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력사를 찾아서
조선의 강역도 고려와 마찬가지로 공험진부터 철령이 북계였습니다. 고려, 조선 및 중국 사료들이 말하는 고려의 북방강역. 지금의 요령성 진상둔진이 옛 철령이고, 흑룡강성 영안현이 공험진이다. 이케우치 히로시가 함경남도로 끌어내린 북방 강역을 100년째 추종하는 것이 이 나라의 부끄러운 현실이다.(출처; [이덕일의 새롭게 보는 역사] 압록강 서북쪽 ‘철령’은 요동… 일제때 함경남도 안변이라 우겼다 | 서울신문 (seoul.co.kr)) 태종은 재위 4년(1404) 5월 19일 예문관 제학(藝文館提學) 김첨(金瞻)과 왕가인(王可仁)을 명나라 수도 남경에 보내 두 나라 사이의 공식적인 국경선 획정을 다시 요구했습니다. 그래서 명 태조 주원장이 “철령 때문에 왕국(고려)에서 말이 있다”면서 철령~공험진까..
■ 1388년 위화도회군 고려 말은 원나라의 압박과 친원파의 발호, 그들과 결탁한 권문세족들의 부패로 인해 이미 붕괴가 많이 진행된 상황이었다. 체제 불안이 심각했고, 민란도 발생했다. 대다수가 개혁의 필요성을 공감했고, 명분도 충분했다. 이에 공민왕을 비롯한 신진 사대부를 중심으로 많은 이들이 참여했다. 문제는 외부상황이었다. 원나라와 명나라가 교체되는 과정에서 무력충돌이 일어났고, 북원의 침략과 명나라의 간섭은 고려에 직접 영향을 끼쳤다. 홍건적들이 대거 국경을 넘어 개경이 함락당하는 지경이었다. 13세기 말부터 시작된 왜구들의 침입은 전 해안 지역에서 창궐했다. 국가의 안위가 심각한 수준이었으므로 최영, 이성계 같은 신흥 무인들이 실력자로 부상했다. 그런데 국론과 국력, 자원의 통일이 절실한 상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