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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국/고려

4. 고려 문화유산 (5) 고려 불화

대야발 2025. 4. 2. 10:29

 

 

 

 

 

 

 

우리 역사를 통틀어 전 세계적 명품을 꼽으라면, 고려청자·고려불화·나전칠기가 아닐까 싶다. 이들 삼대장은 송나라 사신을 따라온 서긍의 고려도경에도 일부 언급되어 있는 명품으로, 고려의 문화력과 수출 경쟁력에 큰 도움이 되었다. 불화야 당연히 불교와 관련된 유물이고, 나전칠기도 최고급은 불경을 담던 경함(經函) 등에서 사용됐다. 청자 역시 최고급은 왕실과 사원이 주된 소비처였다.

 

 

■ 화려한 불교, 소박한 유교 [인문산책]

자현 스님·중앙승가대 교수

2025. 2. 24. 04:31 

 

 

 

우리 역사를 통틀어 전 세계적 명품을 꼽으라면, 고려청자·고려불화·나전칠기가 아닐까 싶다. 이들 삼대장은 송나라 사신을 따라온 서긍의 고려도경에도 일부 언급되어 있는 명품으로, 고려의 문화력과 수출 경쟁력에 큰 도움이 되었다. 불화야 당연히 불교와 관련된 유물이고, 나전칠기도 최고급은 불경을 담던 경함(經函) 등에서 사용됐다. 청자 역시 최고급은 왕실과 사원이 주된 소비처였다.

 

 

불교 하면 으레 소박과 검소가 떠오르지만, 이율배반적이게도 모든 종교 문화에는 화려함이 존재한다. 이를 ‘장엄(莊嚴)’이라고 하는데, 유럽의 성당이나 이슬람의 모스크 등에서도 확인되는 종교의 한 특징이다.

 

 

 

 

고려불화 16나한도. 한국일보 자료사진

 

 

 

 

어떤 의미에서 소박을 추구한 것은 성리학이다. 화려한 청자를 벗고, 순백의 백자를 추구했다. 또 모든 예술적 가치는 인간 본질을 현혹하는 헛짓으로 보았다. 이 때문에 그림을 그리는 화가는 환쟁이로 폄하됐고, 노래와 춤을 추는 예술가들은 딴따라로 전락한다. 물론 조선에서도 권문세가와 양반들은 화려함을 추구했다. 그러나 소수의 개인적인 추구는 사찰이 공공재의 기능을 가지고 대중과 함께한 것과 달랐다. 즉 개인의 치부는 문화를 견인할 정도의 역량이 안 되었던 것이다.

 

 

성리학이 추구한 구조는 사농공상의 중농주의다. 불교로 대표되는 고려가 상업의 나라였다면, 조선은 농업 국가였다. 이로 인해 농업생산자가 아닌 제조업자(공인)와 상인은 하류에 속했으며, 예술가는 더 낮은 등외의 천인에 불과했다. 이런 사회구조는 예술과 문화의 몰락을 초래한다.

 

 

 

문화재청이 2023년 7월 일본에서 환수해 그해 9월 6일 공개한 13세기 고려시대 나전칠기인 나전국화넝쿨무늬상자의 국화넝쿨무늬. 문화재청 제공

 

 

 

 

현존하는 한국 문화재의 60∼70%는 불교문화재다. 이는 성리학이 추구한 이념과 이로 인한 문화 단절을 잘 알게 해준다. 이렇게 놓고 본다면, 유교가 붕괴한 지 불과 100여 년 만에 대두한 한류의 저력은 실로 괄목할 만하다. 우리 문화산업은 음악·드라마·영화 등에서 다양하게 세계를 넘나들고 있다. 또 이들에 대한 대우와 인식도 변화한 지 오래다. ‘연예인 걱정은 하는 게 아니다’라는 말이 유행할 정도니,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그런데 불과 100여 년 만에 민족 성향이 이렇게까지 바뀔 수 있을까? 아니다. 삼국지 '동이전-고구려'에는 우리가 ‘밤낮으로 노래와 춤을 즐긴다’는 내용이 있다. 이런 예술적 기질이 성리학의 조선에서 불교의 예술 필연성을 타고 오늘에 전해진다. 억눌리긴 했지만, 조선에서도 우리 민족의 문화적 힘은 면면히 계승된 것이다.(1)

