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체르냐치노 발해 유적을 발굴해온 한국전통문화학교(총장 이종철) 조사단은 2008년 9월 4일 “발해의 문화상을 알 수 있는 토제 집모형 1점과 사슴그림이 새겨진 토기편, 그리고 발해 군인들의 무장상태를 알 수 있는 철제 대도(大刀), 갑옷, 화살촉 등이 쏟아졌다”고 밝혔습니다.
러시아 연해주에서 발해인의 생활상을 알 수 있는 집 모양의 토제품과 사슴이 그려진 토기편이 발견됐다. 또한 연해주에서 한인의 역사가 옥저~발해~19세기 한인 이주민으로 이어졌음을 실증해주는 유구와 유물이 쏟아졌다.
러시아 연해주에서 발견된 발해 시대의 사슴그림 토기편
이번에 발견된 유물 가운데 특히 토제 집모형과 사슴그림 토기편이 주목된다. 토제 집모형은 입방체 위에 사다리꼴 지붕을 올린 것으로 높이 6.2㎝이다. 벽체와 바닥에 각각 원통형 구멍이 관통해 내부에서 십자로 교차한 모양이다.
토기편에 새겨진 사슴은 높이와 너비가 각각 6㎝ 정도이다. 앞다리가 짧고 뒷다리는 길며 엉덩이를 위로 치켜 올리고 달려가는 듯한 생생하고 역동적인 모양이다.
또 3점이 출토된 철제 대도 가운데 1점은 길이가 86㎝나 됐고, 화살촉 가운데 삼익촉(三翼鏃·날개가 셋 달린 화살촉)은 연해주 발해 유적에서는 처음 나온 것이다.
토제 집모형
정석배 한국전통문화학교 교수는 “집 모양 토제품은 발해인의 집을 복원할 수 있는 귀한 자료”라면서 “사슴 표현물까지 합쳐 보면 발해인의 신앙까지 더듬어 볼 수 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정 교수는 “특히 구멍을 뚫은 집모양 토제품은 샤머니즘과의 관련성 여부가 주목된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옥저(BC 3~AD 2세기)와 발해(AD 698~926년)의 온돌이 확인된 데 이어 올해 조사에서는 옥저 쪽구들 1기와 19세기 한인들이 남긴 온돌도 발굴됐다.
정 교수는 “이로써 이 지역은 2300년 전인 옥저 시대부터 1937년 스탈린에 의한 강제이주로 뿔뿔이 흩어질 때까지 한인들의 터전이었음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1)
경향신문, 이기환선임기자, 2300년전 연해주는 ‘한인 터전’ 확인, 2008.09.04
발해의 고분에서 청동기마인물상 2점을 비롯 처음으로 대도가 출토되는 등 다량의 유물이 발굴됐습니다.
문화재청 한국전통문화학교(총장 이종철)와 러시아 극동국립기술대학교 간제4차 한·러 공동 연해주 발해문화유적 발굴조사단(한국측 단장 한국전통문화학교 문화유적학과 정석배 교수)은 2006년 6월 25일부터 8월 13일까지 우쑤리스크 북서쪽의체르냐찌노 5 유적에서 발해시대(698~926년) 고분 55기와 말갈시대 주거지 1기를 발굴 조사하여 다량의 유물을 발굴했다고 8월 24일 밝혔습니다.
◇ 제4차년도 체르냐찌노 5 유적 고분 노출 모습
발해 고분은 돌깐무덤 7기, 토광(목관)묘 46기, 석실분 2기가 각각 조사되었다. 돌깐무덤은 무덤 바닥에 자갈돌을 한 겹 촘촘하게 깔고, 그 위에 목곽과 목관을 안치한 묘제로서체르냐찌노 5 유적에서는 금년도에 새로이 확인된 장법이다.
돌깐무덤의 가장자리 혹은 모서리 부분에는 토기, 철제 칼, 철제 화살촉, 청동 방울, 동탁, 기마인물상 등 발해시대의 유물이 부장되어 있었다.
