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경궁]

중앙일보 입력 2008.06.19 01:20업데이트 2008.06.19 09:21

창경궁 집춘문 100년 만에 열린다 | 중앙일보 (joongang.co.kr)

조선시대 임금이 성균관과 문묘로 드나들 때 이용하던 창경궁 집춘문<左>이 100년 만에 개방된다. 집춘문을 나와 문묘로 가는 거둥길(조감도下)도 함께 복원된다. [종로구 제공]

“조선 숙종 31년(1705년) 음력 4월 28일. 임금이 새벽에 집춘문(集春門)으로 나가 문묘(공자를 모신 사당)에 이르러 술잔을 올리고 제사를 지냈다. 명륜당에 나아가 선비들에게 시험을 치게 하고 무과시험도 실시해 합격자에겐 과거급제의 자격을 내렸다.”(숙종실록 41권)

 

조선시대 임금이 머물던 창경궁과 유생들이 공부하던 성균관을 이어주던 집춘문이 약 100년 만에 다시 열린다. 창경궁 후원에서 북동쪽으로 나있는 집춘문은 정문(홍화문)이 아닌 후문으로, 임금이 문묘나 성균관으로 행차할 때 이용하던 ‘왕실 전용문’이다.

서울 종로구는 최근 집춘문에서 문묘 사이에 길을 내는 공사에 들어갔으며, 8월 말 완공 예정이다. 현재 집춘문 밖에는 개인 주택과 담장이 들어서 있어 사람의 왕래가 불가능하다. 이만희 창경궁 관리소장은 “공사가 끝나면 집춘문을 통해 사람이 드나들 수 있게 된다”며 “상시 개방은 어렵더라도 특별한 일이나 행사가 있을 때는 집춘문을 개방할 것”이라고 말했다.

◇집춘문의 ‘부활’=공자와 유교를 절대적으로 받들었던 조선 사회에서 문묘는 매우 중요한 성지였다. ‘봄을 모은다’는 뜻의 집춘문은 임금이 창경궁에서 나와 문묘로 제사를 지내러 가거나, 불시에 성균관 유생들의 학문을 시험하기 위해 자주 드나들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집춘문이란 단어가 27번 나온다. 성종이 성균관에 행차하는 데 사용했다는 기록으로 미뤄 1484년(성종 15년) 창경궁 낙성 때부터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의 문은 조선 말기에 건립된 것이다.

집춘문이 기능을 잃은 것은 대한제국 말 창경궁의 수난과 궤를 같이한다. 일제는 1908년 창경궁에 동물원을 짓고 곰·호랑이·원숭이 같은 짐승과 새들을 사육하기 시작했다. 1911년엔 창경원으로 격을 낮췄고, 1912년에는 총독부 고시로 창경궁과 종묘를 단절시키는 도로(현재 율곡로)를 냈다.

이병호 종로구 문화체육과장은 “정확한 기록은 없지만 1910년 한일병합을 전후로 집춘문이 폐쇄된 것으로 보인다”며 “집춘문과 문묘 사이의 주택가도 일제시대부터 형성된 것”이라고 말했다.

◇임금이 행차한 거둥길도 복원=집춘문에서 문묘에 이르는 거둥길 66m도 복원된다. 거둥길은 임금이 행차한 길을 일컫는 말로, 임금에 대해선 ‘거동’(擧動)이 아닌 ‘거둥’으로 발음했다고 전해진다.

거둥길은 18세기 후반 정조 시절 도성도에서 뚜렷하게 확인된다. 집춘문을 나와 문묘 쪽으로 가는 길을 표시한 붉은 선이 길게 그려져 있다. 도성도는 인기 TV드라마 ‘이산’의 배경이 됐던 궁중 도화서에서 만든 것으로, 조선시대 도성 지도로는 가장 자세하고 정확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종로구는 집춘문을 막고 있는 담장을 옮겨 세워 폭 2~3m의 길을 낼 계획이다. 집춘문과 주택가 사이에 경사가 심한 것을 고려해 나무 계단을 세우고, 주변의 담장도 전통 양식으로 꾸미기로 했다. 사업비 2억원은 서울시에서 지원받았다.

이병호 과장은 “거둥길이 복원되면 단체 관광객들이 창경궁을 구경한 뒤 집춘문으로 나와 문묘로 가는 도보 관광 코스를 운영할 수 있다”며 “특히 중국인들이 공자를 모신 문묘에 깊은 관심을 보이는 것으로 볼 때 외국 관광객 유치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주정완 기자

 

 

입력 2008-03-19 02:56업데이트 2009-09-25 11:20

창덕궁과 창경궁을 묘사한 조선시대 기록화의 걸작인 ‘동궐도’. 사진 제공 국립고궁박물관
 
조선시대 기록화의 걸작으로 꼽히는 ‘경우궁도’와 ‘동궐도’를 만난다.

서울 경복궁 국립고궁박물관은 최근 지하 궁중회화실의 작품을 궁중 기록화로 교체해 ‘조선의 궁궐 그림’ 기획전 형식으로 꾸몄다.

이 가운데 눈길을 끄는 것은 일반에 처음 공개되는 ‘경우궁도(景祐宮圖)’. 1824년경 순조 임금의 생모 수빈 박씨의 사당인 경우궁을 그린 기록화로, 크기는 218×326cm. 조선시대 왕실의 위패를 모신 장소를 그린 유일한 작품이다.

복제품이긴 하지만 ‘동궐도(東闕圖)’도 볼 만하다. 경복궁의 동쪽에 있는 창경궁과 창덕궁을 그린 기록화로, 진품은 국보 249호로 지정돼 있다. 크기 273×584cm의 대작으로, 조선시대 궁궐 그림 가운데 최고로 평가받는다. 1820년대 후반에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모두 16개의 화첩으로 이뤄져 있고 이를 펼쳐 서로 연결해야 작품이 완성된다.

평행과 사선구도로 동궐의 웅대한 모습을 세세하게 사실적으로 묘사한 그림. 작품 자체도 아름답지만 조선 후기 궁궐의 배치와 구조 등을 연구하는 데 매우 중요한 사료다.

동궐도를 그린 화가는 미상. 한 사람이 그리기엔 너무 대작이고 여러 사람이 그린 것으로 보기엔 화풍이 일관되어 있어 화가를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

이광표 기자 kplee@donga.com

 

 

장우성 기자입력 2017. 9. 27. 11:15

담장과 녹지대 복원하고 320m 보행로도
연말 설계 마무리 2019년 시민개방 예정
종묘~창경궁 복원 위해 터널화되는 율곡로 시점부 (서울시 제공)© News1

 

(서울=뉴스1) 장우성 기자 = 일제가 끊어버린 종묘와 창경궁이 88년만에 다시 이어진다. 시민들이 세계문화유산인 조선 대표 궁궐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산책로도 생긴다.

서울시는 일제가 1931년 율곡로를 내면서 없애버린 종묘와 창경궁 사이 담장과 녹지대를 복원하고 보행로도 함께 만든다고 27일 밝혔다.

율곡로를 터널로 만들어 윗쪽에 담장과 녹지대를 복원하는 방식이다. 율곡로는 4차로에서 6차로로 넓힌다.

 

담장을 따라 걸을 수 있는 320m 길이의 보행로도 조성한다. 보행로는 돈화문에서 원남동 사거리까지 이어진다. 보행로 시작과 끝에 전망대를 만들어 산책로로도 제격이다.

임금이 종묘와 창경궁을 오갈 때 지나던 북신문도 복원하고 보행로로 이어지는 길도 설치한다. 녹지에는 전통적 역사문화경관을 유지하도록 전통 수종을 도입한다.

이 사업이 끝나면 세계문화유산 종묘와 창덕궁 등 주변의 역사유산을 걸어서 즐길 수 있다. 올 연말까지 설계를 마무리하고 2019년 시민에게 개방할 예정이다.

창경궁과 종묘는 원래 북악산 줄기인 응봉자락으로 이어졌으나 조선총독부가 길을 뚫어 맥을 막았다. 일제는 한사코 반대하던 대한제국 마지막 황제 순종이 승하하자 이 사업을 본격 추진했다. 대신 율곡로 위로 일본식 육교를 하나 설치해뒀다. 이 육교는 2012년 철거돼 일부가 서울역사박물관에 놓였다.

김준기 서울시 안전총괄본부장은 "율곡로 상부 복원 녹지에 보행로를 새로 만들면 종묘, 창경궁, 창덕궁 등 궁궐문화재를 더 가깝게 느낄 수 있다"며 "역사와 문화자원이 함께 하는 '걷는 도시 서울'을 구현하겠다"고 밝혔다.

nevermind@

 

[경희궁]

 

입력 2017. 6. 8. 09:43

국립민속박물관이 기증받은 경희궁 회상전 사진.[국립민속박물관 제공=연합뉴스 자료사진]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경희궁 회상전(會祥殿)은 조선 제19대 임금인 숙종이 1661년 출생하고 제23대 왕인 순조가 1834년 숨을 거둔 건물이다.

그러나 고종이 즉위한 뒤 경복궁이 중건되면서 경희궁에 대한 관심이 줄어 사용 빈도가 감소했고, 1928년 일본인이 운영하는 사찰에 매각됐다가 1930년대 화재로 소실됐다.

국립민속박물관은 구한말에 회상전을 촬영한 흑백사진을 지난해 미국인 프리실라 웰본 에비 여사로부터 기증받았다. 이 사진은 에비 여사의 할머니인 새디 웰본이 한국에서 간호선교사로 머물 때 수집한 것으로, 회상전 관련 자료가 부족한 상황에서 중요한 사료로 평가됐다.

승경도 놀이판. [국립민속박물관 제공]

 

국립민속박물관은 경희궁 회상전 사진을 비롯해 100여 년 전 서당에서 즐겼던 놀이인 승경도(陞卿圖) 놀이판 등 지난해 기증품을 소개하는 기획전 '기억의 공감'을 상설전시관 기증전시실에서 14일 개막한다고 8일 밝혔다.

이번 전시에는 국립민속박물관이 작년에 기증받은 유물 3천여 점 가운데 조선시대에 효행을 실천한 사람에게 준 문서인 '포창완의문', 콩고 수호신상과 카메룬 여인상 등 60여 점이 공개된다.

 

국립민속박물관은 개막에 앞서 이달 13일 오후 3시에 기증자 초청 행사를 개최한다. 전시는 내년 6월 11일까지 이어진다.

psh59@yna.co.kr

 

 

입력 2017. 1. 31. 07:31

일제가 훼손한 '경희궁 회상전'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daum.net)

국립민속박물관, 에비 여사 기증자료서 사진 발굴
경희궁 회상전 모습 담긴 에비 여사 기증사진. 무단복제 금지.[국립민속박물관 제공]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11월 13일에 경희궁의 회상전에서 아주 군신들을 버리고 떠나갔다. 춘추 45세이고, 재위는 34년이다. 종과 유모들도 물결처럼 달려와 빗줄기 같은 눈물을 흘렸다."

조선왕조실록 순조실록에서 제23대 임금 순조의 승하 장면을 묘사한 글이다. 정조의 둘째 아들로 태어난 그는 형인 문효세자가 1786년 죽자 1800년 왕위에 올랐고, 1834년 경희궁 회상전(會祥殿)에서 숨을 거뒀다.

 

국립민속박물관은 31일 조선시대 '서궐'(西闕)로 불렸던 경희궁에서 왕과 왕비의 침전 권역에 있었으나 일제강점기에 훼손된 전각인 회상전을 촬영한 흑백사진을 발굴했다고 밝혔다.

가로 13㎝, 세로 9㎝인 이 사진은 1899년부터 20년 동안 한국에 머문 미국의 간호선교사 새디 웰본이 수집한 것으로, 그녀의 손녀인 프리실라 웰본 에비 여사가 지난해 국립민속박물관에 기증했다.

사진을 보면 회상전은 팔작지붕 건물로 사방에 난간이 설치돼 있고, 건물 왼쪽이 행각과 연결돼 있다.

국립민속박물관 관계자는 "회상전은 관련 자료가 거의 남아 있지 않기 때문에 이 사진은 역사적 가치가 높다"며 "사진에는 회상전이라는 기록이 없지만, 서울역사박물관에 있는 또 다른 회상전 사진과 비교해 장소를 파악했다"고 설명했다.

회상전은 순조뿐만 아니라 효종의 비인 인선왕후(1618∼1674)가 승하하고, 제19대 임금 숙종이 1661년 출생한 건물이다. 순조가 세상을 떠나기 전인 1829년 화재로 소실됐으나, 이듬해 복구됐다.

그러나 고종이 즉위한 뒤 경복궁이 중건되면서 경희궁에 대한 관심이 줄어 사용 빈도가 감소했고, 일제강점기에는 경성중학교 부설 임시소학교 교원 양성소로 쓰였다. 결국 1928년 일본인이 운영하는 사찰에 매각됐다가 1930년대 화재로 사라졌다.

안창모 경기대 교수는 "일제강점기에 경복궁을 비롯한 궁궐들의 많은 건물이 팔려 나가거나 훼손됐다"며 "경희궁 회상전 사진 같은 자료를 하나하나 모아야 당시 역사의 전모를 밝히고 전각을 제대로 복원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덕수궁]

일제가 멋대로 옮긴 '덕수궁 광명문' 80년만에 제자리로 (daum.net)

입력 2018. 1. 18. 06:00수정 2018. 1. 18. 09:38
 
함녕전 남쪽으로 연내 이전..'자격루'·'흥천사 종'은 보존처리

함녕전 남쪽으로 연내 이전…'자격루'·'흥천사 종'은 보존처리

덕수궁 광명문.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일제가 1938년 덕수궁 남서쪽 구석으로 이전한 광명문(光明門)이 80년 만에 제자리인 함녕전(咸寧殿) 남쪽으로 돌아간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덕수궁 광명문의 위치를 복원하는 공사를 올봄에 시작해 연내에 마무리하려고 한다"고 18일 밝혔다.

앞서 문화재청은 2016년 광명문이 이전할 터에서 발굴공사를 진행해 문의 유구(遺構·건물의 자취)를 확인했다.

 

광명문은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로, 겹처마와 팔작지붕을 갖췄다. 본래 침전인 함녕전의 남쪽 행각 너머에 있었고, 1904년 덕수궁에 화재가 발생했을 때 함녕전은 소실됐으나 광명문은 화마를 겪지 않았다.

그러나 일제는 1930년대 석조전 서관을 증축해 이왕가미술관을 개관하면서 광명문을 멋대로 현 위치로 옮겼고, 물시계인 '자격루'(국보 제229호)와 1462년에 제작된 '흥천사명 동종'(보물 제1460호)을 내부에 전시했다.

이로 인해 광명문은 문의 역할을 상실했고, 유물이 놓여 있는 야외 전시관으로 변했다.

흥천사명 동종(왼쪽)과 자격루.

 

광명문 이전 공사가 시작되면 건물 안에 있는 자격루와 흥천사명 동종은 보존처리 절차에 돌입한다.

이와 관련해 문화재청 관계자는 "유물이 오랫동안 외부에 노출돼 있었기 때문에 보존처리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며 "국립문화재연구소가 1년간 보존처리를 할 예정인데, 워낙 부피가 크고 무거운 유물들이라 보존처리 장소는 조금 더 고민해서 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제가 옮긴 자격루와 흥천사명 동종 역시 광명문처럼 슬픈 역사가 깃든 유물이다.

 

물의 증가량이나 감소량으로 시간을 측정하는 자격루는 조선 세종 16년(1434) 경복궁에 제작됐다. 지금 남아 있는 자격루는 중종 31년(1536) 창경궁 보루각에 다시 만든 장치의 일부다.

흥천사명 동종은 조선 왕실이 발원해 15세기 최고의 장인들이 합심해 만든 공예품이다. 흥천사(興天寺)는 태조의 계비인 신덕왕후의 명복을 기원하던 사찰로, 본래 중구 정동에 있었다. 동종은 흥천사가 16세기에 화재를 겪었을 때도 보존됐으나, 절이 성북구로 이전하면서 한동안 방치됐고 광화문에 걸리기도 했다.

보존처리가 끝나면 자격루는 조선 왕실 유물을 관리하는 국립고궁박물관에 갈 것으로 전망된다. 불교 문화재인 흥천사명 동종의 행선지는 논의가 더 필요한 상황이다. 이에 대해 문화재청 관계자는 "자격루와 흥천사명 동종을 추후 어디에 둘지는 확정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광명문의 옛 모습. [문화재청 제공]

 

김정동 목원대 명예교수는 "광명문은 침전 구역으로 하루빨리 돌아가야 한다"며 "지금 광명문 자리에는 서울시립미술관 쪽으로 연결되는 석조 구름다리가 있었는데, 이 다리도 복원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고종과 이준 열사가 오갔던 구름다리는 정동의 역사성을 회복하는 데 필요한 유물"이라고 덧붙였다.

psh59@yna.co.kr

 

 

입력 2007-08-02 02:58업데이트 2009-09-26 20:16

서울 중구 정동 덕수초교 운동장 터에 자리했던 옛 덕수궁 의효전(懿孝殿)이 창덕궁에 이전돼 남아 있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이 운동장 터는 최근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가 기념관 설립을 추진하면서 덕수초교 학부모들이 탄원을 내는 등 논란이 되고 있다.

궁궐 전문가인 이강근 경주대 문화재학부 교수는 1일 “창덕궁 신선원전(新璿源殿·조선 역대 왕의 어진을 모신 전각·본래의 선원전과 구분해 新자를 붙였음) 앞 의로전(懿老殿)을 조사한 결과 이 전각이 1921년경 일제가 덕수궁 터를 매각하면서 대한제국의 근거지를 없앨 목적으로 지금의 덕수초교 운동장에서 옮겨온 의효전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의효전은 순종황제의 비(妃)로 1904년 세상을 떠난 순명황후(純明皇后) 민 씨의 위패를 모신 덕수궁의 혼전(魂殿)이다. 1920∼21년경 덕수궁 선원전과 함께 창덕궁으로 옮긴다는 신문 보도가 나왔으나 이후 어디에 있는지 존재가 알려지지 않았다.

의효전의 존재가 확인돼 본래 터인 덕수초교로 이전 복원도 할 수 있는 만큼 의효전 터에 기념관 건립을 강행하는 것은 무리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문화재청의 한 관계자는 “의효전 터는 장기적으로 보존 계획을 세워야 할 곳인데 복구할 수 없는 건물(기념관)이 들어서는 것은 원칙적으로 어렵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창덕궁의 ‘의로전’은 현판이 없고 건립 연대가 확인되지 않은 채 왕 친척의 사당으로만 추정돼 왔다.

이 교수에 따르면 ‘의로전’과 신선원전은 1820년대 창덕궁과 창경궁을 조감도로 그린 ‘동궐도(東闕圖)와, 1907년경 일제가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동궐도형(東闕圖形)’에 나와 있지 않고, 그 자리에는 ‘대보단(大報壇·제사 사당)’만 자리잡고 있었다.

즉, 1907년 이후 대보단을 허문 자리에 신선원전과 전각(‘의로전’)이 들어섰고 1920∼21년경 덕수궁 선원전과 의효전을 창덕궁으로 옮겼다는 보도를 종합해 보면 이 전각이 바로 의효전이라는 것이다.

이 교수는 또 “선원전 어진의 모사 과정을 기록한 ‘선원전 영정모사등록’(1936년)에 신선원전 앞 전각을 ‘원래 의효전이었다’는 뜻으로 ‘원(原)의효전’이라고 표현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의효전이 의로전으로 바뀐 이유에 대해 그는 1928년 순종과 순명황후의 신주를 종묘에 모신 뒤 의효전 현판을 내렸고 시간이 지나면서 ‘효(孝)’자가 모양이 비슷한 ‘로(老)’자로 잘못 읽혔을 것이라고 말했다. 의효전 현판은 현재 국립고궁박물관에 있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화보]옛 덕수궁 의효전(懿孝殿)이 창덕궁에…

 

[칠궁]

☞ SBS뉴스로 오시면 '[SBS 슬라이드 형태]'로 보실 수 있습니다.


영조 생모 숙빈 최씨를 비롯해 조선시대 왕이나 왕으로 추존된 인물을 낳은 후궁 7명 신위를 모신 '칠궁'(七宮)이 1일 공개됐다. 칠궁은 청와대 영빈관 옆에 바로 붙어 있어 청와대 관람객만 관람이 가능했었다. 문화재청은 이날부터 경복궁 홈페이지를 통해 예약한 시민들에게도 칠궁 공개를 시작했다. 사진은 칠궁의 대문 사이로 바라본 모습이다.

영조 생모 숙빈 최씨를 비롯해 조선시대 왕이나 왕으로 추존된 인물을 낳은 후궁 7명 신위를 모신 '칠궁'(七宮)이 1일 공개됐다. 칠궁은 청와대 영빈관 옆에 바로 붙어 있어 청와대 관람객만 관람이 가능했었다. 문화재청은 이날부터 경복궁 홈페이지를 통해 예약한 시민들에게도 칠궁 공개를 시작했다. 사진은 1일 오후 칠궁 관람을 신청한 시민들이 문화해설사의 설명을 듣는 모습이다.

영조 생모 숙빈 최씨를 비롯해 조선시대 왕이나 왕으로 추존된 인물을 낳은 후궁 7명 신위를 모신 '칠궁'(七宮)이 1일 공개됐다. 칠궁은 청와대 영빈관 옆에 바로 붙어 있어 청와대 관람객만 관람이 가능했었다. 문화재청은 이날부터 경복궁 홈페이지를 통해 예약한 시민들에게도 칠궁 공개를 시작했다. 사진은 1일 오후 칠궁 관람을 신청한 시민들이 문화해설사의 설명을 청와대 영빈관 옆을 칠궁 경내를 관람하는 모습이다.

서울지역 기온이 올들어 첫 30도를 넘어선 1일 오후 서울 종로구 궁정동 청와대 옆 칠궁(七宮)을 관람온 시민들이 내리쬐는 햇빛을 피해 그늘에 모여 문화해설사의 설명을 듣고 있다.

서울지역 기온이 올들어 첫 30도를 넘어선 1일 오후 서울 종로구 궁정동 청와대 옆 칠궁(七宮)을 관람온 시민들이 내리쬐는 햇빛을 피하기 위해 관리소에서 준비한 밀집모자를 쓰고 관람하고 있다.
 

 

 

 

 

[앵커]

조선 시대 마지막 공주였던 덕온공주의 친필 한글 서첩이 미국에서 국내로 돌아왔습니다.

후손들이 대를 이어가며 200년 가까이 고이 간직해왔던 것이라고 하는데요,

유동엽 기자가 소개합니다.

[리포트]

 

조선 순조의 아들 효명세자.

세자의 여동생 중에는 조선의 마지막 공주인 덕온 공주가 있었습니다.

서첩으로 엮은 5미터 길이의 종이에 정성스레 써내려간 글귀.

단아한 서체가 돋보입니다.

"자경전은 정조께서 어머니를 효심으로 모시고자 세운 것이다."

순조가 한문으로 적은 창경궁 자경전의 내력을 딸 덕온공주가 한글로 옮긴 '자경전기'입니다.

하지만 붉은 비단 표지에 제목은 없습니다.

왕이 쓴 책에는 제목을 쓰지 않는 예법 때문입니다.

제사의 예절은 선조를 잊지 않고 가정 예절을 정리한 '규훈'을 덕온공주가 번역한 서책 일부입니다.

왕실 기록물 중 편지가 아닌, 이런 공적 기록은 한글로 남겨진 게 많지 않아 역사적 가치가 높습니다.

[이종덕/조선시대 한글편지 연구자 : "개인적인 취향이나 이런 것이 아니라 나랏일과 연관된 그런 공적인 요소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덕온공주의 친필 유품은 미국에 사는 후손들이 보관해오다 200년 가까이 되어서야 돌아왔습니다.

환수된 68점의 한글 자료 중에는 서예가로 유명했던 덕온공주의 손녀, 윤백영의 작품도 있습니다.

[김동현/국외소재문화재재단 조사활용팀 차장 : "보존 상태가 좋고 각 유물에 대한 유래와 어느 분의 글씨인지, 어느 분의 작품인지 아주 정확한 기록을 남기고 있기 때문에..."]

이 기록물은 오는 4월부터 국립한글박물관에서 공개됩니다.

