력사를 찾아서
문명은 지성의 산물? 간빙기 맞아 덕보고 있는 것 본문
우리와 해부학적으로 같은 호모사피엔스는 약 20만 년 전에 지구상에 등장했다. 그런데 인류는 이보다 훨씬 짧은 약 1만 년 전에야 신석기 농업을 시작했고, 7000년 전에야 문명을 탄생시켰다. 지난 1만 년 동안을 지질학적으로 홀로세(Holocene)라 한다. 인류는 홀로세 전에 구석기 삶을 영위했다. 인류가 오랫동안 문명을 탄생시키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기후변화 리포트] 지구 망치는 인류
그린란드 누크 부근의 피요르드. 기후변화로 그린란드의 빙하 녹는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중앙포토]
지난 10만 년 동안 북반구 고위도의 기온 변화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다. 이 기간 대부분을 차지하는 빙하기에는 중고위도 지역까지 빙하 지역이 확장됐고, 해양으로부터 수증기 증발이 적어 사막이 넓어졌다. 지금보다도 열대와 고위도 지역 간의 기온 차가 커서 바람이 몹시 강했다.
우리 조상들은 오늘날의 이상기후보다 열 배는 더 심한 변덕스럽고 혹독한 기후에 맞서야 했다. 태풍이 매년 한 번 한반도를 지나간다면, 엄청난 복구 노력 후 피해가 있긴 해도 추수가 가능하다. 만약 태풍이 매년 열 번 휩쓸고 지나가면 농업을 포기해야 할 것이다. 이처럼 빙하기에는 농업을 할 수 없는 조건이었으므로 사냥꾼과 채집자로서 삶을 영위할 수밖에 없었다.
기온은 1만 년 전까지 엄청나게 요동친 후, 매우 평온한 상태가 되었다. [Arctic Climate Impact Assessment]
7만 3500년 전에 인도네시아 토바 화산이 폭발했다. 최근 가장 강했던 1991년 필리핀 피나투보 화산 폭발보다 2800배 더 강력했다고 한다. 피나투보 화산 폭발로 성층권으로 분출된 황산 에어로졸에 의해 햇빛이 차단돼 다음 해에 전 지구적으로 기온이 0.5℃ 하강했다. 컴퓨터 시뮬레이션한 결과로 보면, 토바 화산 폭발은 전 지구 평균 기온을 무려 12℃나 떨어뜨렸다. 그 당시 인류는 심각한 위기에 몰려 멸종에 가깝게 갔다는 사실이 최근 DNA 분석으로 확인되고 있다. 당시 적은 수의 사람들만이 다른 지역에 비해 안정되고 삶의 조건이 나은 아프리카 사바나에 살아남았다.
7만 년 전 아프리카 벗어나 이동 시작
인류는 7만 년 전 아프리카를 벗어나 새로운 삶을 찾아 나섰다. 이 인류 여정의 시작은 공교롭게도 해양의 물이 거대한 얼음으로 바뀐 빙하시대가 열어준 길을 따라 진행됐다. 우리 조상은 아라비아 반도를 거쳐 주로 아시아 해안을 따라가는 남쪽 경로를 택했다.
5만 년 전에 아시아와 호주에 도달했다. 빙하기 말기인 2만 년 전, 빙하 규모가 절정에 이르렀다. 그 당시 해수면은 오늘날보다 120m나 아래에 있어 아시아와 북미 대륙이 붙어 있었다.
이 연결로를 따라 1만 5000년 전 북미 대륙에 몽골족이 처음 이주했다. 인류는 이러한 과정들을 통해 극한의 기후조건에 내성을 가지게 되어 그 어떤 기후에서도 살아갈 수 있게 됐다.
2만 년 전부터는 기후가 따뜻해지면서 빙하가 빠른 속도로 후퇴했다. 마침내 1만 년 전에 빙하기를 뒤로하고, 현재의 따뜻한 간빙기인 홀로세에 진입하였다. 이때도 간혹 참혹한 홍수와 문명을 무너뜨린 가뭄과 같은 사건들이 있긴 했지만, 그전보다 기후 변동성이 극히 작은 안정된 시기였다. 이 홀로세에 진입하자 인류는 계절에 따른 식량 생산 과정을 예측할 수 있어 작물을 경작했으며 가축을 키우고 비로소 정착했다. 구석기에서 신석기로 전환이 일어난 것이다.
