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사라 력사를 찾아서
3. 가야(가라) 고고학 (3) 함안 말이산 고분군 마갑총과 함안 말이산 고분군 13호분 본문
1992년 6월 6일 오전. 함안 성산산성을 한창 발굴 중이던 박종익 당시 학예연구사(현 국립중원문화재연구소장)가
평소 친분이 있던 한 일간지 지국장으로부터
자신이 데리고 있는 배달소년이
인근 아파트 공사현장에서 “암만 봐도 문화재 같은” ‘요상한’ 물건을 주워 왔다는 사학과 출신 지국장의
다급한 전화를 받고
박종익은 꽃삽을 내려놓고 한달음에 현장으로 달려갔습니다.
"소년이 주워서 신문지에 둘둘 말아 넣은 쇳조각을 본 순간 그는 ‘말 갑옷(馬甲·마갑)’임을 대번에 알아차렸다.
조영제 경상대 교수와 경남 합천군 옥전 고분을 발굴할 당시 비슷하게 생긴 말 갑옷 조각을 본 적이 있었다.
소년이 발견한 조각은 황갈색 녹이 두껍게 낀 상태였고, 말에 두른 갑옷답게 길이는 10cm가 넘었다."
■ 함안 말이산 고분군 마갑총
1992∼1996년 말이산 고분을 발굴한 이주헌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장(54)은 “함안군 주민들 덕분에 아라가야 고분이 온전히 보존될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 신문배달 소년이 살린 가야 무덤
갑옷 조각은 굴착기로 배수로를 판 구덩이에서 발견됐는데 다른 조각들도 주변에 흩어져 있었다. 박종익은 즉시 도청에 전화해 공사를 중단시킨 뒤 성산산성 발굴현장으로 돌아갔다. 다음 날 갑옷 수습 임무를 맡은 이주헌이 현장에 급파됐다.
1주일에 걸쳐 흙을 조심스레 제거하자 길이 8.9m, 너비 2.8m의 거대한 덧널무덤(목곽묘)과 함께 말 갑옷이 살짝 모습을 드러냈다. 갑옷을 모두 노출시키는 데 열흘이 더 걸렸다.
1500년이 흘러 부식이 심한 갑옷 표면을 손상시키지 않고 무사히 들어내기 위해 6명이 달라붙어 오직 이쑤시개로 흙을 긁어내야 했기 때문이다.
길이 2.3m, 너비 48cm의 말 갑옷은 한 세트가 시신 좌우에 나란히 묻혀 있었다. 굴착기 삽날로 일부가 훼손된 걸 제외하면 거의 온전한 형태로 발견돼 커다란 관심을 끌었다.
앞서 부산 복천동과 경남 합천군에서 말 갑옷이 출토됐지만 완형이 아닌 조각들이라 전체 윤곽을 파악할 수 없었다. 당시 암 투병 중이던 고고학 대가 김원룡 서울대 교수가 직접 현장을 방문해 유물을 본 뒤 감탄사를 연발할 정도였다.
5세기 중엽 아라가야 때 조성된 이 무덤은 출토 유물의 이름을 따서 ‘마갑총(馬甲塚)’으로 명명됐다. 말 갑옷은 7년의 보존처리를 거쳐 현재 국립김해박물관에 전시돼 있다.
○고구려·백제와 교류 흔적
고고학계는 말이산 고분이 아라가야와 주변국의 문물 교류를 생생히 보여준다고 평가한다. 실제로 마갑총 출토 말 갑옷은 고구려 쌍영총이나 동수묘 벽화에 묘사된 기마병의 말 갑옷과 매우 흡사한 형태다.
이에 따라 400년 고구려 광개토대왕이 한반도 남부를 공략할 때 가야로 유입된 고구려 갑옷이라는 견해가 있다. 그러나 마갑총 조성 시점을 430년 이후로 보면 쇠를 다루는 데 능했던 가야인들이 고구려 갑옷의 영향을 받아 자체 생산한 것이라는 주장도 제기된다.
무엇보다 말이산 고분의 묘제가 시대에 따라 널무덤(목관묘)과 덧널무덤, 구덩식 돌덧널무덤(수혈식 석곽묘), 굴식돌방무덤(횡혈식 석실묘)으로 다양하게 변화된 것도 주변국 영향이 컸다.
이 중 6세기 전반에 나타난 굴식돌방무덤은 백제의 무덤양식을 들여온 것으로 분석된다. 당시 강성해진 신라의 서진(西進)에 위협을 느낀 아라가야는 백제, 대가야와 연맹을 맺은 상태였다.
이주헌은 “마갑총에서 나온 둥근고리큰칼(환두대도)도 백제 중앙과 아라가야의 긴밀한 교류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유물”이라고 말했다.
