력사를 찾아서
2. 고구려의 강역 (3) 장수왕이 천도한 평양은 어디인가? 본문
고구려는 시조 동명성왕 때(BC 37년) 졸본(광개토태왕릉비에는 '홀본') 현 랴오닝성 환인 오녀산성에 첫 도읍을 하였고, 2대 유리왕 때(3년) 지린성 집안(지안)에 있는 국내성으로 천도하였고,
10대 산상왕 때(209년) 같은 지린성 지안의 환도성으로 두 번째 천도한 후,
20대 장수왕 때(427년) 현 북한의 평양으로 마지막 천도해서 3번 천도했다고 합니다.
한국사 교과서에도 이렇게 설명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고구려의 수도에 대한 학계의 통설은 1940년대 시라토리 구라키치(白鳥庫吉)가 1900년대 초부터 시작된 도리이 류조(鳥居龍藏)나 이마니시 류(今西龍) 등의 학설을 집대성해 발표한 내용이 그대로 견지돼 온 것입니다.
출처; “수도 평양은 이북 아닌 요동에 있었다!”|신동아 (donga.com)2015-08-21
《삼국사기》를 보면 고구려가 수도를 옮긴 것이 세 번이 아니라 모두 일곱 번이었습니다.
환도성이 두 번, 평양성이 네 번입니다.
그동안의 학설은 이름이 같으면 같은 지역으로 봤는데, 이것부터가 잘못입니다.
따라서 전체 8군데의 도읍지를 처음부터 다시 찾아야 합니다.
출처; 고구려 도읍지 역사 새롭게 쓰일까 - 시사IN (sisain.co.kr)2015.03.18
그런데 동명왕 1년(BC 37년)에 도읍했다는 환인현 오녀산성에서는 첫 수도였던 기간 동안 유물은 나오지 않고, 고구려 중기에 해당하는 동천왕(247년)~고국원왕(342년)기 유물이 집중적으로 나왔습니다.
또 AD 3년에 해당하는 유리왕 때 왕궁 터라던 지안의 국내성 터와 200여 년 후인 AD 209년 산상왕의 환도성 터로 알려진 지안의 왕궁 터 유물·유구에 큰 차이가 없었습니다.
여기에다 장수왕이 옮긴 평양이 과연 지금의 북한 평양인지 의문입니다.
출처; https://v.daum.net/v/20090624035409323
처음 세 곳인 졸본·국내성·환도는 다시 확인해야 합니다.
동천왕 21년 옮긴 평양은 고구려 창건지로 잘못 알려진 환인으로 확인됐습니다.
문헌 기록을 교차 확인하고 오녀산성에 대한 발굴 결과에서 고구려 중기 유물이 집중적으로 확인됐습니다.
이곳에서 동천왕, 중천왕, 서천왕, 봉상왕, 미천왕, 고국원왕 초기까지 재임했습니다.
고국원왕 대에 전연의 모용황의 침입에 대비하기 위해 환인 안에서 환도성으로 1년간 거처를 옮겼으나 모용황의 침입으로 환도성이 치명적인 타격을 입었습니다. 미천왕의 묘가 파헤쳐지고 고국원왕의 모친이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이 상황에서 고국원왕이 천도한 곳이 지금 광개토대왕비가 위치하고 있는 지린성 지안의 동황성(東黃城)입니다.
지안은 랴오둥의 중심에서 멀찍이 벗어난 곳으로, 패전의 실의를 딛고 재충전해야 할 고구려로서는 불가피한 선택이었습니다.
이 기간 고구려의 위대한 왕들이 등장합니다.
고국원왕의 뒤를 이은 소수림왕, 고국양왕, 광개토대왕, 장수왕 등입니다.
특히 광개토대왕은 동쪽으로 신라·백제, 랴오둥의 북쪽까지 광범위하게 영토를 확장했습니다.
더 이상 랴오둥의 구석에 머무를 필요가 없게 됐습니다.
따라서 장수왕 대에서 요동(랴오둥) 지역의 중심인 요양(랴오양)에 진출해 적극적인 서진정책을 추진했고, 베이징 근처 난하(롼허) 유역까지 완전히 수복함으로써 국시인 ‘다물’정신을 완성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 장수왕이 천도한 평양은 요양
《삼국사기》를 보면 장수태왕이 천도한 곳은 85년 전 수도로 삼은 평양입니다.
삼국사기 고국원왕 조는 평양 동쪽에 황성이 있다고 했으니, 평양은 황성의 서쪽에 있어야 합니다.
황성은 지금의 지안이니, 평양은 지안 서쪽에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북 평양은 지안의 남쪽에 있다.
따라서 ‘장수태왕이 천도한 평양은 이북 평양’이라는 국사 교과서의 주장은 《삼국사기》 내용과 완전 배치됩니다.
장수왕이 옮겨간 평양이 지안(황성)의 서쪽에 있다는 것은 요나라 역사서인 《요사(遼史)》 지리지를 통해서도 확인됩니다.
《요사》는 지금의 랴오닝(遼寧)성 랴오양(遼陽)시가 광개토태왕 때 고구려가 도읍을 옮긴 평양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요사》는 장수태왕이 아닌 광개토태왕 때 고구려가 평양으로 천도했다고 설명합니다.
▲ 남의현 교수가 비정한 고려시대까지의 압록수와 평양성의 위치도.
출처; https://cms.koreahiti.com/news/articleView.html?idxno=1832
《요사》 지리지 ‘동경요양부’ 조
“동경요양부는 본래 조선의 땅이다. 위 태무제가 사신을 보내 그들이 거처하는 평양성에 이르게 했으니….”