 

 

 

 

선재동자가 깨달음을 얻기 위해 떠난 구법여행에서 관음보살을 만나 지혜를 구하는 장면을 그린 ‘수월관음도’는 또 어떤가. 무릎을 꿇은 선재동자의 귀여운 모습과 물에 비친 관음보살의 자비가 대비를 이루며 고통과 괴로움에서 벗어나고 싶어하는 인간의 염원을 따뜻한 시선으로 짚는다.

 

 

■ ‘불멸의 작품’ 세한도·수월관음도...추울때 봐야 제맛

이향휘 선임기자(scent200@mk.co.kr)2024. 1. 11. 15:48

 

국립중앙박물관 기증관 첫 전면개편

기증자별 아닌 주제별로 작품 전시

 

 

선재동자가 깨달음을 얻기 위해 떠난 구법여행에서 관음보살을 만나 지혜를 구하는 장면을 그린 ‘수월관음도’는 또 어떤가. 무릎을 꿇은 선재동자의 귀여운 모습과 물에 비친 관음보살의 자비가 대비를 이루며 고통과 괴로움에서 벗어나고 싶어하는 인간의 염원을 따뜻한 시선으로 짚는다.

 

 

선재동자가 무릎을 꿇고 관음보살에게 지혜를 구하는 ‘수월관음도’. <국립중앙박물관>
 
 
 

 

작품들이 더욱 감동을 주는 것은 기증자의 애틋한 스토리가 더해지기 때문이다. 수월관음도의 경우 기증자인 윤동한 한국콜마홀딩스 회장은 일본 경매에 직접 뛰어들어 작품을 수십억원에 구입한 뒤 박물관에 기증했다. 합법적인 문화재 환수운동을 벌인 것이다.(2)

 

 

 

 

가가미진자 ‘수월관음도’는 현존하는 고려 불화 170여 점 중 제일 크고 가장 아름다운 그림으로, 딱 두 번 고국 땅을 밟았다. 1995년 호암갤러리에서 열린 ‘대고려국보전’에 처음 나왔고, 2009년 경남 양산 통도사 성보박물관에서 전시됐다. 제작 시기와 발원자(發願者), 그린 사람을 모두 알 수 있는 유일한 고려 불화다.

 

 

현재 그림상에는 없지만 일본인이 쓴 ‘측량일기’에 화기(畵記)가 남아 있어 1310년(충선왕 2) 왕과 숙비(淑妃·후궁 김씨)의 발원으로 8명의 화가가 참여해 그렸다는 내용이 있다. 전문가들은 “화려한 색채와 문양, 섬세하고 치밀한 묘사, 완벽하게 숙달된 기법 등 고려 불화의 독창적 예술성을 최대치로 뽑아낸 명품”이라고 꼽는다.

 

 

■ 폭 2.5m 높이 4.2m… 日 박물관에 나온 압도적 고려 불화

조선일보 후쿠오카/허윤희 기자 2023. 9. 18. 03:04

 

규슈박물관 고려·조선 불교미술展

 
 
현존 최대 고려불화인 일본 사가현 가라쓰시 가가미진자 소장 ‘수월관음도’(1310년). 세로 419.5㎝, 가로 254.2㎝. /규슈국립박물관

 

 

 

“아, 숨이 턱 막힐 정도로 아름답네요.”

 

높이 4m 넘는 불화에 압도된 관람객 사이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온 세상 중생의 고난을 보살핀다는 자비(慈悲)의 관음보살이 비단 화폭 속에서 빛나고 있다. 호화로운 금박 무늬에 붉은 치마, 시스루 같은 투명 베일을 온몸에 두른 고혹적 자태. 달빛 아래 바위에 앉은 관음보살이 진리를 구하는 선재동자를 내려다보는 ‘수월관음도(水月觀音圖)’다.