KBS 뉴스 유동엽입니다.

유동엽 기자 (imhere@kbs.co.kr)

 

 

장혁진입력 2018. 5. 3. 17:33수정 2018. 5. 3. 21:56

[단독] 조선 마지막 공주 '덕온공주 인장' 찾았다 (daum.net)

 
미국 경매 사이트 ‘크리스티’에 올라온 덕온공주 인장

 

[연관 기사] [뉴스9/단독] ‘조선 마지막 공주’ 인장 되찾기 비밀작전…고국 품으로

미국 경매에 나온 덕온공주 인장

지난달 18일, 미국 뉴욕 크리스티 경매장에 눈길을 끄는 유물 하나가 출품됐습니다. 조선 시대 마지막 공주인 덕온공주(1822년~1844년)의 인장이었죠. 공주 인장의 화려한 실물이 공개되자 경매장에선 해외 수집가들의 치열한 응찰이 시작됐습니다. 경매 시작가는 약 2만 달러였지만 금방 10배 가까이 가격이 뛰어올랐는데요. 최종 낙찰 가격은 23만 7천5백 달러. 낙찰을 알리는 경쾌한 망치 소리가 경매장에 울려 퍼지자 안도의 한숨을 쉬는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덕온공주 인장


■ 문화재청 관계자에 낙찰…조선 마지막 공주 인장 환수

KBS 취재 결과 덕온공주 인장의 낙찰자는 우리 문화재청 산하 국외소재문화재재단 관계자였습니다. 재단 측은 지난 2월 덕온공주 인장이 경매에 나온다는 정보를 입수했습니다. 이어 고미술 전문가와 함께 미국에 가서 직접 실물 검증을 진행해 우리 문화재임을 확인했죠. 다만 공주의 인장은 혼례를 치르고 궁궐을 나가면서 사가(私家)에 가지고 가는 물건이기 때문에 왕실 소유, 즉 국가의 소유라고 보기 어렵다는 게 문제였습니다. 따라서 정부가 경매업체 측에 거래를 금지해달라고 요청할 근거가 부족했는데요. 결국 문화재청은 경매에서 낙찰을 받는 방식으로 인장을 환수하기로 결정합니다. 그러던 중 덕온공주 인장이 미국 경매 사이트에 올라왔다는 일부 언론 보도가 나왔는데요. 비밀리에 작업(?)을 진행하던 문화재청 측에선 조금 난감했다고 합니다. 인장을 입수하기 전에 환수 절차가 진행 중이라고 우리 정부가 공식 확인하면 해외 수집가들의 관심을 이끌어 경매가가 치솟을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숙휘공주 인장(좌)와 정명공주 인장(우). 덕온공주 인장과 정교함에서 큰 차이가 느껴집니다. / 출처 : 고려대 박물관


■ 정교한 공예 기법…"공주 신분 보증하는 핵심 물건"

다행스럽게도, 경매장에서 크게 우려했던 일은 벌어지지 않았습니다. 해외에서 정처 없이 떠돌던 덕온공주 인장이 드디어 고향으로 돌아올 수 있게 된 것이죠. 인장은 구리 재질로 가로 8.9㎝, 세로 8.9㎝, 높이 8.6㎝ 크기입니다. 손잡이 역할을 하는 동물은 해태처럼 보이지만, 정확히는 사자입니다. 왕과 왕후의 어보(御寶)에 쓰이는 동물은 거북이, 후궁과 공주의 인장에 쓰이는 동물은 사자라고 하네요. 덕온공주 인장은 공예 기법이 매우 정교하고 보존 상태가 양호해 문화재적 가치가 높은 것으로 평가받습니다. 이미 고려대 박물관에 숙휘공주와 정명공주의 인장이 있지만, 국가가 소유한 공주 인장은 덕온공주 인장이 유일합니다. 최응천 동국대학교 미술사학과 교수는 "덕온공주는 입었던 당의(唐衣)가 국가민속문화재 제1호로 지정될 만큼 역사적으로 중요한 인물"이라면서 "인장은 공주의 왕실 신분을 보증하는 핵심 물품이기 때문에 이번 문화재 환수는 상당히 큰 의미가 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덕온공주가 입었던 당의. 국가민속문화재 제1호. / 출처 :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


■ 인장 반출 경위는 불투명

그렇다면 이렇게 중요한 유물을 왜 미국인이 가지고 있었던 걸까요. 일단 반출 경위는 오리무중입니다. 시민단체인 문화재제자리찾기는 한국전쟁 당시 미군이 무단으로 가져갔을 가능성을 제기하지만, 문화재청은 덕온공주의 인장을 도난 문화재로 따로 분류하고 있진 않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문화재제자리찾기 대표인 혜문 스님은 "덕온공주의 후손들이 한국전쟁 때 공주의 소지품을 일부 분실했다고 하는 만큼, 인장도 그 시기에 사라졌을 가능성이 높다."라고 말했는데요. 거의 반세기 전에 미국에서 이미 거래가 됐던 점을 감안하면 정확한 반출 경위를 밝히기는 쉽지 않아 보입니다.

덕온공주의 혼수품을 작성한 ‘혼수발기’ / 출처 : 국립한글박물관


■ 요절한 비운의 공주…이달 내 인장 들여올 듯

덕온공주는 조선 23대 왕 순조와 순원왕후의 셋째 딸입니다. 2016년 방영된 KBS 드라마 '구르미 그린 달빛'에서 배우 박보검이 연기한 효명세자의 실제 여동생이기도 하죠. 궁궐의 막내라 어머니 순원왕후의 사랑을 한몸에 받았다고 하는데요. 1837년 혼례를 치렀는데 당시 왕실에서 혼수품 목록을 적은 종이의 길이만 5m가 넘을 정도였습니다. 순원왕후는 시집 보낸 막내딸 덕온공주를 늘 걱정하며 편지를 보내 안부를 물었습니다. 지금까지 남아 있는 한글 편지만 수십 점에 달할 정도인데요. 몸이 약했던 덕온공주는 안타깝게도 22살의 나이로 요절했습니다.

덕온공주의 인장은 남은 반입 절차를 거쳐 이번 달 안에 국내로 들어올 것으로 예상합니다. 전시 장소로 유력하게 거론되는 건 서울 종로구 경복궁 바로 옆에 위치한 국립고궁박물관인데요. 조선 마지막 공주의 인장을 직접 두 눈으로 보게 될 날을 기대해 봅니다.

장혁진기자 (analogue@kbs.co.kr)

 

 

"'조선 마지막 공주' 덕온공주 인장 미국 경매에 나왔다" - 뉴스1 (news1.kr)

문화재제자리찾기 "경매 중지 요청하고 반환 착수해야"
문화재청 "왕실문화재·도난 여부 등 먼저 조사해야"

(서울=뉴스1) 박창욱 기자 | 2018-03-29 19:32 송고 | 2018-03-30 10:42 최종수정
 
덕온공주 인장. (크리스피 사이트 캡처. 문화재제자리찾기 제공)

조선의 마지막 공주인 덕온공주(1822~1844)의 인장이 미국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 나왔다. 시민단체에서는 덕온공주 인장을 왕실 문화재로 보고 환수해야 한다는 입장인 반면, 문화재청에서는 왕실문화재와 도난 사실 여부를 조사해 봐야 한다는 견해다.

시민단체 문화재제자리찾기는 "크리스티 코리아와 관련 경매유물 도록에 따르면 덕온공주 어보가 오는 4월18일 미국 뉴욕에서 열리는 경매에 출품될 예정"이라고 29일 밝혔다. 덕온공주 인장은 가로 8.9㎝, 세로 8.9㎝, 높이 8.6㎝의 크기로 구리 재질에 도금이 된 형태다. 추정가는 2만~3만달러로 책정됐다.

구진영 문화재제자리찾기 연구원은 "미국에서 발견한 국무부 문서에 의하면 6.25전쟁 당시 미군에 의해 47과의 왕실인장이 분실된 것으로 보고되어 있다"며 "2017년 귀환한 문정왕후어보처럼 덕온공주의 인장도 6.25 당시 분실된 인장일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왕실문화재는 거래될 수 없는 물품으로 도난품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며 "문화재청에 '덕은공주 인장 경매 중지 요청 촉구서'를 발송했다"고 했다. 문화재청이 즉각 경매중지를 요청하고 세관 기록 등 취득 경위를 조사하는 한편, 문화재 반환을 위한 적극적인 노력에 착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현재 우리나라 국립고궁박물관에는 조선왕실의 공주 인장이 소장되어 있지 않은 것으로 알려진 만큼, 만약 덕온공주 인장이 환수된다면 ‘국내 유일의 공주 인장’이어서 의미가 크다"고도 했다.

문화재청은 문화재제자리찾기 측보다는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국외소재문화재재단에 문의한 결과, 덕온공주 인장은 왕이나 왕비의 인장인 어보와는 달리 왕실문화재로 바로 판단히기에 애매한 부분이 있다"며 "덕온공주가 시집을 가서 인장의 소유권이 사가로 넘어갔다면 도난 문화재로 바로 판단하기에 무리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사가에서 해외로 반출돼 경매에 출품됐다면 무조건 경매를 막기는 어렵다"며 "반출 경위, 왕실문화재 여부 등에 관해 보다 면밀한 조사와 논의를 거친 후 환수 절차에 들어갈지를 판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덕온공주는 조선 23대 왕 순조와 순원왕후의 막내딸로 왕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던 조선의 마지막 공주였다. 1837년 윤의선과 혼례를 치르고, 궁에서 나와 현재 서울 중구의 저동 살림집으로 갔다. 몸이 약해 결국 22살의 나이로 요절하고 말았다. 

대리청정까지 했던 덕온공주의 오빠 효명세자는 1830년 2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으며, 2년 뒤인 1832년에는 언니 복온공주(당시 15세)와 첫째 딸 명온공주(당시 23세)가 사망하는 등 4명의 남매가 요절하는 비운을 겪어야 했다.
 
아무리 사랑을 받았던 공주라도 당시 법도에선 사가로 시집을 가면 궁에 함부로 드나들 수 없었다. 공식적인 왕실 행사와 같은 특별한 경우에만 출입이 허락되었다. 이에 순원왕후는 시집보낸 막내딸 덕온공주를 늘 걱정하며 편지를 보내 안부를 물었다. 덕온공주는 어머니 순원왕후의 영향으로 책을 읽거나 글씨 쓰는 것을 즐겼다. 혼례 후 가져간 국문·한문 책의 수가 4000권을 넘을 정도였다.

덕온공주의 친필. 일촬금 © News1 DB

 

 

임동근입력 2020. 12. 29. 09:32

가치 뛰어난 서원·향교·서당 20건, 한꺼번에 보물 됐다 (daum.net)

서원 3건·향교 14건·서당 3건..서당 보물 지정은 처음
강릉향교 전경 [문화재청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임동근 기자 = 과거에 교육을 담당했던 서원·향교·서당 건축물 20건이 한꺼번에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지정됐다.

문화재청은 서원 3건, 향교 14건, 서당 3건 등의 문화재를 보물로 지정했다고 29일 밝혔다. 지역별로는 강원 2건, 경기 3건, 경상 11건, 충청 1건, 전라 3건이다.

이에 따라 현재 보물로 지정된 서원은 10건, 향교는 22건이 됐다. 서당에 대한 보물 지정은 이번이 처음이다.

수원향교 대성전 [문화재청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이번에 보물로 지정된 향교 문화재는 강릉향교 명륜당, 강릉향교 동무(동쪽 행각)·서무(서쪽 행각)·전랑(복도), 수원향교 대성전, 안성향교 대성전, 안성향교 풍화루, 산청 단성향교 명륜당, 밀양향교 대성전, 밀양향교 명륜당, 상주향교 대성전·동무·서무, 경주향교 명륜당, 경주향교 동무·서무·신삼문, 담양 창평향교 대성전, 창평향교 명륜당, 순천향교 대성전이다.

구미 금오서원 정학당 [문화재청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또 서원 문화재는 구미 금오서원 정학당, 금오서원 상현묘, 안동 병산서원 만대루이며, 서당 문화재는 안동 도산서원 도산서당, 도산서원 농운정사, 옥천 이지당이다.

안동 도산서원 도산서당 [문화재청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원(書院)은 조선시대 사림(士林)이 성리학 이념을 바탕으로 지방에 설립한 사립 교육기관으로, 선현에 대한 제사와 학문 연구, 후학 교육을 담당했다.

향교(鄕校)는 고려와 조선 시대에 각 지방에 설립된 관립 교육기관으로, 공자를 비롯한 중국과 우리나라 선현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며, 인재를 양성했다.

서당(書堂)은 조선시대 지방의 사림과 백성이 중심이 되어 마을 단위로 설립한 사립학교다. 향교나 서원에 들어가기 전에 익혀야 할 기본자세와 기초적인 유교 경전을 가르쳤다.

 

문화재청은 "이번에 보물로 지정된 문화재들은 절제되고 간결하며 소박한 유교문화를 건축적으로 잘 표현하고, 역사적 인물이 건축에 관여하거나 역사적인 인물을 모셔 기리고, 고치거나 수리한 기록이 잘 남아 있는 등 역사·예술·학술·건축적으로 가치가 뛰어난 건축물들이다"라고 설명했다.

dklim@yna.co.kr

 

 

송고시간2018-12-17 09:53

17세기 이담로가 조성…조선시대 문사들 즐겨 찾아

문화재청, 국가지정문화재 명승 지정 예고

강진 백운동 원림

[문화재청 제공]

 

(서울=연합뉴스) 정아란 기자 = 조선시대 많은 문사가 찾았던 '강진 백운동 원림'(白雲洞 園林)이 문화재가 된다. 원림은 집에 딸린 숲이나 정원을 이른다.

문화재청은 전라남도 강진군 성전면 소재 강진 백운동 원림을 국가지정문화재 명승으로 지정 예고했다고 17일 밝혔다.

월출산 옥판봉의 남쪽 기슭 아래쪽에 자리한 원림은 조선시대 전통 원림 모습을 간직한 곳이다.

안뜰에는 시냇물을 끌어다가 마당을 굽이굽이 돌아나가도록 한 유상구곡(流觴九曲) 흔적 일부가 남아있다. 완만한 경사면에 꽃 계단을 조성했고, 유교 덕목을 상징하는 매란국죽송(梅蘭菊竹松)도 자리한다.

원림을 조성한 이는 원주 이씨 양반 이담로(1627∼1701)다.

그는 세상을 떠나기에 앞서 손자 이언길에게 '평천장'(平泉莊) 일화를 전하며 이곳을 귀하게 여기라고 당부했다. '평천장'은 당 재상 이덕유가 자신의 별장 평천(平泉)을 후대에 파는 자는 자손이 아니며, 나무 한 그루와 돌 하나라도 남에게 주는 자는 훌륭한 자제가 아니라고 말한 것을 이른다.

강진 백운동 원림 근경

[문화재청 제공]

 

이곳은 이언길 맏아들 이의권 대에 이르러 주거형 별장으로 바뀌었고, 후손 이덕휘와 이시헌 대에 이르러 현재 형태로 완성된 것으로 보인다.

백운동 원림은 조성 과정 등을 알려주는 고문헌과 이 일대를 예찬한 고시, 고서화 등이 전해 내려오는 역사 문화 명승지다.

이담로 후손 이시헌은 선대부터 내려온 문집과 행록, 필묵을 묶은 '백운세수첩'(白雲世手帖)을 통해 백운동 역사를 소개했다.

강진에서 18년간 유배 생활을 한 정약용도 백운동 아름다움을 격찬했다.

1812년 백운동에서 하룻밤을 머문 정약용은 초의선사에게 '백운동도' 제작을 의뢰하고, 그에다가 경승 12곳을 '경(景)'과 '영(詠)'으로 칭송하는 시로 써서 합첩한 '백운첩'을 이덕휘에게 선물했다. 이는 현재 모습과 비교할 수 있는 중요 자료다.

문화재청은 앞으로 30일간 예고를 통한 의견 수렴과 문화재위원회 심의를 거쳐 백운동 원림을 국가지정문화재 명승으로 확정할 계획이다.

airan@yna.co.kr

 

 

입력 2017. 10. 11. 01:01수정 2017. 10. 11. 10:01

'당진 합덕제' 세계관개시설물유산 등재..국내 3번째 (daum.net)

곡선의 둑 형태 원형대로 남아..역사성도 커
(당진=연합뉴스) 김덕주(왼쪽에서 3번째) 충남 당진시 자치행정국장이 10일 오전(현지 시각) 멕시코 멕시코시티 월드트레이드센터에서 열린 '제23차 국제관개배수위원회(ICID) 세계총회'에서 나이리지(왼쪽에서 2번째) ICID 회장으로부터 당진 합덕제의 세계관개시설물유산 등재 인증서를 받은 뒤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2019.10.11 [당진시 제공=연합뉴스]

 

(당진=연합뉴스) 이은중 기자 = 김제 벽골제, 황해 연안 남대지와 함께 조선시대 3대 저수지의 하나로 평가받는 당진 합덕제가 세계관개시설물유산에 등재됐다.

11일 충남 당진시에 따르면 당진 합덕제는 전날 멕시코 멕시코시티 월드트레이드센터에서 열린 '제23차 ICID 세계총회'에서 세계관개시설물유산 등재 인증서를 받았다.

세계관개시설물유산은 세계 96개 회원국으로 구성된 국제관개배수위원회(ICID)가 세계에서 인류의 발전과 식량 증산에 기여한 의미 있는 저수지, 댐, 수로 등 관개시설물의 보호와 유지를 위해 지정한다.

시는 이번 등재를 위해 올해 초부터 한국관개배수위원회와 국내 전문가의자문을 받아 등재신청서를 작성하고 관련 영상과 제안 자료를 제출했다.

 

지난 6월 등재신청서가 공식 제출된 합덕제는 지난 8월 국제관개배수위원회의 심사를 받았다.

직선 모양의 김제 벽골제와 달리 곡선 형태의 둑(제방)이 비교적 원형 그대로 남아 있고, 당시 몽리 범위와 활용 양상도 구체적으로 알 수 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합덕제는 수압을 견딜 수 있도록 구불구불한 형태로 만들어졌다. 축조 방식도 찰흙과 나뭇가지, 나뭇잎을 켜켜이 쌓아 만들어 공학적으로도 우수한 구조로 평가받고 있다.

국내에서 세계관개시설물로 등재된 저수지는 합덕제 외에 김제 벽골제와 수원 축만제가 있다.

합덕제는 후백제왕 견훤이 후고구려와의 마지막 일전을 앞두고 군마에게 물을 먹이기 위해 쌓았다고 전해진다.

충남도기념물 제70호인 합덕제는 당진시 합덕읍 성동리 일원에 있는 24만㎡ 규모의 저수지다.

시 관계자는 "2008년부터 추진 중인 합덕제 복원정비사업을 서둘러 마쳐 합덕제를 지역을 대표하는 농업역사체험 관광지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jung@yna.co.kr

 

 

입력 : 2007-10-03 17:47:00 수정 : 2007-10-03 17:47:00

아름다운 경치를 자랑하는 한국 정자 2곳이 문화재로 지정된다.
문화재청은 전남 순천 모후산 기슭에 위치한 초연정(超然亭·사진)과 그 일대, 경북 안동 반변천 언덕 위 백운정(白雲亭)과 개호송 숲을 국가지정문화재인 ‘명승’으로 지정예고한다고 2일 밝혔다.
초연정은 조진충이 1809년 중창해 옥천조씨 제각으로 사용됐으며 1888년 송병선이 이름붙인 정자이다. 모후산 깊은 계곡의 맑은 물소리가 일품인 초연정은 확 트인 자연경관을 감상할 수 있도록 지어진 한국 전통 정자와 구별된다. 외원(外苑)으로 삼은 계곡은 아름다운 암벽과 그곳에 부착해 자라는 활엽수 등으로 수려한 풍광을 자랑한다.
백운정은 김수일이 1568년 세운 정자로 의성김씨 씨족 촌락인 내앞마을과 마을 방풍림으로 조성된 개호송 숲이 한눈에 들어오는 등 전통적 유교문화 경관을 체험할 수 있는 곳이다. 문화재청은 “백운정에서는 강을 따라 조성된 마을과 그 사이 섬에 위치한 개호송 숲 등이 한눈에 펼쳐질 뿐만 아니라 조선 대표적인 씨족 촌락 모습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송민섭 기자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김상운 기자입력 2021. 2. 19. 03:00수정 2021. 2. 19. 04:26

문화재청, 8폭병풍 '호렵도' 공개
황제-수행원들 정밀한 묘사 압권
작자 모르지만 도화서 그림 추정
"淸 배우려는 북학파 태도 반영"
18일 국립고궁박물관에서 공개된 ‘호렵도 8폭 병풍’ 중 일부. 오른쪽 그림의 파란색 옷을 입은 인물이 건륭제로 추정되는 중국 청나라 황제다. 옷에 하얀 용이 그려져 있다. 문화재청 제공
깊은 산속으로 중국 청나라 황제의 긴 행렬이 지나간다. 황후가 탄 화려한 수레 앞으로 말을 탄 병사들이 거대한 나발을 불며 사슴을 부른다. 활과 화살로 무장한 수행원들 가운데로 하얀 용이 새겨진 가죽옷을 입은 황제가 위풍당당하게 말을 타고 있다. 그 앞으로 활과 창을 겨눈 병사들이 호랑이 한 마리를 뒤쫓는다.

문화재청과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 지난해 11월 미국 크리스티 경매시장에서 사들여 18일 공개한 ‘호렵도(胡獵圖·오랑캐가 사냥하는 장면을 담은 그림)’ 병풍은 인물 하나하나의 입체감이나 생동감이 그림 전체를 휘감고 있는 걸작이다. 총 8폭의 병풍은 약 1.5m 높이에 길이는 3.9m에 이른다. 병풍 속 그림에는 청 황제가 열하(熱河·지금의 청더)의 피서산장에서 여름을 보낸 뒤 가을에 무란웨이창(木蘭圍場)에서 사냥하는 장면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18세기 후반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되는 호렵도는 작자 미상이다. 주변의 산과 나무를 표현한 화법 때문에 한때 김홍도(1745∼1806)의 그림일 가능성이 제기됐다. 하지만 옷 주름을 부드럽게 그리는 김홍도와 달리 강렬하게 표현돼 있어 정조대 도화서(그림을 주관하는 조선시대 관청)의 궁중 화원이 그린 걸로 추정된다. 임원경제지에는 김홍도가 호렵도를 그렸다고 기록돼 있지만, 현재까지 확인된 실물은 없다.

조선시대에 그려진 호렵도는 여러 점이 전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번에 환수된 그림이 예술적 완성도에서 압권인 것으로 보고 있다. 그림을 감정한 정병모 경주대 교수(미술사)는 “국가지정문화재 보물급 이상의 가치를 지녔다”고 평가했다.

무엇보다 이 그림은 정조대 청나라의 문물을 배우려는 북학파의 흐름과 맞닿아 있다는 점에서 역사적 가치가 적지 않다. 중화사상에 젖은 조선 사대부들은 청나라를 오랑캐로 빗대 경멸했다. 더구나 17세기 병자호란을 거치며 이들에 대한 적대감마저 팽배했다. 그러나 18세기 들어 강희제, 옹정제, 건륭제를 거치며 동아시아 최강국으로 우뚝 선 청나라를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됐다. 주자성리학 일변도에서 벗어나 청나라 고증학 등을 배우려는 박제가, 유득공, 이덕무 등 북학파의 움직임도 이때 시작됐다. 북학파를 중용한 정조는 1780년 열하에서 열린 건륭제의 칠순잔치에 연암 박지원(1737∼1805) 등을 축하사절로 보내기도 한다.

비록 호렵도라는 이름에 오랑캐라는 비칭이 등장하지만, 건륭제로 추정되는 청 황제와 수행원들을 정밀하게 묘사한 화가의 시선은 오히려 존경에 가깝다. 정병모 교수는 “호렵도에는 청을 배우고자 하는 북학파의 태도가 반영돼 있다”고 말했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입력 2019. 9. 23. 12:02수정 2019. 9. 24. 08:07

1883년에 그린 현존 최고 추정 단군 초상화 공개 (daum.net)

단군문화포럼, 26일 천도교 수운회관서 개막하는 전시회서 선보여
1883년 단군 초상화 [단군학자료원 제공]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조선 후기인 1883년에 제작한 것으로 추정되는 단군 초상화가 일반에 공개된다.

