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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사라 력사를 찾아서

1. 백제 (3) 사비(부여)도읍기(성왕-위덕왕- 혜왕-법왕-무왕-의자왕, 538~660년) 본문

여러나라시대/백제

1. 백제 (3) 사비(부여)도읍기(성왕-위덕왕- 혜왕-법왕-무왕-의자왕, 538~660년)

대야발 2021. 7. 5. 2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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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령왕의 뒤를 이은 성왕은 도읍을 사비로 옮기고 나라 이름을 남부여로 고쳤다. 성왕은 신라 · 가야와 연합하여 고구려군을 한강 유역에서 몰아내고 백제는 한강 하류유역을, 신라는 한강 상류유역을 차지하였다.

 

 

이 시기에 백제 공주가 신라에 시집가는 등 백제와 신라의 관계가 매우 우호적으로 진행되는 듯하였으나 말년에 신라가 배신하여 백제의 동북변을 차지하자 성왕은 이에 대한 보복으로 신라를 공략하는 과정에서 사망하였다.

 

 

 

 

성왕의 뒤를 이은 위덕왕은 중국의 남조와는 물론 북조(당시의 북제)와도 우호관계를 맺었는데, 북제는 위덕왕에게 사지절도독동청주제군사동청주자사(使持節都督東靑州諸軍事東靑州刺史)라는 작위를 내렸다.

 

 

이는 백제가 동청주를 지배하는 것을 승인한 것이다. 백제는 일찍이 서기 245년경에 중국의 동북부에 진출하여 그 동부 해안지역을 지배해 왔는데  그 지배가 위덕왕 때까지 계속되다가 서기 581년 수나라가 중국을 통일하면서 마감되었다.

 

 

 


이 기간에 백제는 한성에서 웅진으로, 다시 사비로 도읍을 옮겼는데, 중국의 동부 지배는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을 통해볼 때 백제가 한성에서 웅진과 사비로 도읍을 옮긴 것은 고구려의 남하 때문이기도 했지만 충청도와 전라도의 곡창지역과 함께 중국의 동부 해안지역을 확보하는 것이 국가적으로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곡창지역을 기반으로 웅지를 펴려던 백제는 수나라의 중국 통일로 중국 동부의 경제적 기반을 상실하게 되었다. 그러한 상황에서도 무왕은 부흥을 시도하였으나 끝내 성공하지 못하고 그의 뒤를 이은 의자왕 때에 신라와 당나라의 연합군에게 멸망하고 말았던 것이다.

 

 

 

 

 

<참고자료>

 

 

 

윤내현, 한국열국사연구, 214-217쪽

 

 

 

 

 

[네이버 지식백과] 백제 성왕의 전사와 신라의 영토 확장 (조선상고사, 2014. 11. 28., 신채호, 김종성)

 

 

[네이버 지식백과] 부여성충의 전략 건의 (조선상고사, 2014. 11. 28., 신채호, 김종성)

 

 

[네이버 지식백과] 계백과 의직의 전사 (조선상고사, 2014. 11. 28., 신채호, 김종성)

 

 

[네이버 지식백과] 의자왕의 체포와 백제 2대 도읍의 함락 (조선상고사, 2014. 11. 28., 신채호, 김종성)

 

 

 

백제 마지막 왕이 의자왕?…아니다, 32대 풍왕이 있다[이기환의 Hi-story] (daum.net)이기환 기자 2023. 11. 6. 

 

 

 

 

 

 

 

동양초유의 국제전을 벌인 백제의 최후:플러스 코리아(Plus Korea)2008/04/30

 

 


[씨줄날줄] 비운의 백제왕 昌/이용원 수석논설위원 | 서울신문 (seoul.co.kr)2007-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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