5~6세기 아라가야인들은 왜 남두육성을 무덤방 덮개돌에 새겨 넣었을까. 지난해 12월 18일 아라가야 왕릉급 고분인 함안 말이산 13호분(사적 제515호)에서는 전갈자리와 궁수(사수)자리 등의 별자리 125개가 새겨진 덮개돌이 확인됐다. 더욱 특이한 것은 별자리가 새겨진 구덩식 돌덧널 무덤방의 벽면이 붉게 채색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함안 말이산 13호고분의 무덤 덮개돌에 새겨진 별자리. 1500년전 아라가야인들이 봄철 남쪽 밤하늘에서 관측한 별자리라 한다. |동아시아문화재연구원 제공
■북두칠성에 비해 초라한 남두육성이지만…
한국에서는 궁수자리에 속한 6개의 별을 일컬어 남두육성이라고 한다. 북천에 거린 큰 국자(북두칠성)를 축소한 것처럼 은하수에 반쯤 잠긴 국자모양이라 해서 남두육성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그러나 남두육성은 북두칠성과 견줄 수 없다. 별 밝기가 북두칠성(1~2등급)에 비해 어두운 2~3등급이고 왜소한 편이다. 게다가 남두육성은 북두칠성처럼 1년 내내 보이는 별자리도 아니다. 또 가장 남쪽에 있어서 관측되는 시기가 한정되어 있다.
북두칠성은 죽음과 북쪽, 하늘을 상징한다. 주로 고구려 고분 벽화에서 묘주인공의 뒷배경으로 자리잡고 있다. 이것은 묘주인공의 사후 세계를 보호하고 내세를 주관한다는 의미를 갖는다. 고구려 고분벽화 등에서는 남두육성을 북두칠성과 쌍벽을 이룬 별자리로 여겼다.
덕화리 1·2호분의 성수도. 북두칠성과 남두육성, 일상과 월상이 새겨져 있다. |김일권 교수의 논문에서
아마도 고구려인들은 방위를 표현하는 의미로 북방의 북두칠성과 남방의 남두육성을 배치한 것 같다. 북두칠성을 죽음, 남두육성을 삶의 상징별자리로 삼았다는 것은 기록으로 남아있다.
물론 이번 말이산 13호분에서는 125개의 별 중에서 궁수자리(남두육성)와 전갈자리(청룡별자리)만 확인됐다.
전문가들은 일단 무덤 안의 벽면이 붉게 채색된 것을 주목했다. 4개 벽면을 전부 점토로 바르고 붉게 칠했다.
말이산 13호분을 조사한 최경규 동아시아문화재연구원 조사단장은 “속단할 수는 없지만 무덤 벽면의 붉은 채색은 태양과 생명을 뜻하는 남두육성과 어떤 연관성을 맺고 있지는 않을까”하고 조심스럽게 추정했다.
김일권 교수는 “전갈자리, 즉 청룡별자리도 남두육성, 즉 궁수자리와 마찬가지로 봄철~여름철까지 보이는 별자리”라면서 “결국 5~6세기 아라가야인들이 따뜻한 봄날 남쪽하늘에 나타난 별자리를 관측해서 그려넣었을 것”이라고 풀이했다.
이번 발굴은 1500년전 아라가야인들의 천문사상을 더듬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됐다.
말이산 고분에서 2㎞ 쯤 떨어진 아라가야 왕성터에서는 추정 연병장터와 내무반터, 무기창고터, 망루터 등 왕성을 방어하기 위해 세워진 것으로 보이는 군부대시설 14개동이 확인됐다.
신라 부부조각상에 새겨진 북두칠성과 남두육성. 고대인들은 북두칠성을 죽음을, 남두육성을 삶을 주관하는 별자리로 여겼다.|국립경주박물관 소장
그렇다면 고구려에서나 그런 관념을 갖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고대 별자리 전문가인 김일권 한국학중앙연구원 대학원 교수(민속학)는 “그렇지 않다”고 손사래친다. 신라시대 부부 시신이 안치된 석관의 뚜껑에 해당되는 ‘부부 조각상’ 유물을 보면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주인공 부부는 베개를 나란히 베고 고요히 잠든 모습을 하고 있는데 이들의 머리 위로 해와 달 원반이 새겨져 있고, 그 옆에 각기 북두칠성과 남두육성을 그려 놓았다는 것이다.
고구려의 천문관을 이어받았는지는 몰라도 신라시대에도 삶(남두육성)과 죽음(북두칠성)을 관장하는 북두와 남두의 점성 관념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럼 가야 지역에서는 보이지 않았을까. 김일권 교수는 “아니”라고 한다. 물론 가야고분에서는 이번에 처음 남두육성 별자리가 나왔다. 하지만 대구 진천동 선돌유적과 고령가야 지역의 별자리 암각화에서 남두육성이 여럿 보인다는 것이다.
북두칠성과 남두육성의 실측대비도. 남두육성은 북두칠성에 비해 밝기와 크기가 보잘것 없지만 북두칠성과 쌍벽을 이루는 별자리로 대우했다.|김일권 교수의 논문에서
(출처; 고구려 고분과 아라가야 왕릉의 남두육성..그 깊은 뜻은?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daum.net)2019. 1. 4.)
<참고자료>
함안 말이산 고분군, 발굴조사 현장공개회 개최 (daum.net)2023.09.07
[단독] 가야시대 토기의 최고 걸작 나왔다 (hani.co.kr) 2019-07-14
'가야무덤 600여 기' 쏟아졌다..거대한 부부 묘 '눈길' (daum.net) 2019. 6.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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