력사를 찾아서
4. 대진국(발해) 문화유산 (2) 발해 고분군과 발해 영광탑 본문
발해국의 고분은 주로 발해 5경(京) 주위에 분포되어 있는데, 그 대표적인 유적으로는
상경용천부가 있던 흑룡강성 영안현 동경성(東京城)과
중경현덕부가 있던 화룡현 서고성(西古城),
그리고 발해 구국도(舊國都)인 동경용원부가 있던 길림성 돈화현의 오동성(敖東城) 주변의 고분군입니다.
발해국이 고구려를 계승한 나라임을 직접적으로 나타내주는 것이 주검을 묻은 고분이다. 발해의 고분은 지상이나 지하에 돌을 사용해 무덤을 축조하고 그 위에 흙을 덮는 이른바 돌칸흙무덤[석실봉토분(石室封土墳)]으로, 이는 고구려 계통의 전형적인 무덤형태이다.
발해국의 고분은 주로 발해 5경(京) 주위에 분포되어 있는데, 그 대표적인 유적으로는 상경용천부가 있던 흑룡강성 영안현 동경성(東京城)과 중경현덕부가 있던 화룡현 서고성(西古城), 그리고 발해 구국도(舊國都)인 동경용원부가 있던 길림성 돈화현의 오동성(敖東城) 주변의 고분군이다.
특히 발해의 무덤 가운데 고분의 봉분 위에서 건물의 기단부나 추춧돌이 발견되고 있는데, 이는 고분 위에 목조건축물을 세운 시설물로 보고 있다.
이와 같이 고분 위에 목조건축물[묘상건축(墓上建築)]을 세우는 풍습은 고구려의 장군총·태왕릉·천추총·임강총·서대총 등 왕릉급의 고분에서 볼 수 있다. 이는 일종의 사당과 같은 릉상묘(陵上廟)로서 저자는 이를 ‘향당(享堂)’이라고 했다.
발해 향당이 존재했으리라고 믿어지는 고분은 발해 5경 중 가장 장기간 도성으로 존속했던 상경용천부 북방 5km지점 영안현 삼릉향(三陵鄕)에 있는 삼령둔(三靈屯) 고분이다. 세 기의 능(陵)이 있다고 해서 삼릉(三陵), 혹은 삼령(三靈)이라고 한다.
발해와 후기 신라시기[8세기] 강역도
여기에서 논하고자 하는 삼령둔 고분은 삼릉 1호분이라고도 하는데 동경성 동북, 모란강 북안의 구릉상에 위치하고 있다. 그 규모는 동서 123m, 남북 121m의 대형 조역(兆域)을 형성하고, 고분의 중앙부에 남북 20m, 동서 15m 넓이의 장방형의 현무암으로 적석하고 반지하식의 묘실[현실(玄室)과 연도(羨道)]을 축조한 석곽묘이다. 석곽의 표면에는 칠식(漆喰, 즉, 오늘날의 콘크리트 구조물과 같은)을 바른 흔적이 남아 있고 입구는 남향이다.
고분의 상부에는 발해시대의 녹유(綠釉) 치미(鴟尾)와 기와편이 산포되어 있고, 분구상(墳丘上)에서는 초석(礎石) 4개가 발견되었다. 그리고 조역(兆域) 내 곳곳에서도 녹유와를 비롯하여 많은 발해 기와편이 발견되었다.
경성지 삼령둔(三靈屯) 고분 실측도
삼령둔 고분 정상의 주춧돌고분 정상부에서 세운 향당 건물의 주초석이 발견되었다.
한편, 삼령둔 고분의 외형에 대하여 보고서에는 “묘의 봉토는 높지 않고 낮게 성토한 위에 혹종(或種)의 건조물(建造物)을 덮었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저자는 여기서 말하는 ‘혹종의 건조물’을 향당(享堂)으로 보았다.
