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ice
Recent Posts
Recent Comments
Link
관리 메뉴

력사를 찾아서

4. 후기신라 문화유산 (1) 세계문화유산 : 석굴암과 불국사 본문

남국/후기신라

4. 후기신라 문화유산 (1) 세계문화유산 : 석굴암과 불국사

대야발 2025. 1. 3. 10:58
SMALL

 

 

 

 

 

 

 

 

■ 세계 유일 인공석굴 석굴암

 

 

 

불교조각 연구자인 민병찬 전 국립중앙박물관장은 2024년 5월 14일 국립춘천박물관에서 열린 ‘다시 찾은 빛: 선림원 터 금동보살입상’ 국제 학술 심포지엄 기조강연에서 “석굴암은 750년경 김대성이 창건한 게 아니라 706년에서 711년 사이에 신라 33대 성덕왕대 창건한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며 750년 제작설의 문제점을 지적했습니다.

 
 
 
국보이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경주 석굴암. 삼국유사 기록을 토대로 750년쯤 김대성이 창건했다고 알려져 왔으나, “신라 33대 성덕왕 대인 706년에서 711년 사이에 창건한 것으로 봐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사진은 한석홍 사진작가가 찍은 석굴암 내부 모습. /국립문화재연구원

 

 

경주 석굴암은 서기 750년쯤 신라 35대 경덕왕 대에 재상을 지낸 김대성(700~774)이 창건했다고 알려져 있다. 삼국유사 기록 때문이다. 삼국유사의 ‘대성효이세부모(大成孝二世父母)’조에 ‘김대성이 현세의 양친을 위해 불국사를, 전세의 부모를 위해 석불사(석굴암)를 세웠다’는 내용이 있다.

 

 

석굴암이 20세기 초 세상에 널리 알려진 이후 종교학·미술사학·역사학 등 인문과학뿐 아니라 건축학·수학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폭넓은 연구가 이뤄졌지만, 유독 석굴암의 조성 시기에 대해선 별다른 의심 없이 이 기록이 정설로 굳어져 있다.

 

 

그런데 부처님오신날을 하루 앞두고 석굴암 조성 시기를 최소 40년 앞당겨 봐야 한다는 주장이 학계에서 제기됐다. 불교조각 연구자인 민병찬 전 국립중앙박물관장은 14일 국립춘천박물관에서 열린 ‘다시 찾은 빛: 선림원 터 금동보살입상’ 국제 학술 심포지엄 기조강연에서 “석굴암은 750년경 김대성이 창건한 게 아니라 706년에서 711년 사이에 신라 33대 성덕왕대 창건한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며 750년 제작설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석굴암 본존불. 사진작가 한석홍이 촬영한 사진이다. /국립문화재연구원

 

 

 

먼저 삼국유사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면 이렇다. ‘경주 모량리에서 어떤 여인이 아들 대성과 함께 가난하게 살고 있었다. 어느 날 모자는 보시를 하면 만 배의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승려의 말을 믿고 생계의 유일한 밑천인 밭을 승려에게 시주했다. 얼마 후 대성은 죽었고, 그날 밤 재상 김문량의 아들로 환생했다. 장성한 대성은 길러준 은혜에 보답하고자 현세의 부모를 위해 불국사를, 전세의 부모를 위해 석불사를 건립했다. 석굴암을 조성하려고 큰 돌 하나를 다듬어 감실의 뚜껑을 만들다가 돌이 갑자기 세 쪽으로 깨졌다. 대성이 분해하다가 잠들었더니, 밤중에 천신이 내려와 다 만들어 놓고 돌아갔다.’

