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력사를 찾아서

1926년 12월. 지리멸렬하던 임정에서 잠시 국무령을 맡았던 이동녕(1869~1940)은 그간 주목받지 못한 후배 운동가에게 자리를 넘겼다. 솔직히 말하면 아무도 하겠다는 이가 없어 억지로 떠넘긴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렇게 임정 최고 지도자에 오른 이가 바로 김구(1876~1949)다. 그의 나이 50세였다. ■ [대한민국 임시정부 100년] 리더십 잃은 통합 임정.. 3대 구심점 '이·창·만' 모두 떠나.. '채소장수' 윤봉길의 폭탄, 꺼져가던 임정 불씨 살렸다서울신문 류지영기자 2019. 1. 17. 03:36 2부 통합과 갈등 : 상하이 시기 ③ 임정, 외교에서 투쟁으로 상하이 독립운동가들이 집회 장소로 사용했던 기독교 교회 ‘무얼탕’. 1923년 1월 국민대표회의도 여기서 열렸다.상하이 ..

■ 만주에서 자치기관 경학사 설립오마이뉴스 김삼웅기자 2023. 5. 20. 17:24 [김삼웅의 인물열전 - 암흑기의 선각 석주 이상룡 평전 8] 를 발표하여 조국광복의 방략을 내외에 반포하였다 ▲ 경학사 창립군중대회가 열렸던 삼원포 추가가 대고산 현재 모습ⓒ 박도 독립운동가들이 만주에 독립군 기지를 구축하려는 것은 지리적으로 국내와 가깝다는 이유가 있었지만, 고대로부터 한민족의 강역이었다는 '고토(古土)의식'도 크게 작용했다. "만주는 단군 성조의 영토이며 고구려의 강역이라, 비록 현재 살고 있는 사람들의 복식과 언어가 같지는 않지만 선조는 동일종족인즉, 이역(異域)이라고 할 수 없다."() 그러나 현실은 막막했다.예상보다 겨울 추위가 혹독하고 농지는 비좁았다. 토착민들의 외래인에 대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