삼령둔 고분 석실의 구조면에서는 고구려 고분에서 볼 수 있는 형식으로 통구 산성하묘구의 절천정총(折天井塚)이나 평안남도 중화군 진성리 제1호분 석실의 석벽축조와 천정 결구방법이 유사하다. 이 밖에 삼령둔 고분 및 조역, 또는 동경성지 일대에서 출토된 발해 와당도 고구려계의 전통으로부터 이어지고 있다.
이와 같은 발해문화의 고구려적 요소가 선왕선공(先王先公)을 모시는 상례(喪禮)제도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을 삼령둔 고분의 향당에서 찾아 볼 수 있으니 두말 할 나위가 없는 일이다. 중국의 주국침(朱國枕)은 “무덤 위에 향전(享殿)과 같은 종류의 건축물이 세워졌을 것”이라고 하였다.
발해의 무덤에는 벽돌무덤[전축분(塼築墳)]도 있는데, 벽돌무덤의 상부에 삼령둔 석실봉토분에서 보는 것과 같은 향당이 축조됐을 것으로 보이는 고분이 여러 기가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정효공주(貞孝公主, 792년 卒) 무덤이다.
화룡현 서고성 부근에는 발해 무덤들이 많이 널려 있는데 지금까지 1,000여 기의 발해 무덤이 발견되었다. 1980년에 연변박물관에서 화룡현 용수향 용두산(龍頭山) 위에서 발해 정효공주의 무덤을 발굴하였다. 정효공주의 무덤이 있는 용두산 고분군은 발해 왕실 귀족들의 무덤이 있는 곳이다.
정효공주 무덤의 구조는 무덤 바깥 길[연도(羨道)], 무덤 문[묘문(墓門)], 무덤 안 길[용도(甬道)], 주검 칸[현실(玄室)], 무덤 탑[묘탑(墓塔)]의 5개 부분으로 구성되었다. 무덤의 방향은 동쪽으로 약간 치우친 남향이다. 무덤 남북의 길이는 약 15m, 동서의 너비는 약 7m이다.
무덤 바깥 길은 무덤의 남쪽에 설치되었는데, 그 수평거리는 7.1m이며 남쪽은 높고 북쪽은 낮은 계단식으로 축조되었다. 무덤 안 길의 길이는 1.9m이다. 주검 칸은 남북의 길이 3.1m, 동서의 너비 2.1m의 장방형으로 되어 있고 벽돌로 축조되었다.
주검 칸의 벽의 높이는 동·서벽은 1.4m, 북벽은 1.6m, 남벽은 1.66m이다. 네 벽의 윗 부분은 벽돌과 돌로 평행고임을 만들고, 그 위에 큰 판석(板石)을 덮어서 천정을 얹었다. 벽면과 천정에는 모두 흰 회를 발랐다.
발해 정효공주(貞孝公主) 묘 현실 실측도면
벽돌로 쌓은 주검 칸과 무덤 안 길의 벽에는 흰 회를 바른 위에 주인공의 문위(門衛)·시종(侍從)·시위(侍衛)·악사(樂士)·내시(內侍) 등 모두 12명의 입상 벽화가 그려져 있다.
또 무덤 안 길에서는 완전히 원형대로 보존된 정효공주묘지(貞孝公主墓誌)가 발견되었는데, 묘지의 주인공인 정효공주는 문왕(文王)의 넷째 딸로 그가 죽은 때는 부왕이 아직 살아 있던 792년 6월이고 장사를 지낸 것은 그해 11월이다.
발해 정효공주 묘의 현실 벽화 인물도[모사도]
무덤 칸[현실] 내부의 관대 위에서 남녀 2인의 유체 골격이 발견되었는데, 이는 정효공주 부부가 2차에 걸쳐 매장된 합장묘로 추측되고 있다. 정효공주 무덤은 벽돌무덤 위에 흙을 덮어 축조하고 다시 그 위에 무덤무지가 있으며 꼭대기에는 탑의 기초가 있다.
그 위에 이른바 묘탑(墓塔 혹은 廟塔)을 세웠다. 탑신은 이미 없어졌고 방형으로 된 기초만이 남아 있다. 지상에 있는 탑 기초의 남북 길이는 5.6m, 동서 길이는 5.5m이다. 묘탑은 삼령둔 고분에서 보는 일종의 향당(享堂)과 같은 묘상건물(墓上建物)이다.
