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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국/대진(발해,고려)

3. 대진국(발해) 고고학 (5) 연해주 콕샤롭카유적

대야발 2025. 1. 28.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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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해주에 들어선 최초의 고대 국가는 발해(渤海)였다.” 2012년 10월 블라디미르 쿠릴로프 러시아 극동연방대 부총장이 산운 장도빈 선생 기념비 제막식 때 남긴 연설이다. 사실 연해주는 이미 신석기 시대부터 한반도의 역사 강역이었다. 

 

 

1일 러시아 연해주 콕샤롭카 발해 성터에서 김동훈 국립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사(왼쪽)와 니콜라이 클류예프 러시아과학원 극동연구소 선사고고실장이 2014년 발굴된 ‘제사 유구’를 살펴보고 있다. 이곳에서는 위구르계 토기가 출토됐다. 콕샤롭카=김상운 기자sukim@donga.com
 
 
 

 


 

 
 
 

 

1일(현지 시간) 러시아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북쪽으로 약 400km를 달리자 야트막한 산으로 둘러싸인 너른 평원이 나타났다. 궁벽한 시골마을 콕샤롭카다. 가슴 높이까지 자란 풀밭을 헤치고 들어가자 농작물은커녕 꽃 한 송이 피지 않은 황무지가 나왔다. 사람이 살 수 있었을까…. 하지만 잡초를 걷어내자 문명의 흔적이 거기 있었다.

김동훈 국립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사와 니콜라이 클류예프 러시아과학원 극동연구소 선사고고실장이 ‘ㄴ’자로 꺾인 석렬을 가리켰다. 한민족 온돌의 초기 형태로 발해 시대 ‘쪽구들’의 일부인 부뚜막 유구다. 부뚜막과 연결된 고래는 건물 벽을 따라 죽 이어졌다. 15m 길이의 고래를 따라가 보니 건물 밖으로 거대한 굴뚝 기둥 자리가 보였다.

 


2006∼2013년 콕샤롭카 성(城) 유적을 조사한 한-러 공동 발굴단은 이곳에서 한 변이 약 10m에 이르는 대형 건물터 7개를 발견했다. 강인욱 경희대 교수(북방 고고학)는 “북방 오지를 개척하며 대제국을 일군 발해의 정체성을 생생히 보여주는 유적”이라고 말했다.

당초 러시아 학계는 콕샤롭카 유적을 발해가 아닌 말갈의 것으로 봤다. 알렉산드르 이블리예프 등 주요 연구자들은 발해 영역을 한카 호수 남쪽까지로 좁게 해석했다. 콕샤롭카를 발해 유적으로 보면 최대 아무르강 유역까지 발해 영역을 확장해 볼 여지가 생긴다.

 
 


콕샤롭카 유적에서 발견된 발해의 대형 건물터. 온돌의 초기 형태인 ‘쪽구들’의 흔적이 선명하게 보인다. 국립문화재연구소 제공
 
 
 
 
 

우리 학계는 발해가 고구려를 계승했다는 점을 강조하는 반면 발해 유적을 자국 영토 안에 둔 러시아나 중국은 고구려보다 말갈의 역할을 더 부각한다. 그러나 러시아 학계의 시각은 콕샤롭카 발굴로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한국 국립문화재연구소와 러시아과학원 극동연구소 공동 발굴단이 2008년 9월 이곳에서 쪽구들의 전모를 밝혀낸 게 결정적이었다.

쪽구들은 발해가 고구려로부터 이어받은 주거문화로 말갈 유적에서는 발견되지 않는다. 김동훈 학예연구사는 “고래가 꺾이는 형태나 집 밖으로 굴뚝을 내는 구조 등이 중국에 있는 발해 상경성(上京城) 유적과 꼭 닮았다”고 말했다.