홀로세 전에도 인류는 오랫동안 생존해왔지만, 매우 적은 인구만이 극단적으로 어려운 환경에서 살아남았다. 홀로세의 기후조건은 인류에게 이상적인 상태였다. 농경을 시작한 결과 잉여와 축적이 생겨났다.
수렵과 채집 생활할 때와는 다른 인구의 조밀화가 일어나면서 도시와 국가가 생겨날 여지를 만들어 주었다. 이런 과정에서 문자도 생겨나고 소위 ‘문명’이 탄생했다. 1만 년 전부터 기후가 안정됐지만, 문명의 탄생까지는 약 3000년을 더 기다려야 했다. 왜 그래야 했을까?
메소포타미아·이집트·인더스·황하 4대 고대 문명의 공통점은 큰 강 하구 주변에 발달한 비옥한 퇴적층에서 탄생했다는 점이다. 문명이 발생하려면 다른 일에 종사하는 많은 사람을 먹여 살릴 정도로 식량을 생산하는 능력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4대 문명이 번영을 누리기 시작한 시대가 모두 6000~7000년 전인데, 놀랍게도 해수면 상승이 일단락된 약 7000년 전과 시점이 일치한다.
2만 년 전부터 빙하기에서 간빙기로 변화가 일어났고, 이 기간은 1만 년 동안 지속하였다. 이때 해수면 고도는 대륙 빙하가 녹아 빠르게 상승했다. 해수면 상승 속도는 가장 빠를 때 100년에 250㎝에 달할 정도였다. 지난 100년 동안 지구온난화로 인한 해수면 상승은 20㎝ 수준이었다. 이와는 한 자릿수 이상 차이가 나는 엄청난 규모의 변동이었다.
1만 년 전부터는 기온이 안정했지만, 그 후 3000년 동안에도 해수면 고도는 100년에 약 1m씩 상승했다. 해양은 대기보다 열용량이 커서 외부 변화에 대한 반응이 느리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비로소 7000년 전에 대륙의 가장자리가 완전히 물에 잠겨, 세계지도가 오늘날 우리가 보는 것과 같은 모습을 띠게 되었다.
해수면이 높아지는 상황에서는 강 하구 대단위 농업이 불가능하다. 아무리 훌륭한 도시를 만들어도 시간이 흐르면 내륙 쪽으로 이전해야 했을 것이다. 도시를 옮기려면 엄청난 노동력도 필요하고 그만큼 문명을 유지하고 발전시킬 에너지를 헛되이 소비해야 한다. 이런 이유로 4대 문명은 해수면 고도가 안정화된 이후에야 탄생할 수 있었다.
해수면 상승 안정된 후 4대 문명 생겨
홀로세는 인류 문명을 탄생시키고 발전시키기에 가장 바람직한 조건을 제공했다. 홀로세 동안에 현대 사회와 경제 발전의 기반이 되는 유용한 생태계가 모두 정착되고 확장됐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홀로세의 시작은 믿을 수 있는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쇼핑몰을 설립하는 것과 같다.
우리는 산림·경작지·산호초·목초지·물고기·포유류·박테리아·빙하와 공기의 질, 기온과 담수 가용성을 믿을 수 있는 쇼핑몰인 홀로세에서 공급받고 있다. 우리가 얻는 물, 우리가 누리는 기후, 우리가 먹는 식량, 우리가 의존하는 지구시스템과 생물 다양성은 홀로세의 환경 범위 안에서 이루어진다. 만일 빙하기와 같은 난폭한 기후가 오늘날에도 나타나 홀로세를 떠난다면, 75억 인구를 먹여 살릴 수 없고 다양한 문명을 지속시킬 수 없다.
홀로세 동안에도 자연적인 기후변동이 있었지만, 수백 년의 시간 규모에서 기온이 단지 최대 약 1℃ 정도만 흔들렸다. 인류는 이러한 변화에도 힘겹게 적응해야 했다. 지구 평균 기온이 약 1℃ 정도 낮아진 13~19세기의 소빙하기 동안에도 전 세계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곤궁한 처지에 놓였었다. 인류는 수억 년 동안 지표 아래 묻혀 있던 화석연료를 태워 오늘날의 번영을 이뤘다.