 

 

현존 최대(最大) 고려 불화인 일본 사가현 가라쓰(唐津) 가가미진자(鏡神社) 소장 ‘수월관음도’(세로 419.5㎝, 가로 254.2㎝)가 전시장에 걸렸다. 일본 후쿠오카현 규슈국립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전시 ‘숭고한 믿음의 아름다움-고려시대와 조선시대의 불교미술’에서다.

 

 

박물관은 “고려와 조선은 불교에 대해 서로 다른 정책을 펼쳤으나 두 시대 모두 많은 불상과 불화가 만들어졌다”며 “천년에 걸친 고려와 조선시대 가운데 11~16세기 작품을 전시했다”고 소개했다. 평소 사찰 밖을 나오기 힘든 고려 불화와 조선 불화, 불상, 고려 나전 경함, 청자까지 48점이 출품됐다.

 

 

일본 규슈국립박물관 전시장에 걸린 가가미진자 소장 ‘수월관음도’를 관람객들이 감상하고 있다. /허윤희 기자

 

 

 

특히 가가미진자 ‘수월관음도’는 현존하는 고려 불화 170여 점 중 제일 크고 가장 아름다운 그림으로, 딱 두 번 고국 땅을 밟았다. 1995년 호암갤러리에서 열린 ‘대고려국보전’에 처음 나왔고, 2009년 경남 양산 통도사 성보박물관에서 전시됐다. 제작 시기와 발원자(發願者), 그린 사람을 모두 알 수 있는 유일한 고려 불화다.

 

 

현재 그림상에는 없지만 일본인이 쓴 ‘측량일기’에 화기(畵記)가 남아 있어 1310년(충선왕 2) 왕과 숙비(淑妃·후궁 김씨)의 발원으로 8명의 화가가 참여해 그렸다는 내용이 있다. 전문가들은 “화려한 색채와 문양, 섬세하고 치밀한 묘사, 완벽하게 숙달된 기법 등 고려 불화의 독창적 예술성을 최대치로 뽑아낸 명품”이라고 꼽는다.

 

 

규슈국립박물관은 2005년 건립 당시부터 이 그림을 온전히 펼쳐 전시하기 위해 특별 진열장을 맞췄다. 박물관 관계자는 “규슈박물관은 아시아와의 교류를 주제로 건립한 박물관이라 설계 당시부터 규슈 지역을 대표하는 유물을 생각하며 건물을 지었다”며 “그중 하나가 바로 가가미진자 수월관음도”라고 했다. 전시장에서 만난 국내 연구자들은 “워낙 거대한 그림이라 아래를 말아서 전시하거나 멀리서 볼 수밖에 없었는데 이렇게 가까이에서 전체를 살펴볼 수 있어서 감동적”이라고 했다.

 

 

일본 가나가와현 엔가쿠지(円覚寺) 소장 ‘지장보살상’(고려 13~14세기). /규슈국립박물관

 

 

 

국내 불교미술사 연구자들과 불화 작가, 애호가들은 올 초부터 이 전시를 기다려 왔다. 가나가와현 엔가쿠지(円覚寺) 소장 ‘지장보살상’, 히로시마현 후도인(不動院) 소장 ‘만오천불도’ 등 평소 공개되지 않는 고려·조선 불화들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기회다.

 

 

불교 회화 연구자인 김정희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이사장은 “조선 전기 불화는 국내에 워낙 작품이 없어서 연구자들도 도판을 통해서만 접해왔는데, 일본에서도 전국 사찰에 흩어져 있는 작품을 이렇게 한꺼번에 모으기가 쉽지 않다”며 “‘관경십육관변상도’ 등 동일한 주제를 그린 고려 불화와 조선 불화를 나란히 전시해 비교할 수 있게 한 전시 기법도 흥미로웠다”고 했다.