153호 무덤에서는 특히 이러한 양상이 잘 확인되었다. 153호 무덤은 크기가 길이 220㎝, 폭 152㎝이며, 장축은 북서-남동향이다. 이 무덤은 합장묘인데 두개골의 흔적이 서로 상반된 위치에서 노출되어, 두향이 인골 1기는 북서향, 다른 1기는 남동향이라는 독특한 모습을 보여 주었다.
석실분은 경작에 의해 모두 상부가 유실된 상태였고, 토광(목관)묘는 전년도 제3차 조사 시에 확인된 것들과 무덤의 크기, 두향, 부장품 등이 대체로 비슷하였다.
말갈시대 주거지는 발해의 고분과 겹 놓인 상태로 확인 조사되었다. 이는 말갈시대에 이곳에 취락지가 형성되어 있었고, 나중에 말갈의 취락지가 폐기되고 난 다음에 발해의 고분군이 들어섰음을 보여주는 사실로서, 말갈과 발해의 상호관계 문제에 많은 시사점을 준다 하겠다.
◇ 제4차년도 출토 발해 장신구류(은귀걸이, 유리 목걸이, 홍옥 목걸이, 옥환)
출토유물로는 토기, 철제 창, 대도, '단검', 화살촉, 칼(도자), 찰갑, 청동 기마인물상, 패식, 방울, 동탁, 은귀걸이, 홍옥 목걸이, 유리 목걸이, 옥환 등 다량의 발해유물이 있다.
청동기마인물상은 모두 2점이 출토되었다. 그 중 1점에는 머리에 투구를 쓰고, 상체에는 갑옷을 입은 무인이 말을 타고 있다. 이 기마병은 두 손은 앞으로 뻗었으며, 두 다리는 약간 굽혀 말을 타고 달리는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또한, 두 눈과 코도 미약하게 표현이 되어 있다. 말의 머리에는 갈기가 크게 나있고, 입에서 목으로는 고삐가 매어져 있다. 몸체는 용의 몸을 연상시키듯 길게 바로 꼬리까지 이어지며, 네 다리는 짧고 가늘게 표현되었다.
◇ 154호 및 153호 무덤 출토 청동기마인물상
이 유물은 크기가 길이 9.8㎝, 높이 4.7㎝ 이다. 이와 같은 청동기마인물상은 현재 두 가지로 해석되고 있다. 하나는 태양신을 구현한 것으로서 발해에 불교 이외에도 샤머니즘 요소가 있었던 증거로 파악되며, 다른 하나는 이 청동기마인물상 자체가 죽은 자의 영혼을 이승에서 저승으로 인도하는 역할을 하였을 것이라는 해석이다.
현재까지 발해의 것으로 생각되는 청동기마인물상은 상경용천부에서 수습된 2점, 씨니예 스깔르이 유적에서 수습된 2점, 우쑤리스크에서 수습된 1점, 길림성 양둔 대해맹유적에서 출토된 1점, 그리고 동녕 단결유적에서 출토된 1점 등 모두 7점에 불과하였다.
이 중에서 유구 내에서 발견된 유물은 동녕 단결유적에서 출토된 1점 뿐으로써 지금까지 학계에서는 이러한 유물들을 과연 발해의 것으로 볼 수 있는가하는 회의적인 시각마저 가지고 있었다.
따라서 금번 체르냐찌노 5 유적에서 출토된 청동기마인물상 2점은 발해에도 이러한 유물들이 사용되었음을 분명하게 보여주며, 또한 발해의 금속공예와 정신세계를 연구하는데 더없이 중요한 자료라 평가할 수 있다.
철제 유물 중 금년도에 처음으로 출토된 대도는 편 상태(잔존길이 약 42㎝)로 출토되기는 하였으나, 금년도 혹은 전년도에 출토된 검, 창, 화살촉, 찰갑 등과 함께 발해 무인들의 무장상태를 더욱 상세하게 복구할 수 있게 하는 매우 중요한 자료이다.
◇ 145호 무덤 출토 고구려계 발해토기
토기는 기형을 복원할 수 있는 것이 100여점 이상이 출토되었다. 그 중에는 회색 혹은 흑회색 니질의 고구려계와 적갈색 혹은 갈색 조질의 말갈계가 함께 공존한다.
