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력사를 찾아서

《환국-가사라국》 1. 환인인가 환국인가?(4) 성삼제는 《고조선 사라진 역사》에서 환국은 환인의 오류가 아니라고 한다. 《삼국유사》 임신본은 목판인쇄이고 목판본을 만드는 과정을 떠올리면 환인이 환국으로 잘못 새겨졌다고 주장하기 어렵다고 한다. 『목판본은 금속활자 인쇄와 달리 한 번 잘못 새기면 판 전체를 새로 새겨야 한다. 금속활자는 판을 짜고 시험적으로 인쇄해서 활자가 제대로 뽑혔는지 교정을 본 후 잘못 뽑힌 활자는 뽑아내고 다른 활자로 교체하여 인쇄한다. 그러나 목판본은 글자를 쓴 종이 한 면 전체를 뒤집어 나무 원판에 붙인 다음 글자를 새기기 때문에 일단 글자가 새겨지면 수정할 수 없다. 그러므로 목판인쇄의 경우 활자판을 만든 다음 교정을 보는 것이 아니라 종이를 나무에 뒤집어 붙이기 전에..

《환국-가사라국》 1. 환인인가, 환국인가?(2) 『《삼국유사》의 고조선 관련 기록에서 환인(桓因)이 원래 환국(桓國)이었는데 일제에 의해 조작되었다는 재야사학자들의 주장이 있다. 문정창의 주장에 따르면 일제하에서 《삼국유사》 정덕본을 영인하면서, 이마니시 류가 주동이 되어 한국의 역사를 날조하면서 ‘환인’으로 고쳤다는 것이다. 책에는 붓으로 덧칠하여 원래의 글자를 바꾼 흔적이 있으며 1904년 일본 도쿄 제국대학에서 출간된 《삼국유사》에는 해당 구절이 “昔有桓國(석유환국)”으로 인쇄되어 있다.하지만 삼국유사와 같은 시대에 쓰여진 《제왕운기》에서도 ‘환국’이 아니라 ‘환인’ 또는 ‘상제환인’이라고 기록되어 있고, 《세종실록(世宗實錄)》 〈지리지〉평양 조(條)에서 인용된 《단군고기(檀君古記)》에도 ‘因..

《환국-가사라국》 1. 환인인가, 환국인가?(1) 《삼국유사》는 고려의 승려 일연(1206년~1289년)이 충렬왕 7년(1281년) 인각사(麟角寺)에서 편찬하였는데, 청년시절부터 사료를 수집하였고 70대 후반부터 84 세로 죽기까지 만년에 원고를 집필하였다고 한다. 《삼국유사》는 전체 5권 2책 9편목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1은 왕력 제1편과 기이(紀異) 제1편으로 왕력은 삼국, 가락국, 후고구려, 후백제 등의 간단한 연표이고, 기이 제1편은 고조선부터 남북국시대 이전까지 역사를 다루었다. 권2는 기이 제2편으로 신라 후기와 고조선부터 고려 건국 이전까지 여러 왕들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권3, 4, 5부터 불교에 대한 내용으로 권3 제3편은 흥법(興法), 권3 제4편은 탑상(塔像), 권4..
『삼국유사』의 「고조선(古朝鮮)」 기사에서 민족주의 사학자들 사이에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은 “고기운석유환인(古記云昔有桓因)”이란 부분이다. 1512년 중종 임신년 본에는 '桓囯'으로 되어 있는데, 1916년에 이마니시류(今西龍)가 인사동에서 구입하여 소장하다가 일본 텐리(天理)대학 도서관에 기증하였던 순암 수택본에는 ‘囯’자를 ‘因’자로 묵서(墨書)로 고친 것이 역력하다. 그러므로 이마니시류가 조작하였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고친 것은 순암 안정복으로 보아야 한다. 그 이유는 아래와 같다. ■ [연재] 애서운동가 이양재의 ‘국혼의 재발견’ (9) 우리 민족의 창세기 『삼국유사』2022.04.05 백민 이양재(白民 李亮載) / 애서운동가(愛書運動家) (7) 『삼국유사』 라. 환인(桓因)..

일연은 고려 후기에 『삼국유사』 등을 저술한 승려이다. 고려 희종(熙宗) 2년(1206)에 태어나 충렬왕(忠烈王) 15년(1289)에 사망했다. 고종(高宗) 6년(1219), 설악산 진전사에서 구족계를 받았고, 수행을 거듭해 구산문 사선의 으뜸이 되었다. 몽고 침입 후에 무주암에서 깨달음을 얻고 남해 정림사에서 대장경 제작에 참여했다. 이어 원종(元宗)의 부름을 받아 강화도의 선월사에 머물며 설법하였다. 1277년부터 4년간 청도 운문사에서 선풍을 크게 일으키고 그 즈음 『삼국유사』를 집필하기 시작했다. 1283년에 국사가 되었다. 휘는 견명(見明). 자는 회연(晦然) ‧일연(一然). 호는 목암(睦庵). 경주의 속현이었던 장산군(章山郡, 지금의 경상북도 경산) 출신. 성은 김(金)씨로 알려졌으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