 

 

민 전 관장은 “삼국유사는 고려 시대인 13세기에 승려 일연이 썼고 석굴암 창건에 대한 내용은 당시 경주 지역에서 전해 내려오는 설화 ‘향전’에서 발췌한 것으로 극히 일부의 역사적 사실이나 실존했던 인물·사물에 가공의 내용을 덧붙여 만들어낸 허구의 이야기”라며 세 가지 근거를 들어 반박했다. ①당시 중국과 일본 등 불상 양식의 전개 과정 ②현존하는 통일신라의 불상 양식 ③동아시아에서 팔부중, 금강역사, 사천왕, 제석천, 범천, 10대 제자로 이루어진 소위 석가 정토 구현의 유행 시기 등과 비교 검토를 해보면 710년쯤 창건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왼쪽은 중국 산시성에서 출토된 석조여래좌상(710년), 오른쪽은 일본 나라 야쿠시지 금동약사여래좌상(718년경). /민병찬 전 국립중앙박물관장

 

 

 

민 전 관장은 “석굴암 본존불은 중국, 일본 불상과 비교하면 8세기 전반의 양식을 잘 보여준다”며 중국 산시성(山西省) 루이청현에서 출토된 석가여래좌상(703년), 석조여래좌상(710년)과 일본 나라 야쿠시지(藥師寺) 금당 금동약사여래좌상(718년경) 등을 예로 들었다. “석굴암 본존상을 이 불상들과 비교해 보면 얼굴과 가슴의 비만도, 옷주름의 경직성 등을 볼 때 대략 703년과 710년 사이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또 “통일신라 불상 중 명문에 의해 정확한 제작 연대를 알 수 있는 황복사지 금제여래좌상(706년)과 감산사 석조미륵보살입상(719년)을 보면, 손 모양과 대좌를 덮고 내려오는 옷의 형식, 사실적인 옷주름 등 중국의 동시대 불상과 비교해도 시차가 거의 없이 같은 양식으로 만들어졌음을 알 수 있다”며 “7세기 후반에서 8세기 전반 동아시아 삼국의 교류는 매우 활발했고, 성덕왕(재위 702~737) 때는 견당사를 46회나 파견하는 등 중국과 매우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당(唐)의 불상 양식이 거의 실시간으로 통일신라에 전해졌다고 봐야 한다. 8세기 전반 중국과 일본의 불상 양식을 비교해봐도 시대 차이를 거의 느낄 수 없다”고 했다.

 

 

 

황복사지 삼층석탑에서 나온 국보 금제여래좌상(706년). /민병찬 전 국립중앙박물관장

 
 
 
 
감산사 석조미륵보살입상(719년). /국립중앙박물관

 

 

 

석굴암은 석가 정토 세계를 온전히 구현해 놓은 불교 조각이다. 민 전 관장은 “일본에서도 석굴암처럼 팔부중, 사천왕, 제석천, 범천, 10대 제자 등을 조성해 석가 정토를 적극적으로 구현한 시기는 740년경까지다. 이후엔 화엄 사상이 유행하면서 불교 조각의 흐름이 바뀐다”면서 “불교를 일본에 전해준 한반도에서 석가 정토를 구현한 불교 조각이 일본보다 뒤늦게 조성됐다는 것도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는 “석굴암 조성 시기는 중국과 교류가 가장 활발했던 성덕왕 대로 ‘향전’에 이름이 등장하는 김문량이 재상을 지냈던 서기 706년에서 711년 사이에 제작됐을 것”이라며 “아버지 김문량은 석굴암을, 아들 김대성은 불국사를 짓는 데 깊이 관여했고, 이것이 후대에 각색돼 ‘향전’에 전해진 것으로 봐야 한다”고 했다. 조선일보. 허윤희 기자 2024. 5. 15. (1)

 

 

 

 

■ [궁금한S] 현대에서도 깜짝 놀라는 석굴암과 불국사의 과학

 

 



보통 인도나 중국에서는 바위산에 굴을 파서 석굴을 조성했는데요. 굴속은 햇빛이 차단되고 더운 공기가 쉽게 빠져나가서 여름에도 온도가 10도 정도로 유지됩니다. 그래서 더운 기후에 있는 인도의 수도승들이 석굴에서 수행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하지만 우리나라 바위의 대부분은 매우 단단한 화강암이어서 당시의 도구와 기술로는 바위를 파내기 쉽지 않았는데요. 또 석굴을 파다 보면 위쪽 흙이 누르는 힘으로 자칫 석굴이 주저앉을 가능성도 있었습니다. 선조들은 이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많은 연구를 했고, 그 결과 아치형 구조로 만들면 위에서 누르는 힘을 골고루 분산해 무게를 지탱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죠.

