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력사를 찾아서

■ 을미사변 범인 처단 지사, 왜 독립유공자 못 되나오마이뉴스 정만진기자 2024. 11. 21. 11:06 [오늘의 독립운동가 73] 1897년 11월 21일 명성황후 국장일 ▲ 홍릉(고종과 명성황후 합분)ⓒ 국가유산포털 '명성황후'라는 시호로 알려져 있는 민자영은 16세 때 고종과 결혼했다. 그녀는, 시아버지 흥선대원군이 경복궁 공사를 벌이며 강제 노역과 물가 폭등 등 여러 실정으로 민심 악화를 초래하자 최익현의 탄핵 상소를 활용해 권력을 잡는다. 1882년 임오군란이 일어났을 때 그녀는 궁궐을 탈출해 전국 곳곳에서 숨어 지낸다. 그 틈을 타 흥선대원군이 다시 권력에 복귀한다. 그녀는 청나라 군대를 동원해 대원군을 몰아내고, 대원군은 청나라까지 끌려간다. 대원군은 친일로, 명성황후는 ..

흔히 대한제국과 고종 황제는 그저 ‘무기력한 나라, 무능한 군주’로만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25년째 대한제국 역사를 연구 중인 이태진 서울대 명예교수는 “그건 철저히 일제 식민사학의 관점이다. 우리도 모르게 거기에 젖어 있었다”고 지적합니다. “대한제국 → 임시정부 → 대한민국 … 근대국가 정신 이어졌다” 이태진 서울대 명예교수는 “대한제국과 고종 황제를 무기력한 나라, 무능한 군주로 알고 있는 것은 일제 식민사관의 영향”이라고 지적했다. [박종근 기자] 120년 전 오늘이었다(1897년 10월 12일). 고종 황제는 근대국가의 시발점인 대한제국을 선포했다. 그는 ‘국가(國家)’라는 말보다 ‘민국(民國)’이란 용어를 더 즐겨 쓰던 군주였다. 조선왕조실록에도 고종이 나라를 지칭하며 ‘국가’ 대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