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력사를 찾아서
미소띤 얼굴, 네모난 모자 “꼭 닮았다”… ‘백제 정림사와 북위 영녕사’ 유물전동아일보업데이트 2015-11-25 03:002015년 11월 25일 03시 00분 김상운 기자 국립부여박물관-中 뤄양박물관충남 부여 정림사 터에서 발굴된 인물상(왼쪽 사진)과 중국 북위시대 영녕사에서 나온 인물상. 둘 다 농관(籠冠)을 쓴 모습이 닮았다. 국립부여박물관 제공후덕한 얼굴 위로 각이 진 네모난 모자가 서로 닮았다. 중국인들의 옛 복식으로 알려진 농관(籠冠)을 쓴 인물상이다. 하나는 중국 북위시대 영녕사(永寧寺), 나머지는 부여 정림사(定林寺) 터에서 나왔다. 영녕사는 6세기 초엽, 정림사는 6세기 중엽 이후 각각 건립됐다. 백제 사비시대의 왕실 사찰이 북위의 영향을 받았음을 보여주는 증거다.국립부여박물관은 중국 ..
신채호 조선상고사선비족 대 고구려의 관계고구려와 한나라의 중간에 선 탓에 고구려를 도우면 고구려가 이기고 한나라를 도우면 한나라가 이기는 식으로 양국의 승패를 좌우하는 존재가 있었으니, 그게 바로 선비(鮮卑)라 불린 종족이다. 선비족이 조선의 서북쪽인 몽골 지역에 거주하다가 흉노족 모둔에게 패해 본거지를 잃고 외흥안령·내흥안령1) 부근으로 이주했다는 점은 제2편 제3장(제3편 제2장 조선 분립 이후의 신조선의 착각인 듯하다_옮긴이)에서 서술했다.그 뒤 선비족은 둘로 나뉘었다. 하나는 여전히 선비라고 불렸고, 또 하나는 오환(烏桓)이라고 불렸다. 둘은 언어나 풍속이 거의 동일했다. 이들은 짐승 고기를 먹고 짐승 가죽을 입으며 목축과 수렵으로 생활했다. 각각 읍락에 나뉘어 살았는데, 전체 부족을 관할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