단군 초상화는 20세기 이후에 제작한 그림만 존재한다고 알려져 이 그림이 현존 최고(最古) 작품이라는 주장까지 나왔다.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 교수인 임채우 단군학자료원장은 23일 단군문화포럼 주최 '독립운동의 상징, 단군 영정 전시회'에서 1883년 10월 봉안한 단군 영정을 선보인다고 밝혔다. 전시회는 오는 26일부터 다음 달 15일까지 종로구 천도교 수운회관에서 열린다.

 

임 교수가 발굴한 단군 영정은 크기가 대략 가로 51㎝, 세로 80㎝이다. 초상화는 천에 그렸으며, 뒤쪽에 초상화 초본과 선관(仙官) 스케치 등 그림 3장을 배접했다.

오른쪽 하단에 그림에 관한 정보인 화기(畵記)가 있는 점이 특징이다. 임 교수는 화기를 '광서구년 계미 10월 봉안단군화상/ 시주질/ 시주 을해생 김전 을축생 이두성/ 편수 을묘생 김관오'(光緖九年 癸未 十月 奉安檀君畵象/ 施主帙/ 施主 乙亥生 金奠 乙丑生 李斗聖/ 片手 乙卯生 金觀伍)로 해독했다. 광서는 청나라 광서제 연호로 보이며, 그렇다면 광서 9년은 1883년이라고 그는 전했다.

임 교수는 "편수는 불교에서 보조화사로, 김관오가 태어났다는 을묘년은 1855년이었을 가능성이 크다"며 "다만 김관오에 대한 구체적 기록은 찾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화기를 자세히 살펴보면 희미한 글씨가 있어 중복해 화기를 조성했을 수도 있다"며 "광서본 안료가 일제강점기 것으로 보인다는 의견도 있으나, 후대에 덧칠했을 확률이 높고 양식상 위작이라고 볼 근거는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무엇보다 단군 초상화 중 유일하게 문화재로 지정된 국립부여박물관 소장 단군 화상(충남 문화재자료 제369호)과 비교하면 광서본이 더 크다고 강조했다. 부여에 있는 초상화는 가로 53.3㎝, 세로 33.6㎝다.

임 교수는 광서본 초상화에서 확인되는 화풍도 다른 단군 영정과는 구분된다고 밝혔다.

그는 광서본 초상화 특징으로 색동치마, 씩씩하고 우람해 보이는 인상, 밑그림과 후광(後光)을 꼽고 "상의에는 꽃무늬가 있고, 하의는 색색으로 칠했다"며 "색동치마는 고구려 수산리 벽화에 나오는 의상과 형태가 비슷하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광서본 초상화를 직접 살핀 이태호 명지대 초빙교수는 "단군을 위한 독립 공간보다는 여러 무속 신들이 함께한 민간 사당에 봉안한 것으로 짐작된다"며 "조선시대 불화와 제작방식이 유사하다"고 밝혔다.

이 교수는 얼굴에 대해서도 "좌우 끝부분을 살짝 올려 날카롭게 그린 눈썹은 불화에서 흔히 발견되며, 담홍색 선묘로 부드럽게 표현한 눈과 코는 조선 후기 초상화 기법"이라며 "신라 솔거가 그렸다는 단군 초상화에 근접한 작품이 발굴되고, 김관오라는 화가에 대한 새로운 정보가 출현하길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전시에는 이외에도 다양한 단군 초상화와 조각상, '광무 9년'(1905)이라는 명문이 있는 천부경(天符經) 각석, 대종교 독립운동가 나철 편지 등이 나온다. 오는 28일과 다음 달 4일에는 학술대회도 연다.

psh59@yna.co.kr

 

 
입력 2017. 5. 1. 19:14

한국전쟁 때 일본으로 건너간 족보, 67년만에 귀향 (daum.net)

재일교포 마쓰무라 씨, 국립중앙도서관에 기증
마쓰무라 씨가 국립중앙도서관에 기증한 영산신씨 족보. [국립중앙도서관 제공]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한국전쟁 때 일본으로 건너갔던 족보와 조선시대 고서적이 67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왔다.

국립중앙도서관은 재일교포 마쓰무라 마사미(松村雅美, 51, 한국명 정아미) 씨가 집안에서 간직해온 고문헌 7점을 지난달 21일 기증받았다고 1일 밝혔다.

이들 책은 마쓰무라 씨의 외조부인 고(故) 신재호 씨가 경남 하동에서 1950년 일본으로 갈 때 가져갔던 것이다. 이후 신씨의 딸인 고(故) 신애자 씨를 거쳐 마쓰무라 씨가 소장하게 됐다.

 

도서관이 기증받은 책은 '영산신씨파보'(靈山辛氏派譜) 2책, '영산신씨세계'(靈山辛氏世系) 2책, '영산신씨가승'(靈山辛氏家乘) 1책 등 영산신씨 족보 5책과 '개국정사좌명공신회맹문'(開國定社佐命功臣會盟文) 1책, '종부지증'(種付之證) 1책이다.

이 가운데 1904년 나무활자로 찍은 '영산신씨파보'는 영산신씨 중정공(中正公)파의 족보로 국내에는 없는 유일본이라고 도서관 측은 설명했다.

또 1791년에 찍은 목판본인 개국정사좌명공신회맹문은 조선을 건국하고 이방원이 왕위에 오르는 데 공을 세운 개국·정사·좌명공신들이 1402년 회맹제를 지내고 단결을 맹세한 내용을 담고 있는 책이다. 좌명공신 중에는 영산신씨인 신극례(?∼1407)도 포함돼 있다.

1918년에 출간된 종부지증에는 소의 종자에 대한 기록이 실렸다.

개국정사좌명공신회맹문. [국립중앙도서관 제공]

 

마쓰무라 씨는 "조상의 이름이 새겨진 족보는 한국으로 돌려드리는 것이 도리인 것 같았다"고 기증 배경을 설명했다.

국립중앙도서관 관계자는 "해외 고문헌 조사는 대부분 정부와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해서 동포들이 가진 자료는 파악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동포들이 소장하고 있는 자료에 대해서도 체계적으로 조사를 시행하겠다"고 말했다.

psh59@yna.co.kr

 

 

[불교]

 

김은비입력 2021. 6. 28. 06:01수정 2021. 6. 28. 22:50

뱃속에서 복장유물 나와 눈길
"조선후기 왕실 시주 기록 이례적"

[이데일리 김은비 기자] 3m가 넘는 어마어마한 크기에 국내에 현존하는 불교조각 중 유일한 삼신불(비로자나불상·석가모니불·노사나불상) 구성인 ‘구례 화엄사 목조비로자나삼신불좌상’이 최근 국보로 지정돼 눈길을 끈다. 삼신불은 불교의 세계관인 화엄사상에 근원을 둔 도상으로, 불화나 사경 등에는 종종 보이지만 조각품으로는 화엄사 불상이 유일하다. 삼신불좌상은 2008년 그 가치를 인정받아 보물로 지정됐었다(보물 제1548호).

국보로 지정된 구례 화엄사 노사나불좌상(사진=문화재청)
 
이번에 삼신불좌상이 국보로 승격될 수 있었던 건 불상의 불교조각사적 가치에 더불어 불상의 뱃속에서 지금껏 발견되지 않았던 복장유물이 나오면서다. 조선시대 불상 전문가인 유근자 동국대 미술학부 초빙교수는 “새롭게 발견된 복장유물은 조선 후기 왕실과 불교계의 긴밀한 관계를 드러낸다는 점에서 의미가 남다르다”며 “조선 후기에 이 같은 자료가 나온 건 이번이 처음”이라고 설명했다.

복장유물은 불상을 만들 때 불상 안에 넣는 불경·서책·보화 등이다. 영산문화재연구소는 3년 전 화엄사 불상을 대대적으로 연구하며 X레이 촬영을 진행했다. 화엄사 불상 속 복장유물은 대다수 도난을 당해 남은 것이 많지 않았다. 삼신불좌상도 본존상인 비로자나불상과 석가모니불 속은 이미 모두 도난당해 텅 비어 있었다. 노사나불상도 등쪽의 구멍을 통해 대부분이 사라졌는데, 뱃속에 일부 복장유물이 남아 있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불경서책·발원문 등 책 100여권 정도가 나왔다.

 

불좌상에서 발견된 발원문에는 ‘시주질’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제목 그대로 불상을 만들기 위해 시주를 했는지를 적은 것으로 불상을 만들었던 연도부터 어떤 스님이 화엄사에 있었고, 어디에 불상을 봉안했는지 등을 기록했다. 특히 눈길을 끈 건 시주질 앞부분에 의창군 이광과 신익성이 불상 조성하는 데 큰 시주자로 참여했다고 적힌 대목이다. 의창군 이광은 선조의 여덟째 아들로 서예에 특출난 재능을 보이며 아버지 선조의 총애를 받았던 인물이다. 신익성은 선조의 딸 정숙옹주와 혼인한 왕실의 부마다. 유 교수는 “조선시대 유달리 불교에 애정을 쏟았던 세조 이외에 숭유억불정책의 조선에서 왕실 사람의 이름이 시주자로 등장한 건 드문 사례”라고 말했다.

이처럼 화엄사 시주질에 왕실의 참여가 직접적으로 기록될 수 있었던 건 당시의 시대상과도 연결돼 있다. 조선은 유교국가였기 때문에 왕이나 왕비, 세자가 전면에 나서서 사찰에 불상을 만든다거나 시주자로 나설 수 없었다. 하지만 17세기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거치면서 승려들은 자발적으로 승군으로 전쟁에 참여했고, 당시 많은 승려가 전쟁에서 죽고, 사찰이 불타면서 불교에 대한 인식이 바뀌기 시작했다. 유 교수는 “시주질은 화엄사가 삼신불상이 조성된 1634년 왕실인물을 비롯한 유학자들도 시주에 참여한 것은 두 차례 전쟁을 겪으며 이전에는 불교를 배척하고 탄압하던 사회적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다는 구체적인 방증”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왕실의 후원과 당대를 대표하는 조각승 청헌·응원·인균과 제자들이 기량을 발휘하면서 삼신불좌상은 예술적으로도 완성도 있는 모습을 갖추게 됐다. 화려한 연꽃 대좌에 앉아 있는 삼신불좌상은 굵은 선이 중후하면서도 부드럽고, 섬세한 표현의 조형미를 자랑한다. 박수희 문화재청 유형문화재과 연구관은 “역사적 의미에 더해 예술·조형적 수준도 단연 돋보여 조선후기 대표 불상으로 꼽아도 손색이 없는 작품”이라고 말했다.

김은비 (demeter@edaily.co.kr)

 

 

입력 2020.03.26 12:10 수정 2020.03.26 16:49

고급 직물인 특수 비단 '초'를 바탕재로 사용했다는 사실이 확인된 보물 제1270호 은해사 괘불탱. 문화재청 제공

경북 영천 은해사의 괘불탱이 얇고 투명한 특수 비단 위에 그려진 것으로 확인됐다.

 

문화재청은 2015년부터 이어오고 있는 10년 기한의 ‘대형 불화 정밀 조사’ 작업 중 이 같은 사실을 확인했다고 26일 밝혔다.

지난해 조사 대상이 된 대형 불화는 △청곡사 영산회 괘불탱(국보 제302호) △법주사 괘불탱(보물 제1259호) △개심사 영산회 괘불탱(보물 제1264호) △은해사 괘불탱(보물 제1270호) △예천 용문사 영산회 괘불탱(보물 제1445호) △안동 봉정사 영산회 괘불도(보물 제1642호) △김천 계림사 괘불도(비지정) 등 7건이다.

괘불도ㆍ괘불탱은 영산재(靈山齋)와 수륙재(水陸齋) 등 야외에서 진행되는 대규모 불교 의식에 쓰려고 만든 대형 불화를 이르는 말이다.

조사 결과, 18세기 괘불탱 중 유일하게 은해사 괘불탱의 바탕재로 특수 비단인 ‘초(綃)’가 쓰였다는 사실이 파악됐다. 초는 누에고치에서 뽑힌 가늘고 굵기가 비교적 일정한 비단 직물인데 얇고 투명하다. 보고서에 따르면 조선시대 임금 초상화인 어진(御眞)에 사용될 정도로 고급 직물이다.

반면 19세기에 제작된 계림사 괘불도의 경우 바탕재가 종이인 것으로 나타났다. 박수희 문화재청 연구관은 “후기로 갈수록 괘불도가 양산되면서 재료의 질도 떨어졌을 가능성이 있다”며 “비단 바탕재가 기본이었지만 초 같은 고급재가 쓰이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고 마(麻)나 모시 같은 일반 옷감, 훼손되기 쉬운 종이가 바탕이 되는 경우도 더러 생겨났다”고 말했다.

화면 장식에 은박이 사용된 보물 제1445호 용문사 영산회 괘불탱. 문화재청 제공

 

용문사 괘불탱의 은박도 특이하다. 괘불도에 금박이 사용된 사례는 많지만, 은박은 북장사 영산회 괘불탱(보물 제1278호)이 지금껏 유일했다. 용문사 괘불도에서 은박이 사용된 곳은 석가모니불 주변에 배치한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의 장신구 부분이다. 은박 좌우로 금박도 보인다. 대비 효과를 기대했을 거라는 설명이다.

이 밖에 법주사 괘불탱에 남아 있는 유소(流蘇ㆍ여러 실로 매듭짓고 꼬아서 다는 장식)로 괘불도에 장엄물을 걸었던 흔적이 확인한 것도 이번 조사의 성과라는 게 문화재청 측 평가다.

문화재청은 “자외선ㆍ가시광선 반사 분광 분석을 이용한 염색 재료 분석 및 보존 환경 개선 목적의 미생물 조사 등 새로운 분석 기법을 썼고, 이 내용이 고스란히 보고서에 담겼다”고 했다.

권경성 기자 ficciones@hankookilbo.com

 

 

문수빈 기자입력 2018. 7. 17. 10:55

원광대학교는 최근 본교 박물관 소장품 '대곡사명 감로왕도'(사진)가 올해 초 지정예고를 거쳐 국가지정문화재 보물 제1990호로 지정됐다고 17일 밝혔다.

 

대곡사명 감로왕도는 1764년 불화승(佛畵僧) 치상(雉翔)을 비롯해 모두 13명 화승이 참여해 그린 그림이다. 화기(畵記)가 일부 손상됐으나, '대곡사(大谷寺)'라는 문구를 통해 경상북도 의성 대곡사에 봉안(奉安)됐던 불화로 추정된다.

그림 구성은 상단에 칠여래를 비롯한 불·보살, 중·하단에는 의식장면과 아귀 및 영혼의 생활 장면 등 짜임새 있는 구도 속에 그려졌다. 온화하고 부드러운 색조가 조화를 이뤄 종교화로서 숭고하고 장엄한 화격(畵格)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또한, 화면 속 경물과 전각, 인물 세세한 모습을 정교한 필치로 그려 동시기 감로왕도 중 고가치 작품으로 평가됐다.

특히 이 보물은 제작 시기가 분명하고, 봉안사찰, 시주자명, 제작주체 등을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어 18세기 불화 연구 기준작으로 인정받는다.

이 그림은 지난 1978년 원광대 박물관에서 구입했다. 지난 2000년 11월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86호로 지정, 이어 지난 2014년 11월 보물지정신청을 했다. 결국 올해 문화재청 문화재위원회에서 보물로 최종 결정됐다.

한편, 올해 설립 50주년을 맞은 원광대 박물관은 대학박물관 소장 불화유물 가운데 유일하게 대곡사명 감로왕도가 보물로 지정돼 의미를 더했다. 일반인도 자유롭게 볼 수 있도록 박물관 4층 불교미술실에 공개 전시하며 방문객은 평일(공휴일 제외)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무료로 관람 가능하다.

[관련기사]☞"김지은, '안희정 수행비서 계속 하고 싶다' 요청""혼자서 아빠 병수발했는데, 오빠가 유산 절반을 달래요"강경 대응 예고하던 편의점주들, 한 발 물러선 배경은[특징주]아시아나항공, SK그룹 피인수설에 강세초복, 삼계탕 먹으려다 식중독 걸리지 않으려면

문수빈 기자

 

 

입력 2018. 5. 16. 11:57

소재 불분명했던 1점 낙찰..4점 모두 국내에
돌아온 봉은사 시왕도 마지막 조각 (서울=연합뉴스) 이재희 기자 = 16일 오전 서울 종로구 불교중앙박물관에서 열린 '봉은사 시왕도 환수공개식'에서 봉은사 주지 원명스님(왼쪽)과 조계종 총무원장 설정스님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2018.5.16 scape@yna.co.kr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1950∼1960년대 외국에 유출된 것으로 추정되는 조선 후기 불화 한 점이 경매를 통해 돌아왔다.

대한불교조계종은 미국 경매에서 낙찰받은 '봉은사 시왕도(十王圖)' 한 점을 16일 오전 서울 종로구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 공개했다.

봉은사 시왕도 한 점이 귀환하면서 이 작품은 네 점 일체가 모두 국내에 존재하게 됐다. 나머지 세 점 중 두 점은 동국대 박물관, 한 점은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시왕도도 1990년대 미국 경매에서 구매한 유물로 알려졌다. 시왕도는 저승 세계를 관장하는 10대 왕의 재판 광경과 지옥에서 고통받는 망자를 묘사한 그림이다.

조계종 총무원장 설정 스님은 공개식에서 "이산가족처럼 흩어졌던 봉은사 시왕도가 제자리를 찾았다"며 "문화재를 본래 자리에 돌려놓는 환지본처가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을 느낀다"고 말했다.

시왕도 설명 듣는 설정스님 (서울=연합뉴스) 이재희 기자 = 16일 오전 서울 종로구 불교중앙박물관에서 열린 '봉은사 시왕도 환수공개식'에서 조계종 총무원장 설정(오른쪽)스님이 작품 설명을 듣고 있다.

 

봉은사 시왕도 환수 과정은 지난달 13일 조계종이 공개한 '청도 운문사 칠성도(七星圖)'와 비슷하게 외국에 있는 우리 문화재를 조사·환수하는 국외소재문화재재단과 조계종, 봉은사 협업으로 진행됐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은 4월 중순 봉은사 시왕도가 미국 경매에 출품된 사실을 파악해 조계종에 알렸다. 이 그림은 운문사 칠성도와 달리 정보를 담은 화기(畵記)와 장황이 사라진 상태였다.

조계종은 불화 구도와 양식을 검토해 동국대 박물관에 있는 봉은사 시왕도와 일체를 이루는 유물임을 확인했고, 환수 추진단을 구성해 지난달 24일 경매에서 사들였다.

봉은사는 시왕도가 돌아왔음을 알리는 고불식(告佛式)을 연 뒤 법왕루에서 그림을 공개할 예정이다. 이후 다른 시왕도와 함께 봉안하는 방안을 추진할 방침이다.

(서울=연합뉴스) 대한불교조계종이 16일 오전 서울 종로구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 공개한 미국 경매에서 낙찰받은 '봉은사 시왕도(十王圖)'. [대한불교조계종 제공=연합뉴스] photo@yna.co.kr

 

동국대 박물관이 소장한 봉은사 시왕도 화기에 따르면 이 불화는 건륭 42년(1777) 경기도 일대에서 활동한 승려화가 인종, 수밀, 영인, 도준, 상훈 등이 '삼장보살도', '사자도'와 함께 봉은사에서 제작했다.

그림 크기는 가로 148.3㎝·세로 114.8㎝이며, 시왕 중 한 명을 한 폭에 그리는 일반적 시왕도와 달리 한 폭에 두 명(제2대왕, 제4대왕)을 담았다.

조계종 관계자는 "봉은사 시왕도는 한 폭에 대왕 2∼3명이 심판하는 모습을 묘사했다"며 "이렇게 독창적인 구도는 봉은사 시왕도 외에는 1862년 조성된 화엄사 시왕도에서만 나타난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초강대왕과 오관대왕 아래에 망자의 행적을 정리한 명부를 든 판관이 있고, 자연스럽게 표현한 구름 하단에 지옥을 그렸다"며 "봉은사에서 조성한 시왕도 4점을 국내에 온전하게 갖추게 됐다는 점에서 이번 환수는 큰 의미가 있다"고 덧붙였다.

psh59@yna.co.kr

 

 

송고시간2018-04-13 11:22

미국 경매 나왔던 조선불화 '청도 운문사 칠성도' 귀환(종합) | 연합뉴스 (yna.co.kr)

 

150년전 승려화가가 그린 작품…"1950∼1960년대 유출 추정"
환수된 '청도 운문사 칠성도' 공개

(서울=연합뉴스) 진성철 기자 = 13일 서울 종로구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 조계종 총무원장 설정스님(오른쪽 세번째)과 운문사 관계자들이 '청도 운문사 칠성도' 환수행사를 열고 있다.
조계종과 운문사는 19세기 후반 경상도에서 활동한 수화승인 하은 위상의 불화 '칠성도'를 지난 3월 미국 경매에서 낙찰 받아 환수했다고 13일 밝혔다. 이 불화는 특별공개 행사 후 운문사에 봉안될 예정이다. zjin@yna.co.kr

국외 유출됐다 환수된 '청도 운문사 칠성도' 공개

(서울=연합뉴스) 진성철 기자 = 13일 서울 종로구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 열린 '청도 운문사 칠성도' 공개행사에서 사람들이 불화를 감상하고 있다. 2018.4.13
zjin@yna.co.kr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알 수 없는 시점에 미국으로 반출됐다가 지난 3월 경매에 나왔던 19세기 조선불화가 고국으로 돌아왔다.

대한불교조계종은 경매를 통해 들여온 '청도 운문사 칠성도(七星圖)' 한 점을 13일 오전 서울 종로구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 공개했다.

이 불화는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 지난 2월 해외 경매에 나온 우리 문화재를 검색하는 과정에서 존재가 알려졌다. 재단은 출품 사실을 조계종과 운문사에 알렸고, 이 기관들은 함께 매입하는 방안을 검토했다.

이후 조계종과 운문사는 3월 22일 미국 뉴욕에서 열린 경매에서 불화를 낙찰받았으며, 그림은 지난 11일 국내에 들어왔다.

환수된 '청도 운문사 칠성도' 공개

(서울=연합뉴스) 진성철 기자 = 13일 서울 종로구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 조계종 총무원장 설정 스님(오른쪽 두번째)과 운문사 관계자들이 '청도 운문사 칠성도' 환수행사를 열고 있다. 2018.4.13
zjin@yna.co.kr

조계종 총무원 문화부장인 종민 스님은 "불화의 보존 상태가 매우 좋다"며 "문화재가 제자리를 찾고 신앙적 가치가 회복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이번에 돌아온 청도 운문사 칠성도에는 그림에 관한 정보가 담긴 화기(畵記)가 남아 있다. 화기에는 불화가 운문사에 봉안됐고, 작자는 19세기 후반 경상도에서 활동한 승려화가 위상(偉相)과 봉전(奉典)이라고 기록돼 있다.

그림의 크기는 가로 74.3㎝, 세로 129.5㎝이며, 150년 전인 1868년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된다.

조계종 관계자는 "상하 2단 구도로 나눠 위쪽에는 병풍을 배경으로 가부좌한 칠성여래를 배치하고, 하단에는 연꽃대 양옆에 권속을 묘사했다"며 "안정된 구도와 가볍고 화사한 색감이 특징"이라고 말했다.

이어 "불화 위쪽의 주홍색 그림 무늬가 1868년 제작된 운문사 관음전 관음보살도의 무늬와 일치해 당시 불화를 중수할 때 같이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1932년 3월 고시된 조선총독부 관보의 운문사 성보대장에 칠성도가 등재돼 있다"며 "유출 시기와 이유는 특정할 수 없으나, 한국사회 혼란기였던 1950∼1960년대에 사라진 것으로 판단된다"고 덧붙였다.

