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력사를 찾아서

한치윤은 조선후기 『해동역사』 등을 저술한 학자이다. 1765년(영조 41)에 태어나 1814년(순조 14)에 사망했다. 1789년 진사시에 입격하였으나 남인으로 출세하기 어려웠기에 문과에 응시하지 않았다. 1799년 서장관으로 파견된 한치응을 수행하여 북경에 다녀왔다. 말년에 한국사 서술에 몰두하여 70여 권에 이르는 『해동역사』를 편찬하였다. 당색을 초월하여 김정희, 홍명주, 심영석 등과 교유하였다. 18세기 말에서 19세기 초에 새로운 학문 분야를 개척하여 색다른 성과를 거두었다는 점에서 문화사적으로 중요하게 평가되고 있다.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대연(大淵), 호는 옥유당(玉蕤堂). 서울 출신. 할아버지는 헌납(獻納) 한덕량(韓德良)이고, 아버지는 통덕랑 한원도(韓元道)이며, 어..
2013년 7월 5~6일 경주시 우양미술관에서 열린 '제2회 경주 실크로드 국제 학술회의' 발표를 통해 둔황 석굴군(群) 중 40개에서 고대 한국인 인물상이 확인됐다는 사실을 처음 공개한 리신(李新) 중국 둔황연구원 연구원은 둔황 지역의 한국 관련 자료에 정통한 중국인 학자이다. "둔황 석굴의 고대 한국인 인물상은 종류와 수량도 많고 보존 상태도 좋습니다. 한국 고대사 연구에 큰 도움이 될 뿐 아니라 둔황학(學)의 범위를 넓히는 새 주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서북사범대학 역사학부를 졸업하고 1992년 둔황연구원에 들어간 리 연구원이 둔황 석굴들의 고대 한국인 인물상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1995년 불교 경전의 내용을 그림으로 표현한 경변도(經變圖) 연구를 시작하면서였다. 경변도에..

쇼소인은 일본 천년고찰 도다이지(東大寺)의 목조 창고다. 쇼무천황의 명복을 빌기 위해 고묘황후가 왕과 자신의 애장품을 도다이지에 756년 헌납하면서 왕실 보물창고가 됐다. 이후 왕실·귀족들이 바친 다양한 종류의 보물과 문서 등 고대 유물 9000여점이 탁월한 보존·관리로 지금까지 전해진다. 쇼소인 유물은 대부분 일본제이지만 한국과 중국 등지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문화재도 다수 있다. 화려한 바둑판, 신라시대 묵, 백동가위, 신라촌락문서 등이 한국 유물로 흔히 거론된다. ■ 2024년 일본 왕실 보물전…한국엔 없는 ‘신라 가야금’ 천년의 자태(2024. 11. 4.) 일본 왕실창고 쇼소인 보물전 현장 신라시대 현악기 유물 ‘신라금’. 오늘날 가야금의 원형인 가얏고로 볼 수 있다. 노형석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