2014년 콕샤롭카 성벽 단면에서 서고성(西古城)과 크라스키노 등 발해 유적에서만 나오는 ‘주사위형 토제품’이 출토된 것도 중요하다. 2012년까지 국립문화재연구소 발굴단을 이끈 홍형우 강릉원주대 교수는 “콕샤롭카 유적은 발해 영역은 물론이고 말갈과 관계를 밝힐 수 있는 핵심 열쇠”라고 설명했다.

그런데 쪽구들을 갖춘 대형 건물터는 콕샤롭카 발굴단에 미스터리를 안겼다. 수도 상경성에 버금가는 건물들을 먼 변방에 지은 이유는 무엇이며, 고대의 다른 대형 건물들과 달리 기와가 발견되지 않는 까닭은 무엇인가.

궁금증을 풀 실마리는 인근 제사 유구에서 나왔다. 돌로 사각형 모양의 제단을 쌓은 유구에서 흥미롭게도 ‘위구르계 토기’가 발견됐다. 발해 성터에 중앙아시아 유목민이 묻힌 무덤이라니…. 8∼9세기 발해와 위구르제국의 교역 과정에서 연해주까지 위구르인들이 건너온 사실을 보여준다. 이곳이 발해의 무역 거점이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학계 일각에서는 콕샤롭카 일대 토착민들로부터 모피나 약초를 얻기 위해 발해의 위세를 과시할 수 있는 대형 건물을 지었을 가능성을 제시한다. 모피 교역은 주로 겨울에 이뤄지므로 사계절 내내 거주할 필요는 없지만 쪽구들 같은 난방시설은 필요했을 것이다. 강인욱 교수는 “발해는 강성한 당나라에 밀려 고구려에 비해 척박한 땅에서 나라를 시작했지만 거친 북방을 개척해 한계를 극복하고 대제국을 세웠다”고 강조했다.(1)
동아일보, 콕샤롭카=김상운 기자, 발해의 ‘쪽구들’ 유적, 고구려 후예임을 밝힐 결정적 증거 발해와 옥저의 땅, 연해주를 가다 <상> 러 콕샤롭카 온돌 유적,

 

 

 

 

러시아 연해주의 7~10세기 발해 유적지에서 이 유적과 2000㎞ 이상 떨어진 중앙아시아의 위구르 양식 토기(사진)가 나와 눈길을 모으고 있다. 국립문화재연구소(소장 강순형)가 러시아과학원 극동지부 고고학역사학민속학연구소와 함께 벌인 연해주 콕샤롭카 발해 유적의 7차 발굴조사의 결실이다. 연구소 쪽은 2014년 8월 25일 이번 조사에서 위구르계 토기와 무덤 양식의 석축 구조물 등을 확인했다며 “해동성국 발해의 동북 진출 양상과 주변 민족 간 교류관계 연구의 실마리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발해유적에서 나온 위구르계 토기2

 

 

 

콕샤롭카 유적은 현재까지 발굴조사가 진행된 발해 유적들 가운데 가장 북쪽에 있다. 한국과 러시아 학자들은 만주와 연해주 일대를 모두 차지하며 ‘해동성국’으로 불렸던 전성기 발해의 영역 확장과 관련해 이곳을 주목해왔다. 올해는 연차 발굴의 최종 조사로 성 외곽의 석축 구조물과 성벽, 해자 구간을 조사했다.

 

 

이번에 출토된 위구르 양식 토기는 8~9세기 것으로 대형 판석을 쌓아 만든 석축 구조물 안에서 나왔다. 당, 일본, 신라, 돌궐 등과 광범위한 교역 활동을 펼쳤던 발해의 국제교류 양상을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로 판단된다고 한다. 위구르는 몽골고원과 중앙아시아 일대에서 활약한 투르크 계통의 민족이다. 당나라 때 대제국을 형성해 한때 당의 내정에 개입하기도 할만큼 위세를 떨쳤다.(2)

한겨레, 노형석 기자, 사진 국립문화재연구소 제공, 연해주 발해땅서 위구르 토기가 웬일?, 2014-08-25

 

 

 

 

 

2011년 8월 17일부터 9월 30일까지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소장 김영원)는 러시아과학원 극동지부 역사학고고학민속학연구소와 공동으로 연해주 콕샤로프카-1 평지성 제4차 발굴조사를 시행 결과, 발해의 지방거점 행정치소의 중심건물지군에 대한 전반적인 현황을 확인했습니다.

