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력사를 찾아서
만주사변과 윤봉길 의사 의거 후 임정은 상해를 떠나 여러 곳을 전전했고 독립운동가들도 일제의 탄압을 피해 남경·진강·항주·가흥 등 곳곳에 흩어지게 되었다. 이때 미국에서 독립운동자금이 도착하고 김규식이 돌아오자 선생은 임정 재건작업을 주도했고 1933년 말부터 1935년까지 약 2년간 국무위원과 임정수반을 맡았다. 임정에 합류한 선생은 조직을 정비하고 재정을 확보해 임정의 기능을 회복해 나갔으며 은신 중인 김구와도 협력에 나섰다. ■ 항일 언론부터 무장투쟁까지 이끈 전천후 독립운동가2025. 2. 15. 00:02━ 김석동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인물 탐구 ⑭ 우강 양기탁우강(雩岡) 양기탁은 1871년 평양 소천에서 한학자인 부친 양시영의 2남 중 장남으로 태어나 백부 양시욱에게 입양되었다. 어려서 ..

일제는 이와 같은 신민회의 항일적인 성격을 알아내고 이 기회에 식민통치의 장애 세력을 뿌리뽑겠다는 목표 아래 105인 사건을 조작하였다. '혐의'는 1910년 12월에 압록강 철교준공 축하식에 데라우치가 참석하는 것을 계기로 암살을 모의했다는 터무니없는 조작이었다. 이와 같은 각본을 꾸민 일제 경찰은 1911년 9월 윤치호ㆍ이승훈ㆍ양기탁ㆍ유동열ㆍ안태국 등 전국에서 600여 명의 애국지사를 검거, 투옥하였다. ■ '105인사건' 날조하여 애국자 탄압오마이뉴스 김삼웅기자 2018. 10. 15. 16:06 ['의열지사' 박재혁 평전 24회] 일제가 사상전향을 위해 꾸며낸 첫번째 사건 ▲ '안악사건' 동지들 백범이 환국한 후 안악사건으로 옥고를 치른 동지들과 함께 찍은 모습. 앞줄 왼쪽이 김홍량ⓒ 기록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