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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후기신라의 강역 (2) 후기신라(통일신라)의 북계는 어디인가? 본문

남국/후기신라

2. 후기신라의 강역 (2) 후기신라(통일신라)의 북계는 어디인가?

대야발 2024. 11. 23.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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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백과에 따르면 신라는 648년(진덕여왕 2년)에 당과 고구려, 백제를 멸망시킨 뒤 패강(대동강)을 경계선으로 한반도를 당과 신라가 나누어 통치한다는 비밀협약 - 나당동맹을 맺었다고 합니다.

 

 

 

7세기에 접어들면서 삼국은 치열한 전쟁을 전개했다. 당시 고구려는 백제와 연결하여 신라를 협공하는 형세였고, 신라는 당나라를 끌어들여 위기를 모면하고자 했다. 당나라 또한 고구려의 배후를 견제하려는 목적으로 신라와의 연대를 적극 모색할 필요가 있었다.

신라는 고구려·백제가 침입할 때마다 당에 구원 사절을 파견했고, 당나라는 신라를 일방적으로 두둔하는 입장에서 고구려·백제에 대해 외교공세를 강화하기도 했다.

648년(진덕여왕 2) 두 나라는 고구려와 백제를 멸망시키기 위한 군사적 결탁을 한층 더 공고히 하고, 두 나라를 멸망시킨 다음 패강(대동강)을 경계선으로 한반도를 당나라와 신라가 나누어 통치한다는 비밀협약을 맺기도 했다. 이러한 협약은 당나라가 고구려와 백제를 멸망시키기 위해 군대를 파견하고, 신라가 이에 호응하면서 구체화되었다.

(출처; 다음백과, https://100.daum.net/encyclopedia/view/b03n2391a)

 

 

 

그런데 《삼국사기》 진덕여왕 2년조에 나당동맹이라는 위와 같은 비밀협약 내용은 나오지 않고 당 태종이 군사의 출정을 허락하였다는 기록만 있습니다.

 

 

진덕왕(眞德王) 

김춘추를 당나라에 보내다 ( 648년 ) 

 

〔2년(648)〕 이찬(伊湌) 김춘추(金春秋)와 그의 아들 문왕(文王)을 당(唐)나라에 보내 조공하였다. 〔당나라〕 태종(太宗)이 광록경(光祿卿) 유형(柳亨)을 보내어 교외에서 마중하고 위로하게 하였다. 이윽고 〔궁성에〕 다다르자 춘추의 용모가 영특하고 늠름함을 보고 후하게 대우하였다. 춘추가 국학(國學)에 나아가 석전(釋奠)과 강론(講論)을 참관하기를 청하자 태종이 이를 허락하였다. 아울러 자신이 친히 지은 「온탕비(溫湯碑)」와 「진사비(晉祠碑)」 및 새로 편찬한 『진서(晉書)』를 내려주었다.

어느 날 〔김춘추를〕 연회 자리에 불러 사사로이 만나서 금과 비단을 매우 후하게 주고 묻기를, “경(卿)은 마음에 품고 있는 것이 있는가?”라고 하였다. 춘추가 무릎을 꿇고 아뢰기를, “신(臣)의 나라는 바다 모퉁이에 치우쳐 있으면서도 천자(天子)의 조정을 엎드려 섬긴 지 여러 해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백제는 강하고 교활하여 여러 차례 함부로 침범해 왔습니다. 더욱이 지난해에는 군사를 크게 일으켜서 깊숙이 쳐들어와 수십 개의 성을 쳐서 함락시켜 조회할 길을 막아버렸습니다. 만약 폐하께서 천조(天朝)의 군사를 빌려주시어 흉악한 것을 잘라 없애주시지 않으신다면 저희 나라[敝邑]의 인민은 모두 포로가 될 것이니, 그렇다면 산 넘고 바다 건너 행하는 조회도 다시는 바랄 수 없을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태종이 매우 옳다고 여겨서 군사의 출정을 허락하였다. 