1973년 6월에 길림성박물관, 연변박물관 및 훈춘현문화관이 훈춘시 마적달향 마적달촌에서 약 1km 떨어진 마을 북쪽 산중턱에서 마적달(馬滴達) 무덤을 정리하였다. 마적달 무덤은 전부 벽돌과 돌로 쌓았고 지면의 묘탑과 지하의 궁전[지궁(地宮 즉, 현실(玄室))], 무덤 안 길, 무덤 길로 구성되어 있다. 탑 둘레는 남북의 길이가 13m, 동서의 너비가 10.3m이다. 벽돌을 깐 지면 가운데에 탑 기초가 있다. 기초는 남북의 길이 4.95m, 동서의 너비 4.8m이며 방향은 남에서 동쪽으로 40°이다. 탑의 기초는 ‘지궁[현실]’ 윗부분의 판석(板石) 위에 장방형으로 벽돌을 쌓았다.
지궁의 중심은 높이가 2.3m, 길이가 2.7m, 너비가 1.86m이다. 바닥에 관대 같은 것들이 있었던 흔적이 있고, 또 사람의 아래턱 뼈·등뼈·팔과 다리 뼈가 있었는데, 한 개체의 중년 남자 유골(遺骨)로 확인되었다. 그래서 마적달묘탑 역시 무덤 위에 세워진 향당으로 볼 수 있다. 이 묘탑은 원래 7층이었으나 민국(民國) 10년[1921]에 무너졌다고 한다.
마적달 무덤은 발해 동경용원부(東京龍原府) 자리인 팔련성(八連城)에서 약 50km 떨어진 화룡현 용두산 정효공주 무덤의 축조 방법과 비슷한 것으로 보아 마적달묘탑을 쌓은 연대도 정효공주 무덤의 축조 시기인 792년과 비슷한 시기일 것으로 추정되며, 마적달묘탑에 묻힌 사람도 발해 왕족일 것으로 보인다.
훈춘시 마적달묘탑 복원 상상도[위]와 현실 실측도면[아래]『연변문물간편』 p.124.
이밖에 발해의 묘탑으로, 길림성 장백현(長白縣) 현성에서 서북으로 1km 떨어진 탑산(塔山)의 서남골 평탄한 둔덕에 ‘영광탑(靈光塔)’이 있다. 영광탑이란 명칭은 이 지방 토어(土語)이고, 원래는 발해 묘탑이다. 대지는 해발 820m 분지로 동서 길이 약 4리[2km], 남북 길이 2리[1km]정도이다.
묘탑으로부터 약 2리 되는 곳에 압록강이 흐르고 있다. 묘탑은 ‘누각식공심방탑형(樓閣式空心方塔形)’으로 탑신이 비교적 잘 남아 있다. 탑신이 완전하게 보존되어 있는 유일한 발해 묘탑이다. 묘탑은 연도, 용도, 지궁[현실], 탑신, 찰주(刹柱) 등 5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길림성 장백(長白)조선족자치현 발해 영광탑(靈光塔)지하에는 묘실[현실(玄室)]을 축조하고 지상에는 벽돌로 5층으로 쌓아올린 묘탑(廟塔). 고구려 시기의 묘상건축(墓上建築)인 향당(享堂)과 같은 성격의 발해 시기 향당 건축이다. 높이 13m.
묘탑의 기단은 현실 천장에 덮은 개석(蓋石) 위에 흙으로 판축하고, 그 위에 전돌로 탑신을 축조하였다. 묘탑은 모두 5층이며, 높이는 12.86m이다. 탑신은 방형이고 1층 정면[남면]에 아치문[공권문(拱券門)]을 설치하고, 2·3·5층의 기단마다 방형 감실(龕室)을 두었다.
영광탑의 지궁[현실]은 평면이 남북 길이 1.9m, 동서 길이 1.42m, 폭이 1.49m의 장방형으로, 바닥은 세 겹으로 전돌을 깔았고 벽면도 전돌을 쌓았다. 천장은 석판(石板)으로 덮었으나 많이 붕괴되었고, 현실의 벽면과 천장은 백회를 발랐으나 대부분 벗겨졌다.
