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지음/《만주와 한반도 12,000년 전~ 2,000년 전 년대기》 (33)
력사를 찾아서

《만주와 한반도 12,000년 전~ 2,000년 전 년대기》 5. 4,500년 전~2,000년 전 5.1 흑룡강 앙앙계유적(黑龍江 昻昻溪遺蹟); 4500년 전~4000년 전(BC 2500년~2000년) 『중국 흑룡강성 제제합이시(齊齊哈爾市) 앙앙계구(昻昻溪區) 서쪽 약 6㎞에 있는 오복역[五福火車站]남쪽 모래언덕 위에 위치한다. 1930년 중동철로(中東鐵路)의 러시아 국적 고용인이었던 루카스킨(Lukashkin)이 사냥 중 유물을 발견하여, 1930년 양사영(梁思永)이 발굴을 진행하였다. 1960년대 초 눈강유역(嫩江流域)의 고고조사를 비롯해 1970년에도 앙앙계지역에 대한 조사는 계속 이어졌고, 1980년 앙앙계 동남쪽으로 1㎞에 있는 등가강자(?家崗子)유적에서 주거지, 무덤, 회갱(灰坑) 등을 발굴..

《만주와 한반도 12,000년 전~ 2,000년 전 년대기》 4.22 용산문화(龍山文化); 4900년 전~4000년 전(BC 2900~2000년) 『중국 산동성(山東城) 장구현(章丘縣) 용산진(龍山鎭)에 위치하는 성자애(城子厓)유적에서 처음 발견되면서 용산문화란 명칭으로 불리게 된 신석기시대 만기(晩期) 문화이다. 1928년 처음 확인되었고, 1930년에 발굴이 이루어졌다. 용산문화는 산동 용산문화(山東 龍山文化), 묘저구2기문화(廟底溝2期文化), 후강2기문화(後崗2期文化), 객성장2기문화(客省庄2期文化)의 4가지 계통으로 구분된다. 이 중 가장 전형(前型)을 띠는 것이 산동 용산문화로 방사성탄소 보정연대로는 기원전 2500∼2000년에 해당하며, 이전의 대문구문화(大汶口文化)의 계통을 잇고 악석문화(岳..

《만주와 한반도 12,000년 전~ 2,000년 전 년대기》 4.15 시흥 능곡동유적(始興 陵谷洞遺蹟); 5730년 전~5200년 전(BC 3730∼3200년) 『경기도 시흥시 능곡동 산15 일대에 위치한다. 유적이 입지한 구릉에서 해안선까지의 직선거리는 3㎞ 정도이나, 간척사업 이전에는 인접한 곳까지 해안선이 형성되어 있었다. 이와 함께 100m내의 저평한 구릉들이 연속되어 고대로부터 사람들이 살기에 매우 적합한 지형적 조건을 갖추고 있다. 유적에서는 전체 5개 지점에서 신석기시대 주거지, 청동기시대 주거지와 수혈, 삼국∼통일신라시대의 석실묘 등이 확인되었다. 그 중 신석기시대 유적은 1지점에서 주거지 24기가 조사되었다. 신석기시대 마을이 확인된 1지점은 조사지역 최북단에 위치하고 있으며, 택지개발지..

《만주와 한반도 12,000년 전~ 2,000년 전 년대기》 4.14 배달국; 5919년 전~4354년 전(BC 3898~BC 2333년) 신시배달국 『《삼성기》의 〈신시역대기〉와 《태백일사》〈신시본기〉에서는 신시배달국에 대해 기술하고 있는데, 단군이 세운 고조선 이전의 만주와 한반도를 중심으로 자리 잡았던 한민족의 고대 국가라고 한다. 환웅이 다스린 국가로 18대 1565년의 역년이며, 중국 신화에 등장하는 치우 또한 배달국의 한 임금으로 기록되어 있다. (기원전 3898년): 거발한(居發桓)환웅, 재위 94년, 120세(기원전 3804년): 거불리(居佛理)환웅, 재위 86년, 102세(기원전 3718년): 우야고(右耶古)환웅, 재위 99년, 135세(기원전 3619년): 모사라(慕士羅)환웅, 재위 1..

《만주와 한반도 12,000년 전~ 2,000년 전 년대기》 4.2 소주산문화(小珠山文化); 6500년 전~4000년 전(BC4500년∼2000년) 『소주산문화는 크게 소주산하층문화·중층문화·상층문화로 대별되며 요동반도 지구의 신석기시대 문화를 대표한다. 소주산 하층문화 유적은 1930∼1940년대부터 알려지기 시작하였으며 1978년의 광록도(廣鹿島) 소주산유적, 유조구(柳條溝) 동산(東山), 대장산도(大長山島) 상마석(上馬石) 유적의 발굴을 통해 그 실체가 명확히 알려지게 되어 전형 유적의 이름을 따 1981년 소주산하층문화로 명명되었다. 소주산하층문화는 현재 요동반도지구의 가장 이른 시기 신석기문화이다. 주요 분포범위는 요동반도와 주위 도서이다. 소주산하층문화의 토기는 활석을 포함한 협사도(挾沙陶) ..