하지만 이런 석굴암에도 문제가 있었으니 바로 굴은 습기가 잘 생긴다는 것이었어요. 거기다 석굴암이 있는 토함산은 구름과 안개가 많이 생기는 지형이었는데요. 습기와 안개가 가득한 곳에서 석굴암은 어떻게 천 년이 넘는 시간을 살아 숨 쉴 수 있었던 것일까요?

비밀은 석굴암 바닥에 차가운 물을 흐르게 했기 때문입니다. 바닥의 차가운 물로 인해 석굴 내부의 습기가 바닥 쪽으로 모여들고, 물방울로 변해 땅속으로 스며들었는데요. 이는 한여름에 에어컨을 켰을 때 에어컨의 차가운 냉매 쪽으로 습기가 모여 습기가 사라지는 원리와 같습니다.

또, 석굴암에는 돌과 돌 사이에 작은 틈이 있어 통풍이 잘되고, 지붕 외벽을 둘러싼 자갈층도 제습 역할을 했다고 합니다. 외부의 습하고 더운 공기는 자갈층을 통과하면서 수증기가 응축돼 자갈에 남고 공기는 차가워지는데요. 이렇게 차가워진 공기는 밀도가 높아 아래쪽으로 흘러 석굴암 내부로 들어갑니다. 그 때문에 송풍기 없어도 차갑고 건조한 공기가 내부를 꾸준히 채워 안은 항상 쾌적한 상태가 유지되는 것이죠.

석굴암의 우수성은 완벽한 비율에서도 느낄 수 있습니다. 특히 석굴암 본존불의 비례는 뛰어난 예술성을 자랑하는데요. 본존불의 얼굴과 가슴, 어깨, 무릎의 가로 길이는 1:2:3:4 비율로 되어 있습니다. 이 비율은 인체에서 가장 아름답고 안정된 느낌을 주는 인체 비율인 균제비례와 거의 흡사합니다.
YTN 사이언스 박순표 (spark@ytn.co.kr) (2)

 

 

 

 

 

■ 불국사

 

 

 

살아있는 문화유적, 석조 건축의 진미 보여주는 천년 고찰 불국사

 

 

 

▲ 범영루와 백운교, 청운교 대웅전에 가기 위해서는 백운교와 청운교를 건너 중문인 자하문을 지나야 한다. 지금은 상징적으로 설치되어 있고 좌경루 옆을 통해 들어간다.
ⓒ 문운주
  
 

 

불국사는 528년(신라 법흥왕 15)  법흥왕의 어머니 영제부인의 발원으로 창건하여 751년(경덕왕 10) 김대건에 의해 크게 개수되면서 탑과 석교 등이 만들어졌다고 한다. 경주의 천년 고찰이다. 어떻게 변했을까.  

 

일주문으로 들어선다. 다른 사찰에 비해 규모가 크고 화려하다. 일주는 기둥이 한 줄로 되어 있는 데서 유래한다. 사찰에 들어가기 전 세속의 번뇌를 씻고 진리의 세계를 향해 일심으로 들어오라는 의미다. 그 진리의 세계가 궁금해진다.

 

 

반야연지를 건너면 천왕문, 천상계에서 가장 낮은 곳인 사천왕천에 살면서 사천왕천의 동서남북을 관장한다. 천상의 수문장으로 동쪽은 지국천왕, 남쪽은 증장천왕, 서쪽을 광목천왕, 북쪽은 다북천왕이 지키고 있다.

 

 


 
▲ 범영루 750년경 김대성이 불국사를 중창할 때 건립. 1593년 임진왜란으로 불에 탄 것을 1612년과 1688년에 각각 중건. 현재의 건물은 1973년 불국사 복원 때 정면 1칸, 측면 2칸, 3층의 옛 모습 그대로 중건했다. 범영루는 범종각으로 범종각의 이름이다. 범영은 범종의 소리를 그림자에 비유하여 범종의 소리가 온 누리에 번져서 넘치는 것을 표현
ⓒ 문운주

 

 
 

천왕문을 지나 반야교를 건너면 범영루에 이른다. 그런데 눈이 휘둥그레졌다. 대웅전을 가로막고 있는 거대한 전각 덕이다. 돌계단, 석가탑, 다보탑 등이 내가 기억하고 있는 불국사 전경이다. 안양문, 자하문, 좌경루 등은 1973년 복원된 이후 처음이다. 놀라움이 클 수밖에.  