(출처; 한국고대사료 DB, https://db.history.go.kr/ancient/level.do?levelId=sg_005r_0030_0130)

 

 

 

나당연합군 - 나당동맹이라고 했는데 군대는 왜 나당연합군이라고 할까요? - 은 660년에 백제를 멸망시키고, 668년에 고구려를 멸망시키기에 이릅니다. 그리고 신라는 당이 동맹을 어기고 한반도를  장악하려 하자 당과 전쟁을 벌여 676년에 삼국을 통일했다고 합니다.

 

 

통일신라의 영토는 나당동맹 비밀협약대로 대동강 - 원산만을 경계로 하였다고 합니다. 

 

 

 

 

통일신라(출처; 나무위키)

 

 

 

 

그리고 698년에 대조영이 고구려가 망한지 30년만에 고구려 땅에 대진국(발해)를 건국하게 되어 남북국시대가 시작됩니다. 그러면 대진국(발해)와 후기신라(통일신라)의 경계는 대동강 - 원산만이었을까요?

 

 

 

인하대 고조선연구소는 2022년 3월 24일 “통일신라 북계 위치 연구”라는 주제로 발표를 했습니다.

 

 

 

 

 

 

통일신라의 북계인 정천군(井泉郡)이 현재의 길림성 연변조선민족자치구 용정시 일대라고 보았습니다. 용정시의 용두레우물에는 지금도 ‘용정의 기원은 정천이다’는 연혁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또 삼국시대 패수는 신라와 발해의 경계인 니하와 같은 강으로 현재의 중국 요녕성 개주시의 어니하이고,

북송 때의 학자인 허항종이 금나라의 상경으로 가면서 기록한 사료에 현재의 중국 요녕성 개원시를 지나면서 “동쪽으로 신라산이 있다”는 부분은 중국의 길림합달령을 말하는 것으로 보았습니다.

 

 

[인천=뉴시스] 신라북계 예상도

 

 

 

 

후기신라(통일신라)의 북계가 이렇게 북쪽으로 올라가게 되면 당연히 대진국(발해)의 국경도 다시 봐야될 텐데요, 먼저 현재 발해 상경은 발해 동경으로 보아야 한다고 합니다.

 

 

김영섭 박사는 “현 영안시에 비정된 발해 상경터는 신라 정천군과의 거리를 비춰볼 때 원래의 이름처럼 발해 동경이라고 보아야 한다”면서, “발해의 상경은 여러 가지 사료들을 검토해볼 때 영안시의 서쪽에서 찾아야만 한다.”고 말했습니다.

 

 

고조선연구소는 문헌사료와 고고학적 발굴성과 등을 분석한 결과, 통일신라의 국경선은 요동반도 천산산맥에서 길림성 길림시 남쪽의 길림합달령 및 목단강시 남쪽의 목단령을 잇는 선으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출처; 인하대, "통일신라 국경선은 지금의 중국 연변 용정시 부근" (daum.net)2022. 3. 22. 

 

 

 

 

 

발해의 남쪽은 신라와 맞닿아 니하(泥河)로 경계를 삼았다는 기록은 신당서 발해열전에 나옵니다.

 

 

《신당서》 신당서(新唐書)(1) 북적열전(北狄列傳) 발해(渤海) 渤海는 본래 粟末靺鞨로서 高[句]麗에 附屬되어

 

 

○ 渤海

渤海는 본래 粟末靺鞨로서 高[句]麗에 附屬되어 있었으며, 姓은 大氏이다. 高[句]麗가 멸망하자, 무리를 이끌고 挹婁의 東牟山을 차지하였다.

그곳은 營州에서 동으로 2천리 밖에 위치하며, 남쪽은 新羅와 맞닿아, 泥河로 경계를 삼았다. 동쪽은 바다에 닿고, 서쪽은 契丹과 [접하고 있다.] 城郭을 쌓고 사니, 高[句]麗의 망명자들이 점점 모여 들었다. 

출처; 한국사 총설 DB, https://db.history.go.kr/diachronic/level.do?levelId=jo_015r_0010_0020_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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