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력사를 찾아서

1905년 11월 30일 한 선비가 종로 거리에서 울면서 운집한 시민들에게 일제에 빼앗긴 국권을 회복하자고 호소했다. 일장 연설을 마친 그는 머리를 땅에 부딪치며 자결을 시도했다. 주위에 몰려있던 시민들이 이를 제지하여 목숨을 부지하게 했다. 김구의 에도 이 일화가 전한다. 독립운동가 보재 이상설의 이야기이다. ■ [줌인] 을사늑약에 분노 관직 접고 망명… 초기 독립운동 구심점대전일보 김재근 선임기자2025. 4. 20. 18:09 광복 80주년 기념, 충청의 독립운동가와 그 발자취 ⑫ 진천 출신 헤이그 밀사 이상설헤이그 밀사로 전세계에 독립 호소민족계몽·외교독립·무장투쟁 시도갖은 방법 분투… 해외 떠돌다 순국 충북 진천군 진천읍 산척리 134-2에 위치한 보재 이상설 생가. 김재근 선임기자 1..

■ '3월의 호국인물'은 서일 독립군 총재경향신문 박성진 기자2015. 2. 27. 09:56 전쟁기념관은 일제강점기 만주지역에서 항일무장투쟁을 벌이다가 순국한 서일(1881.2∼1921.8) 독립군 총재를 '3월의 호국인물'로 선정했다고 27일 밝혔다. 함경북도 경원군에서 태어난 선생은 1910년 동만주로 망명해 청일학교와 명동중학교를 설립, 한인 자녀를 교육했다. 대종교에 입교해 만주로 들어오는 망명 의병을 규합해 독립군인 중광단을 조직하고 단장을 맡았다. 서일 독립군총재 1918년 만주와 러시아령에 있는 독립운동가들과 함께 독립전쟁으로 민족의 독립을 쟁취하겠다는 취지의 대한독립선언서를 발표하면서 독립운동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이듬해 중광단을 정의단으로 개편하고 체코군의 도움으로 무기를 구입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