《만주와 한반도 12,000년 전~ 2,000년 전 년대기》 4.1 홍산문화(4) 2012년 9월 24일 동아일보 기사 〈네이멍구 신석기 토기에 한민족 고유의 상투가?〉 요하문명 유물 연구 5개大 연합팀 "홍산문화가 中문명이라는 건 허구" 5월 중국 네이멍구 자치구에서 발굴된 토기 인물상. 상투를 틀고 관모를 쓴 채 수행하는 모습은 한민족 고유의 특징이라고 연구팀은 설명했다. 연구팀 제공 『반가부좌를 틀고 앉아 입을 동글게 벌리고 호흡하며 수행하는 모습의 남자 인물상. 올해 5월 중국 네이멍구(內蒙古) 자치구에서 발굴된 이 토기 인물상으로 홍산(紅山)문화가 한민족의 문화임이 입증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이에 따르면 요하(遼河)문명을 대표하는 신석기문화인 홍산문화가 중국 문명의 일부라는 중국의 주장은..

《만주와 한반도 12,000년 전~ 2,000년 전 년대기》 4.1 홍산문화(3) 〈요서지역 홍산문화와 요동~압록강 유역의 토기 비교〉 (출처; https://eastsearoad.tistory.com/316?category=735220)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홍산문화의 우하량 유적에서 ‘여신묘’에 대한 의심〉 『홍산문화의 논점의 중심에는 ‘우하량’이라고 하는 유적이 있다.우하량 유적은 홍산문화의 핵심유적이다. 중국에서 주장하는 대부분의 홍산문화를 대표하는 성격은 이 유적에서‘만’ 확인된다.요녕성 서부 구릉산지대의 조양시 능원현의 산등성이에 위치한다(그림 1).여러 지점에서 다양한 무덤이 확인되었고, 옥기가 출토되었다. 그림1. 우하량 유적의 전경(이른바 여신묘는 NIJI이다) 그 중에서는 제2산..

《만주와 한반도 12,000년 전~ 2,000년 전 년대기》 4.1 홍산문화(2) 2007년 12월 14일 경향신문 기사 〈코리안 루트를 찾아서](11)뉴허량의 옥기묘〉 『“옥기 쥔 巫人은 神과 소통한 왕”1989년 가을. 뉴허량(우하량·牛河梁) 제2지점 1호 적석총을 발굴 중이던 조사단은 기이한 모습에 꿈을 꾸는 듯했다.21호묘에서 무려 20점의 옥기가 쏟아진 것이다. 이것은 훙산문화(홍산문화·紅山文化) 무덤 한 곳에서 나온 가장 많은 옥기였다. 무덤에는 옥기로 도배하다시피한 성인 남성이 누워 있었다. 입을 활짝 벌린 채 반듯이 누워 있는 인골은 짐승 얼굴 모양의 옥패(玉牌), 옥거북이, 옥베개 등으로 잔뜩 치장했다.-옥으로 도배한 인골- 뉴허량 제1지점 중심대묘에서 확인된 인골. 양손에 옥거북이..

《만주와 한반도 12,000년 전~ 2,000년 전 년대기》 4. 6,500년 전~ 4,500년 전 4.1 홍산문화; 6500년 전~5000년 전(BC 4500년~3000년) 『훙산 문화 (홍산문화, 중국어 간체: 红山文化, 정체: 紅山文化, 한어 병음: hóngshān wénhuà)는 중국 만리장성 북동부에 존재했던 신석기 시대의 문화이다. 옥으로 만든 용, 홍산 문화 출토품 홍산문화는 요하문명의 대표 문화로 중화인민공화국 네이멍구 자치구 츠펑 시와 랴오닝 성 조양 시 일대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홍산문화는 빗살무늬 토기와 적석총 등으로 대표되는 문화로 중국의 중원 문화와 구별되며 고조선 등 한반도 초기 역사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홍산문화는 1908년 일본의 인류학자 도리이 류조에 의해 처음 발견..

《만주와 한반도 12,000년 전~ 2,000년 전 년대기》 3.22 부하문화; 7000년 전~6400년 전(BC 5000~4400년) 『중국 내몽고자치구 파림좌기(巴林左旗) 부하구문(富河溝門)유적을 통해 확인되었다. 부하문화(富河文化)는 서납목륜하(西拉木倫河) 이북지역인 오이길목륜하(烏爾吉木倫河) 유역에 집중하고 있으며, 조보구문화(趙寶溝文化)의 다음 단계에 속한다. 이전 문화기의 조보구문화와 관련되며, 1962년에 조사된 파림좌기(巴林左旗)의 부하구문(富河溝門)유적을 통해 그 특징을 알 수 있다. 부하문화의 연대는 기원전 2700년경으로 보고되고 있다.부하구문유적에서 출토된 주거지는 37기이며, 대부분 방형을 이루고 있다. 내부의 중앙에는 위석노지(圍石爐址)를 설치하고 있는 구조이다. 이 유적에서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