이 번영은 과거 7000년에 걸친 문명을 지탱해 왔던 안정한 기후를 붕괴시킬 정도로 위협이 되고 있다. 우리는 지난 100년 만에 0.85℃의 기온 상승을 일으켰고, 최근 들어 해수면 고도를 100년에 1m 이상의 속도로 빠르게 상승시키고 있다. 2℃ 더 따뜻했던 12만 년 전 간빙기 때, 해수면 고도가 지금보다 4~8m 더 높았다. 온실가스를 줄이지 않으면 맞이하게 될 4℃ 상승에서, 어떻게 인류를 먹여 살리며, 해안 대도시를 방어해야 하는지를 알지 못한다.
우리는 인류 문명이 인간 지성의 필연적 결과라고 생각하는 오만을 저지르고 있지만, 지구 역사를 보면 이 역시 좋은 기후 조건을 만난 덕에 일어난 우연한 사건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인류는 자연적 기후변화의 적응을 넘어 오히려 기후변화를 일으키는 주체가 되었다. 우리 스스로 안정된 기후를 변덕스럽고 불확실한 상태로 내몰아 위험에 빠지고 있다. 인류에 의한 지구 위기가 없다면 다가올 몇 천 년 동안 현재처럼 좋은 조건에서 생존할 수 있다. 이것이 홀로세를 지속할 수 있게 지켜내야 할 절박하고 충분한 이유이다.
빙하 코어에서 기온·온실가스 산출
[중앙포토]
극지방에 눈이 내리면 그 무게에 눌려 먼저 내린 눈은 얼음으로 변한다. 수만 년 동안 눈이 내리고 얼기를 반복하면서 빙하가 만들어진다. 이걸 시추하면 기둥 모양의 얼음을 얻을 수 있는데 이를 빙하 코어라 한다. 빙하 코어 안 공기 방울에는 그 당시의 대기 성분을 담고 있다. 이를 분석해 남극과 그린란드 빙하에서 각각 지난 80만 년과 10만 년 동안 기온·온실가스·먼지·화산재·꽃가루의 변화를 알 수 있다.
산소 원자 질량수는 대부분 16이지만 18인 경우도 있다. 덴마크의 과학자 윌리 단스가드는 빙하에서 무거운 산소(18-산소)와 가벼운 산소(16-산소)의 비율이 기온에 따라 체계적으로 변한다는 것을 밝혔다. 기온이 낮으면 빙하에는 18-산소/16-산소 비율이 낮아지지만, 기온이 높으면 18-산소/16-산소 비율이 높아진다. 즉, 산소의 두 질량비로 과거 기온을 산출할 수 있다.(1)
중앙선데이, 조천호 국립기상과학원장, 문명은 지성의 산물? 간빙기 맞아 덕보고 있는 것,
2017.04.16
미래 환경 예측 위해 '홀로세 기후 최적기' 연구 활발
2100년 대한민국은 아열대 국가다. 서울 시내 한복판에 야자수가 자라고 겨울에도 눈이 내리지 않는다. 한반도의 최남단인 제주도는 동남아시아처럼 덥고 습한 날씨가 이어진다.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지금 수준으로 유지된다는 가정하에 실시한 시뮬레이션 결과다.
2100년엔 서울에 야자수 나무?
자연적 기온상승에 산업화 겹쳐
2100년 평균 3~5℃ 상승 전망도
1700년께 소빙기가 끝나면서 지구의 온도는 꾸준히 상승하고 있다. 1900년대 중반부터는 본격적인 현대 온난기에 진입했다. 온도가 오르는 구간에서 이산화탄소 배출까지 늘면서 온도 상승세가 가팔라졌다. 2100년이 되면 평균기온이 지금보다 3~5도가량 높아질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이산화탄소는 지표면이 머금고 있는 열에너지가 우주로 빠져나가는 것을 방해한다. 지구 온난화 원인 중 60% 정도를 차지한다. 지구의 온도를 높이는 원리가 온실과 비슷해 ‘온실효과’란 용어가 생겼다. 메탄과 수증기도 이산화탄소와 비슷한 역할을 하는 온실 기체로 꼽힌다.