 

 

 

콕샤로프카-1 평지성은 러시아 연해주 우수리강 상류에 있으며, 성벽 둘레는 1,645m이며 평면 형태는 사다리꼴이다. 유적의 위치와 규모, 노출된 건물지와 출토 유물을 통해 콕샤로프카-1 평지성은 발해 지방제도인 5경 15부 62주 중 안변부(安邊府)의 부성(府城)으로 추정된다.

 

 

2008년 처음 확인되어 올해까지 조사된 중심건물지군은 쪽구들(방의 일부분에만 고래가 깔린 구들의 초기 형태)이 시설된 건물 7동이 동서로 나란히 배치되어 있다. 건물군과 이를 둘러싼 길이 92m의 북벽 전체가 2011년 조사를 통해 노출되면서 총 320m가 넘는 돌담이 방형(方形)으로 건물지군을 에워싸고 있음이 확인됐으며, 돌담의 북동 모서리에서는 3m 폭으로 박석(薄石)을 깔아 시설한 문지(門址)도 조사됐다. 중심건물지군의 기단은 모래와 진흙을 교대로 깔아 주변보다 높게 만들어 건물의 위상을 높이려는 의도가 보인다.

 

 

 

< 연해주 콕샤로프카-1 평지성 중심건물지군 전경 >

 

 

 

건물의 규모는 세 종류로 구분되는데, 중심에 있는 4호 건물이 가장 크며, 주변에 있을수록 규모가 작아진다. 4호 건물 내부에서는 중국에서 수입된 청자참외형주자가, 3·4호 건물 사이에서는 발해시대 유물로는 처음으로 원통형 그릇받침이 이미 출토된 바 있어, 중앙에 있는 건물일수록 위계가 더 높았음을 추정하게 한다.

 

 

지금까지 확인된 발해 건축유적 중 유일하게 같은 구조를 갖는 건물이 연접(連接)해 있는 그 독특한 배치방식과 특이한 유물의 출토 등을 통해 콕샤로프카-1 평지성의 중심건물지군은 의례와 관련된 핵심적인 구실을 한 공간으로 판단된다.

 

 

 

< 연해주 콕샤로프카-1 평지성 6,7호 건물과 주변 돌담 및 북벽 출입시설 >

 

 

 

국립문화재연구소는 앞으로 중심건물지군의 기능과 성격, 성 내부 건물지군의 전체적인 배치양상, 성벽 축조 방식, 주변지역에 산재한 관련 유적의 분포양상 등을 밝혀, 발해 동북 지역에 대한 종합적인 연구를 지속적으로 실시할 계획이다.(2)

정책브리핑, 발해 지방 거점 유적, 그 모습을 드러내다, 2011. 10. 28. 

 

 

 

 

러시아 연해주 중북부 지역 우수리강 근처에서 왕성(王城)급에 해당하는 발해 시대의 대규모 성터가 발굴됐습니다. 연해주 중북부 지역이 발해 영토였으며, 발해가 고구려를 계승했다는 사실을 동시에 입증하는 중요한 유적으로 평가됩니다.

 

 

국립문화재연구소는 2008년 9월 3일부터 10월 2일까지 연해주 중북부 추구예프카 지구 콕샤로프카 마을에 있는 4개 성 중 하나인 '콕샤로프카-1' 평지성을 발굴 조사한 결과 온돌 시설을 갖춘 대규모 건물지와 다수의 발해 유물을 확인했다고 16일 밝혔습니다.

 

 

연해주 중북부 지역서 王城급 성터 발굴온돌시설·토기 등 유물은 고구려 전통 계승

 

 

 

 

연해주에서 확인된 발해 유적 가운데 마리야노프카 성과 함께 가장 북쪽에 위치하고 있는 이 유적은 우수리강과 그 지류인 콕샤로프카강을 해자처럼 끼고 있는 성이다.