 

 

 

조선 12대 왕 인종의 비인 인성왕후 발원으로 제작된 ‘관음삼십이응현도’(1550년·교토 지온인 소장). /규슈국립박물관

 
 
 
 
일본 후쿠오카현 혼가쿠지(本岳寺) 소장 15세기 조선 불화 ‘석가탄생도’. /규슈국립박물관

 

 

 

 

13~14세기 고려 불화인 엔가쿠지 소장 ‘지장보살상’은 호방하고 활력 넘치는 당당한 필선이 눈길을 끈다. 교토 지온인(知恩院) 소장 ‘관음삼십이응현도’는 조선 1550년 인성왕후(조선 12대 왕 인종의 비)의 발원으로 제작됐고, 후쿠오카현 혼가쿠지(本岳寺) 소장 15세기 조선 불화 ‘석가탄생도’는 일본에 전파된 후 17~19세기 에도 시대 사찰에서 앞다퉈 베껴 그리면서 신앙의 대상이 된 그림이다. 국화와 당초 무늬가 촘촘히 새겨진 고려시대 나전 경함(도쿠가와미술관 소장), 두건을 쓴 11세기 고려시대 ‘지장보살 유희 좌상’, 말간 비취색 ‘청자 음각 물가풍경무늬 정병’도 빠뜨리지 말아야 할 명품이다.

 

 

 

두건을 쓴 고려 11세기 ‘지장보살 유희좌상’(규슈국립박물관 소장). /허윤희 기자

 

 

 

 

일본 후쿠오카현 규슈국립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숭고한 믿음의 아름다움-고려시대와 조선시대의 불교미술’ 전시장 전경. /허윤희 기자

 

 

 

전시를 기획한 모리자네 구미코 규슈국립박물관 학예관은 “고려와 조선의 불교 문화는 단절된 게 아니라 계속 이어져 왔다는 걸 이번 전시에서 강조하고 싶었다”며 “규슈박물관에 기탁된 지온인 소장 불화들이 대부분 나왔으니 많이 오셔서 감상하시면 좋겠다”고 했다.(3)

 

 

 

 

14세기 초반 고려시대 불화(佛畵)인 ‘관음보살내영도(觀音菩薩來迎圖)’가 최초로 발견됐다. 아미타불(阿彌陀佛) 대신 관음보살이 등장하는 내영도는 지금껏 알려진 적이 없는 새로운 형식이다. 이 작품은 일본으로 반출됐다가 최근 국내 한 사립박물관장이 올 2월 우연히 구입했다. 불화를 감상한 학자들은 세계 불교 미술사를 새로 써야 하는 획기적인 발견이라고 평가한다.

 

 

■[단독]14세기 고려불화 '관음보살내영도' 최초 발견

동아일보 김상운 기자 2017. 5. 22. 03:03

 

 
 
최근 일본에서 한국으로 넘어온 고려 불화 ‘관음보살내영도’. 고려시대 내영도 가운데 아미타불 대신 관음보살을 그린 불화는 처음이다. 금가루로 칠한 관음보살의 보관과 목걸이, 팔찌, 옷자락이 더없이 화려하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 왜 관음보살만 그렸을까

 

불교미술 권위자로 문화재위원을 지낸 문명대 동국대 명예교수(77·한국미술사연구소장·사진)는 “해당 고려불화를 정밀 감정한 결과 1300∼1319년경 그려진 관음보살내영도로 확인됐다”고 21일 밝혔다. 그는 “고려시대 내영도는 우리나라와 일본, 유럽 등에 총 30점가량 남아 있는데 아미타불이 아닌 관음보살만 등장하는 그림은 이것이 유일하다”고 덧붙였다. 통상 관음보살의 보관(寶冠)에 그리는 화불(化佛)이 연꽃 위에 표현된 것도 전례가 없다는 설명이다.

