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력사를 찾아서
30년간 발해문명권을 연구해온 이형구 선문대 교수도 똑같은 심정이었으리라. 선양을 출발하여 8000년 유적인 차하이(査海·사해)~싱룽와(興隆窪·흥륭와) 탐사에 나서는 길.중국인들이 ‘중화 제1촌(차하이)’, ‘화하(華夏) 제1촌(싱룽와)’이라 하여 중국 시조의 마을로 떠받드는 곳이다. 하지만 이 두 곳은 발해문명. 즉 우리 민족뿐 아니라 중국·일본까지 아우르는 동아시아 문명의 젖줄이 된 발해문명의 여명을 열어젖힌 곳이 아닌가. # 8000년 전의 용(龍) 다링허 상류 낮은 구릉지대에 자리잡은 차하이 유적에서 확인된 돌무더기 용의 형상이다. 주거지와 주거지 사이에서 발견됐으며, 용 신앙의 시원으로 평가된다. 뻥뻥 뚫린 채 방치된 수풀이 무성한 발굴 흔적 너머로 인공 울타리가 보인다. 가..
다음백과에 따르면 신라는 648년(진덕여왕 2년)에 당과 고구려, 백제를 멸망시킨 뒤 패강(대동강)을 경계선으로 한반도를 당과 신라가 나누어 통치한다는 비밀협약 - 나당동맹을 맺었다고 합니다. 7세기에 접어들면서 삼국은 치열한 전쟁을 전개했다. 당시 고구려는 백제와 연결하여 신라를 협공하는 형세였고, 신라는 당나라를 끌어들여 위기를 모면하고자 했다. 당나라 또한 고구려의 배후를 견제하려는 목적으로 신라와의 연대를 적극 모색할 필요가 있었다.신라는 고구려·백제가 침입할 때마다 당에 구원 사절을 파견했고, 당나라는 신라를 일방적으로 두둔하는 입장에서 고구려·백제에 대해 외교공세를 강화하기도 했다. 648년(진덕여왕 2) 두 나라는 고구려와 백제를 멸망시키기 위한 군사적 결탁을 한층 더 공고히 하고, 두 나..
한반도와 인접해 우리 동포들이 많이 거주했던 옛 간도와 만주땅인 랴오닝성, 지린성, 헤이룽장성 등 중국 동북 3성 인구가 10년간 1100만명 넘게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12일 중국 CCTV 등 중국매체에 따르면 국가통계국이 전날 발표한 인구 센서스 결과 동북 3성 상주인구는 2010년 말 1억952만여명에서 지난해 말 9851만여명으로 10%나 줄었습니다. 중국 전체 인구 늘었지만, 동북 3성은 인구 급감중국 당국, 동북 3성 산아제한 전면 완화 검토 중국 인구가 10년 전 13억3972만여명에서 14억1178만명으로 늘었지만, 우리 동포가 주로 거주하던 동북 3성 지방 인구는 1100만명이나 급감한 것으로 조사됐다. 사진은 중국 상하이에서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는 중국인 가족.[EPA] ..
《환단고기는 어떤 책인가?》 5.7 《태백일사》 〈대진국본기〉 대중상의 후고구려 건국 1세 세조 진국열황제(668년~699년), 연호는 중광 『《조대기》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개화 27년(단기 3001년, 668년) 9월 21일 평양성이 함락될 때 진국장군 대중상이 서압록하를 지키다가 변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들으셨다. 마침내 무리를 이끌고 험한 길을 달려 개원(開原)을 지나는데 소문을 듣고 따르기를 원하는 자가 8,000명이었다. 함께 동쪽으로 돌아가 동모산에 이르러 웅거하고, 성벽을 굳게 쌓고 스스로 보전하여 나라 이름을 후고구려라 칭하고 연호을 중광(重光)이라 하셨다. 격문을 전하니 이르는 곳마다 멀고 가까운 여러 성에서 합류하는 자가 많았다.오로지 옛 영토를 회복하는 것을 자신의 소임으..
홍원탁 [홍원탁의 동아시아역사 바로보기]거란족의 요(遼)를 여진족 금(金)이 대체 2005.08.08 동부 만주 삼림 속에서 살던 여진족은, 서 만주 선비족의 후예인 거란족 요 왕조가 운영하던 2원 통치조직의 효용성을 일찍이 체득했고, 1126년에는 북중국 전체를 정복했다. 중국 역사상 1126년이란 한족이 만주족 왕조에 의해 두 번째로 중원으로부터 쫓겨난 사건을 상징한다. 고려와 금 나라의 창건자들은 모두 옛 고구려의 후계자임을 천명했다. 왕건은 신생왕국을 고구려를 본 따 고려라 불렀고, 금 나라는 실제로 만주 전체를 점거했다. 금사(金史) 기록을 보면, 완안부 시조 자신이 본래 고려(혹은 고구려)에서 왔고, 여진과 발해는 한 가족이라고 말한다. 김부식은 삼국사기를 편찬하면서 고려를 신라의 후계자로..
2015.08.05 09:49 칭기스 칸 가계의 비밀 코드를 찾아서(1)- 전원철 박사 인터뷰 1300년 동안 숨겨진 칭기스 칸 가계의 비밀 (economychosun.com) 이상흔 조선pub 기자 130호 6월호에는 북방민족사학자 주몽예씨의 "칭기즈 칸은 고구려-발해 왕가(王家)의 후손"이라고 주장하는 다소 \'도발적인\' 기고문이 한편 실렸다. 주몽예씨는 칭기스 칸 연구를 위해 29개국 언어로 된 사서를 읽고 이를 전부 비교대조한 결과 이러한 결론을 도출하였다고 한다. 그의 기고문에 대한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주몽예씨의 본명은 최근 《고구려-발해인 칭기스 칸1. 2권》을 펴낸 전원철 박사인 것으로 밝혀졌다. 은 그가 칭기스 칸 연구에 뛰어든 계기와 기고문에서 못다한 이야기를 들어보기 위해 직접..
민성욱 말갈과 한민족 국가 간의 관계K스피릿 입력 2021.07.07 09:02 기자명민성욱 박사 [칼럼] 민성욱 박사 말갈은 실체가 있었기 때문에 동일한 시대, 동일한 지역에 존재했던 많은 국가 또는 집단과는 일정한 관계를 유지해 왔다. 그래서 고조선, 부여, 고구려, 발해 등 만주지역에서 비롯되었던 한민족의 여러 국가들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우선 기록상으로 『삼국사기』 에 등장하는 수많은 말갈 관련 기록과 중국 정사 중 「동이열전」에 등장하는 말갈계 종족들의 기록들, 『수서』이후에 등장하는 말갈은 독립된 열전으로 처음에는 「동이열전」에서 시작해서 「북적열전」으로 이어지는 관련 기록이 많아 남아 있다. 일본사서에는 『속일본기』,『유취국사』 등에 말갈 관련 기록이 등장한다. 말갈은 스스로 역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