 

 

북벽 405m, 동벽 650m, 남벽 250m, 서벽 340m로 성벽 총길이 1,645m, 전체 면적 16만㎡에 달하는 대규모 성곽이다. 성벽의 최고 높이는 6m, 너비는 10~14m다. 성벽 내부는 석재를 쌓아 강화하고 그 안팎은 흙으로 쌓았으며 성벽과 북문, 서문, 성 내부 문화층 등 성 전체가 완벽하게 보존되어 있다.

 

 

발굴책임자인 홍형우 학예연구관은 "축조 형태와 규모로 볼 때 상경성, 서고성 같은 발해 수도의 궁성에 비견될 만한 왕성급 유적이며, 현재의 도청에 해당하는 행정치소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모래와 점토를 한 층씩 쌓아올려 기단을 1m 이상 높게 조성한 점 ▦발해 궁성의 전형적 특징인 '곡(曲)' 혹은 '유(由)'자 형태의 대규모 온돌구조 ▦초석으로 사용된 반듯하게 다듬은 판석 ▦대규모 담장시설과 기와의 존재 등이 이 건물의 위상을 가늠케 한다는 것이다.

 

 

콕샤로프카 성 인근인 마리야노프카 성에서도 과거 발해 유물이 나온 적이 있으나 발해 영토였음을 입증할 만한 건물지 등 유적은 발굴되지 않았다.

 

 

이 때문에 러시아 학계는 연해주 중북부 지역을 발해 영역에서 제외시키고 흥개호 남동쪽으로 한정하려는 경향이 있었다. 이번 발굴로 대규모 성이 확인됨으로써 이 지역을 발해 영역에 포함시킬 수 있는 결정적 근거를 확보하게 된 것이다.

 

 

발굴된 유물과 온돌 구조가 고구려의 전통을 반영하고 있다는 점도 주목된다. 적갈색 띠고리 손잡이가 달린 토기(대상파수호ㆍ帶狀把手壺), 주둥이가 안쪽으로 오므려진 항아리 모양 토기(내만구연호ㆍ內彎口緣壺) 등은 형태 뿐 아니라 제작기법도 고구려의 것을 따르고 있다.

 

 

 

 

 

 

 

'ㄱ'자로 꺾어 건물 밖으로 빼내는 온돌구조 역시 고구려 온돌구조에서 기원을 찾을 수 있다. 특히 토기 중에는 치마를 입은 여인들이 손을 잡고 춤을 추는 모습이 새겨져 있어 강강술래를 연상시키는 것도 발굴됐다. 그간 발해를 말갈왕조로 간주해온 중국과 러시아 학계의 주장과 달리 발해가 고구려를 계승했음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국립문화재연구소는 2006년부터 3년간 러시아와 공동으로 연해주 고고유적 조사 사업을 실시하면서 지표조사를 통해 이곳이 발해 유적임을 확인하고 올해 첫 발굴에 들어갔다. 김봉건 소장은 "콕샤로프카-1 성에 대한 집중 발굴은 물론, 연해주 서북지역에 대한 지표 조사도 병행함으로써 발해의 정체성 규명을 위한 연구를 계속하겠다"고 말했다.(3)

한국일보, 김지원기자, '연해주는 발해 영토' 유적 찾았다, 2008. 10. 17.

 

 

 

 

 

 

 

 

(1) https://www.donga.com/news/article/all/20170815/85826814/1

 

 

(2) 연해주 발해땅서 위구르 토기가 웬일? (hani.co.kr)2014-08-25 

 

 

(2) '연해주는 발해 영토' 유적 찾았다 (daum.net)한국일보 2008/10/17

 

 

(3) https://v.daum.net/v/20111028111232567

 

 

 

 

 

 

https://www.donga.com/news/article/all/20170816/85838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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