온난화 속도는 갈수록 빨라지는 추세다. 세계기상기구(WMO)에 따르면 기상관측 이래 가장 더웠던 해는 2016년(평균기온 14.96도)이다. 2위는 2015년(14.88도), 3위는 2017년(14.84도)이며 4위가 지난해(14.7도)였다. 최근 4년이 1~4위를 모두 차지했다.
한반도 역시 비슷한 흐름이다. 국립기상과학원에 따르면 한반도의 최근 30년 기온은 1912~1941년보다 1.4도 높아졌다. 20세기 초와 비교해 여름은 19일 길어졌고 겨울은 18일 짧아졌다.
하지만 최근 100년이 지구 역사상 가장 더웠던 시기라고 보기는 어렵다. 9000~5000년 전 지금보다 기온이 2~3도가량 높은 ‘홀로세 기후 최적기’가 존재했다. 한반도의 홀로세 기후 최적기는 약 7600~4800년 전으로 추정된다. 과학계는 이 시기가 2100년 이후의 기후와 상당히 비슷할 것으로 보고 있다. 홀로세 기후 최적기를 분석해 미래 기후가 어떻게 바뀔지를 예측하려는 시도가 잇따르는 이유다.
그다음에 찾아온 ‘중세 온난기’는 1300~900년 전이다. 평균기온은 9.5~10도 수준으로 지금보다 다소 낮지만, 해당 시기 전후 한랭기 때보다는 기후가 높았다. 중세 온난기의 원인으론 태양 활동의 강화, 화산 활동 감소, 해류의 변화 등이 꼽힌다. 한 가지 요인 때문이라기보다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영향을 줬다는 학설이 지배적이다.
400년 전 소빙기 재출현에 관심
지구가 지금과 같은 속도로 꾸준히 온난화를 지속할 것이라고 보는 학자는 의외로 많지 않다. 기후에는 일종의 주기가 있기 때문에 급격히 온도가 올라간 뒤에는 필연적으로 소빙기가 나타난다는 설명이다.
역사 기록에 남아있는 가장 최근의 소빙기는 400~300년 전이다. 당시 평균기온은 8~8.5도 수준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의 한반도 기온보다 평균 5도 정도 낮았다. 소빙기의 근거는 극지방에 있는 빙하 높이다. 알래스카나 아이슬란드에서 측정한 빙하의 높이는 1560년, 1750년, 1850년 무렵 최고에 달했다고 기록돼 있다. 1789년 일어난 프랑스 대혁명의 이유 중 하나로 ‘강추위’가 꼽히는 것도 당시 전 세계적으로 얼마나 큰 한파가 들이닥쳤는지를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소빙기의 원인 역시 지구 온난화와 관련이 있다. 지구가 따뜻해져 빙하가 녹으면 극지방과 중위도 지방의 기온차가 작아진다. 이렇게 되면 찬 공기를 가둬놓는 제트기류가 약해지고, 이를 틈타 북극의 추운 공기가 제트기류를 뚫고 다른 지역까지 흘러들어간다. 이 과정에서 일시적인 혹한기가 찾아온다.
일부 기후학자는 최근 급격한 온난화에 접어든 점을 고려해 30여 년 정도의 소빙기가 찾아올 것이라는 전망도 내놓고 있다. 400~300년 전처럼 북극의 추운 공기가 남쪽으로 이동해 뜨거운 지구를 식혀줄 것이란 관측이다. 근거로 삼을 수 있는 데이터가 제한적이기 때문에 그 신뢰성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임재수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책임연구원은 “기후는 10년이 됐든 100년이 됐든 급격하게 올라가면 일정 수준으로 떨어지는 주기성이 있다”며 “다만 데이터가 최근 100년 수준에 머물러 있다 보니 단기 사이클은 예측할 수 있어도 중장기적인 예측은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2)
한국경제, 윤희은 기자, 2019.04.05
<자료출처>
(1) 문명은 지성의 산물? 간빙기 맞아 덕보고 있는 것 | 중앙일보 (joongang.co.kr)
(2) 뜨거웠다, 차가웠다 반복하는 지구…5000년 前에는 지금보다 더 더웠다 | 한국경제 (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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