운문사 주지인 진광 스님은 "오늘 운문사로 불화를 모시고 갈 계획"이라며 "칠성각에는 다른 불화가 있어서 바로 봉안하지는 못하고, 추후 봉안식을 개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청도 운문사 칠성도. [대한불교조계종 제공]

칠성도는 북두칠성을 비롯한 하늘의 별들을 형상화한 칠성신을 그린 불화로, 18세기 이후에 특히 유행했으며 보통 칠성각에 봉안됐다.

청도 운문사 칠성도는 모두 9폭에 나누어 그려졌고, 이번에 공개된 불화가 그중 한 점이다. 나머지 그림들은 여전히 행방이 묘연한 상태다.

조계종 관계자는 "운문사 칠성도 한 점이 나온 만큼 다른 그림의 소재도 확인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조계종과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은 그동안 협업을 통해 외국에 빠져나갔던 문화재를 환수해 왔다.

2015년 순천 선암사 '동악당재인대선사진영'을 시작으로 남양주 석천암 '지장시왕도', 고성 옥천사 '나한상' 등이 두 기관의 노력으로 한국에 돌아왔다.

지건길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이사장은 "앞으로도 조계종과 유기적으로 협력해 해외에 있는 불교 문화재를 국내로 가져올 것"이라고 강조했다.

psh59@yna.co.kr

 

 

송고시간2020-06-01 09:49

고창 선운사 만세루

[문화재청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임동근 기자 = 문화재청은 정면 9칸, 측면 2칸으로 지은 조선 후기 대형 사찰 건축물인 고창 선운사 만세루(萬歲樓)를 국가지정문화재 보물 제2065호로 지정했다고 1일 밝혔다.

선운사에 전하는 기록물인 '대양루열기'(1686)와 '만세루 중수기'(1760)에 따르면 만세루 자리에는 본래 1620년에 지은 중층 누각인 대양루가 있었다. 이후 화재로 소실된 것을 1752년에 재건축했다.

만세루는 책을 엎어놓은 듯한 맞배지붕을 얹은 단층건물이다. 처음에는 중층 누각으로 지었으나 재건하면서 현재와 같은 단층 건물로 바뀐 것으로 전해진다.

문화재청은 이에 대해 "누각을 불전의 연장 공간으로 꾸미려는 조선 후기 사찰 공간의 변화 경향을 보여 주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고창 선운사 만세루 대들보

[문화재청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만세루는 사찰 누각으로는 가장 큰 규모인 정면 9칸 건물이다. 현존하는 사찰 누각은 보통 정면 3칸이고, 5칸이나 7칸 규모도 있으나 만세루처럼 9칸 규모는 흔치 않다.

만세루의 또 다른 특징은 지붕 하중을 지지하기 위해 놓는 대들보다. 가운데 세 칸은 앞뒤 외곽기둥 위에 기다란 대들보를 걸었고, 양옆 각 세 칸에는 중앙에 높은 기둥을 세운 뒤 짧은 대들보를 얹었다.

또 가운데 칸 높은 기둥 위에는 한쪽 끝이 두 갈래로 갈라진 나무를 종보로 사용했다. 종보는 대들보 위에 놓는 마지막 보를 말한다. 자연에서 둘로 갈라진 나무를 의도적으로 사용해 보들이 춤을 추는 듯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고창 선운사 만세루 종보

[문화재청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문화재청은 "조선 후기 불교사원의 누각 건물이 시대 흐름과 기능에 맞춰 그 구조를 적절하게 변용한 뛰어난 사례이며, 자재를 구하기 어려운 건축 환경을 극복하고 독창성 가득한 건축물을 지은 대표적인 사례로 평가된다는 점에서 보물로서 역사적, 건축적, 학술적 가치를 인정받았다"고 전했다.

dklim@yna.co.kr

 

 

 

고베 젠쇼지 주지 주장… 임진왜란때 강제반출설 뒤집어

‘일본 난젠지(南禪寺)의 일체경(一切經) 장경 중 대부분은 조선 초기에 일본으로 건너간 초조대장경과 팔만대장경’



일본 교토 난젠지에 수장된 일체경의 초조대장경과 팔만대장경은 고려말∼조선초기 일본 승려들이 수집해 가져간 것이란 주장이 제기됐다. 고베 젠쇼지(禪昌寺) 주지인 곤도 도시히로(近藤利弘)는 고려대장경연구소와 서울대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공동주최로 10·11일 서울대 규장각에서 열리는 초조대장경 국제워크숍 중 ‘일체경의 유래’ 발제를 통해 이 같은 내용을 밝힐 예정이다.

곤도 도시히로의 주장은 일본에 있는 우리의 초조대장경과 팔만대장경이 임진왜란과 일제침략기에 강제로 반출됐다고 알려진 것과는 달라 학계의 관심을 끌고 있다.

곤도는 미리 배포된 발제문을 통해 “젠쇼지의 에도(江戶)시대 기록을 볼 때 일체경은 원래 젠쇼지에 있던 것을 1614년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명에 의해 지금의 난젠지로 옮긴 것”이라며 “중국 원(元)나라기의 원판인 제46∼88고가 가장 오래된 것”이라고 밝혔다.

곤도는 그러나 “원(元)판에 더해 1400년부터 1429년까지 부족한 부분을 고려나 중국 각지에서 출판된 것을 구입하거나 일본에서 추가해 지금의 일체경을 갖췄다.”고 덧붙여 일체경이 임진왜란 훨씬 이전인 조선 초기에 이미 완성됐음을 시인했다. 특히 “일체경에 들어 있는 지도를 보면 일체경은 중국의 익주 성도, 복주 동선사각원, 개원사, 항주 만산보령원, 고려의 부인사 등지에서 10세기 말∼13세기 제조되었음을 알 수 있다.”며 “제작된 나라에서도 극히 일부만 남아 있는 귀중한 것들”이라고 강조했다.

일체경은 고려의 초조대장경·팔만대장경을 비롯해 중국 송대의 송판, 원대의 원판, 고려사경, 일본 사경 등 한·중·일 삼국의 경전들을 수집해 한질의 대장경으로 완성한 6000권 분량의 대규모 컬렉션. 경, 율, 논 등 이른바 불교의 ‘삼장’을 모두 포함하고 있다.

1967년 한국의 한 서지학자가 이 일체경에 고려 초조대장경이 들어 있음을 처음 확인해 기록으로만 전하던 초조대장경의 실존이 확인되어 양국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고려 초조대장경은 중국 북송시대의 개보대장경(開寶大藏經)에 이어 세계 대장경으론 두 번째 제작된 것.5000여권의 방대한 분량이지만 몽골전쟁 때 목판이 완전히 파괴된 뒤 기록으로만 전해오다가 일본 난젠지와 국내 고려대장경연구소 등 양국 학자들이 공동 복원과 디지털화 작업을 벌이고 있다. 현재 국내 300여권을 포함해 일본 교토 난젠지의 1800권, 쓰시마민속자료관 600권 등 전체 분량의 절반 정도가 세상에 알려졌다.

김성호 문화전문기자 kimus@seoul.co.kr

 

 

 

입력 2018. 7. 4. 

오대산 불교신앙 중심지 '적멸보궁' 보물 지정 (daum.net)

월정사 적멸보궁

 

 

 [천문학]

입력 2015. 9. 23. 17:39수정 2015. 9. 23. 18:57

600년전 세계 최고 수준에 올라섰던 조선 천문학 (daum.net)

조선 천재 천문학자 김담 탄생 600주년..한양 기준의 독자적 역법 구축 내일 고등과학원서 기념 학술회의
김담이 제작한 것으로 전해지는 천문도 (서울=연합뉴스) 조선 세종 시대의 천재 수학자이자 천문학자인 문절공 김담(1416∼1464)의 탄생 600주년을 앞두고 24일 서울 동대문구 고등과학원에서 기념 학술회의가 열린다. 김담은 문신 겸 천문학자인 이순지와 함께 당시 국립천문대에 해당하는 '간의대'에서 천체를 관측하고 독자적인 역법을 확립했다. 그림은 김담이 제작한 것으로 전해지는 천문도. 2015.9.23 photo@yna.co.kr

 

조선 천재 천문학자 김담 탄생 600주년…한양 기준의 독자적 역법 구축

내일 고등과학원서 기념 학술회의

(서울=연합뉴스) 정성호 기자 = 내년은 조선 세종 시대의 천재 수학자이자 천문학자인 무송헌(撫松軒) 김담 선생(1416∼1464)이 태어난 지 600년이 되는 해다.

일반인에게는 생소한 이름이지만 그는 이미 600년 전에 우리 천문학의 깊이와 정교함을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린 천문학자다.

 

김담은 19세에 집현전 학사가 된 뒤 문신 겸 천문학자인 이순지와 함께 당시 국립천문대에 해당하는 '간의대'에서 천체를 관측하고 독자적인 역법(曆法)을 확립했다.

우리 민족 최초의 자주적 천문학 체계를 수립한 것이다.

어릴 때부터 천재 소리를 들었던 김담은 19살 때 형 김증과 함께 문과에 급제해 형제가 같이 집현전 정자(正字·정9품)에 임명됐다. 집현전 학사 중 형제가 나란히 선발된 유일한 경우였다.

김담의 총명함은 곧 세종의 눈에 띄었고 천문학과 수학에 정통한 그는 이순지와 함께 문과 급제자로는 예외적으로 과학 발전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김담은 천문학 외에도 세법, 측량, 제방 축조 등 수학 지식이 필요한 분야에서 크게 활약했다.

세계 과학사가 중에는 "14세기가 원의 곽수경, 16세기가 폴란드의 코페르니쿠스의 시대였다면 15세기는 세종의 시대였다"고 평가하는 사람도 있다.

세종은 1434년(세종 16년) 간의대(지금의 천문대)를 설치하고 이순지를 책임자로 임명했다. 이순지 모친상을 당해 자리를 비웠을 때 김담이 이를 대신 맡는데 이때 출중한 능력을 여실히 드러내 이후로도 이순지와 함께 일을 하게 된다.

김담은 이순지와 함께 '칠정산(七政算) 내편'과 '칠정산 외편'을 비롯한 많은 천문역서를 교정·편찬했는데 이 칠정산은 우리가 독자적으로 만든 최초의 역법이었다.

이전까지는 통상 중국의 역서를 수입해다 그대로 쓰는 데 그쳤지만 칠정산은 중국의 수시력과 대통력에 기반하면서도 베이징이 아닌 한양을 기준으로 제작됐다. 당시 전 세계에서 독자적인 지방시를 시행한 유수의 나라들에 조선이 이름을 올린 것이다.

 

그 결과 당시 김담 등은 한양의 일출·일몰 시각과 밤낮의 길이를 구했고, 한양의 동짓날 낮의 길이가 위도가 높은 베이징에 비해 14분 이상 길다는 것도 밝혀냈다.

또 이미 당시 1년의 길이가 365.2425일(실제 365.2422일), 한 달의 길이가 29.530593일라는 것까지 정교하게 계산해냈다.

심지어 세종 29년(1447년) 8월에는 그달 그믐에 있었던 일식과 보름에 있었던 월식을 예측하고 관측한 뒤 예측치와 관측치의 차이를 기록해 놓기도 했다.

'칠정'은 태양과 달, 수성, 금성, 화성, 목성, 토성 등 '7개의 움직이는 별'을 가리키며, 칠정산은 이를 이용해 날짜와 절기 등을 계산하는 법이란 뜻이다.

칠정산 편찬 과정에 사용된 정밀한 천문관측기구인 혼천의와 간의 등을 당시 세종과 조선학자들이 직접 제작했고, 이를 이용해 한양의 경·위도와 동·하지점의 위치를 정확히 측정했다는 점도 놀라운 일이다.

박창범 고등과학원 교수는 "김담 등이 확립한 천문학은 한양을 기준으로 태양과 오행성을 계산할 수 있는 독자적인 체계였다는 점에서, 그리고 그 정확성이 동시대 다른 천문 연구보다 앞선다는 점에서 세계적 수준이었다"라고 평가했다.

김담이 체계화한 우리나라 천문학적 지식은 150년가량이 지난 뒤 또 한번 빛을 발했다.

태양계가 속한 우리 은하에서 가장 최근에 관측된 초신성에 대한 인류의 가장 정교하고 풍부한 관측 데이터가 조선왕조실록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우리 은하에서 가장 최근에 관측된 초신성은 1604년에 관측됐다. 400년째 우리 은하에서는 초신성을 구경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1604년의 초신성은 독일의 천문학자 요하네스 케플러에 의해 관측돼 '케플러 초신성'이라고도 불리지만, 케플러의 관측 데이터보다 더 상세하고 풍부한 기록이 조선왕조실록에 실려 있다.

특히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에는 초신성의 밝기를 추정할 수 있는 자료가 담겨 있어 이 초신성이 어떤 유형인지 파악할 수 있는 단서가 되고 있다.

고등과학원은 한국천문학회 부설 소남천문학사연구소 및 한국과학사학회와 함께 24일 서울 동대문구 고등과학원에서 김담 탄생 600주년 기념 학술회의를 개최한다.

이 자리에서 김담의 후손이기도 한 김제완 서울대 명예교수(물리학)는 '케플러와 조선의 1604년 초신성 관측 비교'란 논문을 발표할 예정이다.

다음 달 10일에는 과천국립과학관이 '천문학자 김담의 밤'이란 주제로 김담의 생애와 업적에 대한 강연회를 연다. 내년 10월에는 과학문화진흥원이 주최하는 '김담 탄생 600주년 천문학 국제학술대회'가 김담의 고향인 영주의 동양대에서 개최된다.

박창범 고등과학원 교수는 "조선왕조실록의 초신성 관측 데이터는 케플러의 데이터가 담지 않은 정보를 제공해 이 초신성이 어떤 유형인지 밝혀낼 수 있게 해준다"며 "또 이는 초신성이 어떻게 진화하는지 연구하는 데 결정적인 데이터"라고 말했다.

sisyphe@yna.co.kr

 

김효정 기자
입력 2014.03.04. 15:40업데이트 2014.03.04. 15:43
안상현 한국천문연구원 선임연구원은 “혜성 연구가 우리나라 천문학을 풍부하게 해줄 것”이라고 말했다.

 

“조선왕조실록과 중국 실록의 가장 큰 차이점은 왕이 그것을 열람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입니다. 중국 황제는 자신의 기록을 보고 고치는 일이 많았습니다. 천재지변 현상이 왕의 허물이라고 생각하는 옛날에는 일상적인 일이었죠. 우리나라 실록에는 관측 기록들이 고쳐지지 않은 채로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일본에도, 중국에도 천문 기록이야 남아 있지만 우리만큼 상세하고 정확하지 않습니다.”

안상현 한국천문연구원 선임연구원이 삼국시대 초기부터 2000년 넘게 보관돼 있던 우리 조상의 혜성 관측 기록을 모아 정리한 책, ‘우리 혜성 이야기’(사이언스북스)를 냈다. 안 선임연구원은 지난 2월 20일 서울 광화문 주간조선 사무실에서 기자와 만나 우리 천문 관측의 역사가 “다른 나라에 비해서도 체계적이고 우수하다”는 점을 여러 번 강조했다. “20세기 초 우리나라에 근대 천문학을 전해 준 칼 루퍼스라는 인물은 ‘고대 한국의 천문학’이라는 책을 통해, 관측 자료들이 매우 구체적이고 규칙적이었다는 점을 강조했어요. 실제로 2000년 사료를 죽 살펴보다 보면 지금 보아도 놀라운 기록들이 많아요.”

안 선임연구원이 서울대에서 천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을 때만 하더라도 전공 분야는 천체물리학 쪽이었다. 그러나 2001년 사자자리 별똥소나기를 계기로, 영국 유학을 다녀오면서 우리나라의 고서를 읽으며 역사천문학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천문학계에서 어떤 발견이 있었는지 연구하는 것은 ‘천문학사’입니다. 천문학적 아이디어에서 만들어진 유물을 연구하는 것은 ‘고고천문학’인데요, 첨성대 같은 것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일본, 미국 별자리가 다 다르잖아요. 그것을 연구하는 건 ‘민속천문학’ 분야입니다. ‘역사천문학’은 과거의 관측 자료를 현대의 천문 과학 입장에서 분석하는 것입니다.”

‘우리 혜성 이야기’에는 역사천문학적 관점으로 재해석한 우리나라 혜성 관측 역사가 죽 펼쳐져 있다. 삼국시대부터 우리 조상은 하늘을 관측하는 관원과 관청을 따로 둘 정도로 천문에 관심이 많았다. 삼국통일 전 신라에는 사천대(司天臺)라는 관청이 있어 천문박사들이 관측 업무를 맡았고, 백제에는 일관(日官), 고구려에는 일자(日者) 등의 직책이 따로 마련돼 있었다. 고려시대에 들어서도 서운관(書雲觀)이 있었고, 조선시대에는 관상감(觀象監)을 세워 꾸준히 천문을 관측했다. 특히 혜성이나 별똥 같은 현상은 자연현상 이상의 의미가 있다고 해서 자세히 기록하고 관찰했다.

“다만 아쉬운 것은, 고려 초기의 150년 정도 기록이 유실됐다는 것입니다. 고려가 삼국을 통일한 것이 936년이었는데, 1100년에 몽골이 고려를 침략하면서 상당히 많은 자료가 불타 없어졌어요. 이 중에는 고려 서운관의 자료뿐 아니라 신라가 고려에 항복하며 들고 왔던 신라시대의 관측 자료들도 포함돼 있었지요.” 안상현 연구원은 “1054년에 폭발한 게성운 초신성을 관측한 자료도 있었을 텐데 유실돼 아쉽다”고 말했다.

조선시대에는 혜성이 관측됐을 때 ‘성변측후단자’를 작성했다. 영조 35년인 1759년 음력 3월 6일 조선 하늘에 혜성이 발견됐다. 당시 환갑이 넘어 집에서 쉬고 있던 천문학자 안국빈도 왕의 부름을 받고 입궁해 혜성을 관측했는데, 이들은 혜성의 좌표, 위치, 변화, 색깔, 꼬리 등을 규정에 따라 일일이 글로 적었다. 안상현 연구원은 “그때 나타났던 혜성이 유명한 핼리 혜성”이라고 설명했다. “핼리는 1742년에 세상을 떠났는데, 1758년 말에 혜성이 나타날 것이라 예측했죠. 조금 늦어져 1759년에 실제로 관측이 됐는데, 저는 현재 남아 있는 우리나라의 ‘성변측후단자’를 통해 우리나라에서도 그 당시 핼리 혜성이 관측되었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그러나 우리 조상이 천문 관측에 대한 과학적 지식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핼리 혜성이 관측됐을 당시 영조의 가장 큰 관심사는 혜성의 ‘꼬리가 어느 방향인가’에 대한 것이었다. 안 연구원은 “혜성 꼬리 방향이 나타나는 지방에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꼬리가 서남쪽을 향했다는 보고를 듣고 영조는 ‘내가 부덕하여 이런 일이 생겼다’고 한다”고 말했다. 특히 영조 46년(1770년)의 승정원일기를 보면 천문 관측의 이유를 밝혀 “나는 측후(관측)를 위해서가 아니라 사실은 저 하늘에 정성을 다하여 저 하늘이 굽어살피도록 하려는 것”이라고 하고 있는데 안 연구원은 “우리 조상의 관측 방식은 과학적이었지만, 그에 대한 해석은 과학적이지만은 않았다”고 덧붙여 설명했다.

그래서 지금에 와서 조상의 관측 기록을 다시 살펴보면 현재 천문학의 발전에도 도움을 줄 만한 것들이 많다. “예를 들어 100년, 200년 주기로 도는 혜성의 경우에는 지금 나타난다 하더라도 옛 기록을 분석해 그 주기를 밝힐 수 있고, 서구에서는 관측됐었지만 동아시아에서는 묘연하던 관측 사실들을 우리 자료를 통해 밝힐 수 있습니다.” 안상현 연구원은 “아직도 남아 있는 자료들이 더 많다”고 말했다.

그러나 역사천문학 분야는 그렇지 않아도 얕은 우리나라 천문학 인프라 중에서도 유독 연구 인력, 자원 등이 부족한 편이다. “역사천문학이라는 분야 자체가 인문학과 과학의 융합 학문입니다. 천체물리를 모르면 자료를 현대 천문학 이론으로 분석할 수 없고, 한문을 읽을 줄 모르면 자료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니까요. 그러다 보니 역사천문학자라고 해봤자 전국에 20~30명 남짓인데, 그나마도 천문학을 주 전공으로 하는 사람은 5~10명에 불과할 겁니다.” 그래서 오히려 할 일이 더 많기도 하다. 최근에는 온종일 666년에 출간된 우리나라 최초의 천문학 연구서를 번역하는 데 매달리고 있다고 한다.

안상현 연구원은 “왜 옛날 혜성 관측 자료를 연구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천문학의 역사를 다시금 되짚었다. “망원경이 발명된 것은 400년 된 일입니다. 워낙 먼 거리의 별들을 관측하다 보니 빛을 관측해서 어떤 원소로 이뤄졌는지 분석하는 분광학이 필수적인데, 분광학이 발전하기 시작한 것이 겨우 150년 됩니다. 그러나 우리 조상의 천문 관측 역사는 2000년입니다.” 안 연구원은 “이번에 분석한 혜성 자료는 물론 앞으로 재해석될 수많은 자료가 우리 천문학을 더욱 풍부하게 만들 것”이라고 강조했다.

 

 

입력 2008-05-19 03:01업데이트 2009-09-25 02:07

국내 最古 천문도 따로 있다?|동아일보 (donga.com)

 
 
연세대 소장 ‘건상열차분야지도’ 등 2점

“현존 최고 국보 228호보다 시기 앞선 듯”

핼리혜성 관측 일지 ‘성변등록’도 공개

 

15일 오후 연세대 학술정보원(옛 중앙도서관) 내 전시실. 옛 천문도와 천문학, 수학 관련 고문서 40여 점이 13일부터 전시 중이다. 다음 달 28일까지 계속되는 ‘한국 과학의 전통과 연세’를 주제로 한 전시회다.

전시작 중 조선시대의 필사본 천문도 한 점이 눈길을 끈다. ‘건상열차분야지도(乾象列次分野之圖·가로 74cm, 세로 140cm)’. 이 천문도의 별자리 그림은 국내 최고(最古) 천문도인 국보 228호 천상열차분야지도각석(天象列次分野之圖刻石·‘각석’은 돌에 새겼다는 뜻)을 닮았다. 이름도 맨 앞 글자만 다를 뿐이다. ‘乾’도 하늘이란 뜻이니 의미는 같다.

‘국보 228호의 필사본인가’라는 의문이 드는 순간 유물을 소개한 글이 눈에 띈다. “천상열차분야지도의 제작을 위해 시작(試作)한 것으로 추측되는 자료다.” 이 추정이 맞다면 국보 228호보다 제작 시기가 앞서는 국보급 천문도인 셈이다.

그 근거는 뭘까. 발문에 적힌 이 유물의 제작 시기는 ‘홍무(洪武) 28년’으로 1395년(태조 4년)이다. 국보 228호의 제작 시기는 1395년 음력 12월로 제작 연도가 같다.

‘한국천문학사’를 펴낸 나일성 연세대 명예교수는 국보와 같은 계통의 천문도이면서 구성이 다르고 국보 제작을 주도한 권근(1352∼1409)의 이름만 발문에 적혀 있는 점에 주목했다. 국보에는 권근 등 제작에 참여한 학자 12명의 이름과 관직이 적혀 있다.

이 유물은 또 국보와 달리 별자리 그림 바깥 둘레에 주천도수(周天度數·하늘의 둘레를 나타낸 눈금)가 없다. 국보 천문도는 18세기까지 절대적 권위를 누렸기 때문에 국보 이후 제작된 같은 계통의 목판본, 필사본 천문도는 구성과 별자리 그림이 국보와 똑같은 데 비해 이 천문도는 국보와 달라 후대 유물로 보기 어렵다는 게 나 교수의 설명. 나 교수는 “권근의 이름만 적혀 있는 것으로 볼 때 천문도를 돌에 새기기 전 실수를 줄이기 위해 만든 여러 시안 가운데 한 점일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또 다른 필사본 천문도(가로 83.5cm, 세로 139cm) 한 점도 주목된다. 이 천문도는 국보 228호 계통의 천문도지만 별자리 그림의 방위가 국보에 비해 시계 방향으로 90도 틀어져 있고 별자리 그림을 28구역으로 나눈 ‘28수(宿)’의 구획을 나타내는 방사선, 적도와 황도, 주천도수가 없다.