다량의 토기 유물은 발해와 고구려, 그리고 발해와 말갈의 상호관계문제를 밝히는데 더없이 중요한 자료가 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2)
데일리안, 김창견 기자,발해고분서 청동기마인물상 발견,2006. 8. 25.
한국전통문화학교(총장 이종철)와 러시아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 소재 극동국립기술대학교가 올해제3차 한ㆍ러 공동발굴을 실시한 연해주'체르냐치노 5 유적'에서 발해시대 각종 장신구가 쏟아져 나왔습니다.
한국측 단장인 전통문화학교 정석배 교수는 2005년 6월 22일 이후 7월 29일까지 체르냐치노 유적에서 발해 시대(698~926년) 토광묘 51기를 확인하고 그 중 42기에 대한 발굴조사를 완료한 결과 다량의 장신구류와 무기류를 확인했다고 8월 8일 말했습니다.
은 귀걸이.옥고리.홍옥 목걸이.청동패식 등
장신구 중에는 은 귀걸이, 옥환(玉環. 옥고리), 홍옥(紅玉) 목걸이, 청동 패식, 청동 방울, 청동 귀걸이가 있으며 무기류로는 철제 찰갑, 철제 화살촉, 철제 칼, 철제 단검 등이 출토됐다.
이 중 은 귀걸이는 두개골 귀밑에서 두개골과 붙은 상태로 출토되고, 목걸이는 목 부분에서 확인됨으로써 이들 장신구가 고인이 실제 착용했던 것임을 알려준다.
모두 넉 점이 출토된 옥환은 원판 모양이다. 가장 큰 것은 지름 8.6㎝가 된다.
이와 동일한 옥환이 돈화 육정산 발해고분에서도 출토된 바 있다.
청동 패식(佩飾)은 연해주 발해유적에서는 처음 발견된 것으로 지금까지는 송화강과 목단강 유역에서 발해시대 전기에 유행했다고 간주되고 있었다.
철제 찰갑은 완형에다 길이 8.8㎝, 폭 2.7㎝이며, 가장자리를 따라 구멍을 각각 내어 다른 찰갑과 서로 연결함으로써 갑주(甲胄)를 만들 수 있도록 했다. 이런 찰갑은 고구려 오녀산성에서 출토된 바가 있다.
한편 이번 조사 결과 발해시대 토광묘는 50-110㎝의 일정한 간격을 두고 남서-북동 방향으로 열을 지어 배치돼 있었다. 약 300평에 이르는 발굴구역에서는 모두 4개 열이 확인됐다.
시신을 매장한 토광은 자갈층을 파고 만든 것이 대부분이며, 크기는 길이 140㎝, 폭 58㎝, 깊이 20㎝에서 길이 220㎝, 폭 84㎝, 깊이 54㎝까지 다양하다.
토광에 시신을 그대로 안치한 경우도 있고, 뼈를 수습해 토광 안에서 다시 화장한 사례도 발견된다.
시신의 머리 방향(두향.頭向)은 단 한 기를 제외하고는 모두 북서쪽을 향하고 있다. 무덤이 일정한 방향으로 열을 지어 있고 두향이 일치하는 점, 일부 무덤에만 유물만 부장한 점, 그리고 무덤 크기에 상관없이 유물에 일정한 공통성을 보이는 점 등을 고려할 때 이 고분군은 일정한 시기에 한꺼번에 조성된 공동묘역이었을 것임을 추정할 수 있게 한다고 정 교수는 덧붙였다.
출토유물 중 가장 많은 토기류는 대부분 무덤에서 한두 점씩 발견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넉 점이 부장되기도 했다. 토기는 고구려계와 말갈계가 보이지만 시대는 모두 발해시대로 평가된다.
조사단은 인골이 노출된 대부분의 무덤에서는 DNA 분석을 위한 시료를 채취했다.
정 교수는 "DNA 분석이 이루어지면 발해인들의 형질인류학적 특징을 밝힐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면서 "그동안 체르냐치노 5 유적에서 채취한 시료를 연대측정한 결과 830년과 840년이라는 연대를 확보하고 있다"고 말했다.(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