 
 

 
▲ 불국사 주요 건물 배치도 각각의 전각에 담장, 회랑으로 설치 돌립적인 구역을 설정했다
ⓒ 문운주
 
 
 
 

불국사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전각의 구조와 배치를 알아야 할 것 같다. 부처가 관장하는 대웅전을 중심으로 한 현실세계, 극락전이 있는 사후세계인 극락세계, 비로전이 있는 부처님의 세계다. 회랑을 이용해 각각의 건물을 독립적인 공간으로 구분했다.

 

 

자하문은 대웅전으로 통하는 중문이다. 청운교와 백운교를 건너서 간다. 자하문은 부처님의 몸에서 비추는 자금광이 안개처럼 서린 문이라는 뜻이다. 정면 3칸, 측면 2칸 다포계의 공포를 짜 올린 팔각지붕을 하고 있다. 건축 양식은 조선 후기에 속한다. 계단 윗부문이 청운교고 아랫부문이 백운교다. 

 

 
 

 
▲ 안양문 751년 김대성이 불국사를 중창할 때 세워진 이 문은 1593년 임진왜란 때 타 버린 것을 1626년과 1737년에 중건했다. 현재 안양문은 정면3칸, 측면2칸으로 겹처마에 맞배지붕이다
ⓒ 문운주
 

 

가로로 배치된 전각의 왼쪽에 안양문이 있다. 극락전으로 통하는 중문이다. 연화교와 칠보교를 지나간다.  아미타불과 보살들은 연화와 칠보로 만들어진 다리를 건너 관문인 안양문을 거쳐 극락세계를 오간다고 한다.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겹처마에 맞배지붕이다. 강릉 객사문과 도갑사 해탈문을 참고해 새로 지은 건물이다.

 
 
 

대웅전으로 가기 위해서는 좌경루 옆 계단을 이용해야 한다. 밑에서 올려다볼 때 안양문, 범영루, 자하문, 좌경루로 길게 회랑으로 막혀 있다. 부처님을 마주해서 들어서서는 안 되는 무언의 규칙 같은 것이 있는 것 같다. 자하문이나 안양문은 상징적으로 설치해 놓은 것이고.

 

 

아사달과 아사녀의 설화 깃든 탑

 
            
▲ 석가탑 통일 신라 경덕왕 10년(751)때 조성된 것으로 추측. 목조 건축을 본 따서 위·아래층 기단의 모서리마다 돌을 깎아 기둥 모양을 만들어 놓았다. 탑신에도 그러한 기둥을 새겼으며, 지붕 돌의 모서리들은 모두 치켜 올려져 있어서 탑 전체에 경쾌하게 날아오르는 듯한 느낌을 들게한다.
ⓒ 문운주

 

 

 

           
▲ 다보탑 건립된 시기는 통일 신라 경덕왕 10년(751) 추측. 4 각, 8 각, 원을 한 탑에서 짜임새 있게 구성한 점, 각 부분의 길이·너비·두께를 일정하게 통일 시킨 점 등은 8세기 통일 신라 미술의 정수다.
ⓒ 문운주
 
석가탑을 창건할 때 김대성은 당시 가장 뛰어난 석공이라 알려진 백제의 후손 아사달을 불렀다. 아사달이 탑에 온 정성을 기울이는 동안 한 해 두 해가 흘렀다. 남편 일이 하루빨리 성취되어 기쁘게 만날 날만을 고대하며 그리움을 달래던 아사녀는 기다리다 못해 불국사로 찾아왔다.

(...중략...)