나 교수는 이 천문도가 고려 13세기 말∼14세기 초에 제작된, 국보의 모본일 가능성을 제기했다. 후대의 필사본이라면 국보와 천문도의 구성이 다를 리 없고 별자리 그림 이외의 구성 요소가 이처럼 간략할 수 없다는 것.

국보 228호는 고구려의 천문지식을 기초로 만든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나 교수는 “‘고려사’에, 탁월한 천문학자 오윤부(?∼1305)가 ‘일찍이 스스로 천문을 그려 바쳤더니 일자(日者·날의 길흉을 점치는 사람)가 다 취하여 이를 본받았다’고 적혀 있다”며 “천문도의 아이디어가 조선시대에 갑자기 나타났을 리 없는 만큼 고려시대에 제작된 다양한 종류의 천문도를 바탕으로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시작 중 조선시대에 천문, 지리학 등의 사무를 맡았던 관청인 관상감의 핼리혜성 관측 기록이 적힌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222호 성변등록(星變騰錄)도 흥미롭다.

이 유물은 1759년 3월 5일 출현한 핼리혜성이 3월 29일 소멸할 때까지의 변화상을 빠짐없이 관측 기록한 것이다. 날짜별로 혜성의 이동 경로, 혜성의 꼬리 길이, 모양, 색깔까지 자세히 기록했고 3월 27일 혜성이 보이지 않는데도 혜성이 소멸한 것으로 추측할 뿐 관측을 계속해 29일 소멸을 확정했다.

김영원 연세대 학술정보원 국학연구실장은 “당시 핼리혜성은 전 세계에서 관측돼 기록으로 남았지만 ‘성변등록’처럼 상세한 기록은 유례가 없다”고 말했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 입력 : 2016.03.31 06:02

이순지·이천을 아시나요…장영실만 있는 것이 아니다 - 매경프리미엄 (mk.co.kr)

  • 원호섭
▲ 장영실
 
[뉴스&와이] "조선은 중국과 멀리 떨어져 있고 모든 제도는 중국을 따르고 있으나 천문을 관측하는 기기가 갖추어지지 못했다."

 세종 14년(1432년) 초가을 어느 날. 세종은 신하들과 이야기를 하던 중 이같이 말했다. 세종은 조선 초기 학자로 유명한 정인지에게 "천체관측기와 계시기를 창안하고 제작하여 측정과 시험에 대비하도록 하라"고 명했다. 이후 7년 동안 경복궁 서쪽 후원에 천문 관측 시설이 만들어졌고 간의, 혼의, 앙부일구, 자격루 등이 설치됐다. 조선왕조 건립 뒤 처음 시작된 '의표창제(儀表創製)' 프로젝트였다. 의표창제란 물시계, 해시계 등을 제작하기 위해 1432년, 세종 14년에 시작된 천문학 사업이었다.

 의표창제에서 큰 역할을 했던 사람이 바로 조선시대 최고 과학자로 꼽히는 '장영실'이다. 장영실은 최근 종영된 TV 드라마로 방영되면서 재조명받고 있다. 하지만 장영실에게 지나치게 초점을 맞추다 보니 당대에 큰 업적을 남겼던 다른 과학자들 공은 보이지 않는다. 문중양 서울대 국사학과 교수는 "그동안 우리는 장영실을 통해 15세기 조선의 과학을 바라봤다"며 "이 틀을 벗어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세종은 의표창제를 시작하며 '투 트랙' 전략을 펼쳤다. 정인지, 정초 등 관료학자들이 문헌을 통한 이론 연구를 시작했고, 이천과 장영실 등의 기술 전문가들이 기기 제작을 맡았다. 문중양 교수는 "천문의기 제작 과정은 고위직에 있던 이천의 총책임과 감독하에 이뤄졌을 것"이라며 "실질적인 문제 해결에는 전문 기술자인 장영실의 역할이 컸을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무관 출신인 이천은 한글 보급에 큰 기여를 한 인물로 꼽힌다. 남문현 건국대 명예교수는 그의 저서 '장영실과 자격루'에서 "이천은 병기 제조와 금속가공 기술자로 고위 관리직에 등용된 기술관료"라며 "유능한 과학기술자로서 세종의 과학, 국방, 음악, 인쇄술의 혁신을 주관했다. 세종이 이천을 만남으로써 역사적 위업을 완성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고 서술했다. 이천은 세종 16년인 갑인년 7월에 조선조 금속활자의 기본이 되는 '갑인자'를 만들었다. 이 활자의 성분은 구리 84%, 아연 3~7%, 납 5%, 무쇠 0.1%로 그 강도가 미국 해군의 대포에 사용되는 금속 강도에 필적할 정도였다. 이천이 이 같은 업적을 낼 수 있었던 것은 의표창제 사업을 진행하면서 얻은 기술을 활자 주조에 활용했기 때문이다. 그는 조선 화학무기 체계를 완성하면서 자주국방의 길을 여는 데도 일조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순지와 김담도 빼놓을 수 없다. 이들은 조선 초기 대표적인 천문학자로 꼽힌다. 장영실과 이천이 기계 제작 및 주조에 능한 공학자였다면, 이순지와 김담은 천체를 관찰할 수 있었던 진정한 의미의 과학자였다. 이들은 조선 고유의 역법인 '칠정산내외편'을 편찬해 중국의 역법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역법을 시행하는 데 기여했다. 특히 이순지의 능력은 상당히 뛰어났던 것으로 전해진다. 돌아가신 어머니를 모시는 '시묘'를 위해 이순지가 의표창제에서 빠지자 천문을 관측하던 일에 큰 차질이 발생했다. 김담이 대신 자리를 맡았지만 이순지가 필요했다. 결국 세종은 이순지에게 돌아올 것을 명령했다. 두 사람의 연구를 통해 서울을 중심으로 표준시간을 정할 수 있게 되면서 농업 발전에 기여했다.

 장영실은 물시계인 자격루와 옥루 개발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조선왕조실록은 "원나라의 물시계가 있었다 하나 정교함이 영실의 정밀함에는 미치지 못하였을 것이다. 그 공이 작지 아니하므로 호군의 관직을 더해주고자 한다"고 서술하고 있다. 자격루와 옥루 개발에 많은 기술자들이 동원됐지만 장영실의 기여가 결정적이었음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15세기 장영실이 보여준 업적은 조선시대 최고 과학자라고 하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드라마 속에서 그려진 장영실의 모습에는 허구가 많다. 감이 떨어지는 것을 보고 중력에 대해 생각하거나, 지동설을 깨닫는 부분은 사실과 다르다. 엄밀히 말하면 장영실은 과학자라기보다는 기구를 제작하는 '공학자'에 가까웠다. 또한 장영실이 세계 최초의 정량적 강우량 측정기인 '측우기'를 개발했다는 것도 사실과 다르다. 세종실록에 따르면 측우기는 세종의 세자인 문종이 제작했다. 과학사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장영실이 측우기를 제작했다는 기록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사실인 것처럼 광범위하게 인식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교수는 "드라마의 기획 의도에 따라 장영실에서 나오는 허구적인 내용에 대해 다르게 접근할 수 있다"며 "드라마를 여러 사람이 즐길 수 있는 '엔터테인멘트'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하지만 드라마 장영실을 역사 교육의 수단으로 접근한다면 사실 왜곡이 될 수 있다"며 "다른 나라에 역사 교육을 제대로 하라고 말하려면 우리 역사를 되돌아보는 책임감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문중양 교수는 "세종대왕 시절, 과학기술의 위대한 성취는 건국 직후 혼란 시기가 지난 뒤 나타난 준비된 군주와 장영실을 비롯한 정인지, 이천, 이순지, 김담 등 수많은 뛰어난 인재들의 협동 작업 결과"라며 "장영실을 중심으로만 조선시대 과학을 살펴보게 되면 당대의 모습이 잘못 비쳐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원호섭 과학기술부 기자]

 

 

  • 수정 2007-11-21 21:01 등록 2007-11-21 21:01

장영실의 첨단 물시계 ‘자격루’ 복원 (hani.co.kr)

물시계+시보장치 ‘집채만한 크기’
고궁박물관 28일부터 일반인 공개

조선시대 세종 때(1434년) 장영실이 주관해서 만든 첨단 시계인 자격루가 복원됐다.

국립고궁박물관(관장 소재구)은 21일 오전 박물관 지하 1층 전시실에서 남문현 교수가 이끄는 건국대 산학협력단에 맡겨 완성한 자격루 복원품을 공개했다. 복원품은 중종 31년(1536)에 개량해 1895년까지 사용하다가 훼손된 채 덕수궁에 보관 중인 자격루(국보 제229호)를 본보기로 했다.

가로 6m, 세로 2m, 높이 6m로 집채만 한 자격루는 크게 물시계와 시보장치 등 두 부분으로 돼 있다. 물시계는 물을 일정하게 흘려보내는 물항아리 셋과 수위가 높아짐에 따라 시간 흐름을 눈금 잣대로 표시하는 물통 기둥으로 구성돼 있다. 시보장치는 눈금 잣대가 밀어 떨어뜨린 작은 쇠구슬이 스위치가 돼 1경부터 5경까지 숫자대로 북을 울리고 징을 때려 시간을 알리도록 돼 있다. 이렇게 자격루에서 발생한 시보는 운종가(종로)의 보신각으로 전해져 인정(28회 타종)과 파루(33회 〃)로 변환돼 백성의 일과를 관리하는 구실을 했다.

<세종실록>에는 “시각을 알리는 사람이 잘못 알리게 되면 중벌을 면치 못함을 염려하여 (세종이) 장영실에게 명해 시각을 알리는 일을 맡길 시보(時報) 인형을 나무로 만들었으니, 이에 시각을 스스로 알림으로써 사람의 힘이 들지 않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번 복원품은 일본인 학자의 잘못으로 2단으로 배치됐던 물항아리를 원래의 3단으로 바로잡았다.

남문현 교수는 “자격루는 동아시아 기술(물시계)과 아라비아 기술(시보장치)이 서울에서 만나 완성된 첨단 시계”라면서 “복원 작업은 기획에서 완성까지 24년이 걸렸다”고 말했다. 복원품은 국립고궁박물관이 재개관하는 28일 이후 관람할 수 있다.

임종업 선임기자 blitz@hani.co.kr

 

 

유리건판 궁궐사진전-자격루 (daum.net)

입력 2007. 12. 27. 17:50수정 2007. 12. 27. 17:50
 

【서울=뉴시스】

1434년 세종의 명으로 장영실 등이 만든 자동 시보장치 물시계이다.

현존하는 자격루는 1436년(중종31)에 제작한 것으로서 현재 덕수궁에 옮겨져 있다.

창경궁 원래 위치 보루각에 있는 당시 유리건판 사진이며 이 자격루는 청동으로 만든 파수호 하나, 수수호 둘 그리고 수수통 둘 만이 남아 있다.

수수통 양 옆에는 측우기와 석조대와 위치하고 있다.

 

  • 수정 2019-10-19 11:23등록 2008-04-10 22:27

“조선사람들 활 정말 잘 쏜다” (hani.co.kr)

임진왜란·청일전쟁 당시 조선 상황 묘사
“일생에 단 두번 씻어” 비하 내용도 담아

  •  
임진왜란은 당시 일본 또는 조선에서 이를 목격한 극소수 서양인들에 의해 유럽에도 알려졌다. 그림 왼쪽은 1592(선조 25년) 4월13~14일 이틀 동안 부산진에서 벌어진 왜군과의 전투장면을 그린 부산진 순절도. 오른쪽은 같은 달 15일 동래성에서 왜군에 맞서다 순절한 부사 송상현과 군민들의 항전 내용을 그린 동래부 순절도. <한겨레> 자료사진

 

근대 이전 서양인들은 조선과 조선인들을 어떻게 바라봤을까? 한국문학번역원(원장 윤지관)과 명지대-LG연암문고(이사장 유영구)가 내놓은 <임진난의 기록> <백두산으로 가는 길> <조선의 소녀 옥분이> 등 3권의 책들(살림 펴냄)은 바로 그런 문제의식에서 지난 2005년부터 진행해온 ‘그들이 본 우리(Korea Heritage Books)’총서 발간작업의 첫 성과물이다.

포르투갈 출신 예수회 선교사로 임진왜란 당시 일본에 와 있던 루이스 프로이스(1532~1597)의 <임진난의 기록>은 일본 전국시대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임진년 침략전쟁 과정을 직접 관찰한 저자의 방대한 필사본 <일본사> 중에서 임진왜란에 대해서 쓴 마지막 10개의 장을 번역한 것이다. 일본의 전쟁 준비, 부산에 도착해서 서울을 함락하고 평양성을 공격하는 상황, 명군의 개입과 강화협상에 이르기까지 전쟁의 주요 과정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이 책의 변역자인 정성화 명지대 교수는 “프로이스가 직접 조선에 건너왔던 것은 아니고 세스페데스 신부 등 당시 종군했던 선교사와 일본 쪽 자료들을 토대로 쓴 것”이라며 “왜곡이 심하지만 조선사람들이 활을 굉장히 잘 쏜 것으로 묘사하는 등 흥미있는 사실들을 많이 담고 있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또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인터뷰하고 통역도 했던 저자가 히데요시를 매우 비판적으로 그리고 있는데, (야마오카 소하치의 소설) <대망>에서 묘사된 내용과 일치한다”며, 그가 국내 정적들을 제거하기 위해 조선침략을 감행한 것으로 묘사했다고 전했다.

<백두산으로 가는 길>(조행복 옮김)은 ‘영국군 장교의 백두산 등정기’라는 부제를 달았는데, 청일전쟁 때 중국주재 영국공사관 육군부관을 지낸 저자 알프레드 캐번디시(1859~1943)는 1897년에 빅토리아 여왕 즉위 60돌을 축하하기 위한 조선특별사절단의 일원으로 제물포로 들어와 육로로 원산을 거쳐 백두산에 올랐다. 책은 “들리는 말로는 조선인은 일생 동안 단 두 번 씻는다” 등의 조선비하 내용도 담고 있지만 당시 낙후한 조선의 현실을 보이는대로 충실히 그렸고 정치·외교 상황도 언급하고 있다.

1903년 감리교 선교사로 와서 서울과 경기도에서 전도활동을 하다 1912년 미국에 돌아간 미네르바 구타펠의 조선 체험기 <조선의 소녀 옥분이: 선교사 구타펠이 만난 아름다운 영혼들>(이형식 옮김)은 새로운 문명과 전통가치 사이에서 갈등하던 당시 조선인들의 삶을 어린이와 왕자 등 여러 주인공들 생활을 통해 엿보게 한다. 유교, 가부장제, 미신, 귀신 등에 사로잡힌 다양한 인물들을 내려다보는 우월적인 시각으로 그리고 있다.

<그들이 본 우리> 시리즈 목록은 2005년 명지대-LG연암문고가 세계 각국에서 수집한 고서, 문서, 사진 등 1만여 점의 한국관련 자료들 가운데 유일 희귀본들을 포함한 91종을 가려내고, 이 가운데 2006년에 단행본 9종 등 5개 언어권 13종의 도서, 그리고 2007년에는 3개 언어권 10종의 도서를 각각 선정해 번역지원한 끝에 1차로 완성된 것들이다. 우리의 문화적 정체성 확립을 위해 “우리를 외국에 알림과 동시에 그들은 우리를 어떻게 보아왔고 보고 있는가를 점검하는 작업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본 한국문학번역원이 제안한 이 사업은 앞으로 5년 동안 선정된 자료들을 모두 번역해내게 된다.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예술]

 

  • 수정 2019-10-19 11:23 등록 2008-02-19 21:35

조선 버리이어티쇼 ‘산대희’ 대보름에 부활 (hani.co.kr)

광화문보다 높은 산 만들고
광대 6백명이 펼쳤다는 잔치
국악원이 공연예술로 되살려

기자이재성
조선 버리이어티쇼 ‘산대희’ 대보름에 부활

 

역사 속으로 사라졌던 대표적인 전통 축제 ‘산대희’가 무대 공연 예술로 되살아난다.

국립국악원은 정월대보름 공연 ‘2008 산대희’를 21일 오후 7시30분 서울 서초동 국립국악원 예악당 무대에 올린다. 고려시대부터 조선 중기까지 화려한 꽃을 피웠던 ‘산대희’는 신선들이 산다는 삼신산을 만들어놓고 광대들이 펼치는 ‘가무백희’다. 축제가 절정을 이뤘던 조선 중기에는 광화문을 가릴 정도로 높은(2 가량) 산대를 설치하고 600여명의 광대들이 좌대와 우대로 나뉘어 경쟁적으로 재주를 뽐냈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열린 것은 1865년 대원군의 경복궁 중건 당시로 추정된다. 국립국악원이 산대희를 무대에 올리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 15일 국립국악원 예악당. ‘산대희’ 연습이 한창이다. 객석에 앉으니 악사들의 붉은 옷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원색의 향연이라 해도 좋을 만큼 화려한 색채감으로 황홀하다. 거문고와 가야금, 아쟁과 해금, 대금과 단소를 든 악사들은 왕이 움직일 때만 연주를 했다고 한다. 만수무강을 기원하는 ‘낙양춘’과 ‘수제천’이 울려퍼지고, 장수를 상징하는 청학과 백학, 연꽃 속에 숨어있던 여령(춤추는 여자)이 어울려 ‘학연화대무’를 춘다. 3천년에 한번 열리는 불로장생의 복숭아를 바치는 궁중무용인 ‘헌선도’, 나쁜 기운을 물리치는 ‘호랑이 놀이’가 이어진다. 호랑이는 “남대문 태워먹은 인간들”을 나무란다.

산대에서는 경기민요와 가야금병창 소리꾼들이 ‘사철가’ 등을 부른다. 땅재주와 구슬받기 등 흥미진진한 기예들은 영화 <왕의 남자>의 모태가 됐던 ‘소학지희’의 한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풍물패가 열어가는 2부에서는 지난해의 묵은 액을 풀고 새해의 만복을 나누는 ‘비나리’에 이어 온갖 짐승들이 춤을 추는 ‘백수무’가 펼쳐진다. 공연의 마지막은 출연진과 관객이 하나 되어 만드는 달처럼 둥근 춤, ‘강강술래’다.

이번 공연은 국립국악원의 정악단, 민속악단, 무용단과 남사당놀이보존회, 사자놀이 연구회 등 120여명이 총출동하는 전통판 버라이어티쇼다. 관객들은 직접 만든 짐승 탈을 쓰고 ‘백수무’에 동참할 수 있다. 동물가면이나 모자를 미리 준비해 올 수도 있고, 공연 시작 전 로비에 마련된 ‘체험 코너’에서 만들어도 된다. ‘귀밝이술 맛보기’, ‘부럼 깨기’도 준비돼 있다.

공연의 자문을 맡은 사진실 중앙대 교수(연희예술학)는 “산대 문화는 동아시아에 보편적이었는데, 일본에서는 마쓰리 형태로 남아있는 반면, 중국과 우리나라에서는 자취를 감췄었다”며 “언젠가 종묘에서 광화문까지 산대희의 행렬이 이어지는 날을 기대해본다”고 말했다. (02)580-3300~3.

이재성 기자 san@hani.co.kr, 사진 국립국악원 제공

 

 

19일 일본 구마모토 현 야쓰시로 시립박물관에 전시된 ‘조선고면’. 사라진 3종의 하회탈 가운데 하나인 별채 탈로 추정된다. 야쓰시로=서영아 특파원
 
박물관 연구원 18세기 문헌보고 존재 처음 알아

올 1월 가정집서 대대로 보관하던 탈 직접 확인

사라진 하회탈(국보 121호) 중 하나로 추정되는 조선시대의 탈이 일본 구마모토(熊本) 현 야쓰시로(八代) 시립박물관에서 19일 일반에 공개됐다.

이 탈은 이날 시작된 전국시대 무장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 유품 전시회에서 85점의 다른 유품과 함께 ‘조선고면(朝鮮古面)’이란 이름으로 전시됐다.

이 탈은 전시장 입구의 가장 눈에 띄는 곳에 배치됐고 옆에는 탈을 360도 각도에서 촬영한 3D 영상이 상영되고 있다. 바로 옆에는 한국의 하회탈에 대한 사진과 설명이 쓰인 패널이 걸려 하회탈과의 연관성을 짚고 있다.

이 탈이 발견된 것은 올해 1월. 이 박물관 학예연구원 도리즈 료지(鳥津亮二) 씨가 2년 전부터 고니시 관련 전시회를 기획하면서 사료를 뒤지던 중 ‘기타마쓰에(北松江) 마을 농민의 집에 임진왜란 때 조선에서 가져온 커다란 가면이 있다’는 18세기 지방사료 ‘히고(肥後·구마모토의 옛 이름)국지’의 기록을 발견했다.

도리즈 씨는 그 뒤 동료 학예원에게서 “10여 년 전 어느 가정집에서 임진왜란 때 조상이 조선에서 가져왔다는 커다란 가면을 본 적이 있다”는 말을 듣고 그 집을 찾아가 실물을 확인했다.

전시된 탈은 가로 21cm, 세로 25.6cm로 일본의 가면에 비해 매우 크다. 이마는 11.6cm, 코 높이가 14cm에 이를 정도로 얼굴의 굴곡이 커 일본의 가면과는 다른 특징을 보인다.

박물관의 후쿠하라 도루(福原透) 학예계장은 “하회탈 사진과 비교해 보면 눈의 표정이나 뺨의 주름, 코의 느낌이 유사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박물관 측은 “이 탈이 임진왜란 때 가져온 조선시대 가면이란 점은 확실하지만 하회탈인지는 알 수 없다”며 조심스러운 태도를 나타냈다.

박물관 관계자는 “탈을 일개 농민 가정에서 대대로 400여 년간이나 보관해 왔다는 점 자체도 대단한 일”이라며 “야쓰시로 지역으로서도 귀중한 사료지만 한국의 탈 역사에도 중요한 자료가 될 것”이라고 기대를 나타냈다.

탈의 보존 상태는 좋지 않은 편이었다. 벌레가 먹고 건조해져 오른쪽 뺨과 턱 일부가 유실됐고 만지기만 하면 부스러져 박물관 내에서도 운반이 어려울 정도다.

이번 전시회에는 이 탈과 비슷한 시기에 조선에서 가져온 것으로 추정된다는 기와 2점도 함께 전시됐다. 기와들은 고니시가 생전에 이 지역에 세웠던 무기시마(麥島) 성 유적에서 출토됐으며 제작 기법 등으로 볼 때 조선의 것이 확실해 역시 임진왜란 때 가져온 것으로 보인다.

야쓰시로는 인구 13만 명의 작은 도시로 박물관은 구마모토 공항에서 버스로 1시간, 다시 택시로 15분 정도 가야 하는 곳에 위치해 있다. 전시회는 11월 25일까지 열릴 예정이다.

한편 한국의 중요무형문화재 69호 하회 별신굿 탈놀이 예능 보유자 김춘택(할미 탈 역) 씨는 “그 탈이 실제로 사라진 하회탈 중 하나로 확인된다면 탈놀이 복원 연구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동표 하회동 탈 박물관 관장은 22∼25일 하회별신굿탈놀이보존회와 함께 이 박물관을 방문해 탈을 조사하고 정밀 실측해 별채(세금을 징수하는 포악한 관리) 탈로 복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바로잡습니다▼

△19일자 A1, 16면 ‘‘별채 탈’ 日서 400년 만에 발견’ 기사에서 이 탈을 소장하고 있는 곳은 하치다이(八代) 시립박물관이 아니라 야쓰시로(八代) 시립박물관입니다. 일본어에서는 같은 한자라도 음으로 읽느냐(음독), 뜻으로 읽느냐(훈독)에 따라 발음이 다른 경우가 많습니다. ‘八代’라는 지명은 뜻으로 읽어야 하는데, 음으로 읽어 실수가 빚어졌습니다.

야쓰시로=서영아 특파원 sya@donga.com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별채탈’ 발견 도리즈 연구원

 

‘사라진 하회탈 중 하나’로 추정되는 탈이 세상의 빛을 보게 된 데는 야쓰시로(八代) 시립박물관 학예연구원 도리즈 료지(鳥津亮二·30·사진) 씨의 역할이 컸다.