위의 태무제 때 동경요양부에는 고구려의 평양성이 있었고 장수왕이 그곳에 거처했다는 것이 됩니다.
《원사》 지리지
지금 북한의 평양이 원래의 옛 평양이 아니라는 취지의 글이 들어 있습니다.
《열하일기》
박지원은 평양이나 패수가 한반도가 아닌 대륙에 시기마다 여러 군데 있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조선의 강토는 싸우지도 않고 저절로 줄어들었다”라고 통탄했습니다.
랴오양이 과거의 평양이었다고 단언하기도 합니다.
“발해(渤海)의 현덕부(顯德府)는 본시 조선 땅으로 기자를 봉한 평양성(平壤城)이던 것을 요(遼)가 발해를 쳐부수고 ‘동경(東京)’이라 고쳤으니 이는 곧 지금의 요양현(遼陽縣·랴오양현)이다.”
■ 고구려 때의 '압록수'는 지금의 요하
▲ 고구려 시기의 압록수, 살수, 평양, 사비성 위치
출처; 고구려의 압록수와 평양은 현 압록강과 평양 아니다! - 한국NGO신문 (ngonews.kr) 2017.09.18
《삼국사기》 ‘영양왕’ 조에 612년에 수나라가 쳐들어왔는데, 압록수 서쪽에 재집결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23년(612) 6월에〕좌익위대장군(左翊衛大將軍) 우문술(宇文述)은 부여도(扶餘道)로 나아가고, 우익위대장군(右翊衛大將軍) 우중문(于仲文)은 낙랑도(樂浪道)로 나아가고, ......
검교우어위호분랑장(檢校右禦衛虎賁郞將) 위문승(衛文昇)은 증지도(增地道)로 나아가서 모두 압록수(鴨綠水) 서쪽에 모였다.
〔우문〕술 등의 군사는 노하(瀘河)회원(懷遠) 두 진(鎭)에서 사람과 말 모두 100일치 양식을 보급 받았고, 또 방패․갑옷․창․옷감․무기․화막(火幕)을 지급받았는데, 사람마다 〔짊어져야 할 무게가〕 석 섬 이상으로 무거워 운반할 수 없었다. 군중에 영(令)을 내려 말하기를, “쌀과 조를 버리는 자는 참할 것이다.”라고 하였지만, 사졸들은 모두 장막 아래에 땅을 파고 그것을 묻었다. 겨우 행군이 중간지점에 이르렀는데, 양식은 다 떨어지려고 하였다.』
(한국고대사료DB, https://db.history.go.kr/ancient/level.do?levelId=sg_020r_0020_0270)
《삼국유사》 권 제3 ‘순도조려’ 조에 랴오허가 이전에 압록수였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살펴보면, 고구려 때의 도읍은 안시성(安市城), 일명 안정홀(安丁忽)로서 요수(遼水)의 북쪽에 위치해 있었고, 요수는 일명 압록(鴨淥)으로 지금은 안민강(安民江)이라고 한다. 송경(松京)의 흥국사의 이름이 어찌 [이곳에] 있을 수 있겠는가?』
(한국고대사료 DB, https://db.history.go.kr/ancient/level.do?levelId=sy_003r_0010_0010_0020)
https://youtu.be/GZGf-Kl10CE?list=PLRAmvpNm4pmknMclNbv8SQ0DcEnzu63dn
<자료 출처>
고구려의 압록수와 평양은 현 압록강과 평양 아니다! - 한국NGO신문 (ngonews.kr) 2017.09.18
https://cms.koreahiti.com/news/articleView.html?idxno=1832
장수태왕이 수도를 옮긴 평양이 북한 평양인가? - 코리아 히스토리 타임스 (koreahiti.com)2016.10.12
랴오양(遼陽)이 고구려의 평양? 中요동 고구려계 고분벽화 국내 공개|동아일보 (donga.com)2016-04-08
고구려 도읍지 역사 새롭게 쓰일까 - 시사IN (sisain.co.kr)2015.03.18
고구려의 평양, 대륙에 있었나 - 시사IN (sisain.co.kr)2015.03.18
부여는 만리장성 북쪽에 있었다 - 코리아 히스토리 타임스 (koreahiti.com)2018.05.30
고대의 '평양'은 과연 지금의 평양인가?:플러스 코리아(Plus Korea)2007/10/13 [10:24]
https://v.daum.net/v/20090624035409323
인하대, "통일신라 국경선은 지금의 중국 연변 용정시 부근"2022.03.22
https://v.daum.net/v/20220322120557553
일본이 조작한 우리 국경사 바로 잡아야”... 2022.05.11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469/0000674442?sid=102
고구려 장수왕의 평양 천도…'악수'였나 '신의 한 수'였나 - 노컷뉴스 (nocutnews.co.kr)2015-09-19
장수왕의 남진정책은 어디가 목표인가?:플러스 코리아(Plus Korea)2008/07/06
우리역사문화연구모임(역사문) | 갈석산은 고구려의 역사를 알고 있다(제7회) <고구려 수도의 변천사> - Daum 카페
고구려 평양의 진실 - 복기대 교수 (인하대학교 융합고고학과) [히스토피아]
https://youtu.be/GyI17ysO4uk?list=PLRAmvpNm4pmknMclNbv8SQ0DcEnzu63dn
평양천도의 진실? 진짜 평양의 위치
https://youtu.be/MB-fdwxKCPw?list=PLRAmvpNm4pmknMclNbv8SQ0DcEnzu63d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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