현실의 후벽 중앙 약간 동쪽으로 석대좌(石台座)가 놓여 있는데 보고자는 이를 사리함(舍利函)으로 추정하고 있다.7) 그러나 현실의 크기로 보아 시신을 안치한 고분형 전축분이 아닌가 한다.
발해의 무덤 위에 전돌로 탑을 세운 것은 전 시기 고구려의 왕릉급무덤 위에 건물을 세우는 향당과 같은 성격을 띠고 있다. 탑은 본래 죽은 자를 묻는 무덤으로, 죽은 자를 기념하기 위한 묘(廟)와 같이 제사의 대상인 탑(塔)을 상징물로 삼았다.
고구려의 능묘(陵墓)의 향당 제도에서 비롯하여 불탑(佛塔) 형식으로 발전한 발해의 독특한 묘탑 묘제이다. 화장(火葬) 사리(舍利) 묘제인 신라의 모전석탑(模塼石塔)이나 전탑(塼塔)과의 관계를 주목해 볼 만하다.
육정산(六頂山) 발해 고분 출토 벽화 잔편(殘片)길림성박물관 소장.
1991년, 북한의 사회과학원 력사연구소에서 편찬한 『조선전사 5』 발해편에 “집안의 장군무덤 꼭대기에 집을 세웠던 흔적이 있다는 것은 그러한 풍습이 고구려에도 있었으며, 발해 무덤에 보이는 지붕은 고구려의 풍습을 계승한 것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한다”고 하였다. 고구려의 향당제도에 대하여 본서 21장에서 이미 밝힌 바 있다. 이와 같은 향당제도에서 고구려와 발해의 묘제가 일치한다는 사실은 매우 큰 의의를 지닌다. 이 밖에 발해 고분 가운데 봉분 위에 묘탑[향당]을 설치한 고분이 몇 군데 더 발견된 바 있다. 그 뿐만 아니라 벽화파편이 출토되는 고분도 발견되고 있다.
발해의 돌칸 흙무덤도 그 짜임새가 고구려의 돌칸 흙무덤과 똑같다. 한편, 중국 길림성사회과학원 역사연구소 왕승례(王承禮) 씨는 돈화현 육정산(六頂山) 고분군에서 발견된 정혜공주(貞惠公主, 780년 매장)의 대형 석곽묘 천장의 이른바 말각조정(抹角藻井) 결구방법이 집안(集安) 고구려 모두루총(牟頭婁塚)의 결구방법과 같다고 하였다. 또, 소형 석관묘의 무덤 위에 여러 장의 판석을 덮는 방법이나 묘장의 형태가 통화(通化)나 집안 일대의 고구려 소형 석관묘와 동일하다고 하였다.
일찍이 북한의 역사학자 박시형(朴時亨) 선생은 『발해사』 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발해국이 이룩한 문화는 그 정신적인 면이나 물질적인 면에서 이전 고구려 사람들의 것을 그대로 계승·발전시킨 것이다. 오늘날 남은 발해의 도시 유적·성곽·고분·전축·조각·공예품 및 기타 유물·유적들은 다 고구려의 것들을 계승·발전시킨 것이며, 그 가운데는 고구려 것인지 발해 것인지 거의 가려낼 수 없을 만큼 유사한 것들도 적지 않다.”
우리의 역사는 예전처럼 중국사의 입장에서 쓰이는 것도 아니고, 일본의 점령시대에서와 같이 일본사의 일부로 쓰여서도 안 된다. 우리의 역사는 우리 입장에서 우리 역사를 쓰는 것이다. 물론 우리의 문화도 마찬가지다. 다만 얼마나 사실에 접근하느냐가 문제일 뿐이다. 그것이 바로 ‘실사구시학(實事求是學)’이다.(1)
<자료출처>
(1) [네이버 지식백과] 발해의 향당 (한국 고대문화의 비밀, 2012. 12. 27., 이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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