도리즈 씨는 일본 전국시대인 1588∼1600년 야쓰시로 지역 다이묘(大名·영주)였던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의 일본 내 첫 전시회를 기획하면서 전국에 흩어진 관련 사료를 모으던 중 이 탈을 발견했다.

―고니시 유품 전시회를 기획했던 동기는….

“고니시는 임진왜란 때 조선을 침공한 장수지만 이 지역에서는 성을 짓고 시가지의 원형을 만들었으며 천주교를 전파했던 인물로 알려져 있다. 지역사에 중요한 인물이지만 기록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의 가신이던 고니시는 조선에서 돌아온 뒤인 1600년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가 전국을 통일한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패해 처형됐다. 이후 야쓰시로는 도쿠가와의 가신인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의 손에 넘어갔다.

―탈은 어떻게 보관돼 있었나.

“400년간 대대로 야쓰시로에서 살아온 한 가정의 불단 밑 오래된 나무상자에 담겨 보관돼 있었다.(일본인들은 가보를 불단 밑에 보관한다) 이 가족은 대대로 ‘조상이 고니시 장군의 조선 출병에 참가해 조선반도에서 가져온 것’이라며 보관해 왔을 뿐, 지방 사료에 관련 기록이 있다는 사실 자체도 모르고 있었다. 이 가족이 4월 박물관 측에 보관을 의뢰했다.”

―탈의 유래를 확인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나.

“이 지방의 학자가 조선에서 온 가면임이 확실하다고 고증했다. 6월에는 한국에 가서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원의 도움으로 전경욱 고려대 교수를 소개받았다.”

―한국에 연구 목적으로 빌려주거나 연구에 협조할 의향은….

“한국의 탈 역사 연구에 도움이 된다면 기쁘게 협력하고 싶다. 그러나 신중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문화재를 관리하는 처지에서는 보존이 우선이다. 아직 나무의 재질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지금부터 보존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어봐야 한다. 시간이 걸릴 듯하다.”

야쓰시로=서영아 특파원 sya@donga.com

 

 

 

[인쇄술]

첫 한문 인쇄체 금속활자 찾았다 | 중앙일보 (joongang.co.kr)

중앙일보

입력 2007.12.05 05:10

업데이트 2007.12.05 06:45

업데이트 정보 더보기

국립중앙박물관이 공개한 교서관인서체자 중 ‘力(력)’자. 사진 왼쪽 활자는 1684년, 오른쪽은 1723년에 문집을 인쇄하는데 쓰였다.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첫 한문 인쇄체 금속활자인 교서관인서체자(校書館印書體字)가 발견됐다. 국립중앙박물관은 4일 “40만개에 달하는 박물관 수장고의 금속활자를 정리하면서 인쇄물로만 남아 있던 교서관인서체자 1004점을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새로 발견된 활자는 조선시대 출판 담당 관청인 교서관에서 만든 걸로 추정돼 교서관인서체자로 불린다. 이전에 붓으로 흘려 쓴 듯한 글씨체의 활자와 달리 가로획이 가늘고 세로획이 굵다. 또 필획의 끝 처리를 간소화해 인쇄체의 특징을 갖춘 첫 금속활자다. 중국 명나라 중기 이후 유행한 인쇄체(명조체)를 도입해 조선이 만든 것이다. 현존 인쇄물 가운데 개인문집인 『낙전선생비전록』(1684)을 시작으로 대한제국기 학부(學部)에서 교과서를 출판할 때까지 사용됐다. 『동국문헌비고』(1770)와 같은 관찬 서적뿐 아니라 조선 후기 지체 높은 이들의 문집 출판에 많이 쓰여 ‘문집자(文集字)’로도 불렸다.

해당 활자를 찾아낸 이재정 국립전주박물관 학예관은 “첫 인쇄체 금속활자일 뿐 아니라 오랜 기간 널리 쓰였다는 점에서 조선후기 인쇄문화사와 인쇄기술사 연구에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활자”라고 평가했다.

권근영 기자

 

청주시 조선시대 금속활자 갑인자 복원 (daum.net)

입력 2007. 11. 22. 08:55수정 2007. 11. 22. 08:55
 

(청주=연합뉴스) 윤우용 기자 = 청주시가 조선시대 대표적 금속활자인 갑인자 계열의 활자 10종을 복원했다.

22일 청주시에 따르면 시의 의뢰로 지난 5월부터 조선시대 금속활자 복원사업에 나선 경북대 영남문화연구원과 청주대 한국문화연구소,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연구실은 세종 때 만들어지고 임진왜란 이후까지 사용된 갑인자 계열의 금속활자 10종을 최근 복원했다.

조선시대 만들어진 활자 중 가장 정교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갑인자로 인쇄된 책으로는 `대학연의(大學衍義)' 등이 있다.

 

시는 이에 따라 다음달 14일 흥덕구 운천동 고인쇄박물관 세미나실에서 갑인자 및 한글 금속활자 주조인판(쇠로 만들어진 조판틀)을 공개하고 조선시대 활자주조 및 조판방법 연구 용역결과도 발표할 예정이다.

시는 이어 내년에는 8억원을 들여 임진왜란 이전에 만들어진 계미자(1403년)와 경자자(1420년), 경진자(1436년), 경오자(1450년), 을해자(1455년) 등 11종의 금속활자를, 후년에도 8억원을 들여 임진왜란 이후에 만들어진 한구자 등 10종의 금속활자를 각각 복원할 방침이다.

시 관계자는 "유네스코 세계 기록유산으로 등재된 직지심체요절(直指心體要節)의 발상지인 청주가 인쇄 문화의 중심지라는 점을 널리 알리고 인쇄 기술사에 대해 체계적으로 연구하기 위해 2010년까지 이 사업을 계속 추진키로 했다"고 말했다.

ywy@yna.co.kr

 

 


 

김선흥입력 2018. 5. 17. 11:42수정 2018. 5. 17. 12:00

안 가봤으면서, 조선 사람이 어떻게 아프리카를 그렸지? (daum.net)

[지도와 인간사]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에 강리도가 실린 까닭

[오마이뉴스 김선흥 기자]

강리도 혼코지本光寺 본 ⓒ김선흥
안녕하세요. 오래된 질문입니다. 우리 선조들이 서양보다 훨씬 먼저 아프리카를 지도에 그리는 일이 어떻게 가능했을까요? 그 아프리카 지도는 과연 어디에서 온 것일까요? 이번 호의 탐험 과제입니다.

먼저 책 한 권을 소개한 다음 이야기를 이어가겠습니다.

강리도 수록 ⓒ김선흥
2014년에 스미소니언이 출간한 <1000 개의 사물로 보는 역사> (Smithsonian  HISTORY of the WORLD in 1000 OBJECTS)라는 책입니다. 이 책은 기원전 2만 년 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기념비적인 문물 1000개를 통해 인류의 발자취를 시각적으로 살펴보는 기획물입니다. 인류의 창의성과 성취에 대한 시각적 축제(visual celebration of human ingenuity and achievement)라는 평을 받고 있습니다.

이 책에 수록된 사물 중에서도 일부 '특대'의 대접을 받는 것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각각 양면의 지면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문헌으로서는 로제타 석, 마그나카르타 헌장, 미국 최초 헌법 문서 등입니다.

 

우리나라의 문물 중에서는 조선 초 제작된 세계지도 강리도(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 일본 혼코지 소장본)가 유일하게 '특대'로 다루어지고 있습니다(첫 번째 사진). 조선시대에 총 4쪽을 할애하고 있는데 그 중 절반인 두 페이지가 강리도에 대한 내용입니다.

강리도가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이유

이 책은 강리도를 포함하여 총 4장의 지도를 수록하고 있는데 그 중에서 가장 비중 높게 다루어 지고 있는 지도는  강리도와 16세기 터키의 해군제독 피리 레이스(Piri Reis)가 만든 지도(아래 사진, 1929년 이스탄불 황궁에서 발견됨)입니다.

16세기 터키의 세계지도 ⓒ김선흥
강리도가 여기에서 이처럼 부각되어 있는 것은 우연도 아니고 예외도 아닙니다. 서양에서 유사한 저서나 글들은 일일이 예거하기 힘들 정도로 허다합니다. 근래에 나온 책으로서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영국의 저명한 지리학자 제리 브로톤(Jerry Brotton)이 펴낸 <열두개의 지도로 본 세계 역사>(A History of the World in Twelve Maps, 2012)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책은 고대로부터 현대 구글 지도에 이르기까지 가장 의미심장한 지도 12개를 수록하고 있는데 강리도가 그 중의 하나로 다루어지고 있습니다(원저 114-145쪽).

이 책은 강리도에 대해 그 동안 학계에서 축적된 연구 성과를 종합적이고 균형있게 반영하고 있을 뿐 아니라 새로운 통찰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뉴욕타임스 베스트 셀러로 선정된 이 책은 11개의 외국어로 번역되었으며(국내에서는 <욕망하는 지도>라는 이름으로 번역본이 나옴), 오스트리아에서는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었습니다. 강리도의 가치와 성가가 이를 통해 재확인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왜 강리도에 대한 인식이 국내외에서 이처럼 큰 괴리를 보이고 있는가 하는 의문을 다시금 갖게 됩니다. 국내 유일의 국사 사전 <새국사사전>(교학사)에는 강리도가 등재조차 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은 예전에 지적한 바와 같습니다. 아무튼 필자가 연재하는 '지도와 인간사'가  이러한 괴리를 조금이나마 좁힐 수 있었으면 합니다.

이제 아프리카에 주의를 집중해 보겟습니다. 프랑스어 서적 <아프리카 역사의 이해 Connaissances de l'histoire africaine>(Mahawa Kande, 2009)는 첫 머리에서 강리도를 이렇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24-25쪽 ⓒ<Connaissances de l'histo
"강리도는 1402년 한국에서 김사형, 이무, 이회에 의하여 제작되었다. 지도에는 상대적 위치가 정확하지는 않지만 중국 제국뿐 아니라 한국, 일본이 상세히 묘사되어 있다. 서쪽으로는 아라비아 반도, 아프리카 그리고 유럽도 그려져 있는데 중국에 비해서 실제보다 작게 나타나 있다.

이 지도가 보여주는 아프리카의 실제 윤곽에 대한 이해는 포르투갈 항해가 바르톨로뮤 디아스나 바스코 다 가마 보다 앞서 동양인이 그 지역을 탐험했음을 말해 준다. 아프리카 남단 부분은 대체적으로 정확한 형태를 지녔고, 오렌지 강을 찾아 볼 수 있다. 알렉산드리아의 등대도 찾아 볼 수 있다. 나아가 아랍어로 이집트를 의미하는 Misr가 중국어로 표기되어 있다." (이형은 번역 참고)

도대체 서양인들은 어떻게 우리보다 먼저 강리도의 가치를 알아 보았을까요? 특히 아프리카에 주목하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어떻게 아프리카를 알고 있었지?

명품은 숨어 있어도 결국 알아 보는 사람을 만난다고 합니다. 서양에서 강리도를 맨 처음 주목한 학자는 독일인 발터 푹스(Walter Fuch)박사였습니다. 그는 일찍이 1946년에 강리도의 독보적 가치를  소개했습니다(이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설명할 생각입니다).

놀랍게도 푹스 박사는 강리도가  당시의 모든 유럽과 아랍의 지도들을 무색케 해버린다(completely overshadowing)고 평했습니다. 당시 국내에서는 강리도가 알려지지도 않았을 때의 일입니다. 우리나라에서 강리도가 주목받게 되기까지는 푹스 박사의 평가로부터 30년이 지나야 했습니다. 1970년대에 이찬 교수(서울대 지리학과)에 의해서였으니까요.

우리는 이 대목에서  한 가지 흥미로은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강리도를 바라보는 관점과 가치 평가에 있어서  우리와 서양이 다르다는 점입니다. 서양학자들을 가장 놀라게 한 대목은 중국도 아니고 한국도 아닙니다. 바로 유럽과 아프리카입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아프리카입니다. 우리는 그 대목의 가치를 얼른 알아 보지 못했던 것이구요.

푹스 박사의 시선이 붙잡혔던 대목도 물론 아프리였습니다. 서양과 이슬람권 보다 훨씬 먼저 어떻게 동아시아의 지도에 아프리카의 올바른 모습이 그려질 수 있었는가? 이는 한 마디로 역사를 다시 쓰게 하는 수수께끼로  다가 온 것입니다. 실제로 서양 중심의 세계사가 근래 다시 쓰여지는 데에 강리도가 사료로 자주 등장하는 까닭입니다.

푹스 박사의 강리도에 대한 통찰은  동시대의 저명한 중국학 학자  조지프 니덤(Joseph Needham, 당시 영국 캠브리지 대학 교수)에 의해 계승 발전됩니다. 니덤 박사는  일찍이 1959년 <중국의 과학과 문명>(SCIENCE AND CIVILIZATION IN CHINA) 제 3권에서 6쪽에 걸쳐(551-556) 강리도의 탄생 배경과 가치에 대하여 논술하였습니다. 세기의 명저 중의 하나로 꼽히는 이 저서를 통해 강리도가 비로소 세상에 널리 알려지고 세계학계의 관심을 끌기 시작한 것이지요.

니덤의 강리도론은 이 지도의 의미 조명 및 가치 평가에 있어서 굳건한 토대를 놓았다는 점에서 중요한 기록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요지를 아주 간략히 옮겨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 강리도 상의 지리지식은 서양보다 훨씬 앞서고 광범위하다. 이러한 지리 지식은 원나라 시절 아랍, 페르시아인 그리고 투르크 인들과의 접촉에서 얻어진 것이 분명하다. 

- 강리도의 아프리카는 올바른 삼각형 형태를 띠고 있고 정확한 방향을 향하고 있다. 이는 중국에서 1315년부터 그려진 아프리카가 반영된 것이다.

- 반면에 14세기 서양과 아랍의 지도에서 아프리카 남단은 언제나 동쪽을 향하고 있으며 이러한 오류는 15세기 중엽까지도 수정되지 않았다.

- 푹스 박사는 강리도가 당시의 모든 유럽과 아랍의 지도들을 완전히 무색케해 버린다(completely overshadowing)고 보았는데 제대로 본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강리도에 그려진 아프리카 지도의 모본(밑그림)은 어떻게 생겼을까요? 아니, 그게 전해져 내려 온다는 말일까요? 전해져 온다면 어디에서 찾아 볼 수 있을까요? 다음 지도가 바로 그것입니다. 다음 호에서 이어가겠습니다.

초판본 복간본 ⓒ김선흥
<광여도> 수록 ⓒ김선흥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백안의 탐험가, 조선 선비의 길을 따르다

일본과 한국에서의 등반④ - 1924년 금강산 답사기록-2화

월간마운틴 | 글 C.H. 아처 번역 오영훈_서울농대OB·와운루계회 | 

입력 2016.02.16 10:18 | 수정 2016.02.17 16:32

https://blog.daum.net/kim4528959/8900

 

일본과 한국에서의 등반 ④ 1924년 금강산 답사기록-2화 | 백안의 탐험가, 조선 선비의 길을 따르

-출처 | 마운틴 2016년 2월 172호

blog.daum.net

 

 

 

132년 전 프랑스 대통령이 고종에게 보낸 선물 처음 세상에 나왔다

노형석 입력 2020.07.28. 09:06 수정 2020.07.29. 15:06 댓글 283

1888년 조선 프랑스 수교기념 예물 '살라미나'병 공개

출처; https://news.v.daum.net/v/20200728090603079

 

132년 전 프랑스 대통령이 고종에게 보낸 선물 처음 세상에 나왔다

1888년 조선 왕실의 고종 임금에게 그 전해 취임한 프랑스 3공화국 대통령 사디 카르노의 선물이 날아왔다. ‘살라미나’병이라고 부르는 아름답고 화려한 백자채색 꽃병이었다. 높이가 60cm를 넘

news.v.daum.net

 

 

 

누군지 모를 영문 이름 'Tom'…상처 안고 돌아온 국새

등록 2020-02-19 16:32:00

http://www.newsis.com/view/?id=NISX20200219_0000924635&cID=10701&pID=10700 

 

누군지 모를 영문 이름 'Tom'…상처 안고 돌아온 국새

[서울=뉴시스] 박정규 기자 = 고종 때 공식 문서에 활용되다가 약 130여년 만에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조선 국새 '대군주보(大君主寶)‘에는 누군지 알 수 없는 이의 이름이 알파벳으로 선명히 새

www.newsis.com

 

 

구한말 조선 묘사한 사진 등 희귀자료 담은 저서 러시아서 발간

송고시간 2020-02-17 19:10

유철종 기자

제정러시아 탐험대가 수집한 자료 고려인 역사학자가 편저

출처; https://www.yna.co.kr/view/AKR20200217159300080?input=1179m

 

구한말 조선 묘사한 사진 등 희귀자료 담은 저서 러시아서 발간 | 연합뉴스

(모스크바=연합뉴스) 유철종 특파원 = 19세기 말~20세기 초 구한말 조선 사회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는 희귀 사진과 자료 등을 담은 저서가 ...

www.yna.co.kr

 

 

 

대한제국 국악 담은 희귀음반 무더기 발견

'2015 하반기 국악학 전국대회' 논문발표 중'황실대취타' '국거리' 등 11장 새롭게 발견

이데일리 | 이윤정 | 입력 2015.11.23 09:46

http://media.daum.net/life/living/tips/newsview?newsId=20151123094625726

 

대한제국 국악 담은 희귀음반 무더기 발견

송만갑 명창의 판소리 흥보가 중 박 타는 대목 음반(왼쪽)과 대한제국 황실 악공 9인 연주의 ‘황실대취타’ 음반(사진=한국음반아카이브연구소). [이데일리 이윤정 기자] 구한말 미국 음반사가

news.v.daum.net

 

 

 

19세기 말·20세기 초 서양인이 본 한국은 어떤 모습일까?

등록 2018-01-15 17:56:30

http://www.newsis.com/view/?id=NISX20180115_0000203272&cID=10701&pID=10700 

 

19세기 말·20세기 초 서양인이 본 한국은 어떤 모습일까?

【서울=뉴시스】 이재훈 기자 = 국립중앙박물관(관장 배기동)이 역사자료총서 17권으로 '19세기 말~20세기 초 서양인이 본 한국'을 발간했다고 15일 밝혔다

www.newsis.com

 

 

 

 

 

밀서 찾아낸 정상수 교수 “독일 문서보관소는 대한제국 자료의 보고” [중앙일보]

중앙일보

입력 2008.02.20 04:44

업데이트 2008.02.20 08:26

밀서 찾아낸 정상수 교수 “독일 문서보관소는 대한제국 자료의 보고” | 중앙일보 (joongang.co.kr)

 

밀서 찾아낸 정상수 교수 “독일 문서보관소는 대한제국 자료의 보고”

“독일 역사가 대한제국과 연결될 수 있다는 게 경이로웠습니다.” 독일제국 빌헬름 2세 황제에게 보낸 고종 황제의 밀서를 발견한 정상수(44·사진)

www.joongang.co.kr

 

 

 

"경술국치 하루 전 ‘순종 문서’ 발견 " 

동아일보 2007년 8월 28일 A13쪽

일본식 서명대신 ‘一心’ 직접 수결

“병합조약 인정못해” 의지 드러내

경술국치 하루 전 ‘순종 문서’ 발견 (donga.com)

 

경술국치 하루 전 ‘순종 문서’ 발견

일본식 서명대신 ‘一心’ 직접 수결 “병합조약 인정못해” 의지 드러내 한일강제병합조약 비준서 서명을 거부

www.donga.com

 

'이성계 발원 사리장엄구' 사리병 알고보니 조선 최고급 유리

이수지 입력 2021. 05. 26. 11:46 수정 2021. 05. 26. 15:59 댓글 0

'이성계 발원 사리장엄구' 사리병 알고보니 조선 최고급 유리 (daum.net)

 

'이성계 발원 사리장엄구' 사리병 알고보니 조선 최고급 유리

[서울=뉴시스] 이수지 기자 = 보물 제1925호 '이성계 발원 사리장엄구' 중 유리제 사리병이 조선 건국 당시 최고급 유리인 '석영 유리'로 제작됐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국립중앙박물관은 6일부터 21

news.v.daum.net

 

 

오산서 조선 미라 2구와 함께 발견된 유물, 민속문화재된다

임종명 입력 2021. 03. 23. 10:48 수정 2021. 03. 23. 15:05 댓글 0

'오산 구성이씨·여흥이씨 묘 출토복식' 124점
"16세기 중후반 양반 가문 여성 복식 희소성"

news.v.daum.net/v/20210323104802024

 

오산서 조선 미라 2구와 함께 발견된 유물, 민속문화재된다

[서울=뉴시스] 임종명 기자 = 경기 오산에서 출토된 조선시대 여성 미라 2구와 함께 발견된 유물이 국가민속문화재로 지정된다. 문화재청은 23일 '오산 구성이씨·여흥이씨 묘 출토복식' 96건 124점

news.v.daum.net

 

 

美 오벌린대 소장 19세기 조선 '왕의 행차' 병풍, 온라인 공개

임동근 입력 2020.09.15. 11:56 댓글 173

국립중앙박물관, 외국박물관 한국실 지원 사업..2년간 보존처리

https://news.v.daum.net/v/20200915115620893

 

美 오벌린대 소장 19세기 조선 '왕의 행차' 병풍, 온라인 공개

(서울=연합뉴스) 임동근 기자 = 우리나라 근대교육의 개척자인 달젤 벙커 부부가 미국 오하이오주 오벌린대학교에 기증한 '왕의 행차(出行圖)' 병풍이 공개됐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외국박물관

news.v.daum.net

 

 

 

조선 찻사발 '히틀러 거래상' 손에 어떻게 들어갔나

이기철 입력 2020.06.23. 05:07 댓글 75

[글로벌 인사이트] 미술사학자 구를리트 컬렉션 리스트에서 '아시아 다완' 확인

https://news.v.daum.net/v/20200623050707774

 

조선 찻사발 '히틀러 거래상' 손에 어떻게 들어갔나

[서울신문]조선시대에 제작된 명품 찻사발이 나치시대 미술상의 컬렉션을 몽땅 상속받은 스위스 베른의 한 미술관에서 확인됐다. 한국 문화재가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아돌프 히틀러에게 고

news.v.daum.net

 

 

 

‘삼전도의 굴욕’ 안긴 청 태종 칼…한국에 볼모처럼 남은 이유는?

등록 :2020-02-24 17:57수정 :2020-02-25 02:04

[노형석의 시사문화재]

http://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929552.html#csidx95106c734ce83ffae4ea5b27fb6427e

 

‘삼전도의 굴욕’ 안긴 청 태종 칼…한국에 볼모처럼 남은 이유는?

[노형석의 시사문화재]고궁박물관 ‘청 황실의 아침’전심양고궁박물원 전시품 가져와중국 1급 국가문물 ‘황태극도’ 등청나라 황실 역사 유물 선보여‘삼전도 항복’ 강요한 홍타이지 유물

www.hani.co.kr

 

 

이장하다 발견한 16세기 청동그릇·수저, 국가 기증

송고시간2020-02-20 11:13

https://www.yna.co.kr/view/AKR20200220069700005?input=1179m 

 

이장하다 발견한 16세기 청동그릇·수저, 국가 기증 | 연합뉴스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국립춘천박물관은 원주이씨 종중 본가로부터 선조 무덤 이장 과정에서 수습한 청동그릇과 수저를 기증받았다고 20일...

www.yna.co.kr

 

 

'국적 논란'으로 46년만에 심판대 오른 국보 도자기

박상현 입력 2020.01.05. 08:00 댓글 150

문화재위원회, 백자 동화매국문 병 지정 해제 검토
"지정 당시엔 조선 유물, 지금은 14세기 원나라 견해 우세"

https://news.v.daum.net/v/20200105080030196

 

'국적 논란'으로 46년만에 심판대 오른 국보 도자기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지난 1974년 국보 제168호가 된 '백자 동화매국문(銅畵梅菊文) 병'이 제작지를 둘러싼 논란으로 지정 해제될 위기에 놓였다. 5일 문화재청에 따르면 문화재위원회는

news.v.daum.net

 

 

[조선왕실의 취향] 미모의 '사도세자 누나'가 쓴 '개미 화장품' 정체는..