 

내영도란 서방 정토(淨土)에 사는 아미타불이 죽은 사람을 극락으로 맞아들이는 장면을 묘사한 불화다. 내영도는 아미타불이 혼자 등장하거나 관음보살, 대세지보살과 함께 나타나는 삼존도(三尊圖) 혹은 25보살이 함께 서는 형식이 일반적이다. 관음보살만 홀로 그린 내영도는 유례를 찾아볼 수 없다. 문 명예교수는 “6세기 삼국시대에 시작된 관음신앙이 고려시대에도 유행하면서 아미타불 대신 관음보살만 독존(獨尊)으로 그려졌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 지상으로 내려온 ‘금빛 관음’

 

금실로 수놓은 화려한 천의(天衣) 자락을 휘날리며 관음보살이 구름을 타고 내려온다. 천의를 휘감은 투명한 비단도 바람에 나풀거린다. 극락으로 들어가길 갈구하는 중생의 염원이 전해졌을까. 아직 지상에 닿지도 않았는데 관음의 오른손은 이미 죽은 이를 향해 손짓하고 있다. 부드러운 표정으로 사자(死者)를 맞아들이는 관음이 속삭이는 듯하다. “그동안 고생 많았네. 이제 편히 쉬시게.”

 

이번에 확인된 관음보살내영도는 가로 34.5cm, 세로 83cm 크기의 비단에 관음이 구름(飛雲)을 타고 극락에서 지상으로 내려오는 장면을 극적으로 표현했다. 마치 귀부인을 연상시키는 아름다운 얼굴의 관음은 오른손을 내밀어 왕생자를 인도하는 동시에 왼손으로 붉은색 연꽃을 받쳐 들고 있다. 연꽃 위로 앙증맞게 그려진 아미타 화불을 특히 주목할 만하다. 김창균 동국대 교수(불화 전공)는 “고려불화 가운데 보관이 아닌 연꽃 위에 화불이 그려진 전례가 없다”며 “매우 특이한 도상(圖像)”이라고 말했다.

 

관음이 머리에 쓴 보관을 비롯해 목걸이, 팔찌, 옷자락 등을 화려하게 물들인 금빛도 보는 이의 눈길을 잡아끈다. 특히 천의를 장식하고 있는 세밀한 식물무늬는 금 선묘(線描)의 진수를 보여준다. 관음의 옷자락에 연꽃과 당초(唐草), 보상화, 모란 잎의 4가지 무늬가 한꺼번에 그려진 것이 독특하다. 문 명예교수는 “하나의 옷자락에 4가지 식물무늬를 함께 묘사한 고려불화는 처음 본다”고 말했다.

 

 

○ 일본서 고국으로 돌아온 관음

 

관음보살내영도의 제작 시기는 치밀한 금 선묘와 전체적으로 역동적인 도상, 독특한 ‘모란 잎’ 표현기법을 감안할 때 14세기 초로 추정된다. 고려불화는 말기로 갈수록 아미타불의 동적인 느낌이 점차 사라지고 정제된 도상으로 바뀐다. 이 그림에서는 관음이 딛고 있는 구름이 비스듬히 날고 있는 데다 앞부분이 용머리 형상으로 표현돼 역동성을 극대화했다. 문 명예교수는 “옷자락에 그려진 모란 잎이 세 갈래로 갈라진 뫼산(山) 형태에 줄기가 좌우 대칭을 이루는데, 이는 1300년 전후 고려불화에서 주로 나타나는 표현기법”이라고 설명했다.

 

관음보살내영도는 비단 테두리를 일본식으로 배접한 흔적이 남아 있어 과거 어떤 시점에 일본으로 유출됐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화기(畵記)가 없어 유출 시점을 알 순 없지만 고려불화들은 고려 말 왜구들에 의해 약탈됐거나 일제강점기 때 빼돌려진 게 대부분이다. 문 명예교수는 관음보살내영도의 역사적 의미를 분석한 논문을 다음 달 15일 학술지(강좌미술사 48호)에 게재할 예정이다.(4)

 

 

 

 

 

<자료출처>

 

 

(1) https://v.daum.net/v/20250224043137522 한국일보 2025. 2. 24.

 

 

(2) https://v.daum.net/v/20240111154801759 매일경제 2024. 1. 11.

 

 

(3) https://v.daum.net/v/20230918030403847 조선일보 2023. 9. 18.

 

 

(4) [단독]14세기 고려불화 '관음보살내영도' 최초 발견 (daum.net) 동아일보 2017.05.22.             

 

 

 

 

<참고자료>

 

 

https://v.daum.net/v/2023100908051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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