 "여기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자그마한 못이 있소. 지성으로 빈다면 탑 공사가 끝나는 대로 탑의 그림자가 못에 비칠 것이오. 그러면 남편도 볼 수 있을 것이오." 한 스님의 말을 듣고, 아사녀는 온종일 못을 들여다보며 탑의 그림자가 비치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무심한 수면에는 탑의 그림자가 떠오를 줄 몰랐다. 상심한 아사녀는 고향으로 되돌아갈 기력조차 잃고 남편의 이름을 부르며 못에 몸을 던지고 말았다.

(아사달이) 아내를 그리워하며 못 주변을 방황하고 있는데, 아내의 모습이 홀연히 앞산의 바윗돌에 겹쳐지는 것이 아닌가. 웃는 듯하다가 사라지고 또 그 웃는 모습은 인자한 부처님의 모습이 되기도 하였다. 아사달은 그 바위에 아내의 모습을 새기기 시작했다. 조각을 마친 아사달은 고향으로 돌아갔다고 하나 뒷일은 전해진 바 없다. 후대의 사람들은 이 못을 '영지'라 부르고 끝내 그림자를 비추지 않은 석가탑을 '무영탑'이라 하였다.
 
 
 


다보탑과 석가탑은 높이가 10.29m, 10.75m로 비슷하다. 석가탑을 보면 2단의 기단 위헤 세운 3층탑이라는 것을 알 수 있지만 다보탑은 그 층수를 헤아리기 힘들 정도다. 4각, 8각, 원을 한 탑에서 짜임새있게 구성했다. 각 부분의 길이·너비·두께가 일정하다고 한다.

 

 

석가탑은 목조건축을 본따서 위·아래층 기단의 모서리마다 돌을 깎아 기둥 모양을 만들어 놓았다. 탑신에도 그러한 기둥을 새겼으며, 지붕돌의 모서리들은 모두 치켜올려져 있어, 탑 전체에 경쾌하게 날아오르는 듯한 느낌이 들게 했다. 아사달과 아사녀의 설화가 깃든 탑이다. 

 

불국사는 신라인의 숨결이 살아 있는 역사문화 유적이다. 한국 최고의 석조 유물이다. 크기가 다른 돌을 깎아서 맞추는 데도 전통 건축기법인 '그렝이 기법'(주춧돌 위에 기둥을 초석의 윗면 모양대로 깎아 세우는 기법)을 사용했다. 

 
 

      
▲ 대웅전 681년 4월 8일 낙성)되었으며1436년-1470년 . 1564년에 중건. 창건당시 기단과 석등 등의 석조물이 보존되어 있으며, 창건 당시의 유구 위에 영조 41년(1765)에 중창된 건물로 중창기록과 단청에 대한 기록이 함께 보존되어 있는 매우 중요한 건축물
ⓒ 문운주

 

 

 

  
▲ 불국사 전경 관음전에서 본 다보탑 등 불국사 전경
ⓒ 문운주

 

 

 

   
▲ 불국사 연등 무설전 마당의 연등.
ⓒ 문운주
 

덧붙이는 글 | 1. 불국사의 국보는 다보탑, 석가탑, 청운교 백운교, 안양교 칠보교, 금동비로자나 불좌상, 금동아미타 여래좌상 등 6점이나 됩니다. 2. 다보탑, 석가탑에 관한 내용은 경주 문화관광 홈페이지 자료 데이터를 참고해 작성했습니다. 오마이뉴스. 문운주기자. 2024. 4. 19. (3)

 

 

 

 

 

 

 

<자료출처>

 

 

(1) https://v.daum.net/v/20240515030135216 조선일보. 2024. 5. 15.

 

 

(2) [궁금한S] 현대에서도 깜짝 놀라는 석굴암과 불국사의 과학 (ytn.co.kr) 2021년 06월 04일 

 

 

(3) https://v.daum.net/v/20240419160301612 오마이뉴스.2024. 4. 19.

 

 

 

<참고자료>

 

 

국가문화유산포털 | 한국의 세계유산 (heritage.go.kr)

 

 

https://v.daum.net/v/20240619102934582

 

 

https://v.daum.net/v/20240402080101754

 

https://v.daum.net/v/20240320050114073

 

 

 

 

 

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