김효윤 입력 2019.12.21. 04:42 댓글 5

https://news.v.daum.net/v/20191221044246915

 

[조선왕실의 취향] 미모의 '사도세자 누나'가 쓴 '개미 화장품' 정체는..

※ 조선왕실이라 하면 치열한 궁중암투만 떠올리시나요. 조선의 왕과 왕비 등도 여러분처럼 각자의 취향에 따라 한 곳에 마음을 쏟았습니다. 문화재청 국립고궁박물관 학예사들이 그간 쉽게 접

news.v.daum.net

 

 

'백세청풍' 탁본 - 13대 심수관이 만든 조선의 기억

[김유경의 '문화산책'] <39>조선도공 14대 심수관과의 만남 ③

김유경 언론인  |  기사입력 2019.07.27. 10:43:43 최종수정 2019.07.29. 15:23:42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50233?no=250233&utm_source=daum&utm_medium=search#09T0 

 

'백세청풍' 탁본 - 13대 심수관이 만든 조선의 기억

심당길 사발(히바카리)이래 심수관 집안에 나이테처럼 쌓여간 ‘조선의 기억’ 중에는 ‘백세청풍’ 글자로 된 병풍도 있다. 조선도공 14대 심수관과의 만남 ①조선도공 14대 심수...

www.pressian.com

 

 

실학박물관 소장 유물 ‘혼개통헌의’ 국가보물 지정

등록 2019-06-26 18:19:55

http://www.newsis.com/view/?id=NISX20190626_0000692935&cID=10803&pID=14000 

 

실학박물관 소장 유물 ‘혼개통헌의’ 국가보물 지정

【수원=뉴시스】이병희 기자 = 경기문화재단 실학박물관에 소장 중인 ‘혼개통헌의(渾蓋通憲儀)’가 26일 국가보물 2032호로 지정됐다

www.newsis.com

 

'퇴락한 고려청자' 아닌 조선의 미감 구현한 분청사기의 모든 것

이기환 선임기자 입력 2019.06.02. 11:54 댓글 25

https://news.v.daum.net/v/20190602115439321?f=p 

 

'퇴락한 고려청자' 아닌 조선의 미감 구현한 분청사기의 모든 것

[경향신문] 분청사기는 회색 또는 회흑색 태토 위에 백토(白土)로 표면을 분장한 다음 유약을 입혀서 구워낸 자기를 일컫는다. 일본인들이 사용했던 ‘미시마(三島)’ 용어에 반해서 미술사학자

news.v.daum.net

 

 

일본에 있던 조선시대 장군석 등 석조유물 8점 고국으로

송고시간 | 2019-05-29 13:45

일본인 소유자가 우리옛돌박물관에 기증

https://www.yna.co.kr/view/AKR20190529095300073?input=1179m 

 

일본에 있던 조선시대 장군석 등 석조유물 8점 고국으로 | 연합뉴스

(도쿄=연합뉴스) 박세진 특파원 = 약 100년 전 일본으로 넘어갔던 조선 시대의 귀중한 석조유물 8점이 타향살이를 접고 고국(故國)으로 돌아간...

www.yna.co.kr

 

 

“한국 전통자수 세계유산 등재에 초석 됐으면…”

입력 2018.12.17 04:40 

 

“한국 전통자수 세계유산 등재에 초석 됐으면…”

전통자수 작가 이정숙 개인전내년 佛유네스코본부 전시 앞두고국내서 먼저 병풍 등 25여점 공개이정숙 작가가 13일 개인전 개막식에서 관람객에게 작품 설명을 하고 있다. 이소라 기자붉은 비단

www.hankookilbo.com

 

 

한국과 중국 비단 짜는 기술, 어떻게 다를까

송고시간 | 2018-11-07 10:39

 

한국과 중국 비단 짜는 기술, 어떻게 다를까 | 연합뉴스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한국과 중국의 비단 짜는 기술을 대비하는 전시가 열린다.

www.yna.co.kr

 

 

 

“목에 칼이 들어와도 해외반출 불가”···문화재 밀수범들과의 피말리는 싸움 50년

입력 : 2018.11.05 12:25:00 수정 : 2018.11.05 18:25:03

 

 

“목에 칼이 들어와도 해외반출 불가”···문화재 밀수범들과의 피말리는 싸움 50년

1998년 5월 부산 김해공항 문화재감정관실 소속인 양맹준 감정관의 눈에 심상치않은 감정품이 보...

www.khan.co.kr

 

 

장서각, 역사의 우물에서 미래를 긷다

등록 :2018-10-30 18:21수정 :2018-12-07 17:59

 

 

장서각, 역사의 우물에서 미래를 긷다

고물이 아니었다? 보물이었다! 라면박스에서 찾아낸 세계 유일본 법령집, 지정조격(至正條格)

www.hani.co.kr

 

 

훼손 위기 대형 불화 ‘석가삼존도’ 美 버지니아서 첫 환수 [해외 우리 문화재 바로알기]

입력 : 2018-10-23 06:00:00      수정 : 2018-10-23 06:00:00

 

 

훼손 위기 대형 불화 ‘석가삼존도’ 美 버지니아서 첫 환수 [해외 우리 문화재 바로알기]

불교문화재는 대부분 사찰에서 예배의 대상, 혹은 예배 대상을 장엄할 목적으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사찰의 소유물로서 제자리를 떠날 수 없다. 그러나 과거 혼란한 시기에 사찰을 떠나 흩어지

segye.com

 

 

제주 흑돼지와 공룡화석 산지가 문화재인 까닭은

송고시간 | 2018/09/30 12:20

 

 

제주 흑돼지와 공룡화석 산지가 문화재인 까닭은 | 연합뉴스

(대전=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조선시대 서적인 '탐라지', '성호사설', '해동역사'를 보면 제주도에서 흑돼지를 기른다는 사실이 나온다.

www.yna.co.kr

 

 

 

박물관 밑이 어둡다? 수장고에서 '발굴'한 국보들

이기환 선임기자 입력 2018.07.23. 14:33 수정 2018.07.23. 15:05 댓글 76

 

 

박물관 밑이 어둡다? 수장고에서 '발굴'한 국보들

[경향신문] “좋은 유물 찾고 싶으면 국립중앙박물관 수장고를 발굴하라”는 말이 있다. 객쩍은 소리가 아니다. 현재 박물관 수장고에는 41만 여 점의 문화유산이 소장돼있다. 물론 절대 다수의

news.v.daum.net

 

 

 

한민족의 ‘2천년의 역사, 흙과 구들’ 재조명 행사 열린다!

  • 김영권 기자
  •  승인 2018.05.18 10:21
 

한민족의 ‘2천년의 역사, 흙과 구들’ 재조명 행사 열린다! - 파이낸셜투데이

‘온돌문화’의 국가무형문화재 지정을 기념하여, 전통건축의 중요 요소 ‘흙’과 우리나라 주거생활의 기본인 ‘구들’을 조명하기 위한 전시 ‘2천년의 역사, 흙과 구들’이 오는 31일부터

www.ftoday.co.kr

 

7번이나 이사해야 했던 국립중앙박물관 수난의 역사

입력 2018.04.19. 11:42 수정 2018.04.19. 11:56 댓글 27

 

 

7번이나 이사해야 했던 국립중앙박물관 수난의 역사

[한겨레] “소장 유물 9만 9622점·보험가액 7000여 억 원·이사비 52억 원·이전 작업 연7700여 명 동원” 8개월에 걸친 유물 ‘대이동’ 작전은 규모로 보나 금액으로 보나 전례 없는 수준이었다. 오

news.v.daum.net

 

 

 

2000여년 역사의 온돌 문화, 국가무형문화재 된다

입력 : 2018.03.16 15:23:00

 

 

2000여년 역사의 온돌 문화, 국가무형문화재 된다

2000여년의 역사를 지닌 독특한 난방 방식인 ‘온돌 문화’가 국가무형문화재가 된다. 문화재청은 ...

www.khan.co.kr

 

 

삼국사기·은진미륵…유명 문화재 뒤늦게 국보 되는 이유

송고시간 | 2018/02/18 07:30

 

삼국사기·은진미륵…유명 문화재 뒤늦게 국보 되는 이유 | 연합뉴스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어라, 이 문화재가 아직도 국보가 아니었어?"

www.yna.co.kr

 

 

 

분단이 낳은 '이산 문화재'..간절해지는 남북한 문화재 교류

입력 2018.01.19. 14:09 댓글 55

 

 

분단이 낳은 '이산 문화재'..간절해지는 남북한 문화재 교류

[경향신문] 도재기의 천년 향기 2-분단의 상처, 남북 ‘이산 문화재’ “언제쯤이나 제대로 볼 수있으려나…. 유물이든 유적이든 사진 좀 많이 찍어와요, 발굴조사하는 현장도 좋고….” 1998년 10

news.v.daum.net

 

 

 

[도재기의 천년향기](1) 중앙박물관 수장고 가보니

도재기 선임기자 jaekee@kyunghyang.com

 

입력 : 2018.01.05 17:29:00 수정 : 2018.01.05 19:05:38

 

 

[도재기의 천년향기](1) 중앙박물관 수장고 가보니

예상과 달리 완전히 딴판이다. 감성이 들어찰 빈틈 하나 없는 철저한 이성적 공간이다. 드넓은 ...

www.khan.co.kr

 

 

고흥 분청사기 전통 재현 가마, 첫 도자기 제작·생산

송고시간 | 2018-12-31 16:21

https://www.yna.co.kr/view/AKR20181231247300054?input=1179m 

 

고흥 분청사기 전통 재현 가마, 첫 도자기 제작·생산 | 연합뉴스

(고흥=연합뉴스) 여운창 기자 = 전남 고흥 분청사기 전통 재현 가마에서 조선 시대 방식으로 구워낸 분청사기 250점이 31일 세상 밖으로 나왔...

www.yna.co.kr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44년째 '이중국적' 국보 백자, 조선이냐 원나라냐

경향신문 선임기자 http://leekihwan.khan.kr/

입력 : 2018.12.28 06:00:00 수정 : 2018.12.28 10:12:39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812280600001&code=960100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44년째 '이중국적' 국보 백자, 조선이냐 원나라냐

국보와 보물이 무엇입니까. 보물은 ‘형태가 있는 문화재(유형문화재)’ 중에서 역사적·예술적·학술...

www.khan.co.kr

 

 

"한때 가족이었으나 흩어진 백자들…이만하면 상봉 이뤘다 싶죠"

송고시간 | 2018-12-26 07:00

https://www.yna.co.kr/view/AKR20181225050800005?input=1179m 

 

"한때 가족이었으나 흩어진 백자들…이만하면 상봉 이뤘다 싶죠" | 연합뉴스

(서울=연합뉴스) 정아란 기자 = 철강공장 흔적을 지워낸 화이트큐브가 백자를 품었다. 엷은 복숭앗빛을 머금은 백자들이 아슴푸레 다가온다. 이국의...

www.yna.co.kr

 

놓치기엔 아깝다, 이 전시…'조선, 병풍의 나라'

[중앙일보] 입력 2018.12.17 17:20 수정 2018.12.17 18:09

https://joongang.joins.com/?cloc=joongang 

 

뉴스 - 중앙일보

뉴스 - 중앙일보 - 중앙일보,중앙,joongang,조인스,뉴스,속보,신문,보도,이슈,정치, 경제,오피니언,사회,국제,문화,스포츠,기자,뉴스레터,news,newspaper,south Korea,korea,스페셜 현장의 진실을 중앙에 두다

www.joongang.co.kr

 

 

‘조선의 최종병기’ 비격진천뢰, 땅구덩이서 우르르

유원모 기자입력 2018-11-16 03:00수정 2018-11-16 03:00

고창 무장읍성서 11점 쏟아져

http://news.donga.com/3/all/20181116/92896827/1

 

‘조선의 최종병기’ 비격진천뢰, 땅구덩이서 우르르

“좌병사 박진(?∼1597)이 경주성 밑에서 비격진천뢰(飛擊震天雷)를 성 안으로 쐈다. 왜적들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알지 못하여 구경하고, 밀고 굴려보기도 했다. 갑자기 포가 …

www.donga.com

 

 

독일 수도원에 있던 '조선 갑옷' 100년 만에 돌아왔다(종합)

여태경 기자 입력 2018.05.30. 12:04 수정 2018.05.30. 12:09 댓글 0

보군이 입은 '면피갑'..12점만 남아 있어 
상트 오틸리엔수도원, 5번째 문화재 반환

http://v.media.daum.net/v/20180530120500463

 

독일 수도원에 있던 '조선 갑옷' 100년 만에 돌아왔다(종합)

(서울=뉴스1) 여태경 기자 = 조선시대 갑옷이 독일 수도원의 기증으로 100여년 만에 한국에 돌아왔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사장 지건길)은 독일 바이에른 주 뮌헨 인근에 위치한 상트 오틸리엔

news.v.daum.net

 

 

지나면 늙지 않는다는 '불로문'을 아십니까?

정용부 입력 2018.04.03. 14:02 댓글 47                

  

21세기 '불로문' 활용법.. "문을 지나면 장수하지만 만지면 늙어요"

https://news.v.daum.net/v/20180403140237407

 

지나면 늙지 않는다는 '불로문'을 아십니까?

▲ 서울 종로구 창덕궁 후원에 있는 불로문의 모습. 뒷면에는 금이 간 흔적이 뚜렷하다./사진=정용부 기자 ▲문재인 대통령의 부인 김정숙 여사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부인 멜라니아 여

news.v.daum.net

 

 

 

선조가 대범하고 활달한 필치로 쓴 '어필 병풍' 첫 공개

입력 2018.02.28. 10:52 댓글 331

https://news.v.daum.net/v/20180228105257166

 

선조가 대범하고 활달한 필치로 쓴 '어필 병풍' 첫 공개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국립고궁박물관은 지난해 9월부터 진행한 지하 1층 상설전시실 보수공사를 마치고 새롭게 단장한 궁중서화실과 왕실의례실을 28일 공개했다. 궁중서화실에서는

news.v.daum.net

 

 

친일파 군불 땔감으로 아궁이서 사라질 뻔 했던 보물 ‘겸재화첩’

입력 : 2018-09-11 06:00:00 수정 : 2018-09-11 06:00:00

 

 

친일파 군불 땔감으로 아궁이서 사라질 뻔 했던 보물 ‘겸재화첩’

“… 사랑채 한쪽에 붙은 변소엘 가다 보니까 머슴이 군불을 때고 있는데 무슨 문서 뭉치를 마구 아궁이에 처넣고 있단 말이에요. 그런데 문득 들여다보니 초록색 비단으로 귀중하게 꾸민 책이

segye.com

 

 

서울 신윤복 미인도가 대구로..왜 간송이 첫 지방나들이로 대구를?

김윤호 입력 2018.06.10. 12:09 댓글 54

김홍도 마상청앵 김정희 적설만산
서울 성북구 보화각 보물들 대구로
 
간송의 첫 지방 나들이 장소는 '대구' 

http://v.media.daum.net/v/20180610120933869

 

서울 신윤복 미인도가 대구로..왜 간송이 첫 지방나들이로 대구를?

━간송의 첫 지방 나들이 장소는 '대구''신윤복 미인도, 김홍도 마상청앵, 김정희 적설만산….' 간송의 보물들이 16일 대구에 온다. 서울 성북구에 지어진 우리나라 최초의 사립박물관 '보화각(寶

news.v.daum.net

 

 

사라진 조선 최고 부채 '나주 접선'..프랑스 파리서 발견

이창우 입력 2018.05.28. 10:46 댓글 100

파리 부채박물관..조선 고급부채 나주 접선 다수 소장·전시 확인

http://v.media.daum.net/v/20180528104612639

 

사라진 조선 최고 부채 '나주 접선'..프랑스 파리서 발견

【나주=뉴시스】이창우 기자 = 19세기 초까지 조선시대 최고의 부채로 극찬 받았지만 현재 명맥이 끊겨 국내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전남 나주(羅州)산 고급 부채가 이역만리 프랑스 파리에서 다

news.v.daum.net

 

 

순종 태실과 주변 풍경 묘사한 그림, 첫 공개

입력 2018.04.28. 11:25 수정 2018.04.28. 14:24 댓글 11

https://news.v.daum.net/v/20180428112541295

 

순종 태실과 주변 풍경 묘사한 그림, 첫 공개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조선 고종 11년(1874)에 태어난 순종의 태실(胎室·왕실에서 태를 봉안하던 곳)과 주변 풍경을 묘사한 것으로 추정되는 '순종태실도'(純宗胎室圖)가 일반에 처음으로

news.v.daum.net

 

 

5만원권 지폐에 있는 '풍죽도'가 보물서 빠진 까닭은

입력 2018.03.27. 07:30 수정 2018.03.27. 08:22 댓글 142

https://news.v.daum.net/v/20180327073010684

 

5만원권 지폐에 있는 '풍죽도'가 보물서 빠진 까닭은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앞면에 신사임당(1504∼1551) 초상이 그려져 있는 5만원권 지폐 뒷면에는 조선 중기 화가 어몽룡(1566∼?)의 '월매도'(月梅圖)와 탄은(灘隱) 이정(1554∼1626)이 그린 '풍

news.v.daum.net

 

 

'엄친아' 추사에 가려졌던 조선의 명필

손안나 입력 2018.03.13. 13:42 댓글 60       

    

김정희·조광진과 함께 3대 명필인 창암 이삼만을 찾아서

https://news.v.daum.net/v/20180313134202566

 

'엄친아' 추사에 가려졌던 조선의 명필

[오마이뉴스 손안나 기자] 축사장군이삼만(逐巳將軍李三晩) ▲  창암 이삼만 선생 묘역입구 ⓒ 손안나추워도 너무 추웠던 날, 경복사지 답사를 가면서 우연히 길가에서 '창암 이삼만 선생 묘역'

news.v.daum.net

 

 

"가치는 높은데 형식적"..김홍도 그림 2점 보물서 탈락한 이유

입력 2018.01.07. 08:00 수정 2018.01.07. 09:20 댓글 120

https://news.v.daum.net/v/20180107080041176

 

"가치는 높은데 형식적"..김홍도 그림 2점 보물서 탈락한 이유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문화재청은 지난 4일 간송미술문화재단이 소장하고 있는 단원(檀園) 김홍도(1745∼1806년 이후)의 회화 3건을 보물로 지정 예고한다고 밝혔다. 보물 지정을 앞둔 그

news.v.daum.net

 

 

이당 '세조 어진 초본' 미완성 가능성

류영현 입력 2018.01.07. 21:14 댓글 67

https://news.v.daum.net/v/20180107211451826

 

이당 '세조 어진 초본' 미완성 가능성

국립고궁박물관이 2016년 미술품 경매에서 구매한 ‘세조 어진 초본’(사진)에 대해 완성작이 아닐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 초상화는 이당(以堂) 김은호(1892∼1979)가 조수 장운봉과 함께 19

news.v.daum.net

 

 

조선 후기 '박회수 초상'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유화

박정호 입력 2018.01.02. 01:02 수정 2018.01.02. 06:40 댓글 23

1833년 중국 사신 갔을 때 모습
서양인이 사실적으로 그린 반신상
고궁박물관 신민규 연구원 밝혀내

https://news.v.daum.net/v/20180102010225679

 

조선 후기 '박회수 초상'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유화

얼굴 모습이 전반적으로 세밀하고 안정적이다. 자잘한 붓질을 반복해 피부감과 양감을 살렸다. 얼굴 외곽선에는 상대적으로 어두운 색을 칠했고, 코끝과 이마, 눈동자는 비교적 밝게 처리했다.

news.v.daum.net

 

 

강세황 증손 '강노 초상' 귀환.."조선 초상화 높은 경지"(종합2보)

입력 2017.12.19. 16:50 수정 2017.12.19. 17:19 댓글 21                    

국외소재문화재재단, 美 경매서 31만 달러 낙찰.."마맛자국까지 담아내"
국립중앙박물관서 관리.."진주 강씨 5대 걸친 초상화 모여"

https://news.v.daum.net/v/20171219165045579

 

강세황 증손 '강노 초상' 귀환.."조선 초상화 높은 경지"(종합2보)

국외소재문화재재단, 美 경매서 31만 달러 낙찰…"마맛자국까지 담아내" 국립중앙박물관서 관리…"진주 강씨 5대 걸친 초상화 모여"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정아란 기자 = 김홍도와 신위의 스승

news.v.daum.net

 

 

 

[단독]보물급 '묵암당 진영' 日서 돌아왔다

입력 2017.12.04. 03:02 수정 2017.12.04. 04:40 댓글 5

https://news.v.daum.net/v/20171204030219571

 

[단독]보물급 '묵암당 진영' 日서 돌아왔다

[동아일보] 최근 국내로 환수된 묵암 대사의 초상화 ‘묵암당 진영’. 당대 스님 진영은 정형화된 형식화가 많은데, 이 그림은 묘사가 매우 자연스럽고 세밀하다. 일본의 원 소장자는 “오랫동

news.v.daum.net

 

 

16세기 조선 산수화 日서 돌아왔다.."국내 최고 소상팔경도"

입력 2017.11.13. 07:16 수정 2017.11.13. 08:30 댓글 35

https://news.v.daum.net/v/20171113071601129

 

16세기 조선 산수화 日서 돌아왔다.."국내 최고 소상팔경도"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16세기에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조선시대 산수화 2점이 일본에서 돌아왔다. 작자 미상의 이 그림들은 국내 회화 중 최고(最古)의 '소상팔경도'(瀟湘八景圖)일 수도

news.v.daum.net

 

 

시대에 가려진 사임당의 진면목

김세영 입력 2017.01.24. 15:42 댓글 4

https://news.v.daum.net/v/20170124154259463

 

시대에 가려진 사임당의 진면목

[아시아경제 김세영 기자] 서울미술관은 24일부터 6월 11일까지 개관 5주년을 기념하고자 ‘사임당, 그녀의 화원(Saimdang, Her Garden)’ 특별전을 연다. 해당 전시는 조선시대 여류예술가인 신사임당(

news.v.daum.net

 

 

퇴계문집, 석봉 글씨 … 99%가 베일에 싸인 ‘기록유산 천국’

[중앙일보] 입력 2017.12.22 02:02 

 

 

퇴계문집, 석봉 글씨 … 99%가 베일에 싸인 ‘기록유산 천국’

보물 제1895호인 퇴계선생문집 경자본은 『퇴계선생문집』 경자년(1600년) 초간본을 인출한 목판이다. 장판각에 있는 목판 중 가장 귀한 목판 중 하나다. 박 연구원은 "목판은 그 특성상 화재나 습

news.joins.com

 

 

[단독] '고위험' 국보-보물 14개 3년째 방치..주변시설 정비에만 533억 쏟아부어

입력 2017.10.16. 03:03 수정 2017.10.16. 08:35 댓글 79

 

 

[단독] '고위험' 국보-보물 14개 3년째 방치..주변시설 정비에만 533억 쏟아부어

[동아일보] 문화재청 감사 결과 “보수, 수리가 시급하다”고 평가받은 국보 제47호 ‘하동 쌍계사 진감선사탑비’. 비에 길게 금이 가거나 홈이 파였고(왼쪽 사진), 기단 보강재는 부식되고 시

news.v.daum.net

 

 

아직도 일본에 우리 문화재 7만여점이.."조사부터 선행돼야"

연합뉴스 | 입력 2016.08.15. 14:40

 

 

아직도 일본에 우리 문화재 7만여점이.."조사부터 선행돼야"

소재 등 조사작업 30%에 그쳐…"보존처리가 급선무, 환수는 신중히 접근해야"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광복절이 되면 일제가 파괴하거나 약탈한 우리 문화재에 대한 관심이 커진다. 15일 문

news.v.daum.net

 

 

40년 수장고에 묻어놨던 신안선 보화들 이제야 다 꺼냈다

등록 :2016-07-28 16:28수정 :2016-08-03 20:40

 

40년 수장고에 묻어놨던 신안선 보화들 이제야 다 꺼냈다

국립중앙박물관의 신안 발굴 40돌 전시 ‘신안 해저선에서 찾아낸 것들’

www.hani.co.kr

 

 

국외문화재, 20개국에 16만점 반출.. 일본에 42%

오마이뉴스 | 윤성효 | 입력 2015.09.17. 10:46

 

