100102377 

 

 

(6) https://v.daum.net/v/20230107030419335 

 

 

(7) https://v.daum.net/v/20221122155244758 

 

 

(8) https://v.daum.net/v/20221122100051231

 

 

(9) https://www.khan.co.kr/culture/scholarship-heritage/article/202211221113001#c2b

 

 

 

 

<참고자료>

 

 

https://ko.wikipedia.org/wiki/%EA%B3%A0%EB%A0%A4%EC%B2%AD%EC%9E%90#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56611

 

 

https://namu.wiki/w/%EA%B3%A0%EB%A0%A4%EC%B2%AD%EC%9E%90?from=%EA%B3%A0%EB%A0%A4%20%EC%B2%AD%EC%9E%90

 

 

https://www.heritage.go.kr/main/?v=1729238804183

 

 

 

고려청자박물관

https://www.celadon.go.kr/contentsView.do?menuId=celadon0401000000

 

 

 

https://v.daum.net/v/20190502093507871

 

 

 

https://v.daum.net/v/20190129112442087

 

 

 

강진 고려청자 요지서 ‘타원형 벽돌가마’ 세계 최초 발굴 - 경향신문 (khan.co.kr)2019.11.06

 

 

 

‘강진 사당리 가마터’ 고려청자 귀한 나들이 (hani.co.kr)2016-01-31

 

 

 

고려청자 산실 전남 강진의 비밀은? (hani.co.kr)2016-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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