 

국외문화재, 20개국에 16만점 반출.. 일본에 42%

[오마이뉴스 윤성효 기자] 우리나라 국외문화재는 20개국, 16만 342점, 582곳에 소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외문화재는 일본과 미국이 70%를 차지하는데, 일본은 일제강점기 때 주로 가져갔고, 미

news.v.daum.net

 

 

공재 윤두서 자화상 앞에 조아린 현대미술

등록 :2016-08-04 16:26수정 :2016-08-04 23:12

해남 녹우당에서 만나는 공재 자화상과 현대작가 18명 그림들

전시장소는 달라 아쉬움…공재미술관 건립 필요성 보여줘

http://www.hani.co.kr/arti/culture/music/755170.html?dable=30.1.5

 

공재 윤두서 자화상 앞에 조아린 현대미술

해남 녹우당에서 만나는 공재 자화상과 현대작가 18명 그림들 전시장소는 달라 아쉬움…공재미술관 건립 필요성 보여줘

www.hani.co.kr

 

"대한독립 만세" 힘껏 외쳤지만..우리 혼 담긴 문화재 6만점 여전히 일본에..비공식 집계 수십만점

머니투데이 | 김유진 기자 | 입력 2016.03.01. 03:10

 

 

[97주년 3.1절]안견의 '몽유도원도', 우리 국보 아닌 '일본 중요문화재'인거 아십니까

[머니투데이 김유진 기자] ["대한독립 만세" 힘껏 외쳤지만…우리 혼 담긴 문화재 6만점 여전히 일본에…비공식 집계 수십만점] 세종의 셋째 아들, 안평대군은 1447년 정묘년 4월 단꿈 하나를 꾼다

news.v.daum.net

공감

단원 김홍도作 추정 병풍 미국 대학박물관서 발견

오인수 입력 2015. 11. 23. 09:43 댓글 3

tv.kakao.com/v/v9a33YyvavavtE9YEmRmnRt@my

https://news.v.daum.net/v/20151123094343582

 

단원 김홍도作 추정 병풍 미국 대학박물관서 발견

[앵커] 단원 김홍도와 혜원 신윤복이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작품이 미국의 한 대학교 박물관에서 발견됐습니다. 보존상태가 좋아 가치도 높을 것으로 추정되는데요. 박상돈 기자가 소개해 드립

news.v.daum.net

 

 

‘취화선’ 붓질에 만취한들 어떠리

‘오원 장승업 화파’전 18일부터…미공개작 선뵈

한겨레 2008.5.15

임종업 기자

http://www.hani.co.kr/arti/culture/music/287558.html

 

‘취화선’ 붓질에 만취한들 어떠리

‘오원 장승업 화파’전 18일부터…미공개작 선뵈

www.hani.co.kr

 

 

 

신들린듯 흘려쓴 양사언의 초서… ‘조선서화 보묵전’

입력 2008-04-30 03:00수정 2009-09-25 04:48

http://www.donga.com/fbin/output?n=200804300187 

 

신들린듯 흘려쓴 양사언의 초서… ‘조선서화 보묵전’

봉래 양사언, 퇴계 이황, 우암 송시열, 오원 장승업…. 29일 개막해 5월 25일까지 서울 예술의 전당 서예박물관에서

www.donga.com

 

 

 

단원 산수화, 겸재보다 실제와 닮은 이유는

이태호 교수, 사진기에 잡힌 실경과 그림 비교

한겨레신문 2007년 10월 26일

강성만 기자

http://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245741.html

 

단원 산수화, 겸재보다 실제와 닮은 이유는

이태호 교수, 사진기에 잡힌 실경과 그림 비교

www.hani.co.kr

 

 

세한도 진면목은 속에 숨었나니…

입력 2007-10-03 02:58수정 2009-09-26 11:33

http://www.donga.com/fbin/output?n=200710030024 

 

세한도 진면목은 題跋속에 숨었나니…

‘歲寒圖 藕船 是賞 阮堂(세한도 우선 시상 완당).’ ‘차가운 세월을 그린 그림. 우선(이상적의 호), 감상해 보게

www.donga.com

 

 

[문학예술]혁명을 꿈꾸다 세상을 비워버리다…‘추사’

동아일보 2007년9월 1일

[문학예술]혁명을 꿈꾸다 세상을 비워버리다…‘추사’ (donga.com)

 

[문학예술]혁명을 꿈꾸다 세상을 비워버리다…‘추사’

◇추사(전 2권)/한승원 지음/304∼336쪽·각 권 9500원·열림원 과연 역사소설 열풍이다. 소설가 한승원(68·사진)

www.donga.com

 

 

정신세계까지 드러나는 조선 초상화…국립중앙박물관 초본 전시

동아일보 2007년7월 25일

정신세계까지 드러나는 조선 초상화…국립중앙박물관 초본 전시 (donga.com)

 

정신세계까지 드러나는 조선 초상화…국립중앙박물관 초본 전시

세밀한 얼굴 묘사로 완성본(정본)처럼 보이는 조선 후기 문신 조영진(1703∼1775)의 초상화 오른쪽엔 여러 모양의 수

www.donga.com

 

 

정선의 ‘계상정거도’는 계상서당…

문화일보 2007-01-31

박경일기자 parking@munhwa.com

1000원 신권 뒷면 겸재 그림은 어디? 퍼즐맞추기 여행 - munhwa.com

 

1000원 신권 뒷면 겸재 그림은 어디? 퍼즐맞추기 여행

지난 22일 1만원권과 1000원권 새 지폐가 발행되는 날, 한국은행 앞에는 신권을 받으려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www.munhwa.com

 

 

겸재의 상상도인가, 실수인가

1000원 신권속 ‘서당 그림’ 네가지 수수께끼

문화일보 2007-01-31

박경일기자 parking@munhwa.com

겸재의 상상도인가, 실수인가 - munhwa.com

 

겸재의 상상도인가, 실수인가

여행이 언제나 행락일 수는 없다. 여행은 어떤 때는 자성의 방편이기도 하고, 또 어떤 때는 피난처이기도 하다..

www.munhwa.com

 

 

'채제공 초상' 등 보물 지정

2007년 1월 2일 (화) 15:13 

'채제공 초상' 등 보물 지정 (daum.net)

 

'채제공 초상' 등 보물 지정

【대전=뉴시스】문화재청(청장 유홍준)은 지난달 12월29일 '채제공 초상 일괄(보물 제1477호)', '이하응 초상 일괄(보물 제1499호)' 등 31건의 초상화와 '김시민 선무공신 교서(보물 제1476호)', '광주

news.v.daum.net

 

 

또 끌어올렸다, 명량대첩로 문화·왜란 유물 우르르

신동립 입력 2017.10.12. 12:01

https://news.v.daum.net/v/20171012122533066#none

 

또 끌어올렸다, 명량대첩로 문화·왜란 유물 우르르

【진도=뉴시스】 신동립 기자 = 전남 진도 명량대첩로에서 도자기 등 유물 120여점과 토기, 도기, 백자가 출수됐다. 임진왜란 때 것으로 추정되는 총통(銃筒), 석환(石丸), 노기(弩機) 등이 해전의

news.v.daum.net

 

 

일본으로 불법 반출됐던 15세기 보물급 묘지석 환수

입력 2017.09.12. 08:06 수정 2017.09.12. 09:49 댓글 83

https://news.v.daum.net/v/20170912080641529

 

일본으로 불법 반출됐던 15세기 보물급 묘지석 환수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국내 문화재 밀매단이 1998년 6월 김포공항을 통해 일본으로 불법 반출했던 15세기 조선 묘지(墓誌·망자의 행적을 적어 무덤에 묻은 돌이나 도판)가 돌아왔다. 국외

news.v.daum.net

 

 

"교양있는 군주를 위한 병풍"..WSJ, 조선시대 '책거리' 소개

입력 2017.08.27. 06:55 댓글 4

https://news.v.daum.net/v/20170827065509182

 

"교양있는 군주를 위한 병풍"..WSJ, 조선시대 '책거리' 소개

(뉴욕=연합뉴스) 이귀원 특파원 =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이 26일(현지시간) 조선 시대 궁중에서 유래한 '책거리(冊巨里) 병풍'을 소개했다. '책거리'는 책, 벼루, 붓, 향로, 도자기 등의 물품을 적

news.v.daum.net

 

 

 

바티칸이 처음 초대했다.. 한복 입은 성모자像, 정약용의 십자가

김한수 종교전문기자 입력 2017.08.09. 03:10 수정 2017.08.09. 08:26 댓글 96      

 

[오늘의 세상]
한국 천주교 230년 특별전
교구로 첫 지정된 9월 9일 개막

https://news.v.daum.net/v/20170809031022647

 

바티칸이 처음 초대했다.. 한복 입은 성모자像, 정약용의 십자가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와 '최후의 심판' 그리고 '피에타'가 전 세계인의 발길을 부르는 로마 바티칸에 정약용의 '목민심서'와 그의 무덤에서 출토된 작은 십자가, 안중근 의사의 유묵(遺墨) '敬

news.v.daum.net

 

 

 

조선 수군의 대포화살.. 420년 만에 '고국 나들이'

권구성 입력 2017.07.27. 20:53 댓글 38

https://news.v.daum.net/v/20170727205333267

 

조선 수군의 대포화살.. 420년 만에 '고국 나들이'

1592년 발발한 임진왜란에서 ‘대장군전’(大將軍箭)은 조선 수군을 대표하는 전략무기였다. 대장군전은 천자총통(天字銃筒)에 사용한 화살로, 임진왜란 당시 판옥선이나 거북선에서 사용한 것

news.v.daum.net

 

 

 

태풍 '매미'에 떠내려갔던 조선시대 송덕비 14년만에 발견

입력 2017.07.10. 16:37 수정 2017.07.11. 06:44 댓글 16

https://news.v.daum.net/v/20170710163744708

 

태풍 '매미'에 떠내려갔던 조선시대 송덕비 14년만에 발견

부산 영도 중리 바닷가서 상인이 신고…육지로 옮겨 보존 (부산=연합뉴스) 김선호 기자 = 2003년 우리나라에 큰 피해를 준 태풍 '매미'때 바다로 떠내려가 유실됐던 조선 시대 송덕비가 14년 만에

news.v.daum.net

 

 

리움 병풍그림 들여다보니..다산이 유배시절 쓴 미공개 詩 발견

입력 2017.03.19. 08:06 댓글 11

https://news.v.daum.net/v/20170319080605011

 

리움 병풍그림 들여다보니..다산이 유배시절 쓴 미공개 詩 발견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삼성미술관 리움이 소장하고 있는 19세기 병풍 그림인 '표피장막책가도'에서 다산 정약용(1762∼1836)이 강진 유배 시절에 지은 것으로 추정되는 시가 발견됐다. 화

news.v.daum.net

 

 

 

[한양도성] 선비의 풍류, 왕후의 눈물 맺힌 곳

허창무 한양도성해설가 입력 2017.02.19. 07:29 댓글 2                    

  

한양도성 해설기 ⑥ / 혜화문에서 광희문까지(비우당 팔경과 동망봉)

https://news.v.daum.net/v/20170219072905911

 

[한양도성] 선비의 풍류, 왕후의 눈물 맺힌 곳

조선시대에도 순성(巡城) 놀이라는 것이 있었다. 새벽에 도시락을 싸들고 5만9500척(尺)의 전 구간을 돌아 저녁에 귀가했다. 도성의 안팎을 조망하는 것은 세사번뇌에 찌든 심신을 씻고 호연지기

news.v.daum.net

 

 

 

육의전 터 보존… 문화재 보존-지역개발 두토끼 잡아

입력 2008-05-22 02:55수정 2009-09-25 01:34

http://www.donga.com/fbin/output?sfrm=1&n=200805220089 

 

육의전 터 보존… 문화재 보존-지역개발 두토끼 잡아

1월 문화재위원회는 지난해 11월 서울 종로구 종로2가 탑골공원 옆 영동빌딩 신축 용지에서 발견된 조선시대 육의

www.donga.com

 

 

독립기념관 '最古태극기' 원본 아니었다

한국일보 | 기사입력 2008.03.19 07:28 | 최종수정 2008.03.19 22:07

복제품 '표기' 없이 16년간 좌우 바뀐채 전시
진품은 27년동안 중앙박물관 지하 수장고에

http://media.daum.net/society/others/view.html?cateid=1067&newsid=20080319072806179&cp=hankooki 

 

독립기념관 '最古태극기' 원본 아니었다

복제품 '표기' 없이 16년간 좌우 바뀐채 전시진품은 27년동안 중앙박물관 지하 수장고에독립기념관이 공개적으로 소장 중이라고 밝혀 온 현존 최고(最古) 태극기인 '데니 태극기'는 원본이 아닌

news.v.daum.net

 

 

‘최초 태극기’ 원형 찾았다

문화일보 기사 게재 일자 2008-02-28

독립기념관 ‘박영효 태극기’ 사본 英문서보관소서 발견

김영번기자 zerokim@munhwa.com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080228010301300650021 

 

‘최초 태극기’ 원형 찾았다

최초 태극기의 원형이 발굴, 공개됐다. ‘박영효 태극기’의 정확한 모양과 제원이 확인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www.munhwa.com

 

 

한석봉 초서 천자문 목판 화로 장식품된채 발견

입력 2008-02-28 02:55수정 2009-09-25 14:09

http://www.donga.com/fbin/output?sfrm=1&n=200802280059 

 

한석봉 초서 천자문 목판 日화로 장식품된채 발견

1899년 한석봉 초서 천자문의 방각본(상업 목적으로 판각해 출판하는 것)용 목판이 일본식 화로(이로리)의 장식품(사

www.donga.com

 

 

숭례문 용머리, 불을 막고 생명의 영기를 내뿜었건만…

동아일보 2008.2.27

http://www.donga.com/fbin/output?sfrm=1&n=200802270162 

 

숭례문 용머리, 불을 막고 생명의 영기를 내뿜었건만…

《국보 1호 숭례문 화재가 발생한 지 17일째. 처참한 모습의 숭례문은 가림막으로 완전히 가려졌고 지금은 복원 준비

www.donga.com

 

 

양녕이 현판 썼다는데 과연 그럴까?

한겨레 2008.2.13

전진식 기자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269138.html

 

양녕이 현판 썼다는데 과연 그럴까?

지난 10일 밤 화재로 숭례문 누각이 소실된 가운데, 현판이 새삼 시민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불기둥이 치솟는 상황에서 소방...

www.hani.co.kr

 

동양 목조건축물엔 ‘불멸의 생명’ 있다

‘불탄 숭례문’ 문화재 가치 어떻게 봐야 하나

한겨레 2008.2.25

임종업 기자

구본준 기자

http://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271707.html

 

동양 목조건축물엔 ‘불멸의 생명’ 있다

‘불탄 숭례문’ 문화재 가치 어떻게 봐야 하나

www.hani.co.kr

 

 

국보 1호 숭례문→국보 숭례문…일제가 붙인 번호 없앤다

동아일보2008.01.11

 

국보 1호 숭례문→국보 숭례문…일제가 붙인 번호 없앤다

‘국보 1호 숭례문 대신 국보 숭례문.’ 이르면 내년부터 국보와 보물의 일련번호가 없어진다. 이 번호가 없어지면 국보 1호 교

www.donga.com

 

 

"육의전 시전행랑터 이번엔 지켜야”

서울신문 기사일자 : 2008-01-31    24 면

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080131024003 

 

“육의전 시전행랑터 이번엔 지켜야”

, 서울 종로2가의 탑골공원과 이웃한 영동빌딩 신축부지에서 확인된 조선시대 육의전 시전행랑 유적을 이번에는 반드시 보존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유적을 흙으로 덮고 위에는 건물

www.seoul.co.kr

 

 

2007년 10월 5일 (금) 17:00   뉴시스

보물 제1524호 지정 “이윤탁 한글영비”

보물 제1524호 지정 "이윤탁 한글영비" (daum.net)

 

보물 제1524호 지정 "이윤탁 한글영비"

【대전=뉴시스】문화재청(청장 유홍준)은 "금장요집경""범어사 목조석가여래삼존좌상""주범망경""불조삼경""이윤탁 한글영비"등 5건의 문화재에 대해 보물로 지정하였다.보물 제1524호 "이윤탁

news.v.daum.net

 

 

 

중앙일보

471년 된 '한글 비석' 보물 됐다 

2007년 10월 4일 (목) 05:12 

471년 된 '한글 비석' 보물 됐다 - 중앙일보 (joongang.co.kr)

 

471년 된 '한글 비석' 보물 됐다

서울 노원구 하계동의 서라벌고교 인근에 있는 한글 영비. 비석이 오래돼 글씨가 잘 보이지 않아 모형비를 만들었다(上). 내용은 ‘신령한 비라 쓰러뜨리는 사람은 재화를 입으리다

www.joongang.co.kr

 

 

입력 :2018-12-13 17:54ㅣ 수정 : 2018-12-14 00:57

130년 전 근현대사 아픔 간직한 인천 개항장 역사문화거리
건축물은 시간과 공간을 담는 그릇입니다. 건축물을 둘러본다는 것은 그 안에 쌓인 시간과 공간의 역사를 헤아린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인천 개항장 역사문화의 거리의 건물에는 개항 후부터 지금까지 130여년의 시공간이 담겨 있습니다. 모르고 보면 낡은 일본식 목조건물과 서양의 르네상스식 건물에 불과하지만, 알고 보면 1883년 개항 당시 조선을 속국으로 만들려 했던 열강들의 세력 다툼과 우리나라 근현대사의 아픔이 읽힙니다. 적산가옥이 늘어선 거리를 거닐자 오늘과 당시의 시간이 겹쳐집니다. 세월에 빛바랜 건물에서 과거를 들여다보고, 또 다른 기억이 덧씌워지는 중인 현재를 마주합니다.
 

▲ 관광객들이 개항장 역사문화의 거리의 핵심 건물 중 하나인 인천개항박물관을 지나고 있다. 일제강점기에 조선 수탈의 전초기지였던 일본 제1국립은행 부산지점 인천출장소로 쓰였던 건물이다. 좌우가 대칭을 이루는 절충주의 양식의 외관이 고풍스럽다.

뚜우우우. 뱃고동이 울린다. 배에서 치파오를 입은 중국 상인이 내린다. 부두에는 쌀가마니를 발밑에 내려놓은 나가사키 상인들이 모여 있다. 1883년 인천 제물포항이 개항하자 한적하던 어촌에 외국의 신문물이 쏟아진다. 외국인 전용 거주지, 바다 건너온 물건을 파는 가게,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무역회사와 호텔이 들어선다. 일본은 조선 수탈을 위한 방편으로 일본 제1국립은행 인천지점, 일본 제18국립은행 인천지점 등을 세운다. 개항장 역사문화의 거리 일대는 인천의 개항기를 간직한 건축물로 가득하다.

거리 전체가 한국의 근현대사를 훑어 볼 수 있는 역사문화공간인 셈이다. 인천역 부근의 인천아트플랫폼부터 신포국제시장 인근의 답동성당까지 찬찬히 걸으면 반나절도 걸리는 거리지만 핵심 장소는 일본풍 거리를 중심으로 모여 있다. 개항기 역사가 오롯이 담긴 거리의 건물은 오늘날 박물관, 아트플랫폼, 카페로 변모해 사람들을 끌어당긴다.
 
 
●개항기 인천의 모습을 겹쳐 보다

개항장 역사문화의 거리 여행의 출발점은 인천아트플랫폼이다. 세월이 깃든 건물과 아티스트의 예술적 기운이 만난 공간이다. 인천시는 1888년에 지어진 일본우선주식회사(등록문화재 제248호)를 비롯해 개항기와 1930~40년대 건축물을 리모델링해 복합문화공간으로 조성했다. 국내와 일본의 물류 운송을 담당하던 일본우선주식회사 건물은 인천아트플랫폼 사무실, 해방 후에 지어 최근까지 대한통운 창고였던 건물은 공연장, 1940년대 문인과 예술가들의 사랑방이었던 금마차다방은 생활문화센터로 재단장했다. 전시장, 공연장, 창작 스튜디오 등 총 13개 동이라 규모가 상당하니 홈페이지에서 관심 있는 전시를 확인하고 가는 편이 좋다.

인천아트플랫폼 뒤편으로 발걸음을 옮기자 과거의 시공간이 펼쳐진다. ‘혼마치도리’라고 불리던 은행 거리다. 길가에 일본 제1국립은행 인천지점, 일본 제18국립은행 인천지점, 일본제58은행 인천지점 등 이국적인 석조 건축물이 나란하다. 초가집이 대부분이었을 개항기에 멀끔한 외국 건축물이 들어섰으니 조선인이 느끼는 웅장함은 지금의 수십 배였으리라.

인천개항박물관은 당시 일본 제1국립은행 부산지점 인천출장소였다. 은행의 설립 목적은 조선 수탈이었다. 은행은 조선에서 나는 금괴와 사금을 사들였고 인천항에 들어오는 무역 상인에게 해관세를 받는 업무도 병행했다. 개항기 인천을 갈무리하는 박물관으로 문을 연 것은 오랜 세월이 흐른 뒤인 2010년. 우리나라 최초의 감리교회인 내리교회, 최초의 철도인 경인선, 우편제도 등 개항 후 인천으로 들어온 다양한 근대문물을 전시한다.

건물을 구경하는 재미도 크다. 좌우대칭을 이룬 르네상스식 석조건물 내부는 붉은 벨벳 커튼, 아치형 창문, 샹들리에 조명으로 고풍스러운 분위기가 물씬하다. 인천개항장 근대건축전시관은 개항장 일대의 건물 모형을 한데 모았다. 이곳의 전신은 일본제18국립은행 인천지점. 일본이 조선 쌀을 싼값에 사서 되파는 일을 했던 나가사키 상인들을 지원하고자 설립한 금융기관이었다. 일본, 청나라 등 각국의 건축양식으로 지은 조계지 건물부터 지금은 소실된 건물, 개항장 거리에 현존하는 건물까지 살펴볼 수 있어 흥미롭다.

●계단으로 나뉜 일본 조계지와 차이나타운

은행 거리의 이국적인 분위기는 일본식 목조주택이 늘어선 거리, 일본풍 거리로 이어진다. 인천 중구청 앞은 개항기 일본인이 거주하던 일본 조계지였다. 가옥은 점포가 딸린 2층 목조주택과 나가야식(일본식 다가구주택) 1층 목조주택이 대부분이다. 목재 골조, 반듯한 직사각형 창, 검은 기와의 어울림은 언뜻 봐도 우리의 것이 아니다. 거리에는 조계지 시절에 지어진 건물과 최근에 세워진 근대식 건물이 뒤섞여 130여 년 전의 아픔을 말없이 전해준다. 건물의 역사성은 유지하되 쓰임새는 달리해 과거와 현재를 잇는 일도 한창이다. 개항기 하역회사 사무실이던 건물은 2011년, 원형에 가까운 복원을 거쳐 카페 ‘팟알’로 문을 열었다.

목조 골격을 살린 카페 내부는 낮잠이 들 만큼 아늑하다. 팟알 바로 옆의 관동갤러리 역시 목조가옥의 외관을 유지한 채 갤러리가 됐다.

‘1883년 일본이 조계지를 만들자 1년 후 청나라는 반대편에 차이나타운을 형성한다.’ 이 역사적 사실을 단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곳이 일본풍 거리와 차이나타운이 맞닿은 지점에 자리한 청·일 조계지 경계 계단이다. 청국과 일본 조계지의 경계가 되는 계단을 중심으로 왼쪽은 중국식 건물, 오른쪽은 일본식 건물이다. 계단 양쪽 석등도 모양이 다르다. 30여개 계단 끝자락에는 중국 칭다오에서 기증한 공자상이 서 있다. 뒤를 돌면 차이나타운의 오색찬란함과 일본풍 거리의 차분함이 한눈에 담기고 저 너머 인천항이 펼쳐진다.

'남국 > 조선' 카테고리의 다른 글

조선 영토  (0) 2021.07.05
조선 고고학  (0) 2021.06.04
[간도오딧세이]  (0) 2021.05.30
[지도와 인간사]  (0) 2020.04.16
[조선후기 신지식인 한양의 中人들]  (0) 2019.11.14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